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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같은 세상


 

                                                        

 

 

                                                         세상은 연극무대와 같아서 어떻게 연기할  

                                                        것인가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팔라다스-


  화장대 앞에 앉은 아줌마의 맨 얼굴  좀 봐. 피부가 꼭 귤껍질 같애. 눈썹과 눈 가장자리는 숯검정으로 그은 듯한 문신이 되어있고, 입술은 잉크빛깔이야. 아줌마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읍내의 늙은 작부 같은 얼굴이지.

머리에 망을 뒤집어썼으니 꼬박 한 시간은 구경거리가 생기는 셈이지. 콜드크림 마사지까지 시작하는 것 보니까 멀리 나갈 모양이야. 난 할 일이 없으니 재미 삼아서 본다하지만  만약 함께 외출할 사람이 있다면  속에서 주먹이 오르락내리락하겠지. 물론 아줌마는 혼자서 외출할 예정이야.  

파운데이션을 바른 후 두드리는 시간까지 딱 오십 분이네. 이제 가루분으로 꾹꾹 눌러주고 립스틱을 발라야지. 오늘은 흑장미 빛깔이구먼. 우와... 샤론스톤이 왔다가 울고 가겠네. 아무튼 아줌마는 변신의 귀재라니깐. 그런데 왜 하필이면 외국 여배우냐고? 이 집의 소득수준이 중산층 이상이다보니  주절거리는 내 수준도 그만큼 업그레이드 된 거지.

아줌마의 몸매는 샤론스톤보다는 못해도 웬만한 모델정도는 되지. 아마 아저씨는 아줌마의 몸매에 반해서 결혼했을 거야. 그렇지만 브래지어 밖으로 넘칠 것 같이 풍만한 젖가슴은 가짜래. 원래 아줌마의 젖가슴은 바람이 빠져 물컹물컹해진 풍선 모양이었다는 거야.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야 실리콘을 주입해서 빵빵하게 만든 젖가슴인지 어떻게 알겠어.  아저씨조차 근사하다는 말을 자주 하니 말이야.

아줌마는 진달래색 니트 원피스를 입고 베이지 색 바바리를 걸쳤어. 차림새를 보니까 애인 만나러 갈 모양이야. 아무래도 골프 연습보다 그게 더 재미있겠지? 아줌마가 골프를 배운지는 두 달이 채 안되었을 거야. 남아도는 게 시간이고 돈인데 무엇인들 못하겠어? 아직 필드에 나갈 실력이 되지 못해서 실내에서도 골프채를 휘둘러 대며 스윙 연습을 하더라구. 골프채만 보면 심장이 떨려 나는 거실 구석으로 슬그머니 도망을 치거든.    

며칠 전에도 아줌마는 한참 골프채를 휘두르다 싫증이 났는지 소파에 주저앉았어. 잠시 후 커튼 자락 밑에 엎드려 벌벌 떨고 있는 나를 들여다보며 깔깔대더라고. 그러다가 갑자기 웃음을 거두었어. 설마 했지. 그런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아줌마가 골프채를 거꾸로 집어 들고 내 옆구리를 꾹꾹 찔러대더라고. 갈빗대가 부러질 것 같았지만 나는 깨갱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어.  아줌마는 그때 생리 중이었거든.

아무튼 우리 아줌마 얘기가 나왔으니 연애 스토리를 빼놓을 수가 없지. 내가 처음 이 집에 입양되어 왔을 때 비슷한 연배의 남자와 연애 중이었어. 그후 얼마 안 되어서  남자가 가정을 지켜야 한다며 헤어지자고 했지. 일년 넘게 연애를 했으니 헤어지기가 섭섭했을 수밖에. 아줌마는 사흘을 고민하는 눈치였어. 남자와 헤어지고 한 보름 시무룩한 얼굴빛이었고, 도통 외출을 안했기 때문에 이젠 정신 차리나보다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이번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열 살 정도 연하인 남자인데 아직 총각이라고 하던가?

어떻게 아느냐구? 아줌마가 매일 전화통을 붙들고 홍여사와 수다를 떨어서 알게 됐지. 그 정도인데 아저씨가 가만히 있느냐고? 그거야 아줌마가 능수능란한데다 아저씨는 생각하는 게 단순하니 눈치를 챌 리가 없지.

청년 시절에 신학 공부를 하던 아저씨는 결혼하면 가족을 고생시키게 될까 봐 그만 두셨대. 지금도 일요일이면 교회에 나가셔. 간혹 아줌마는 아저씨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며 종종 투정을 부리곤 해. 그것은 그럴 만도 하지. 여고를 졸업한 다음 해에 아저씨가 데려왔으니 말야. 아줌마 말로는 그 무렵 아저씨는 한물간 늙다리 총각이었대.

결혼 후 줄곧 공직에 있었던 아저씨는 오십이 되자 사업을 한다고 갑자기 그만 뒀다는 거야. 한 직장에 이십 년이 넘도록 있었으니 넌더리가 날만도 했겠지.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경험 부족과 경기 침체로 상당히 고전을 했었다는 거야. 아저씨도 어느 중소 업체 사장처럼 대들보에 목을 매고 싶어질까 봐 집에서는 천장 쪽을 아예 쳐다보지 않으셨대. 그 말은 밥상 앞에서 가끔 아저씨가 하는 우스개 소리야. 납품업을 하시는 아저씨는 몇 년 전부터 달러가 올라서 의외로 괜찮은 모양이야. 내수 쪽보다는 수출 비중이 높아서인가봐. 어? 아줌마 나가려 하시네.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나 해야지. 잘못 보이면 저녁을 굶을 수도 있어.

