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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환 (夢幻)


 

                                 


 

트랙터로 논을 갈던 남자는 잠시 논둑에 나와 앉았다. 들길은 자를 대고 선을 죽죽 그은 것 같았다. 트랙터가 지나간 자리는 물이 뒤집어져 불그스름한 빛을 띠었다. 논 사이사이에 보리밭이 끼어있어 황토 빛깔과 푸른빛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보리와 대보둑, 개울의 갈대, 길가 찔레 덩굴의 그림자가 논에 거꾸로 박혀 물살에 따라 움직이곤 했다. 작은 새 서너 마리가 논을 바짝 스쳤다가 날아올랐다.

남자는 가슴에 붙어있는 티셔츠 주머니에 오른쪽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손가락에 딸려 나온 건 담배곽이었다.  남자는 두 손으로 라이터를 감싸며 얼굴을 숙였다. 흑백이 반반씩 섞여있는 머리를 태울 듯 흔들리던 라이터 불이 담배를 찾아갔다. 담배 연기를 힘껏 빨아들이느라 볼이 홀쭉해졌다.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남자의 주름진 얼굴은 무표정했다.

남자의 눈길이 머문 곳에는 아지랑이가 불꽃에서 올라오는 기운처럼 아물거리고 있었다. 저기쯤이었을까. 더듬듯 쳐다보던 남자의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아지랑이 속에서 물방앗간이 출렁대고 있었다. 마당에서 흰 강아지를 안고 서 있던 여자가 남자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팔을 흔들었다. 여자의 팔이 굴절되어 보이고 노란 티셔츠가 물감처럼 번지고 있었다. 흰색치마도 폭이 점점 넓어졌다. 마치 흐르는 물 속에 서있는 것처럼 여자의 온 몸이 일렁거렸다.

남자는 담배를 옆 개울에 던져버리고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가 일어서자마자 방금 보았던 것들은 깡그리 사라져 버렸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봄이면 남자는 가끔씩 이런 환각에 빠졌다 깨어나곤 했다.

종달새 소리가 적막을 깼다. 눈으로 새를 쫓던 남자는 날개 접은 두루미처럼 희고 깨끗하던 스물아홉 살의 여자를 떠올렸다. 뜸부기를 쫓던 강아지와 강아지를 부르던 여자의 모습이 다시금 영상으로 다가왔다.



뜸부기가 논둑에 서서 울고 있었다. 뜸뜸뜸뜸 끌끌끌끌... 뜸부기는 목을 구부릴 때마다 소리를 냈다. 마치 물을 머금었다 뱉는 것 같이 묘한 소리였다. 청년은 무표정한 얼굴로 빨간 꽃잎 같은 벼슬을 달고 있는 새를 바라보았다. 수차 위에 서서 규칙적으로 발을 옮기는 그의 몸은 하늘에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논은 물방앗간에 가깝게 자리잡고 있었다. 새를 쫓다가 눈을 들어 허공을 바라보던 청년이 무심코 방앗간으로 얼굴을 돌렸다. 두어 달 동안 비어 있던 집에 누가 이사를 왔는지 장독대에는 몇 가지 그릇이 놓여 있고 마당가 감나무 밑에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었다. 오토바이의 오른편 손잡이가 햇살에 유난히 번쩍거렸다.

기계 떡방아간이 생긴데다 머지않아 경지 구획정리를 한다는 소문이 있어 살던 이들이 떠나간 상태였다. 한참동안 비어있던 그 집에 들어 온 사람에 대한 호기심에 청년은 수차를 건성으로 밟으면서 방앗간을 둘러보았다.

문이 열려있어 내부가 희미하게 보였다. 네모난 공간으로 하얀색의 무엇인가가 왔다 갔다 했다. 호기심에 청년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수차를 밟으며 그쪽을 뚫어지게 봤다. 그러다 갑자기 여자가 나오는 바람에 수차를 헛디뎌서 청년은 개울로 떨어졌다. ‘풍덩’ 소리에 여자가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청년은 수차 뒤에서 뻘을 뒤집어 쓴 채 몸을 웅크렸다.

여자의 치마 끝에 딸려 나온 강아지가 수차 쪽을 보며 꼬리를 빳빳이 세웠다. 여자는 바람개비 모양의 수차를 신기한 듯 훑어보았다. 청년은 여자의 시선이 수차의 틈까지 비집고 들어오는 것 같아 숨소리를 죽였다. 한참 후 강아지는 꼬리를 내렸고 수차를 바라보던 여자도 몸을 돌렸다.

여자는 천천히 움직여서 장독대와 화단을 둘러보았다. 끈으로 묶은 긴 머리가 여자의 등을 스치면서 흔들리고 있었다. 가냘픈 몸에 하얀 옷을 입은 여자는 땅으로 사뿐히 내려 선 두루미 같았다. 여자는 냄새를 맡던 강아지가 오줌을 누기 위해 엉거주춤한 자세로 엉덩이를 땅에 대자 그 곁에 쭈그려 앉아 먼데를 바라보았다. 여자의 팔과 다리는 무의 속살처럼 희었다. 청년은 수차의 얽힌 나무 틈으로 여자의 움직임을 계속 바라보았다.

여자가 들어가자 그제 서야 몸을 일으킨 청년은 집으로 갔다. 아직 점심 전이라 노모는 밭에서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았다. 도둑질하는 사람처럼 옷을 갈아입는 청년의 가슴은 방망이질 쳤다.

