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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치구이와 최루가스








   전동차 안은 조용한 편이었다. 남옥은 노약자 지정석 앞에 서 있었지만, 자리가 쉽게 나진 않았다. 그렇다고 자리를 내어달라고 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다. 지난해에 유럽으로 회갑여행을 다녀 올 정도로 씩씩한 그녀였지만 줄에 매달리듯 서 있었다.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그녀의 다리는 부어서 탱탱한 느낌이었다.

 옆 칸으로 건너가는 통로의 미닫이문에 기대어 서 있는 사람과, 그 옆쪽의 벽면에 기대 서 있는 사람은 둘 다 남자였다. 남옥의 왼쪽 팔에 가깝게 있던 남자는 곧 내렸고 몸이 왜소한 남자만 남았다. 그 남자가 대머리라서 남옥은 얼굴을 돌려서 정면으로 바라보진 않았다. 옆 눈으로 보면서 곱슬머리라서 일반 대머리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남자는 바지를 추스르다가 다리가 살짝 꺾이기도 했다. 뺨 주변이 빨갛게 물든 것으로 봐서 그는 꽤 취한 것 같았다. 남자도 촛불집회에 다녀오는 길일까 생각하다 남옥은 고개를 저었다. 촛불집회에 참석하면 중간에 나오기가 어려워 술에 취하면 골치가 아파질 수도 있었다.

 촛불집회가 해산을 하자마자 소변 때문에 내달렸던 그녀였다. 안국역 화장실 앞의 줄은 명절 기차표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의 행렬을 방불케 했다. 발을 동동 구르던 남옥은 용케도 줄이 짧던 장애인 화장실을 발견했다. 문이 열리면 남자 변기가 그대로 노출되는 남녀공용화장실이었다. 변기가 남녀용 각각 하나씩 있었지만 다행이 역무원이 한 사람씩만 들여보내고 있었다. 남옥은 새치기를 하는 사람처럼 공용화장실 앞쪽으로 슬금슬금 걸어갔다.

 남옥이 변기에 앉아 팬티를 보니 꽤 젖어 있었다. 가끔씩 요실금 현상이 일어나는 나이라서 그 정도도 다행이랄 수 있었다. 남옥은 화장실 앞에서부터 대화행 승강장까지 사람들에게 떠 밀려갔다. 전동차를 탄 후 둘러보니 서 있는 사람도 상당히 많았다. 경복궁역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탔기 때문에 더 혼잡해졌지만 불광역과 연신내를 지나면서 많이 빠졌다.

 남자가 염병할! 이라는 말을 뱉어냈기 때문에 남옥은 잠깐 그를 쳐다봤다. 그 남자의 손이 양복 안주머니와 바지주머니를 들락거리고 있었다. 행동으로 봐서 무엇인가를 찾는 것 같았다. 줄무늬 티셔츠 칼라의 깃이 하나는 세워져 있었고 하나는 눕혀져 있는 게 남옥의 눈에 들어왔다.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는지 표정은 좋지 않았지만 인상까지 나쁜 남자는 아니었다. 작은 키에 왜소한 체구여서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조금 살펴보니 그 남자도 남옥처럼 초로의 나이에 접어들었을 것 같았다. 남옥은 활달한 성격이었다. 아파트의 승강기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할 정도로 오지랖도 넓었다.

 남자는 남옥과 같은 역에서 내리려는 것 같았다. 남옥은 반대편 문 앞에 서 있던 남자의 어깨를 살짝 건드려서 그쪽이 아닌데요, 라고 말했다. 남자가 돌아서더니 씩 웃었다. 남옥도 살짝 미소를 지어보이기는 했지만 시선은 딴 곳에 뒀다.

 “혹시 저를 아세요?”

 갑자기 남자가 남옥의 팔을 잡으면서 물었다, 남옥은 주변에 있던 승객들의 시선 때문에 얼굴이 빨개졌다. 남옥은 아니라고 하면서 남자의 손을 팔에서 떼어냈다.

 밖에 나와 보니 그 역은 지하철이 아니라 지상철이었다. 처음 와 보는 역이라서 출구를 찾아야 했다. 남자는 어느 틈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남옥은 개찰구에서 나와 주변 지도를 훑어본 후 천천히 계단을 밟아 내려왔다.

