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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가씨, 꿀맛 좀 볼래요?


 

 

 

 

 

 



                             

   저 게으른 놈의 인간은 지 몸뚱이만 금덩어린 줄 알지. 춘자는 입속 중얼거림과 동시에 칼을 내리쳤다. 냉동고에서 갓 나온 동태는 도끼질 하듯 내리쳐야만 잘리는 생선이었다. 도마에 박힐 정도로 칼질을 하면서 남편에게 욕을 하는 춘자의 표정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입 밖으로 드러나게 하는 욕이 아니었고, 또한 그럴 생각도 없었다.

나무의 둥치를 잘라서 만든 원통형의 도마는 울퉁불퉁해서 조만간 남편의 손을 빌려야 할 것 같았다. 가끔씩 대패로 밀면 원상복구가 되는 도마였다. 도마의 키가 낮아지더라도 도마 아래 깔린 판자와 벽돌로 조정을 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남편은 생선장수이면서도 옷차림이 깔끔했지만, 검정색의 앞치마를 두른 춘자는 늘 비린내에 절어 있었다. 남편이 새벽시장에 나가 생선을 떼어오면 춘자는 아침 식사 후부터 생선을 팔았다. 남편은 바쁜 시간에나 춘자를 잠깐 도와주는 정도였고 거의 방에서 지냈다. 남편의 몸에서 비린내가 나지 않는 까닭은 새벽시장에 다녀 온 이후에 꼭 샤워를 하기 때문이었다. 집이 따로 있었지만 남편은 가게가 딸린 방에 책을 두고서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의 별명은 백수였다. 남편이 흰옷을 즐겨 입는데다 머리가 좋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었지만 마누라에게 얹혀산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엄마, 아빠는요?”

이마에 여드름이 맺힌 아들이 가게로 들어섰다. 날씨 탓에 아들의 볼은 불그레했다. 교복의 단추를 풀어헤친 아들은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있었다.

“방에 계신다.”

아들은 칼질을 하는 춘자를 본체만체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춘자보다는 남편과 죽이 잘 맞았기 때문에 당연한 행동이었지만 오늘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새끼가 지 에미 얼굴이라도 좀 바라보다 들어가면 어디가 덧나나? 춘자의 속말은 다시 이어졌다. 파리 몇 마리가 도마 위를 돌면서 왱왱거렸다. 맨손으로 비닐봉투에 동태를 담던 춘자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왼손을 쳐들어 들여다보니 손톱 밑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여보!”

손님에게 동태가 담긴 비닐봉지를 건네주고 춘자는 소리를 질렀다.

“왜 그래?”

남편의 목소리가 방에서 흘러 나왔다.

“고무장갑 하나 내와.”

“지금 막 축구 시작했는데...”

“뭐라고?”

“아냐.”

남편이 고무장갑을 들고 나오자 춘자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바닥에는 신문이 놓여 있었고 재떨이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춘자는 재떨이를 방문 밖으로 내놓은 다음 밥상 앞에 앉아있는 아들을 쳐다보았다. 아들의 시선은 텔레비전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서 밥 먹고 집으로 들어 가.”

듣는지 마는지 아들은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집으로 들어가라고!”

“여기서 아빠랑 축구 볼 거예요.”

구석에 있는 장식장을 향해 움직이던 춘자는 아들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아들의 얼굴은 남편과는 딴판이었지만 성격은 흡사했다. 아무래도 성격은 환경이라는 요인에 의해 형성되는 것 같았다.

“엄마, 왜 그래? 다쳤어?”

약통을 꺼내서 뚜껑을 여는데 아들이 참견을 했다. 아들이 엉금엉금 기어서 다가오자 춘자가 떠다밀었다.

“엄마 몸에서 비린내 난다. 저리가라.”

“비린내도 구수한데?”

무뚝뚝한 표정이었던 춘자는 피식 소리를 내며 웃었다.

“어이구. 내 아들.”

마음이 풀어진 춘자는 아들의 엉덩이를 두들기면서 얼굴을 들여다봤다. 히죽거리던 아들은 엉덩이로 미끄럼을 타듯 텔레비전 앞으로 갔다. 춘자는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연고를 조금 짜냈다. 마치 벌에 쏘인 것처럼 따끔거리고 아픈 걸 보니 약간 찢긴 것 같았다. 상처를 들여다보던 춘자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춘자는 순식간에 먼 기억 속으로 달려갔다.

 

  들길을 가던 춘자는 열을 지어 서 있는 밤나무를 보았다. 가까이 다가가니 새끼줄 모양의 꽃이 다닥다닥 열려있었다. 푸르스름한 밤느정이를 보면서 서 있었던 건 향내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도 춘자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네모난 상자가 나란히 놓여있었는데 눈으로 따라 가보니 9-10개쯤 되는 것 같았다. 맨 끝의 상자인 벌통 앞에 남자가 있었다. 남자를 발견한 춘자가 시선을 돌리려는데 때마침 남자가 얼굴을 들었다.

“아가씨, 꿀맛 좀 볼래요?”