논으로 다시 온 청년은 수차 위에 서서 물방앗간을 훑어보았지만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놀고 있던 강아지가 청년을 쳐다보다 무엇을 보았는지 몸을 돌려 내달리기 시작했다. 닭을 쫓는 강아지의 흰털이 땅에 질질 끌렸다. 청년은 강아지 주둥이에 닿을락 말락 하는 닭의 꽁지를 눈으로 좇았다. 청년이 발을 옮길 때마다 내달리는 두 마리의 짐승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도망치는 닭은 다리가 껑충해서 뛰는 게 어설펐고 강아지는 무척 날쌔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꽁지를 씰룩거리며 도망치는 놈은 닭이 아니었다. 아까부터 논둑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다 다시 목을 구부리곤 하던 뜸부기였다. 사람을 보면 먼 곳에서도 슬금슬금 도망을 치는 그 새의 이름이 궁금해서 노모에게 물어보았던 적이 있었다.

어릴 적 청년이 알고 있는 사물의 이름은 한정되어 있었다. 연장 몇 개와 곡식 몇 가지, 집짐승의 이름은 노모로부터 배웠다. 봉사활동을 하던 대학생들에게 사소한 것들의 이름과 한글을 배웠다. 그는 마을 어른들과는 얘기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  그는 또래와 어울리고 싶어했지만 벙어리라며 그를 무시했기 때문에 혼자 지내야만했다.

사춘기에 들면서 어둠이 자신을 가두어버리는 밀폐된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아랫동네의 회관에서 빌려 온 새농민이라는 잡지를 읽으면서부터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책을 읽으려면 노모의 참견이 심해 코고는 소리를 듣고서야 불을 켜곤 했다. 때로 애정소설을 읽다보면 어느 대목에서 가슴이 벌렁거리기 했는데, 그럴 경우 더 이상 읽지 못하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항상 낡은 책을 접할 수밖에 없었지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일깨워 주었기 때문에 책을 소중하게 여겼다. 읽기에 익숙해진 후에는 노트에 이런저런 생각을 써 보기도 했다. 연필에 침을 발라 쓰던 시절이 떠오르자 청년은 손가락으로 여자와 강아지라는 글자를 땅바닥에 적었다.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간 뜸부기를 쳐다보던 강아지가 주저앉았다. 한참을 뛰었기 때문에 지친 것 같기도 했다. 어느 틈에 왔는지 여자가 강아지를 들어 품에 안았다. 여자는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반바지로 갈아입고 있었다. 뒷모습을 보이던 여자가 수차 쪽으로 몸을 돌리자 일어났던 청년은 하늘 쪽으로 시선을 올렸다. 잠시 후 청년이 여자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여자는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두며 걷고 있었다. 여자가 그림자를 끌면서  방앗간 마당으로 들어섰다.

강아지를 내려놓고 여자는 장독대로 올라갔다. 장독대의 그릇을 한쪽으로 몰아 놓고 물을 뿌려가며 비로 쓸었다. 그릇을 정리한 다음 마당으로 내려온 여자가 강아지와 마주앉았다. 여자는 입을 달싹거리면서 들판 쪽을 손으로 가리키기도 했다.

수차를 밟고있던 청년이 여자를 빤히 쳐다보는데 무엇인가가 울컥 가슴에서 치받쳐 올랐다. 소리에 대한 갈망이었다. 혀를 타고 입술 밖으로 흘러나온 여자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또한 여자를 향해 마음 안에 가두어진 자신의 얘기들을 토해내고 싶었다. 청년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잊어버리고 있었다. 여자가 집으로 들어가자 청년은 그제야 비로소 자신의 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할 일이 없어졌음을 깨달았다. 그의 논에서 옆 논으로 물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들의 벼가 제법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송아지가 풀을 뜯느라 걸음을 멈추자 청년은 지게를 잠깐 내려놓았다. 햇살이 청년의 건강한 팔뚝과 송아지의 잔등에 내려앉았다.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밤꽃의 비릿한 내음과 함께 대보둑을 넘어왔다. 청년의 시선이 둑을 넘고 내를 지나서 희뜩희뜩한 야산으로 옮겨갔다. 땅벌이 귓전에 울음소리를 흘리고 있었지만 먼 산을 바라보는 청년은 눈 한번 깜박이지 않았다.

물방앗간이 제대로 보이는 지점에 이르자 청년은 지게를 진 채 그 자리에 서 버렸다. 방앗간 앞에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었다. 청년은 지게막대로 땅을 짚고 한참 버티고 있다 가까스로 지게를 벗어 세워놓았다.

청년은 소를 끌고서 냇둑에 올랐다. 물방앗간의 뒤가 가깝게 보였다. 굴뚝을 타고 박 넝쿨이 오르려 애쓰고 있었다. 아직은 연두 빛을 띤 아기손바닥만 이파리가 솜털이 부연 줄기에 띄엄띄엄 매달려 있었다. 그는 방앗간이 비스듬히 기운 걸 보고서 그 집의 수명이 다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사람이 살고 있는 한 집이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도 그는 알고 있었다. 대로 엮어진 마름모꼴의 문살에 발라진 창호지의 빛깔이 유난히 희었다.

언덕에서 말뚝을 박다 언뜻 보니 방문이 쭈그리고 앉은 남자의 눈 높이였다. 검지에 침을 발라 창호지에 구멍을 내면 그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문 쪽으로 향하던 청년의 손이 잠깐 멈추었다가 방향을 바꿔서 아직 푸르스름한 빛으로 머물러 있는 박꽃을 땄다.

음머어- 말뚝에 줄을 매어 놓고 청년이 돌아서자 송아지가 울었다. 그 소리에 강아지가 방앗간을 돌아서 쏜살같이 달려왔다. 냇둑 앞에 선 강아지는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못하고 청년과 소를 번갈아 보며 이빨만 드러냈다. 누군가가 와 주기를 기다리는 듯 꼬리에 힘을 주고 버티던 강아지는 잠시 후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더니 가버렸다.

