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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웅크린 여자


  

 

 

 

 

 

 

    여자가 택시에서 내렸을 때는 자정이 가까웠다. 갑자기 빗방울이 거세어졌다. 가로수의 잎과 잔가지가 한쪽으로 쏠렸다가 세워지곤 했다. 나무를 뿌리 채 흔드는 비바람이었다. 비바람 때문에 거리는 스산한 느낌이었다. 여자는 쌩쌩 거리며 달리는 차바퀴소리를 들으며 길을 가로지르려고 섰다. 그때 다른 주파수가 여자의 귀청을 후벼 팠다. 무슨 소리일까? 여자의 시선이 두리번거리다 멎은 곳은 건너편 대형 건물이었다.

건물 꼭대기에 백화점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대형 건물 벽을 비바람에 떨어진 간판이 때리면서 나는 소리였다. 여자의 눈에 아크릴 파편이 부서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여자는 그것을 바라보고 한참동안 서 있었다. 몇 대의 차가 더 지난 후 도로가 트이자 여자는 재빨리 길을 가로질렀다. 좁은 이면 도로 옆의 보도블록에 올라선 여자는 걸음을 더욱 빨리 했다.

여자의 몸은 흠씬 젖었고 화장이 지워져 있었다. 비디오방으로 들어가는 지하 계단을 내려다 본 여자는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하 계단 옆에 붙어져 있는 화보를 훑어 가다가 거울이 눈에 띄자 걸음을 멈췄다. 여자는 얼굴 화장을 고치고 머리를 만진 다음 비디오방 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듯 남자가 길게 뻗어 의자에 올려놓았던 다리를 내리면서 일어섰다. 진회색 남방 위에 감색 계열의 양복을 입은 남자는 웃으면서 그곳까지 걸어왔다. 남자는 젖은 여자를 와락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남자의 혀끝이 귓바퀴를 한바퀴 감아 돌자 여자는 목을 젖히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남자는 여자의 허리를 잡고 번쩍 들어 올렸다. 여자의 치마가 남자의 팔에 걸려 올라가면서 허벅지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때 안에서 파마머리의 남자가 기우뚱거리는 걸음걸이로 나왔다. 노랗게 염색한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온 파마머리는 몸집이 컸다. 남자는 힐끗거리는 파마머리에게 씩 웃어 보이고 여자를 내려놓았다. 파마머리는 수염이 입술을 덮고 있었고 머리까지 너풀거려서 얼굴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았다.

파마머리가 마지막 손님이었던 모양이었다. 남자는 파마머리가 나가자마자 문을 잠갔다. 여자가 온다는 전화를 했을 때 남자는 종업원을 일찍 보내고 문을 닫겠다고 했었다. 만난 지 삼 개월이 되어 가지만 항상 신선한 느낌을 주는 남자였다. 원래 남자가 여자를 찾아오곤 했었다. 종업원이 없을 때는 여자가 오기로 약속해 놓고 있었지만 핑계를 대어 피해 왔었다. 여자는 남자에 대해 확신이 서기전까지는 가게를 찾아가는 것이 꺼림칙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디오방의 남자는 인터넷 채팅 방에서 만났다. 여자가 채팅을 배운 것은 여고 동창의 귀띔 때문이었다. 컴퓨터를 다루는 남자 정도면 수준도 있고 직업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외도의 경험이 몇 번 있었던 여자에게는 구미가 당기는 얘기였다. 공기업체의 간부급인 남편은 해외 출장이 잦았다. 여자는 남편과 한달 가까이 떨어져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 간혹 남편은 머리끝까지 화를 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평소에는 무척 부드러웠다. 여자의 애교는 얼음이 아니라 대장간의 쇠도 녹일 정도였다. 남편은 종종 감당하지 못할 여자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여자로서는 마음만 먹으면 외도가 가능했다.

여자는 딸에게 컴퓨터 다루는 걸 배웠다. 우선 자판부터 두들겼다. 처음에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팔이 아파서 이삼일 쉬기도 했다. 자음과 모음의 위치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첫 채팅을 했다. 여자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떠듬떠듬 독수리 타법으로 글자를 만들던 여자에게 날아든 쪽지는 각양각색이었다. 야한 얘기 좋아하세요? 컴섹 어떠세요? 당신의 팬티빛깔은? 전화 기다릴께요... 여자는 이삼일 가까이 밤을 꼴딱 새웠다.

