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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네는 독이 있다


 





                   


 

   방안은 침침했다. 소나기가 지나갈 모양이었다. 벽과 벽이 직각으로 맞대어진 틈에 앉은 인자의 얼굴도 날씨만큼이나 어두웠다. 세운 무릎에 깍지 낀 두 손을 얹은 채 입을 다물고 있는 인자는 눈만 계속 깜빡거리고 있었다. 깍지 낀 손을 빼내어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다 말고 인자는 손을 둥글게 오므렸다. 자칫 흘려버릴 정도로 미세한 소리가 감지되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어두운 지하실을 가로질러 가는 쥐가 내는 소리 같았다. 그때 바람이라도 살짝 창을 스쳐 지났다면 인자는 그 소리를 놓쳤을 것이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기분 나쁜 그 소리에 인자는 얼굴을 치켜들고 눈동자를 움직였다. 인자의 시선이 벽에 붙어 있는 기다란 물체에 고정되었다. 마디마디 제각각 움직이게 연결된 몸에 생선의 가시 같은 발이 무수히 붙어있는 그것은 틀림없는 지네였다. 구부러진 길을 가듯 몸을 이리저리 틀며 벽을 거슬러 올라가는 지네를 보자 어릴 적 지네에게 물린 적이 있던 인자는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쥐가 난 것처럼 다리가 뻣뻣해졌다. 이삼 초 후 인자는 본능적으로 옆에 놓여 있던 월간지를 집어들고서 일어섰다.

지네도 ‘ㄹ’ 자로 몸을 구부린 채 멈춰 섰다. 금방 인자의 목을 휘감아 버릴 것 같은 자세였다. 인자는 지네의 반들거리는 까만 눈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날카로운 갈고리 입을 노려보면서 조심스레 한 발짝을 옮겼다. 지네는 사정거리 안에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한 듯 움직이지 않고 입만 움직였다. 인자는 월간지로 지네의 몸을 덮쳐서 있는 힘을 다해 눌렀다. ‘찍’ 소리가 나자 안도의 한숨을 쉬며 벽에서 책을 떼었다.

지네가 방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몸은 종잇장처럼 납작해 졌지만 다리는 아직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인자는 버둥거리는 지네의 다리를 바라보면서 잠시 쾌감에 젖었다. 쥐덫에 걸린 쥐를 물 속에 담갔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인자는 지네를 비닐봉지에 담고 꼭꼭 묶어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어느새 밖은 밤처럼 깜깜했다. 소용돌이치는 바람 소리와 함께 빛이 번쩍 허공에 날카로운 선을 그었다. 뒤이어 쿠르렁 소리가 났다. 비가 좍좍 쏟아지자 인자는 창문을 닫으려다가 방충망과 창틀이 맞지 않은 걸 발견했다. 뾰쪽한 역세모꼴의 그 틈으로 지네가 들어왔으리라는 생각이 들자 인자는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일론이 섞인 스웨터를 벗을 때처럼 찌릿찌릿한 정전기가 온몸을 훑는 느낌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인자는 화장실로 부리나케 들어가서 말간 물이 올라올 때까지 토악질을 했다.

눈에 맺힌 물기를 닦으면서 다시 벽에 기대앉았다. 지네를 죽였다는 게 후회가 되었다. 물린 다음 오랫동안 방치해서 독이 온 몸에 퍼져 죽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빗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있었다.

창문이 밝은 빛으로 바뀌자 인자는 베란다 쪽으로 나가 보았다. 비가 그쳐 있었다. 인자는 지네를 버렸던 휴지통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일회용 봉지를 열고서  지네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정교하게 이어진 마디마디의 몸뚱이었지만 무척 흉물스러워 보였다. 다시 속이 메슥거려서 인자는 입을 틀어막으며 반밖에 차지 않은 휴지통을 비웠다. 인자는 쓰레기 봉지를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옆집 여자가 마당을 쓸다가 일어서서 인자를 쳐다보았다. 쳐다보기 어색해서 인자는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 빗방울이 맺혀있는 화단의 전나무를 바라보았다. 자그마한 그 나무 뿌리 밑에서 지네가 살았을 것 같았다.

