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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실 속의 여자


 

 

 

 

 

 

  대리석 성모상으로 쏟아져 내린 햇살이 반사되어 눈을 찔렀다. 눈조리개를 좁혀 성모상을 응시하던 나는 두 손을 마주 대면서 고개를 숙였다. 눈을 감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평생 탈모증으로 고생할지라도 잡념을 제거할 수 있다면 머리털을 한 움큼 뽑아내고 싶었다. 마주 댄 두 손을 떼고 양팔을 내리면서 시선을 돌려 철골이 비죽비죽 솟아 나온 본당을 바라보았다. 수리중인 건물 외벽은 불에 덴 살처럼 보기 흉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천장에 발열체를 달아 놓은 것처럼 후끈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벽에 붙어있는 선풍기 몇 대가 더운 바람을 게워내고 있었고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들의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 싫어서 통로 옆에 임시로 놓은 일인용 의자에 앉았다. 찬송가를 펴고서 손수건으로 턱 아래에서부터 뒤 목덜미까지 문질렀다. 신부의 설교는 내 귀에 닿으면 튕겨져 버리는 것 같았다. 배우지도 못한 노래를 따라 부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고역이었다. 벙어리처럼 입만 벙긋거리다가 책을 덮었다. 묵상기도에 들어갔다.

“모든 게 다 제 잘못인 줄 압니다. 용서하게 하시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용서라니 어떻게 용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중얼거리던 나는 멎었던 편두통이 시작되자 이마에 손을 대고 눈을 떴다. 묵상기도 중에 슬그머니 성당을 나왔다.

입교를 하고 교리를 배우게 되면 달라지리라는 생각이었지만 성당에 들어서면 오히려 더 번민에 휩싸이는 것 같았다. 가슴속이 튀김을 만들어 내는 기름처럼 지글지글 끓어오르곤 했다. 바깥으로 나오자 햇살에 눈이 욱신거렸다.

이제 남편은 더 이상 외박을 하지 않는다. 비디오 촬영을 나갔다가도 제 시간에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약간 고개를 숙인 채 내 눈을 피해 들어오는 남편을 쳐다보면 오래 묵어 교활해진 개가 떠오르기도 했다. 남편과 피부접촉도 꺼려져 좁은 통로에서는 엇갈려 지나는 것조차 피했다.

여자와 헤어진다 해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 상황에 맞는 욕이 있다면 아마 옛날 초등생들이 멋모르고 지껄여대던 누가 누구하고 붙어먹었네, 라는 차원이나 되지 않을까.

남편은 내가 남긴 흔적을 보고 대처하는 방법까지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입으로는 차마 토해내기는 어려웠으리라. 나도 몇 번인가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려 했지만 울분에 못 이겨 쓰러질까봐서 그만두곤 했다. 이십대부터 나는 저혈압이었다. 사건이 발생했던 날 새벽에 술을 마시고 딱 한 번 싸웠을 뿐이다.

그날 밤 남편은 문을 닫을 시간이 지났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춘기를 혹독하게 앓는 중학 3학년짜리 큰아들 때문에 저녁에는 늘 집에 있어야했기 때문에 나는 남편에 대해서는 잠시 잊고 있었다. 학원 수업이 없는 날은 초저녁부터 아들을 기다리다가 9시쯤 되면 동네 피시방을 뒤지곤 했다. 아들은 담배연기에 푹 절은 채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무표정한 아들의 얼굴을 보면 게임 중독이라기보다는 반항일 거라는 생각이 앞서곤 했다. 저녁10시부터 면벽을 시작한지 한 시간 째였던 아들이 잠자리에 드는걸 보고 나도 어찌하다 잠이 들었다.

깊은 잠에 빠져있던 나를 소스라치게 한 건 전화 벨소리였다. 벌떡 일어난 나는 진저리를 치면서 수화기를 움켜쥐었다. 시어머니였다. 나는 수화기를 들고서 시계를 쳐다보았다. 가위 모양의 시침과 분침이 막 어긋나는 새벽 3시 18분쯤이었다. 나는 아범이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을 거라는 말을 하면서도 가슴이 떨렸다. 시댁에 변고가 있나 싶어서였다. 시어머니는 시아버지가 자다 일어나서 아들을 찾기에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었다.

