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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장 파는 노인


 

 

 

 

  


                      

   박정한씨의 노점에는 온종일 빌딩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빌딩과 빌딩 틈새를 비집은 햇살은 아침나절 박씨의 등을 잠깐 쓸고 지나갈 뿐이었다. 털모자를 눌러 쓴 박씨는 십년 전에 유행했던 무스탕까지 입고 있어 시베리아인 같은 모양새였다. 두세 장의 파스가 감겨있는 박씨의 팔목에서는 알싸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박씨가 엎드려서 일을 보는 앉은뱅이 책상은 중고품 시장에서 구해온 제품이었는데 다리가 낮아서 벽돌을 받침돌로 쓰고 있었다. 박씨는 좌식의자에 앉아서 늘 양반다리를 했기 때문에 퇴근시간이면 다리가 부어서 걷기 힘들 정도였다. 2001연식 승용차가 있었지만 보험료가 부담스러워 폐차시켰기 때문에 출퇴근은 전동차나 버스를 이용해야만 했다.

책상의 중앙에 조각대가 있고 양쪽 가장자리에 도장 재료들이 보기 좋게 쌓여 있었다.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녹색 외에 검정색과 얼룩덜룩한 무늬를 가진 재료도 있었다. 상아나 수우처럼 가격이 나가는 재료는 몇 개 되지 않았고 옥도장은 기계로 파야하기 때문에 아예 취급을 하지 않았다. 그 외의 조잡한 재료들은 상 밑의 서랍에 담겨 있었는데 주로 사포나 유지, 인주와 칫솔 따위였다.

서랍 한쪽 귀퉁이에 딸과 손자가 함께 찍은 조그만 사진이 놓여 있었다. 박씨는 노점 앞을 지나는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사진을 꺼내보곤 했다. 딸이 안고 있는 손자는 벌써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딸이 사진 속의 손자만한 나이였을 때 박정한씨는 딸에게 잊기 어려운 상처를 안겨주었다.

사십여 년 전, 평소라면 꿀맛 같은 휴일이었을 테지만 그날은 그렇지가 않았다. 아내가 출타중이어서 한번밖에 쉬지 못하는 휴일을 딸아이에게 방해받고 있었다. 처사촌의 결혼식이었는데 아내 혼자 참석한 상태였다. 차비가 부조금보다 많이 들 수밖에 없는 먼 지방에서 예식을 치루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박정한씨는 자린고비였고 아내는 왕소금이어서 부창부수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딸아이는 박씨가 참기름과 간장에 비벼주는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밥그릇을 비운 아이는 보리차를 마시더니 천 조각 몇 장으로 만든 헝겊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아이가 인형을 입술에 물었다 놓았다 하는 동작을 반복했기 때문에 인형의 몸은 반쯤 젖어 있었다. 인형을 무릎에 놓고 꾸벅꾸벅 졸던 아이를 보면서 박씨는 국방색 담요를 깔았다. 살짝 잡아당기면서 눕히려는데 아이가 눈을 번쩍 떴다. 아이는 얼굴을 찡그리며 엄마를 찾았다.

박씨는 앉은뱅이 책상에 꽂혀있는 그림책을 뽑아 들었다. 책을 펴자 아이가 나비를 가리키면서 아비라고 발음을 했다. 아이가 알고 있는 곤충 이름은 그나마 나비뿐이었다. 아이는 곤충이 그려져 있는 책장을 넘기다가 팽개치더니 무릎으로 걸어서 책상 앞으로 갔다. 아이가 뽑아온 책에는 조류와 포유류가 그려져 있었다.

아빠 이거...”

박씨는 하품을 하면서 아이가 가리키는 얼룩말을 쳐다보았다.

따라해봐. 얼룩말.”

아이는 불분명한 발음으로 따라한 다음 다른 동물을 가리켰다. 박씨가 동물 이름을 말할 때마다 딸아이도 입술을 달싹였다. 책장을 넘기자 날개를 펼친 타조가 나타났다. 딸은 타조의 머리를 누르면서 박씨를 쳐다보았다.

이거...”

타조.”

