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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랑 (浮浪)


 

 

 

                                     

 

 

   머리 위로 흙이 부스러져 떨어졌다. 사내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집채만큼 거대한 바위가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비탈진 땅바닥에 엎드려 있던 사내는 고개를 숙여 아래쪽을 내려다봤다. 끝이 가물가물한 낭떠러지였다. 엎드려 있는 바닥은 사내가 눕기에도 비좁은 공간이었다. 부들부들 떨며 바위를 쳐다보는 사내의 눈동자에 물기가 돌았다. 황토 흙이 묻은 바위의 뿌리부분이 드러났다. 바위에 점점 속력이 붙기 시작했다. 사내는 바닥에 바짝 붙어서 양손으로 무엇인가를 움켜쥐었다. 순간 사내의 눈에 번쩍 불꽃이 튀었다.


“으악!”


누워 있던 벤치에서 떨어지면서 사내가 지른 고함이었다. 꿈이었다. 사내는 벤치의 모서리를 붙들고 일어나 아스팔트 바닥에 앉았다. 초가을이었지만 몸이 온통 땀에 절어 있었다. 구름이 낮게 깔리고 후덥지근한 게 비가 올 징조였다. 얼굴에 묻은 땀을 대강 소매로 훔친 사내는 오른쪽 발이 맨발임을 알고 신발을 찾았다. 때가 묻어 꺼뭇꺼뭇한 운동화는 구걸할 때 쓰는 빨간 색 플라스틱 통에 거꾸로 박혀 있었다.


"에이, 재,재수없이......”


운동화를 들어 아스팔트에 대고 툭툭 털면서 사내가 투덜거렸다. 사내는 신발 뒤꿈치를 펴서 다시 한번 털어 내고 꿰어 신었다. 잠깐 잠깐 구름 사이로 햇살이 얼굴을 내밀곤 할 때면 때 묻은 회색 빛 티셔츠가 번들거렸다. 소맷부리나 팔꿈치처럼 마찰이 심한 곳은 아예 까만 빛깔이었다. 겉에 걸친 조끼의 양쪽 주머니 입구도 때에 절어 있었다.


신발을 신은 사내는 얼굴을 들면서 일어났다. 사내의 오른쪽 얼굴에 섬뜩한 얼룩이 져 있었다. 지도처럼 생긴 그것은 붉은 빛깔의 점이었다. 그 점은 오른쪽 눈언저리에서부터 입 가장자리까지 길게 뻗어 있었다.  사내의 쌍꺼풀진 눈매는 깊고, 콧대가 높아서 아랍인처럼 강렬한 인상이었다. 몸은 바짝 말라서 껑충해 보였다. 사십대 후반이었지만 나이에 비해 눈 밑 그늘이 진했고 이마의 주름도 깊었다.


사내는 바지의 허리끈을 졸라매었다. 한쪽 끈이 내려와 바지 앞섶에서 대롱거렸다. 사내는 곱슬머리를 쓸어 올리더니 낡은 밤색 중절모를 눌러 썼다.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지면서 선명하던 붉은 반점이 흐릿해졌다. 공원 가운데 서 있는 시계탑을 쳐다보는 사내의 표정은 무심했다. 초침이 없는 시계는 두 시 십분 전이었다. 사내는 빨간색 플라스틱 통을 옆구리에 끼고 공원을 빠져 나왔다.
 

사내는 역과 연결된 지하도의 계단으로 내려갔다.  중간쯤 폭이 넓은 계단에 자리를 잡았다.  플라스틱 통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사내의 몰골은 제 오물에 절어 사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백 원짜리 동전이 제법 모였을 때 누군가가 오천 원 권 지폐를 통에 놓았다. 사내는 검게 흙물이 배인 앙상한 손의 임자가 누구인지 얼굴을 들어 쳐다보았다. 짐 보따리를 들고 있는 허름한 차림새의 노파였다. 노파의 검게 그을린 얼굴 곳곳에는 검버섯이 피어 있었다. 사내는 고맙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눈시울이 뜨거워진 사내는 소매끝으로 코를 문질렀다.  

 

바람이 계단을 타고 스르르 밀려 들어왔다. 후각이 예민한 사내는 어렴풋이 흙냄새를 맡았다. 사내는 얼굴을 들어 입구를 보았다. 사람들 위로 잿빛 하늘이 보이고 선을 그으며 하나 둘씩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금방 빗방울이 굵어지면서 물방울이 튀기 시작했다. 입구 쪽에 물이 흥건히 고이면서 아래 쪽 계단까지 물 발자국이 번졌다. 사내는 돈을 챙겼다.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사내는 돈을 주머니에 넣은 채 입구 쪽만을 멍청히 바라보았다. 우산이 없는 사람들이 첫 계단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비에 젖어 입구로 황급히 뛰어 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 비에 젖은 여자가 사내의 시선에 들어왔다. 검정색 티셔츠에 흰색 나팔바지를 입은 젊은 여자였다.

