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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탈에 선 까페


 

 

 

 

    바깥을 내다보았지만 오늘따라 지나다니는 사람이 드물었다. 이따금 대각선 건너의 슈퍼로 종종 걸음을 치는 꼬마아이가 눈에 띌 뿐이었다. 슈퍼가 아닌 대부분 상점은 마치 출입문에 못질을 해 놓은 것처럼 들락거리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직장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변두리의 오전은 항상 텅 빈 느낌이었다.

  아들 딸 둘씩 두어 명자는 일찍부터 고생이었다. 명자 나이 정도의 주부라면 쇼핑이라든가 특별한 점심을 먹기 위해 외출하는 등등의 취미활동을 갖고 있었다. 명자가 원하는 취미활동은 비스듬히 누워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올드팝을 듣는 일이었는데, 그건 휴식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었다.

  서랍속의 잔돈은 넉넉했다. 서랍을 닫고 시디플레이어를 누르자 부드러운 팝이 흘러 나왔다. 흐트러진 물건을 정리하고 왼쪽 벽에 걸린 거울을 바라보았다. 기생식물처럼 나날이 번져 가는 잡티와 조각칼로 정교하게 새긴 것 같은 눈가의 주름이 곧바로 명자의 시야에 들어왔다. 명자는 마치 처음 발견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려다가, 호들갑을 받아 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는 찌푸린 얼굴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명자의 시선이 아래쪽으로 옮겨가면서 아예 씁쓰레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얼굴보다 더한 문제는 거울을 꽉 메운 명자의 몸이었다.

  명자의 상반신은 액체처럼 출렁거리는 듯 보이는 거울 속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결혼생활 십구 년에 잃은 것이 있다면 청춘일 것이요, 얻은 것이 있다면 몸의 외피와 내피 사이에 낀 두툼한 지방질이었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스물다섯이 넘으면 계속 세포가 죽어간다고 하는데 세포가 죽어서 비는 공간을 지방질이 차지하는 것 같았다. 겨울에는 지방질이 몸의 외투 구실도 했지만 여름에는 벗어 던질 수 없었으므로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지방질 제거 작업으로 필수적인 건 운동이었지만 그러기에는 가게가 너무 비좁았고 집과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웠다. 잡념이 생기면서 절망으로 시작되는 하루였다.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지려는 찰나, 두 사람이 가게로 들어섰다.

  “어서오세요.”

  명자는 손님들을 보면서 얼굴에 웃음을 담았다. 영감은 칠십 중반 정도 되었을 것 같고 할멈이 영감보다 서너 살 아래로 보였다. 그들은 은제품이 놓여있는 진열장 앞으로 다가섰다.

  “어여 골라봐여. 돈 생각하지 말고...”

  영감은 문신 때문에 눈썹이 시커먼 할멈을 보면서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있었지만 주머니에 들어간 손은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할멈은 새빨간 립스틱이 서툴게 발라진 입술을 간혹 오물거렸다. 쥐어 짠 빨래 같은 목의 주름을 가린 머플러의 무늬가 지나치게 요란스러웠다. 그것은 계절을 앞질러 목에 걸려 있었다.

  “안 사줘도 되는디...”

  할멈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무게가 많이 나가는 은팔찌를 팔목에 얹었다. 팔목이 가늘어서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걸 명자에게 채워달라더니 만족스러운지 틀니를 환히 드러내며 웃었다. 명자가 보기에는 만난지 얼마 안되는 커플이었다. 할멈을 집에 데려다 앉히려면 전세 보증금부터 본인 앞으로 해 달라는 요즘 세상이고 보니, 영감은 몇 번 선물이나 하다가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 커플이 나가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명자가 건강을 지키지 못한다면 남편도 늙어 그런 꼴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명자는 볕을 가리는 블라인드를 한쪽만 내리고 맨손체조를 했다.

  오후에는 바빴지만 저녁 시간이 되면서 손님이 뜸해졌다. 명자는 하루 벌은 걸 셈해 봤다. 액세서리라 큰돈이 들어오는 건 아니었지만 마진이 좋아서 벌써 순수익이 칠만 원 가까이 되었다.

  남편에게서 좀 늦겠다는 전화가 왔기 때문에 명자는 딸 하나와 아들 둘을 불러내서 자장을 시켰다. 큰딸은 고3이라서 저녁을 같이 먹는 경우는 드물었다. 명자는 아이들이 입 주변에 묻은 자장을 닦기도 전에 등을 떠다밀었다. 어둑어둑한 골목길로 사라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디밀어 앉았다. 아이들과 밥 먹는 내내 숙제와 시험에 관한 얘기만 했다는 생각에 명자는 기분이 언짢았다.