  새벽에 채팅을 하다보면 성기를 노출시킨 채 화상을 켜는 사람이 있었다. 물론 그들은 여자에게 누님이니 뭐니 하면서 친숙해진 상태가 되면 그렇게 했다. 여자는 화를 내는 척 하면서도 성기를 눈여겨봤다. 흥미로운 건 남자들 성기의 크기와 모양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여자는 상대방과 함께 컴섹을 하곤 했지만 그리 만족스럽진 않았다. 컴섹을 하던 남자와 만난 적이 있었는데 의외로 그 남자는 성관계에 무기력했다.

외모에 자신이 있었던 여자는 채팅을 하던 남자들을 자주 만났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혹 마음에 들어 여관까지 가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만족스러운 관계를 갖기가 쉬운 건 아니었다. 아내가 있는 남자들은 정사도중 울리는 핸드폰을 받기도 했다. 흥미가 반감되었다고 해서 벌떡 일어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즈음에 나타난 비디오방 남자는 독신이었다.

채팅에서 오일 동안 끈질기게 구애를 했던 비디오방의 남자를 만나겠다고 생각한 것은 전화 통화를 하고 나서였다. 말끝을 말아 올리는 남자의 목소리에서 여자는 묘한 매력을 느꼈다. 남자가 비디오방을 한다고 하자 재력을 가늠해 보기도 했다. 한편 비디오방에서 그 남자와 깊은 관계까지 가면 어떨까하는 호기심도 일었다. 하지만 남자에게는 그걸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첫 만남에서 남자가 흡족해 한다는 것을 알았다.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목소리에서 느꼈던 매력과는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여자와 남자는 동갑내기였다.

눈이 쳐지고 주걱턱이었지만 잘 깎은 듯한 코에 입술이 두툼해서 남자답게 생긴 얼굴이었다. 키가 후리후리해서 호감이 갔다. 반면 여자는 키가 좀 작았지만 몸매는 볼륨이 있었고 눈이 컸다. 여자는 희고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까르르 웃기를 잘 했는데 누군가는 그걸 백치미라고도 했다.

가게 안은 정갈하게 꾸며져 있었다. 옷걸이에 걸려 있던 하얀 수건이 깨끗했다. 천장에 샹들리에가 붙어 있었는데 절반밖에 불을 켜지 않았다. 하기는 그런 종류의 가게에 불을 환하게 켤 필요는 없겠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너 여기 오면 비디오 볼 거라 했지? 스릴러물 좋아한다며? 이거 볼래?”

여자는 남자가 뽑아 든 테이프를 곁눈질해 보았다. 테이프의 주인공 여자는 가슴이 깊게 파인 옷을 입고 있었다.

“비디오 볼 때는 방해하지 않을 거다. 그게 손님에 대한 예의니까. 인터폰이 설치되어 있으니깐 정 무서우면 나를 불러. 알았지?”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고 방으로 데리고 갔다. 여자가 침대에 걸터앉자 남자는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남자가 밖으로 나가서 문의 발을 내렸다. 안에서 문까지 잠그게 되어 있어서 밀실이나 마찬 가지였다. 장방형의 방에는 침대가 두 개, 베개 또 한 두 개가 있었다. 장판이 깔려 있기는 했지만 신발을 신도록 되어 있었다.

여자는 우둘투둘한 흰색 벽지를 손으로 쓸어보고는 역시 흰색 회칠이 되어있는 천장을 잠깐 바라보았다. 재떨이와 휴지가 담겨진 네모난 상자를 보자 여자는 실소를 머금으며 완벽하게 소품을 갖췄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는 불을 끄고 몸을 동그랗게 오므려 앉았다. 영사기에서 나간 빛이 벽면을 비췄다. 화면으로 쓰는 천의 짜여진 무늬가 보였다. 작은 렌즈를 너무 크게 확대시킨 까닭인 것 같았다. 초점을 벗어난 배경처럼 화면이 흐릿했다. 마치 뒷골목에 있는 소극장 같은 느낌이었다. 여자는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바닷가였다. 여자는 모래 위에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벌써 여러 날 바닷물에 들락거렸기 때문에 몸은 검게 그을려 있었지만 여자는 햇볕을 무서워하지 않는 듯 했다. 수영복 끈을 내리고 있던 여자의 어깨에서 가슴 쪽으로 흰 선이 그어져 있었는데 젖가슴 근처에는 반달 같은 뽀얀 피부가 내다 보였다. 탐나리만큼 부풀어 오른 가슴이었다. 볕에 의해서 탄 부분과 타지 않은 부분이 뚜렷해서 자극적이었다.