잠깐 동안 딸아이가 눈을 껌뻑거리더니 쌀통을 쳐다보았다.

아빠. 꾸우.”

딸아이가 손가락을 쳐들어 쌀통 위를 가리키며 소리를 쳤다. 딸아이의 기습적인 행동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던 박씨는 일어섰다. 쌀통 위의 꿀병을 잡아채듯 들어 등 뒤로 감췄다.

이거 먹으면 호랑이가 물어 갈 거야.”

박씨가 벽장문을 열면서 말했다.

시어, 시어. 꾸우...타조.”

딸이 책을 밀쳐버리고 일어서서 발을 동동 굴렀다. 벽장문은 낮은 곳에 있었지만 벽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가팔랐다. 벽장을 오르는 이삼 초 간 박씨는 딸에게 꿀을 맛보인 아내가 들어오면 한소리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딸아이는 주저앉더니 양쪽 발을 맞대어 비비면서 울었다. 박씨는 아이를 달래느라 밖으로 안고 나와서 슈퍼에 갔다. 무지개 색 사탕과 부스럭 소리가 나는 과자봉지를 받아 든 딸아이는 금방 생글거렸다. 그 이후부터는 딸은 책에서 타조를 발견할 때면 쌀통 위를 멀거니 쳐다볼 뿐이었다. 박씨는 벽장에 꿀을 감춰두고 바닥날 때까지 혼자서 먹었다.

이 사건을 박씨가 상세히 기억하는 까닭은 딸 때문이었다. 딸은 케케묵은 그 사건을 끄집어내면서 박씨와 의절을 했다. 하지만 의절할 때의 상황이 오히려 딸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박씨의 아내는 오십이라는 나이에 세상을 등졌는데 그때 딸은 고 3이었다. 아내는 변에 피가 묻어 나오는데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 무렵 몰래 만나던 여자가 있던 박씨는 아내에게 병원에 가보라는 말만 했을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아내는 갑자기 죽었고 병원에서는 자연사로 마무리 되었다. 박씨는 귀찮아질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에 병원의 소견에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딸은 개밥의 도토리 신세가 되었다. 박씨는 대학 첫 등록금만 마련해 주었을 뿐이었고 딸은 모든 것을 혼자 해결했다. 박씨는 알부자였지만 그것을 알 까닭이 없었던 딸은 가게에서 웅크리고 앉아 도장을 파는 아버지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시집을 갈 때까지 단 한 번도 아버지에게 손을 벌리지 않았다. 딸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사위가 싸가다시피 했기 때문에 박씨는 식장에서 딸의 손을 잡을 잡아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무렵 박씨는 재혼녀와 신혼 재미에 빠져 있었다.

쥐가 하룻밤에 소금을 한 섬 실어 나른다는 말은 아내나 재혼녀에게 똑같이 적용할 수 있었지만 그 뜻은 정 반대였다. 아내는 안으로 물어오는 소금이었고, 재혼녀는 바깥으로 물어가는 소금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맞선 후 곧장 결혼한 아내는 항상 뚱한 표정이었고 오십이 될 때까지 똑같은 모양의 파마머리를 고수했지만 재혼녀는 당시 마흔 아홉이었는데 긴 생머리였다. 노래방에서 만난 재혼녀는 몸에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었고 허스키한 목소리였는데 노래 솜씨만으로도 박씨의 혼을 빼 놓을만한 여자였다.

아내가 죽고 재혼녀와 본격적으로 사귄 이후부터 박씨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아내와 박씨가 나룻배를 탔다면, 박씨가 재혼녀와 탄 배는 크루즈 선이었다. 아내와 여행 한번 가지 않았던 박씨는 재혼녀와 연애하던 삼년 동안 지구를 반 바퀴 이상 돌았다.