 역사가 외곽에 지어져있어서 한쪽으로는 산이었다. 산과 역사 사이의 도로에는 택시가 즐비하니 서 있었다. 반대편으로 신호등이 있었고 횡단보도를 건너면 도심으로 이어지는 도로였다. 걸어가면서 얼굴을 드니 저 멀리 횡단보도 앞에 그 남자가 서 있었다.

 남옥이 발길을 멈춘 이유는 특이한 행동 때문이었다. 서 있던 남자가 신호등 뒤쪽에 있는 전봇대로 달려가더니 몸을 부딪쳤다. 남옥이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 했다. 전봇대 옆에 쌍둥이처럼 서 있는 가로등이 그의 행동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떼 부리는 꼬마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웃음이 픽 나왔다. 한편 술에 취한 사람이라서 걱정스러운 장면이었다. 남옥이 거의 횡단보도 앞에 도착했을 때 남자는 세 번째의 시도를 하고 있었다. 남옥은 빠른 걸음으로 남자에게 다가섰다.

 “지금 뭐하세요?”

돌아보던 남자가 딱 멈췄다.

 “내버려 두세요!”

 “어디 그래 가지고 죽겠어요?”

남옥의 말에 남자가 픽 웃었다.

 “그런데 저를 아세요?”

 “아뇨. 전혀 모릅니다. 술을 많이 드신 것 같아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 거죠. 사소한 일에 목숨 거는 것 같은데 제발 마음을 좀 비우세요.”

 남자는 더 이상 고집을 피우지는 않았다. 가는 방향이 같아서 길을 따라 죽 걸었다. 남옥은 신혼여행 중인 아들네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지방이라서 버스가 끊겨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남자에게 촛불집회에 다녀온다고 하니 대단하다는 말을 했다. 본인은 아직 다녀오지 못했다며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더 많으니 내가 더 많으니 하면서 나이를 밝히다보니 동갑이었다. 남옥이, 가끔 술을 마시기 때문에 술 취한 사람의 기분을 안다고 하자 남자가 반색을 했다.

 “언제 소주나 한잔 합시다.”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그럼 전화 드릴게요.”

남옥이 웃으면서 말했다. 남옥은 아파트가 시작되는 곳에서 남자와 헤어졌다. 남자는 근처의 아파트로 갔고 남옥은 비탈진 인도를 따라 올라갔다.

 

 

  남옥은 명함을 애써 잊고 지냈다. 명함은 읽다 던져두었던 책 사이에 끼워놓은 상태였다. 싱글로 지낸지 꽤 오래지만 만나는 남자마다 실망만 안겨줄 뿐이라서 남자에 대한 생각을 끊어내기로 했다. 그런데도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남옥은 휴대폰을 들고 명함에 인쇄된 번호를 입력했다. 통화보다는 문자가 나을 것 같았다.

 ‘그날 잘 들어가셨나요? 술이 많이 취하셨던데...’

 ‘실례지만 누구신가요?’

짤막한 답변이었다.

 ‘촛불집회에 다녀오던 사람입니다.’

남자는 한참동안 답신을 하지 않았다. 남옥이 운동을 가기 위해 욕실에서 이를 닦고 나왔더니 문자가 와 있었다.

 ‘제 전화번호를 어떻게 아셨습니까?’

남옥은 어이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문자를 꾹꾹 눌렀다.

 ‘그쪽에서 명함을 주셨습니다.’

 ‘전혀 기억이 안 나는군요. 죄송합니다.’

남옥은 마지막 메시지를 한참동안 노려봤다.

 

 

  활활 타오르던 광화문의 촛불은 이듬해 초봄 막을 내렸다. 오 개월 만이었다. 대통령이 파면 당하던 날 남옥은 헌법재판소 앞에 사람들과 함께 앉아있었다. 햇살이 따뜻한 오전 11시 경이었다.

 “대통령을 파면합니다!”