"라라야, 집 잘 봐."

나는 꼬리를 흔들어서 아줌마를 배웅했어. 아줌마 얼굴은 화장술 때문에 언뜻 보면 마흔이 안되어 보이지만 그것은 백 미터쯤 떨어 졌을 때의 얘기이고 가까이 에서 보면 나이에 비해 주름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마사지를 자주 해서 피부가 망가졌을 거야. 하긴 늘 연애질이다 보니 몸뚱이에 돈을 쳐바르는 게 매우 중요하겠지. 일주일에 두 번씩 목욕탕에서 온몸 마사지를 받고 헬스장에서 몸매 관리를 한다니깐. 화장품은 거의 프랑스 제품을 쓰는데 영양크림 하나 만해도 이십만 원을 호가한대. 우리 주인아저씨 너무 너무 불쌍해. 돈 벌어 와서 아줌마 좋은 일만 시키니 말이야.

한술 더 떠서 아줌마는 바람둥이잖아? 순진한 아저씨가 아줌마 몸의 개구멍을 상상이나 하겠어? 그런 것은 담벼락에나 있는 줄 알지. 나도 그 생각을 하면 열불이 나거든.  아저씨가 모르시기에 망정이지 안다면 온 집안이 벌집 쑤셔 놓은 것처럼 되어 버릴 거야. 평소에는 자상한 아저씨지만 화가 났다하면 물인지 불인지 가리지 못하니까.

내가 왜 라라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냐구? 아줌마 덕분이지. 아줌마가 닥터 지바고란 영화를 무척 감명 깊게 봤었대. 아줌마 말이 아저씨가 영화를 싫어하기 때문에 혼자서 보았다는 얘기더라구. 라라와 지바고의 사랑이 기막혀서 개구리눈이 되도록 펑펑 울면서 말이야. 아저씨에게 아줌마가 그렇게 말해서 그런 줄만 알았거든. 근데 내참 웃겨서.

홍여사에게 그 얘기를 할 때 기절할 뻔 했어. 이십 오 년 전쯤인 그때도 어떤 놈하고 영화를 봤다는 거야. 그래도 그놈하고는 아무짓도 안 했대. 아이들이 어렸으니 시간이 없었다는 게야. 밥만 먹고 와서 엄청 아쉬웠다 하던가? 아무튼 그런식으로 말을 하는데 어쩌나 기가 막히던지... 홍여사라는 바람둥이 여자와 십년지기라던가? 둘이 전화기로 떠들어대서 알게된 비밀들이야. 더러워서 당장 라라라는 내 이름을 바꾸고 싶지만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는 일이야?

요즘도 아줌마는 라라와 지바고처럼 사랑을 해봤으면 하는 소리를 할 때가 있어. 그러면 아무것도 모르는 아저씨는 이러시는 거야. 당신 아직도 늦지 않았어. 그럼 아줌마는 샐쭉해져 가지고 코맹맹이 소리로 이렇게 말하거든. 싫어, 난 그런 짓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해!

나 참 어처구니가 없어서... 막힌 코를 울려내는 듯한 아줌마의 목소리가 진력이나 죽겠는데 남자들은 그걸 애교라고 한다며? 멍청한 인간들. 하긴 뭐 여우 같은 여자는 데리고 살아도 곰 같은 여자는 데리고 살 수 없다는 어리석은 말이 있기는 하드만.

개 주제에 아는 게 많다구? 우리 집 아줌마, 딸은 시집갔고 아들은 열두 시나 되어야 들어오는데 할 일이 뭐 있겠어. 만날 전화통 붙들고 주절거리는 통에 얻어들은 거지. 홍여사와 통화할 때 바람피우는 여자들 흉은 어찌나 보는지, 기가 막히더라. 동창 누구는 춤바람이 나서 이혼을 했느니, 도로 건너 달동네의 여자들은 이놈 저놈 가리지 않고 붙어먹는다나?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지. 

그런데 왜 사람들은 우리처럼 성실하고 바른 개를 빗대서 속담을 만들까? 자기들은 개만도 못하면서 말이야. 나는 개에게도 품격이 있다고 생각해. 개의 입장에서 보자면 속담의 주인공을 개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야. 게다가 사람들은 개를 사랑하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자기들 내키는 대로 기르잖아.

난 항상 배고픔에 시달려왔어. 식탁 위에 산해진미가 있으면 뭐하겠어? 먹고 나면 배부르다고 끅끅거리면서도 내게 삼겹살 한 점 주는 것조차 아까워하는 게 인간들이야. 또 자기네들은 맘껏 즐기면서 애완견들에게 교미조차 제대로 시켜주지 않잖아. 그러니 얼마나 이기적인 거냐고!

요즘 나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어. 실은 교미 기간이거든. 교미기간이나마나 생리도 없지만. 아줌마가 생리를 하면 지저분하다고 육 개월에 한 번씩 동물 병원에 가서 불임주사까지 맞게 하는 거야. 그러니 나는 새끼도 가질 수 없는 석녀라구. 하긴 임을 봐야 뽕을 따는 것 아니겠어?  태어난 지 삼 년이 넘도록 나는 수캐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어.