치매 증세가 있는 시아버지는 고집불통인 아이 같았다. 찾는 물건이 없으면 사다가 손바닥에 놓아드려야 할 정도였다. 시어머니는 가게로 전화를 넣어 보겠다고 하고서 수화기를 놓았다. 하지만 나는 잠이 깊이 든 상태에서 갑자기 깨어난 탓에 마음이 쉽게 진정되질 않았다. 수화기를 놓고 멍한 표정으로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다시 전화벨이 울려서 들었더니 시어머니였다. 가게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모양이라는 말을 했다. 잠을 깨워서 미안하다며 걱정 말라고 했지만 말끝을 흐리는 걸로 봐서 조바심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은 핸드폰을 지니고 다니면서도 밖에서는 늘 꺼놓고 있었다.

하긴 아무 말도 없이 늦게 들어오는 경우는 흔치 않는 일이었다. 낮이면 모를까, 저녁에는 마지못해서라도 모임이라든지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에는 미리 말을 했다. 가게에 일이 밀려서 늦게 들어올 때도 있었지만 그런 상황이었다면 내게 전화를 했을 것이다. 수화기를 놓은 후 나는 노인들 때문에라도 가게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경기가 침체되면서 좀도둑이 급증했다. 셔터가 없는 가게의 유리창을 망치 같은 연장으로 부수고 값나가는 몇 가지를 훔치는 경우가 흔했다. 작년에는 약수터 부근의 슈퍼에서 밤늦게 주인남자가 옆구리를 칼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목격자가 있어서 쉽게 잡기는 했지만 그 뒤로 가게를 하는 사람들은 일찍 문을 닫았다. 그런 일을 떠올리자 불안감이 급속도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를 타고 있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티셔츠를 입고서 느낌이 이상해 어깨부분을 만져보니 솔기가 잡혔다. 뒤집어 벗어 다시 입느라 이마에 땀방울이 솟았다. 여분의 가게 열쇠가 걸려있는 장식장 안쪽의 벽을 더듬는데 주둥이가 긴 장식용 도자기 그릇이 거실에 떨어졌다. 깨지는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금이 가 있었다. 주둥이 쪽을 잡아드는데 금간 부분이 떨어져 나가면서 깨지는 소리를 냈다. 나는 조각을 대충 주워 식탁에 올려놓고 열쇠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각이라 몇몇 술집을 제외하고는 불이 켜져 있는 상가가 드물었다. 띄엄띄엄 서 있는 가로등이 좁은 이면도로 한쪽으로 주차된 승용차에 빛을 뿌리고 있었다. 짙은 어둠이 바퀴를 휘감고 있었고 몸체는 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마치 괴물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모양새였다. 나는 한 발이 채 땅에 닿기도 전에 다른 쪽 발을 재빨리 옮기곤 했다. 빠른 걸음에 주머니의 열쇠가 동전과 부딪쳐서 짤그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멀리 삼층 건물이 보였다. 우현 25분 칼라 현상소라고 쓰인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불이 꺼져있어서 전체적으로 글자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간 나는 그 앞에 서서 골판지처럼 촘촘하게 엮어진 철제 셔터를 바라보았다. 셔터의 골을 재빠르게 훑던 내 시선이 맨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딱 멎었다. 거기에서 흰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셔터 끝에 매달린 자물통의 구멍에 열쇠를 집어넣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평상시 그대로였다. 가위질한 흔적도 없고 누군가와 술을 마신 것 같지도 않았다. 아마 남편은 암실에서 일을 했던 모양이었다. 아침 일찍 찾아가야 하는 사진은 늦게라도 현상을 해야 했다. 서류에 붙이는 명함판 사진이나 여권 사진은 시간이 촉박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현상 기계는 스위치를 켜 놓고 열이 오르길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문을 닫을 무렵 찍은 사진은 암실에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암실로 들어가기 전에 문 앞의 검은 색 커튼을 내렸다.