불쑥 말을 건네는 남자는 새카만 얼굴에 수염이 더부룩했다. 나무의 그늘이 닿는 곳인데다 춘자와는 거리가 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남자의 정확한 표정을 알 수 없었다. 콧수염이 윗입술을 덮고 있었는데 그 아래 이가 희게 드러나 있는 것으로 봐서 웃는 것 같았다. 동글납작한 얼굴에 눈이 커다란 남자였다.

남자의 말에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춘자의 입이 샐쭉해졌고 걸음이 빨라졌다. 춘자의 몸이 좌우로 움직이면서 손에 든 종이백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종이백에는 방긋 웃는 아기의 사진이 박혀있었다. 남자는 춘자가 개울로 들어갈 때까지 빨간색의 하이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폭은 넓었지만 물이 얕은 개울에는 한 아름 정도의 돌이 몇 개 놓여 있었고 물은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굽이 지나치게 높은 구두 때문에 춘자는 비틀비틀 징검다리를 건넜다. 징검다리를 건너 논둑으로 올라선 춘자는 호흡을 가다듬고 서서 십여 초 동안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춘자가 다시 걸음을 재촉하자 춘자를 바라보던 남자는 의자로 사용하는 나무상자에 앉았다.

꽤 오래 걸었다고 생각한 춘자는 뒤를 돌아봤다. 밤나무의 크기는 화분에 심은 분재만큼 줄어들어 있었다. 남자의 몸은 엄지손가락보다 좀 커 보였는데 그마저 밤나무 그늘 때문에 희끄무레했다.

모내기가 끝난 들에 사람이 없어 텅 빈 느낌이었다. 마치 논에 초록빛 물을 살짝 들인 것 같았다. 바람이 잔잔하게 불고 있었기 때문에 벼 이파리가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늘에는 싸리줄기 모양의 구름이 군데군데 깔려 있었다.

어머니의 당부 때문에 고모 댁에 가는 길이었다. 사촌오빠가 마흔 다섯에 얻은 3대 독자의 첫돌이었다. 버스가 다니는 마을이 아니었고 택시요금은 비쌌기 때문에 지름길인 들길로 가고 있었다. 더러 풀이 깔려 있기도 했지만 길이 반반해서 걷기에 불편하진 않았다.

들과 연결된 낮은 산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집들이 하나 둘씩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마을의 중간쯤에 고모댁이 있었다. 마을로 들어서자 어느 집의 개가 왈왈거려서 놀라기도 했지만 줄에 매어 있었다. 춘자는 익숙한 느낌의 파란대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낮은 담장 안쪽으로는 수국의 꽃봉오리가 둥근 바구니를 엎어 놓은 것처럼 모여 있었다.

춘자가 마당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의 목소리가 멈췄다. 제 멋대로 놓여있는 십 수 켤레의 신발이 춘자의 눈에 들어왔다.

“어서 와라.”

고모가 몸을 일으키면서 말을 했다. 창을 모아서 한쪽 끝으로 밀어놓았기 때문에 거실 전체가 노출 되어있었다. 춘자는 귀퉁이로 가서 하이힐을 벗었다.

“신발 색깔이 그게 뭐니?”

춘자의 성격과 취향을 잘 아는 고모였지만 핀잔을 했다. 춘자는 빨간색의 구두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거실로 들어섰다. 거실에는 네모난 상 두 개가 맞대어져 있었다. 춘자는 사촌언니와 사촌 올케가 밥을 먹는 상으로 갔다.

사촌언니에게 맥주를 받아서 슬금슬금 마셨다. 고모는 춘자에게 곁눈질 하면서도 별말을 하지 않았지만 입술이 나와 있었다.

“내일 출근하지?”

과일 접시를 상에 놓던 고모가 물었다.

“예. 이제 일어나야죠.”

춘자는 술잔을 놓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노처녀라는 이유로 몇 사람에게 잔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잔에 남은 맥주에 대한 미련도 버려야했다.

“니 에미 애비 속 태우지 말고 얼른 시집이나 가라.”

떡과 전을 비닐봉지에 담으면서 춘자에게 눈을 흘겼다. 고모는 음식물을 담은 비닐봉지를 아기사진이 박혀있는 봉투에 집어넣었다. 봉투를 들고 마당으로 나온 춘자는 주차되어 있는 승용차를 흘낏 쳐다보았다.

“태워다 주고 싶은데 안 되겠다. 택시 부를래?”

사촌오빠의 혀는 이미 꼬여있었다.

“몇 분이나 걸린다고 멀쩡한 두 다리를 두고 택시를 타? 어여 가. 집에 내려가면 안부 전하고...”

고모의 말에 대꾸도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몇 걸음 옮기다말고 춘자는 멈춰 서서 손수건을 꺼냈다. 낮술 때문에 볼은 화끈거렸고 목이 축축했다. 손수건으로 목을 닦고 얼굴을 꾹꾹 누르자 파운데이션과 립스틱이 조금씩 묻어났다. 손수건을 가방에 넣고 얼굴을 드는데 전선줄에 앉아있던 뻐꾸기가 울음소리를 내면서 날아갔다.