휴- ... 이러다가 평생 동정녀로 사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 가끔 내가 퍼그 인형과 사랑을 나누려고 하면 아줌마는 빗자루를 던지거든. 솔직히 나처럼 털이 우아하고 예쁜 시츄가 못생긴 퍼그하고 교미를 시킨다고 하겠어? 자존심이 있지. 그렇지만 배란기에는 정말 미칠 것 같아. 그렇게 해서라도 갈증이 해소되면 좋겠는데, 아줌마는 미친년 어쩌구 그러는 거야. 아줌마는 미친년의  백 곱도 더 되는 주제이면서.

그나저나 아이엠에프 후부터는 버린 개도 많다 하잖아? 저능아나 치매 노인을 몰래 버리는 세상인데 개 한 마리 버리는 것이야 식은 죽 먹기보다 쉽겠지. 그러니 나도 몸을 사려야 한다니까. 들개 아니, 도둑개가 되지 않으려면 임무에 충실해야 해야지. 이따 아줌마가 돌아오시면 발바닥도 핥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해야겠지?



"라라라 라라라."

로망스의 리듬이야. 누가 왔나 봐. 어? 아저씨네. 아줌마는 안 들어 오셨는데...걱정 안 해도 돼. 아저씨는 아줌마더러 취미생활을 적당히 해야 젊게 살 수 있다는 말을 했거든. 그리고 아내가 아름답지 않으면 집에 들어오고 싶은 마음도 없다는 거야. 이것은 아저씨뿐만이 아니라 모든 남자들의 공통점이야.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아내가 너무 예쁘면 다른 남자들이 눈길을 주잖아? 그래서 바람도 피우게 되는 것이고.

"우리 라라 혼자서 집 봤어? 이놈의 여편네는 어디 간 거야?"

어째 아저씨 말투가 이상하네. 아저씨의 관심을 돌리려면 내가 꼬리를 더 세차게 흔들면서 애교를 떨어야 해.

"라라야. 아빠가 그렇게 좋으냐? 자... 뽀뽀"

치켜 올라갔던 아저씨의 눈꼬리가 다시 부드럽게 내려왔어. 엉덩이가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해서 주저앉고 싶은데 아저씨는 나를 거실 바닥에 눕혔어. 배를 간질여 줄려고 말이야. 아, 시원하면서도 황홀해. 눈을 감고 있으니까 마치 다른 개들과 마당에서 뒹구는 것 같아.

하루 종일 거실에서 갇혀 있는 걸 생각해 봐. 오십 평짜리 아파트라 거실이 넓기는 하지만 갇혀있는 건 넓으나 좁으나 마찬가지잖아? 텔레비전에서 보면 농가에서 매어놓지 않고 기르는 개도 있더라구.

아줌마는 집에 있을 때면 텔레비전 보는 게 취미거든. 전화기로 수다 떠는 것 빼고 말야. 연애질하러 가지 않으면 연속극을 본다거나 통화를 하는 거지. 집안일은 누가 하냐구? 그거야 파출부가 다 알아서 하지. 그래도 집안 일이 힘들다고 가끔 보약을 지어먹더라고. 참, 개 같은 경우지. 그런데 내겐 밥을 코딱지만큼이나 주면서도 가만히 엎드려 있으면 게으르다고 옆구리를 발로 툭툭 차는 거야. 나더러 찧고 까불라는 얘기지. 허긴 개 주제인데 이 집의 어릿광대 노릇이라도 잘 해야 그나마 밥이라도 얻어먹겠지.

그것까지는 그래도 괜찮아. 화분에 얹혀진 이끼를 긁어내렸다고 엉덩이가 파랗게 멍이 들도록 맞았어. 그때는 정말 혀를 콱 깨물고 죽고 싶었다니까. 그런데 밥만 보면 언제 그런 생각을 했었냐 싶게 식욕이 도는 거야. 그러고 보면 나도 별수 없는 개인가 봐. 그런데 아저씨가 내 수치스런 부분을 들여다보네. 창피해서 다리를 자꾸 오므리려는데 이상하게 벌어지거든. 그게 우리네 개들의 습성인가 봐.

"이제 보니 라라도 여기에 털이 많구나. 우리 라라는 처녀로만 지내야 할 텐데 어떡허지?"

아저씨의 손가락이 내 아랫배를 더듬는데 밖에서 번호 키를 누르는 소리가 났어. 내가 몸을 일으키려는데 아저씨는 손에 힘을 주는 거야. 하긴 우리는 사람보다 100배나 잘 들리는 귀를 갖고 있잖아. 나는 버둥거리고 아저씨는 손으로 누르는 상태에서 현관문이 절커덕하고 열렸어. 아저씨가 화들짝 놀라면서 내게서 손을 떼었지. 아저씨 얼굴이 금방 빨개지는 거 봐. 참내, 순진하기는...

"아유 당신 벌써 들어왔어요? 애들이 어찌나 붙잡는지..."

아줌마는 아저씨를 발견하자마자 호들갑스럽게 말했어. 눈이 아저씨를 피해서 움직이는 것 있지. 저 발그레한 아줌마의 볼 좀 봐. 외출할 때 발랐던 빨간색 립스틱은 간데없고 지금은 핑크색이야. 아저씨가 빤히 바라보니까 아줌마의 안면 근육이 뻣뻣해지는구만. 저런저런, 저러다 들통 나겠는데...

"애들이 온천 가자하고서는 다들 늦게 나오더라고요. 결국 못 가고 말았어요. 걔들 때문에 못 마시는 술만 몇 잔이나 마셨네."