재혼 후에도 계속 가게를 꾸려가던 박씨는 예순 둘이 되자 연금을 받기 위해 가게 문을 닫았다. 팔목이 시큰거려서 일을 하기 어려운 상태였고, 재혼녀를 만나던 초기에 워낙 문을 자주 닫았던 이유 때문인지 수입이 좋지 않아서 내린 결론이기도 했다. 연금을 다달이 타느냐 한꺼번에 몫 돈을 타느냐 고민을 하다가 몫 돈으로 타서 은행에 맡겼다. 도장 가게의 잔금까지 합해서 은행에 정기예금을 넣어두고 이자를 받아서 쓰기로 했다. 도합 삼억 정도 되다보니 잘만 운용하면 칠십이 넘을 때까지도 이억 오천 정도는 손에 쥐어져 있을 것 같았다.

간혹 재혼녀가 뭐라도 해보고 싶다는 말을 끄집어 낼 때가 있었다. 음식점을 운영했다는 재혼녀가 실비집을 차려 생활에 보탬이 되겠다면 몇 천만 원은 밀어줄 수도 있었다. 십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살다보니 경계심은 이미 허물어진 모래 둑이었다. 박씨의 삶은 재혼녀의 각본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박씨의 신뢰를 얻게 되자 재혼녀는 작전을 개시했다.

일 억 정도를 투자하면 한 달에 오백만원 정도 벌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될 무렵의 박씨는 예전의 깐깐한 자린고비가 아니었다. 마치 다단계에 빠진 사람처럼 되어가고 있었다누군가가 말려도 소용이 없었겠지만, 그나마 친척과도 어울리지 않으니 말려줄 사람조차 없었다. 박씨가 짊어진 섶에는 이미 불이 붙어있었다.

손목이 좋지 않은 박씨의 몫은 카운터를 지키는 일이었다. 오리탕은 재혼녀가 잘하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시작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행락객이 많이 지나치는 대도시 근교의 강변에 자리잡은 음식점은 버섯모양으로 지어져 있었다. 굴뚝이 높았고 지붕에 깨진 항아리 조각이 붙어 있었다. 가게 안의 구조가 찻집처럼 세련된 느낌이었는데 손님이 바글거렸다. 주인이 눈치를 채면 권리금을 더 달라고 할 수도 있다는 재혼녀의 말에 조용히 앉아 밥만 먹고 나왔다. 그 외에도 몇몇 음식점을 돌아봤지만 그 집의 위치가 가장 나았다.

부동산 사장과 얘기를 하는데 투자할 금액이 이억 이상이었다. 현란한 말솜씨를 가진 사장을 박씨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부동산과 재혼녀의 손발이 잘 맞는다는 게 이상해 보일법도 했지만 눈치채지 못했다. 오리집 주인이라는 여자가 연기자처럼 웃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두세 평 정도 되는 가게에서 두더지처럼 웅크리며 지내던 시절과 근사한 음식점의 카운터는 비교대상이 아니었다. 박씨는 잔금을 치를 때까지 마치 귀신에 홀린 것처럼 정신이 나가 있었다.

잔금을 치른 다음날 박씨는 부풀은 기분을 전하려고 딸에게 연락을 했다. 재혼녀가 외출한 틈을 타서 하는 전화였다. 서로 소원하게 지냈기 때문에 딸에게는 뜬금없는 전화일 수도 있었다. 딸과 통화를 하는데 서먹서먹한 기류가 감돌았다. 박씨는 딸이 대답이 없자 채근했다.

아버지 정신 나갔어요?”

이젠 생트집이구나. 축하해 준다는 말은 못 할망정.”

아버지 돈이니 말아먹든 태워먹든 아버지 마음이겠죠.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네요.”

딸은 바로 수화기를 놓았고 박씨는 갑자기 뒤통수가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곧바로 재혼녀에게 전화를 했지만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부동산도 오리집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날부터 재혼녀는 행방불명이 되었다. 세 사람 다 약속이나 한 듯 잠적해 버렸다. 알고 보니 부동산 사장이라는 사람은 몇 달간 상가를 빌리고 있었고, 오리집 사장이라는 여자는 오리집의 종업원이었다.

아파트를 급매물로 내놓은 후 박씨는 도장 파는 도구를 챙겼다. 재혼녀가 마이너스 통장까지 챙겼기 때문에 빚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몇 년 전에 아파트 평수를 줄였던 박씨가 받아 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박씨는 18평쯤 되는 빌라에 전세를 들었다.

