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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인들


 

 

 

 

 

 

  가로수를 휘감고 있는 꼬마전구의 불빛은 은하수 같았다.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캐롤송이 절정을 이루는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머플러를 만지작거리던 인하는 매장의 윈도우 앞에 섰다. 그녀는 뒷목에서 앞가슴 쪽으로 흘러내린 머플러를 잡아 빼서 고쳐 맸다.

윈도우 속의 인하는 눈길에서도 발을 안전하게 지켜 줄 양털부츠를 신었고 누빔 점퍼를 입고 있었다. 오리의 솜털이 공기와 함께 누벼진 칸칸을 채우고 있어서 눈 위를 굴러도 될 만한 옷이었다.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윈도우에 비쳐서 그녀를 에워싸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녀는 자신이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에 어깨를 한차례 으쓱하고 올려보았다. 군중들은 길바닥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게 아니라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윈도우 안쪽의 크리스마스트리에 시선을 옮기자 유리창에 비춰진 군중들이 인하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은박지가 휘감겨있는 트리 사이사이에 금종과 리본 따위가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트리에서 눈을 떼고 진열된 장신구들을 훑어보다 몸을 돌렸다. 약속시간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지만 주환은 아직 오지 않고 있었다.

날씨는 영하로 추락하고 있었다. 인하가 가까운 고궁에 있을 때만해도 가느다란 햇살이 담장의 꼭대기와 기와지붕에 걸쳐져 있어서 영상 4-5도 정도는 되었던 것 같았다. 일부러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와서 근처의 고궁을 둘러봤던 것인데 주환이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서둘러 고궁을 빠져 나왔다는 게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녀는 무뎌져 가는 손가락 끝으로 얼음처럼 차가운 볼을 문지르곤 했다.

도심에 불빛이 가득차면서 나름 위안이 되었다. 가까운 불빛은 다양한 빛깔의 장신구 같았고 먼 곳의 불빛은 색채의 효과를 내고 있었다. 인하는 주환과 통화를 하면서 앞면이 다양한 화보로 장식되어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극장답게 화보는 안쪽의 기둥에도 붙어있었다. 대부분 상영 중인 영화 화보였다. 그녀는 달콤 살벌이라는 단어가 수식어로 붙은 영화의 화보를 잠시 들여다봤다. 여자 주인공의 치켜든 손에 식칼이 들려져 있었다. 그 칼로 연인을 찌르는 내용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다가 인하는 고개를 흔들었다. 한여름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 크리스마스에 맞춰 연인과 함께 보는 영화이니 그럴 리가 없을 것 같았다.

문을 밀고 들어 간 커피숍의 이름은 ‘지난시절의 추억’이었다. 오래된 팝이 흐르고 있었고 분위기는 다소 고전풍이었다. 인하는 도자기와 한복을 입은 여인의 초상화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바깥을 내다보는데 풍경이 생경한 느낌이었다. 엷은 선팅이 된 유리창이 내는 시각적인 효과였다.

“일은 잘 해결된 거야?”

인하는 커피잔을 놓고 테이블 앞에 다가 선 주환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아니, 골치 아프네. 나가서 저녁이나 먹자.”

“영화는 안 보고?”

“오는 동안 생각이 달라졌어. 기분이 영 아니거든. 얼른 계산하고 나가자.”

“그럼  다른 걸 보면 되잖아.”

인하가 결정한 영화였기 때문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인하는 서둘러 얘기했다. 주환은 인하의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계산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인하는 씁쓸한 표정으로 주환의 등을 바라봤다. 주환이 입대한 동안 인하는 해외연수를 다녀왔고 주환이 졸업하기 전, 영어학원에 취직을 했다. 서로 전공은 달랐지만 둘은 캠퍼스커플이었고 학번이 같았다.

주환은 가정형편상 해외연수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졸업은 했지만 영어실력이 좋지 않아서 취업이 되지 않고 있었다. 이공계열에서도 영어실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따라가기 어려운 게 영어공부였다. 하긴 단어조차 외우는 것을 귀찮아했으니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었다. 주환의 체격이 건장했기 때문에 소방서에도 입사지원서를 넣었지만 그것마저도 해병대라든가 특전사출신 정도는 되어야 특혜가 있었다.

“그 공장에 미련은 없어.”

주점의 의자에 앉자마자 주환이 심통 부리듯 말했다.

“조금만 참아봐. 어차피 다른 곳에 이력서 넣고 있잖아. 내년 봄까지는 어떻게든 되겠지.”

인하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했다. 알루미늄 재질로 된 동그란 테이블의 가운데가 뚫려있어서 화로를 넣게 되어있었다. 가게 주인여자는 직경이 한 뼘 반 정도 되는 구멍위에 쟁반을 놓고 그 위에 부탄가스렌즈를 놓았다.

“시급 오천 원에 그 정도로 부려먹으면 되었지. 잔소리는 왜 그리 해대는지.”