더듬거리며 전구를 찾아 스위치를 비틀었다. 암실이 조금 밝아졌다. 인화지에 감광하지 않은 그 불빛은 흑백 사진조차도 칼라처럼 보이게 했다. 수정 작업을 거쳐야하는 사진들이 집게에 물린 채 줄에 걸려 있었다. 사진 속의 사람들은 거의가 웃는 표정이었다. 필름의 광고문구가 아니라도 행복한 순간을 포착한 사진들이겠지만 순간 그런 생각이 싹 가셨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눈동자가 섬뜩하게 다가왔다. 나는 일주일 전쯤에 결혼한 커플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흰색 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안고 있는 신랑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전구의 낮은 조도 때문에 표정이 어두워보였다.

사진을 훑다 내려다보니 탁자에 물그릇이 놓여있었다. 필름에서 벗어난 사진 중 물에 담겨 있다 나오는 건 흑백 사진 뿐이었다. 내일 아침에 쓸 사진이라면 이미 물에서 건져놓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호기심이 생겼다.

탁자 위로 몸을 구부렸다. 물속에는 필름을 여러 장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물 때문에 사진이 어른거려서 나는 그릇을 들고 들여다보았다. 눈을 깜박거리던 나는 그릇을 놓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빨라졌던 맥박을 진정시킨 나는 그릇에서 사진을 꺼내 들었다.

노출계를 열어 찍어서 판화와 같은 사진이었다. 짙은 화장 때문에 여자의 눈 가장자리가 까만 먹물 빛깔이었다. 침을 흘릴 것처럼 입을 벌리고 있던 여자는 게슴츠레한 눈으로는 나를 마주 보았다. 사진을 적셨던 물이 양쪽 손가락으로 힘껏 벌린 음부를 지나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사진을 팽개치고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누군가의 부탁으로 그런 사진을 현상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자위의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 아래쪽의 사진은 다른 여자와의 정사 장면이었다.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여자는 엉덩이를 통해 음부를 노출시키고 있었다. 아래쪽에 누워있는 남자는 여자의 몸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 사진을 들고 암실에서 나왔다. 밝은 등 아래서 그것을 바라보는 잠깐 동안 내 안의 많은 것들이 허물어지고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사진을 뚫어져라보던 나는 토할 것 같아서 아예 밖으로 나왔다.

암실의 불을 켜두고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가지고 나온 사진을 주머니에 넣었다. 달이 있는 밤이라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눈높이보다 조금 높은 위치에 달이 있었고 하늘에는 엷은 구름이 끼어 있었다.

한참 호흡을 고르는데도 벌렁거리던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집을 향해 길을 밟아가다 되돌아섰다. 맨 정신으로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도 아는 술집에서는 술을 마실 수가 없었다. 가게에서 좀 떨어진 사거리의 소주방으로 갔다.

새벽 네 시가 다되어가고 있었지만 두 테이블에 중년 남자들이 앉아 있었다. 한 테이블에는 셋이서 뭔가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기둥 옆의 테이블 앞에는 남자가 혼자 앉아 있었다. 재봉틀처럼 들들 거리며 돌아가는 환풍기는 부유물처럼 떠다니는 담배 연기를 절반도 뿜어내지 못했다.

마치 내가 담배를 피우듯 목이 매캐해졌다. 차라리 담배 몇 개비로 방금 겪었던 일을 깡그리 태워 없애버릴 수 있다면 억지로라도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여자가 낡은 플라스틱 쟁반 위에 물을 한 컵 내 오자 나는 담배를 한 개비만 가져다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기침소리에 남자들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꺼버리고 소주를 따랐다. 첫 모금은 면도날처럼 목구멍을 한차례 긋고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가져온 안주는 손도 안대고 소주를 들이키면서 남편의 행적을 유추하기 시작했다.

