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회원가입   아이디/비밀번호찾기  
아이디    비밀번호
   자동로그인     
단편소설
돌쩌귀 속의 새 한마리
김씨 이야기
지금 공원에서는
총을 닦는 스님
컨테이너 장
암실 속의 여자
부랑 (浮浪)
아름다운 아내
개 같은 세상
웅크린 여자
몽환 (夢幻)
항아리 속의 남자
어화둥둥 내 사랑
지네는 독이 있다







 :: 아름다운 아내








딸깍.

형광등 스위치를 올리는 소리가 난다. 잠깐 어둠 같은 적막. 이어 머리 끈을 입에 문 아내가 긴 머리를 두 손으로 쓸어 넘기는 장면이 떠오른다. 부분 탈색을 한 아내의 머리에는 오솔길이 나 있다. 아내는 샴푸광고 모델처럼 찰랑대는 머리칼을 갖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뒷모습을 보이던 광고모델이 돌아서면 나는 아내를 쳐다본다. 맨 처음 아내와 마주쳤을 때, 그녀는 긴 생머리였다.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 대던 바닷가였다. 나는 제주도에 출장 중이었고 아내는 혼자서 제주도를 여행 중이었다. 그 해변은 모래사장이 길게 뻗어있었고 끝머리에 바위언덕이 병풍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모래사장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다 바위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한 여자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여자는 까만 바위틈에서 조심조심 발을 떼어 밝은 곳으로 나오고 있었다. 마치 뒤쪽 배경이 어두운 사진 속에서 걸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녀가 모래로 덮힌 해변으로 들어서면서 검은색의 뒷 배경은 사라졌고, 그제서야  바람에 나풀거리는 긴 머리칼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직장 동료 김과 그곳을 둘러보러 갔던 참이었다. 평일이어서 모슬포에서 온 미군 병사 서넛, 그들과 짝을 지어 다니던 여자들 서넛, 그리고 우리들뿐이었다. 모래사장 쪽으로 오던 그녀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약속이나 한 듯 우리는 그녀 쪽을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까이 갈 때까지도 그녀는 꼼짝하지 않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수욕장의 모래펄을 향해 달려드는 바람이 잿빛으로 시들어 가는 해변의 풀을 쓸고 달아나곤 했다. 군청색 바다 위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햇살은 바다에 닫자마자 유리조각처럼 부스러져 날카롭게 빛났다. 반사된 빛 때문에 약간 인상을 쓰고 있는 그녀는 콧날과 턱 선이 아름다워 이지적인 얼굴이었다. 늘씬한 하반신에 착 달라붙은 청바지와 허리까지 내려오는 까만 머리에 나는 얼이 빠지고 말았다.

그녀의 표정은 좀 어두웠고 울적해 보이기까지 했다. 어쩌면 여름의 흔적이 남아 있는 해변과 말라버린 한해살이 풀, 그리고 쌀쌀한 바람이 그녀를 그렇게 보이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먼저 김이 그녀에게 말을 붙였다. 나는 김의 수작을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내겐 3년째 동거하던 미애가 있었다. 미애는 상고 출신에다 땅콩이라는 별명이 어울릴 정도로 키가 작았다. 미애와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진한 갈색의 꼭지를 가진 젖가슴 때문이었다. 엉덩이 살만큼이나 탄력 있는 미애의 젖가슴을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어릴 적 나는 어머니의 젖가슴을 더듬다 잠들곤 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는 연년생이던 형이 아직 젖을 먹고 있어 나는 미음을 먹어야했다. 두 돌이 될 무렵 어머니의 젖가슴을 겨우 차지할 수 있었는데 이미 빈주머니에 지나지 않았다. 젖가슴에 붙어있는 꼭지는 또 어찌나 작던지 내 입안에서 헛돌았다.

망나니 오빠와 늙은 아버지를 둔 미애는 착했지만 어리석었다. 자취를 하고 있던 미애에게 함께 살 의향이 있느냐고 떠봤는데 그날 밤부터 아예 내 하숙방으로 와서 잤다. 물론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줄곧 미혼이었다.

권태기에 접어들자 미애가 싸구려처럼 느껴졌다. 열여덟 살에 친구 오빠에게 주어버린 순결도 그랬고, 함께 살자는 내 말에 당장 짐을 옮긴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미애는 어머니의 욕심과도 거리가 멀었다. 가장 큰 결함은 미애가 너덧 살 무렵  어머니가 가출했다는 점이었다. 

형들이 셋이나 되지만 다들 고졸 학력이었으며 둘은 생산직에 종사했다. 내 젖을 빼앗았던 셋째형은 형수를 잘 둬서 신사복매장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억센 형수 때문에 탐탁치 않아했다. 어머니에게는 오직 지방의 국립대학을 나온 나만이 특별한 존재였다.

 나는 어머니가 상경을 할 때마다 탐탁치 않아했던 미애를 피신시키곤 했다. 미애가  내게 생활비를 달라는 투정을 부린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지내왔다고 볼 수 있었다. 꽤 많은 돈을 저축해 놓았단 것을 알고 있었지만  미애의 조건이 돈으로 상쇄될 수는 없었다.

서귀포의 해변에서 나는 아내가 미애와는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김의 수작에 시큰둥하던 그녀가 우리와는 딴 방향으로 갔기 때문에 인연은 거기서 끝나는 듯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오는 길에 그녀는 우리와 같은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하필 그녀는 서울에 살고 있었고 우리 집과 오는 방향까지 비슷했다. 비행기 안에서 마음먹었던 것처럼 그녀와 커피를 마시면서 기어이 연락처를 받아내었다. 그날 나는 우리나라 법이 사실혼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해하고 있었다.

