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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해후


 

      




                        

 

  손목의 시계를 들여다보던 여자는 레지를 불렀다. 손님들 대부분이 믹스커피를 마시고 있었지만 여자는 원두커피를 시켰다. 여자의 손톱에 에나멜이 발라져있어 손가락이 길쭉해 보였다.

실내는 좀 어두웠고 한쪽 벽에 액자가 걸려 있었다. 여자는 벽에 걸린 액자를 하나하나 훑어봤다. 비틀즈의 사진이 중간에 자리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그림이었다. 정물화나 풍경화였는데 여자가 판단하기로는 풋내기 화가의 작품이었다. 여자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디제이 박스를 둘러보았다. 조도가 낮은 전구에 불이 들어와 있었지만 디제이는 출근 전이었다. 여자는 네모난 공간의 한 면을 가득 채운 낡은 음반을 쓱 훑어봤다. 음악은 디제이 박스와 관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슬리퍼를 들고 들어 온 구두닦이가 실내를 한 바퀴 돌아나가자 배낭을 짊어진 할머니가 들어왔다. 할머니의 손에는 껌이 들려있었다. 여자가 인상을 쓰자 할머니는 내밀었던 손을 거둬들였다. 더러운 옷차림 때문에 껌을 공짜로 준다 해도 받을 마음이 없었다.

여자의 의상은 커다란 무늬가 박힌 원피스였는데도 무척 세련된 느낌이었다. 원피스 무늬의 색과 여자의 목에 감긴 머플러의 빛깔이 흡사해서 아주 잘 어울렸다. 여자는 더웠지만 보라색 머플러를 풀지 않았다.

여자는 스피커 속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면서 흥얼거렸다. 영화음악인 예스터데이였다. 보랏빛 하이힐의 뾰쪽한 앞부분이 박자에 맞춰 까딱거렸다. 여자는 벽에 걸린 시계의 분침을 쳐다보면서 등을 젖혔다. 마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여자의 시선이 저절로 움직였다.

들어오던 남자는 밀던 문을 놓은 다음 얼굴을 들었고 여자와 시선이 부딪쳤다. 2-3초간 남자는 경직된 자세로 섰고 여자는 약속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를 외면했고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빈자리가 없자 남자는 베레모를 쓴 남자가 앉은 탁자 앞에서 양해를 구했다. 베레모가 보던 신문을 치우고 고개를 끄덕거리자 앞 의자에 앉았다. 베레모가 문과 마주하는 자리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남자의 자리는 문이 열릴 때마다 고개를 돌려야할 위치였다.

여자에게 측면을 보이고 있는 남자의 안경은 구식이었고 바지는 무릎이 나와 있었다. 유행에 뒤떨어진 짧은 머리를 보면서 여자는 갓 상경한 촌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는 남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느라 반쯤 남은 커피가 식는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무릎 위에 놓인 손가락의 깍지를 꼈다 뺐다 하던 남자가 커피를 시켰다.

“아가씨 여기 설탕이요.”

남자는 잔을 놓고 돌아서는 레지에게 말했다.

“거기 있잖아요.”

허벅지를 간신히 가린 치마의 엉덩이 쪽을 당기면서 레지가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탁자의 한쪽에 설탕과 크림 그릇이 놓여 있었다. 레지가 바쁜 걸음으로 사라지자 남자는 설탕그릇의 뚜껑을 열고 스푼으로 설탕을 펐다. 설탕이 스푼에서 커피 잔으로 떨어지면서 커피가 넘쳤다. 스푼으로 커피 잔의 가장자리를 건드려서 일어난 일이었다. 휴지를 뽑아서 테이블을 문지르는 남자를 쳐다보던 베레모가 실내를 한 바퀴 둘러보더니 일어섰다. 베레모는 신문을 구겨 쥔 채 빈 자리로 가버렸다.

남자가 마시던 잔을 접시에 놓자 딸그르르하는 소리가 났다. 마치 경미한 지진이 테이블 밑을 지나가는 것 같았다. 여자가 계속 쳐다 본 이유는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여자가 원하는 남자의 스타일은 야망과 패기가 겸비되어야만 했다.

상기되었던 남자의 얼굴빛이 서서히 풀릴 무렵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방에 들어 온지 30분이었고 약속시간에서 25분 이상 벗어난 상태였다. 여자는 카운터 앞으로 가서 계산대에 있던 레지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레지가 앞에 있던 마이크에 대고 이름을 불렀다.