 

   복도는 어두웠다. 남자가 와서 안을 살짝 들여다보았지만 영화에 몰입된 여자는 모르고 있었다. 남자는 웃음기가 도는 얼굴이었다. 남자의 눈빛이 먹이를 찾는 짐승처럼 한 번 날카롭게 빛을 발했다. 남자는 다시금 안내대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카펫 위를 걷는 것처럼 남자의 발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바닷물은 엷은 색의 하늘에 비해 짙푸른 색이었다. 흰 구름이 수평선 쪽에서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었다. 마치 바다가 굴뚝처럼 연기를 토해 내는 것 같았다. 여자 위로 구름의 그늘이 간간이 드리워지곤 했다. 차라리 일광욕을 하기에는 알맞은 날씨였다. 그때 까만 거미가 모래 위를 바삐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잠깐 거미의 모습이 확대되었다. 여섯 발의 움직임이 느린 동작으로 연출되었다. 긴장을 고조시키는 음악 소리가 점점 커졌다.

화면 속의 여자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평온한 얼굴이었다. 이미 잠들어 있는 듯 한 표정이었다. 거미는 여자 부근까지 와서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 하더니 여자의 종아리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거미가 허벅지까지 기어오르는 동안 여자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잠든 여자가 몸을 한차례 뒤척이자 거미는 멈칫하더니 기어서 모래 바닥으로 내려갔다.

 

  긴장에서 풀린 여자는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는 땀이 난 손을 무릎에 대고 문질렀다. 인터폰으로 남자를 부를까하다 그만 두었다. 여자는 얼굴을 들어서 어두컴컴한 실내를 휘둘러 봤다. 동굴처럼 느껴질 만큼 긴 네모의 방이었다. 어찌 보면 화면의 빛이 영사기로 빨려 들어가는 듯 했다. 여자는 물줄기처럼 뻗어나간 긴 원뿔형의 뿌연 빛을 바라보다 다시 화면으로 눈을 옮겼다. 영화는 스릴러물이면서도 멜로적인 요소가 들어 있어서 여자의 취향에 맞았다.

안내대 앞에 있던 남자가 일어선 것은 영화의 삼분의 이 이상이 진행된 상태였다. 영화가 곧 절정에 치달을 것이었다. 조금 앞서서 남자가 가서 여자 곁에 있어 줘야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여자가 문을 박차고 나와 공포에 떨면서 집에 가겠다는 말을 할지도 몰랐다. 남자가 방의 문을 살며시 밀었을 때 여자는 잔뜩 웅크린 상태로 표정이 굳어 있었다. 겁을 먹었는지 눈도 커져 있었다.

  남자가 여자 옆에 앉자 여자는 품을 파고들었다. 남자는 여자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여자의 몸은 오므린 상태에서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몸을 풀어주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머리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었다.

 

  이제 여자는 알몸이었다. 남자의 혀끝이 여자의 가슴을 살짝 스치고 아랫배 쪽으로 내려갔다. 여자의 몸은 땀으로 번들거렸는데 천장의 빨간 불빛에 의해서 피부는 볼그레하게 변색되어 있었다. 입술은 립스틱이 번진 피에로처럼 부풀어 보였다. 여자의 가슴에 까만 점이 있었다. 그것은 조금씩 움직였다. 거미였다. 여자가 입으로 신음을 토해내는 데도 거미는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여자의 신음이 비명으로 바뀐 것은 조금 후였다.

 

  여자는 얼굴을 남자의 가슴에 파묻어 버렸다. 남자의 진회색 남방에 파운데이션을 잔뜩 묻혀 버리고서야 여자는 얼굴을 들었다. 여자의 눈가에는 눈물이 조금 묻어 있었다.

“보기보다 겁이 많구나. 무서우면 인터폰을 할 일이지.”

“자기가 오면 제대로 볼 수 없잖아.그래서 꾹 참았어.”

“그래?”

