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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의 고민


 

 

  업사원이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 시절이 하수상하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물론 나도 남들처럼 서류를 넣은 대기업체가 있었고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학원에 등록을 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내겐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남이 가니까 나도 가자는 식으로 다니던 대학이었다. 대학을 나와서 요행을 바랬으니 마음의 자세부터 틀려먹었다고 얘기하는 게 옳을 것 같다. 반성을 거듭한 끝에 내 변변한 실력을 탓하지 않고 받아줄 수 있는 곳, 즉 영업직을 선택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영업직은 특성상 오래 머무는 곳이 못 되니 관문은 넓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 그런 판단은 오해였다. 15명을 뽑는데 무려 70여명이나 지원을 했다. 입사 시험의 마지막 관문인 면접시험 때의 질문은 의외로 간단했다.

“서군은 왜 영업을 선택했나?”

“어머니께 효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럴듯한 답을 찾다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과장 명패답게 기름진 턱을 가진 면접관은 긍정적인 웃음을 보였다.

M 제약회사에 입사를 하게 된 나는 곧바로 교육을 받게 되었다. 석 달 간의 교육은 나름 재미가 있었다. 외부에서 초빙된 강사도 있었는데 강사진들은 거의 유머와 재치를 겸비하고 있었다.

간혹 오락시간을 갖기도 했는데 장기자랑 시간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준비한 장기는 썰렁한 농담에 지나지 않았지만 동료들은 어금니까지 드러나도록 웃어주었다. 진한 동지애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고 즐거웠던 석 달이었다.

교육을 끝마치고 영업부에 배치되었던 날 아침, 나는 거울 앞에 서서 앵무새처럼 말을 반복했다. 안녕하십니까. M제약회사의 서은철입니다. 그날부터 나는 출근부 도장은 회사에서 찍었고 11시 쯤 되어서 약국으로 출근을 했다.

약국 방문 첫날, 까만 가방을 손에 든 채 유리문 앞에 서는데 호흡이 탁 막히는 것 같았다. 심호흡을 하고서 겨우 문을 밀었다. 컴퓨터를 쳐다보고 있던 남자가 일어서자마자 회사와 약을 소개하는데 마치 턱이 빠진 것처럼 덜거덕 거렸다. 말을 끝낸 나는 약사의 묘한 표정 때문에 오줌을 지린 사람처럼 엉거주춤 서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조제실 뒤쪽에서 흰색 가운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말하자면 종업원을 약사로 착각했던 것이다.

약국에 손님이 있는 경우에는 조용히 한쪽 구석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허나 긴 시간의 기다림 끝에도 결실이 없는 경우가 흔했다.

때로는 빈 주문장을 들고 회사를 들러야 할 경우도 있었다. 민망함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는 회사 근처를 배회하곤 했다. 역시 한숨을 쏟아내는 동료와 함께 들어가 영업부에 주문서를 제출했다. 주문장을 검토하는 선임 중에 노처녀가 하나 끼어있었는데, 눈 꼬리를 치켜 올리는 화장술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루 이틀 끈기로 버티다보니 내 머릿속의 막대그래프도 점점 자라기 시작했다. 주문장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확신도 생겼고 일에 사명감도 갖게 되었다. 영업사원이 없으면 제약회사 무너진다는 사명감이랄까. 어쨌든 나는 회사에서 촉망받는 영업사원이 된 것이다.

솔직히 한껏 차려입고 머리에 살짝 무스까지 바른 다음 집을 나서면 뭇사람들의 시선이 얼굴을 간질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애인이 없었다. 간혹 소개를 받기도 했으나 내 맘에 들지 않는 여자는 영업직이어도 좋다고 했지만 내 맘에 드는 여자는 영업직을 못마땅해 했다. 나로선 대단한 긍지를 갖고 있는 직업이었기 때문에 오기가 생겼다. 인위적인 만남에 혐오감을 느낀 나는 꼭 연애결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오월의 햇살은 회사 철망에 기어오른 장미의 꽃잎을 터트리게 하고 있었다. 장미 덩굴을 따라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고 있을 때 내게는 죽마고우이며 대학 동기이기도 한 찬걸이 녀석이 전화를 해왔다.

“야,뚝철아. 내가 왜 전화를 때렸는지 맞춰봐라.”

녀석은 다짜고짜 그렇게 말했다.

“짜식이 꼭 이름을 갖고 장난을 쳐요. 하는 짓 보니까 신통찮을 것 같은데 그냥 결론이나 말씀하시지.”

“쨔샤가 남의 성의를 무시한다니깐. 그럼 관두랴?”

돈 꿔 달라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니 밑져 봐야 본전이었다. 뚝철이는 뚝심이 없으면 영업직을 어떻게 버티어 나가겠느냐고 하며 녀석이 일부러 내게 붙여준 별명이었다.

“은철아, 이번에는 결단코 노총각 신세를 면하게 해주마.”

나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사무실을 슬쩍 휘둘러보았다. 춘곤증에 시달리는지 대부분 풀린 눈이었고 더러 하품을 했다.

“쯧쯧. 쓸데없는 짓을...”

바쁘다는 소리만 해대는 나를 늘 동정하는 눈치더니 또 일을 꾸민 모양이었다. 나는 뭉쳐진 신문지처럼 얼굴을 구겼다. 건너편 빌딩의 피뢰침에 걸린 구름 때문에 울타리의 장미도 우중충해졌다. 찬걸이 부연설명을 하느라 계속 주절댔다.

“야. 내가 프리선언을 했다는 거, 너만 모르냐?”