 

여자의 바지는 너무 얇았다. 여자가 한 발 한 발 계단을 밟아 내려올 때 사내의 시선은 바지를 타고 차츰 올라갔다. 꽃무늬 팬티. 사내의 시선은 여자의 가랑이 사이에 한참 머물러 있었다. 여자는 비에 쫓기는 사람들에 밀려서 사내 곁을 살짝 빗겨 계단을 내려갔다. 순간 사내는 향수 냄새와 여자만이 갖는 독특한 냄새를 맡았다. 바지 앞섶이 점점 부풀어 올랐다. 사내는 껑충 걸음으로 여자의 뒤를 따라갔다.


계단을 내려선 여자가 잠깐 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사내는 몇 걸음 뒤에 멈춰 서서 딴청을 피웠다. 곧이어 여자의 앞쪽으로 팔을 쳐든 키가 자그마한 남자가 걸어왔다. 웃으면서 여자에게 다가오는 남자의 시선을 피하느라, 사내는 벽 쪽으로  몸을 바싹 붙였다. 고개를 수그린채 한 손으로 바지 앞섶을 지그시 누르면서 서 있었다. 남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사내는 벽에서 물러섰다.


좌우를 둘러보고는 지하도를 따라 걷다가 기역자로 꺾어진 길로 접어들었다. 몇 발자국을 떼자 지하상가의 공중 화장실이 나타났다. 낡은 의자에 앉아있던 남자가 화장실 통로로 들어서는 사내에게서 오백 원을 받았다. 사내는 대변을 보기 위한 사람처럼 태연한 표정으로 빼꼼히 열린 나무문을 밀고 들어갔다.

사내는 변기 앞에 서서 바지춤을 열고 성기를 꺼내었다. 성기는 아직까지도 코브라처럼 머리를 쳐들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거친 돌을 꺼내어 뻣뻣이 서있는 성기를 몇 번 내리쳤다. 그러자 성기는 이내 축 늘어졌다. 사내는 늘어진 성기를 앞뒤로 젖히면서 들여다봤다. 표면이 자잘한 흉터로 뒤덮여 있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 화장실에서 걸어 나오는 사내의 안색은 창백했다.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내는 어기적거리며 지하도를 빠져나와 느릿느릿 걸었다. 역 뒤쪽으로 돌아가자 처마가 낮은 기와집들이 열을 지어 나타났다. 집과 집 사이의 좁은 공간은 담이 가로막고 있었고  그 안쪽으로는 짙은 어둠이었다. 몇몇 기와집들은 전면을 개조해서 가게로 쓰고 있었다. 앞머리 쪽에 간판을 높다랗게 붙여, 낡고 더러운 지붕을 교묘히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사이에 여인숙이 끼어 있었고 매연이 낀 입간판에는 불이 들어와 있었다. 사내는 알루미늄 쇠창살이 붙은  여인숙의 문을 바라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골목으로 오르는 계단을 밟았다. 몇 계단 오르자 넓은 길이 나오고 음식점이 죽 펼쳐져 있는 시장 입구였다. 사내는 수퍼에 들러 막걸리, 물, 컵을 샀고 주변에서 순대를 샀다. 사내가 향한 곳은 시장 뒤쪽의 주택가였다.


비닐봉지를 든 사내가 멈춰선 곳은 얼기설기 엮어진 거푸집 앞이었다. 똑같은 형태의 집이 세 채였다. 건물 안쪽에는 슬래브를 받치고 있는 굵은 기둥이 서 있었는데, 기둥  사이사이에는  한줌이 좀 넘을 듯한 굵기의  각목들이 잔뜩 얽혀 있었다.  건물 앞쪽은 빗물에 의해 모아진 토사 때문에 조심스럽게 발을 디뎌야만 했다.  비닐 줄이 앞쪽에 빙 둘러져 있어서 사내는 몸을 잔뜩 구부려서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로 짐작되는 넓은 곳에 앉았다.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놓여있고 한쪽에 벽돌이 무더기로 쌓여 있어 어수선했지만 건물 안은 훈훈했다. 사내는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조끼와 남방을 벗어 비스듬하게 세워져 있는 기둥에 펴서 걸쳐놓았다. 사내는 검정 비닐봉지를 찢어 넓게 펴서 그 위에 순대와 종이컵을 놓았다. 순대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게 희미하게 보였다. 바깥에서 새어드는 빛 때문에 주변의 잡기들은 부연빛깔을 띄고 있었고 천장쪽과 구석은 온통 검은 색이었다.