남자가 껄껄 웃었다. 여자가 남자의 하얗게 드러난 이를 보면서 눈을 흘겼다. 어두워서 모든 게 뚜렷이 보이진 않았다. 고개를 돌려 마주보던 둘은 피식 웃었다.

“화면을 봐. 놓치지 말고...”

남자가 여자의 얼굴을 잡아서 정면을 향하도록 가만히 밀었다. 벌써 영화는 결말을 향해 가고 있었다.

 

  여자는 입을 벌리고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여자의 몸은 서서히 굳어갔다. 벌거벗은 채로 안절부절못하던 남자는 이미 죽은 거미를 재떨이로 짓이겼다. 남자는 재떨이를 던져 버리고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남자의 둔부와 다리가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남자가 고개를 떨어뜨리고 침대 가장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멀리서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

그 시간. 환자복을 입은 남자가 거실의 의자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섰다. 남자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가 지팡이에 의지한 채 서재로 가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남자가 서재의 책을 몇 권 들어내자 놀랍게도 아이스박스 크기의 비밀 상자가 드러났다. 그 안에 네모난 어항이 들어 있었다. 물은 담아져 있지 않았고 모래가 조금 깔려 있었는데 위쪽에는 거미줄이 쳐 있었다. 두 마리의 거미가 줄에 매달린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까만색의 그 거미를 바라보던 남자는 어항의 위 뚜껑을 조심히 열어 바닥에 놓았다. 거미줄에 있던 거미가 움직였다. 남자는 가까이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서 눈을 감았다. 의자가 앞뒤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막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여자는 한숨을 쉬었다. 남자가 일어나 불을 켰다. 여자는 침대에 있는 구겨진 휴지를 얼른 치웠다.

남자의 손에 이끌려 나왔을 때 안내대 앞의 원형 유리 탁자에는 맥주 세 병과 과일 안주가 놓여 있었다. 자잘하게 썰어 가지런히 놓은 몇 가지의 과일을 여자는 훑어보았다. 술집에서 가져온 것 같았다. 이미 마신 듯 병 한 개는 뚜껑이 따져 있었고 컵에도 거품이 조금 남아 있었다. 등받이가 없는 둥근 의자를 남자가 탁자 밑에서 꺼내었다.

병에 남은 술을 남자가 새 잔에 따랐다. 반잔이 좀 넘었는데 거품이 일어 잔 밖으로 넘쳤다. 거품이 좀 가라앉자 다른 병의 맥주를 거기에 다시 따랐다. 여자는 남자가 내민 잔을 받았다. 남자가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더니 잔을 높이 들었다.

“브라보.”

여자는 웃으면서 한 모금 마셨다. 약간 맛이 다른 듯 했다.

“맥주 맛이 틀린 것 같네. 카스여서 그런가?”

“어때 키스 맛 같아?”

남자의 농담에 여자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다 기도로 맥주가 들어가는 바람에 기침을 했다.

“에이...”

남자가 여자의 등을 두들기며 눈을 흘겼다. 기침이 멎자 여자는 맥주 한 잔을 다 비웠다.

“천천히 좀 마셔라.”

“시간이 별로 없잖아. 남편이 오늘 출장을 가긴 했지만 집에 전화를 하면 어떻게 해? 빨리 돌아가야지.”

“잘 방도 열 개가 넘지. 남편도 출장이지. 얼마나 좋아? 늦은 밤에 같이 있으니까 이렇게 좋은데... 남편에게는 술 한 잔 먹어서 곯아 떨어졌다고 하면 되잖아. 차라리 딸이 더 걱정 아냐?”

“딸은 남편 닮아서 잠들면 끝이야. 걱정 안 해도 돼.”

남자는 여자의 눈동자가 풀리는 것을 보고 다시 잔에 술을 따랐다.

“기분이 이상해. 졸리기도 하고 기분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옆에 있어서 그렇지.”

남자가 일어나 여자의 의자 뒤쪽으로 가서 섰다. 남자의 손이 여자의 귀를 만지작거리다 목을 거쳐서 가슴으로 내려갔다. 여자가 눈을 감고 얼굴을 쳐들었다. 남자는 고개를 숙여 여자의 입에 자신의 입을 댔다. 여자의 혀가 남자의 입으로 불쑥 들어왔다. 남자는 여자를 안아 올렸다. 방으로 가는 동안 남자의 얼굴은 여자의 입술에 바른 립스틱 때문에 붉은 얼룩이 졌다.