아이구 못 마시기는... 홍여사가 접때 그러는데 술을 잘 마실 체질이라 하드만. 아줌마는 남편 속이는데 도가 텄다니까. 솔직히 술을 많이 마시면 러브텔에서 치르는 일이 재미있겠어?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적당히 마시는 건 섹스에 도움이 된다면서? 나도 아줌마랑 있다보니 이론으로 빠삭해 질 수밖에 없지.

"우리 남편도 밥을 차려줘야 하구 라라도 밥을 줘야 하구."

아줌마는 옷을 갈아입으면서 흥얼거렸어. 오늘 굉장히 즐거웠다는 얘기인데 어디 남편에게는 어떻게 하는지 잘 보자구.

"여보, 오늘 친구들하고 놀다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줄 알았다니까요. 당신 생일이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거든요. 올해 유럽으로 가자고 당신이 작년 이맘땐가 그랬는데... 미리 예약을 해야겠죠?"

"해외여행은 무슨 아이엠에프 시대에... 공무원 노릇할 때 당신이랑 몇 번이나 갔잖아? 그냥 미역국이나 끓여 먹자구."

아저씨는 부드럽게 말하면서도 아내가 관심을 가져 주는 게 좋은지 연신 싱글거렸어.      

"아이, 당신은 꼭 그래. 지난번에 산 자잘한 꽃무늬 투피스가 잘 어울린다고 당신이 말했잖아요. 이번 여행에 입어야겠다고 아껴 두고 있었는데..."

아줌마는 본인이 아저씨보다 훨씬 젊다는 것을 뽐내려고 그 옷을 입고 가려는 거라구. 지난여름 정류장 앞에 있는 양품점에 갔을 때 남자 종업원이 뭐라는 줄 알아? 꼭 호모 같은 목소리로 ‘사모님 올해 서른일곱이나 여덟 맞죠? 그죠?’ 그러더라구. 아줌마 얼굴이 함박꽃이 되자 종업원이 실실 웃으면서 덧붙였지. ‘아유, 사모님 몸매가 꼭 처녀 같애. 나 프로포즈해도 될까?'

삼십이 될까 말까한 근육질의 총각에게 이런 소리를 듣자 아줌마는 입을 다물지 못했지. 기분이 좋아진 아줌마는 오는 길에 내 옷까지 하나 샀어.

그날 이후 아줌마는 양품점의 단골이 되었어. 아줌마는 터질 것 같은 젖가슴을 속옷 진열대인 유리 박스 위에 얹고 끊임없이 주절거리는 거야. 종업원의 눈길을 끌려고 앞이 훤하게 트인 티를 입고서는 말이지. 남자의 시선이 젖가슴 사이로 스르르 미끄러지다가 원을 그리듯 빙글 빙글 돌면서 꼭지 점을 찾거든. 마악 점을 찍으려고 하면 아줌마는 몸을 일으켜 세워버리는 거야. 남자의 아쉬운 표정을 바라보면서 말이지. 그걸 보고 있으면 둘이서 아슬아슬한 게임이라도 하는 것 같거든. 개가 똥을 보고 군침을 흘리는 장면처럼 보인다고나 해야할까. 그런데 누가 개이고 누가 똥인지 구분할 수는 없었어.

그러던 어느날  하필이면 아줌마와 남자가 탈의실에 있을 때 남자의 애인이 찾아왔어.  물론 현관문은 잠겨 있었지. 탈의실의 문틈으로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으니 아마 기분을 내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었을 거야. 공간이 비좁아서 흘레붙기에나 딱 알맞았겠지. 인간들은 그걸 뒷치기라 하든가? 아무튼 현관문이 덜컹거리자 남자가 부리나케 나왔어. 내가 보기엔 직업의식이 투철한 남자야.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었거든. 곧이어 아줌마는 탈의실에서 새 바지를 들고 나왔지. 아가씨는 아줌마를 경멸하는 눈초리로 한참이나 쳐다보더라구. 내가 보기엔 아가씨도 눈치가 구단이야. 현장은 잡았지만 증거가 없어 포기할 거라고? 천만에!

“늙은 아줌씨 데리고 뭔 짓거리 했니?”

남자가 버벅거리면서 변명을 하는 동안  아줌마는 꽤 고가이던  티를 벗어 던졌어. 바지와 함께 사기로 했는데 바지는 입어 보지도 못했겠지. 오분 정도 있으면 흘레붙기도 마무리 되고 옷도 샀을 것인데 하필 그리 되었으니... 

아줌마가 나를 옆구리에 끼고 부랴부랴 나오는데 아가씨가 나이를 똥구멍으로 쳐먹었느냐는 욕을 했어.  하지만 결론은 아가씨 때문에 고객을 놓쳤다는 거. 애인의 뒤통수를 쳐다보던 남자는 재수에 옴 붙었다는 표정을 지었어. 말하자면 꿩 먹고 알 먹는 셈인데 아가씨 때문에 어그러진 거지.

"여보, 그러면 제주도에라도 다녀와요. 나, 제주시에 있는 특급 호텔에서 자보고 싶어요."

러브텔만 좋아하는 아줌마의 말이었어.



