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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빠진 호랑이


 
 
 
 

 

 

 

    제 막 서쪽 하늘로 기울기 시작하는 해가 김노인의 대머리를 번들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머리털이 몇 올 남지 않은 정수리 부분이 뜨거워 김노인은 손으로 쓰다듬곤 했다. 계단 양쪽에 개나리 울타리가 있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노란 꽃이 피기 전 가지치기를 했기 때문에 겨우 김노인의 허리높이 만큼 자라있을 뿐이었다.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아내와 다투다 수세에 몰리자 얼떨결에 집을 나왔지만 막상 갈 곳이 없었다. 담배 가게를 겸한 슈퍼에 앉아 있다가 눈치가 보여서 나온 길이었다. 김노인은 약수터 길을 어기적어기적 오르다 암고양이처럼 앙칼진 아내의 목소리와 허옇게 치뜬 눈자위를 생각하면서 마지막 계단 위에 푹 주저앉았다.

  "휘유"

  김노인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토해냈다. 몇 방울의 땀이 늘어진 턱에서 계단에 점점이 떨어질 때 참고 있었다는 듯 매미들이 그악스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약수터로 가는 길과 아카시아 나무가 빼곡이 들어찬 숲 속은 바람 한 점 없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 본 김노인은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엉덩이를 쳐들면서 일어났다. 손을 털고서 무거운 다리를 움직여 후끈거리는 숲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뭇결 무늬를 그럴듯하게 새긴 시멘트 의자에 앉았다. 맨처음 산책을 왔을 때 시멘트를 나무로 착각했었던 기억이 떠올라 김노인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건너편 쪽에서 두런두런 들려오던 소리가 뚝 끊겼다. 김노인이 얼굴을 들자 운동기구의 닳은 손잡이에서 반사된 빛이 눈을 쏘았다. 김노인이 얼굴을 찌푸리며 빛을 피해 약간 위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굵은 둥치의 떡갈나무가 제법 큰 그림자를 드리운 게 보이고 그 아래 의자에 두 사람이 찰싹 붙어 앉아있었다. 모자를 쓴 노인과 물방울무늬가 찍혀있는 흰 상의를 입은 노파였다. 그들은 김노인을 의식했는지 몸을 굼뜨게 움직여 떨어져 앉았다. 칠십 정도로 보이는 노파의 입술에 발라진 붉은 립스틱 자국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아무렇게나 색칠한 그림처럼 화장이 되어있는 노파의 쭈그러진 얼굴을 훑어보았다. 김노인은 낯익은 그 노파를 어디서 보았을까 생각하다가 움찔했다. 괴기 영화 속에서 보았던 살아서 움직이는 시체였다. 김노인은 끔찍한 생각에 얼른 시선을 돌려 버렸다.

  요즘 굶는 노인들이 많다는데 저 사람들은 점심이나 먹었을까 하고 김노인은 엉뚱한 생각을 했다. 실은 김노인 자신이 점심 전이었다. 그런 생각이 식욕을 자극했는지 뱃속에서 쪼르륵 소리가 났다. 김노인의 식욕은 예순이 되도록 여전했다. 아내의 표정을 떠올리자 내키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김노인은 불룩 솟은 배에 손을 대고 원을 그리듯 문지르면서 휘적휘적 약수터를 내려왔다.

  도로 한 가운데에서 두 마리의 개가 교미 중이었다. 발바리 잡종인 암컷 위에 올라탄 놈은 덩치가 제법 큰 누런 빛깔의 개였다. 미니스커트 차림의 아가씨가 지나가다가 유리 깨지는 듯한 소리를 지르고는 얼굴을 싸매고 골목으로 들어가 버렸다. 무능하다는 아내의 쇳소리가 아직도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는 김노인은 우울한 표정으로 아가씨가 들어간 골목을 쳐다보았다. 고개를 돌린 김노인의 눈에 두 마리의 개가 계속 들러붙어 있는 게 보였다.

  불볕더위 때문에 누런 개는 혀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지만 궁둥이를 슬쩍 빼는 듯하다 밀어 넣는 동작을 반복하는 중이었다. 누런 개가 마치 절구공이를 내리치듯 하니 밑에 깔린 발바리의 신음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순간 김노인의 눈에 빛이 번쩍 일었다. 김노인은 한 달음에 달려가서 누렁이를 힘껏 걷어찼다. '깨갱깨갱'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떨어지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개들을 보자 속이 후련했다.

                                                                  

 

 

 

  관문을 열어 주는 아내는 숨을 몰아쉬며 엉거주춤 서있는 김노인을 노려보는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노인은 아직 마흔 일곱인 아내의 얼굴에서 젊음을 느꼈다. 김노인에게 있어서 그녀의 젊음은 자신을 욱죄는 사슬이었다. 그것 때문에 그는 늘 아내의 등 뒤에 서서 절망의 늪에 빠지곤 했던 것이다.

