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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터팬과의 조우


      



                     

 

   화촉점화를 위해 단상 앞에 선다. 내가 불을 켤 촛대는 다양한 색의 꽃 무더기 가운데 있다. 손이 떨려 나는 가스 점화기를 연거푸 누른다. 초가 켜지면서 실내에 붉은 기운이 도는 것 같다. 나는 위쪽의 단상에서 내려오면서 얼굴을 잠깐 들었다. 물방울 모양을 본떠서 만든 샹들리에가 천장을 수놓았고 아래쪽 통로에는 빨간 카펫이 깔려 있다. 통로의 끝자락을 밟고 선 딸과 사위가 눈에 들어온다. 딸의 눈이 깜빡거리는 게 멀리서도 보인다. 나는 흰 드레스를 입은 딸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눈이 커다란 딸은 이십대 때의 나처럼 피부가 희고 몸이 가냘프다. 우와... 눈이 엄청나게 커서 시야가 넓을 것 같아요. 이십대 때 내게 그런 말을 하는 남자가 더러 있었다. 모르는 사람일 경우 내게 수작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나는 못 들은 척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내 눈에 대한 사람들의 감탄사를 가끔 듣는다.

  나와 안사돈은 중앙대에 나란히 섰다. 하객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구부리자 박수소리가 쏟아진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곤 한다. 동영상을 촬영하는 남자는 통로에서 이동 중이었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남자는 구부린 자세이다. 내가 돌아와 앉자 사회자가 마이크에 대고 신랑신부 입장이라는 말을 한다. 이어 결혼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딸의 결혼식이지만 나도 긴장이 되는 것 같다. 주례사의 말도 잘 들리지 않는다. 주례사야 빤한 내용이지만 딸과 사위는 잔뜩 경직되어있다. 서약서 앞에서는 옛날의 나처럼 둘 다 숙연한 표정이다. 그때 나는 스물 셋이었고 아직은 어렸던 탓인지 주례사를 듣는 내내 울었다. 눈물 때문에 얼굴에 세로 줄이 몇 개씩 생겨서 사진을 찍기 전 잠시 화장을 고쳐야 했다.

  어디선가 플래시가 터지고, 동영상을 촬영 중인 남자가 내 얼굴에 카메라를 가져다 댄다. 촬영 중이겠지만 내 곁에 지나치게 머무는 것 같아 기분이 찜찜하다. 하객들 시선 때문에 얼굴을 확 젖혀서 바라볼 수는 없다. 나는 약간 고개를 숙인 자세로 곁눈질한다. 이삼 초 정도 바라보니 누군지 알 것 같다. 나는 진땀이 나기 시작한다.

  남편은 나 몰래 한 여자를 오년간이나 만나왔다. 일이 터졌을 때 주변에서는 늦바람이 무섭다는 말도 했고 그냥 넘어가야한다는 조언도 했지만 내겐 감당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 뒤부터는 집에 있으면 잡념에 시달렸기 때문에 바깥출입을 해야만 했다.

  그동안 나는 방안퉁소처럼 살아왔기 때문에 바깥세상에 적응이 잘 안되었다. 겨우 영화관이나 갔고 아니라면 집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다가 친구를 따라 간 곳이 중년나이트였다.

  나이트클럽이야 젊었을 때 간혹 가던 곳이니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었다. 다만 즉석미팅 장소로 쓰이는데 부킹 족 대부분이 기혼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나이트에 가기 전부터 술을 마셨던 터라 별로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합석을 한 남자들은 우리 팀에 비해 상당히 젊었다. 올백으로 머리를 넘긴 그 남자는 술을 마시는 나를 한참동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취하신 거 같네요.”

  “내가 취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에요?”

  나는 술잔을 입에 대면서 눈을 흘겼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나중에는 두 사람만 테이블 앞에 남아있었다. 거기까지는 일목요연하게 기억을 한다. 다음날 새벽 나는 자다가 갈증이 나서 깼다. 객실의 침대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놀라면서 옷매무새를 살폈다. 이상한 점은 겉옷까지 입은 상태였고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놀라실까봐서 먼저 갑니다. 편히 주무시기 바랍니다.’ 남자가 남기고 간 메모지에는 다른 내용이 없어서 오히려 당혹스러웠다. 메모지의 끝 부분에 피터 리, 라고 쓰여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 남자는 전형적인 한국인이었다.

  그런 메모를 남겼으니 내게 해를 가할 사람 같진 않다. 아마 웨딩 스튜디오에서 온 사진사일 것이다.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 가슴은 진정되지 않는다. 딸의 결혼식이라서 신경 쓰는 일이 거의 없어서 망정이지 며느리를 들이는 입장이었다면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을 것 같기도 하다.