“어제 어디 갔었어요?”

별안간 묻는 말에 인자는 놀라 난간을 움켜쥐었다. 요즘은 작은 일에도 과민 반응을 일으키기 일쑤였다. 

“아,아뇨, 집에 있었어요.”

“이불을 담에 걸쳐놓고서 열 시가 넘었는데도 걷어 가지 않아서요. 남편이 없으면 매사가 그래요. 나도 한때 그랬으니까......”

그 여자는 인자를 늘 긍정적으로 대했다.

“아-”

머쓱해진 인자는 입을 벌려 말을 하려다 말고 담 쪽으로 갔다.

“저어- 방에 지네가 있었어요.”

“지네요?”

여자는 빗자루를 팽개치고 뒤뚝거리며 담 쪽으로 다가왔다. 야트막한 담이었지만 여자의 얼굴만 담 위로 솟아올랐다. 인자는 쓰레기 봉지를 끌러서 지네를 담았던 비닐 봉지를 꺼냈다.

“이것 좀 보세요.”

봉지를 든 인자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지네의 발이 아직도 간헐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어머, 아직 살아있네. 끔찍해라.”

여자가 진저리치는 시늉을 했다. 봉지 안을 들여다보던 여자가 인자에게로 눈을 돌렸다.

“아니 얼굴이 왜 그래요? 영 안색이 좋지 않네.”

“예? 지네 때문에... 놀라서요.”

더듬거리며 대답을 하는 인자를 빤히 바라보던 여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참 내 정신 좀 봐.” 

여자가 슬리퍼를 끌고 계단을 올라가더니 요를 안고 나왔다. 인자가 남편과 함께 깔고 자던 요였다. 인자는 요를 받아들고 허덕거리며 계단을 올라왔다.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되어가던 인자에게 찾아온 것은 속이 미식거리는 증세와 구토였다. 임신이 틀림없었다. 인자는 거실에 요를 펴놓고 누워서 눈을 감았다. 다시금 실루엣처럼 남자의 알몸이 떠올랐다.

“야비한 자식!”

인자는 중얼거리며 이를 악물었다. 남자들과 술을 마신 다음날까지의 상황이 인자의 뇌리를 다시금 스쳤다.




술집에서 인자는 연숙과 마주 앉아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셨다. 기분이 알딸딸해진 인자가 반쯤 남은 잔을 탁자에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사는 게 재미없어.”

중얼거리는 인자를 보며 연숙이 눈을 흘겼다.

“내가 사는 방법을 바꾸라고 했잖아.”

볼을 우물거려 만든 연기 덩어리를 재떨이에 뱉어내던 연숙이 소리를 높였다.  인자는 이마를 찡그렸다 펴면서 소파 뒤로 몸을 젖혔다. 칸막이 위의 꼬인 전깃줄에 붙은 알사탕만한 전구가 일정하게 깜빡거리는 걸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젖었다. 비 오는 날이나 우울한 날 차를 함께 마시고 두어 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차를 마셔 주면 술을 마시고 싶어 할 것이고 술을 마셔 주면 여관으로 가자고 할 것이 뻔했다. 그때 남자의 목소리가 인자의 뒷목덜미를 타고 넘어왔다.

“아가씨들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세요?”

연숙이 깔깔대며 웃었고 인자는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을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의 얼굴은 코가 절반쯤 차지하고 있었다. 검은 테 안경 밑에 찰흙으로 대충 빚어 붙인 것 같은 모양의 코였다. 코주부가 연상되는 얼굴이었다.

“아가씨, 왜 웃어?”

코주부가 그 말을 하며 연숙 옆에 슬그머니 앉았다.

“니네들, 누님을 몰라봐?”

연숙이 담배를 눌러 끄면서 다짜고짜 반말을 했다. 코주부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히쭉 웃었다.

“비듬 떨어진다구.”

연숙이 일부러 혀 꼬부라진 소리를 냈다.