“그래도 딴 데보다는 낫다며.”

“낫기는 개뿔이나...”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주환은 밥을 국물에 말았다.

“하긴 오늘이 이브인데 야근하라는 경우는 너무 하는 것 아닌가? 우리네 같은 학원이야 늦게 시작해서 늦게 끝나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오늘은 이브라고 일찍 끝내주던데...”

주환이 선물을 사왔을까 궁금했지만 인하는 묻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간 방학인데 어떻게 할까, 라는 말을 떠올렸으면서도 끄집어내지 않았다. 오랜 연인사이였지만 그녀가 취업을 하면서부터는 말을 조심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인하의 봉급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이제 겨우 연봉 2500만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다만 토요일과 일요일, 빨간 숫자의 날은 항상 쉴 수 있었기 때문에 나름 만족하고 있었다. 게다가 하루에 여덟 시간 수업이라서 상당히 여유로운 편이었다. 인하는 실력을 쌓기 위해 틈나는 대로 영어공부를 하고 있었다.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앉아있는 손님들 두 팀은 중년이었다. 그들은 조용조용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홀 안의 테이블 사이에 칸막이가 없다는 게 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장사가 잘되던 시절이 있었는지 벽에는 낙서가 어지러웠다. 대부분의 문장은 잘 먹고 갑니다, 라는 단순한 내용이었다. 그림도 있었지만 여자의 얼굴이라거나 아니면 꽃이었고 브이자로 치켜든 손가락도 눈에 뜨였다. 입대를 축하한다는 글귀 옆에는 파이팅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주환은 계속 무슨 말인가 지껄였고 인하는 간간히 낙서를 훑어보기도 했다. 천장에는 연통이 매달려 있었지만 환기가 잘되지 않았다. 메뉴를 보니 연통을 사용할만한 안주류는 돼지 양념구이 뿐인 것 같았다.

새로 들어 온 손님들이 착석하는 동안 주환은 입을 다물고 잠깐 그들을 지켜봤다. 바로 옆자리는 아니었지만 그 사람들의 목소리와 이쪽 두 사람의 목소리가 섞일만한 거리였다. 빨간 앞치마를 두른 주인여자는 아기곰 푸우를 연상시키는 뚱뚱한 몸매였다. 손님을 바라볼 때 생글거렸기 때문에 주인여자는 나이에 비해 귀여운 표정이었다. 인하의 시선이 쟁반을 들고 가는 주인여자의 뒤를 따라갔다.

“집중 좀 해라”

딴청을 피우는 게 못마땅했는지 주환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난방기 때문에 실내가 더웠고 인하는 점퍼를 벗은 상태였다.

“한마디도 안 빼고 듣고 있네요.”

인하는 중얼거리면서 국자를 들었다. 주환의 그릇에 찌개를 덜어 부은 후 머플러를 풀었다. 머플러의 중간부분에 핀이 걸렸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몇 올 빠졌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

인하는 레깅스를 신었지만 치마가 짧았고 티셔츠의 앞이 파여 쇄골이 드러난 상태였다. 옆 자리 두 남자의 시선이 인하의 뒷모습에 쏠리자 주환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주환에 비해 서너 살 정도 더 먹어 보였는데 서로 친구인 것 같았다. 한 여자가 주점으로 들어오면서 그 사람들은 더 시끄러워졌다. 주환은 인상을 쓰면서 그쪽을 바라보곤 했다.

“자꾸 쳐다보지 마. 오해 받는다.”

화장실에서 돌아오던 인하가 주환의 귀 가까이에 입을 대고 말했다.

“그쪽에서는 아예 빤히 쳐다보는데?”

주환의 말에 인하는 쳐다봤지만 그들끼리는 서로의 말에 열중할 뿐이었다. 인하가 쳐다 본 순간에 시치미 떼느라 고개를 돌렸을 수도 있었다. 그들과 마주보는 위치에 앉은 주환이 그런 말을 하는 게 당연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면서 인하는 의자에 앉았다.

인하의 찌개그릇을 맴돌던 파리가 주환의 대접에 앉았다. 파리가 그릇의 가장자리를 핥는 사이에 주환은 손뼉을 쳤다. 파리는 잡았지만 그 바람에 그릇의 한쪽 바닥이 들리면서 찌개가 넘쳤다. 인하는 일어나 빈 테이블에서 휴지를 가져왔다.

“여기에도 있는데 왜 거기까지 가서 가져오나. 쯧쯧”

주환이 쳐다보는 기둥에는 두루마리 휴지가 철사 줄에 걸려 있었다. 인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뽑아든 휴지로 테이블을 닦았다.

“이집 위생상태가 불량인 것 같은데... 당장 점검받게 해야겠다.”

주환이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참, 오지랖도 넓다. 파리 없는 음식점이 있을까싶네.”