컵을 입에 대는 순간  언뜻 사내의 귀에 스며드는 소리가 있었다. 사내는 천천히 마시면서 채 바깥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가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 같았다. 빗소리에 묻혀 간헐적으로 들리기는 했지만 틀림없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사내는 입구 쪽으로 조심조심 걸어갔다. 사내의 눈에 하얀 우산이 들어왔다. 흔들리는 머리칼이  마치 우산 끝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천천히 걷는 여자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사내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졌다. 사내는 오른쪽 손아귀에 있는 종이컵을 꽉 움켜쥐었다. 막걸리가 발등으로 주르륵 쏟아지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마신 술 탓에 사내의 얼굴은 정육점의 살코기처럼 뻘겋게 변색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 하얀 우산이 떨어져 뒤집혀졌다. 실밥이 터져 한쪽의 천이 말려 올라간 우산 속으로 빗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먼 기억 속의 어느 여름날처럼 빗방울은 점점 거세어지고 있었다.


                                                                                   ***



한 청년이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그 길은 좁고 가팔랐다. 길을 오르는 동안 남방셔츠는 물에서 건져낸 빨래처럼 젖었다. 그의 손에는 커다란 가방이 들려져 있었다.


비탈진 길을 오르자 넓고 편편한 신작로가 나왔다. 그는 헉헉거리며 쉴 만한 곳을 찾느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자 산자락에 비석이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머리 부분이 둥근데다 주위에 풀이 무성해서 마치 거대한 성기처럼 보였다. 그는 비석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비석에서 눈을 뗀 그는 몇 걸음 떨어진 풀 섶에 앉았다. 손을 부채처럼 흔들다가 그만두고 남방 위쪽의 단추 몇 개를 구멍에서 빼냈다. 그는 몸을 약간 뒤로 젖힌 채 얼굴을 쳐들었다. 남서쪽 하늘에 잿빛 구름이 머물러 있었다. 그는 구름을 쳐다보면서 소나기라도 한 차례 뿌리고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엉덩이를 조금 들어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깊숙이 덮어쓴 모자를 벗어버리고 손수건으로 얼굴과 목덜미를 닦았다. 큰 눈망울과 높은 콧날, 피부가 가무잡잡한 그는 이국적인 미남형의 얼굴이었다. 그의 얼굴은 땀에 흠뻑 젖은 곱슬머리와 잘 어울렸다. 얼굴을 손수건으로 문지르던 그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다른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었다. 일본열도처럼 생긴 붉은 점이 손에 잡혔다. 아, 이놈의 점만 아니라면... 씁쓸한 표정을 짓던 그는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담배에 불을 붙여 힘껏 빨면서 길을 바라보았다. 잡초가 무성한 길에 바퀴자국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길 양쪽으로는 소나무 숲이었다. 산허리를 따라 길을 냈기 때문에, 왼쪽의 숲은 깊었고 오른쪽의 숲은 높았다.

그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아래쪽의 숲을 굽어보았다. 파랗다 못해 검은 빛을 띤 소나무 잎에 햇빛이 뿌려지고 있었다. 소나무의 뾰쪽한 잎이 고기비늘처럼 반짝여서 눈이 부셨다. 얼굴을 찡그리고 있던 그는 고개를 돌려 오른쪽 숲을 올려다보았다. 소나무가 드리운 짙은 그늘에 키가 작은 나무들이 끼어 있었고 풀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가끔 바람이 지날 때면 같은 방향으로 나무와 풀들이 움직이다 멈추곤 했다. 부드러운 바람 소리와 고요, 그것은 완전한 화음을 이루고 있었다.

 

중고생들이 이용하는 길이지만  방학이라서 길이 텅 비어 있었다. 길을 가르쳐 준 사람은 읍내까지 가는데 두 시간 반 정도 걸리며, 숲길만을 한 시간 반 이상은 가야 할 거라는 말을 덧붙었다. 그는 사람의 말소리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는 듯 먼 곳의 소리까지 귀를 기울였다.


걸어 온 길을 따라서 시선을 옮겼다. 길이 구부러지면서 숲 속으로 들어가 버리자 아랫쪽 산을 지나  좀더 멀리 바라보았다. 멀리 뿌옇게 겹쳐진 남빛의 산을 헤아려보다가 갇혀 버렸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그가 가진 것은 옷가방과 바지 주머니에 든 몇 만원뿐이었는데, 돈은 정미소에서 받은 삯이었다. 그곳에서 눌려 살려던 그의 생각은 여주인 때문에 깨져 버렸다. 이년 전 그는 정미소를 제 발로 찾아갔었다.

 장작더미가 타 오르듯 태양이 이글이글하던 시간이었다. 정미소 곁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었다. 그는 은행나무 밑 평상에서 모로 누워 자고 있던 여자를 보았다. 여자의 엉덩이는 유난히 불룩했고 발은 고무신 밖으로 넘쳐흐를 만큼 넓적했다. 먹이를 덥석덥석 삼키는 오리를 연상시키는 여자였다. 그는 사십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를 바라보다 돌아섰다. 여자가 말만 시키지 않았어도 그는 갔던 길을 되돌아 왔을 것이다.