논에 들어간 청년은 논둑의 비료를 뿌리기 시작했다. 곁눈질로 방앗간을 바라보았지만 마당엔 햇살만 가득했다. 비료를 다 뿌린 후 논둑의 풀을 베기 시작할 때까지도 사람의 그림자는커녕 들어갔던 강아지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일을 마친 청년은 냇둑에서 소를 끌고 내려오다 오토바이를 탄 여자의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눈썹 부분이 두드러지게 높아 두 눈에 진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남자의 눈과 마주치자 청년의 볼과 귀 아래 목덜미가 발갛게 변했다. 남자는 얼굴을 돌리는 청년을 바라보며 오토바이로 마당을 한바퀴 돌았다. 들길에 먼지를 풀풀 날리며 멀어져 가는 오토바이를 바라보던 청년은 한숨을 토해냈다.

오후에는 너렁배미 논둑의 콩밭을 맸다. 무성한 풀을 캐 나가자 논둑이 벌건 살을 드러내면서 아직 떡잎이 붙어있는 콩줄기만 논둑에 남았다. 땅에서 올라온 김이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려 먼 곳의 시야는 흐렸다. 들과 방앗간이 출렁거리고 들판엔 눅눅한 기운이 돌았다. 장마가 올 조짐이었다.

청년은 호미질을 하다가 땀에 젖어 몸에 달라붙은 셔츠를 잡아 흔들곤 했다. 차라리 옷을 벗어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아 셔츠를 가슴부근까지 말아 올리던 청년은 재빨리 양팔을 내렸다. 어느 틈에 여자가 양산을 쓰고 마당가에 서 있었다. 여자의 노란 양산과 흰 치마가 마치 무더기의 꽃이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흔들거렸다.



이틀째 장대비가 쏟아졌다. 논을 둘러보러 나온 청년의 장화 속에서는 찌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논에도 수로에도 물이 넘실댔다. 내와 연결된 돌다리 부근에서는 수로의 붉은 물이 내로 흘러 들어가기 위해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청년은 물꼬를 확 터놓고 둑이 약해진 곳이 없나 살펴본 후 몸을 돌려 방앗간을 바라보았다. 방앗간은 측면에서 보니 약간 뒤틀린 상태에서 뒤쪽으로 상당히 기울어져 있었다. 비에 젖은 벽이 거무스레해서 폐허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냇둑을 오르며 쳐다 본 회색 슬레이트 지붕은 그런 대로 쓸만했다.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슬레이트를 올렸기 때문에 집이 더 기울어졌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새 냇물이 불어 있었다. 청년은 얼굴을 돌려 방앗간의 쪽문을 바라보았다. 둥근 문고리가 덜그럭거리며 곧 문이 열릴 것만 같았다. 혹시라도 여자의 남편과 눈이 마주칠까 봐 다시 얼굴을 돌려 황토 빛 냇물을 바라보았다. 한참 쭈그리고 앉아 있던 청년은 일어섰다. 냇둑의 풀은 빗물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비탈진 둑길이 미끄러워 천천히 내려왔다.

비를 흠뻑 맞고 청년이 들어오자 방문이 확 열어 젖혀지며 노모가 상체를 불쑥 내밀었다. 시간이 지체되어 걱정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노모는 들 쪽으로 삿대질을 했다. 그 날 이후 청년은 일주일 가까이 집에서 갇혀 지내다 몸져누웠다. 집안 가득 스며든 습기가 비몽사몽 중인 그의 호흡기를 막아 버리는 것 같았다. 악몽이라도 꾸는 것처럼 청년은 발버둥치다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곤 했다.

청년이 밥을 먹지 않자 노모는 계란을 깨트려 넣은 쌀죽을 끓여 방에 들이밀었다. 청년은 죽을 쳐다보지도 않고 천장만 바라보았다. 노모는 주춤주춤 아들 옆으로 다가와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눈이 쑥 들어간 아들을 바라보는 노모의 눈에 물기가 감돌았다. 노모는 얼굴을 흔들며 물었다.

“아가...어디가 아픈 겨?”

청년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다시 천장으로 눈을 돌렸다. 청년의 가슴속에는 방앗간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들이 침수되고 붉은 혓바닥 같은 물이 방앗간을 날름 삼켜버릴 것 같았다. 여자가 흙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생각이 들자 청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청년은 노모 몰래 마을 정자 근처까지 나가 보았다. 평소에는 방앗간이 성냥갑 크기 정도로 보이는 거리였지만 뿌연 빗줄기에 가려 확실하게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 들이나 하늘이나 방앗간이나 회색빛으로 아른거릴 뿐이었다.

빗줄기가 가늘어진 틈을 타서 청년은 비옷을 챙겨 입고 장화를 신었다. 청년이 헛간으로 가서 삽을 들자 노모는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노모는 아들이 무엇에 고집이 나 있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차츰 들의 푸른색이 드러나며 방앗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뿌연 안개비와 바람 때문에 방앗간이 빨래처럼 나부끼는 듯 보였다. 헐떡거리며 그 앞에 도착했을 때 청년은 마당에 엎드려있는 하얀 물체를 보았다. 청년은 그 자리에 서서 숨을 고르며 물체가 무엇인지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그것은 엎드려 있는 여자였다. 청년은 삽을 그 자리에 팽개쳐버리고 마당으로 뛰어들었다. 여자는 질퍽한 마당에 엎드려 고개도 들지 못했다.

여자의 상체를 끌어안다시피 일으켜 세우고 쳐다보니 엉망이었다. 가위질 자국이 난 머리는 엉켜있었고 옷이 군데군데 찢겨 살이 내다 보였다. 마당 여기저기에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었으며 그 위로 오토바이 바퀴자국이 나 있었다.

여자가 감고 있던 눈을 뜨면서 청년의 눈과 마주쳤다. 물기 어린 까만 눈동자를 보자 잠깐 호흡이 멎는 듯 했다. 아주 오래된 기억이 청년의 뇌리를 박차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당시 마을 어른들에게 둘러싸여있던 노루는 배가 불룩했다.  어른들은 노루가 새끼가 낳으면 키우겠다면서 우리에 가뒀다.  