  벽에 걸려있던 나무 시계에서 뻐꾸기가 문을 밀치고 나왔다. 건전지가 거의 소모되어 뻐꾸기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울었고 펴고 있던 날개를 한참 만에 접었다. 약을 갈아 끼워야 한다면서도 손목에 찬 시계가 있었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막내인 아들이 뻐꾸기 소리를 까꿍이라는 소리로 흉내 낸 적이 있었다. 그 무렵 네 살이던 녀석이 열한 살이나 되었으니 고물이 다 된 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의 흐름은 물건만 낡게 하는 게 아니었다. 명자의 몸도 예전 같지 않았다. 앉았다 일어설 때 뚝딱거리는 소리를 내는 무릎은 관절염의 시초라고 했다. 의사는 운동장 다섯 바퀴를 돌아야 한다고 했지만 명자에게는 대학 입시보다 어려운 과제였다.

  의자에 앉아 무릎을 주무르던 명자는 진열장 귀퉁이를 잡고서 일어났다. 동시에 유리문이 힘차게 열리더니 키가 큰 청년이 들어왔다. 청년의 앞 머리카락에 무스가 곱게 발라져 있었다. 그는 약간 웃음을 흘리면서 명자를 바라보았다.

  “저... 남자가 걸을만한 목걸이 좀 보여 주세요.”

  얼굴 표정과는 달리 청년의 말투는 딱딱했다. 그는 진열장 안을 쓰윽 훑더니 싯누런 도금이 된 굵은 줄의 목걸이를 가리켰다.

  목걸이를 든 청년이 쩔쩔매고 있어 명자가 고리를 끼워줄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깔끔한 목덜미를 바라보고 있자니 명자의 가슴에 파도가 밀려왔다. 스물두 살 무렵의 일이 기억의 창고에서 기지개를 켜는 순간이었다.

  그 무렵 명자는 숱이 많은 긴 머리에 눈동자가 까맣게 반짝거리는 처녀였다. 목이 길고 허리가 가늘어 한 마디로 동양적인 매력을 지닌 아가씨였다. 굳이 흠 있는 곳을 들라하면 몸에 비해서 굵은 허벅지라 할 수 있었는데 그때는 긴치마가 유행되던 시절이라 흠이랄 것도 없었다.

  막국수 한 그릇을 먹기 위해 떠나던 여행이었고 기차는 춘천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열차가 청춘 남녀로 넘쳐 나고 있어서 틈에 끼어있는 몇몇 어른들은 민망하다는 표정이었다. 덜컹대는 바퀴소리까지 뒤섞여 실내가 더 시끄러운 것 같았다. 명자와 친구 희자는 그저 창밖만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부숭부숭한 명자의 눈이 한층 더 가느스름해졌다는 것은 밖의 풍경에 취해있다는 얘기였다. 이미 치장을 끝낸 건너편 산이 강물에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햇살이 부서져 그 풍경에 덧칠되기도 했다.

  소양호 주변에서 계획대로 막국수 한 그릇씩 먹고 일어섰다. 후식으로 명자는 번데기를 샀다. 이쑤시개로 번데기를 하나씩 찔러 입에 다 털어 넣을 때까지 둘은 소양호 주변을 맴돌았다.

  쉬엄쉬엄 도로를 따라 시내 쪽으로 걷기 시작했을 때는 오후로 바뀌어 있었다. 여름 내내 멀건 빛깔이었을 하늘에는 푸른 천이 깔린 듯했다.

  “저거 봐. 은하수 같지?”

  명자는 죽 늘어서 있는 포플러나무를 쳐다보며 말했다. 잎이 바람에 팔랑거리면서 반짝이고 있었다.

  “아기 손바닥 모양이라고 노래에서 그랬을 걸?”

  희자가 건성으로 나뭇잎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바람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지는 나뭇잎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명자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편지만 주고받았던 첫사랑이 떠난 지 꼭 반년이었다. 막상 편지를 써야할 계절이 왔지만 이젠 주고받을 사람이 없었다. 명자는 길바닥의 잔돌을 차면서 터벅터벅 걸었다.

  "얘! 저기 좀 봐."

  다소 고조된 희자의 목소리에 명자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명자는 희자의 손끝이 가리키는 건물을 바라보다 몸을 기역자로 꺾었다. 간판이 모로 걸려있어 읽기 위해서였다.

  “비.탈.에.선.카.페.”

  카페는 건물 일 이층을 다 사용하고 있었다. 또박또박 읽고 나서 몸을 들어 담쟁이덩굴에 휘감긴 건물을 쳐다보았다. 담쟁이덩굴은 회갈색으로 바래어버린 벽을 타고 올라 지붕까지 실처럼 가느다란 가지를 뻗치고 있었다. 덩굴에 붙은 잎사귀들은 빨강, 노랑, 주황, 녹색 등으로 배색되어 있었다. 명자는 담쟁이 잎을 두어 장 따서 책갈피에 넣어둘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건물 가까이 갔다. 앞 유리면으로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여느 커피숍처럼 디제이 박스가 있고 테이블 너덧 석에 손님이 앉아 있었다.