“누가 말해 줍디까?”

 

막 걸음을 떼려던 그의 귀를 울릴 만큼 컬컬한 목소리였다. 그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여자는 그가 뭐라고 대꾸도 하기 전에 잘 왔다고 다시 말을 이었다. 여자의 커다란 눈동자는 재색이었다. 마치 햇빛을 되쏘는 듯해서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여자는 그의 손에 들린 가방을 빼앗듯 받아서 평상에 놓았다. 광대뼈와 턱뼈가 솟은 얼굴이었지만  치아가 가지런해서 웃을 때 보기 좋은 얼굴이었다.  여자는 땀을 줄줄 흘리는 그를 바라보면서 혀를 쯧쯧 찼다.

 

은행나무에서 대여섯 걸음 떨어진 곳에 우물이 있었다. 그는 여자가 시키는 대로 웃옷을 벗고 펌프 밑에 엎드렸다. 펌프질을 하는 여자의 시선이 등줄기를 타고 오르내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귓속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매미소리와 여자의 종아리에 난 검은 털을 보면서 그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는 몸을 닦는 듯 마는 듯 재빨리 상의를 꿰어 입었다.


정미소 주인은 이미 코끝이 빨갛게 변색되어있는 알코올중독자였다. 경운기를 몰고 나가서는 실려 들어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방앗간에서 일을 하다가도 술을 한잔만 들이키면 그 길로 끝이었다. 술 취한 주인을 데려 오는 게 이제는 그의 몫이 되었다. 방아감이 별로 없는 여름내내 술을 입에 달고 살았다.


 벌겋게 녹이 슨 양철 지붕을 빗물이 씻어 내리던 날 밤이었다. 낙숫물 소리가 다른 소리들을 삼켜버릴 만큼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그날 그는 삼국지를 읽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꿈에 누군가에게 쫓기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찌어찌 해서 잠이 깨어 일어나려던 그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통나무처럼 굵고 단단한 여자의 허벅지에 그의 몸은 눌려 있었고 성기가 이미 머리를 쳐들은 상태였다. 여자의 몸에서 흘러나온 분비물 냄새가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여자가 그의 몸에 올라탄 채 숨을 헉헉대기 시작했다. 한참 후 여자가 발정난 고양이 소리를  내더니 그의 상반신에 엎어졌다.

    그는 다음날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방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그러나 상심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그는, 여자의 남편이 고주망태인가 아닌가를 살피고 있었다. 그는 밤이면 방에 불을 켜지 않은 채 문을 조금 열어 두었다.

달이 밝은 밤에는 여자의 긴 그림자가 먼저 문살을 찾아들었다. 여자는 항상 쪽마루에 무릎을 대고 엎드린 자세로 고무신을 벗었다.  고무신을 벗고 있을 때 문을 잠가버릴까 생각도 했고, 때로는 미리 방문을 잠그기도 했지만,  여자가 노크도 하기 전에 문을 열어 줄 수밖에 없었다. 늘 반복하는 결심이었지만 밤만 되면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였다. 그러던 어느날 돌발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명절에도 가족을 잊고 사는 그가 유일하게 모친을 떠올리는 모친의 제삿날이었다.

 

한잔이면 귀밑까지 빨개지는 그가 소주 반병을 단숨에 마셔버린 탓이었다. 그날 밤  여자가 두 번이나 방문을 두들겼지만  그는 문고리를 따 줄 수가 없었다. 그 후 여자는 단 한번도 그의 방문 앞을 얼쩡거리지 않았다. 대신 그를 대하는 여자의 얼굴에 냉기가 돌았다.


일을 그만두기 전날이었다. 어슴푸레하던 시간에 방앗간 주인을 경운기에 싣고 오던 그는 콧수염을 기른 남자와 방앗간 입구에서 마주쳤다. 콧수염은 주인여자와 나란히 서 있었다.

 

"어이, 반버버리!"


콧수염은 말을 하면서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웃음기가 도는 얼굴에 붙은 수염이 마치 가짜처럼 보였다. 그가 경운기 손잡이를 오른편으로 돌리다 바퀴가 하수관 틈으로 빠졌다. 바퀴가 틈을 빠져 나오는 동안 주인여자가 뭐라고 중얼거렸고 콧수염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여자가 삯을 계산해 주던 아침, 잿빛의 눈동자를 보면서 그는 한차례 진저리를 쳤다. 여자는 비뚤비뚤한 숫자가 적힌 노트를 보여주면서 조목조목 설명을 했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건 공짜이고 가끔씩 사온 옷 값만 제한다고 하는데 남은 돈은 쌀 한 가마니 값이 채 안되었다. 먹여주고 재워준 것조차도 공짜가 아니란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는 얼마 안 되는 돈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어금니를 꽉 물었다.

