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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칼코마니


 
 
 
 
 
 
 
 
      


                  
 
   몇 번이나 함께 손을 쥐어 글을 쓰던 모친은 재원에게 붓을 줘 버리고 물러나 앉았다. 재원이 붓글씨를 연습하는 동안 모친은 거실의 소파에 앉아서 꼰 다리를 가끔씩 흔들었다. 모친의 손에는 여성잡지가 들려있었다. 모친은 딸아이에게 팔꿈치를 상에 대면 안 된다는 잔소리를 했지만 재원은 몰래몰래 팔꿈치를 상에 대고 붓을 놀리곤 했다.

가끔씩 재원은 모친을 곁눈질하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모친은 평범한 가정주부들과 전혀 다른 스타일이었다. 모친은 파운데이션이 진한 얼굴에 입술은 늘 새빨갰다. 재원의 부친이 퇴근해 집안에 들어 설 때까지 화장이 지워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틀어 올린 머리 뒤쪽에 까만 리본 핀이 꽂혀있었는데 가장자리를 따라 투명한 빛을 발하는 지르코늄이 박혀 있었다. 등이 반쯤 드러날 정도로 깊게 파인 드레스는 파티에나 어울릴 것 같았지만 외출할 때는 벗어버리는 옷이었다. 모친이 풍기는 향수냄새가 지겨워서 재원은 푸푸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휘젓기도 했다.

갱지에 붓끝이 닿자 붓은 재원의 의지와 관계없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몇 자를 쓴 다음 보고 있노라니 술에 취한 듯 제멋대로였다. 곁눈질하던 모친이 혀를 차자 재원은 입을 삐쭉거렸다. 쥐가 난 손아귀를 주물러대던 재원은 붓에 먹물을 잔뜩 묻혀서 살짝 흔들었다. 갱지에 떨어진 크고 작은 검은 점을 쳐다보던 재원은 접어서 꾹 눌렀다. 갱지를 펴자 여러 개의 점이 얼룩처럼 번져있었고, 그 중 몇 개는 개구리밥처럼 모여 있었다. 양쪽이 대칭을 이룬 상태로 하나의 그림이 되어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들여다보던 재원을 보면서 모친이 혀를 찼다.

“너는 어떻게 틈만 나면 딴 짓을 하니? 그러니까 재문이 발꿈치도 못 쫓아가지.”

항상 모친은 오빠인 재문과 비교를 하면서 재원에게 핀잔을 주었다. 재원은 대꾸하지 않고 속도를 빨리해서 할당된 갱지에 글씨를 다 채웠다.

“이게 그림이냐, 글씨냐?”

재원의 고달픈 인생은 모친의 콤플렉스로 부터 시작되었다.  모친은 부친과 오랫동안 사실혼 관계에 있었지만 만삭이 되어서야 혼인신고를 할 수가 있었다. 그 당시 부친은 떠나버린 전처를 기다리느라 서류를 정리하지 않아 유부남이었다. 

모친에게는 엘리트였던 남편이나 첼리스트였던 남편의 전처가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전처자식인 재문은 재원과 나이차가 6살이었지만 피아노, 바이올린, 트럼펫과 대금까지 다룰 줄 알았다. 게다 일년전에는 국제고로 진학을 해서 모친의 기를 꺾어버렸다.

재원은 호사를 누리기는 했지만 모친의 욕심 때문에 시달림이 많은 삶일 수밖에 없었다. 유치원 다닐 때 피아노를 치기도 했는데 왼손이 말을 듣지 않아서 그만두었고 바이올린은 개인 레슨을 받았지만 탈모증세가 생겨서 그만두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서예부를 선택했던 것도 모친의 의견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딸이 먹으로 난도 치고 산수화도 그릴 수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시작한지 일 년이 채 되기 전부터 지겨워하는 걸 종종 볼 수 있었다. 게다 재원은 단 한 번도 붓글씨를 쓰면서 웃는 얼굴을 보인 적이 없었다. 모친은 2절지 크기의 갱지 이십 여 장의 글씨를 들여다보면서  당장 그만두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 나 미술부 가면 안 돼?”

“미술부?”

신문지에 붓과 벼루를 싸던 모친이 재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전등이 켜질 때처럼 모친의 눈꺼풀이 수십 번 깜빡거렸다.

“응. 붓글씨보다 재밌을 것 같아.”

대답을 들으니 열 살 먹은 아이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겨워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 같기도 했다. 먹물을 뿌려 장난치던 종이를 잠깐 들여다보던 모친은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에서 미술부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레 미술학원에 등록을 했다. 학원에서 맨 먼저 했던 게 정물화였는데 그림의 대상은 물건대신 카피그림이었다. 카피그림과 비슷하게 그리는 동안 재원은 칭찬을 받았다. 가끔 학원 원장은 전화를 해서 재원에 대한 미사여구를 늘어놓았고 모친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물론 학원에서는 어떤 아이의 부모에게도 재주가 없다는 단적인 표현은 쓰지 않았다. 원생이 많지 않았고 실기위주였기 때문에 미대 진학을 위한 학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크레용으로 색칠할 때는 불만이 없었지만 물감으로 그릴 때는 가끔 짜증이 났다. 농도가 짙을 경우에는 수채화가 갖는 묘미를 살리기 어려웠고 농도가 옅어지면 서로 번졌기 때문에 후딱 그려서는 안 되는 그림이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축축하게 젖은 도화지를 후후 불어대기도 했다. 학원선생들은 구박 대신 칭찬을 자주 했기 때문에 미술학원에 가는 길이 즐거웠고 그림에 익숙해지면서 방과 후 미술부 활동에도 재미를 붙였다.