“누님 한 잔만.”

코주부가 두 손으로 빈 잔을 내밀었다. 조금 있자 청바지에 폴라티를 입은 남자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와 인자 옆에 앉았다. 인자는 얼굴이 길쭉한 남자를 한참 쳐다보았다. 매부리코인 그 남자는 눈이 작아서 좀 냉정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 남자는 코주부가 지껄이는 동안 내내 말이 없었다. 두 사람 다 서른 한둘 정도 되어 보였다.

“이 즐거운 밤에 통성명을 하는 건 유치할 것 같고... 자 한잔씩 죽 마십시다. 술값은 제가 부담할 테니까요.”

“좋아, 좋아.”

씩 웃던 연숙이 인자에게 한쪽 눈을 찡그려 보였다. 연숙의 얼굴은 눈 주위까지 붉은 색이 번져있었지만 취한 상태는 아니었다. 연숙은 소주 두 병을 마시고도 인자를 챙길 정도였다. 

“누님은 글래머야.”

코주부가 연숙의 허리를 껴안으며 말했다. 연숙은 코주부의 코를 주물럭거렸다.

“근데 누님, 이거 가짜지?”

코주부가 연숙의 가슴을 슬쩍 만졌다.

“미쳤어? 오리지날이야.”

연숙이 입을 비쭉 내밀었다. 평소 같았다면 인자는 가겠다고 일어섰을 것이다.

“유방 확대 수술은 남편을 위해서 할까요. 애인을 위해서 할까요. 흐흐흐...”

코주부가 입에 묻은 맥주 거품을 닦으며 히죽거렸다.

“애인을 위해서 하는 거지 뭐.”

오징어를 찢어 코주부의 입에 밀어 넣으며 연숙이 대꾸했다.  

“당근이지. 맞췄으니까 가득 한 잔 받아.”

코주부가 오징어를 우물거리며 연숙의 잔에 맥주를 부었다. 거품이 탁자로 흘러내리자 코주부는 재빨리 입술을 대고 빨았다. 코주부의 목을 타고 흘러내린 맥주가 열린 남방 사이로 구불구불 솟아 나온 털에 방울방울 맺혔다. 민망한 인자는 얼굴을 돌리다가 매부리코와 시선이 마주쳤다. 안색에 변화가 없는 매부리코를 보면서 인자는 천천히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매부리코가 맥주를 부으면 인자는 잔을 꺾지도 않고 죽 들이켰다.  

“그럼 이쁜이 수술은 누구를 위해서 할까요?”

질문을 던진 코주부가 코를 벌름거리며 인자를 바라보았다.

“그것도 몰라? 누님은 치이...애인 때문에 하는 거지. ”

자신의 물음에 대답을 하던 코주부가 인자의 뺨에 손을 갖다댔다. 인자는 화를 벌컥 내며 코주부의 손을 밀쳐냈다.

“어머, 이 누님은 요조숙녀인가 봐.”

코주부가 꾸민 목소리로 말하더니 낄낄거렸다. 코주부가 연숙을 끌어안고 소곤거릴 때 매부리코가 인자에게 말을 걸어왔다. 매부리코는 메모지를 건네주며 친구 때문에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인자가 묻지도 않았는데 매부리코는 자기 이름을 말했다. 메모지에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일공팔오. 인자가 그렇게 읽자 매부리코는 웃으면서 ‘십팔오’라고 읽으면 외우기 쉽다고 했다. 그럴듯한 소리였다. 인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진 불빛아래서 빈 병이 어른거렸다.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몸이 무거웠다. 인자는 겨우 탁자를 짚고 일어섰다.

“누님, 잠깐만.”

코주부가 어깨를 잡으면서 그렇게 말했지만 인자는 뿌리치고 술집에서 나와 버렸다. 코팅 유리를 통과한 불빛이 엷게 깔려있는 골목길을 인자는 더듬어 나갔다. 휘청거리며 택시를 잡으려고 도로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누군가가 인자의 어깨를 붙잡았다. 인자는 다리에 쥐난 사람처럼 꼼짝 못하고 섰다. 매부리코였다.