아내는 십여 년 전 제주도에서 마주쳤을 때와 거의 같은 모습이다. 세월이라는 놈도 아내의 아름다움이 두려워서 비껴가는 것만 같다.  

원래 까다로운 식성이지만 나는 반찬투정을 할 수가 없다. 아내가 밥상머리에서 집어주는 반찬을 늘 받아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겹쳐진 젓가락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 반찬을 향해 숟가락을 내밀면 아내의 두 볼에 우물이 생긴다. 나는 잇몸이 드러나도록 씨익 웃는다.

젓가락 끝을 따라서 아내의 눈동자가 움직인다. 나는 나무젓가락도 올릴 수 있을 것 같은 아내의 속눈썹을 빤히 바라본다. 한때 나는 인조 속눈썹이라는 오해를 했었다. 게다가 아내는 감정이 너무 풍부해서 사춘기 소녀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서 쏟아내는 눈물은 아내가 관객 중 으뜸일 것이다. 아내가 붕어처럼 물을 많이 마시는 까닭은 분명 거기에 있다. 만약 아내가 배우나 탤런트였다면 연기를 무척 잘했을 거라는 생각이다. 내 생각으로는 우는 연기야말로 N.G가 나기 쉬울 테니까.

“오늘 좀 늦을지도 모르는데...”

“왜요?”

“간부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짜내 보자는 거지. 요즘 회사 형편이 안 좋아서 말야.”

"업무가 끝나고 회의가 있나보네. 그리고 회식을 할 것이고...그럼 나는 뭘 하지? "

"아이구... 집에서 쉬세요. 사모님. 되도록 일찍 올게요."

내 말에 아내가 얼굴을 찡그렸다. 아내에게 남아도는 게 있다면 시간이겠지만 영화 구경을 가라고 할 수는 없다. 평일 낮에는 극장이 한산할 수밖에 없으니 옆자리에 틀림없이 남자가 앉을 것이다. 아내는 열 번 찍어도 넘어가지 않을 나무임에는 틀림없지만 고목이 아닌 수려한 나무이니 상대가 열 번만 찍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다. 도처에 널린 게 늠름하고 잘 생긴 사내들뿐이니 미연에 방지하는 게 상책이다. 아내는 나를 위해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다행히 아내는 나다니는 성격이 아니어서 잘 버텨준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지 않았지만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많은 부부들과 달리 우리는 섹스 위주의 생활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임신한 이웃 여자들과 마주치면 둥그스름한 배를 안고서 하는 섹스를 상상하게 되지만 , 고되고 재미없는 섹스일 것 같았다. 만삭이 될 무렵과, 아이를 낳은 후 몇 개월 정도 섹스를 거른다는 것도 끔찍한 일이었다. 섹스에 질린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는 이상 천천히 아이를 가졌으면 싶었다.

딱 한번 아내가 병원에 다녀 온 적이 있었다. 어머니의 채근 때문이었다. 문제가 없다는 아내의 말을 무시하듯 어머니는 한약을 지어 보냈다. 어머니는 간혹 사무실로 전화를 해서 화를 버럭 낼 때가 있었다. 시집오기 전에 애를 떼서 그런 게 아니냐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머니만의 아집이었다.

아내는 나와 이년 정도 교제하는 동안 순결을 지키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물론 결혼식 날짜가 잡히고 우리 집에 들렀을 때 어머니가 일부러 방을 내 주지 않았다면 첫 관계를 신혼여행지인 괌의 어느 호텔에서 맺었을 지도 모른다. 이불을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을 때 나는 무슨 말인가 하고 의아해 했다. 그러니까 서귀포 해변에서 만났던 스물다섯 가을까지 아내는 순결한 여자였다.

나는 억지를 쓰는 어머니에게 혈흔이 남아있는 수건을 보관해 두었다는 말을 하려다 참았다. 결혼 오 년쯤 되었을 때 아내의 우격다짐으로 그 수건은 없앨 수밖에 없었지만, 마치 아내의 뱃속에 있던 태아가 유산이라도 되어버린 것처럼 내 기분은 참담했다.

애가 들어서지 않는 걸 어머니가 아내 탓으로만 여기기에 결국 나도 병원에 갔다. 나로서는 예상치 않은 결과였다. 정자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임신이 될 확률이 아무래도 낮다는 말이었다. 컴퓨터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드물게 그런 경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대열에 내가 합류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나는 진찰실에서 나오자마자 아내를 끌어안고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내가 나를 원망한 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늘은 사무실에 도착하면 아내에게 보낼 메일의 첫 머리에 나의 사랑 나의 천사로 써야겠다. 아내는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소 띤 얼굴로 나를 쳐다보면서 흘러내린 몇 가닥의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 넘긴다.

어느 때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칼이 얼마나 귀찮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하지만 섹스를 하는 날 밤이면 아내의 머리칼은 요염하다. 부채 살처럼 펼쳐지는 부드러운 머리칼이 내 가슴과 배를 간질이는 장면을 생각만 해도 내 아랫도리는 팽창되어 버린다. 나는 절대 아내에게 머리를 자르라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서른일곱이나 되는데도 아내의 눈가에는 주름이 없다. 그리고 나를 매혹시켰던 오렌지 빛 입술도 여전하다. 아내의 희고 매끈한 목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아내의 머리를 들추고 귀와 목덜미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하얀 피부 위에 돋아나 있는 보드라운 털이 손바닥을 간질였다.