여남은 살이었던 그는 뒷집의 우리 앞으로 가서 잘게 썬 고구마를 밀어 넣곤했다. 먹이를 받아먹지 않고 빤히 보기만 하던 노루의 눈동자가 어떤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지만 문에 둘둘 감긴 철사 줄을 풀지 못했다. 새끼 낳기를 바라던 노루가 굶어죽자 어른들은 공동 창고 앞마당에서 불을 지피고 노루의 가죽을 벗겼다.

겁먹은 노루의 눈처럼 여자의 눈동자에도 두려움이 담겨있었다. 여자의 까만 수정체를 바라보던 청년은 호흡을 거칠게 들이켰다. 툭 불거진 입술에 묻어있는 피를 닦아주고 여자를 세우려고 허리춤을 들어 올렸다. 여자가 손으로 청년의 팔뚝을 때리면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청년이 여자의 몸에 둘렀던 팔을 풀자 오른손으로 자신의 허리를 몇 번 치더니 입을 달싹거렸다.

“허리가 아파서 꿈쩍할 수가 없어요. 방으로 좀 데려다 주세요.”

여자가 허리를 한 손으로 누르고 다른 손으로 문을 가리켰다. 청년은 조심히 여자를 안아 올렸다. 생각보다 너무나 가벼웠다. 방에 여자를 뉘인 남자는 몸을 일으켰다. 여자는 나가려고 방문 앞에 서 있는 청년의 손을 잡았다.

“여기에 조금만 더 있어요.”

여자는 이 말을 하면서 청년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도록 손짓을 겸했다. 수차에서 수로로 떨어진 청년이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온 것까지도 여자는 알고 있었다. 청년의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울 밖으로 뛰어 나간 강아지가 수로에 빠져 죽을 까봐서 여자는 줄곧 소리쳐 불러들이곤 했다. 청년의 시선은 강아지의 꼬리털을 따라 움직였고 때론 여자의 치맛자락에 매달리기도 했다. 그렇듯 청년의 시선은 소리와는 무관하게 움직이곤 했다. 청년이 방앗간 주위를 배회하는 동안 여자도 문틈이나 흙벽 틈으로 청년을 훔쳐보곤 했다.

여자는 청년의 손을 한사코 놓지 않았다. 손으로 머리맡을 더듬거리던 여자가 청년의 팔을 잡고 두어 번 흔들더니 책상을 가리켰다. 청년은 여자의 손짓을 보면서 쓸 수 있는 도구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을 했다. 책상 앞으로 간 청년이 볼펜과 노트를 집어 들자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몸을 돌려서 엎드린 채 글씨를 썼다.

“당신이 말을 듣지 못한다는 걸 금방 알았어요. 여기 왔던 바로 그날 나는 들판에 버려지기 싫어 도망쳤어요. 도로에 나가서 트럭을 잡아탔거든요. 시내까지는 그렇게 갔는데 버스터미널에서 멍하니 앉아있다 다시 돌아왔어요. 내가 도망가면 남편은 죽을 거예요.”

여자가 쓴 글을 들여다보면서 청년은 눈을 깜박였다. 당신이라는 표현 때문에 청년의 얼굴빛이 잠깐 바뀌었고 잠시 여자의 눈을 피했다.

“오늘 아침 냇둑을 건너가려던 사람이 내게 길을 물었답니다. 내가 잘 모르겠다고 대답을 하는데 웃으며 자꾸 말을 걸었어요. 그 남자가 가자 남편이 머리채를 잡고 마당을 돌았어요.”

청년의 목을 타고 올라온 벌건 기운이 눈 주위까지 번졌다. 청년은 ‘왜요’라고 여자가 쓰던 연필을 잡아채어 썼다.

“남편은 나를 남자들로부터 떼어놓으려 방앗간으로 이사를 왔어요. 남편은 딴 남자가 나를 사랑할까봐 두렵답니다. 처음에 남편은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결혼 삼 년이 되었을 때 싸우다가 겁이 난 내가 잠깐 집을 나갔는데 남편이 자살을 시도했었어요. 그 후로는 남편이 죽을까봐서 도망도 치지 못해요.”

여자는 글씨를 쓰다말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청년을 보고 웃었다. 여자를 바라보며 청년은 고개를 두어 번 저어 보이다가 끄덕거렸다. 청년은 손수건을 꺼내어 흙과 빗물과 눈물로 엉망이 된 여자의 얼굴을 닦았다. 엉킨 머리카락 사이에 잘린 머리카락이 비쭉비쭉 솟아 나와 있어 우스꽝스러운 몰골이었다. 여자의 한쪽 볼이 부어올라 있었지만 하얗고 티 한점 없는 얼굴이었다. 여자가 계속 바라보자 청년은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손수건을 주머니에 꾸겨 넣었다. 청년은 호흡을 가라앉히려고 방안을 둘러보았다.

허름한 집과는 대조적으로 방은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한쪽에 놓여있는 오픈 된 철제 가구에는 몇 가지의 옷이 걸려 있었다. 대부분 색이 밝고 은은했는데 비닐 천처럼 비치는 옷도 있었고 구슬이 박힌 옷도 있었다. 거기에 매달려있는 챙이 커다란 모자는 양산을 펼쳐 놓은 것 같았다. 방안의 모든 물건들은 여자가 도시에서 왔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청년은 높은 건물들 때문에 어지럽던 도시를 잠깐 떠올렸다. 거울이 달린 화장대에는 화장품과 아기 인형이 무더기로 놓여 있었다. 청년의 시선이 인형에 멎자 연필을 쥔 채 청년을 바라보던 여자가 인형 하나를 집어들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내가 하는 말은 듣지 못하지요. 남편도 아이가 있으면 달라질 거니 나는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할 거예요.”

틀어진 입술에서 떠올랐던 미소가 사라지는 걸 보면서 청년은 쓸쓸함을 느꼈다. 여자의 부은 눈엔 졸음이 담겨져 있었다. 청년은 문지방에 걸터앉아 잠자코 여자를 바라보았다.