 

 방앗간에서 지내던 일년 동안의 시간이 머리를 스쳐가면서 진땀까지 났다. 여자가 쥐어 준 돈을 내던지고 돌아설 용기가 없었다는 것에 더 화가 났다.  그는 심호흡을 한 뒤 남방을 벗어버리고, 배꼽 근처까지 흘러내린 땀을 닦았다. 다시 손수건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방을 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길바닥만 내려다보며 묵묵히 걸었다.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거의 직선으로 뻗어 있는 길은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그 길바닥에는 풀이 없고 모서리 진 돌들만 잔뜩 깔려 있었다. 비가 오면 물이 길을 타고 흘러내리는지 길바닥이 군데군데 패어 있었다. 그는 붉은 길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얼굴을 찌푸렸다. 찌푸린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띄엄띄엄 흩어져있는 잿빛 구름이 제법 보였다. 그 구름이 서로 뭉쳐서 소나기를 쏟고 갔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젖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았다.

해가 약간 서쪽으로 기울여져 있었다. 그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숲길로 들어선 지 한시간 가까이 되었지만 자신의 위치가 숲길의 중간쯤일 것으로 생각 되었다. 쉬기까지 했으니 아직도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숲길을 벗어날 것 같았다.


 가끔 그의 발에 돌이 채일때면 깜짝 놀라면서 뒤를  돌아보기도 했다.  등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더위도 더위였지만 이제는 두려움까지 겹쳤다.

그는 아무도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두리번거렸다. 아랫배가 무지근하다는 생각을 벌써부터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굵은 소나무 뒤로 돌아가서 소변을 쏟아내었다. 오줌은 소나무 줄기의 거친 껍질을 때리고 튀어서 바지에 방울방울 맺혔다. 그는 바지에 묻은 오줌을 털며 중얼거렸다.


“제기랄.”


그는 그 말을 하면서 전혀 더듬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항상 자신에게 꼬리처럼 붙어 다니던 별명 더듬이나 반벙어리는 붉은 열도보다 더 싫은 말이었다. 늘 놀림을 당해왔던 그를 따뜻하게 대해줬던 사람이 있었다. 첫사랑의 여자였다. 그는 바지의 자크를 올리며 얼굴이 곱상했던 그 여자를 떠올렸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에 만났던 여자였다.


여자를 만났을 때 그는 열일곱이었지만  수줍음이 많았다. 그렇지만 그는 남자로서의 면모를 거의 갖춘 상태였다. 특히 검정 색 교복은 키가 훌쩍했던 그에게 잘 어울렸다. 여학생의 힐끔거리는 시선도 받았다. 왼쪽 뺨의 붉은 점만 아니라면 정말 준수하다 할 만한 외모였다. 그는 붉은 점 때문에 추렴이나 참외서리에도 끼지 못했다. 특히 처녀를 보면 몸이 얼어붙곤 했다.


이웃 동네에서 마주쳤던 여자는 얼굴이 깨끗했다. 하얀 얼굴에 볼이 발그레해서 다른 처녀들처럼 촌스럽지 않았다. 여자는 빨래를 마치고 우물가에서 다리를 씻고 있었다. 먼저 청년들이 낄낄거리며 수작을 걸었다. 그들을 따라갔던 그는 더듬거리며 여자에게 바가지를 빌려 달라고 말했다. 그것도 순전히 청년들이 숙맥이었던 그에게 시킨 일이었다.


여자는 치마를 무릎께까지 걷어 올리고서 뽀얀 다리를 씻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여자는 일어서서 치마를 잡은 채 모자를 덮어 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던 여자가 불쑥 바가지를 내밀었다. 그는 바가지를 받으면서 얼굴을 붉혔다. 한참 시선 둘 곳을 몰라 쩔쩔매던 그는 그만 여자의 다리를 보게 되었다. 그는 다듬이 방망이처럼 매끈한 여자의 다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의 볼은 불이라도 붙은 듯 후끈 달아올랐다.


한 달 내내 짝사랑을 하던 그는 용기를 내어 여자를 찾아갔다. 뜻밖에도 여자는 그에게 상냥하고 친절했다. 그들은 오가는 사람들이 뜸한 언덕길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스물넷이던  여자를 누나라고 불렀다. 여자는 집에 빨리 들어가야 한다 하면서도 일어서지 않았다. 간혹 피곤하다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움직일 때마다 머리에서 세숫비누 향내가 났다. 여자가 몸을 숙여 돌을 던지자 젖가슴이 출렁거렸다. 약간 조이는 티셔츠이긴 했지만 젖가슴의 돌기 부분까지 드러나 보이는 걸로 봐서는 속옷을 입지 않은 듯 했다. 소변이 마려운데도 그는 여자의 가슴을 쳐다보느라 참고 있었다. 해가 설핏해지고 있었다. 더 이상 소변을 참기 어려웠던 그는 길 옆 숲으로 들어갔다.