“어때... 좋아?”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의 옷을 벗기면서 남자가 물었다.

“그래 이런 기분은 처음이야. 내 몸이 물위에 둥둥 뜬 것 같기도 하고...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애...”

여자가 속삭였다. 관계를 하는 동안 내내 여자는 몸을 뒤틀면서 신음을 했다. 남자가 일어나 옷을 입으려 하자 여자가 다시 남자의 몸을 끌어안았다.

“아이... 싫어.”

남자의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남자의 입술이 여자의 귀 끝에 닿았다. 남자는 여자의 귀를 가볍게 깨물며 손으로 바닥을 더듬었다. 핸드폰은 남방의 주머니에서 빠져 나와 있었다. 남자가 핸드폰의 숫자를 능숙하게 찍고 조심히 닫았다. 일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파마머리의 남자가 살그머니 문을 밀고 들어섰다. 파마머리는 알몸이었다. 비디오방의 남자가 빠져나가고 파마머리가 여자 위로 올라왔다. 파마머리는 앞니로 끈적거리는 여자의 몸 여기저기를 깨물기 시작했다. 젖가슴이나 허벅지처럼 부드러운 살갗은 금방 피멍이 들었다. 여자의 입술에서는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 나왔지만 파마머리를 밀어내는 동작을 취하지는 않았다. 여자는 의식이 몽롱했기 때문에 이미 판단 기능이 마비되어 있었다.

 

 

 

  얼굴 앞에서 대롱거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마치 빨판이 달린 코끼리의 코끝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것이 여자의 몸속으로 들어와 휘젓다가 빨아대었다. 청소기처럼 흡입력이 강한 그것에 몸이 빨려서 빈 껍질만 남을 것 같았다. 여자는 공포감에 버둥거렸다.

꿈이었던 모양이었다. 머리가 뻐개어질 듯 아팠다. 눈이 잘 떠지지 않고 어지러워 장소가 바뀐 것을 여자는 알지 못했다. 여자가 간신히 눈을 떴을 때 하얀 천장과 형광등이 눈에 들어왔다. 하반신이 무거운 것에 눌린 것처럼 뻐근했다. 목도 칼칼하고 입이 바짝 말랐다. 여자는 알몸이었다. 몸의 군데군데 붉은 반점이 있었다. 벌떡 일어나 발치에 있는 이불을 당겨 몸을 감쌌다. 여자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옷을 찾았다. 속옷조차도 눈에 띄지 않았다. 여자는 겁먹은 눈으로 집안을 둘러봤다.

원룸 형태의 집이었다. 밤색 나무무늬 장롱과 책상하나 그리고 역시 한 개의 침대. 몇 개의 바지는 여러 가지 색의 물감이 묻은 채 벽에 걸려 있었다. 티셔츠 몇 개와 잠바 두어 개. 전부 다 남자의 옷이었다. 벽에는 누드화가 담긴 액자가 걸려 있었다.

여자는 다시 책상으로 얼굴을 돌렸다. 붓이 통조림 깡통에 빽빽이 꽂혀 있었고, 그 앞에 화판이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나신의 여자가 널브러져 있는 그림이었다. 그림 속의 여자는 구불구불한 머리칼을 베고 누워 있었다. 머리칼에 쓴 물감이 검은색과 붉은 색 계통이어서 꿈틀대는 파충류의 무리처럼 현란했다. 여자가 사방을 둘러보는 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집안에 있는 느낌이었다. 여자는 잔뜩 몸을 웅크린 채 미세한 소리도 놓치지 않으려고 숨을 죽였다.

주방 안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냉장고 뒤쪽으로 짐작이 되었다. 여자는 겁먹은 눈으로 냉장고 쪽을 바라보았다. 누구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때 여자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코로 스며들던 역한 냄새였다. 그것은 분명 서양 사람들에게서나 맡을 수 있는 누린내였다. 냄새만 떠오르는 그 남자일 것 같았다. 냉장고 뒤에 있던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 듯 조용했다. 뒷목에서 등 쪽으로 이어진 신경줄기가 바짝 서는 느낌이었다. 이 삼십 초 동안의 시간이 여자에게는 무척 길게 느껴졌다.

“우리는 말이야 뭐든 나누어 갖거든.”

남자의 목소리는 굵고 딱딱한 느낌이었다. 남자는 몸을 드러내지 않고 말을 이었다.

