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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고도는 세상


 
 
 
 
 
  

 

  강남의 금싸라기 땅 위에 우뚝 선 주상복합 아파트에 살고 있는 조 여사에게는 아들만 하나 있었다. 조 여사는 아들에게 들인 공을 생각하면서 간혹 눈시울을 닦아내곤 했다. 아들은 조 여사의 끈끈한 사랑과 집념에 보답이라도 하듯 모범생으로 자랐다. 조 여사를 닮아 키가 훌쩍한 아들은 갸름한 얼굴에 제 아버지처럼 선명한 쌍꺼풀이 있어 호감을 주는 외모였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아들은 아홉 시 뉴스 때마다 듣던 바늘구멍이라는 소리가 무색하게도 대기업에 척 붙었다. 취업이 되었다는 말에 조 여사는 한참동안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울먹거리면서 겨우 토해낸 말이 ‘장한 내 새끼야’였다. 조 여사가 감격스러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홀로 자식을 키웠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결혼 10년 째 되던 해에 남편은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물 한 모금 달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쓰러진지 두어 시간만에 남편은 숨을 거두었다. 가난과 덤으로 아들하나를 물려주고 일찍 저 세상으로 간 남편은 그런 기쁨을 누릴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죽기 몇 달 전쯤 생명보험을 넣겠다는 조 여사를 쳐다보며 남편은, 자신이 빨리 죽기를 바라느냐고 물었었다. 그 한마디 때문에 생명보험을 넣지 못했고 조 여사는 어마어마한 돈을 타지 못했다. 남편이 일찍 죽은 것보다 생명보험을 타지 못한 게 더욱 원망스러웠다.

남편이 죽은 후 일을 해야만 했던 조 여사는 직장을 보험회사로 택했다.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횡재를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물론 보험모집인이란 큰 기술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고, 능력이 좋으면 보통 사람의 일년 분 봉급을 한달에 벌 수도 있었다. 그렇게 까지는 아니라도 잘 할 자신이 있었다. 남편이 죽었을 당시에 조 여사의 손에 쥐어진 돈은 쥐꼬리만한 퇴직금과 몇 푼의 위로금이 전부였다.

구청의 말단 공무원이었던 남편은 고지식하기 짝이 없었다. 뇌물이라는 것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뇌물은 아주 더러운 돈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었다. 어쩌다가 운이 나쁜 날에는 자신도 모르게 딸려 들어 온 지폐를 발견할 경우가 있었다. 그는 돈에 오물이라도 묻어있는 것처럼 만지기조차 꺼려하다가 결국 불우 이웃을 돕는데 써버리곤 했다. 눈치가 빠른 조 여사도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털털한 남편이었지만 공돈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책잡히기 싫어 꼼꼼하게 처리했다.

조 여사는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해서 보험모집을 했다. 대부분 중소업체를 운영하는 남자들을 상대했다. 언변에 능하며 몸매를 갖춘 조 여사를 싫어할 남자는 많지 않았다. 그 당시 조 여사는 몸에 붙는 상의와 치마를 즐겨 입었는데 거들을 입지 않아도 손색이 없는 몸매였다. 남자들은 열 달 가까이 부풀었다 줄어든 배가 아니라면서 조 여사의 복부를 슬쩍 만지곤 했다.

당시 조 여사는 자기관리가 철저한 여자였다. 어떤 고객에게도 아들과 둘이 산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애정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죽은 남편을 방호벽으로 세워 둔 셈이었다. 연애를 했을 경우 나름대로의 방책도 있었다. ‘헤어질 때는 도도하게’라는 게 그녀의 신조였다. 달리 말하자면 매달려서도 안 되며 매달리는 사람에게는 매정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결혼 전에 몇 번 연애를 하면서 생긴 노하우였다.

능력 있는 보험 모집인이었지만 아들 때문에 그만두어야했다. 고등학교 일 학년이었던 아들이 어머니의 직업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은 전화 통화로 알았다. 조 여사는 아들이 누군가와 통화를 할 때면 동시에 수화기를 들어 엿듣기도 했다. 물론 그것을 들킬 만큼 어수룩한 조 여사가 아니었다. 수화기를 놓고 나서는 꺼림칙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밤늦게라도 나가서 아들이 좋아하는 먹을거리를 사다 주기도 했다.