“술에 취하신 것 같다고 친구가 바래드리라고 했어요.”

인자는 얼굴을 돌려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매부리코를 노려보았다.

“됐어요.”

그때 택시가 그들 앞에 섰다. 인자가 택시에 타자 남자도 재빠르게 올라탔다. 택시 기사 때문에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생각 끝에 인자가 한 정거장 전에 내렸지만  남자도 따라 내렸다. 시계를 보니 한시가 다 되어 있었고 오가는 사람들도 몇 되지 않았다. 남자가 바래다주겠다고 했지만 인자는 화를 벌컥 냈다. 남자는 인자를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인자는 남자의 냉랭한 표정을 보고싶지 않아 시선을 길바닥에 떨구었다. 가로등과 가로등 중간에 선 남자에겐 두 개의 그림자가 매달려 있었다. 인자는 그 그림자를 보면서 뒷걸음질치다 재빠르게 돌아섰다. 뒤를 돌아보니 남자가 택시를 타고 있었다. 인자는 망설이다 골목길로 들어섰다. 

골목길의 가로등은 몇 개 되지 않았다. 인적이 없어서 섬뜩함마저 감돌았다.  어쩌다 불 켜진 집이 보이면 반갑기도 했다. 불이 꺼진 집 옆을 지날 때는 어둠이 너무 깊어서 허공을 딛는 것 같았다. 취한 상태에서의 밤길은 푹 꺼지기도 했고 불쑥 올라오기도 했다. 인자는 몇 번이나 헛발을 놓아 비틀거렸다.

좀 올라가자 오른쪽으로 여관이 손님을 기다리느라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인자의 집에서 거기까지가 약 오 분 정도의 거리밖에 안될 듯싶었다. 주택단지가 즐비한 그곳에 어떻게 여관이 들어설 수 있었는지 의아했다. 어쩌면 익명성이 보장되는 곳이 대도시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인자는 막 여관 앞을 지나치고 가로수 그늘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누님!”

손목을 잡힌 채 인자는 털썩 주저앉았다. 무어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놀라지 마세요. 저예요.”

매부리코가 귀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소곤거렸다.

“누님이 얼마나 외로워 보였는지 아세요?”

남자가 인자 앞으로 바짝 다가서더니 미소를 지었다. 남자에게서 나는 냄새가 야릇하게 느껴졌다. 

“잘못 봤어요.”

인자는 남자의 가슴을 떠밀고 몇 발짝 내디뎠다. 남자가 인자의 손목을 잡아채 끌어안았다. 인자가 몸을 빼려는 자세를 취하자 남자는 인자 엉덩이를 누르고 있는 두 손의 힘을 가중시켰다. 바지를 밀고 솟아오른 남자의 성기는 갑각류처럼 딱딱했다. 진땀이 나면서 인자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남자는 인자를 여관 문 안쪽으로 떠밀었다.

여관방에 들어서자 인자는 술기운이 확 가셨다. 인자는 침대와 문 뒤쪽 공간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울먹거리는 인자의 상의를 남자가 재빨리 뒤집어 벗겼다. 바닥에 눕히고 남자가 앞니로 유두를 살짝 깨물면서 혀끝으로 간질였다. 인자는 맥박이 차츰 빨라졌다.

남자의 혀가 인자의 몸 구석구석을 지나갔다. 거의 소리를 내지 않고 기어 다니는 다지류의 발처럼 닿을 듯 말 듯한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남자가 허벅지를 밀착하더니 이제 막 열릴 준비를 하고 있던 인자의 몸에 다급하게 자신의 몸을 밀어 넣었다.

몸 깊은 곳이 나무처럼 단단한 뿌리와 부딪자 인자는 움찔했다. 아찔한 통증과 쾌감. 마치 허벅지를 지네에 물렸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인자의 뇌리에 지네가 떠오르고 부르르 떨렸다. 남자의 몸이 리듬을 타듯 움직이기 시작하자 인자의 온 몸에 소름이 번졌다. 성적흥분이 되었을 때 인자만이 보이는 특이한 현상이었다.