“아-이 참.”

아내가 몸을 뒤로 젖히며 내 손을 밀쳤다.

“출근 안 할 거예요?”

나는 아내의 말에 옆으로 얼굴을 돌렸다. 짙은 밤색의 시계가 보였다.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딱따구리가 문을 밀고 나와 잠깐 날개를 펼쳤다. 날개를 접은 딱따구리가 나무에 올라타더니 여덟 번 쪼는 시늉을 했다. 녹음이 되어 있기 때문에 딱따구리 부리의 움직임과 소리가 딱 들어맞지는 않았다. 딱따구리는 퍼덕거리던 날개를 접고 다시 둥우리로 들어갔다.

“그래 이따 저녁에- 알지? 구석구석 닦고서 기다리라구.”

나는 일어서면서 아내의 머리에 입술을 대고 소곤거렸다. 아내의 씽긋 웃는 모습이 건너편 벽에 걸려 있는 거울에 비친다. 거울은 마흔 네 살인 내 나이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거울 속에 아내와 함께 있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원래 나이 차가 있기도 하지만 아내는 지나치리만치 젊고 나는 생각보다 늙어 보인다. 혼자 거울을 보면서 나이에 비해 젊다는 생각을 했던 건 내 스스로의 위안이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집에 거울이 너무 많다. 아내에게 적당한 핑계를 대어 몇 개는 치워야겠다.

문득 오른쪽과 왼쪽이 뒤바뀐 아내의 얼굴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낯설다. 장미에는 가시가 있고 화려한 버섯은 식용으로 쓰면 안 된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하필 거울 속의 내 눈이 아내의 눈과 마주쳤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마음이 불편해진다. 아내에 대한 사랑이 지나치면 팔불출이라던가?

안방으로 들어온 나는 허둥거리다가 와이셔츠 단추를 잘못 끼우는 실수를 범한다. 첫 번 단추가 잘못 끼워지니 제자리에 끼워진 단추는 하나도 없다. 다시 단추를 빼며 나는 진땀을 흘렸다. 뒤따라 온 아내는 넥타이를 챙겨 들고서 나를 빤히 바라본다.

출근한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아내는 아예 수화기를 옆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신호음이 가자마자 받는 아내의 목소리는 호들갑스러웠다. 그건 섹스의 전희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와 술을 먹자는 친구의 전화를 따돌리느라 애를 먹었다.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아내가 열중하고 있으면 들여다보기도 했다. 드라마에서는 데리고 온 딸의 행복을 위해서 여자는 연하의 남자에게 자존심까지 죽여 가며 살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보기엔 남자가 밑지는 결혼 생활이었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자식 딸린 여자랑 결혼을 해?”

내 말에 아내는 나를 돌아봤다.

“왜? 안돼?”

나는 당연하지 라는 대답을 하려다 꿀꺽 삼켰다. 아내의 눈빛이 파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얼굴까지 차가와 보여 얼음 공주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나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아, 아냐."

"물론 드라마니까 이런 게 가능하겠지."

아내도 표정을 풀며 한 발짝 물러섰다. 아내는 언쟁을 피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풍속도가 좀 달라지긴 했어.”

나는 아내의 뒷머리를 쳐다보면서 변명하듯 말했다. 아내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렸다. 결혼 정보회사는 미혼남과 재혼녀를 맺어 준지 벌써 오래였다. 물론 그건 내 비위에 맞지도 않았지만 내 생각엔 몇 사람에 국한 된 이야기일 것 같았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남자와 여자의 위치까지 바뀌는 건 아니지.”

나는 아내의 눈치를 보면서 말의 강도를 높여 보았다.

“그건 그래요. 여자들이 나대는 시대라서 드라마까지 덩달아 춤추는 경향이라고 할까.”

아내가 투덜거렸다.

"참 어머니께서 전화하셨어. 쌀을 보내셨대요.”

내 쪽으로 몸을 돌린 아내가 그 말을 하며 눈을 반짝거렸다. 사랑 받는 며느리라는 느낌이 역력했다. 결혼 직전에 아내를 데리고 시골에 갔을 때 어머니는 희색이 만면했다. 미애를 대하는 것과는 아주 달랐다. 하긴 미애는 부엌에 들어가서 연기가 맵다고 콜록거리며 나왔다.

연기가 얼굴을 향해 달려드는데도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른 솔가지를 부러뜨려 아궁이에 집어넣곤 했다. 영하의 날씨는 아니었지만 수건을 덮어쓴 채 수돗가에서 쭈그리고 앉아 그릇을 닦는 아내의 모습은 을씨년스러웠다. 어느 틈에 준비했는지 아내의 큰 가방에서는 마른 반찬거리가 나왔다.

밥상 앞에 앉은 나는 얼은 듯 불그스름하던 아내의 손을 보자 화가 치밀었다. 당시 나는 아내의 완벽함이 미웠다. 꼬장꼬장한 당숙모의 칭찬조차도 입에 발린 소리처럼 들려서 고개를 외로 튼 채 밥을 먹었다. 어머니는 한술 더 떠서 시집오면 그 집 귀신이 되는 거라며 제사 때면 꼬박꼬박 참석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밥을 반 그릇만 비우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어머니는 좋을 때면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하다가도 변덕이 나면 은근히 괴롭히는 성격이었다. 얼마 전에는 아직 잠자리에 있던 아내가 전화를 받았는데 옆에 누워있던 내게도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까지 퍼질러 자니 서방의 몸이 온전하겠냐?’ 하더니 아내가 침묵을 지키자 어머니는 전화기에 대고 계속 혼잣말을 했다. 간헐적으로 들렸지만 배운 것들은 집에 들어앉아 있으면 배운 만큼 돈을 더 축낸다, 라는 그런 억지였다.