“내가 잠들 때까지만 있다 가세요. 지금은 너무 무서워요.”

여자는 입을 달싹거리며 두 손을 접어 턱을 괴는 시늉을 했다. 차츰 여자의 숨소리가 커지면서 눈까풀이 스르르 덮였다. 청년은 인형처럼 긴 여자의 속눈썹을 바라보다 가만가만 방에서 빠져 나왔다. 나오자 빗발이 좀 가늘어져 있었다. 모자를 쓰기 위해 머리를 쓸어 올리던 청년은 손에서 엷은 향내를 맡았다.

그 일이 있던 날부터 청년은 조심스레 행동했다. 자기 때문에 여자가 곤경에 처할 수도 있었다. 오토바이가 감나무 아래 세워져 있는 것 같으면 그쪽으로는 아예 얼굴도 돌리지 않았다.

노모는 날마다 들에만 다닌다고 청년에게 꾸지람을 했다. 담뱃잎을 따지 않으면 줄기 밑동에 붙은 이파리가 볕에 바삭바삭 말라 버린다고 노모는 며칠 째 소리를 질렀다. 늘 들만 다니던 청년은 노모의 손짓발짓에 며칠을 밭에서 보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며칠간 억지로 노모를 따라 다녀야만 했다. 점심을 싸 가지고 가서 노모와 담배 밭고랑을 다니며 잎을 땄다. 흐르는 땀을 닦다보면 담뱃진 때문에 끈적거렸다. 그는 자신의 키와 맞먹는 담배줄기를 콱 분질러 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럴 때면 손에 쥐어진 담배 잎을 패대기치고 밭고랑에 벌렁 누워 버렸다. 담배 잎에 가려진 좁다란 푸른 하늘을 쳐다보면 눈이 시려왔다. 천천히 눈을 감으면 늘 여자의 얼굴이 환영처럼 떠오르곤 했다.

단물이 다 빠지도록 밥을 우물거리는 아들을 보면서 노모는 심통이 단단히 났다는 생각을 했다. 노모는 속곳 주머니에서 대충 말은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면서 그제야 아들이 왜 그러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담배를 피우지 않아서일 것이었다. 아들에게 있어서는 고집조차도 언어의 표현이었다. 어릴 적에는 화가 나면 땅에서 뒹굴기도 했는데 내버려두면 저절로 풀어지곤 했다. 노모는 사나흘이 지나면 제 풀에 꺾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벼이삭에 핀 꽃이 지면서 햇살만 들에 가득했다. 내 건너에 오일장 섰지만 들길로 다니는 사람은 드물었다. 우회로인 도로를 따라 가는 게 편했기 때문에 들길엔 사람이 뜸할 수밖에 없었다. 들에 나올 일이 없어 청년은 이틀에 한 번 꼴로 송아지를 끌고 나왔다. 주인의 마음을 알리 없는 송아지가 길가의 풀로 배를 채우려 들면 청년은 발걸음을 놓고 들 쪽을 멀거니 바라보곤 했다.

방앗간이 제대로 보이는 지점에 도착하면 항상 오토바이가 기대어 있는 벽을 힐끔 쳐다보고 재빨리 얼굴을 돌려 버렸다. 오토바이는 옮겨 놓을 수 없는 바위나 나무처럼 꼭 그 자리에 세워져 있었다.

밭일 때문에 좀 늦게 나왔던 날, 그는 방앗간 쪽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오토바이가 없다는 것을 걸 깨달았다. 청년은 눈을 한 번 비비고 다시금 그 자리를 쳐다보았다. 때 마침 여자가 강아지를 데리고 마당으로 나왔다.

여자가 청년을 향해 오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청년은 머뭇머뭇 방앗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자는 예전처럼 머리를 묶고 있었다. 묶인 머리의 가지런한 틈으로 채 길지 않은 머리칼이 삐죽삐죽 삐쳐 나와 있었다. 머리칼을 바라보던 청년은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가 다시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자가 활짝 웃는데 눈 밑의 실주름이 따라 움직였다.

" 그때는 너무 고마웠어요.”

여자가 고맙다는 어조를 강조하느라 입술을 둥그렇게 오므렸다가 입을 크게 벌렸다. 약간 장난기가 어린 표정이어서 밝아보였다. 여자가 안고 있던 강아지를 내려놓고 화단 가장자리의 편편한 돌에 앉았다. 여자는 남자를 올려다보면서 앉으라는 듯 옆의 돌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청년이 앉자 여자는 안으로 들어가 메모지를 들고 나왔다.

“나는 오늘 당신이 이 논으로 일을 하러 올 거라는 걸 예감했어요. 어젯밤 꿈에 당신을 보았거든요. 오늘은 무슨 일을 하나요?”

청년은 손가락으로 허공에다 ‘피’ 라고 썼다. 여자가 입술을 붙였다 떼어 피라는 발음을 하면서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런 풀 있어요.”

청년이 받아든 볼펜으로 종이에다 그렇게 적었다. 고개를 끄덕거리던 여자가 글씨를 적어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갑자기 사촌 누님이 돌아가셔서 그곳에 갔어요. 요즘 제 몸이 좋지 않아서 초상집에 다녀오면 큰일 난다면서 혼자 가겠다고 하더군요. 아마 내일 오전 중에 돌아올 거예요. 절대 밤엔 집을 비우지 않는데 어쩔 수 없었겠죠. 때마침 누군가가 떡을 하러 왔어요. 기계 방앗간이 고장 나서 고치고 있어 왔대요. 우리야 여기에 그냥 지내려 들어왔을 뿐인데 떡을 해달라니...다행이 이사 왔을 때 신기해서 남편이 떡을 해보긴 했거든요. 남편이 떠나기 전에 왔으니 떡을 할 수가 있었죠. 남편이 서툴다고 하니깐 그 아줌마도 떡 하는 방법을 알고 있대요. 기계에서 길쭉한 대떡이 나오니까 그 아줌마가 떡살로 눌렀어요. 예쁜 꽃무늬가 찍혀서 신기했어요. 아줌마가 삯을 준다는데 안 받았더니 떡을 놓고 갔어요. 잠깐...”

