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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자 놀이


 

 

 

 

                       


                             

  그림자를 보던 나는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어릴 때부터 그림자놀이를 즐겨왔기 때문에 나는 손으로 온갖 사물을 다 만들어 낼 수 있다. 간혹 벽을 타고 개구리가 기어오르고 새가 날기도 한다. 때론 수선화나 튤립이 피어난다.

열 살 무렵 나는 숙제를 하기위해 연화를 만났다. 어스름이 밀려오던 시각이었다. 자연시간에 배운 그림자놀이의 복습을 위해서였다. 가급적 여럿이서 해보라는 선생님의 지시였지만 우리 마을에서는 나와 연화만 같은 반이었다. 꼬박 두 시간 동안 그림자놀이를 했던 그날부터 나는 연화와 단짝이 되었다. 남녀 공학이었던 고등학교까지 친구로 지내다가 졸업을 며칠 앞두고 연인이 되기 위한 과정을 거쳤다.

그림자놀이를 할 때마다 연화와 함께 했던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에 기분 좋은 일이랄 수는 없었다. 연화가 내 곁을 떠난 지 20년이나 되었는데도 나는 불빛과 마주치면 습관적으로 손을 맞잡곤 했다.

용변의 배출이 시작되면서 나는 손동작을 멈추고 천장의 전구를 바라보았다. 대접 모양의 전등갓을 뺐기 때문에 불빛이 눈부셔서 얼굴이 찌푸려졌다.

샤워기 밑에 서서 엉덩이에 비누칠을 하다가 엉겁결에 희재를 떠올렸다. 희재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간호사 복장이 잘 어울렸다. 그 병원의 간호사들은 바지를 입었기 때문에 엉덩이가 빈약하다거나 다리가 짧으면 폼이 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가늠이 어려운 게 여자의 나이지만 턱 선이 둥그스름하고 눈 밑에 주름이 진 걸로 봐서 삼십은 훌쩍 넘었을 것 같았다. 쌍떡잎 같은 앞니 두 개와 낙타처럼 촉촉한 속눈썹도 매력적이었다. 이를 드러내면 웃는 얼굴이 되고, 입술을 닫고 있으면 눈물이 곧 흘러내릴 것처럼 묘한 얼굴이었다.

팬티의 고무단을 잡고 우물쭈물하자 못마땅했던지 희재가 내 속옷을 끌어내렸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잡아 올렸다가 희재의 눈치를 보면서 팬티를 내렸다. 주사바늘이 들어가는 것보다 엉덩이를 치는 희재의 손바닥이 더 매웠다. 주사기를 뺀 후 젖은 약솜을 대고 희재가 잠시 문지르는 사이 가운뎃다리가 딱딱해지는 바람에 진땀을 뺐다. 몇년 만에 여자로부터 전이된 감정이었다. 병원 밖으로 나오면서 하마터면 계단에서 넘어질 뻔했다. 이미 가슴 한 쪽을 희재에게 점령당한 것 같았다.

수업을 마치면서 병원에 전화를 했다. 토요일 오후에는 3시쯤 진료가 끝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시침을 뗐다.

“간호사님. 몇 시까지 진료를 하죠?”

“아...김 선생님. 3시까지 오세요.”

내 목소리라는 걸 알아챈 희재가 부드럽게 말했다. 내 직업이 선생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린 셈이었다. 목이 쉬었기 때문에 의사는 말을 좀 줄여야한다고 했고, 나는 의사에게 내 직업이 선생이라는 말을 했다. 의사와 나의 대화가 오갈 때 희재는 주사실에 있었다. 진료실과 주사실 사이에는 문 대신 합성수지로 된 노란 빛깔의 커튼이 쳐져 있었다.

기껏해야 일 년에 서너 번, 그것도 아주 사소한 병으로 들리는 단골병원이었다. 나는 학교의 화장실에 들러 팬티를 살피고 겉옷도 점검했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빨간 불을 켠 신호등을 만나면 조급한 마음에 투덜대기도 했다.

몇 계단 위에 자리한 병원의 유리문에 비춰진 내 얼굴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인 채 뭔가를 쓰고 있던 희재를 발견했다. 나는 발소리가 나지 않게 실내로 들어섰지만 희재는 용케 알고서 고개를 들었다.

“덥죠? 잠시 만요.”

내가 대답할 겨를도 없이 내 차트는 의사에게 넘겨졌고 대기 중인 환자가 없어서 진료가 금방 끝났다.

“김 선생님은 어떤 과목을 맡고 계세요?”

공기를 빼느라 희재가 조작하는 주사기에서 약물이 몇 방울 빠져나왔다. 거위처럼 쉬어버린 목소리 때문에 대답하기 싫었다. 게다 팬티를 내리고 있으니 대답할 기분도 아니었다. 외면하고 옷을 올리는데 희재가 재차 물었다. 나는 영어라고 간단하게 대답을 했지만 기분이 나빴다. 희재의 말투에서 되바라졌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병원을 나선 나는 집으로 갈까하다 도서관에 들렀다.