잠시 후 널브러져 있던 인자는 눈을떴다. 어슴푸레한 그곳은 낯선 공간이었다. 인자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침대에서 내려서서 바닥에 뒤집어진 채 팽개쳐져있던 팬티를 집어들었다. 순간 매부리코가 인자의 팬티를 낚아챘다.

“싫어. 한번만 더...”

매부리코가 인자를 침대에 눕힌 채 타액처럼 끈끈한 목소리를 귀에 불어넣었다.  어쩌면 인자는 공모자인 셈이었다. 남자는 아이스크림을 핥듯 천천히 인자의 속살을 핥았다. 인자는 다시 눈을 감으며 남자가 노련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는 남자가 서두르지 않았다. 벽을 거슬러 오르던 지네처럼 남자의 뿌리는 천천히 들어왔다 천천히 나가는 걸 반복했다. 하지만 인자의 호흡이 가빠지면서 그의 동작은 매우 거칠고 빨라졌다.  매번  바람 빠진 풍선이 되어버리는 남편과는 비교가 안되는 경험이었다. 

관계가 끝나자 남자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인자는 침대에 누워서 매부리코의 몸매를 훑어보았다. 남자의 몸은 방의 방안에 고인 짙은 어둠 때문에 청동으로 빚은 조각 같았다. 창을 통해 들어 온 엷은 가로등 빛이 유연한 몸의 선을 따라 흘렀다. 몸을 곧추 세우고 인자를 노려보던 지네처럼 남자의 허리는 가늘고 길었다.  

주섬주섬 속옷을 주워 입던 남자가 불을 켰다. 인자는 이불로 몸을 가렸다.

“먼저 갈께요.”

약간 무뚝뚝한 목소리로 매부리코가 말했다. 인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매부리코는 소리나게 문을 닫고 가 버렸다.

인자는 매부리코가 나가자 주머니에 든 쪽지를 꺼내 보았다. 남자가 적어 준 전화번호가 쓰여 있었다. 악필이었다. 특히 8자는 허리가 꼬부라진 개미 같았다. 인자는 번호를 몇 번 중얼거려 보았다. 1085를 남자가 가르쳐준 대로 외워 보았다. 십팔오. 국 번호가 똑같은 글자이기 때문에 의외로 쉽게 외울 수 있었다. 인자는 종이를 구겨서 휴지통에 넣고 옷을 하나씩 입었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몸이 나른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다음날 아침 인자는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일찌감치 전화기 앞에 앉았다. 출근하기 전에 전화를 받으면 아내가 이상하게 생각할 거예요. 지하철에서는 전파의 방해를 받아서 말이 잘 들리지 않아요. 출근 한 삼십 분 후쯤 핸드폰을 켜두고 화장실에 있을 게요. 만약 사무실에서 받게 되면 친구인 것처럼 반말을 할 거에요. 그래도 괜찮죠? 매부리코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리고 웃음 띤 얼굴이 떠올랐다. 인자는 두근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시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인자는 들었던 수화기를 놓았다. 아무래도 집에서 전화를 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남편은 언젠가 불륜 관계를 전화 발신지 추적으로 잡은 건수가 가장 많을 거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인자는 겉옷을 입었다.

슈퍼마켓의 차양 밑에 붙어 있는 공중전화기를 그냥 지나쳤다. 인자를 볼 때마다 꾸벅꾸벅 인사를 하던 부부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것 같아서였다. 은행으로 갈까하다 아는 얼굴과 마주칠 것 같아 정류장으로 갔다. 마침 전화 부스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구십니까?”

전화 속의 남자는 인자에게 되물었다.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침이면 대부분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라앉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자는 남자의 이름을 댔다. 그런데 남자는 이상한 여자가 아니냐는 듯한 말투였다. 인자는 이번에는 전화번호를 또박또박 댔다. 그러자 남자는 그것은 자신이 쓰는 핸드폰의 번호이고 삼 년 동안 써 왔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남자는 아침부터 그런 전화를 받은 것이 기분 나쁜지 인자가 변명을 하려는 순간 수화기에서 뚜뚜 거리는 소리가 났다.