메모지에 글자를 적어가던 여자가 볼펜과 메모지를 남자에게 맡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깔끔하게 쓰인 글씨를 줄곧 들여다보았다. 집으로 들어간 여자가 금방 뭔가를 들고 나왔다.

“비닐봉투에 담았으니까 가지고 가서 먹어요. 남들이 보면 오해할 테니까.”

여자는 청년이 받은 비닐봉지를 가리키며 웃는 얼굴로 중얼거린 다음 등을 떠밀었다.

논둑에 앉아 떡을 먹는데 목이 메여왔다. 서너 조각 먹고 주무르다 노모가 떠올랐지만 떡을 개울에 버렸다.

일을 하는데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고랑을 타고 다녔는데 어쩐 일인지 돌아보면 피가 벼 틈에서 고개를 불쑥 내밀고 있었다. 농사를 망칠 거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도 나왔다.

해가 산 뒤로 숨어들면서 낮은 곳부터 차츰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방앗간에 불이 켜지고 조금 있다 문이 열렸다. 개울에 장화를 씻고 있던 청년의 등을 여자가 툭툭 쳤다. 어느 틈에 여자가 강아지를 안고 청년 옆에 서 있었다. 청년은 슬리퍼를 신은 여자의 하얗고 갸름한 발을 보았다. 들을 휘휘 둘러보던 여자가 대보둑을 가리켰다.

여자가 손을 잡아끌자 얼떨결에 청년은 여자를 따라 둑으로 올랐다. 풀밭에서 후끈한 기온이 올라왔지만 해가 기울어서 덥진 않았다. 여자가 앉자 엉거주춤하니 서있던 청년도 따라 앉았다. 여자는 나직나직 말을 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내 말을 알아들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좋은 점도 있어요. 나는 남편에게서 도망치지 못해요. 그렇지만 아이가 있다면 삶이 고통스럽지만은 않을 거예요.”

여자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어느 때는 내가 너무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아이가 생기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죠. 병원에서는 간혹 그렇게 맞지 않는 부부가 있다는 소릴 들었어요. 당신이 내 얼굴을 닦아줄 때 문득 당신의 아이를 가지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우리 부부에겐 아이가 꼭 필요하니까요.”

어둠 속에서 천천히 혼잣말을 하면서 여자는 간혹 미소 짓곤 했다. 여자의 이가 하얗게 빛날 때마다 청년은 오히려 긴장이 되었다. 어둠이 내려 사물들이 검게 변해가자 여자는 하늘로 눈을 돌렸다.

“하나, 둘, 셋.....셀 수가 없네요. 벌써 이렇게 많은 별이 뜨다니... 이곳의 별들은 내 손에 잡힐 만큼 가까이 있어요. 별을 보고 있으면 여고 때로 돌아가고 싶고 그때처럼 시를 쓰고 싶어요. 지금은 며칠 만에 한번씩 일기를 쓰는 게 고작인 걸요.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나는 변해 버렸어요. ”

어디선가 두꺼비의 울음소리가 음산하게 들려왔다.

“오월에는 밤마다 개구리가 떼 지어 울었어요. 외딴집이어서 처음엔 무섭기도 했는데 며칠이 지나니 자장가처럼 들리더군요. 멀리 들리는 뻐꾸기 소리와 귓전에 바짝 들리는 뜸부기 소리. 비 오기 전엔 꼭 청개구리가 울더군요. 참 당신은 아름다운 소리를 못 듣겠군요.”

여자가 가깝게 다가앉더니 손을 들어 청년의 왼쪽 귀를 어루만졌다. 청년은 얼굴이 빨개졌다. 수로에 가득 찼던 붉은 빛이 가시자 들판이 검게 변했다. 청년은 눈도 입과 귀처럼 닫혀버렸다. 오직 열려있는 후각으로 여자의 냄새가 스며들면서 하반신으로 피가 몰리는 것 같았다. 청년은 손으로 여자의 손을 더듬어 잡았다. 여자의 손은 차고 축축했다.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런... 떨고 있네...”

뜸- 뜸- 끌끌끌...그때 가까이 에서 뜸부기가 울었다. 여자의 품에 있던 강아지가 뜸부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짖으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여자는 개의 뒷발에 밀려 청년 쪽으로 몸이 기울어졌다. 청년은 부딪쳐 오는 여자를 얼떨결에 안았다. 청년의 심장이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잠깐 호흡을 가다듬던 청년은 떨리는 손으로 여자의 얇은 옷을 하나씩 벗겼다. 여자의 옷은 마치 나비의 날개처럼 가벼웠다. 옷이 풀 위로 하나씩 떨어질 때마다 풀벌레들이 튀는지 사르락 대는 소리가 났다. 청년은 옷을 벗어서 풀밭에 깔고 여자를 안아 옮겼다. 까만 하늘에서 빛을 발하는 별을 바라보던 여자는 청년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 닿자 눈을 감았다.

여자의 피부가 너무 보드라워서 상처가 날 것 같았다. 딱딱하고 억센 손바닥으로 살갗을 문지를 수가 없었다. 청년은 손등을 여자의 피부에 잠깐 대었다가 떼곤 했다. 여자의 몸에 입술을 대는데 턱이 덜덜 떨렸다. 여자의 몸 은밀한 곳을 찾아가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여자가 손으로 청년의 손을 끌어당겨서 하반신의 젖은 부분에 올려놓았다.