  뷔페식당에서 하객에게 인사를 할 때까지도 나는 건성이었다. 남편은 나더러 정신이 나간 것 같다는 말을 하더니 손님을 챙겼다. 게다가 내가 남편을 쳐다보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더 어긋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핸드백에 담긴 명함을 줄곧 떠올리고 있었다. 남자는 마치 접선을 하는 사람처럼 내게 명함을 주었고, 나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야했기 때문에 민첩하게 행동을 했다. 명함은 귀퉁이에 금색 리본 장식이 있어 작은 선물 상자 같은 느낌이었다. 명함에 찍힌 이름도 그때처럼 피터 리 였다.

 

 

   “여전히 눈이 아름답군요.”

  나를 빤히 바라보던 남자가 그런 말부터 꺼낸다. 쉰다섯이나 된 내게 그런 말을 하는 남자의 저의가 궁금하다. 나는 물 컵으로 마른 입안을 축였지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지 난감하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남자는 나와 모텔까지 갔고 객실에 함께 있었다.

  대부분 재생이 안 되지만 토했던 기억은 있다. 그때 내 하반신은 객실에 있었고 상반신은 화장실에 있었다. 화장실과 객실 사이에 유리문이 있었는데 문턱이 아예 없었다. 바닥에 깔린 타일이 객실을 약간 침범한 상태였다. 스토리가 죽 이어지는 게 아니고 그때의 상황이 몇 컷의 낡은 화보처럼 머릿속에 담겨있다.

  몸을 가누지 못했으니 남자가 다 치워 줬을 테고 얼굴도 닦아 주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새벽녘 화장실에 들렀을 때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전부 다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남자가 잠자는 나를 더듬었을 수도 있다. 나는 눈치를 살피느라 딴 곳을 보면서 남자의 얼굴을 간혹 흘깃거리곤 한다.

  남자는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 침묵을 지켰다. 남자는 천천히 창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날의 일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지만 물어 볼 수가 없다. 술 때문에 테이프가 끊겼다는 말은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 나는 남자 앞에서 벌을 서고 있는 것만 같다.

  남자가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자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던 나도 얼굴을 돌린다. 한강은 푸르다 못해 시퍼렇다. 유람선이 물거품을 남기면서 느리게 지나간다. 건너편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아파트는 거의 흰색이다. 어찌 보면 한강변에 바리케이드를 쳐놓은 것 같기도 하다. 창공에 줄을 지어 나는 철새가 멀리 보인다. 청둥오리는 날 때도 부자연스럽다. 엉덩이가 쳐진데다 날개를 유난히 퍼덕거려서 자세가 불안해 보인다. 철새이니 머나먼 길을 날아왔을 텐데, 불편한 자세로 어떻게 왔을까싶다. 나는 수영미숙인 사람이 한강을 건너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강에서 시선을 돌리는데 남자가 재빨리 내 얼굴에서 시선을 거둔다. 아마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어색해서 남자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나는 남자의 머리 위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천장의 크고 작은 구멍에 오스람램프가 들어앉아 빛을 내쏘고 있다. 카페의 일부는 램프 때문에 지나치게 밝지만 실내는 적당히 어둡다.

  “옛날에는...”

  생뚱맞은 말을 끄집어낸다. 다음 말이 궁금해서 부담스러운 관계라는 걸 잠깐 잊고 남자를 빤히 쳐다본다. 어딘가 모르게 내 눈에 익숙한 느낌이다. 한국 사람들의 얼굴은 거기서 거기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남자는 다음 말을 잇지 않는다.

  “옛날이요?”

  다음 말을 유도하느라 남자가 했던 말을 내가 반복한다.

  “한강을 보니 어릴 적 생각이 나네요. 저 강도 얼면 썰매를 탈 수 있을 테니까요.”

  이야기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간다. 내 마음은 이내 편해진다.

  “아... 그렇겠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도 한때 시골생활을 했다. 시골학교에 발령을 받았는데 적응이 어려웠다. 그래도 결혼만 아니었으면 더 버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자가 대답 없이 찻잔을 들고 있어서 다시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바깥이 회색빛으로 변하는 걸 보니 곧 어둠이 내릴 것같다.

  “4학년 때였는데... 저는 더 이상 자라고 싶지 않았어요.”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남자를 쳐다봤다. 넘겼던 머리칼 몇 올이 이마에 내려와 있다. 남자의 이마는 다소 넓다. 아니 앞머리가 빠져서 애초보다 더 넓어졌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얼굴은 사십대 초반을 벗어났을 것 같진 않다.

  “누구나 그렇지 않나요? 제가 이십대에 영원히 머물고 싶었던 것처럼 말이죠.”

  나는 말을 하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날 밤 일을 물어보면 변명이라도 늘어놓아야할 테니까. 나이트에서 술집으로 자리를 옮긴 후 나는 너무 많은 말을 주절거렸다. 남편의 외도가 아내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이라도 한편 쓰고 싶었다는 건 과장이 아니다. 여자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면 누구를 붙들고라도 속에 쌓인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술에 취했으니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도 다 털어 놓을 수가 있다. 취조를 당하는 피의자처럼 말이다.