  놀랍게도 커피숍 안은 미니 이층이었다. 그러니까 앞쪽으로는 일층이었고 뒤쪽으로는 이층이다 보니 가게 안이 비탈져 있는 꼴이었다. 명자는 자리에 앉으려다 미니 이층에 있는 DJ 박스를 쳐다보았다. 조도가 다소 낮은 불그스름한 불빛 아래 앉아 있는 DJ와 눈이 마주쳤다.

  “제가 하경을 하게 된 까닭은 막국수 때문이었지 비탈에 선 카페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담쟁이덩굴과 모로 누워있는 간판에 홀려서 카페에 앉아있네요. 다섯 곡을 듣겠다는 것은 저의 고집입니다. 물론 그 노래를 다 들어야만 저는 비탈진 이 카페를 나가겠지요.”

  DJ는 미소를 머금은 채 종업원이 들이 민 명자의 쪽지를 읽었다. 다른 사람들이 신청한 노래 사이사이에 명자가 원하는 팝이 흘러 나왔기 때문에 느긋하게 앉아 있어야 했다. 음악이 다 끝난 후에도 명자는 일어 설 수가 없었다. DJ의 멘트 때문이었다.

  그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누군가가 인사를 했다. 돌아보니 DJ였다. 안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DJ는 주근깨가 있는 얼굴이었다. 호리호리한 키에 섬세한 손가락이 인상적이었다. 몇 마디 더 나누고 명자는 수줍은 표정으로 돌아섰다. 명자의 뇌리에는 DJ의 깔끔한 뒷목덜미가 여운으로 남았다.

  스물두 살 무렵의 매력이 깡그리 사라져버린 명자는 방금 떠올린 아름다운 추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충혈 된 눈을 비볐다. 그제야 가게의 물건이 하나씩 눈을 비집고 들어왔다. 명자는 입 가장자리가 터지지 않을 만큼 힘껏 벌리고 하품을 했다. 벌써 시간은 여덟시 반이 넘어 있었다. 거리를 내다보다가 정수리의 머리가 뭉텅 빠져버린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벌써부터 춥네.”

  가게에 들어 선 남편은 양쪽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몸을 떠는 시늉을 했다.

  “오는 길에 마트에나 다녀오라니깐. 참내...”

  명자는 남편을 향해 걸음을 옮기면서 눈을 흘겼다.

  “여편네가 남편 알기를... 못해! 씨!”

  "으이그...술 냄새. 내가 미쳐!"

  툴툴거리는 명자를 빤히 바라보던 남편이 픽 웃었다. 비틀거리던 남편은 덜퍽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소파에 앉았다. 명자도 그 곁에 앉았다.

  “나도 미쳤지. 좋은 여자 다 놔두고 몇 통의 편지에 헤까닥하다니...흐흐...담쟁이덩굴이 감싸고 있던 아름다운 비탈의 카페라...서두가 그랬지 아마?”

  “뭐? 자기는 내가 동화책에서 만났던 소녀 같다고 하지 않았어?”

  “오늘처럼 좋은 날 싸우면 안 되지.”

  아예 뒤집어진 넥타이가 대롱거리는 걸 보면서 명자가 혀를 쯧쯧 찼다.

  “영감탱이가 다 된 것 같네.”

  “아이구 이 할멈아...나랑 맞짱 뜰래?”

  남편이 실실 웃으면서 대꾸했다. 명자는 말을 말아야지라고 중얼거리며 남편의 넥타이를 폈다.

  “축하합니다!”

  소파가 거리를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명자는 큰소리를 내며 들어서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 사람은 피에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명자는 얼떨결에 일어났다. 피에로는 손에 들고 있던 바구니를 명자의 손에 들려주었다. 핑크색의 장미가 가득한 바구니였다.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는 명자에게 삐에로는 춤이라도 출 것 같은 자세로 손을 내밀었다. 명자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오른 손을 약간 쳐들었다.

  “저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피에로는 명자의 손등에 입술을 댔다. 까맣게 잊고 있던 결혼기념일이었다. 남편은 소양호 앞에서 청혼을 했었다. 피에로가 문을 밀고 나가자 명자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머리를 뒤로 젖힌 남편의 눈은 반쯤 감긴 상태였다. 무던한 남편이었지만 나쁜 버릇은 술에 취하면 쉽게 잠이 들어버린다는 점이었다. 명자는 남편의 주름진 얼굴을 한참동안 들여다보았다.

                                           
                                                               
                                                                     -끝-
                        
                                                                            - 대한 석유협회보 2007년 12월호에  기고한 작품- 
 
 
 
 
 
 
김은숙   2006-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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