조 여사의 직업을 다른 말로 둘러대느라 수화기 속의 아들은 말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그건 조 여사의 아들답지 않는 태도였다. 문득 조 여사는 아들의 말대로 화장품가게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 후부터는 아들이 둘러댈 필요도 없을 것이니까.

얼마 후 조 여사는 보험모집인을 그만두고 화장품 가게를 열었다. 그때 조 여사 나이 마흔 다섯이었다. 화장품 가게도 잘 되는 편이었지만 실은 부업으로 하는 사채놀이의 재미가 쏠쏠했다. 조 여사는 보험 모집인을 할 때부터 작은 돈으로 일수를 했었다. 화장품 가게는 비워서는 안 되기 때문에 월변으로 돌렸다. 그때만 해도 경기가 그런 대로 괜찮아서 3-4부 이자는 받아낼 수 있었다. 급전인 경우는 6부 이자까지도 가능했다. 간혹 머리 아픈 일이 생길 때도 있었지만 치밀하게 했기 때문에 이자나 날리는 정도였다.

사채놀이에 제동이 걸린 것은 아이엠에프 이후 대기업이 무너지고 소규모의 사업장들도 연쇄적으로 도산이 되면서부터였다. 3000만원이라는 돈이 떼일 위기에 놓이자 조 여사는 사채놀이를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만했다. 조 여사는 보험모집인일 때 알았던 남자를 떠올렸다. 조직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다는 그 남자는 해결사로 적격이었다. 딱 한번이었지만 사랑을 나눈 사이라 부탁하기도 좋았다. 2천만 원만 받는다 해도 이자를 2년 동안 3부로 죽 받아왔기 때문에 손해는 아니었다. 남자가 절반을 챙기겠다고 제의를 하는 바람에 약간 망설이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받아내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일을 맡겼다. 결국 남자가 1천만 원만 건네주면서 2천만 원밖에 받지 못했다는 말을 했을 때 조 여사는 회유도 추궁도 할 수가 없었다. 일을 맡길 무렵 웃음기가 돌던 남자의 얼굴이 일을 끝낸 후에는 거의 일그러져 있어 조 여사는 그 외의 돈을 포기했다. 다만 돈을 빌려간 그 집의 가족들이 그 이후 뿔뿔이 흩어졌다는 게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아들 승수가 맞선을 보는 날이어서 지난 세월이 되새김질되었던 것 같았다. 마치 서치라이트가 지나가면서 감추어진 사생활까지 드러난 것 같아 조 여사는 기분이 찜찜했다. 하지만 굳이 자책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인간이란 살아가는 과정에서 크든 작든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가게를 치운 후 교회에 나가보니 죄인이 아닌 사람이 거의 없었다.

따지고 보면 조 여사 자신은 승수를 위해 재가도 하지 않았으니 오히려 칭찬을 받을만한 삶이었다. 인간의 잘못은 하느님만이 용서할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누구의 비난도 들을 필요가 없었다. 오늘 맞선 볼 처녀의 어머니가 교회에 다닌다는 말을 공 여사로부터 들었던 것 같았다. 다시 기억을 더듬어 보니 틀림없었다. 조 여사는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조 여사는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가급적 빨리 퇴근을 하라고 말할까하다가 그만두었다.

누구에게도 드러내어 말한 적은 없었지만 조 여사가 보기에 아들은 마마보이 기질이 있었다. 도무지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고 조 여사 앞에서 어리광만 피우려 들었다. 아들을 키우며 ‘너 하나만 보고 산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상황이 그렇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들이 선을 볼 때마다 조 여사는 며느리에 대해 질투나 구박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곤 했다. 조 여사의 친구들은 손자가 벌써 초등학생인 경우도 있었다. 조 여사는 손자를 더도 말고 셋만 두고 싶었다.

승수는 주로 명문대 출신의 처녀들과 선을 봤다. 맞선을 볼 때마다 아들은 호텔 커피숍에서 나오자마자 늘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어떤 여자는 너무 못생겼고, 어떤 여자는 어쩐지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으며, 어떤 여자는 체격이 커서 남자 같고, 또 어느 여자는 키가 너무 작아서 싫다고 했다. 어느 땐가는 여자의 얼굴을 성형외과 의사가 모조리 바꿔준 것 같다고 투덜거렸다.