삽입을 하자 여자의 몸이 남자의 몸을 포근히 감싸는 느낌이었다. 방금 쌓인 눈처럼 보드라우면서도 촉촉했다. 청년은 그 자세로 한참동안 가만히 있었다. 천천히 청년의 하반신이 움직이자 여자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들판은 북쪽에서 밀려드는 바람에 이른 아침이나 해거름이면 추웠다. 청년은 보리밭에 뿌릴 퇴비를 논으로 날랐다. 리어카로 큰길가에 부어놓은 퇴비를 논둑까지는 지게로 져 날랐다.

일을 하면서도 그날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여자의 옷을 벗기자 오히려 여자가 능동적이었다. 청년의 몸을 받아들이는 여자의 몸은 여름밤에 쳐다보던 하늘처럼 신비했다. 알맞게 따뜻해서 아늑하기도 했고 간혹 떨림이 감지되기도 했다. 그 느낌 때문에 저절로 흥분이 되고 절정에 이르는 것 같았다. 청년은 스물 둘이 되도록 여자와 관계를 해본 적이 없었다. 간혹 몽정을 할 때는 짧은 쾌감 후에 불쾌감도 따랐지만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짜릿한 후에 행복하다는 느낌이 다가왔다.

자신의 몸에서 나온 액체가 여자의 몸 깊은 곳까지 흘러 들어갔다는 데 뿌듯함이 느껴졌다. 청년은 처음에는 여자가 자신의 몸을 가졌고 두 번째의 결합에서는 자신이 여자의 몸을 가졌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는 그 후 거의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여자를 떠올리다보니 퇴비가 논둑에 다 옮겨져 있었다.

오후에는 부지런히 논에 퇴비를 뿌렸다. 일찍부터 서둘렀는데도 일이 끝날 무렵 둘러보니 들판은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일을 마친 청년은 논 가장자리에 앉아서 산마루를 향해 줄달음치는 해를 바라보았다. 마치 선홍색 색종이를 오려다 붙인 것 같았다.

어디선가 풀 냄새와는 다른 향기가 풍겨 왔다. 너무 익숙한 냄새여서 청년은 몸에 쥐가 난 듯 굳어 버렸다. 달아오른 얼굴 때문에 청년은 여자가 어깨에 손을 얹을 때까지 돌아보지 못했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활짝 웃으며 방앗간을 가리켰다. 오토바이가 한 시간 전쯤에도 세워져 있었는데 없었다.

웃음을 짓고 있어도 여자의 얼굴은 수척해 보였다. 푸르스름한 입술과 깊어진 눈두덩을 바라보면서 청년은 여자가 병을 앓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물으려다가 의사전달이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여자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여자는 강아지를 내려놓고 쭈그려 앉았다. 남자도 엉거주춤 앉았다. 여자의 입술에서 가느다란 한숨이 흘러 나왔다. 기러기가 떼 지어 날아가는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여자가 얼굴을 쳐들어 하늘을 보자 청년도 고개를 쳐들었다.

“이제 기러기가 날아드네요. 우리도 가을의 끝자락에 있답니다. 헤어지기 위해서요. 저 논들과 벼가 헤어지고 이 마른풀과 씨앗들도 이미 헤어졌어요.”

여자는 하늘에서 시선을 내리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울음기가 배인 목소리였다. 여자는 메모지를 들고 있지도 않았지만 들이 어둠에 젖어들고 있어서 소용없을 터였다. 알아들을 수가 없어 청년은 달싹이는 여자의 입술과 눈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청년을 한참동안 마주보던 여자의 눈에 물기가 번져가고 있었다. 이내 눈 가장자리가 빨개지면서 눈물이 넘쳐흘렀다. 청년은 불안한 마음이 되어 여자의 두 손을 움켜쥐었다.

“난 이제 당신의 눈에 띄지 않을 거예요. 그러다 보면 차츰 나를 잊게 되겠지요. 아이를 낳기 전에 여기를 떠날 거랍니다. 아마 괴로움의 시간은 길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이 보고 싶겠죠. ”

여자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여자가 침묵을 지키는 동안 해가 넘어가더니 넓은 들은 순식간에 캄캄해졌다.

“남편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좋아했어요. 나는 불안해 보이는 남편의 눈빛을 보며 ‘남편과 나의 아기’라는 걸 강조했죠. 아기 때문에 도시로 나가 살아야한다고도 했지요. 그날 난 아기를 갖기 위해 당신을 유혹하기는 했지만 어쩌면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몰라요. 아기를 보면서 당신 생각을 할 거예요.”

중얼거리던 여자는 청년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고 일어섰다. 연신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집 쪽으로 달려갔다. 청년도 여자를 따라 달렸다. 여자는 방앗간 안으로 들어가 뒤돌아서면서 불을 켰다. 따라 들어간 남자의 머리에 부딪힌 백열전구가 흔들렸다.

백열전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두 사람의 그림자는 각기 반대편 벽에서 출렁거렸다.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자기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시늉을 했다. 청년은 깜짝 놀라면서 여자에게로 다가섰다. 눈물이 번진 여자의 볼을 쓸던 청년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그렇게 눈물이 일렁이는 눈으로 여자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청년은 돌아섰다.

구불거리는 능선 위쪽 하늘은 푸르스름한 빛깔을 띠고 있었고, 산은 까만색이었다. 청년은 마을 쪽으로 향한 희뿌연 길을 따라 터벅터벅 걸었다. 시야가 침침해서 간혹 돌부리에 걸리면 휘청대기도 했다. 몇 번인가 기러기 떼가 소리를 내면서 청년의 머리 위를 지나 북쪽으로 날아갔다.



청년은 그날 이후 여자의 모습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겨울이 오고 깊어 갈 때까지도 보이지 않자 청년은 시름시름 앓았다.