영민이 오빠는 군대 가는 걸 두 번이나 연장했기 때문에 입영 통지서가 나오자 고민하는 눈치였어. 수지 언니가 헤어지자고 했기 때문이지. 오빠는 친한 친구인 동식이 오빠와 통화를 하면서 몇 번이나 입술을 깨물더라구. 침통하게 말하는 오빠의 입술에서 피가 배어나왔어. 오빠는 사랑하는 이 라라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나 봐. 나는 갑자기 울고 싶어졌어. 하지만 개는 아무리 슬퍼도 눈물은 조금밖에 안 나와. 너무 슬퍼 내가 괴상한 소리를 내니까 오빠는 후닥닥 전화를 끊었어. 그리고는 거실로 나를 안고 나와서 내게 무엇을 먹였는지 아줌마에게 묻더라구.

"얘가 왜 이래요?"

"또 말썽 피웠니? 그러길래 처음부터 개는 싫다고 몇 번이나 말했어?"

"아이 참 그런 게 아니고요. 혹시 체했나 해서요. 목구멍에 무엇이 걸렸는지 이상한 소리를 내더라구요."

"사료만 조금 주었는데 이상하네. 고기를 몇 번 주었더니 고기 탐을 하더라구. 또 개가 뚱뚱하면 얼마나 꼴불견인데... "

"거 봐요. 배가 고파서 그렇지. 어머니는 다이어트가 그리 좋으세요? 사람이나 개나 조금 살쪘다고 해서보기 흉한 것도 아닌데 그런데다 신경들을 쓰는 걸 보면... 에이 다들 한심해서..."

오빠가 아줌마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실제 오빠는 마마보이 기질이 있거든.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

오빠는 좀 심했다 싶은지 입을 다물었어.

"그러고 보니 수지가 헤어지자고 해서 그렇구나?"

"아니에요."

아줌마는 화를 내려다가 금방 표정을 바꿨지.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줌마는 텔레비전 위의 금색 상자에서 휴지 한 장을 뽑아 들었어.

"아니긴 내가 다 들었는데... 아이구 이 순진한 녀석. 세상에 여자가 걔밖에 없냐?"

아줌마는 휴지로 아들의 입술을 꾹 누르며 말했어. 그래 아줌마는 그런 것에는 능력이 탁월하니까. 하지만 착한 오빠가 요즘 젊은것들처럼 어떻게 다른 여자를 사귀겠어. 수지언니도 그렇지. 오빠처럼 순진한 사람을 농락하다니. 지금까지 둘이서 여행도 다녀오고 그랬으면 지조를 지킬 줄 알아야지. 그까짓 이 년을 못 기다리고 신발을 거꾸로 신으려 하다니. 잠시 헤어지는 거지 결코 신발을 거꾸로 신는 게 아니라구?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하지만 수지언니는 믿을 수 있는 여자가 아니야.

오래 전인데 집이 비었다는 말에 수지언니가 놀러 왔었어. 오빠가 등기 우편물을 받으러 간 사이에 언니는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더라구. 조금 늦겠다구 말이야.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뭐라고 지껄이다가 '당신 병신같이 그 여자에게 잡혀 살아?' 하며 화를 내더라니까. 그렇다면 양다리 걸친 거잖아. 내 참, 기막혀서...

어쩐지 수지언니가 하는 행동이 이상하더라구. 오빠랑 침대에서 그 짓을 하는데 너무 능숙했거든. 오빠는 아래쪽에서 절절 매는데 언니는 위쪽에서 리듬을 타는 거야. 에어로빅을 하듯이 말이지.

맨 처음 오빠와 언니가 섹스를 하던 날 해프닝이 있었어. 수지언니가 나를 데리고 놀다 침대에 놓은 채 옷을 홀딱 벗드라구. 오빠는 멋쩍은지 슬그머니 침대에서 나를 내려놓았지. 경험이 없는 나는 그게 섹스인지 몰랐어. 그런데 오빠 위에 올라간 언니가 몸을 마구 구르는 거야. 밑에 깔린 오빠가 헉헉거리는데 꼭 죽을 것만 같았어. 겁이 난 나는 으르렁댔지. 그러자 언니가 이불을 확 젖히면서 나를 째려보더라구. 그때 오빠의 입에 물려있던 젖꼭지가 빠지면서 유방이 덜렁거렸어. 묘한 광경이었지. 순간 내 아랫도리에 이상한 느낌이 전해지는 거야. 아마 그때 섹스라는 걸 어떻게 하는지 알게 되었을 거야. 이런 저런 것을 종합해 보자면 나는 머리가 좋은 개임에는 틀림없어. 

나는 꼬리를 내리고 슬그머니 방을 나와 버렸지. 그런데 몸뚱이의 땀이 식기도 전에 다른 남자와 만나는 약속을 하는 거 있지. 내가 말을 할 줄 알았다면 진즉 오빠가 언니를 만나지 못하도록 했을 텐데...

그런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오빠가 군대에 가게 되다니. 나는 어떡허지. 아무래도 찬밥 신세가 될 것 같아. 아저씨가 나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아줌마 말에 꼼짝 못하니 소용없잖아. 아, 앞으로 내 운명은 어찌되는 걸까?



오빠 방에 들어가 킁킁거리며 정겨운 냄새를 맡고 있는데 재영이 언니가 왔어. 내가 좀 늦게 마중 나갔다고 언니가 사나운 표정을 짓네.

"개가 나이를 먹으면 영악스러워진다더니 내가 시집가서 별 볼일 없다는 거지? 개년아!"

언니가 나를 안고서 엉덩이를 탁탁 때렸어.

"에이, 왜 그래. 당신도 참."