천천히 걸어 나오는 그는 바지춤을 여자가 빤히 바라보며 웃었다. 그는 여자의 시선이 내려져 있는 바지의 자크에 머물러 있음을 눈치 채었다. 그는 자크를 올리면서 진땀을 흘렸고,  그의 왼쪽 뺨에 자리한 점은 수탉의 벼슬처럼 새빨갛게 변했다.


겨우 마음을 진정 시킨 후 그는 여자의 옆에 앉았다. 여자는 이야기를 하다 미소를 머금은 채 그를 쳐다보곤 했다. 여자가 수줍어하는 그의 등을 어루만지더니 갑자기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대었다. 기습적인 여자의 행동에 몸을 빼던 그는 뒤로 넘어졌다. 여자가 덮치는 바람에 젖가슴이 그의 아랫배를 눌렀다. 순간 그의 성기가 꿈틀대며 일어섰다. 

 

그는 팔로 여자의 가슴을 밀어내는 행동을 취하고 있었지만 하반신을 여자의 허벅지에 밀착하고 있었다. 그의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 겨드랑이와 콧등에 땀이 방울방울 맺히고 있었다. 하반신으로 힘이 너무 들어가서 양쪽 다리가 아예 마비된 것 같았다. 여자가 상의를 훌떡 벗더니 그의 몸 위로 올라가 앉았다. 치마를 머리 위로 뒤집어 벗자 꽃무늬 팬티만 남았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하니 자신의 동정을 유린당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그때뿐이었다. 가끔씩 여자의 꽃무늬 팬티를 떠오르면서 발기가 되곤 했다.
 
그날로부터 일주일 쯤 되던 날 우연히 여자와 하교 길에서 마주쳤다. 여자는 화사한 외출복 차림이었다. 여자의 긴 머리칼이 햇살을 받아 윤기가 흘렀다. 눈 꼬리에 웃음을 흘리면서 만나자던 여자를 거절하지 못했다.

여자네 동네 뒤쪽으로 돌아가면 외진 밭이 하나 있었다. 손바닥 크기만 해서 봄이면 들깨를 뿌려놓고 벨 때나 되어야 주인이 들여다보는 밭이었다. 여자가 안내한 그 밭에는 무릎 높이만큼 자란 들깨의 여린줄기와 잎이 바람에 살랑대고 있었다. 여자가 준비해온 수건을 들깨 위에 깔았다. 이번에는 여자가 누웠다. 

 

다음날부터는 그는 약속 시간에 맞춰 들깨 밭으로 갔다. 여자는 호미와 수건이 담아져 있는 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바구니에서 노란 수건을 꺼내어 들깨 밭에 펼치면서 여자는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수건 위에 누우면 빽빽이 자란 들깨는 양쪽으로 갈라지고 부러졌다. 관계가 끝나면 여자는 푸른 물이든 수건을 탁탁 털어 바구니에 담았다.

 들깨가 키 높이만큼 자라면서 들깨의 향이 짙어졌다. 그는 관계를 치르는 내내 멀미가 나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리기도 했다. 다닥다닥 매달린 흰 꽃에서 풍기는 향이 여자의 질 냄새처럼 역겹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내려오는 길에 그는 계속 침을 뱉어냈다. 그렇지만 그는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어김없이 들깨 밭에서 여자를 만났다.

여자가 바쁘다 해서 열흘 만에 만나던 날이었다. 평소에 비해 여자는 조금 시들한 표정이었다. 여자가 옷을 벗자마자 뒤에서 남자가 끌어안았다. 남자는 무릎의 껍질이 벗겨질 때까지 여자의 몸을 놓지 않았다. 그날은 바람에 휘청대는 나뭇가지가 내는 울음처럼 여자의 신음소리가 청승맞았다.

   "나, 다음달에 결혼해."

 엉덩이를 쳐든 자세로 여자가 말했다. 순간 남자는 여자의 엉덩이에 붙이고 있던 하반신을 떼었다. 여자의 몸에서 빠져 나오자마자  물렁뼈 사이를 채우고 있던 혈액이 순식간에 흩어져 버렸다.

 

  변명조차 없던 여자를 말없이 바라보던 남자는 주섬주섬 옷을 걸쳤다. 그날 밤 남자는 옷 가방을 챙겨 들고 집을 나왔다. 며칠간 떠돌다 누군가의 소개로 찾아들었던 곳이 하필 정미소였다. 정미소의 여자는 첫사랑의 여자와 전혀 다른 외모였지만  순간 비슷한 이미지처럼 느껴졌다.  첫사랑의 여자를 떠올릴 때면 저절로 주먹이 쥐어지고 어금니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그는 길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뭉쳐질 듯 보이던 잿빛 구름은 온데간데없고 하늘이 새파랬다. 햇살만이 얼굴을 쪼는 듯 쏟아졌다. 그는 모자를 다시 썼다. 가도 가도 숲길은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삼거리라도 나오면 헤매 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 넓은 외길이었다. 간혹 작은 길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그것은 묘지나 밭으로 가는 샛길이었다. 그는 답답해서 걸음을 빨리 했다.