“참 너도 그렇게 살아왔지?”

파마머리의 말은 다소 냉소적이었다. 그 남자가 몸을 보인 것은 그 말이 채 끝나기 전이었다. 남자의 몸을 어지럽게 휘감고 돈 흉터와 뱀의 문신을 보자 가슴이 떨려 여자는 더욱 몸을 웅크렸다. 여자는 꽉 움켜쥔 두 손을 이마에 대고 가닥가닥 얽힌 생각을 풀어나갔다. 웨이브 진 긴 머리칼이 눈에 익었다. 틀림없이 비디오방에서 보았던 남자였다. 목덜미에도 큰 흉터가 있었다. 불빛에 번들거리는 걸로 봐서는 덴 자국 같았다. 남자는 그것 때문에 머리를 기른 모양이었다. 여자의 온몸은 순식간에 소름이 돋아났다. 여자는 웅크린 채 두 팔로 몸을 감싸 안았다.

“왜, 보기 싫어? 이게 얼마나 값진 것인데...”

가까이 다가온 파마머리가 다섯 손가락을 오므려 여자의 볼을 쥐었다.

“아, 아니다. 네가 필요로 하는 것은 내 정력뿐이었지.”

여자는 그 말에 입귀를 일그러뜨렸다.

“나 아니었으면 치수는 죽었겠지. 치수 대신 내가 갖게 된 흉터야. 자, 보라구.”

파마머리는 여자에게 등을 돌려대었다.

“덕분에 치수는 멀쩡하잖아. 치수가 내 역할까지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보다시피 나는 나다닐 형편이 못 되니깐 말야. ”

말을 할 때마다 남자의 얼굴 한쪽이 일그러졌다. 여자는 남자의 손을 뿌리치고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갑자기 남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우리는 고아원 동기야. 거기선 우리를 쌍둥이라고 불렀지.”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파마머리가 갑자기 이불을 확 당겼다. 이불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여자는 나뒹굴었다. 남자가 여자를 덮쳤다.

“이봐, 예쁜 여자가 옆에 있으니까 또 서잖아.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이 뭐 있겠어.”

여자가 몸을 웅크린 채 남자를 쳐다봤다.

“나 물 좀 먹고 씻게 해줘요. 하자는 대로 다 할테니까.”

“물? 냉장고에 있어.”

여자는 벌거벗은 채로 싱크대 앞으로 가서 수돗물을 받아 마셨다. 어젯밤에 마신 맥주가 문제였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었다. 욕실은 문을 밀고 들어가기도 비좁았다. 조립식으로 지어져 있어서 벽면까지도 플라스틱이었는데 모두 다 흰색이어서 눈이 시릴 정도였다. 여자는 문을 닫고 숨을 몰아쉬면서 둘러보았지만 창이 없었다. 욕조에 서서 샤워기를 틀어놓고 온 몸으로 물을 맞았다. 눈이 따가워 질 때까지 씻었지만 몸의 붉은 반점은 없어지지 않았다. 쪼그리고 앉아서 하반신을 씻는데 쓰리고 아팠다. 하지만 쓰라린 가운데 미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등 뒤에서 찬 기운이 느껴졌다. 여자는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물기를 닦지도 못하고 파마머리의 손에 잡혀 거실로 나왔다. 몸을 뒤틀며 반항하던 여자는 남자의 더듬는 손길에 힘이 빠졌다. 남자가 혀로 여자의 몸을 핥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있던 여자는 남자의 몸을 손으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남자의 피부는 유리처럼 매끄러우면서도 차가운 감촉이었는데 문신과 흉이 가느다란 그물처럼 손에 잡혔다. 입을 벌린 채 눈을 감은 여자의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정사가 끝나자 여자는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남자의 티셔츠를 걸쳤다. 여자는 자신의 옷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지 못했다. 책상 앞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손가락으로 머리를 빗어 넘기다 책상 위에 놓인 핀을 보았다. 투명한 인조보석이 자잘하게 박힌 꽃 핀이었다. 여자는 보석이 군데군데 빠진 핀을 들고서 들여다보았다.

“그거 너 가져. 어차피 임자가 없으니까.”