재원은 데칼코마니를 무척 좋아했다. 대칭의 그림이 가져다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서 집에 와서도 종이에 물감을 몽땅 쏟아내곤 했다. 날개를 접은 나비 모양으로 물감을 종이에 떨어뜨리면 날개를 편 나비가 되었다. 데칼코마니는 한쪽의 그림을 반대편이 카피해서 완성되는 그림이었다.

중학생이 되어서 줄기차게 했던 작업은 데생이었다. 치켜든 왼쪽 엄지손가락은 맨 처음 했던 데생이었고 그 이후부터는 발목석고를 그렸다. 차츰 반신석고를 그리게 되었는데 석상 틈에는 비너스나 베토벤처럼 익숙한 인물도 있었다. 학원에서 오랫동안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이미 익숙한 작업이었고 따라서 그림이 쉬웠다.

아그리파를 그린 후 비너스를 그렸고 이미 배운 수채화도 그리기 시작했다. 중학교에서는 몇 번 상도 받았기 때문에 우월감을 갖기도 했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재원의 그림은 더 이상 특별할 수가 없었다.

미술부 선생이 바뀌고 난 얼마 후, 재원은 팔레트에 여러 가지 물감을 풀어 뒤섞은 다음 자신의 그림에 덧칠해버렸다. 구겨서 버렸지만 선생에게 발각되었고 건방지다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그림에 진절머리가 난데다 선생이 너무 싫었기 때문에 미술부를 그만 두었지만 모친이 내버려두지 않았다. 결국 미대교수에게 과외지도를 받았다. 모친이 원하는 대학에 가기위해 재원은 재수를 했다.

 

 

  “자신의 그림에 다른 이름을 쓰면 작품의 주인은 딴 사람이 됩니다. 왜 그럴까요?”

교수의 질문에 침묵이 흘렀다. 교수는 팔짱을 끼었다.

“어릴 때부터 죽어라하고 베끼기만 해서 그렇죠. 사진을 베기고 또 그림을 베끼고... 아마 다들 그런 식으로 그림을 그려왔을 겁니다. 그렇다보니 분명 자신의 작품이지만 내 그림인지 남의 그림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는 거죠.”

카피라...재원은 얼굴을 감싸 쥐고 생각에 잠겼다. 데칼코마니를 하면서 한쪽이 반대쪽의 그림을 카피한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었다. 아무것도 모를 때 학원과 학교에서 베끼기를 시켰고, 베끼기를 하면서 은연중 그림이 참 쉽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았다. 대다수의 그림은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는 풍경을 대상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사진속의 풍경을 고스란히 카피하면서도 그 장소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적이 없다는 생각을 하자 실소가 나왔다. 재원은 수업 도중에 조용히 나왔다.

한심하다는 생각에 빠져 지낼 무렵 교수에게 한술 더 뜨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요리로 말할 것 같으면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재료들이 가진 고유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고나 할까. 실기수업 중 작업실에서 그 말을 들었기 때문에 몇 몇 학생이 쳐다봤고 재원은 얼굴이 빨개졌다.

교수의 평을 전해 듣던 모친은 개소리라고 딸을 위로했지만 재원은 졸업을 앞두고 대학을 그만두어버렸다.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모친은 딸의 다음 행보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재원은 담배를 사들고 방으로 들어가면 침묵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온종일 틀어박혔다. 그림을 그리기는커녕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않아서 가끔씩 간단한 요깃거리를 방으로 들이밀던 모친이 묘책을 짰다. 며칠 후 모친은 딸의 울음소리를 듣고 맥주를 들고 들어갔다.

“그림 시작해야지?”

“누가 그림을 그린대?”

모친은 잘라먹듯 대답하는 재원의 손을 잡았다. 그 사이 비운 병이 너덧 개나 되었기 때문에 재원은 이미 취해 있었다.

“아빠가 옥상에 작업실을 마련해 줄 거야.”

재원이 모친의 손아귀에서 손을 빼내서 바지 주머니를 더듬었다.

“내가 담배를 많이 피워서 쫓아내려는 수작이겠지.”

라이터를 켜던 재원이 중얼거렸다.

“말 같은 소리를 해라.”