눈이 커다란 언니 남편이 점잖게 말했어. 재영이 언니 남편이니까 형부라 하면 되겠지? 언니는 무슨 재주로 저렇게 괜찮은 남자를 골라서 시집갔는지 모르겠어. 형부가 생전 화내는 걸 본적이 없거든. 언니가 아줌마한테 걸어오는 불만 전화는 가끔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시고 들어 올 때가 있다는 그런 얘기야. 여자도 술 먹는 세상인데 남자가 그 정도도 안 하면 되겠어? 오늘 자세히 보니까 코가 덜렁하면서도 똑바르구먼. 언니는 형부 코가 잘생겨서 좋겠네, 라는 말이 생각 날 정도인데, 뭘.

언니네는 오빠가 군에 입대하면 몇 년 못 볼 거라고 왔다는 거야. 형부가 이틀 연가를 내었대. 몇 년 만 지방근무를 하면 언니네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구. 언니는 미시 족처럼 살 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 형부가 삼대독자라서 시어른들은 은근히 손자를 바라는 눈치인데 언니는 피임을 하고 있대. 그것도 아줌마가 가르쳐서 일거야. 아줌마는 여자라고 집안에서 엎드려 살면 안 된다고 하거든. 자식을 많이 낳는 게 자승자박 이래나. 삼대 독자라 하더라도 하나 이상은 낳지 말라는 얘기던데 형부에게는 비밀인 눈치야.

그러니까 이년 정도 신혼 생활을 즐기다가 아기를 낳을 모양인가 봐. 누가 언니더러 주부라 하겠어. 저 긴 손톱에 발라진 매니큐어하며 국적 불명의 머리빛깔과 얼굴 말이야. 언니의 얼굴은 모나리자와 닮았거든. 그건 다 성형외과 의사의 솜씨가 좋아서 일거야.

아줌마도 일찍 코를 높였기 때문에 형부는 전혀 몰라. 언니의 예쁜 눈은 고등학교 일 학년 여름 방학에 한 거래. 코는 대학에 붙자마자 했고. 아줌마는 작년 가을에 눈 밑 주름 제거 수술과 턱 살을 당겨 올리는 수술까지 했어. 그렇지만 모델 같은 몸매만은 둘이 다 천부적이야. 아마 형부도 언니의 미모 때문에 결혼했을 거라구. 과거는 용서를 해도 못생긴 건 용서할 수 없다며? 따지고 보면 인간들은 속물에 지나지 않아.

대학 다니면서 연애만 했다는데 졸업한 것을 보면 신통해서, 원. 연애쟁이 언니는 선 본 지 두 달 만에 형부랑 결혼했어. 언니는 첫날밤을 위해서 수술을 했어. 쉿 형부가 알면 큰일나. 형부는 언니가 순결을 지켰다며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그랬다던가 어쨌다던가.

내가 언니를 지켜봤는데 자주 여행을 다녀오더라구. 물론 그때마다 상대는 남자였지. 아저씨에게는 엠티 간다고 속이고서 말이야. 아줌마는 적당히 넘어가더라구. 물론 그 이면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지.

아줌마에게 애인이 있다는 것을 언니가 알았다는 거야. 동창회에 갔다는 아줌마를 언니의 친구가 경춘가도 부근 어느 음식점에서 봤었대. 남자랑 둘이 있는 걸 본 그 언니가 재영이 언니에게 귀띔을 했던 모양이야. 콩가루 집안이라고나 해야 할까?

그래도 한 여자만 사랑하는 오빠나 여자 근처에는 얼씬하지도 않는 아저씨가 있으니 다행이지 뭐. 혹 아저씨도 그럴 수 있다고? 아니야. 난 믿어. 아저씨가 얼마나 성실한 줄 알아? 요즘엔 자가용으로 출근하는 것조차 자제하고 있어. 아이엠에프 후 직장을 잃은 사람도 많은데 그랜저 타고 뽐내고 싶진 않다는 거야. 게다가 회사에 가면 봉고 차가 한대 있기 때문에 별로 필요하지 않대. 그전에도 지하철을 자주 이용했었나봐. 퇴근이 정확한 아저씨를 보면 존경심이 절로 우러난다니까.

"엄마, 라라가 왜 이리 멍청해 보여?"

내가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빠져서 코를 앞발 사이에 묻고 가만히 있으니까 언니가 하는 말이었어.

"엄마가 밥을 적게 줘서 그렇지."

오빠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어. 실은 내 배 고픔은 아무 것도 아니야. 오빠와 헤어져야 한다는 게 더 가슴 아프거든.

"얘, 원래 애완용 개는 작아야 예쁜 거야. 가끔 네가 몰래 먹이를 줘서 몸집이 하마만큼 커질 뻔했잖아."

언니가 농담을 하는데도 오빠는 웃지 않았어. 그러자 언니는 시무룩한 오빠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어.

"영민아 힘내라. 너만 군대 가는 것 아니잖니?"

그때서야 오빠가 힘없이 웃으면서 말을 하더라구.

"맞아. 알면서도 기분이 이상하네. 매형도 그랬어요?"

형부가 입을 열려고 하자 언니가 재빠르게 앞질러 말했어.

"얘, 니네 매형 방위 출신인 것 잊어 버렸니?"

형부는 멋쩍은 표정이었고 오빠는 머리를 끄덕였어.

"모처럼 가족들이 모였는데 우리 불고기나 먹으러 가자."