  헌법재판관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했다. 긴장이 함성으로 바뀌는 시간이었다. 어떤 이들은 눈물을 흘렸고, 남옥은 전혀 모르는 옆 사람과 얼싸안았다. 나팔소리가 귀에 따갑게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소리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처럼 발을 맞춰 걸었고 입을 맞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청와대 앞까지 행진한 후 다시 광화문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남옥은 대열에서 빠졌다. 아들 부부가 퇴근한 후 축하 술을 하자는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남옥은 우선 점심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탄핵반대집회가 점점 극렬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남옥은 삼삼오오 모여 있는 노인들을 피했다. 술 취한 노인들이 많았는데 대화 중 반은 욕설이었다.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말은 촛불집회 그 새끼들을 다 죽여야 돼였다. 그들이 지지하는 대통령이 파면을 당했으니 그날은 길거리에서 양쪽 집회가 마주치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종로 1가와 2가 중간쯤 가니까 생선구이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남옥은 생선구이 냄새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려다가 멈춰 섰다.

 “친구들은 촛불집회에 가는데 나는 이게 뭐야.”

 대학 일이학년쯤 되어 보이는 학생은 돌돌만 태극기를 펴더니 깃대를 빼냈다. 주변에 자그마한 통이 하나 있었고 쓰레기봉투가 담아져 있었다. 학생은 거기에 깃대를 꽂고 태극기는 접어서 배낭에 넣었다. 보고 있자니 학생의 행동이나 얼굴이 어쩐지 낯익어 보였다. 아는 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에 남옥은 자신의 아파트 근처에서 한두 번 마주친 얼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라면 길을 가다가 몇 번 마주친 사람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탄핵반대집회에 학생이 참석했다는 게 좀 이상하기는 했다.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중년의 남자를 따라 억지로 왔을 것 같기도 했다. 챙이 둥그스름한 회색 모자를 쓰고 있던 남자는 별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중년의 남자가 등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비켜달라는 말을 해야했다. 남옥을 쳐다보던 학생이 키가 작달막하던 남자에게 턱짓을 했다. 그 남자가 돌아보자 남옥은 깜짝 놀라서 입을 벌렸다. 문자를 했을 때 남옥을 기억 못하던 곱슬머리 남자였다.

 상황을 보니 정치성향이 달라서 남옥을 기억 못하는 척 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비껴서 생선구이가 즐비한 골목으로 들어가는데 뒤에서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옥은 천천히 걸으면서 학생의 투정을 듣고 있었다.

 “나까지 동원 시킨 이유가 뭐야. 아빠도 옛날에 데모를 했다면서 나는 이게 뭐냐고!”

흥분한 학생의 목소리가 남옥의 귓전을 울렸다.

 식당에 들어온 남옥은 삼치구이와 소주를 시켰다. 골목의 입구에서 아버지에게 소리를 지르던 아들이 떠올랐다. 그 학생이 아니었다면 남옥은 곱슬머리 남자를 기억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서야 지하철과 길에서 저를 아세요?’ 라고 남자가 되풀이 하던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1980, 그날도 남옥은 삼치구이에 밥을 먹고 있었다.

 연탄화덕 위에 노릇노릇 구워지던 삼치에서 떨어지는 기름 때문에 연기가 자욱한 종로의 뒷골목이었다. 빌딩과 빌딩 사이를 통해 골목으로 햇살 한줌이 들어오는 석양 무렵이었다. 시끄러워지는가 싶더니 그 골목을 통해서 몇 십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왔다. 그들에게 묻어 온건 최루가스 냄새였다. 호각소리가 나긴 했지만 경찰들이 골목까지 들어오진 않았다. 오픈 된 식당에 앉아있던 남옥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가게 바깥으로 한 걸음을 옮겼을 뿐인데 누군가와 부딪쳤다.

 넘어졌던 남옥이 일어났을 때 앞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가 손수건을 내밀면서 괜찮은가 물었고 남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남옥이 빤히 바라보자 대학생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굽슬굽슬해 보이는 그 남자의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있었다.

 남옥의 손목을 보더니 대학생이 손수건을 내밀었다. 남옥의 손목 근처에 피가 맺혀 있었다. 남옥은 피를 닦고 박힌 모래를 털어낸 후 대학생에게 손수건을 돌려주었다. 다시 한 번 미안하다는 말을 한 후 대학생은 남옥에게서 멀어졌다. 골목길을 따라가던 대학생의 뒷모습은 화덕에서 피어나는 연기 때문에 점점 희미해졌다.

                                                    -끝-

 

 

 

 

 

 




김은숙   2018-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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