황당했다. 임대두란 이름조차도 가짜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호흡이 탁 막혔다. 인자가 웃으며 머리가 오히려 작은 편인데요 라고 말하자 남자는 머리가 큰 사람이 공부를 잘한다 해서 아버지가 일부러 그런 이름을 만들어 주었다는 말을 했다. 웃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하던 남자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신이 커피 자판기에서 한번 쓰여 지고 쓰레기 통으로 쳐 박히는 종이컵과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가 꺾이면서 쓰러질 것 같아 인자는 공중전화 받침대로 쓰이는 선반을 움켜쥐었다. 인자는 마치 공중전화 부스에 갇힌 듯 꼼짝못하고 한참동안 서 있었다.

남자는 1085라는 번호를 말하면서 ‘십팔오’라고 발음했다. 아니 ‘씹팔어’라고 말했었다. 분명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남자에게 겁탈 당한 것 같았다. 인자는 전화 부스의 유리벽을 기대고 앉아 숨죽여 울다가 누군가가 전화 부스 쪽으로 가까이 오자 가까스로 일어났다. 집으로 오는 동안 너덧 번이나 가로수에 기대어 서 있어야 했다.




인자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박고 있던 의사가 얼굴을 쳐들었다. 의사를 쳐다보던 인자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가 점점 창백해졌다. 팔다리가 매어있던 인자가 몸부림을 치자 하반신만 들썩거릴 뿐이었다. 매부리코는 갈고리처럼 생긴 수술 도구를 들고 비죽이 웃더니 자신이 뿌린 씨를 찾아가야겠다고 말했다. 

갈고리에 걸려 무엇인가가 끌려나왔다. 새끼줄처럼 한없이 이어져 나오는 이상한 물체가 꿈틀대더니 중간 중간이 톡 톡 톡 부러지면서 수십 마리의 지네가 되었다. 크기로 봐서는 유충이었다. 지네가 까맣게 몰려들자 인자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입을 뻐끔거리며 허우적대다 간신히 일어났다.

누워있다 잠깐 잠이 든 모양이었다. 몇 시간 전에 죽인 지네 때문에 가위에 눌린 것 같았다. 마음을 진정 시키느라 요 위에 앉아 가슴을 문질렀다.

달력을 쳐다봤다. 인자는 날짜를 훑어보며 석 달이 거의 되어간다는 생각을 했다. 따져보면 남자의 씨앗은 자신의 몸으로부터 영양을 공급받고 자라는 기생충일 뿐이었다. 낙태수술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인자로서는 수술대에 오르는 것조차 부담이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남편이 온다는 것을 깜빡했다는 생각이 들어 인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남편이 올 시간이 이미 지나 있었다. 시계에서 눈을 떼는데 전화벨이 날카롭게 울렸다.

“왜 그렇게 늦게 받니? 요즘 너 이상해진 것 같다. 전화도 않고...”

연숙이었다. 수화기 속에서 연숙이 연거푸 지껄였다. 

“너 무슨 일 있니?”

인자가 대답할 말을 궁리하고 있을 때 캐어묻듯 연숙이 다시 말했다.

“아 아냐. 그냥..몸이 좀 아파...”

더듬거리는 인자의 수화기를 잡은 손이 땀으로 끈적거렸다.

“별일 아니지?”

“무슨 소리야?”

연숙의 물음이 집요하게 느껴져 인자는 일부러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연숙이 몸조리 잘하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인자는 일부러 수화기를 쾅 소리가 나도록 놓았다. 조금만 주의를 했더라면...요를 개어 장롱에 넣고 거실을 치우며 중얼거렸다.  어지럽고 입이 바짝 말랐다. 인자는 찌개냄비를 가스 불에 올리고 물을 연거푸 마셨다. 

“비 좀 왔다고 길이 밀리네. 낙지가 싸더라구. 물 좋은 게도 많고...”

