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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례, 빨간 립스틱을 바르다


 

 

 

   금례는 꼭 짠 수건을 탈탈 털어 사각으로 접었다. 등받이에 걸려있는 풀 먹인 레이스 천을 걷어내고 소파를 닦았다. 오인용 소파는 유리벽 앞에 놓여 있었는데 공간에 딱 들어맞았다. 수건을 다시 접어서 진열장을 닦은 후 금례는 소파에 앉았다.

시계수리대인 자그마한 책상 앞에는 남편이 등을 구부린 채 앉아있었다. 머리맡의 스탠드에서 흘러나온 불빛이 남편의 머리 그림자를 천장에 만들고 있었다. 천장에서 벽까지 흘러내린 그림자의 크기는 남편의 너덧 배는 될 것 같았다.

그림자와는 달리 왜소한 몸을 가진 남편이었지만 금례를 때릴 때는 무자비 했다. 가끔 남편이 대걸레로 바닥을 닦으라는 명령을 내릴 때가 있었는데 금례는 청소를 하다말고 한숨을 뿜어내곤 했다. 책상 앞에 엎드려 있는 남편의 등짝을 후려치고 싶은 욕구가 일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면 금례는 대걸레 쥔 손을 쥐락펴락해서 긴장을 풀곤 했다.

현관문을 쳐다보면서 금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쥐색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는 키가 작달만했고 안경을 끼고 있었다. 쥐색양복은 인사를 하는 금례를 본척만척 안쪽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눈에 확대경을 낀 채 시계를 수리 중이었다. 눈의 크기나 모양새가 다르기 때문인지 금례의 눈에는 확대경이 절대 끼워지지 않았다. 금례는 미세한 물건을 다룰 때면 공구용 현미경을 썼다. 눈에 끼우는 확대경은 남편과 천생연분인 도구였다.

“배터리 좀 바꿔주십시오.”

등 뒤에서 나는 소리에 남편이 돌아보았다. 오른쪽 눈에 확대경이 끼어있어서 눈알이 툭 불거져 보였다. 원래도 부리부리한 눈이었는데 작업을 할 때면 충혈이 되어서 야생 동물처럼 사납게 보였다. 남편은 시계를 받으면서 쥐색양복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남편은 마치 밥 먹다가 돌이라도 씹는 그런 표정이었다. 남편은 책상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받아 든 시계를 한쪽에 놓았다.

“바로 좀 끼워주십시오.”

말의 중간이 딱 부러지는 느낌이었다. 군대에서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 같은 말투였다.

“해 줄 테니 가서 앉아 있어.”

남편은 대뜸 반말을 했다. 쥐색양복은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남편의 그림자 때문에 쥐색양복이 그늘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가게에 있는 모든 시계가 대부분 세시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에 천장에 붙은 형광등에 불이 들어와 있지 않았다. 대신 천장에서 줄을 타고 내려와 있는 작은 등에 불이 들어와 있었고 그 아래 유리 케이스에도 불이 켜져 있었다. 진열된 시계와 보석이 끼워져 있는 금제품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남편은 의자를 밀고 책상 아래쪽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이삼초 동안 바닥을 살펴보다 일어났다. 의자를 당겨 자세를 바로 잡고 머리맡의 공구함에 꽂힌 서랍을 열었다. 명함꽂이보다 약간 큰 서랍을 빼내서 핀셋으로 뒤적거렸다. 남편이 꺼낸 것은 자잘한 몇 개의 나사였다.

남편이 나사를 시계 뒤 뚜껑에 올려놓고 네 귀퉁이를 드라이버로 돌렸다.

“다른 나사를 끼우셨습니까?”

대답 없이 나사를 다 끼운 남편은 확대경을 빼고 일어섰다.

“나사를 잃어버리지 않으셨냐고요.”

“그래 잃어버렸다.”

남편의 눈은 부릅떠져 있었고 볼은 씰룩거렸다.

“제 시계에 다른 나사를 끼우면 됩니까?”

쥐색양복은 격앙된 목소리였다.

“몇 푼도 안 되는 시계 가지고...이 새끼가...”

오른쪽 눈언저리의 동그란 자국 때문에 남편은 마치 개그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제게 욕을 하셨습니까?”

쥐색양복의 얼굴빛은 변했고 목소리는 떨렸다.

“그래 니가 누구네 자식인지 안다. 이 쫀쫀한 새끼야.”

남편은 동문서답을 하더니 다짜고짜 쥐색양복의 멱살을 잡았다.

“왜, 제 부모님까지 들먹거리십니까?”

“잘난 니 부모를 데려와 봐. 이 새끼야”

남편이 욕을 하면서 밀었기 때문에 쥐색양복은 뒤로 몇 걸음 밀려났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금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놓으시죠.”