아줌마는 다소 늘어진 목소리로 말했어. 아줌마는 외출했다 돌아와서 피곤한지 연신 하품을 하면서 이야기하는데도 끼어들지 않더라구. 평소 같으면 딸과 둘이서 계속 지껄여대야 직성이 풀릴 터인데도 말이야.

"아빠는요?"

"오늘은 조금 늦으실 거래. 거래처 사람들과 만나는데 술을 못 드셔서 어쩌나 하시더라"

"아유, 아빠도 참. 한 잔 하시는 게 어때서. 아빠는 목사님보다 더 목사님 같다니깐."

그러자 형부가 한마디 했어.

"당신은 이상해. 나 술 몇 잔 마시는 거 가지고 미주알고주알 하는 걸 보면."

"아니 몇 잔이라니? 마셨다 하면 꼭 절인 배추처럼 들어오면서..."

느릿한 형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언니가 내쏘았어. 형부는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어. 마치 내가 사람들 앞에서 꼬리를 사리는 것처럼 말이야. 아무래도 형부는 너무 쥐어 사는 것 같애.

"자 자, 재영이 너 입 좀 다물고 나가자."

아줌마는 옷을 걸치고 나왔어. 아줌마는 옷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무척 세련된 차림이었지. 아줌마나 언니는 잡지에서 보는 여배우만큼 용모가 근사하거든. 아줌마가 잡지를 뒤적이다 펼쳐 놓은 곳을 보면 꼭 그런 차림의 여자들이 선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더라구. 아줌마가 보는 잡지는 거의 그런 화보뿐이야. 또 아줌마를 따라서 백화점에 가보면 어떤 줄 알아? 그곳이 영화 촬영 현장인 걸로 착각된다니까. 여자들 몸매는 거의 다 늘씬하고 얼굴은 인형처럼 예쁘더라구. 인조얼굴에 인조 몸매까지 유행이니 성형외과는 아이엠에프도 없을 거야.

"야, 라라 너 집 잘 봐."

언니가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어.



오빠가 군대에 간지 벌써 몇 달이 지났어. 오빠가 군대 가기 하루 전날을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혀. 글쎄 오빠가 술 먹고 들어와서 난동을 피우는 거야. 군대에 가지 않겠다며 유리창을 깨더니 책을 불사르겠다고 방바닥에 쌓아 놓고 라이터를 찾더라구. 군대 가서 죽을지도 모르는데 대학이 다 무슨 소용이냐는 거였지. 라이터가 없으니까 오빠는 책을 그대로 놔둔 채 화장실에 들어가서 꺼억꺼억 울고 있었어.

그 틈에 아줌마는 아저씨더러 인정머리 없다고 소리를 질렀어. 아들 하나 있는 것을 꼭 군대에 보내야겠느냐는 거였지. 아저씨는 그런 게 돈으로 해결되는 세상이 아니더라고 시무룩이 말했어. 요즘 길거리에 나가면 이렇게들 얘기한대. 사람이면 누구나 똑같은 대접을 받으며 살 권리가 있다고. 아저씨 말이 끝나자 집안이 괴괴하리 만치 조용했어.

그런데 아저씨가 무슨 낌새를 챘는지 아줌마더러 버럭 소리를 지르는 거야. 칼을 가져오라고. 아줌마가 놀란 표정으로 칼을 가져오자 아저씨는 화장실 문을 칼로 열더라구. 그 문은 잠겼을 때 끝이 뾰쪽한 걸로 돌리면 열리게 되어있어.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진 줄 알아? 글쎄 오빠가... 심장이 떨려서 말을 할 수가 없네. 오빠가 환풍기 테두리에 줄을 매어 놓고 목을 밀어 넣으려는 찰나였어. 엎어진 세숫대야를 밟고 서있는 오빠의 발가락 열 개가 오들오들 떨고 있었지.

아저씨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오빠의 뺨을 때렸어. 오빠는 아저씨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다가 잠들었어. 아저씨도 그 옆에서 주무셨지. 이튿날 아침 아저씨는 오빠를 잘 달랬어. 참 능력 있는 아저씨야. 오빠가 무사히 군대에 갔거든.

오늘은 아줌마가 베란다 문을 조금 열어놓고 외출을 했어. 먼지 들어온다며 항상 문을 꼭꼭 닫는데 나 때문에 거실에서 냄새가 난다고 궁시렁 거리더니 문 닫는 걸 잊어버렸나 봐. 아니야. 옷으로 실랑이를 쳐서 그랬을 거야. 다섯 벌씩이나 되는 옷을 거실에 펼쳐 놓고 입고 벗었다를 무려 세 번씩 했으니 잊어버릴 만도 하지. 아들이 그렇게 난리를 치면서 군대간 것도 벌써 잊은 눈치야.

오빠 생각이 나면 방에 들어가서 냄새를 맡아보곤 하지만 정겨운 냄새는 벌써 사라지고 없어. 아줌마가 방에 걸려 있는 오빠 옷을 치워 버렸거든. 나는 오빠 방에 앉아 오빠를 생각하곤 해. 오빠는 군대에 잘 적응하고 있을까?

오빠가 군대에 가던 날 아줌마는 통곡을 하더라구. 그런데 사흘 후인가는 홍여사에게 전화를 하면서 흉을 보더라니깐. 오빠가 잘 갈 거면서도 그 난리를 치더라고. 참 어처구니가 없어서. 하느님은 뭐하시지? 저 아줌마 안 데려 가고.