아내와 결혼하던 날 나는 지루한 주례사를 듣는 대신 나름대로의 상상에 빠졌었다. 나는 나무꾼이었고 아내는 선녀였다. 아내가 감춘 날개옷을 찾는 장면에 이르자 긴장한 나머지 나는 재채기를 했다. 내 흰 장갑에는 가래침이 튀었고 주례는 하객들이 눈치를 챌까봐서 큰소리로 주례사를 낭독했다.

아내와의 섹스는 항상 극치였다. 아이가 아내와 나를 묶는 매개수단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아내의 입술에서 임신이라는 단어가 튀어 나올까봐 조마조마했다. 굳이 따진다면 미애와의 섹스는 낡은 소형차에 탑승한 기분이었고, 아내와의 섹스는 옵션을 갖춘 고급 승용차를 타는 느낌이었다.

최근엔 아이가 없는 것이 좀 부담이긴 하다. 내게 문제가 있어 아이를 갖지 못하니 아내가 떠난다 하더라도 붙잡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날개를 달아줄 만한 녀석이 아내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래 전부터 나는 아내에 대한 미혹을 품고 산다. 그건 아마도 내 성격의 장애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병아리를 밟아 죽여 놓고 시치미를 떼어서 동생이 대신 어머니에게 혼났었다. 또 산기슭에 있는 이웃집 밭에서 아직 꽃도 시들지 않은 구슬정도 크기의 호박을 모조리 따서 개울에 버렸다. 때론 우물가 언덕에 있는 땅벌 집을 쑤셔 놓고 태연하게 집에 들어갔다. 그 일로 온 동네가 시끄럽게 됐지만 모른 척했다. 워낙 말이 없어 착한 아이로 불렸던 나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미애와 동거할 때 친구들과 셋이서 여관에 투숙한 적이 있었다. 그날 동창들 모임이 있었는데 다들 뿔뿔이 흩어지고 셋만 남았다. 술을 마시면서 특별한 일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은 내가 했다. 화대를 곱으로 지불하겠다면서 나이가 스물 남짓한 술집 애를 불러 들였다. 가위바위보를 했지만 순서를 지킬 수가 없었다.

나는 벌거벗은 채 여자 애의 머리맡에 다리를 벌리고 섰다. 한참 후 입술에서 젖가슴까지 흩뿌려진 정액을 수건으로 닦아 내면서 여자 애는 나를 노려봤다. 내 손에서 채듯 돈을 받아 든 여자 애는 ‘ 씨발 개만도 못한 새끼들...’ 이라는 말을 뱉으면서 나갔다.

나는 아내와 교제하면서 일부러 지방으로 전출을 갔다. 미애와 동거를 끝내기 위해서였다. 일요일이면 아내를 만나러 서울에 올라왔다가 내려가곤 했다. 미애를 잠깐 보고 내려갈 때도 있었다. 그 애가 배신당했다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빠가 망나니기 때문에 결혼식 날 예식장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미애 모르게 아내와 교제를 해야했기 때문에 불안하긴 했다. 그런 내게 어느 날 절호의 기회가 왔다. 미애의 오빠가 내게 돈이 좀 필요하다며 전화를 했다. 그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역시 미애의 오빠는 차일피일하면서 아내와 결혼식을 올리는 날까지 돈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때 받은 차용증 때문에 미애 오빠는 내가 연락을 해도 피하곤 했다. 결국 그날 예식은 무사히 치러졌다. 결혼 날짜를 잡고서 일부러 나는 미애를 만났고 선물도 해주었다. 내가 지방에 있으면서 결혼을 했기 때문에 미애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결혼식 한 달 후쯤에 나는 내 결혼에 대해 미애에게 변명을 했다. 지방에서 실수로 여자가 임신을 했는데 애를 떼지 않겠다고 해서 억지로 결혼했다는 말을 했다. 오빠가 돈을 차용해 썼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미애는 화도 내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적은 돈도 아니었고 아깝기는 했지만 미애에게 위자료를 준 셈 치자고 생각했다. 물론 아내는 미애를 단순하게 사귄 여자 정도로 알고 있었다.

통속 드라마처럼 결혼식을 올리긴 했지만 우리 부부는 서로를 아끼며 사랑한다. 그런데 텔레비전의 드라마는 내가 불안한 상상을 하도록 나를 부추긴다. 우리 부부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드라마이니 앞으로는 더욱 자제해야겠다.