들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가끔씩 원피스 끝자락이 바람에 펄럭이곤 했다. 춘자는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어깨에 끼웠다.

“집에 돌아가세요?”

벌통 앞에 서 있던 남자가 개울에서 올라선 춘자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춘자가 서 있는 길에서 가장 가까운 쪽에 자리한 벌통을 들여다보는 중인 것 같았다. 고모네 집을 가던 때와는 달리 남자를 정면으로 쳐다봤다. 잠깐 침묵이 흘렀고 남자가 입을 열었다.

“꿀 좀 드릴까요?”

어느 틈에 남자는 두 홉들이 소주병을 치켜들고 있었다. 춘자가 대답을 하지 않자 남자가 서너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가져가서 맛이나 보세요.”

봉투를 들여다보더니 병을 집어넣었다. 춘자는 고개만 약간 내리깔았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가씨, 향수 뿌렸죠?”

남자의 말과 함께 벌 서너 마리가 춘자의 주변을 맴돌았다. 남자가 쫓는 시늉을 했지만 벌의 숫자는 오히려 늘어났다.

“어떻게 좀 해봐요.”

벌을 쏘여본 경험이 있던 춘자는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가만히 있어요. 이런 말벌도 왔네.”

남자는 춘자의 몸을 감싸면서 엎드리는 자세를 취했다. 말벌 소리에 춘자는 더욱 몸을 웅크렸다.

“잠깐만 움직이지 않으면 됩니다.”

땀 냄새 때문에 춘자는 속이 울렁거렸지만 가만히 있어야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이 함께 넘어진 것은 춘자의 하이힐 때문이었다. 순간 남자의 손가락 끝에 걸려있던 춘자의 치마가 젖혀지면서 허벅지가 드러나고 말았다.

 

  그때에 대한 생각 때문에 마음이 더 흐려진 것 같았다. 춘자는 가게의 문을 일찍 닫았다. 집을 향해 걷는데 쌓인 불만이 생목처럼 올라왔다. 남편은 춘자의 비위를 잘 맞췄지만 매사를 구렁이 담 넘어가듯 했다. 춘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기만 편하면 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남편이 하루를 적당히 때워도 화는 내어서는 안 된다는 신조로 살아온 세월이었다.

겨우겨우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갔을 때 남편과 아들은 케이블 방송을 틀어놓고 있었다. 동물의 왕국이 재방영 중이었다. 춘자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남편과 아들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저렇게 몸집이 큰데 자기 새끼로 여기네요. 바보 같은 녀석.”

뻐꾸기가 뱁새의 둥지에 몰래 낳은 알이 먼저 부화가 되고 있었다. 잠시 후 새끼뻐꾸기가 아직 깨지 않은 뱁새의 알을 몸으로 밀어냈다. 아들은 어미새인 뱁새더러 바보 같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저런 게 다 생존의 법칙이지.”

남편은 작은 눈을 깜빡거리며 아들을 쳐다보았다.

“하는 짓이 참 얄미운 새네요. 어라. 이제 지 핏줄을 따라 간다고? 뭐 저딴 게 있어?”

아들은 흥분이 되었는지 주먹까지 쥐고 있었다.

“그만보고 딴 거 볼까?”

“그래도 마저 보죠.”

남편은 텔레비전을 보다말고 담배를 찾았다. 춘자가 식탁 위에 있던 담배를 가져다주자 한 개비를 빼서 물었다. 알고 보면 뻐꾸기 같은 인간들도 많지. 춘자는 중얼거리는 남편을 바라보다 슬며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던져 놓은 마른빨래를 하나씩 개켜 넣은 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맞선을 본 후 남편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성격은 괜찮아보였지만 책임감이 있어보이진 않았다. 당시 남편은 대학을 나왔으면서도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부동산 사무실에서 근무 중이었다.

남편은 춘자에게 호감을 가졌고 데이트를 하면 늘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춘자는 며칠 후 맥주의 힘을 빌어서 남편과 여관에 갔다. 양쪽 집에서 워낙 서둘렀기 때문에 그런 것조차도 자연스러운 일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맞선부터 결혼식까지는 두 달 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이미 춘자는 임신 중이었다. 예정일보다 십 여일정도 몸을 빨리 풀어야했던 춘자는 난산이었다.

“자식, 눈이 커다란 게 꼭 이티 같네.”

갓난 아들를 들여다 보면서 남편이 중얼거렸다. 춘자가 놀란 눈으로 남편을 쳐다보는데, 남편의 입에는 함박웃음이 걸려 있었다.

떠올랐던 상념을 애써 지우고 거실로 나왔다. 남편과 아들은 쌀,보리를 하고 있었다. 상대의 주먹이 손아귀에 들어왔을 때 움켜쥐는 단순한 놀이었다. 그러다가 부자는 서로 부둥켜안고 뒹굴었다. 아들은 벌을 치던 남자를 빼다 박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닮아있었다. 아들을 빤히 바라보던 춘자는 천천히 욕실로 들어갔다.

 

                                                                           -끝-

 

                                                              계간 항만협회에 기고한 작품

 

 

 

 

 

 

 

 

 

김은숙   2009-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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