쥐색양복이 양손으로 남편의 손을 뿌리쳤다. 남편은 몇 걸음 물러나면서 진열장에 엉덩이가 닿았고 쥐색양복은 숨소리를 거칠게 내면서 금례 앞을 지나갔다. 쥐색양복의 얼굴빛은 검푸르게 변해 있었고 주먹이 꼭 쥐어져 있었다. 금례는 쥐색양복이 나가자 남편에게 가까이 갔다.

“대체 왜 그래요?”

“에이... 재수 없어.”

“나사가 바뀌어도 맞기만 하면 상관없는 일이잖아. 이해를 시켜야지.”

“쫀쫀한 새끼 같으니라고...어쩐지 일진이 안 좋더라니...”

남편은 금례의 말에 엉뚱한 대꾸를 하고 담배를 집어 들었다.  

“손님을 그렇게 다루면 안 되잖아.”

“그 새끼가 누군 줄 알아? 늘 빨간 목 티를 입고 다니는 년 있잖아. 머리는 뽀글뽀글한 그년 아들새끼야. 물건을 꺼내 놓으라고 하고서는 시간만 축내다가 가는 년. 꼭 물건은 딴 데 가서 사는 년이잖아.”

“그 아줌마는 그 아줌마고 아들은 아들이지. 저 남자가 아버지 데려오면 일이 커지잖아.”

“그 병신 같은 새끼가 그럴 수 있을 것 같애? 쪼다 같은 새끼. 만 원짜리도 안 되는 시계를 가지고...”

남편은 담배를 빡빡 빨았다.

“그래도 자기 것은 다 소중한 거지.”

금례는 낮게 중얼거리면서 현관문 앞으로 왔다. 문을 확 젖히자 연기가 뭉텅뭉텅 빠져나갔다.

 

   쥐색양복이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온 시각은 나간지 이십 여분 후였다. 실랑이를 벌인 시간이 있어서 네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까지 금례는 소파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두 남자가 오는 게 멀리서 보이자 진열장 안쪽에 서 있던 남편은 우왕좌왕이었다. 남편은 두 손을 맞잡고 손바닥을 비볐다. 쥐색양복의 아버지는 장발이었는데 키가 컸다. 몸의 뼈대가 굵었고 얼굴은 거의 네모였다. 게다가 광대뼈가 얼굴 바깥쪽으로 솟아 있어서 인상이 험했다. 장발이 들어서자 남편은 고개를 숙이며 악수를 하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 남편의 얼굴은 전체적으로 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당신이 사장이야?”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남편이 손을 내민 상태로 말을 했지만 장발은 손을 맞잡지 않았다.

“야. 이 사람이 맞어?”

“예...이 작자가 내게 마구 욕을 했어요.”

“아드님에게도 미안합니다. 제가 낮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요. 정말 미안합니다. 시계 약은 무상으로 끼워드리겠습니다.”

남편은 어느 틈에 가져왔는지 떨리는 손으로 가죽줄시계를 내밀었다.

“아버지. 이 사람 정말 비굴하네요.”

쥐색양복은 시계를 잡아채면서 소리를 높였다.

“내 아들 목에 상처를 냈더군. 당신도 좀 당해봐.”

짝 소리가 두 번 났고 남편의 얼굴에 여러 개의 빨간 자국이 생겼다.

“오늘은 이 정도만 하고 참는다. 한번만 더 그러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알았어?”

“예 예...죽을죄를 졌습니다.”

남편은 얼굴을 만지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금례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광경을 보게 되니 결혼생활 23년이라는 세월이 너무 허망했다. 되돌리고 싶은 시간이었다.

 “피곤하네. 나 들어가서 한숨 자고 나올게.”

남자들이 나간 후 텔레비전을 켠 남편이 금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마침 집에 들어가겠다는 생각을 하던 금례는 눈을 부라렸다.

“가게나 보시죠?”

금례의 말투는 180도로 바뀌어 있었다. 말을 할 때마다 눈치를 살폈고 조바심을 치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금례를 쳐다보던 남편은 진열장 안쪽의 높이 솟은 의자에 다시 앉았다.

금례가 장발의 아들인 쥐색양복과 남편이 실랑이를 벌릴 때 끼어 들었다면 일을 최소화 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상황으로 봐서 쥐색양복의 편을 들어야만 하는데 만약 그랬다간 나중에 남편에게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금례는 이십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남편에 대해 두려운 생각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꼬투리만 잡았다하면 금례를 때리는 남편이 그처럼 비굴해질 수 있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집에 가서 할 일이 있으니 저녁 시켜 먹어요.”