침대에 누워 발려 온 책을 펼쳐들었다. 역사학 계통의 책이라 표지가 두껍고 페이지 수가 워낙 많아서 무거웠다. 몇 장 읽지 않았는데도 어깨는 아프고 몇 번씩이나 눈이 감기곤 했다. 나는 책을 밀어버리고 천천히 눈을 깜빡거렸다. 열린 창틀에 거미줄이 무늬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거미줄이 언제부터 드리워져 있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줄이 느슨해진 걸로 봐서 며칠이 된 것 같았다. 거미줄 사이사이에 푸른 하늘이 자리하고 빵 반죽처럼 부풀은 구름도 걸려 있었다.

만약 희재와 함께 오후를 보냈더라면 찻집에서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을 보았을 것 같았다. 오페라하우스를 흉내 낸 그 찻집은 앞부분에 곡면으로 된 통유리를 끼웠다. 앞을 가로막은 건물이 없어 통유리를 통해 주변의 풍경에서부터 하늘과 구름까지 볼 수 있었다. 나는 구름이 거미줄을 천천히 벗어나는 것을 보면서 책을 덮고 누워 깍지 낀 두 손을 머리에 둘렀다. 희재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의사는 나를 진찰한 다음 바쁘다며 금방 외출을 했고 간호조무사 하나는 화장실에 간 후 한참동안 나오지 않았다. 시간은 충분했는데 선입견 때문에 나는 희재에게 퉁명스럽게 대할 수밖에 없었고 희재도 사무적인 말투로 돌아가 있었다.

“원체 말이 없는 분이니 설명이 필요 없겠네요.”

희재는 딱딱한 말투로 진단서를 내밀었다.

“예?”

“말귀도 어두우시네. 말을 많이 해서는 안 된다고요.”

“아...예.”

나는 멋쩍어서 받아 든 진단서를 들여다보는 척 했다. 의사들이 쓰는 용어는 영어선생인 내게도 어려웠다. 희재는 주말이니 이틀간 목을 조심하면 금방 좋아 질 거라는 말을 했다. 병원에 그만오라는 얘기였다.

병원에 갈 일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한숨이 나왔다. 나는 책을 밀어버리고 잠을 청했다. 그 후 나는 학교에서 퇴근할 때마다 일부러 병원 앞을 지나다녔다. 간호사는 밖에 나다니는 직업이 아니었고 나는 아프고 싶어도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전화기였다. 목소리도 본래대로 돌아왔으니 어려울 것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통화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맨 처음 꺼내야 할 말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갈등 속에서 시간이 자꾸만 흐르고 있었다.

 

 

   “김 선생님 웬일이세요?”

입을만한 팬티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나는 길에 들른 가게였다. 진열대 안쪽에는 두 여자가 있었다. 희재는 방처럼 꾸민 장방형의 공간에 앉아 있었고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호리호리한 여자는 그 옆에 서 있었다. 호리호리한 여자는 목이 없는 마네킹을 거꾸로 들고서 팬티를 입히고 있었다.

“저...셔츠 좀 사려고요.”

호리호리한 여자는 희재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마네킹을 들고 진열장을 돌아나갔다.

“셔츠라... 100을 입으면 맞겠네. 몇 개 필요하세요?”

희재의 시선이 내 어깨와 어깨 사이를 오갔다.

“두개만 주세요.”

사각팬티를 사러왔다가 필요 없는 셔츠만 사가게 될 것 같았다.

“근데 아는 분이니?”

“응...우리 병원 환자셔.”

“환자?”

진열장 앞을 돌아들어간 호리호리한 여자가 내 얼굴과 몸을 유심히 뜯어보았다.

“내가 말을 잘못했군. 언니, 이분은 가벼운 증세로 오셨어.”

희재가 셔츠를 종이봉투에 담으며 말했다.

“다른 건 필요하지 않으세요?”

내가 머리를 긁자 희재가 웃었다. 희재는 100사이즈의 사각팬티를 몇 장 골라내었다.

“마음에 드는 무늬로 고르세요.”

사각팬티를 보자 주사를 맞던 기억이 떠올라 얼굴이 뜨거워졌다. 실은 삼각팬티를 입으면 여름 내내 사타구니 근처에 땀띠를 달고 살아야 했다. 사각팬티가 나온 후부터는 삼각과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나는 눈으로 고른 다음 검지로 하나씩 가리켰다.

“댁은 어디세요?”

나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희재였다.

“산마루 가동에서 살아요.”

“저의 집도 그쪽 방향인데...”

“오늘 일 좀 보느라 차를 끌고 왔어요. 차에 태워드릴게요.”

나는 뒷말을 바로 덧붙였다.

“걸어가도 됩니다. 가로수 너덧 개만 지나치면 집인데요.”

“커피 좋아하세요?”