 

 

결혼 직후 아내는 성 관계를 몹시 힘들어했다. 섹스를 하는 동안 아픔을 참는 모습을 보면서 고마움을 느끼곤 했다. 아내가 섹스의 느낌을 제대로 알기까지는 이 년 정도 걸렸다. 아내가 처음 오르가즘을 느끼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눈을 감은 아내의 입에서 가야금의 짧은 현을 퉁길 때처럼 미묘한 소리가 튀어 나왔다. 그날 우리는 섹스의 클라이맥스가 일치했다. 내겐 첫 관계를 가졌던 날처럼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요즘 아내는 대단히 능동적이다. 어쩌면 섹스에 천부적인 기질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하긴 결혼 생활 12년째이며 서른일곱이라는 나이이니 과일로 치자면 무르익을 때가 아닌가 싶다. 며칠 전 회식을 했던 날은 아내를 감당하느라 침대에서 한 시간이나 뒹굴어야 했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반신욕을 했다. 오늘 같은 날의 섹스는 유별나다고 할 수 있다. 욕탕에서 먼저 나와 거울을 보는데 얼굴이 불그죽죽하다. 스킨을 바르고 볼을 살짝 마사지한다. 잠옷으로 갈아입은 나는 침대에 누워 주사기를 톡톡 치는 간호사처럼 내 성기를 건드려본다. 아내의 욕구를 제대로 채워 줄 것 같은 예감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목욕탕에서 아내가 나와 몸에 두른 수건을 펼친다. 내 성기는 물구나무 자세를 취한다. 아내가 침대에 올라와서 내 잠옷을 단추를 하나씩 뺀다.

"아휴... 한 두 개만 끼울 일이지."

핀잔을 듣자 아내를 와락 넘어뜨린다. 이어 아내의 긴 팔에 내 몸이 안긴다. 마치 나무 덩굴에 감긴 것 같다. 오늘 점심에 보신탕을 먹었지만 얘기할 수는 없다. 아내는 내가 개고기를 즐겨 먹는 걸 알면 야만인이라거나 미개인이라고 할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 부부는 치와와를 한 마리 길렀었다.

솔직히 몸도 예전 같지 않다. 아내가 리드하지 않는다면 내 그것은 모래에 박힌 개불처럼 흐물흐물 거릴 지도 모른다. 아내는 기능이 쇠퇴해진 나를 배려하기 위해 내 몸을 샅샅이 애무한다. 아내의 뜨거운 입김과 희고 탐스런 가슴에 내 기능은 단단해졌다. 덜 익은 포도송이처럼 자주색이 감도는 아내의 젖꼭지에 내 입술이 닿았다. 아! 아! 분명 아내는 전생에도 내 아내였을 것이다.

땀으로 미끈거리는 몸을 축 늘어뜨린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통꽃 속에는 수꽃술 전등이 주황빛으로 당당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걸 보자 누군가 장난으로 불렀던 노래가 생각났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라는 그 노래가 슬며시 떠오른다.

“비아그라를 사용하면 오래갈까?”

은근슬쩍 아내를 떠봤다.

“아니 누굴 죽이려고 작정했어?”

아내가 그 말을 하면서 내 턱을 깨물었다. 나는 아내를 끌어안고 이불을 돌돌 감았다.

“아니... 나이가 들면 기능도 퇴화 되잖어.”

“걱정 말어...나도 그리 될 것이니께.”

어눌하게 말하니까 어리숙한 느낌이 든다. 손 타지 않은 처녀 같은 느낌이랄까. 아내는 촘촘하게 골이 진 내 가슴을 손가락으로 더듬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다른 친구들은 나잇살이 붙어 체격이 좋아지고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나는 갈빗대가 드러난 상태에 줄곧 머물고 있었다. 가슴에 근육이라도 있었으면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을 것 같았다. 체육관에 다닌 지도 일 년이 지났지만 가슴의 근육은 불어나지 않았다.

“내겐 자기 밖에 없어.”

아내는 기다란 검지로 내 심장 부근을 문지르면서 귓전에 대고 소곤거린다. 아내가 나를 선택했던 이유를 처음엔 알 수가 없었다. 아내는 전문대이긴 하지만 예술계통의 인기 있는 대학 출신이었다. 상당한 미모였으니 결혼 조건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아내는 조건을 따져 결혼하는 것이 싫다는 말을 내게 했었다. 내가 낙점이 된 것은 따뜻한 남자라는 이유에서였다.

“만족스러웠어?”

나는 아내의 송골송골 맺힌 코의 땀을 닦아주면서 물었다.

“고럼.”

아내가 검지를 구부려 내 팬티 위를 쿡쿡 찔렀다.

 

 

아내는 외출을 하려면 꼭 내게 미리 알렸다. 토요일이면 내가 일찍 들어온다는 것을 아내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들어 왔을 때는 집안이 정신없는 상태였다. 아침 식사를 했던 식탁은 그대로 있었고 청소기가 거실 중앙에 버티고 있었다. 그 옆에는 집에서 입던 원피스가 뒤집어진 채 던져져 있었다. 옷의 양팔이 쳐들려 있어 마치 사람이 벌러덩 누워 있는 것 같았다. 소파에 입던 팬티가 펼쳐져 있어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에 사서 목에 걸어 준 핸드폰은 소파 앞 미니 탁자에 놓여있었다. 식탁 쪽으로 가려다 다리에 뭐가 걸리는 바람에 멈칫 하고 섰다. 내려다본 순간 옛 기억에 소리를 지를 뻔했다.

나는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풀 위를 걷고 있었다. 이상하게 발등이 간질거렸다. 아래를 내려다본 순간, 발등에 걸쳐져 있던 허연 뱀 허물. 소스라친 나는 백 미터 달리기를 시작할 때처럼 숨도 고르지 못하고 뛰었다.

스타킹을 발로 밀어서 치웠다. 나는 그것들을 내버려두고 소파에 앉아서 시계를 바라보았다. 두 시 반. 십년이 넘게 살았지만 아내가 이렇게 말없이 나간 적은 결코 없었다. 내 핸드폰도 내내 열어 두었다. 어쩌면 아내가 금방 들어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일어나서 주방으로 갔다.