노점도 시작할 때와는 달리 수입이 좋지 않았다. 사인이 대체수단이 되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게다가 손님들은 빠르게 팔 수 있는 기계도장을 선호했다. 노구를 끌고 일을 해야 하는 박씨에게는 겨울이라는 계절이 악몽에 가까웠다. 하지만 손님만 많다면 바늘바람에 시달려도 행복한 마음으로 겨울을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년 전부터 이까지 속을 썩여서 모은 돈을 다 털어서 얼마 전에 의치를 해 끼웠다. 윗니는 걸 수 있는 이가 하나도 없어서 잇몸에 그냥 끼웠다. 어금니는 충치 때문에 거의 쓸모가 없었다.

치통 때문에 가끔은 단식투쟁을 하는 사람처럼 물만 마시면서 하루 이상을 견디기도 했다. 의치는 서로 부딪칠 때면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냈다. 퇴근 후에는 의치를 빼서 물컵에 담가두곤 했다. 잇몸이 무거운 바윗돌에 눌려져 있는 것처럼 답답했지만 면도 후 박씨는 의치를 꼭 끼웠다. 이를 끼우기 위해 거울을 보면 폭삭 늙어버린 아버지와 마주하는 것 같았다. 박씨는 이를 끼우기 전까지는 거울속의 자신의 눈과 마주치는 걸 피했다.

그날은 아침부터 손님이 까다로움을 피웠다. 낮에는 도장을 내어주면서 인주를 묻혀 찍어 보는데 거꾸로 파져 있었다. 손님에게 욕을 먹는 동안 박씨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속담을 되새김하면서 반성했다. 해거름이 되자 눈발까지 조금씩 날렸다.

가로등이 켜지면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길거리에 넘쳐흘렀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은 박씨의 기분을 저해하는 요소들이었다. 하지만 노점을 거두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라도 해야 했다. 박씨는 사포에 조각칼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갈았다. 돈벌이가 안 되더라도 좀 바빴으면 싶었다. 다른 일을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사십여 년 동안 해온 일이니 그 보다 더 손쉬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잠시 전봇대에 매어있던 플래카드가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바람의 방향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박씨는 바람을 피해 얼굴을 우측으로 돌렸고 길 건너편에서 걷던 한 쌍의 남녀를 보았다. 여자의 보랏빛 코트가 눈에 익다는 생각을 하면서 박씨는 눈을 부릅떴다. 눈을 문지른 다음 다시 보니 팔년 전에 잠적해버린 재혼녀가 틀림없었다. 챙이 좁은 모자를 쓴 재혼녀는 오십도 안 되어 보이는 남자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고 있었다. 천천히 걷고 있었기 때문에 달려가면 앞을 가로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책상 위의 재료들은 신경을 끄기로 했다. 박씨는 무단횡단을 위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침 오십여 미터쯤 떨어져 있는 신호등에 붉은빛이 들어와 있었고 차가 줄지어 선 상태였다. 박씨는 차도를 가로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반대편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박씨는 전봇대를 얼굴로 받았고 나가 떨어졌다. 여자와 남자가 걷던 인도에 시선이 쏠려있었기 때문에 전봇대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콧등을 돌로 친 것처럼 얼얼했고 곧이어 코피가 흘러 나왔다. 박씨는 누운 채 주머니를 뒤져서 손수건을 꺼냈다. 코를 막으면서 일어났지만 여자와 남자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박씨는 토사물을 뱉어내려는 사람처럼 입을 손으로 가렸다. 입을 가린 자세로 두리번거리던 박씨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이 쳐다보았다.

이거 찾아요?”

도로와 인도에 각각 한 발씩 딛고 서 있던 노숙자 차림의 남자였다. 전봇대에 매달린 가로등이 노숙자와 박씨에게 밝은 불빛을 내려 보내고 있었다. 노숙자의 손바닥에는 차바퀴에 치어 뒤틀려버린 의치가 놓여 있었다.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이 노숙자와 박씨를 번갈아보면서 킬킬거렸다.

 

 

 

                                                                        -끝-

                                                           - 항만협회 기고 작품-

 

 

 

김은숙   201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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