아니지. 오늘 당장 아줌마에게 그런 일 생기면 오빠는 들고 있는 총을 머리에다 대고 소동을 피울지도 몰라. 오빠는 그날 아침 아줌마가 눈물을 쏟자 자신이 잘못했다며 용서해달라고 했어. 오빠는 아줌마에게 잘 길들여져 있거든.

수지언니가 떠나면 보나마나 오빠는 아줌마가 골라 준 여자하고 결혼하겠지. 집안 좋아야 하고 교양과 지식을 겸비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가씨라야 하거든. 수지언니도 그런 집안의 딸이었지. 그렇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이고 속은 어떤지 어떻게 알겠어. 어쩌면 수지언니가 떠나는 게 다행일지도 몰라. 오빠가 그 언니와 결혼을 하게 되면 내가 보기에는 개를 따라가면 변소로 간다는 속담 같은 꼴이 되기 십상이야.

베란다를 통해 들어오는 바람은 다소 쌀쌀하기는 하지만 하늘이 새파래서 상쾌한 날씨라는 생각이 들어. 마른풀을 비집고 파릇파릇 싹이 돋는 저 화단에서 좀 뒹굴었으면. 정말 남자 친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집안에서 갇혀 지내는 것은 개 생활이 아냐. 나도 좀 개답게 살고 싶어. 목련나무에 흰 새가 몰려와 앉았나 봐. 아니 자세히 보니까 마악 벌어지려는 목련꽃이야. 나도 봉오리 맺은 저 꽃처럼 처녀의 몸인데...

아유... 깜짝이야. 아줌마가 돌아왔네. 해가 설핏해지도록 바깥만 보았으니 놀랄 수밖에. 오늘도 화장을 감쪽같이 하고 들어왔네. 아무리 머리를 만졌어도 내 눈은 못 속이지. 단발머리 뒤쪽이 약간 뭉개졌다는 것을 나는 알거든.

"얘. 저리가. 개털 묻겠다."

오빠가 군대간 후 아줌마는 더욱 쌀쌀해졌어. 밥도 빼 먹을 때가 있고...아무래도 너무 바깥에만 신경을 써서 그런 것 같애. 이러다 팽 당하는 게 아닐까? 아저씨가 일찍 와서 챙겨주지 않으면 정말 살맛이 안 날거야. 아저씨는 요즘에 내가 있어서 집에 들어오는 게 행복하대. 그러면서 너는 항상 처녀로 지내라. 깨끗한 게 좋은 거야 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거든. 혹 아줌마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전화가 온 것은 아줌마가 샤워를 하고 있을 때였어. 아줌마는 수건으로 대충 가리고 나와서 투덜댔어.

"사람 새끼면 수화기를 가져다주겠건만. 개새끼라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네."

아이구, 성질 나. 나는 개니까 이런 수모를 당해도 된다는 건가?

"여보세요? 예. 예?"

아줌마의 표정은 이상해지고 몸에 두른 수건이 풀썩 떨어졌어. 아줌마는 벌거벗은 채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내동댕이치더니 몸을 대충 닦고 옷을 걸치더라구. 신발까지 꿰어 신는 걸 보니 어디 갈 모양이야. 설마 군대간 오빠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건 아니겠지. 무슨 일이 생기면 수지언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나쁜 언니. 어떻게 헤어진다는 말을 할 수가 있어. 그 언니도 오빠가 목을 매는데 일조를 했을 거라구. 다행히 미수에 그쳤지만 말야.

아줌마는 한 시간 후쯤 아저씨랑 같이 왔어. 그런데 두 사람의 표정이 왜 저러지?

"나 참, 우세스러워서. 당신이랑 못살아. 뭐? 상습 성추행범? 그것도 어린것들만 골라서?"

아줌마는 씩씩대며 입에 거품을 물었어.

"그만 못해?"

"못해! 그런 인간이 목사가 되려 했다니, 개가 다 웃을 일이네."

"너, 정말 그만두지 못하겠어?"

아저씨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어. 얼굴 빛깔도 노랗게 변하고. 그렇게 무서운 아저씨의 얼굴은 처음 보았을 거야. 그렇지만 아줌마는 말을 멈추지 않았어. 아니 바락바락 악을 썼지.

"어린년하고 아예 살림을 차리지 그랬어?"

"이 더러운 년! 넌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부터 깨끗한 년이 아니었어. 솔직히 자식만 생기지 않았다면 남자가 거쳐 가지 않은 여자하고 살고 싶었다."

아줌마의 몸이 석고상처럼 굳어 버렸어. 얼굴은 하얘지고 말이야. 아줌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어. 아저씨의 누르팅팅한 얼굴에서 오직 눈만 이글거리는 거야. 아저씨는 잇새로 뱉어내듯 다시 말했지.

"애초에 내가 너를 선택했던 것은 그 나이면 깨끗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야.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너의 몸짓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었지. 그건 그렇다 치고 지금의 너는 뭔지 알아? 마치 발정 난 개처럼 그저 수컷이면 환장하는 주제에...네년이 지랄하다가 들어온 날이면 어떤 기분인 줄 알아? 차라리 내 머리에 총질을 하고 싶었다."

이거 가면무도회야 뭐야? 완전 개 같은 부부들이네?  그런데 왜 인간들은 맨날 개를 빗대어 말을 하지? 실제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 세상에 득시글한데 말이야.  그나저나  이집 부부때문에 내가 제명에 못 살겠다. 아! 치가 떨려.


                                                - 끝 -








김은숙   200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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