때로는 조 여사의 생각이 아들과 일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자라는 게 살다 보면 정이 붙고, 체격이 좀 크면 오히려 건강한 체질일 수 있을 것이며, 키가 작은 여자는 야무진 구석이 있는 거라는 등등의 생각이 넌지시 들기도 하여 아쉬움이 남긴 하였다. 그러나 조 여사 자신도 눈 밑 주름살 제거 수술과 코 수술은 했지만 젊은 여자가 일부도 아니고 모조리 고치는 것은 아무래도 용납될 것 같지 않았다.

베란다에서 내다 본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어젯밤 늦도록 내린 비에 화단의 개나리가 싱싱해졌다. 알에서 갓 나온 병아리 같은 꽃잎이 조 여사의 시선을 오래도록 잡아끌었다. 조 여사의 눈에는 개나리 꽃잎이 자잘해도 기품이 있어 보였다. 그때 거실 한 귀퉁이에서 ‘사모님 전화 받으세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파출부의 목소리가 달라졌다는 생각을 하다 조 여사는 에고 정신머리라고는...하며 거실 귀퉁이로 종종걸음을 쳤다. 핸드폰을 열자마자 공 여사의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응, 그래그래 알았어. 일찍 나갈게.”

토요일이라 도로 사정이 좋지 않으니 빨리 나오라는 공 여사의 말이었다. 이번 맞선은 공 여사가 주선했기 때문에 믿을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녀의 어머니가 S여대 출신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조 여사는 가슴까지 뿌듯해지는 것 같았다. 조 여사가 대학에 붙고도 갈수 없었던 것은 아버지가 그 즈음에 지병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훗날 술집 호스티스를 해서 대학을 다녔다는 한 친구 얘기를 듣고 자신이 너무 쉽게 대학을 포기를 했었다는 생각이들어 한때 실의에 빠졌었다. 그렇게라도 가고 싶었던 대학이었다. 그런데 S여대라니...

조 여사는 함박웃음을 터트리려다가 멈칫했다. 요새 입 가장자리가 거칠어서 크림을 듬뿍 바른다는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처녀의 어머니까지 참석하는 맞선 자리이니 품위 있게 웃는 것도 일부러 연습해 둘 필요가 있었다.

양쪽 부모가 다 겸손하다는 게 공 여사의 말이었지만 반만 믿었다. 다만 그 처녀가 여대 중에서는 제일 명문대인 Y 여대 불문과 출신이라면 수재에 가까울 것이고, 분명 분위기가 있는 처녀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아들이 선호하는 여자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오늘은 정말 뭔가 될 것 같았다.

호텔 커피숍에는 점잖아 보이는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벽에 기대선 스피커에서 부드러운 팝송이 흘러 나왔다. 조 여사는 아들의 표정이 약간 굳어 있다고 생각했다. 문 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던 공 여사가 조 여사의 발을 살짝 밟더니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조 여사는 헛기침을 한 번 했고 아들은 의자에 등을 붙이면서 상의를 여몄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 처녀는 아침에 본 개나리꽃처럼 화사한 듯 하면서도 기품이 있어 보였다. 처녀의 긴 속눈썹과 반듯한 코가 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것 같았다. 그 처녀는 이쪽에서 물을 때마다 상냥한 목소리로 조리 있게 대답하였다. 처녀는 키가 크면서도 귀여운 얼굴이었다. 약간 붉은 기가 도는 통통한 볼과 다소 큰 가슴과 엉덩이를 가져서 건강해 보였다. 잠시 후에 도착한 어머니의 말수가 적어 더욱 흡족했다. 이 처녀와 아들이 첫 선 때 대면했었다면 열두 번이나 헛수고를 하지 않았어도 될 걸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들도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아들은 그날 그 처녀와 저녁 식사까지 하고 헤어졌으며 물론 조 여사에게도 시큰둥한 얼굴로 이 말 저 말을 늘어놓지 않았다.

 

 

  승수와 그 처녀 지혜는 맞선으로 만난 지 꼭 석 달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지혜는 조 여사의 생각대로 기품이 있고 상냥했다. 사귄 기간이 짧아서인지 결혼 초 승수는 지혜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고, 오히려 지혜가 승수를 살갑게 대했다. 승수는 퇴근해서 돌아오면 조 여사를 안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게 슬그머니 사라졌다. 조 여사에게는 군인처럼 씩씩한 말투로 다녀왔다는 말을 하고는 대신 지혜를 껴안았다.