손님으로 오는 여자들은 미소를 짓는 경우가 많았지만 남편은 거의 무표정했다. 남을 대할 때 상냥한 표정을 짓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습성이랄 수 있다. 이성간에는 특히 그러하다는 것을 나는 가게를 하면서 종종 느끼곤 했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남편은 키가 크고 깔끔한 타입이어서 여자들에겐 관심의 대상일 수도 있었지만 항상 손님을 무뚝뚝하게 대했기 때문에 여자가 주변에서 맴돈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긴 머리의 여자는 뒷모습만 찍혀서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먹물 색으로 찍힌 그 여자의 얼굴은 눈에 익었다. 그 여자는 남편을 보면서 보일 듯 말듯 미소를 짓곤 했다. 마른 데다 가슴이 납작해서 볼품없는 몸매였지만 눈 두덩이와 입술의 짙은 색조 화장이 퇴폐적인 느낌을 주던 여자였다.

한쪽 머리로 한쪽 눈을 가리다시피 한 단발머리의 여자는 올 때마다 필름을 한 두통씩 내밀곤 했다. 대부분 여자들끼리 찍은 사진이었다. 긴 머리의 여자도 그 중 하나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래된 일이라서 사진 속 여자들의 얼굴을 낱낱이 기억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노출이 심한 옷이나 끼이는 옷을 입고 빨간 입술을 벌려 약간 어색하게 웃던 여자들은 같은 부류로 보였다. 여자들은 간혹 머리에 선글라스를 얹은 채 외설적인 자태로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을 골라내는 동안 나는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노래방이나 단란주점에 나가 몸을 파는 유부녀들이 흔한 세상이니 특별한 사진은 아닐 수도 있었지만 어울리는 여자들이 한결 같다는 그 점이 내 비위에 맞지 않았다. 나는 그 여자가 가게에 들르면 거의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곤 했다. 어느 틈에 나는 안주를 씹듯 그 여자를 생각 속에서 씹고 있었다.

술이 취하는지 오른쪽 이마가 띵띵했다. 버릇처럼 편두통이 일 모양이었다. 남들은 술이 깰 때 두통이 생긴다지만 나는 술이 취하면서부터 두통이 일곤 했다. 관자놀이를 누르다가 컵에 담겨 있는 냉수를 들이켰다. 이제 보니 영화의 제목을 간판으로 내건 술집답게 벽에 걸려있는 게 다 영화의 화보였다. 우리 가게에도 패널액자에 끼워져 벽에 걸린 풍경사진이 있었다.

남편이 작품 사진을 찍으러 다닌 건 오래 전이었다. 처음에는 풍경사진을 주로 찍었다. 남편은 현상기계에서 사진이 나오면 하던 일을 제쳐놓고 사진을 들여다보곤 했다. 요즈음에도 가게에서 인화하는 건 풍경사진 뿐이었다.

일정이 당일에서 일박 이일로 슬그머니 바뀌었을 때 그러려니 했던 건 그때의 상황이 나빠서였다. 토요일 오후의 싸움은 아이들로부터 비롯되었다. 일찍 귀가한 아이들과 음식을 해주고 함께 있노라면 남편을 푸대접한다면서 벌컥 화를 냈다. 내가 아이들에게 유난히 애정을 쏟았던 건 가게를 한다면서 떼어놓는 이유에서였다. 남편은 그런 상황을 전혀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화가 나서 차 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고 시동을 걸면 나는 달력을 쳐다보곤 했다. 어김없이 다음날이 가게의 휴일이었다.

음식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있어? 집구석 좀 봐. 사람 사는 곳이야? 어느 때는 그렇듯 의도적으로 시비를 걸면 융통성 없는 나는 걸려들기 마련이었다. 남편은 나갔다 오면 내게 그만큼 부드러워지곤 했다. 바람이나 쐬러가겠지 라고 생각하던 그 세월이 벌써 오 년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 한번도 ‘남편이 여자와 함께’ 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가정주부로 보기에는 그 여자는 지나친 감이 있었지만 간혹 가족사진을 뽑아 가는 걸로 봐서는 가정주부임에는 틀림없었다. 길고 가는 어깨를 자랑하고 싶어서였는지 어깨가 파인 티를 입고 가게에 오곤 했다. 팔을 들면 겨드랑이의 털과 젖가슴이 제대로 가려지지 않는 브래지어의 얇은 천이 내다보여서 천박한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여자는 어느 해 여름에 유난히 우리 가게를 들락거리다 자취를 감추었다. 아마 남편도 여름부터 외박을 시작했을 것이다.