등을 구부린 채 얼굴을 쳐들고 있는 남편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금례는 밖으로 나왔다. 가게 앞면의 유리창을 통해 남편을 힐끗 바라 본 금례는 집을 향해 걸음을 빨리했다.

 

  금례는 대학생인 두 딸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쓰는데 악착스럽게 살아 온 세월이 남루한 영상으로 눈앞을 스쳐갔다. 쓰다가 눈을 훔치던 금례는 이를 악물었다. 편지를 책상 위에 놓고 장롱을 열었다. 저녁을 준비해야할 시간이었지만 외출복을 꺼냈다. 속옷도 여러 장 꺼내서 가방에 담았다. 장롱을 닫은 후 의자를 가져왔다. 장롱 위에는 상자가 몇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의 뚜껑을 열었다. 책이 몇 권 있었고 그 틈에 통장이 들어 있었다. 도장은 장롱 바닥에서 꺼냈다.

방을 치우려다 관두고 거울 앞에 섰다. 못생긴 년, 무식한 년. 남편이 자주 쓰는 표현이었다. 그런 말들이 남긴 상처가 나무의 나이테처럼 가슴 한쪽에 쌓여 있을 것 같았다. 금례는 중간키와 두루뭉술한 몸, 평범한 얼굴이었다. 어쩌면 금례는 주변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용모였다. 거울을 보던 금례는 얼마 전 세일 기간에 샀던 옷을 입었다.

저녁이라서 바깥바람이 찼다. 플라타너스에 쓸모없이 붙어있던 마른 잎이 바람에 떨어지기도 했다. 반코트 차림이었고 커다란 가방이 손에 쥐어져 있으니 시선을 받기 알맞았다. 금례가 알기로는 한국 사람들은 남의 일에 참견을 잘했다.

“어디 가세요?”

가끔 가게에 오는 중년 여인이었다.

“여행 좀 다녀오려고요.”

금례의 대답에 그 여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금례를 지나갔다. 남편은 낚시도 다니고 등산도 다녔지만 금례는 그것조차 어려웠다. 시집 올 때 가져온 지참금으로 진열장에 금제품을 만들어 채웠다. 그 덕분에 결혼 초에 남편과 몇 번 여행을 다녀온 게 전부였다. 결혼 전 남편은 헌 공구 몇 개로 시계 수리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금례는 중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으나 결혼 할 무렵까지 남편은 중학교 졸업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중매쟁이 때문이었지만 남편이 두고두고 써먹는 약점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남편은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학력이 무색할 정도였다. 찌질한 새끼 같으니라고...금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면서 뱉어내듯 중얼거렸다.

“내 체면 때문에 니 이혼이 안 된다고 했다. 정말 미안하구나.”

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었다. 어머니의 남편은 금례의 친 아버지가 아니었다. 재혼한 어머니와 함께 산다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금례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취직을 해야만 했다. 배다른 남동생이 셋이나 되었지만 왕래를 거의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금례는 세상에 혼자였다. 두 딸 조차도 금례의 마음을 헤아려 준적이 없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표를 끊고 보니 남는 시간이 많았다. 행선지가 작은 도시라서 배차간격이 멀기 때문이었다. 금례는 근처의 커피숍으로 갔다.

“나, 가요.”

“어딜 가?”

휴대폰에 대고 금례가 낮은 소리로 말하자 남편이 언성을 높였다.

“나도 잠시 여행을 다녀 올 거예요.”

“여행? 이게 미쳤나?”

“미쳐요? 말 잘했네. 나를 때리던 그 기백은 어디 갔대? 나더러는 몽둥이가 약이라면서 툭하면 때리더니 오늘은 병신 쪼다 짓을 하더구만.”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거기 어디야?”

“진단서 다섯 장 떼어놨어요. 그러니 그쪽도 서류나 준비하시지.”

남편이 대답도 하기 전에 금례는 휴대폰을 접었다. 다섯 장이면 고마운 줄 알아라. 금례는 낮게 중얼거렸다. 열다섯 번도 넘게 병원에 다녀왔지만 남편은 단 한 번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딸들은 툭하면 엄마가 무식하다는 말을 뱉어냈다. 매를 맞는 엄마였지만 편들어 준적도 거의 없었다. 엄마가 무시당할만한 행동을 하니 아빠가 무시를 한다는 것이다. 말대꾸를 하면 맞을 수밖에 없다는 말도 가슴에 응어리로 맺혔다. 다른 엄마들처럼 우아해보라는 딸들에게는 그들만의 찬란한 세계가 따로 있는 듯 보였다. 갑자기 후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마시다 말고 금례는 거울과 립스틱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 금례가 입술에 바른 립스틱은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빨간 색이었다.

 

                                                                              -끝-

                                                                                  -한국 어촌어항협회 기고 작품-

 

 

 

김은숙   200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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