“혹시 김무현씨가 계시다면 카운터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이나 이름을 불렀지만 아무도 일어서지 않았다. 여자는 실내를 둘러보다가 계산대에 돈을 내밀었다.

“거지같은 놈!”

여자는 나가면서 거칠게 말을 뱉어냈다. 집으로 들어간 여자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어딘가에 전화를 했다. 상대는 만나지 못한 남자의 먼 이모뻘이 된다는 사람이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만나지 못했어요? 이상하네.”

“그림자도 못 봤습니다.”

“분명 나간다고 했는데. 좀 늦은 게 아닌가?”

“첫 약속인데 시간을 못 지킬 정도라면...참나. 그만두기로 하죠.”

“실력도 좋고 성격도 좋은 사람인데. 쯧.”

이모는 변명과 함께 혀 차는 소리를 냈다.

“저는 바빠서 이만 끊겠습니다.”

실력이 좋은데 법대를 나와 법원서기를 하나? 여자는 수화기를 놓으면서 중얼거렸다. 남자에게 직접 전화가 온 것은 일주일 후였다. 그날 길이 밀려 30분 이상 지체되었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시간이 되면 식사라도 하고 싶다는 남자에게 쏘아붙였다.

“딴 데 가서 알아보세요.”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데 여자는 수화기를 놓아버렸다.

 

 

  아이엠에프가 하리케인처럼 나라를 쓸고 지나갔다. 남편이 운영하는 중소업체는 부품을 수입에 의존했기 때문에 타격이 컸다. 원화가치의 폭락으로 인해 자재를 비싸게 들여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나마 완성된 제품도 팔리지 않았다. 내수경기까지 침체여서 이중고였다. 살인적인 물가 때문에 소비자들은 생필품 외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평소에는 장점이었던 남편의 야망과 패기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환율이 오르기 직전 사업 확장을 했으니 근시안적인 사고라 할 수도 있었다.

부도가 나자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했다. 산더미 같은 부채를 감당하기 힘들었고 남은 가족이라도 먹고 살아야만했기 때문이었다. 형식적인 이혼이었지만 남편은 돈을 벌어온다며 집을 나갔다. 여자는 몇 가지 가재도구를 팔고 비자금까지 털어 비좁은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나마 여자의 비자금이 얼마 되지 않아서 당장 생활이 막막해졌다. 아파트의 붙박이식 장롱에 들어있던 화려한 의상들은 구입할 때만 비쌌지 팔려고 하니 값어치가 전혀 없는 물건이었다.

흥청망청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자책감으로 시간을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기 때문이었다. 미대에 다닐 때부터 피워왔던 담배도 끊었다. 골초라 할 수 있었지만 담배 값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이들 그림을 가르쳐볼까도 생각했지만 해 오던 일이 아니라서 막막하기만 했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려 다니다가 겨우 식당의 홀에 취직을 했다. 외모덕분에 설거지를 면한 셈이었다.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해봐야 최저임금밖에 받지 못하니 평생 남의 가게에서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여자는 간혹 주방의 조리대를 눈여겨봤다. 음식을 하는 노하우라는 게 다른 데에 있는 게 아니었다. 조미료를 얼마만큼 쓰느냐에 달려 있었다. 외식을 하는 사람들이 조미료 맛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식당에 와서 일하면서 깨달았다고 할 수 있었다.

여자는 퇴근 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포장마차 자리를 물색하기 위해서였다. 포장마차는 굳이 새 집기를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헌 집기와 자그마한 수레까지 구입하고 나니 우연의 일치인지 곧 지방선거철의 시작이었다. 우선 선거철의 덕을 보고 그 후에는 장소를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는 어느 장소에서 유세를 하는지 재수생인 아들에게 알아보도록 했다.

여자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유세장이 있었다. 유세장을 돌아보고 온 그날, 여자는 초야를 맞이하는 사람처럼 잠을 설쳤다. 이튿날 여자는 아들과 함께 공터 한쪽에 기둥을 세우고 녹색과 빨강색 줄무늬의 비닐 천을 씌웠다. 그날은 한산했지만 이틀 후부터 지방선거이니 시장이나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후보들까지 다녀가면 시장터와 다를 게 없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여자가 취급하는 메뉴는 어묵과 국수, 떡볶이였다. 제법 더워지는 때라서 국수의 다시국물은 끓여서 식혔다. 재료를 준비할 시간이면 아들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날은 무소속으로 나온 시장 후보의 연설이 있었다. 가건물로 설치된 연단 양쪽에는 화보를 든 여자 도우미가 섰고, 다른 남녀 도우미들은 스피커를 설치하고 있었다. 화보속의 인물은 사십대 초반쯤 보였는데 눈매가 예리해서 깐깐한 이미지였다. 환경단체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 환경에 대한 공약이 많은 것 같았다. 공약은 그런대로 쓸 만하다는 생각이었다. 여자는 선거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누가 어떻다는 것은 대략 알고 있었다.