장마가 막 끝날 무렵이었는데 새벽바람이 차서 일어나 창을 닫으려다 남편 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함께 갔던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바람에 운전대를 잡을 수가 없었다는 남편의 변명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떠올랐다.

이제 소주를 억지로 삼키려 애쓸 필요도 없었다. 입에 털어 넣을 때마다 탄산이 빠진 사이다처럼 혀끝에 단맛을 남기고 미끄러지듯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케첩과 뒤범벅된 소시지를 손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으면서 술에 취했다는 생각을 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는 건너편의 남자를 피해 접시와 병을 들고 구석진 자리로 옮겼다. 자리가 비좁아서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자 치마가 의자에 걸렸다. 휘청거리는 몸을 이리저리 틀어 치마를 빼면서 집에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뒤척거리다 눈을 뜨니 거실이었다. 창을 통해 한낮의 열기가 스며들고 있어서 시계를 보았다. 열한시가 넘어 있었다. 밤에 입은 옷차림 그대로였기 때문에 일어나면서 버둥거렸다. 무릎이 치마에 슬려 따끔거려서 들여다보니 자잘한 피딱지가 앉아있었다. 택시에서 내리면서 넘어졌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집에 와서는 남편에게 다짜고짜 욕을 퍼부었던 것 같았다.

카펫은 뭉뚱그려진 채 소파에 던져져 있었고 쓰레기 봉지에 무엇인가가 잔뜩 담겨 있었다. 날카롭게 삐져나온 게 유리조각이어서 본능적으로 벽을 쳐다봤다. 가족사진이 걸려 있던 곳의 벽지가 액자 크기만큼 흰빛을 띠고 있어 텅 빈 공간 같았다. 부근에 못 자국이 흉터처럼 남아 있었다. 쓰러지듯 다시 거실 바닥에 누웠다. 팔을 벌리고 누워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는 천장의 장식용 선풍기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암실에서부터 쏟아질 것만 같았던 눈물이 그제야 솟구치기 시작했다.

부부 사이는 관계의 단절이 쉬운 남만 못하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밥 준비는 했지만 남편에게는 차려주지 않았고 가게에는 거의 나가지 않았다. 남편이 비디오 촬영을 나갈 때 잠깐 가게를 보는 게 고작이었다. 나는 내 화장품까지 딸 방에 두고 그 방에서 잠을 잤다. 말하자면 한 지붕 두 가족이 된 셈이었다. 남편의 폭력을 피해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던 한 여자의 삶이 나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가정 폭력에 관한 보도가 유난히 많았다. 나는 남편에게 이혼하자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불면에 시달리던 나는 결국 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내겐 시계의 바늘 소리나 비 내리는 소리, 모기의 윙윙거림조차 대단한 소음이었다. 새벽까지 그런 소음에 시달리다 잠이 들었는데 가위 눌리듯 깨어보면 겨우 삼십 여분이나 한 시간 정도 잤을 뿐이었다. 불면에는 술보다 더 좋은 게 없었다. 약은 나를 가수면의 상태로 몰고 갈 뿐이었다. 밖에 나가서 술을 마시는 일은 그날 이후 자제했다. 대신 소주와 맥주를 한꺼번에 사다놓고 두 가지를 섞어서 맥주 컵으로 마시곤 했다. 그러기를 벌써 두 달째였다.

성당에서부터 줄곧 그런 상황을 떠올리다보니 또다시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목에 줄이 매어져 주인에게 끌려가는 개처럼 버둥거리고 있었다. 한낮을 비껴난 시간이었지만 지열과 복사열이 피부의 무수한 구멍을 통해 몸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땀에 젖은 머리칼까지 가는 철사 줄처럼 목을 칭칭 감아 조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머리를 길렀던 이유는 남편 때문이었다. 꼭 물에 빠진 생쥐 꼴이네. 둘째 아이를 낳을 무렵 파마를 하지 못하고 짧은 커트만 했을 때 남편은 나를 쳐다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아이를 낳을 무렵까지 음식을 잘 먹지 못해서 볼이 홀쭉했기 때문에 거울을 통해 봐도 내 얼굴이 좀 이상하기는 했다. 그 후 나는 머리를 길러 파마를 하고서 끝만 마무리하면서 살아왔다.