정말 아내답지 않는 행동이었다. 무엇 때문에 아내는 이리 서둘러야 했을까. 내 머릿속은 마치 급류가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그래도 배는 고팠다. 나는 치우지 않은 식탁 앞으로 갔다.

아침 식사 때 먹었던 반찬이 다 말라 있었다. 밥알이 맨 보리밥처럼 입안에서 미끈거리면서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물에 말아서 몇 숟가락 건져 먹다 일어섰다. 아무래도 식당으로 가야할 것 같았다.

식당 아주머니는 땀을 줄줄 흘리며 들어오는 나를 보더니 황급히 에어컨을 켰다. 식사시간이 지나 있어서 잠시 에어컨을 꺼두었던 모양이었다.

“땀으로 목간한 모양이네. 더운디 어딜 그리 싸돌아 다녔소?”

“집사람이 사라졌어요.”

나는 물수건으로 목덜미까지 문질러 닦으면서 볼멘소리를 했다.

“아, 두발 달린 짐승이 어디는 못 가겠소? 찾아다니기는... 지 발로 얌전히 걸어 들어 올텡께 냅둬요.”

“얌전한 강아지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잖아요?”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뭔 말을 그렇게 한 당가? 그럴 사람이나 그러겠지.”

아주머니는 반찬을 놓으면서 투덜거렸다.

“세상이 하도 그래서요.”

경망스럽게 비쳐질까봐서 아주머니가 반찬을 놓고 몸을 돌리는데 변명하듯 말했다. 아주머니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 말에는 대꾸하지 않았다. 갈비탕에 소금을 뿌리는데 간이 잘 맞춰지질 않았다. 나중에는 짰다.

식당을 나와서는 혹시나 하며 집으로 전화를 했다. 정신이 딴 데 있다보니 누군가와 부딪쳤다. 나는 고개를 들어 상대를 쳐다보았다. 덩치가 제법 큰 삼십대 중반쯤의 남자였다. 남자의 눈이 태양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잘못하면 남자에 의해 도로 바닥에 내 팽개쳐질 수도 있었다.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처럼 무더운 날이었다. 나는 신호음이 계속 울리는 핸드폰을 재빨리 닫고 사과를 했다.

오면서 생각해 보니 아내가 요즘 좀 이상하기는 했다. 간혹 아내는 두통약을 먹었다. 드러내놓고 먹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아내는 신경을 쓰면 편두통이 오곤 했다. 아내의 걱정거리는 혹시 남자? 더운 날씨는 나를 아예 망상으로까지 끌어가려 하고 있었다. 나는 애써서 딴 생각에 골몰했다.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고 에로틱한 비디오나 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토요일 밤의 섹스는 언제나 최상이었다.

집에 들어오니 아내는 이미 돌아 와 있었다. 벌써 다섯 시 반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아내는 청소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문을 열어 주는 아내의 손에 걸레가 쥐어져 있었다. 머리를 틀어 올리고 까만색과 빨간색이 반반씩 섞인 점묘무늬의 홈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거실에 뒤집혀 있었던 원피스가 아니었다. 나는 아내를 훑어보다가 무심코 벽에 걸린 거울 속의 나와 마주쳤다. 옷은 후줄근하고 젖은 머리까지 딱 달라붙어 있어 비 맞은 족제비 꼴이었다. 나는 일부러 상의를 거칠게 벗어 던졌다.

“에이, 날씨까지 기분 잡치게 하네.”

“어디 갔다 왔어요?”

오히려 아내가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바쁘게 일을 했는지 이마에 땀이 여드름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배고파서 밥 좀 먹고 왔어. 오늘 점심 안 먹고 들어올 거라는 건 자기가 더 잘 알잖아.”

“갑자기 나가느라구요. 언젠가 얘기했던 정미라는 친구 말예요. 인도에 파견 근무 중인 남편이 행방불명이래요.”

“그럼 전화라도 할 일이지.”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아내는 손으로 이마를 훔치며 말을 이었다.

“당신한테 전화를 한다는 게 그만 퇴근 시간과 맞물려서 연락도 안 되고 당황해서 핸드폰 번호는 생각 안 나고...”

"당신 핸드폰에 입력되어 있잖아."

내가 언성을 높이자 아내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나, 핸드폰 잘 안 쓰잖아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수압이 높다는 걸 알면서도 샤워기를 최대한 틀었다. 샤워기 구멍에서 모래가 튀어나와 내 몸을 때리는 것 같았다. 몸은 얼얼했지만 기분은 좀 전환되었다. 수건으로 몸을 천천히 닦아내면서 일단 아내에 대해 믿음을 갖기로 했다.

“노량진 시장에서 복을 사 왔어요.”

내가 숟가락을 찌개에 들이밀려 하는데 아내가 말했다. 나는 흠칫 놀라서 수저를 놓았다.

“에어컨을 놓던지 해야지 원.”

실은 몸에 해롭다고 에어컨은 놓지 않고 있었다. 나는 턱밑을 손등으로 몇 번 쓱쓱 닦아냈다. 아내가 냉장고 문을 열더니 무엇인가를 꺼내왔다. 젖은 수건이었다. 나는 수건을 목에 두르고 숟가락을 집었다. 복 찌개를 자주 해먹기 때문에 노량진 시장에 단골집이 있었다. 그곳 아주머니가 완벽하게 손질해 주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되게 맛있네.”

숟가락의 국물을 입에 털어 넣고 그렇게 말하자 아내가 빙긋이 웃었다. 옥의 티랄까. 아내의 오른쪽 윗니가 약간 틀어져서 살짝 겹쳐져 있는 게 새삼 눈에 뜨였다.