요즈음 며느리가 입덧까지 해서 늘 들떠있는 조 여사는 이따금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삼십년 전 아들을 임신했을 때 조 여사는 가끔 콧노래를 불렀다. 문득 지혜도 아들을 가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조 여사는 흥분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임신 넉 달째라 알 수가 없었다.

조 여사는 엷은 화장에도 불구하고 초췌해진 지혜를 바라보며 백화점에 가는 길이니 집에 돌아올 때 소꼬리를 사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거의 지혜와 함께 갔지만 오늘은 친구들과 약속을 했기 때문에 서운하지만 혼자 나가야했다. 유별나게 입덧을 해서 통통한 볼이 홀쭉해지고 기미까지 낀 며느리가 안쓰러웠다. 지혜는 승강장 앞까지 따라 나와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했다.

승강기의 문이 닫히자 조 여사는 벽에 붙은 거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성형외과에서 광고용으로 붙여놓은 거울을 보면서 문득 자신이 아홉 개의 꼬리를 감춘 여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찌 보면 조 여사가 며느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파출부도 없이 지내는데도 집안엔 머리털 하나 떨어져있지 않았다. 간혹 집안 살림에서 윤기가 나지 않으면 조 여사는 며느리를 단호한 어조로 나무랬다. 깐깐한 조 여사와 살면서도 지혜는 단 한 번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갑자기 며느리가 고맙다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조 여사는 눈가를 꼭꼭 누르다 헛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참... 교회를 오래 다니다보니 천사가 다 되었네. 그래...이왕 좋은 일을 하는 김에 바가지 한번 쓰자. 삼 년 데리고 있다 분가시키려고 했는데 애 낳으면 수발만 하고 내 보내야지. 요즘 누가 홀시어머니랑 같이 살겠어. 그나저나 아들 앞으로 되어있는 그 아파트는 좀 좁지 않을까? 60평 살다 32평이면 좁다는 생각은 들겠지만 그래도 겨우 세 식구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을 거야. 나도 아직 젊으니 늘그막에나 함께 살자고 하지 뭐. 아무튼 지혜는 요즘 보기 드문 애야. 아들 착하지 며느리 착하지. 난 복도 많어...’

조 여사는 중얼중얼하면서 화장이 밀릴까봐 상기된 볼을 톡톡 두들겼다. 흥분이 되어 가슴까지 떨리는 것 같았다. 조 여사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퉁겨지듯 나왔다. 몇 걸음 더 나아가자 통로 끝의 유리문이 스르르 열리며 시원한 공기가 폐 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미세한 향기에 무심코 오른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화단의 개나리꽃이 조 여사의 시야를 샛노랗게 바꾸어 버렸다. 눈을 깜빡거리던 조 여사는 아차 싶었다. 그런데 가만 있자... 노란 쇼핑 백 그걸 어디 두고 왔더라? 쇼핑백에는 바꿔야할 옷이 들어 있었다. 건망증이란 늙은 것이나 젊은것이나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조 여사는 피식 웃었다.

엘리베이터에서 황급히 내린 조 여사는 벨을 누르려다 손을 멈췄다. 문은 지문 감식만으로도 열리게 되어 있었다. 피곤한 며느리가 잠이라도 자는데 깰까 싶어 조 여사는 살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가 신발을 벗으려고 몸을 구부렸다. 그때 거실에서 지혜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조 여사는 일어서지도 못하고 누가 있나 싶어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며느리의 호들갑스런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다시 말이 이어졌다.

“말도 하지 마. 내가 그 여우에게 공을 들이는 걸 생각하면 입이 다 쓰다니까.”

조 여사는 눈이 휘둥그레졌으나 설마 하며 자기 귀를 의심하고는 숨을 죽였다. 며느리는 계속 지껄여대고 있었다.

“재산이야 떼어 주겠지. 내 정성이 얼만데... 요즘 그 노인네 보면 욕지기가 다 나와. 늙으면 빨리 죽어야지. 우리 어머니도 고생 끝에 낙이 온다며 여우를 잘 구슬리래. 앞으로 몇 달만 참으면 될 거야. 근데 자기야. 우리 애가 자기처럼 매부리코 되면 어떡허지?”

설마하며 듣고 있던 조 여사는 맥없이 개풀어지고 말았다.

“세상에... 능구렁이 같은 년!”

 

 
                                                                      -끝-
 
 
 
 
 

김은숙   2006-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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