구부러진 길을 돌아서자 시야가 좀 트였다. 길가에 밭이 있었다. 길에 붙어 있는 자그마한 밭에는 고추가 심어져 있었다. 막대기에 매어져 있는 고춧대에 더러 빨간 고추가 매달려 있기도 했다. 강렬한 햇빛에 고추가 더욱 붉어 보였다. 어린시절 어머니와 고추를 따던 기억을 떠올린 그는 미소를 머금다가 이내 질척한 눈 가장자리를 손등으로 닦아 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열살이 채 되기도 전에 집을 나갔다. 외가에서는 아버지의 술버릇이 문제라고 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바람나서 나갔다는 욕을 뱉곤 했다.


뜨거운 볕과 귀청을 울리는 매미 소리만이 숲을 지배하고 있었다. 한낮의 더위에 새소리는 멎었고 바람도 멀찌감치 물러났다.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싶었다. 고추밭을 바라보며 옷자락을 흔들어 바람을 일으키던 그는 나무 그늘로 들어갔다. 그늘은  더위를 견딜 만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금방 잠이 들었다.

 

‘툭’

 

물방울이  얼굴에 떨어졌다. 그는 누운 채로 눈을 떴다. 어느새 숲 속이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벌떡 일어나서 돌아보니 길바닥은 이미 젖어있었다. 그가 누워 있던 곳만이 둥글게 마른 채로 있었다.  바지와 구두도 젖어 있었다. 시원하기는 했지만 주변이 어둑어둑해서 무서웠다. 그는 가방을 챙겨 들고 모자를 썼다.


한 걸음을 내딛으려는 그의 눈앞에서 빛이 번쩍했다. 그는 몸을 움찔했다. 이어 우르릉하는 천둥소리가 났다. 가늘게 내리던 비는 숲을 집어삼킬 듯 좍좍 쏟아졌다. 나무 사이로 빗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우선 비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초행길인 그로서는 암담한 노릇이었다. 그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이 아래쪽 길로 옮겨가다 멈췄다. 희끄무레한 것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하반신에 힘이 풀리면서 주저앉을 것 같아 나뭇가지를 움켜잡았다. 머릿속에서 귀신이라는 낱말이 떠올라 그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움직이던 희끄무레한 그 물체가 멈춰 섰다. 그는 그 물체가 사람이며 여자라는 걸 알아보았다. 교복을 입은 여중생이었다.

 

비에 젖어 뻣뻣해진 까만 치마에서 빗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단발 머리칼이 찰싹 들러붙어 있는 그 소녀는 눈이 둥그스름하고 입술이 조그마했으며 목이 길고 다리가 가냘팠다. 그를 발견한 소녀는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그는 가늘게 떨리는 소녀의 턱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노, 놀라지 마. 나 나쁜사람 아니야.”


그는 소녀를 안정시킬 수 있는 다른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 비를 피, 피해야 할 텐데...”

 

그는 하늘로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경계하는 눈초리의 소녀는 빗속을 그대로 갈 모양이었다. 소녀는 눈을 내리깔고 걸음을 옮겼다. 소녀를 향해 그는 소리쳤다.


“이, 이런 빗속을 어, 어떻게 가려고?”

 

그의 목소리가 컸던 모양이었다. 소녀는 멈춰 서서 그를 마주보다가 시선을 피했다.


“혹시 비를 가릴만한 곳이 없을까?”


이번에 그는 말을 더듬지 않았다. 마음이 안정되면 그는 가끔씩 말을 더듬는 걸 잊어버리곤 했다. 특이한 현상이었다. 다시금 소녀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모자를 눌러 쓴 사람은 낯설기 마련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모자를 벗어 들었다. 소녀는 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었다.

 

“얼른 비를 피해야 해.”

 

비가 세차게 내리 꽂히는 땅에서 튀는 뿌연 흙탕물을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산에서 내려온 붉은 빛깔을 띤 물이 길 위로 콸콸 넘쳐흘렀다. 사실 이렇게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저쪽으로 가면 비를 피할 수 있는데...”