이혼은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남편에게 복수는 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더 자라야 이혼은 할 수 있을 것이니 우선 자잘한 일부터 실천에 옮겨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가장 먼저 거추장스러운 머리를 자르고 싶었다. 남편이 싫어할까 봐 여태 미루던 일이었다. 그 다음에는 나도 남편처럼 외도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따지고 보면 남편이 저지른 일은 외도 그 이상이었겠지만.

차라리 묻지마 관광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처럼 답습했다면 그냥 저냥 묵인하면서 살지 않았을까? 언제부턴가 이 동네에도 묻지마 관광이 유행병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상가 친목회 남자들이 타동네의 여자들과 유원지에 다녀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수효를 맞춰 갔던 그들은 제비뽑기를 해서 짝을 정하고 약 세 시간정도 자유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무슨 짓들을 하던 불문율에 붙이기로 했다는 얘기였지만 그 비밀은 오래 지켜지지 못했다. 동네가 발칵 뒤집힌 사건이었다. 그 당시 남편은 어떤 친목회에도 가입을 하지 않았으니 남편이 여자문제를 일으킬 거라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을 것이다. 마치 난데없이 돌멩이 하나가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자는 아기에게 뚝 떨어진 꼴 같다할까. 나는 늘 다니던 미장원 문을 밀고 들어서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카락 냄새와 약간 지린내가 배인 듯한 파마약 냄새가 코에 훅 끼쳤다. 드라이를 하고 있던 원장이 나를 돌아보며 아는 체를 했다. 소파에는 머리를 말고 수건을 뒤집어 쓴 여자들 서넛이 앉아 잡지를 뒤적거리거나 졸고 있었다. 나는 거울 앞의 비어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머리를 자르려구요. 이 정도로 치고 싶네요.”

손으로 내 머리를 만져 가면서 말을 했다. 원장은 눈을 크게 뜨면서 입을 반쯤 벌렸다.

“아... 이왕이면 저 여자처럼 해 주세요.”

이름을 알 수 없는 사진 속의 모델은 오드리 햅번 스타일의 짧은 파마였다. 내 머리카락에 물을 뿌리면서 원장이 혀를 찼다. 원장은 머리칼이 장마철의 풀만큼이나 쑥쑥 자라기 때문에 늘 윤기가 흐른다고 했었다.

"무슨 일이 있어요?"

원장이 머리를 자르려다 말고 거울 속의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원장은 정수리를 향한 뾰쪽한 가위를 치우면서 나를 힐끗 보기는 했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단순한 이유로 머리를 자르는 게 아닐 것이라는 짐작은 할 터였다. 머리를 생명처럼 여기는 건 빛바랜 옛날 얘기라지 만 그렇다고 도마 위의 무 자르듯 긴 머리를 쉽게 자를 여자들은 없을 것이다. 원장은 내게 더 이상 묻지 않고 머리를 싹둑싹둑 잘랐다. 나는 거울 속의 나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오른쪽에서 내게로 물방울의 튀었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한 여자가 고개를 숙인 채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문지르고 있었다. 나는 빨간 매니큐어가 발라진 여자의 손톱과 노란 머리카락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울로 옮겼다. 짙은 눈 화장, 뾰쪽한 턱, 광대뼈. 나는 하마터면 일어설 뻔했다.

“왜 그래요?”

내가 몸을 움직이자 원장은 가위를 치켜들면서 내게 물었다. 이 십여 년 된 경력이라 거의 반사작용에 가까웠다.

"아, 아니요.”

화장하는 스타일까지 비슷한 여자였다. 나는 가슴이 뛰고 속이 메슥거렸다. 내 얼굴이 몹시 창백해 보였던 모양이었다. 원장이 가위질을 멈추고 내 귀에 속삭였다.