모친이 꿀밤을 주려는 듯 주먹을 재원의 머리에 가져다댔지만 때리지는 않았다. 얼마 후 옥상에는 예쁜 모양의 조립식건물이 하나 올라갔고 파라솔과 테이블도 놓였다. 모친이 모여 있던 화분을 가장자리에 배치하는 동안 재원은 마당을 내려다봤다. 주변의 풍경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모친은 가끔 옥상에 올라와서 화분에 물을 주었고 담배꽁초를 쓸어 휴지통에 버렸다. 그림을 그리다 말고 은박지로 된 자리에 누워 잠이 든 딸을 깨우는 것도 모친의 몫이었는데 여름 내내 반복되는 일이었다.

가족의 간섭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자유를 만끽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겨우겨우 그리기는 했지만 타성에 젖은 그림 몇 점이 나왔을 뿐이었다. 예전에 그린 그림과 옥상에 올라와 그린 그림을 비교해 보면서 재원은 소주를 따기도 했다.

그날은 석양 무렵부터 술을 마셨는데 눈을 뜨니 까만 하늘에 무수히 별이 깔려 있었다. 멍하니 쳐다보는데 하늘에 수많은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갑자기 교수의 냉소어린 얼굴이 떠올랐다. 그럴듯해 보이는 요리, 그럴듯해 보이는 요리. 재원은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다가 벌떡 일어나서 캔버스 앞으로 다가갔다. 나이프로 물감이 채 굳지 않은 그림을 그어버린 후 가위를 가져와서 머리칼도 싹둑싹둑 잘라버렸다. 옥상의 조립식 공간에 갇혀 지내던 재원이 분가하겠다는 말을 한 것은 그로부터 두 달이 흐른 후였다.

“임씨 아주머니가 일주일에 서너 번 다닐 거야.”

“알았어. 대신 나를 간섭하면 안 돼.”

“간섭은 무슨... 반찬이나 만들고 집 치워주러 다니는 거지.”

용달차 앞에서 잔소리를 하듯 말을 하는 모친을 쳐다보지도 않고 재원은 분주히 움직였다. 용달차 짐칸의 절반은 그림이었다. 더러는 표구가 되어 있었지만 대부분은 종이박스 신세였다. 재원은 쓰던 물감과 붓이 담긴 박스에 더러운 앞치마와 토시를 말아서 찔러 넣었다. 얼마 전에 싹둑 잘라버린 머리칼이 조금 자라나기는 했지만 모자의 잔구멍으로 삐쭉삐쭉 나와 있었다. 마치 모자에 자른 머리털을 끼워 놓은 것처럼 우스운 꼬락서니였다. 재원은 짐을 싣는 동안에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담배를 문 입술을 달싹거려서 말을 하다가 담배와 침을 뱉어냈다. 통화를 하면서 한차례 웃었기 때문에 모친은 울화통이 터졌다.

“술 담배만 쳐먹지 말고...”

모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가 움직였다. 밑반찬과 김치를 담아 보냈으니 얼마간은 잘 지낼 것 같았다. 파출부가 알아서 연락을 보내 올 것이므로 안부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기로 했다. 딸이 이사 갈 오피스텔의 도배까지 꼼꼼하게 챙겼기 때문에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 모친도 부리나케 집으로 들어갔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지만 재원은 별탈이 없었다. 방에만 틀어박혀 있다던 딸이 외출도 하고 쇼핑을 다닌다는 게 의아했지만 전화로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재원의 전화를 받게 되자 모친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통화를 했다. 모친은 뜨악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놓았고 곧장 옷을 갈아입은 후 숄을 둘렀다.

“엄마야? 잠깐만.”

초인종을 누르자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연 재원이 백화점의 안내여직원처럼 웃었기 때문에 모친은 당황한 나머지 벗어서 들고 있던 장갑을 떨어뜨렸다. 모친은 장갑을 줍지도 못하고 눈이 튀어 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고 있었다. 딸은 그 동안 몸에 살이 올라 있었고,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있어 천상여자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은 이미지였다. 방에는 상이 펼쳐져 있고 상 위에 과일과 과자, 떡이 놓여있었다.

정면에 앉아있던 모자를 쓴 중년여자가 겸손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문이 열릴 때부터 미소를 머금고 있던 남자는 여자의 오른쪽 편에 앉아 있었는데 서른 후반쯤 될 것 같았다. 머리에 기름을 발랐는지 단정하게 빗겨져 있었고 까만 넥타이와 흰 와이셔츠 차림이었다. 재원이 모친의 손목을 잡아당겨서 안으로 들였다. 모친이 앉자마자 방안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 오늘에야 자매님을 모셨습니다.”

“할렐루야.”

남자의 말에 재원이 후렴처럼 덧붙였다. 벌떡이는 심장 근처를 문지르던 모친은 방안을 둘러봤다. 그림도구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림이라고는 벽에 걸린 십자가뿐이었다. 십자가를 둘러싸고 있는 게 구름인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질감이나 기법으로 보아 어릴 적 재원이 즐겨 그리던 데칼코마니였다. 그림을 쳐다보던 모친은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일어섰다.

 

                                                                           -끝-

                                                                  항만협회 기고 작품

 

 

 

 

 

 

 

 

 

 

김은숙   2010-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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