소녀가 파르스름해진 입술을 떼고 조그맣게 말했다. 소녀가 가리키는 곳은 그가 이미 걸어왔던 길이었다. 갸우뚱거리던 그는 소녀의 뒤를 따랐다. 과연 그런 곳이 있었다. 길을 내기 위해서 파다가 그만 둔 곳 같았다. 위쪽에는 커다란 바위가 산자락에 위태롭게 박혀 있었다. 밑에서 받쳐 주는 바위가 있긴 했지만 금방이라도 떨어질듯 싶었다. 바닥에는 납작한 돌이 몇 장 깔려 있었다. 그곳에 먼저 앉은 소녀는 태연한 표정이었다. 그는 머리 위의 바위를 보며 주춤거리다 앉았다.


비가 조금씩 들이치기는 했지만 바닥이 평평해서 앉아 있을 만한 곳이었다. 그는 발을 모두고 마름모꼴로 다리를 벌려 앉았고 소녀는 무릎을 세우고 웅크린 자세였다.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 낙서로 남아 있었다. 복숭아 모양의 하트와 화살표가 깔린 돌에 그려져 있었다. 크레용으로 비뚤게 쓴 누군가의 이름도 눈에 뜨였다. 짓궂은 학생들의 장난인 것 같았다. 그맘때쯤엔 누구나 하는 장난이었다. 그도 종이에 여자의 젖가슴을 그리며 가슴이 두근거렸던 적이 있어서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미소를 짓자 온몸의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시야를 뿌옇게 만드는 소낙비를 보자 다시 초조해졌다.


그는 비가 빨리 그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름날의 소나기는 여우 장가드는 것처럼 햇살이 비치면서 몇 방울 떨어지고 마는 경우도 있었지만 가끔은 하늘 복판이라도 빠진 것처럼 퍼부어 대는 경우도 있었다. 비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언제 그칠지 예측할 수 없는 게 여름철의 날씨이기도 했다. 그는 모자를 움켜쥔 채 망연히 검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남 앞에 설 때 늘 모자를 쓰는 게 그의 버릇이었다. 심지어는 밤에도 모자를 쓰고 밖에 나오곤 했다. 지금 그는 소녀의 존재를 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사람이 옆에 앉아 있기 때문에 마음이 든든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산길에 접어든지 한 시간 반이 넘었지만 쉬고 자는데 허비해 버려서 앞으로도 한 시간 정도는 걸어야 산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만약에 비가 종일 쏟아진다면 큰일이었다. 빗속을 뚫고라도 가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그는 소녀를 돌아보았다. 소녀는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소녀의 교복 상의는 데드롱직 얇은 천이었다. 소녀가 웅크리고 있는 바람에 얇은 옷이 몸에 찰싹 달라붙어 속옷이 비쳤다. 브래지어 선이 겨드랑이를 지나 가슴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의 시선은 소녀의 귀에서 가느다란 목으로 흘렀다가 어깨를 지나 젖가슴을 감싸고 있는 브래지어에 멎었다.


 얽혀 있는 꽃무늬. 그는 어지럽고 가슴이 떨렸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호흡을 크게 들이켰다. 그의 들숨에 따라 들어와 콧속을 온통 휘저은 것은 소녀만이 갖고 있는 특유한 냄새였다. 그는 숨이 콱 막혀 왔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의 성기가 고개를 쳐들었다. 바지를 뚫고 나올 것만 같아 그는 다리를 잔뜩 오므렸다. 억제할수록 가슴이 벌렁거리면서 눈은 점점 충혈 되고 있었다.


갑자기 그는 소녀의 상체를 끌어안았다. 소녀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술이 벌어졌다. 그는 억센 힘으로 소녀를 흙탕물이 흐르는 바닥에 끌어다 눕혔다. 이어 그의 손이 소녀의 치마를 잡아챘다. 치마가 찢어지면서 가냘픈 다리와 손바닥만한 하얀 팬티가 드러났다. 소녀가 소리를 지르면서 버둥거려서 팬티를 벗기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그의 엄지손가락 두 개가 소녀의 양쪽 목을 더듬었다. 잠시 후 날카로운 소리는 빗소리에 묻혀 버렸다.


그의 성기는 소녀의 허벅지 사이에 난 까만 색 여린 풀 사이를 헤집고 있었다. 목표지점에 닿았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성기를 밀어 넣었다. 그의 얼굴은 점이 어디에 있는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시뻘건 빛깔이었다. 끈적한 액체를 쏟아 부은 뒤 그는 쓰러질 듯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소녀의 몸에서 흙탕물 위로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지를 추스른 그는 비를 맞고 있는 소녀의 하반신을 무심하게 내려다보았다. 첫사랑의 여자와 정미소의 여자가 차례로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


중절모를 손에 든 사내가 가건물에서 걸어 나왔다.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사내는 손잡이를 하늘로 향한 채 빗물을 게워내고 있는 흰 우산을 바라보면서 중절모를 깊숙이 눌러썼다. 사내는 길바닥에 침을 뱉어내고는 왔던 길을 밟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 끝 -


 



김은숙   200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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