재빨리 내가 물었다. 바로가면 노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커피요?”

희재가 머뭇거렸다. 병원에서 보았던 당돌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어차피 뽑아 든 칼이었다. 나는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을 떠올렸다.

“치료를 잘 받았다는 인사도 못했습니다. 이 차입니다.”

나는 인도에 앞바퀴를 올리고 있는 흰색 승용차의 문을 열었다.

“집에 늦는다고 전화하세요.”

미혼임이 분명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만약 유부녀라면 커피 한잔으로 끝내야만 했다.

“제가 할 말이 아닌가요? 김 선생님의 보험카드로 봐서는 미혼 같긴 하지만...”

희재가 말끝을 길게 뺐다.

“하지만?”

“기러기 아빠일 수도 있죠.”

“애써 갖다 붙이자면 뻐꾸기새끼 같은 존재입니다.”

“뻐꾸기새끼?”

“달랑 혼자라는 말이죠.”

“아. 그럼 저도 같은 종류네요.”

“그렇군요.”

“이제 보니 전혀 무뚝뚝한 남자가 아니네요?”

웃다가 동시에 얼굴을 돌린 탓에 내 눈과 희재의 눈이 부딪쳤다. 갑자기 전기가 몸을 한 바퀴 돌아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운전대를 쥐고 있던 손아귀가 풀려서 정신을 다잡았다. 희재의 볼이 적포도주 빛을 띠고 있었다. 관심도의 수치가 같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바에서 커피가 아닌 칵테일을 마시자고 한 건 나였다. 간단한 저녁을 먹었지만 점점 취기는 더해갔다. 회식 후처럼 마지막 코스는 노래방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희재의 손에서 마이크를 빼앗았다. 나는 희재를 바라보면서 결혼해 달라는 노래를 연거푸 두곡이나 불렀다. 결코 농담처럼 부른 노래는 아니었다. 나는 희재의 어깨를 껴안고서 집으로 왔다.

 

  나는 손전등을 든 채 연화와 마주 서 있었다. 연화는 그림자놀이를 위해 모아 쥔 두 손을 높이 쳐들었다. 저고리의 소매가 흘러내려 가늘고 흰 팔목이 드러나고 손가락 열 개가 펴졌다. 돛단배가 물빛의 벽에 새처럼 앉았다. 돛단배는 꽃으로 바뀌었고 곧 커다란 새가 되어 날았다. 내 시선은 벽에서 연화의 손으로 건너왔고 몸을 감싸고 있는 한복을 따라 움직였다. 연화의 발끝이 움직일 때마다 수양버들처럼 살랑거리는 치맛자락이 눈에 들어왔다. 한복의 빛깔이 지나치게 희어서 빛을 담고 있는 거울 같았다.

“너도 같이 해.”

연화가 손을 뻗쳐 나를 잡으려 했다.

“싫어. 이젠 그만할래.”

나는 손을 뿌리치면서 연화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연화야. 제발 내 곁에서 떠나주라. 내가 이렇게 빌게.”

내 말에 연화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일어나서 연화를 안고 손을 얼굴에서 떼도록 했다. 그 순간 나는 소스라쳤다. 연화의 흰자위는 그때처럼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나는 벌떡이는 가슴을 누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내 방의 내 침대였지만 누군가가 옆에 누워있었다. 탐스런 머리칼을 보았고 소리를 막느라 입을 틀어쥐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등을 돌리고서 자고 있는 여자는 연화가 아니라 희재였다.

연화는 내가 사귀는 여자와 동침을 하면 꿈에 나타나곤 했다. 나는 꿈속에서 보았던 연화를 떠올리며 연애도 결혼도 아주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문제는 희재와는 별개였다.

결혼식을 올린 후 혼인신고를 채 하기도 전에 사고가 났고 연화는 식물인간이 되었다. 상태가 지속되면서 나의 병원생활도 고무줄처럼 늘어났고 나는 무기력해지면서 지쳐갔다. 연화를 향한 내 감정도 사랑에서 원망으로 바뀌었고 나중에는 증오심까지 생겨났다.

연화는 그렇게 3년을 살다가 타의에 의해 산소호흡기와 분리가 되었다. 결심이 서던 날 나는 연화의 몸을 깨끗이 닦았다. 산소 호흡기를 떼자 연화의 얼굴이 안간힘을 쓰는 사람처럼 붉어지면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잠깐 사이 늘 감겨 있던 연화의 눈이 떠졌고, 나는 핏빛으로 물든 흰자위를 보았다. 한참 후 나는 연화의 눈을 손으로 쓸어서 감겼다.

연화가 병원에 입원하던 첫날을 잊지 못한다. 그날 나는 연화의 새끼손에 내 새끼손을 걸고 손도장을 찍으며 속삭였다.

“너 말고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거야. 약속해.”

 

 

                                                              -한국 어촌 어항 협회에 기고한 작품-

 

 

 

 

김은숙   2008-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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