곧 노래가 흘러 나왔다. 뽕짝스타일의 노래였으며 가사가 익살맞았다. 가,나,다,라,마,바,사,아까지 굴비처럼 엮어 만든 노래였다.

가는 님아, 나 좀 보소...경쾌하고 빠른 노래였다. 도우미들이 박자에 맞춰 춤을 추면서 스피커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격렬한 몸짓이라서 몸에 걸친 휘장이 어깨 부근에서 흘러내리곤 했다. 사람들은 주인공의 연설보다 도우미들의 춤과 노래에 관심을 더 보이는 것 같았다. 아이의 성화에 목말을 태운 남자들도 더러 보였다. 무소속인데다 젊은 후보라서 군중들도 거의 젊은 층이었다.

노인들이 얼마 되지 않아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노인들은 천원에도 벌벌 떠는 습관이 있었다. 물론 공짜를 싫어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누군가가 사겠다고 하면 포장마차로 우르르 몰리기도 하겠지만 잘못 먹으면 탈이 나기 마련이었다. 국수 한 그릇을 먹고 고급 코트 값을 물게 될 수도 있었다. 아는 사람끼리 몇 천원어치 먹고 가는 게 고작이어서 특수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나마 손님이 끊어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여자는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찬조연설 시간이었다. 시장 후보의 선배라는 사람이 소개되어 단상에 오르자 주변이 약간 소란스러워졌다. 사회자는 남자를 인권변호사라고 소개했다. 여자는 파를 썰던 칼을 놓고 얼굴을 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드는 남자였다. 칼질 때문에 이름을 제대로 듣지 못했던 여자는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보았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칼을 쳐들었다.

“안녕하세요? 김무현입니다.”

걸쭉한 목소리에 여자의 검지 손톱이 약간 잘려 나갔다. 여자는 뻣뻣해진 고개를 들어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딸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커피를 마시던 남자, 카운터에 건네던 쪽지에 적힌 이름, 그 일주일 후 전화기를 통해서 들려오던 목소리. 그것들은 북과 채와 소리처럼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여자는 다리가 후들거려서 가까운 곳의 의자를 잡아당겨 가까스로 앉았다.

연단을 바쁘게 내려오던 김무현은 함께 온 젊은 남자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젊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포장마차를 향해서 왔다. 여자는 풀린 다리에 힘을 주면서 겨우 일어났다. 여자는 도마 위의 파를 쓸어 담았다. 손톱이 잘려 들어갔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자넨 뭘 좋아하나?”

김무현이 옆에 선 젊은 남자에게 물었다.

“국수 먹죠. 변호사님도 국수 드세요.”

젊은 남자는 말을 하면서 어묵꽂이를 치켜들었다.

“우리 어디선가 마주친 적이 있지 않나요?”

김무현이 고개를 약간 숙인 여자에게 물었다. 여자는 대답 없이 바구니에 놓인 삶은 국수뭉치를 집어서 대접에 담았다. 여자의 빨간 볼을 바라보던 김무현은 두 손을 펼쳐서 나무젓가락 두 짝을 비볐다.

“에이, 변호사님도... 똑같은 농담이 질리지도 않으세요?”

젊은 남자가 눈을 흘기자 김무현은 껄껄 웃으면서 여자에게 붙였던 시선을 떼었다. 여자는 가루 김을 얹은 국수그릇을 두 사람 앞으로 밀고서 돌아서서 설거지를 했다.

“잘 먹었습니다.”

지갑을 꺼낸 김무현이 공손히 인사를 했다. 김무현은 잔돈을 받아 바지 주머니에 넣고서 걸음을 옮겼다.

“자네는 나를 양치기로 만드는구먼.”

“아니 그럼 진짜 아는 분이세요?”

젊은 남자가 말을 하며 돌아봤을 때 여자는 아직 설거지통 앞에 있었다. 김무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여자는 김무현이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거렸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앞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여자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끝-

                                                                           

                                                                         계간 어촌어항협회에 기고한 작품

 

 

 

 

 

 

김은숙   2009-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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