“어허... 중이 제 머리 깎아봐야 다시 이발소에 갈 수밖에 없다니깐 그러네.”

“남들이 배꼽을 쥐더라도 내 손으로 깎을 거야. 전화 끊는다.”

“야!야!”

녀석이 다급히 소리쳤다. 나는 휴대폰 앞면을 밀어내리기 위해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다가 휴대폰에 다시 귀를 댔다.

“그래. 언제냐?”

찬걸이 날짜와 바닷가를 얘기했고 나는 다시 화단과 장미 울타리를 바라보았다. 눈이 부실만큼 화창한 봄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제 막 여름으로 접어드는 날씨인데 피서를 떠나는 무리들도 있었다. 중복 무렵의 해변처럼 터미널이 붐벼서 아는 얼굴을 찾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인파들에게 휩쓸리는 것처럼 이리저리 헤매는데 바로 앞에서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었다. 머리 스타일이 확 바뀐 찬걸이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 녀석 뒤에 서 있던 여자들이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녀석이 내 표정을 보더니 한쪽 눈을 찡긋거리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보였다.

“은철오빠 안녕하세요?”

경애가 콧등을 찡그리며 웃어 보였다. 경애와 찬걸은 캠퍼스커플이어서 친숙한 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경애 옆의 갈색 머리를 늘어뜨린 아가씨는 몸이 통통하고 평범한 복장이었다.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웃어야만 했다. 내 마음을 간파한 경애가 눈을 흘기더니 나와 그 아가씨를 마주 세웠다.

“두 분 통성명이나 하세요.”

“서은철입니다.”

“소은혜에요.”

“서은혜?”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경애가 나섰다.

“소에요. 소.”

“아...소. 아무튼 반갑습니다.”

일부러 싹싹하게 말했다.

“반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소양은 한국을 대표하는 은행에 근무하심.”

영업사원이 꼭 피해야만 할 게 있다면 선입견이었다. 오! 라는 감탄사는 흘러나오지 않았지만 내 입술의 모양새는 그랬다. 그녀는 나를 보면서 배시시 웃었다. 얼굴에 화장품의 흔적이 거의 없어서 오히려 깔끔하게 느껴졌다.

“유능한 영업사원이라고 들었습니다.”

창가에 앉은 그녀가 나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나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저 죽어라하고 노력을 합니다만 유능하다는 소리는 아직 못 듣습니다.”

솔직히 영업사원들은 겸손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겸손한 척하는 것은 나를 홍보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그녀는 진지한 표정이었고 대화를 해보니 역시 상당한 수준이었다.

나는 머리칼에 무스만 잔뜩 쳐 발랐지 머릿속은 공처럼 비어있는 놈이었다. 30년 사는 동안 교과서 외에 읽은 책이 손가락으로 세어도 충분할 정도이니 말이다. 아마 영업사원이 아니었다면 말까지 더듬거렸을 것이다. 조금 열린 창사이로 바람이 들어왔다. 나부끼던 그녀의 갈색 머리카락이 내 얼굴을 살짝 건드린 다음 스르르 흘러내렸다.

광활한 모래밭은 사래긴 밭처럼 끝이 좁아 보였다. 한 무리의 청년들이 한쪽에서 족구를 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물장구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더러 옷을 입은 채 바다에 뛰어드는 청년들이 있었다. 하지만 수영하기에는 이른 때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다 가장자리에서 놀았다.

경애가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더니 밀려오는 파도를 밟았다. 마치 고무줄 밟기를 하는 것 같았다. 찬걸도 물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나를 힐끔 보더니 운동화를 벗고 머뭇거렸다. 그 곳의 모래는 채로 친 것처럼 고와서 촉감이 그만이었다.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자 긴 호리병 같은 다리가 드러났다. 그녀는 양말을 신은 채 물속으로 들어가더니 내가 쳐다보자 얼굴을 붉혔다. 그녀의 양말은 금방 검게 변했다.

나는 계속 의심의 눈초리로 그녀의 발을 좇았다. 어쩌면 교통사고로 발가락 일부가 뭉개졌거나 아니면 발가락이 기형일 수도 있었다. 갑자기 그녀의 조건이 빛 좋은 개살구처럼 느껴졌다. 내 기분은 갈등 때문에 천당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찬걸이와 경애는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시침을 떼는 것 같았다. 때문에 그들과 어울리기 싫어졌다. 나는 지루하고 답답해서 시계를 들여다보곤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모래 바닥을 뛰어다니는 그녀의 밝은 표정이었다. 무거워진 상태에서도 양말은 절대 벗겨지지 않았다. 양말의 목이 짧아서 마치 끈 없는 스니커즈를 신은 것 같았다.

빠졌던 바닷물이 서서히 밀려오기 시작했다. 갯비린내를 파도가 실어왔다. 경애가 돌아가야겠다는 말을 끄집어내자 그녀가 먼저 세면장으로 달려갔다. 나는 그녀가 양말을 벗는 걸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뒤따라갔다. 그것 또한 영업사원의 근성이었다. 몸을 구부리고 발을 씻던 그녀가 애처로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조심조심 양말을 벗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등을 구부리고서 발을 씻는 척 했다. 그녀의 어깨 사이로 곁눈질한 발은 하얗고 갸름하였으며 전혀 이상이 없었다. 나는 웃음 띤 얼굴로 군인처럼 씩씩하게 말했다.

“저희 회사에서 발톱 무좀약을 또 만들어 냈죠. 부작용이 전혀 없는 약입니다.”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은혜씨의 발은 제가 평생 책임지겠습니다.”

 

                                        -월간 안경계에 기고한 작품-

 

김은숙   2008-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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