남편이 손에 들었던 비닐봉지를 그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서 장을 봐 온 모양이었다. 인자는 남편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당신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아파?”

옷을 벗다 말고 남편이 인자를 쳐다보았다. 굳어진 얼굴을 풀어 겨우 미소를 띄운 인자는 도리질을 하고 얼른 얼굴을 돌렸다.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주방으로 간 인자는 낙지 다리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넣고 싹싹 훑어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칼을 집어든 순간 낙지는 도마 위를 미끄러져 싱크대 구멍 쪽으로 갔다. 인자가 낙지의 머리를 붙들고 세차게 잡아당기자 굼실거리던 다리가 인자의 손등을 칭칭 감았다. 다리에 붙은 빨판의 강한 흡입력에 인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낙지를 떼어냈다.  

“다음 발령 때는 올라오게 될 거야. 걱정하지마. 알았지?”

숟가락을 들다말고 말하는 남편의 눈을 피하며 인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인자는 꽃게 찌개를 남편 쪽으로 밀었다. 비린내가 코로 스며들면서 속이 메슥거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속은 가라앉지 않고 더욱 울렁거렸다. 아무래도 토할 것 같아 일어섰다.

“초고추장을 안 놓았네.”

인자는 중얼거리면서 냉장고 쪽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초고추장 병과 소주를 꺼내놓고 욕탕으로 갔다. 소리가 날까봐서 수건으로 입을 막고 토악질을 했다. 인자가 눈 가장자리와 입술을 닦고 나오자 남편은 소주병 뚜껑을 비틀어 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도 남편과 성 관계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인자는 설거지를 끝낸 다음 욕탕으로 다시 들어갔다. 토사물이 묻어있는 수건을 빨고 걸레를 빨았다. 세숫대야를 엎어 밑바닥까지 닦고 변기 위에 멍하니 앉아있다 욕탕을 나왔다. 방문을 소리 나지 않게 열고 들어가 살그머니 누웠다. 남편이 몸을 더듬자 인자는 앓는 소리를 내며 돌아누웠다.




햇살이 눈부셔서 인자는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걸었다. 인자는 똑바른 길을 따라서 계속 걸었다. 산부인과가 보이면 여의사가 진찰을 하는 곳인가 확인을 했다. 아들을 낳을 때도 여의사를 고집했었다. 약간 허름한 건물 앞에 걸음을 멈췄다. 간판에 쓰인 산부인과라는 글씨의 색깔까지 바래어서 오래된 병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인자의 마음에 의혹이 일었다.

생리가 불규칙한 그녀는 아무래도 그날이 배란일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어머니가 위암으로 돌아 가셨기 때문에 혹 그런 증세일지도 모른다고 인자는 생각했다. 위암과 임신이 비슷한 증세를 보인다는 것을 인자는 대충 알고 있었다. 내과로 갈까하다 망신스러울까봐서 산부인과의 문을 밀었다.

간호사는 얼굴이 벌겋게 달은 인자를 바라보며 의료보험증을 요구했다.인자는 보험증 없이 그냥 진료를 받겠다고 했다. 간호사는 아무 말 없이 차트를 작성했다. 간호사는 인자더러 소변을 받아 오라는 말을 했다.

인자는 화장실에서 오줌을 받으면서 설마 하는 생각을 했다. 하룻밤으로 임신이 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들만 해도 허니문 베이비가 아니었다. 결혼하고 두어 달 뒤에 아들이 들어섰기 때문에 그때는 약간 걱정도 했었다. 인자는 플라스틱 컵에 오줌을 담아 간호사에게 주었다.

여의사는 둥근 의자에 위태롭게 앉아 있는 인자를 보며 약간 웃음 띤 얼굴로 ‘임신입니다’ 라는 말을 했다. 여의사의 목소리가 굵고 억양에 고저 리듬이 없었기 때문에 흡사 그것은 로봇 같은 인조인간에게서 나는 소리 같았다. 인자는 하마터면 의자와 함께 쓰러질 뻔했다. 약간 기우뚱하는 인자에게서 의사는 눈을 떼지 않았다.