“뭐해? 자기도 먹지.”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고 젓가락을 들어 복어 살을 발라 주었다. 그런데 또 슬그머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전화번호를 깜빡했다니 그건 아내답지 않은 소리였다. 딴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문득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가진단을 하건대 지금 나는 중증의 의처증이었다.

내 마음속에서 어떤 소리가 슬그머니 나와서 등을 툭툭 쳤다. 그래 넌 상당히 교활한 놈이야. 진작부터 네 아내를 의심했으면서도 아닌 척 했지. 네 친한 친구가 모처럼 놀러 왔을 때 넌 화장실에도 가지 못했잖아? 두 사람이 한 방에 있는 게 불안해서 말이야. 내 귓전을 울리는 그 소리에 나는 밥 먹는 속도를 빨리 했다.

그날 밤 아내는 다른 날보다 더 기교가 넘쳤다. 회오리치는 물살처럼 나를 빨아들이는 아내의 속살에 내 몸은 아이스크림처럼 녹고 있었다. 나중에는 빈 껍질만 남을 것 같았다. 하지만 완벽한 그 섹스도 내 마음 안에 자리 잡은 의심을 다 녹이진 못했다.

 

 

사실 아내를 염탐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일이 꼬이느라고 느닷없이 뜸하게 지내던 동창 녀석이 내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듣고 있던 나는 그 말을 일축했다. 아내가 그 시간에 그곳에서 택시를 내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집들이 때 한 번 본 아내를 확실히 기억한다는 것도 무리거니와 차를 타고 가면서 본 여자가 아내라고 어떻게 단정 지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동창 녀석은 확신하는 말투였다. 그날 아내는 정미라는 친구를 만나러 서초동에 갔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말을 툭 던졌다. 장난하듯이 말이다. 어떤 녀석이 당신을 금호동에서 보았다고 하더군. 내 참 웃겨서... 자식들은 왜 그리 자기한테 관심이 많은지 몰라.

중얼거리듯 말하는 나를 바라보던 아내는 시선을 떨어뜨렸다. 아내의 입술과 눈가에 가벼운 경련이 이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당신, 정말 거기에 갔었어?”

“...”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소파에 놓여 있던 신문을 집어 들고 네 귀를 맞추어 접었다. 가끔 가벼운 부부 싸움 끝에 하는 행동이었다.

“오늘 신문을 왜 접고 그래. 봐야 하는데. 당신 정말 이상하네.”

“그래요. 서초동에 있다가 그곳에 볼일이 있어서 갔었어요. 갔다 올 수도 있지, 그게 잘못됐어요?”

과민 반응이었다. 아내의 흰자위가 많아진 눈을 보며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집은 금연구역이었지만 담배에 불을 붙였다. 뿜어내는 담배연기가 만들어 낸 글자는 거짓말이라는 단어였다. 내 양쪽 관자놀이 돌덩이처럼 점점 딱딱해졌다.

“자기 의처증 있나봐.”

침대에서 나를 끌어안던 아내가 소곤거렸다.

“아, 아냐...친구 녀석이...”

“코뚜레를 꿰어 나를 매어놓으면 될텐데...”

아내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지만 어색했다. 아내의 숨소리가 고르게 들리면서 나는 잠이 더 깨는 느낌이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언젠가 눈 위에 뭉쳐 놓았던 주먹만한 덩어리의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아침이 되자 의심의 눈 덩어리는 이미 새끼 밴 암소의 배만큼 커져 있었다.

“갔다 올게.”

태연할 수 있다는 것에 내 스스로도 놀랬다.

“저녁 해 놓고 기다릴게요.”

아내의 목소리는 약간 잠겨 있는 듯했으며 일부러 내 시선도 피하는 것 같았다.

출근한 나는 전화번호부부터 뒤적이기 시작했다. 심부름센터에서도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몇 군데에 전화를 했더니 들르라는 말을 했다. 나는 집에서 가장 먼 곳을 택했다.

그 심부름센터는 낡고 더러운 오층 건물 삼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도 없어서 지저분한 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비린내가 풍겨 나오는 공동 화장실 옆에 심부름센터의 조그만 간판이 붙어 있었다. 문을 열자 허름한 책상 하나와 낡은 소파가 눈에 들어 왔다.

양복상의에 까만 티셔츠를 받쳐 입은 사장은 어렵사리 꺼내놓는 내 말을 눈도 깜빡하지 않고 듣고 있었다. 사장이 빤히 쳐다 볼 때면 나는 간혹 말을 더듬거렸다.

“헤어질 생각이 있으십니까?”

갑자기 그런 질문을 받자 멍한 기분이었다.

“아...그런 건 아니구요...”

나는 머뭇거리다 전화 내역서만 떼고 싶다는 말을 했다. 전화 내역서는 며칠 전에 떼러갔다가 인감이 필요하다는 전화국 직원의 말에 그만 둔 일이었다. 지폐 다섯 장을 내밀자 사장은 내역서를 찾으러 올 때 돈을 더 준비하라는 말을 했다. 사흘 후에 오라는 말을 뒤통수로 들으며 나는 심부름센터의 문을 닫았다. 전혀 웃음기가 없는 사장의 표정에 주눅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복도를 걸어 나오던 나는 긴 한숨을 토해냈다. 마침 그 옆 건물에 작은 슈퍼가 있어 물을 샀다. 나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집에 바로 들어갈 수가 없어 아내에게 늦는다는 전화를 했다.