  샤워를 하는 동안 아내는 식사 준비를 하는지 온갖 맛깔스런 냄새들이 몰려들어왔다. 비누 거품조차 제대로 씻지 않고 벌거벗은 채 나온 김노인을 아내는 식탁 위에 수저를 놓다 말고 쳐다보았다. 쏘아보는 아내의 눈초리 때문인지 김노인의 남근은 점점 더 오그라들었다. 왕성한 식욕과는 달리 김노인의 성욕은 어느 때부터인지 무기력해지다 못해 퇴화되어 버린 것 같았다. 김노인은 문득 아내의 강짜가 그때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부부의 젊었던 시절 남편은 호랑이요 아내는 토끼나 다름없었다. 이제 그는 이빨 빠진 호랑이일 뿐이었다.

  식사를 끝낸 김노인은 이쑤시개를 물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김노인은 매끄러운 대자리 위에 누워 천장을 쳐다보다 텔레비전 위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벽에 걸려 있는 사진틀 안에서 젊은 부부와 돌이 갓 지난 아이가 김노인에게 여전히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그 사진 속 자신의 본새는 눈알까지 부리부리한 게 영락없는 호랑이었다.

  청년시절 사람들은 그의 곁을 지나치려면 괜스레 겁을 먹어 눈치를 흘금흘금 보곤 했다. 그는 양쪽 어깨가 떡 벌어진 만큼 뚝심이 있어서 벼 두 가마니를 어깨에 메고도 뜀박질을 치곤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사진 속의 아내를 보며 김노인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 시절 아내의 호리호리한 몸에서는 늘 풋보리 향기가 나는 듯 했었다. 아내는 이십대를 벗어나면서 무르익어 갔다. 아내의 몸을 떡 주무르듯 하던 때가 엊그제 같았다.

  젊은 시절 잡지에서 보았던 금발 여인의 나체를 떠올려 보았다. 밤이면 아내가 토해 내던 늑대 울음소리를 생각했다. 암퇘지의 너실 너실한 궁둥이와 수퇘지의 격렬한 교접을 떠올렸다. 그러다 방금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이루어지던 누렁이와 발바리의 교미를 떠올리며 손을 파자마 속에 넣었다.

  그 시간, 아내는 커피 잔을 들고 거실로 발을 옮기는 중이었다. 생각해보니 퀴퀴한 냄새를 풍기고 무기력증에 빠진 늙은 남편이 낮에 방에 누워있다는 것 자체조차도 신경질 나는 일이었다. 아내는 안방을 향해 눈을 흘기고는 거실 소파에 앉았다.

  아내는 조그만 탁자에 놓았던 잔을 들고는 한 모금 마시면서 인상을 썼다. 크림이 부족했는지 커피 맛이 유난히 썼다. 남편은 자신을 기피하는 듯 했다. 밤이면 베개를 들고 이 방 저 방을 들락거릴 때부터 남편의 기능이 의심스러웠다. 나이 들어 이 지경이 될 줄이야 몰랐지만 괴팍하고 성깔 있는 남편과 젊은 시절을 무사히 넘긴 것은 오직 그의 왕성한 정력 때문이었다. 낮에는 호랑이처럼 무섭기만 하던 남편이 밤이면 펄펄 끓는 연장으로 아내의 몸을 녹여버리곤 했다.

  아직 마흔 일곱인 아내는 녹슨 연장조차 구경할 수 없게 되자 한숨만 나왔다. 문득, 열 아홉이라는 나이에 열세 살이나 연상이었던 남편에게 시집 온 자신이 멍청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김노인의 남근이 허공을 향해 머리를 쳐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아내의 암코양이 같은 목소리가 김노인의 귀를 향해 발톱을 세우며 날아들었다.

  "영감탱이 되더니 귓구멍까지 멀었나? 집에서 뒹구는 꼴 보기 싫으니까 노인정에나 가라니까! "

  '저년이 죽으려고 환장했나?'

  입안엣 소리로 우물거리던 말을 꿀꺽 삼킨 김노인은 벌떡 일어섰다. 김노인의 둔한 머리에 스쳐 가는 게 하나 있었다. 부부싸움 끝에 한 대 쥐어박아 놓고 늘 달랬던 식이었다. 김노인은 속바지까지 벗어서 팽개치고 거실로 뛰어갔다. 아내의 눈동자가 황소 눈알처럼 커지고 있었다. 젖 먹던 힘까지 다 동원하여 아내를 깔아뭉개는 김노인의 쿵덕거리는 가슴속에는 바르르 떠는 토끼를 내려다보며 포만감을 느끼는 한 마리의 호랑이가 살아 숨쉬고 있었다.

  마악 가슴에서 하반신으로 이동한 황홀경이 분수처럼 솟구치려다 요란하게 울려대는 벨소리에 딱 멈추어 버리고 말았다. 김노인은 엉겨 붙는 아내의 팔을 떼어내고 속바지를 걸쳤다. 김노인은 계속 울려대는 인터폰을 잡아채서 귀에다 댔다.

  "아니, 점잖은 노인이 개를 발로 내지르기는 왜 내질러욧! 그 진돗개가 얼마 짜린 줄 알기나해욧!"

  약수터에서 가끔 마주치던 빼빼 마르고 눈이 단추 구멍만한 정노파였다. 그 노파가 그르렁대면서 지르는 고함이 인터폰에서 왕왕거리고 있었다.

                                                         
                                                                              -끝-
 
                                                                                   -  동아일보 사보 東友 1997년 2월호에 기고한 작품 -
 
 
 
 
 
김은숙   200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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