무를 썰려던 파마머리가 칼을 든 채 뒤를 돌아보며 하는 말이었다. 입가에는 웃음이 묻어 있었지만 쏘는 듯한 눈초리였다. 여자는 핀을 떨어뜨리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남자가 생선을 자르느라 고개를 돌리자 여자는 바닥에 떨어진 핀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생선을 냄비에 넣고 남자는 작은 그릇에다 따로 양념 배합을 했다. 주방 일에 매우 익숙한 남자였다.

“넌 이제 내 그림의 모델이 되는 거야.”

그 말에 여자는 화판의 그림을 쳐다보았다. 젖가슴을 드러낸 채 턱을 쳐들고 있는 모델의 몸에는 붓 자국이 선명했다. 얼굴은 삼류 극장의 간판처럼 우스꽝스럽게 그려져 있었다. 한눈에도 미숙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림 속의 여자는 몽롱한 눈빛에 입을 조금 벌리고 있었다. 황홀한 모습을 그리려다가 얼굴이 일그러져 우울한 표정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오른쪽 젖가슴에 그려진 거미 문신은 상당히 섬세한 터치였다. 한참 그림을 쳐다보는 여자의 코에 찌개 냄새가 흘러들었다. 여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여자는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만져보았다. 통통하던 여자의 몸은 홀쭉해져 있었다. 목덜미 아래 돌출 된 뼈가 손에 잡히자 여자는 한숨을 쉬면서 일어섰다.

비바람이 치던 그날 여자는 택시를 탔고 인생이 바뀌어 버렸다. 처음 왔던 날은 벗어나고 싶었던 장소였지만 이젠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야말로 두려움이었다. 여자는 눈을 비비고 벽 쪽으로 다가갔다. 거울 앞에 선 여자가 겉옷을 벗자 알몸이 드러났다. 여자는 아랫배에서 음부까지 걸쳐진 문신을 쳐다보았다.

이삼일에 한 번씩 비디오방의 남자가 왔고 그날은 어김없이 맥주를 마셨다. 마셔도 갈증이 나는 술이었다. 술을 마시고 난 후 함께 섹스를 했다. 섹스를 하기 전 파마머리는 여자의 몸에 색색의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섹스가 끝난 몇 분 후면 여자는 다시 남자의 몸을 원했다. 오히려 두 남자가 먼저 지쳐 떨어지곤 했다.

몇 시간의 섹스 후에는 자궁 안에서부터 경련이 일어 여자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통증이 느껴지면 여자는 진통제를 먹었다. 때론 다음날까지 고열에 시달리기도 했다. 다만 여자는 자신의 맥주에만 환각제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몸에 문신을 하자는 파마머리의 제안에 여자는 망설이지 않았다. 이미 여자는 환각제와 섹스에 중독이 되어 있었다. 파마머리가 문신을 하기 전 음부의 털을 깎아야한다고 면도날을 드는 데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털을 절반 정도 밀어가다가 파마머리는 바지를 벗었다. 성기의 뭉툭한 귀두가 머리를 쳐들고 있었다.

“너는 특별한 대접을 받는 거야. 여기에 금다마를 박았거든. ”

파마머리가 성기를 잡아 흔들면서 피식피식 웃었다. 여자는 귀두 둘레의 자잘한 돌기에 혀를 댔다. 남자가 신음을 할 때마다 문둥병 환자처럼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여자는 마주보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도 착하니까 내가 이뻐해 주는 거야. 자 벌려 봐.”

섹스가 끝났을 때 여자의 음부는 겉 부분까지 벌게져 있었다. 여자는 욕탕에 들어가 씻고 나와 침대에 누웠다. 남자가 문신 도구를 들고 왔다. 볼펜처럼 작은 기구였다. 기구의 뾰쪽한 바늘이 살을 뚫고 들어올 때 아픔보다는 쾌감이 느껴졌다. 한 마리의 뱀이 새겨지기까지는 두 시간 정도 걸렸다. 아랫배에 까만 실선이 그려지고 무늬까지 새겨지는 동안 기계에서 나는 소음이 여자의 귀에 환청처럼 들렸을 뿐이었다. 파마머리는 그림보다 문신 새기는 일에 능숙했다.

“엄마, 어디 있어?”

갑자기 딸의 목소리가 들려 거울 앞에 서 있던 여자는 흠칫 놀라면서 뒷걸음질 쳤다. 며칠 전부터 환청처럼 딸의 목소리가 들리곤 했다. 몇 걸음 떨어져있는 전화기 쪽으로 걸어간 여자는 수화기를 놓아 버렸다. 딸에게 변명할 말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차라리 전화를 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득이 될 것 같았다.