사흘이 내게는 무척 지루하고 불편한 날이었다. 아내 앞에서 웃으려 하면 이에 보철이라도 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침 식사도 건성으로 했다. 아내가 넥타이를 매어준다고 할까봐 원래 매어져 있어서 당기기만 하면 되는 넥타이를 목에 둘렀다. 넥타이를 매다 아내와 눈이 마주치면 그런 사실을 불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역서를 받아 든 후라는 생각이었다.

아내가 외도를 하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없었다. 용서를 하자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몇 시간 후면 절대 용서 불가로 마음이 바뀌곤 했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처녀시절 연애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내게 시집을 왔으니 용서를 해 주자는 생각이었다. 나는 동거까지 했으니 그게 형평성에 맞지 않겠느냐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심부름센터에서 받은 전화내역서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미라는 여자와 만났다는 날짜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꼼꼼히 훑어봤지만 단서가 될 만한 번호는 없었다. 마치 족쇄에서 풀려나는 기분이었다. 그날 나는 꽃을 한 아름 사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치켜든 도끼로 내 발등을 찍을 줄이야. 그날은 퇴근해서 바로 집에 왔었고 아내가 집에 없어 드러누워서 나는 신문을 뒤적였다. 신문을 건성으로 보면서 아내가 없어 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아내야 변함없이 내게 잘하지만 전화내역서를 뗀 후로는 마음이 늘 불편했다. 때론 아내를 쳐다보기도 어색했다.

아내를 기다리다 시계를 보니 아홉 시가 다 되어 있었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주방으로 갔다. 냉장고를 들여다보니 찬이 고루 준비되어 있었고 가스레인지 위에는 아직 온기가 느껴지는 냄비가 올려있었다. 늦게 들어온다는 증거였다. 나는 밥을 먹고 이만 닦고 방으로 들어가서 누웠다.

열두 시가 되었는데도 아내가 들어오지 않자 잠이 오지 않았다. 아내의 핸드폰은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았다. 나는 불안하여 오락을 하려고 서재에 들어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불안할 때는 컴퓨터를 두들기면 마음이 안정되었다. 나는 오락 중에서도 죽이는 게임을 즐겼다. 나는 연극 속의 피노키오처럼 단순한 동작으로 화면에 등장하는 적을 쏘고 또 쏘았다. 적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계속 죽어갔다.

불도 켜지 않고 계속 계임을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내가 수화기를 입에다 갖다 대자 이미 끊어져 있었다. 전화기를 컴퓨터 옆에 가져다 놓고 게임을 계속하려다 종료하고서 인터넷 신문으로 들어갔다. 선거가 가까워 오니까 서로를 비방하는 정치권 얘기만 나열되고 있었다. 큰 글자만 훑어보며 인상을 찌푸리는데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세 번 정도 울리자 수화기를 들었다.

“그 동안 고마웠어.”

전화기 속의 아내는 앞뒤 설명 없이 그런 말을 했다.

“무, 무슨... 소리..?”

벌렁거리는 가슴을 누르고 물었다. 나는 말을 심하게 더듬거렸다.

“심부름센터에서 내게 제의하더군. 그 사람들 양다리 걸치는 건 거의 습관이지.”

“뭐라구?”

아차 싶었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한 달여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내 마음만 숨기기 바빴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습을 당하는 순간이었다.

“내 몫만 챙겼어. 융자받아서... 끝내야 할 상황인 거 같아서...”

“...”

말은 나오지 않았고 다리에 힘이 빠졌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렇게 궁금했어? 이 마당에 가르쳐 주지 못할 이유가 없지. 책상 서랍에 선물로 남겨뒀어.”

아내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뚜뚜뚜뚜....귓속에서 작은 바늘이 날뛰는 것 같았다. 내 손에 있던 수화기가 미끄러져 떨어졌다. 지나간 일들이 회오리바람처럼 내 머리 속을 맴돌고 있었다. 나는 넋을 잃은 채 어둠 속에 서있었다

인터넷 신문은 사라지고 스크린 서버가 작동하고 있었다. 검은 장막에 노란 글씨가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녔다. ‘나의 사랑 나의 천사’라는 그 글씨는 내가 만든 것이었다. 나는 컴퓨터를 억지로 눌러 꺼버리고 불을 켰다.

잠시 나는 방안을 왔다 갔다 했다. 서랍에서 악취를 풍기는 무엇인가가 나올 것만 같아 열수가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나는 미친 사람처럼 서랍을 열고 뒤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서랍에서 볼펜 몇 자루와 스프링 노트 두 권이 나왔다. 나는 침을 발라 노트를 뒤적거렸다. 노트에는 글자가 전혀 쓰여 있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 장씩 천천히 넘겼다. 중간쯤 넘겼을까. 무엇인가가 끼워져 있었는지 여러 장이 한꺼번에 넘어갔다. 누렇게 바랜 사진이었다. 아래쪽에 찍힌 날짜를 보니 결혼 전에 찍은 사진이었다. 나는 손이 떨리는데도 그 사진을 들고서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긴 머리의 아내가 손가락을 빨고 있는 아기를 안고 있었다. 검은머리의 아기는 유난히 흰 피부에 파란 눈동자였다. 뒤쪽으로 짙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그 끝에 검은 빛깔을 띤 바위가 조형물처럼 버티고 있었다.

 

                                                               -끝- 

김은숙   2006-06-24  





이 홈페이지의 저작권은 김은숙에게 있습니다. Copyright(C)2006 Kimsooklove.co.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