  “많이 힘드셨던 것 같았어요.”

  남자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불편해할 것 같은 말은 입에 올리지 않아 나름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얼굴에 미소를 올리고 핸드백 속의 명함을 떠올린다. 피터 리, 라는 이름을 떠올리고 보니 남자의 혀끝이 예사롭지 않다.

  “명함에 피터 리 라고 쓰여 있던데...”

  “미국 이모 댁에서 잠시 살았어요. 그때 사용하던 이름이 피터 리 죠. 제 소원은 피터팬이고요.”

  “피터팬이요?”

  남자가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남자는 더 이상 말이 없다. 궁금하지만 나도 질문을 더 할 수가 없다. 나는 빈 커피잔을 들여다본다. 차라리 술이라도 마시면 덜 어색하고 따라서 편할 수도 있겠지만 그날 밤의 상황 때문에 커피로 만족해야만 한다.

  “제가 4학년이 되었을 때 어느 학교로 전학을 갔거든요. 그런데 담임이었던 여선생님이 어찌나 예쁘던지... 저는 그 선생님을 보면서 화장실도 다니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 오해를 받았던 시절이 언뜻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남자를 쳐다보며 웃음을 살짝 머금었다. 나는 한참 남자를 바라보았고, 남자는 한 눈 팔듯 딴 곳에 시선을 뒀다. 어디선가 When I dream이라는 노래가 튀어나왔다. 아... 잠깐요. 전화가 왔네요. 남자가 말을 하면서 일어섰다.

  남자가 등지고 서자 나는 얼굴을 쳐들어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한쪽으로 살짝 기울은 머리와 쌍가마. 처음부터 내 눈에 다소 익어 보이던 얼굴,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내 두 손이 양 무릎을 꽉 쥐었다. 발령 받은 이듬해에 가르쳤던 4학년 아이들 중에서 키가 큰 남자아이가 있었다. 화장실 앞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남자와 그 아이가 겹쳐지면서 내 몸은 조형물처럼 굳어졌다.

  전학을 온 그 아이는 다른 애들보다 나이도 더 많았다. 겨울이었고 오후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오후 수업을 위해 내가 교실에 들어오자 석탄 난로 주위에 빙 둘러 서있던 아이들이 흩어졌다. 아이들은 자리에 앉으면서 전혀 소리를 내지 않았다. 아이들의 눈빛이 유난히 내게 쏠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도 교탁 위의 의자에 앉았다. 일이초도 지나지 않아 내 얼굴은 창백해졌다. 등에서 진땀이 흐르면서 금방 눈물이 고였다. 이를 악물지 않았다면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을 것이다.

  압정이 치마와 두꺼운 스타킹과 코르셋까지 뚫고 들어와 허벅지에 꽂혔던 것이다. 잠깐 동안 일어나지도 못하던 나는 겨우 엉덩이를 들추고 압정을 뽑아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범인을 찾았다. 침묵을 지키던 모든 아이들에게 일어나 손을 들라고 했다. 십 분이 채 안되었을 때 그 아이가 손을 내리고 앞으로 나왔다. 나는 공범자까지 색출했다.

  수업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의자를 들고 있는 아이들은 그 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런 상태로 있을 예정이었다. 겨우 오 분이 흘렀는데 셋 중 누군가가 우는 소리를 냈다. 오 분쯤 더 흐르자 두 아이가 울음소리를 냈다. 그때 나는 칠판에 글씨를 쓰고 있었다. 갑자기 앉아있던 반 아이들이 와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화가 난 표정으로 벌을 선 아이들을 돌아봤다.

  주동자였던 그 아이 발끝에 바지가 걸려있었고, 상의에 반쯤 가려진 물건이 내 눈을 비집고 들어왔다. 아직 쓸모가 없는 생식기에 불과했지만 스물두 살인 처녀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얼굴이 새빨개진 나는 세 아이들을 자리로 돌려보냈다.

  나는 아이들에게 자습을 시키고 복도에서 종이 울릴 때까지 가슴을 식혔다. 복도를 오가면서 귀를 기울었지만 신기하게도 빈 교실처럼 조용했다. 얼마 되지 않아서 가정 사정 때문에 아이는 다시 전학을 갔다. 그 후 나는 주사를 맞을 때마다 악몽에 시달리곤 했다.

  휴대폰을 접은 남자가 화장실로 들어가자 나는 자리에서 얼른 일어났다. 차 값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바람이 제법 분다. 전선이 고무줄처럼 출렁이고 네온은 건물의 부분 부분을 화려한 빛깔로 장식하고 있었다.

  건물을 지나 강과 인접한 도로로 나왔다. 나는 횡단보도 앞에 서서 한강을 바라보았다. 검푸른 강에는 수채물감처럼 불빛이 번져 흐르고 있었다.

 

                                                                               -끝-

 

 

                                                                     월간 안경계에 기고한 작품

 

 

김은숙   200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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