앓는 내내 푸른 들을 날아다니는 여자를 좇는 꿈을 꾸었다. 여자의 노란 티셔츠와 하얀 치마가 펄럭일 때마다 엷은 향내를 풍겼다. 간혹 흰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창백한 얼굴에 미소를 띠우기도 했다. 펄럭이던 여자의 치맛자락이 청년의 손끝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곤 했다. 청년이 앓고 있는 동안 거의 거르지 않고 눈이 내렸다. 노모는 마당 끝의 눈에다 요강을 비우고는 앞산을 한 번 멀거니 쳐다보곤 했다. 노모는 눈 치우는데 힘에 부쳐 마당 한 가운데에 길만 내어놓고 있었다.

노모가 방문을 열 때마다 천천히 날리는 눈을 보면서 청년은 빨리 일어나서 방앗간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방앗간이 눈에 파묻혀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몸이 좀 가벼워지자 뒤척이며 누워 있던 청년은 아침 일찍 밖으로 나왔다. 어제까지도 간헐적으로 내리던 눈이 그쳐있었다.

마당의 눈을 대충 치웠다. 노모는 성치도 않는 몸을 함부로 굴리면 안 된다고 청년에게서 삽을 빼앗으려다가 벌러덩 미끄러졌다. 몇 번 그러던 노모는 그만두고 마루에 걸터앉아 아들을 쳐다보았다.

오후가 되자 구름을 비집고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날씨도 풀려 따뜻했다. 나와 서성대던 청년은 무슨 생각에선지 두툼한 잠바를 껴입었다. 노모가 붙잡고 말리는데도 청년은 들 입구 큰길까지 나왔다. 방앗간이 멀리 보였다. 비스듬하게 서있던 그 집이 더 기울어진 것도 같았고 벽이 검은 빛깔을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청년은 들길을 정신없이 걸었다. 조금 전까지도 멀쩡하던 하늘에서 조금씩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저만치서 여자 둘이 걸어오고 있었다. 윗마을의 젊은 아낙네들이었다. 둘은 끊임없이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키가 큰 여자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설마 애가 뱃속에서 죽었다는데 몰랐겠어?”

얼굴이 둥근 여자는 말없이 키 큰 여자를 쳐다보기만 했다.

“죽으려고 작정을 했을 거야. 떡을 하러왔던 맹희 엄마 얘기로는 남편이 너무 잘해서 이상할 정도였다는데 여자가 왜 그랬을까?”

계속되는 키 큰 여자의 말을 듣는 둥근 얼굴의 여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글쎄, 병원에 빨리 갔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둥근 여자의 말에 키 큰 여자는 얼굴을 저었다.

“여자가 표시를 내지 않으니 남편도 몰랐겠지. 나중에 배가 아프다니까 남자가 급한 김에 오토바이에 의사를 싣고 왔나봐. 여자가 혼절하다시피 되어서 병원에 실려 갔는데 이미 늦었대.”

“그래.”

“아내를 살려달라고 병원에서 난리를 치더래. 그 남자가 말야.”

“그랬을 것 같아. 따라 죽는다며 집에 불을 지를 정도니... 그나저나 남자는 살수 있을라나?”

둥근 여자는 눈을 깜빡이면서 키 큰 여자에게 물었다.

“어려운 모양이야. 요즘에 약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온몸을 다 데었으니 힘들겠지. 금방 죽진 않을지라도 얼마 못살 거래. 많이 살아야 두세 달이라던가? 남편이 이장을 하는 통에 나도 이런 사정을 알게 된 거지. 파출소에서 오라 가라 해서 잠도 설쳤어.”

“그랬구나.”

“우리 남편이 방앗간을 포크레인으로 헐어버릴 거라고 해서 왔는데 괜히 왔어. 무더기로 쌓인 인형이 새까맣게 탄 걸 보니 소름 돋던데... ”

키 큰 여자가 겁먹은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했다.

“실은 나도 무섬증이 들었어.”

둥근 여자는 말을 하면서 고개를 빠르게 흔들었다.

“참 그 집에 개 있던 것 같던데...”

“못 봤어. 불났을 때 도망갔겠지.”

청년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여자들을 지나쳤다. 둥근 얼굴의 여자가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돌아봤다.

“벙어리 총각은 어디 갈까. 눈을 맞고?”

“글쎄... 논에 가는 건 아닐 테고. 거 이상하네.”

여자들은 두런거리며 멀어졌다. 눈이 점점 더 많이 쏟아지고 있었다. 들길을 가는 청년의 모습은 흑백 모자이크로 된 한 장의 그림 같았다.



허리가 굽고 눈이 어둔 노모는 침침한 안방에 앉아 있다가 남자가 트랙터를 몰고 마당으로 들어서자 문을 열었다. 올해로 아흔 다섯이 되는 노모는 눈도 귀도 어두웠다. 노모의 머리털은 눈처럼 희었다. 아직 노모에게 성한 곳이 있다면 입이었다. 이는 한 개도 없었지만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었다. 노모는 문턱에 손을 얹고 바깥을 바라보며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워쩌서 장가를 안 가냔 말여. 니놈이 고집을 부리면 나도 안 죽을 테여. 절대 안 죽을 겨.”

노모는 남자가 청년이었을 때부터 이 말을 했었다. 이가 없어 끈 주머니처럼 오므라졌다 펴지는 노모의 입술을 보던 남자는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빤히 바라보는 노모를 외면하고 토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 담배를 꺼내는 남자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남자의 눈이 마루 밑에 있던 개와 마주쳤다. 흰털이 얽혀서 꾀죄죄한 모습이었다. 옆구리에 누런 점만 아니라면 방앗간 개와 똑같을 것이었다. 개가 남자를 보며 꼬리를 몇 번 흔들었다.

연기에 새까맣게 그을린 그 집에 들어가서 가지고 나온 것은 여자의 일기장이었다. 방안을 둘러보던 그는 장판 밑에서 그것을 들추어냈다. 일기에는 여자의 삶과 청년을 향한 사랑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남자는 담배를 피웠다. 남자는 담배를 몇 모금 빨아서 뿜어냈다. 공중에 퍼져 오르는 연기를 따라 개의 까만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 끝 -




김은숙   200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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