여자는 창 앞에 다가서서 바깥을 바라보았다. 절반이 지하에 묻힌 집이었기 때문에 잠깐 햇살이 창을 스치고 지나면 늘 불을 켜두어야 할 만큼 어두운 공간이었다. 손바닥만한 하늘에 전선줄이 그어져있고 플라타너스의 누릇누릇한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게 보였다. 가을이 온 모양이었다. 그곳에 온지 두 달이었지만 바깥은 갈 수 없는 세계였다. 여자는 다시금 텔레비전 앞에 쭈그려 앉아 습관처럼 담배를 빼어 물었다.

비릿한 냄새가 나서 식탁을 보니 자장면을 먹고 비운 그릇이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여자는 일어서려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집안을 둘러봤다. 집안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리다만 그림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고 몇 장은 거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었다. 침대에는 때에 전 이불이 깔려 있었다. 여자를 모델로 해서 그린 그림은 제대로 완성된 것이 없었다. 음부에 걸쳐져 있는 문신만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을 여자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쩌면 굴속처럼 어둔 그 집은 화실이 아니라 섹스만을 위한 공간 같았다.

자장면 찌꺼기가 눌어붙은 플라스틱 그릇을 들고 현관 쪽으로 가던 여자는 휘청거렸다. 여자의 흰색 상의에는 까만 점이 찍혀 있었다. 자장면 국물이 튀어 가슴 부근에 자국을 남겼던 것이다.

 

 

 

 

 방안은 여자가 피운 담배에서 나는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재떨이로 쓰는 건 빈 참치 캔이었다. 방바닥에는 요가 깔려 있고 여자는 웅크린 자세로 텔레비전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뉴스 종료를 알리는 텔레비전 영상을 끄고 여자는 몸을 구부려서 전화기 선을 잡아 당겼다. 둥근 모양의 전화기는 끌려오면서 한 번 나뒹굴었다. 여자는 재를 털 생각도 하지 않고 담배를 한 모금 빨고는 캔에 눌러버렸다.

파마머리에게서 떨어져 나온 지 오래였지만 삶이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 같았다. 술에 취하면 여자는 차라리 짐승 같던 그 시절이 그리웠다. 게다가 먹고사는 것까지 스스로 해결해야했기 때문에 저녁이면 까부라질 것만 같았다. 여자는 수화기를 들고 익숙하게 번호를 눌렀다. 수화기를 든 팔이 떨렸다.

“당신 누구야?”

벌써 몇 번째 전화는 연결되고 있었지만 남편은 거친 목소리로 여자에게 되물었다. 남편이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받는 것처럼 굴기 때문에 여자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간혹 어떤 여자의 웃음소리가 잡음처럼 섞일 때도 있었다. 뚜뚜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여자는 입을 벌린 표정으로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한참 후 여자는 떨어뜨리듯 수화기를 놓고 주방으로 나갔다.

여자의 뇌리에 스쳐 지나는 말이 있었다. 그 놈이 화가냐? 돌팔이지. 남편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내뱉던 말이었다.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여자는 휘청대다 벽을 짚었다.

‘맞아...파마머리가 돌팔이였지. 아...씨발... 엿 같네.’

여자가 중얼거리자 입술에 물려있던 담배가 떨어졌다. 여자는 담배를 발로 문질러버리고 벽에 기대선 채 주전자를 가스 불에 올렸다.

식탁으로 쓰는 상 앞에 앉아 여자는 또 담배를 물었다. 주방 앞 공간은 상을 펴놓고 앉기에도 좁았다. 물이 끓는 소리가 냈다. 여자는 담배를 상위에 있는 접시에 눌러 끄고는 주춤주춤 일어섰다. 커피 병뚜껑을 열고 티스푼으로 커피 분말을 떠서 잔에 옮겼다.

여자는 다시 상 앞에 앉아 진하게 탄 블랙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에서 눈물이 밀려나오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여자가 상에 엎어지면서 소주병 하나를 건드렸다. 연쇄적으로 그 옆의 소주병까지 와그르르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엎드린 여자의 양쪽 어깻죽지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끝-

 

 

 

 

 

김은숙   200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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