“오늘은 오나가나 맘에 안 드는 인간들뿐이군. 파리가 있다는 건 가까운데 구더기가 있다는 얘기잖아. 아냐?”

“그래. 괜히 파리 한 마리 때문에 기분 엉망 되겠다. 그만 마시고 가자.”

“내가 주사라도 부린다고 생각해?”

한 달에 서너 번 만나는데 늘 웃으며 만났다가 얼굴을 찌푸리며 헤어져야만 했다. 나중에 주환에게서 미안하다는 전화를 받았지만 무엇인가가 앙금처럼 남았다.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두어야만 큰 문제없이 헤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인하는 일어섰다.

“쇼핑을 하든 뭘 하든 나가자고.”

“그런 건 다 사치야.”

“사치라고? 내 입장은 안중에도 없는 거야?”

“미안하다. 하지만 나처럼 살아봐. 공장에 가서 일 할 때면 내 몸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야. 한 시간 죽자 사자 일하면 겨우 자장 한 그릇 값이지. 시장이라도 한 바퀴 돌아오면 호주머니를 소매치기에게 털린 것 같다고 어머닌 말씀하시고...”

“이미 다 알고 있는 얘기잖아.”

인하는 의자를 소리가 나도록 끌어당겨서 다시 앉았다.

“알긴 개뿔... 경험하지 않고도 알 수 있을 것 같아?”

가정형편이 별로 어렵지 않은 인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주환이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이긴 했지만 군대에 다녀오기 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유머감각도 갖추고 있었다. 제대 후 사고가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더니 졸업 후부터는 매사가 부정적이었다.

주환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시급을 제대로 받겠다며 찾아 간 곳이 공장이었다. 생활정보지의 구인난에는 소규모의 그런 공장들이 많았다. 대학 전공을 살리는 중소기업이라도 취업이 된다면 다행이겠지만 그게 관철되지 않으면 주환이 계속 공장에 머물 수도 있었다. 주환이 농담처럼 말하는 용접공이라도 된다면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직업을 폄하할 생각은 없었지만 부정적인 사고를 가진 남자와 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설마 이보다 더 나빠지겠어? 나이지려니 생각하자.”

인하가 다독거리듯 말했고 주환은 고개를 떨어뜨린 상태에서 상체를 건들거리고 있었다. 고개를 쳐들던 주환이 들고 있던 담배가치를 부러뜨렸다.

“재수 없게 생긴 저 새끼는 왜 이쪽만 보는 거지?”

담배를 바닥에 던진 후 중얼중얼 욕을 하는 주환을 인하는 물끄러미 쳐다봤다. 언제부턴가 주환은 공장에 다니면서 주워들은 욕을 서슴없이 쓰고 있었다.

“뭐 하러 그런 것 까지 신경 써? 우리에게 시비 거는 것도 아닌데...”

“니 옷차림이 그러니까 자꾸 쳐다보는 거야.”

인하는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약간 돌려서 옆자리를 쳐다봤다. 이쪽 방향으로 시선을 둔 남자는 안경을 끼고 있었다.

“나가자.”

인하가 머플러를 두르고 점퍼와 가방을 챙겼다.

“야이 씨발 새끼야. 그쪽 여자나 신경 써.”

주환이 일어나면서 소리를 질렀다.

“가자니까.”

인하가 소매를 잡아끌었지만 주환은 분한 듯 씩씩거리면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인하는 계산대로 갔고 소란스러웠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밖으로 나와 문 앞에서 오 분 정도 기다렸지만 주환은 나오지 않았다. 인하는 주환을 바라보던 안경 낀 남자의 눈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고 있었다. 양쪽 눈이 같은 곳을 바라보기 어려운 바깥사시였다. 주환이 취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기는 어려웠을 테지만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말을 했다면 제대로 듣지도 않고 그 남자 편을 든다고 틀림없이 소리를 질렀을 터였다.

10여분 뒤 열린 문으로 나오는 주환은 한쪽 코를 휴지로 막은 상태였다. 피가 덜 닦여서 입 주변과 인중이 얼룩덜룩했다. 주환이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 문을 잡고 있던 주인여자는 소리가 나게 문을 닫았다.

“에이 씨팔. 그 노무 파리 때문에...”

말은 그렇게 했지만 결코 파리 한 마리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사람들 사이를 살펴봤지만 인하는 어디에도 없었다. 번호를 누르고 휴대폰을 귀에 대자 전원이 꺼져 있다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몇 걸음 걷던 주환은 콧구멍을 막고 있던 휴지를 뽑아서 길바닥에 던진 다음 밟았다. 술집과 다른 건물 사이의 틈으로 다가간 그는 담배를 빼들었다. 주환이 허공을 향해 연기를 내어뿜는데 내리는 눈 사이로 화이트 크리스마스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끝-

                                                          항만협회 기고 작품

 

 

 

 

김은숙   201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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