“기다리던 아이이기는 하지만 제가 몸이 좋지 않아서... 약을 오랫동안 먹었거든요.”

인자는 등에 진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가까스로 그 말을 했다. 

“무슨 약을 드셨는데요.”

인자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관절 약이라고 얼른 말했다. 의사는 인자의 몸이 상체가 크고 하체가 약하기 때문에 관절을 조심해야 할 거라면서 입술 끝만 살짝 올려 웃었다. 의사는 잠시 무엇을 생각하는 듯 하더니 수술을 빨리 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낙태수술은 하지 않는다는 말에 뜨악해져있던 인자는 의사가 기대고 있는 책상 한쪽에 놓인 묵주를 보고서 천천히 일어났다.

인자는 오는 길에 딴 병원을 들러 수술 날짜를 잡았다. 남자의사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미스 김 남자 친구랑 여행 가 봤어?”

의사의 목소리가 꿈결에서처럼 들렸다. 의사의 말에는 웃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수술대에 누워 인자는 그들이 지껄이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여행은 무슨... 저는 남자랑 자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예쁘게 하려는 간호사의 말투가 인자의 귀를 거슬렀다.

“미스 김 거짓말 할래?”

“아이... 정말예요. 저는 남자랑 한번도 자본 적이 없어요.”

간호사의 호들갑스런 웃음소리에 멀미가 나든 듯 인자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래? 그럼 날 잡아 봐. 내가 짜릿한 경험을 하게 해줄 테니...”

의사가 껄껄 웃었다. 수술도구가 쩔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허벅지 좀 잡아서 쫙 벌려봐. 왜 한눈을 팔고 그래?”

갑자기 의사의 목소리가 퉁명스러워졌다.

“에그머니! 선생님 이게 뭐에요? 지네 아니에요?”

“어! 이게 어디서 나왔지? 새끼인 모양인데...”

“아휴... 깜짝 놀랬네. 아직도 다리가 바들거려요. 한 번 더 밟으세요.”

"응. 병원에서 지네가 다 나오다니...대도시에도 지네가 있나? 밤나무 밑에나 이런 게 흔한데...”

“그러게요.”

“이런 건 딴 사람에게 말하면 안돼. 병원 이미지만 나빠지니까.” 

의사의 목청이 낮아지면서 차츰 아스라해지는 느낌이었다. 인자는 어지럽고 토하고 싶었다. 가슴도 무엇인가가 누르는 듯 답답했다.

“저도...”

간호사가 무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는데 들리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서 심호흡을 하고 싶었다. 그때 모든 소음들이 차단되면서 인자의 몸이 붕 뜨는 느낌이었다.

인자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바깥은 짙은 안개가 끼어있었고 길에는 까만색의 카펫이 깔려있었다. 바람소리를 내는 게 무엇인가 사방을 둘러보다 면사포의 엷은 자락이 앞가슴께로 내려오자 인자는 깜짝 놀랐다. 어느새 인자는 흰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인자는 곧게 뻗은 그 카펫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위를 쳐다보니 놀랍게도 허공에 별이 무수히 박혀있었다. 화톳불을 막대기로 휘저을 때의 불꽃처럼 별은 환하게 빛났다가 희미해지기도 했다.  

무엇인가가 턱을 타고 흘러내려서 가슴을 적셨다. 인자의 얼굴에 닿은 안개가 물이 되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인자는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얼굴을 훔치며 무작정 걸었다. 적요하리만치 조용한 시간이 이어졌다. 드레스 끌리는 소리만 인자의 귀에 들려올 따름이었다.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낯선 곳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었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다. 인자는 드레스자락이 더럽혀질까봐 손으로 잡아 올리면서 사뿐사뿐 걸었다.

별 하나가 하늘을 가르며 떨어지고 있었다. 잠깐 멈춰 서서 인자는 유성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디로 가야할 지 알 것 같았다. 별이 긋고 간 흰 실선을 따라가는 인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올라 있었다.  


                                                           - 끝 -



김은숙   200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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