“아는 사람예요?”

나는 세차게 도리질을 했다. 닮은 여자만 봐도 심장이 덜컹거리는 증세는 그 후부터 얻어진 병이었다. 나는 어깨 위로 수북이 쏟아지는 머리카락을 보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눈을 감았다. 행복했던 남편과의 한때가 잠시 머리를 스쳤다.

연애할 때 우리는 암실에서 섹스를 하곤 했다. 2평 정도밖에 되지 않아 비좁았지만 붉은 카펫이 깔려있고 붉은 등을 켤 수 있어서 분위기는 그만이었다. 남편은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전구를 이리저리 옮기곤 했다. 붉은 전구가 내 얼굴을 빤히 비칠 때도 있었고 하반신에만 머물 때도 있었다. 남편은 그런 분위기를 즐기는 듯 했다. 전구의 위치가 바뀔 때마다 암실에 걸려있는 사진 속의 사람들의 표정도 달라 보였다. 그때는 현상 기계가 들어오기 전이라서 암실에서 작업하던 사진이 무척 많았다. 아래쪽에서 남편의 몸을 받아들이면서 이상한 느낌에 눈을 뜨면 사진 속의 얼굴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내 몸에 고정되어있는 것 같아 섹스를 하는 내내 남편이 빨리 끝내고 내려가기만을 바랬다.

목덜미가 시원해지는 것 같아 눈을 뜨니 원장이 머리를 자르기 위해 내 몸에 둘렀던 보자기를 걷어내고 있었다. 갑자기 낯선 얼굴이 내 시야에 침입자처럼 불쑥 들어왔다. 거울은 정신 나간 여자가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잘라버린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른 머리칼이 바닥에 떨어져 일부는 원장의 발 밑에 깔려 있었다. 곧 이어 원장과 종업원 둘이서 머리를 말기 시작했다.

파마 약을 바르자 벌레가 온 머리를 헤집고 다니는 것처럼 머릿속이 스멀거렸다. 수건을 덮어 쓴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소파로 옮겨 앉아 잡지를 뒤적였다. 연예인 기사로 도배된 잡지는 오히려 나를 짜증스럽게 했다. 책을 덮고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다 잠깐 잠이 들었다.

“중화제를 발라 드릴게요.”

눈을 뜨는데 종업원은 권총모양의 도구를 머리에 댔다. 손잡이를 조작하자 보글거리는 거품이 뿜어져 나왔다. 지쳐있던 나는 15분 정도밖에 안 되는 틈에 또 졸았던 것 같았다. 종업원이 빠른 손놀림으로 세트를 벌써 풀고 있었다. 머리를 감고 거울 앞에 앉으니 꼭 흑인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어색하죠?”

원장이 내 머리카락 사이에 손가락을 넣고 지압을 하면서 물었다. 나는 억지로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이라 그럴 거예요. 키가 아담하고 얼굴이 작아 오히려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에요.”

원장이 드라이기로 머리를 다듬으면서 수다스럽게 말했다. 나도 긴 머리가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처음에는 남편이 싫어하는 행동은 굳이 하고 싶지 않아 길렀고 나중에는 자르기가 아까워 지금까지 긴 머리로 지내왔던 것이다. 미장원을 나오자 내리는 어둠에 앞질러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집에 들어오자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남편이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다물고 있는 양쪽 입 꼬리가 턱까지 내려가 있었다. 냉랭한 표정을 보자 울화가 치밀었다.

“니네들은 사람도 아니야.”

“......"

묵비권이 최상책이라는 듯 남편은 대답을 하지 않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좀 더 자극적인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룹 섹스를 하니까 어땠어?”

남편의 눈썹이 꿈틀대더니 입에서 의외의 소리가 나왔다.

“성찬이가 맡긴 필름이라고 했잖아! 그 자식이 맡겼다고 말했는데 기억 안 나?”

기억에는 없었지만 암실에서 나온 후 술에 잔뜩 취해 집으로 들어갔던 날 내가 따졌던 것 같기는 했다.

“웃기지마! 이 자식아.”

“뭐라고? 이게...”

남편의 입에서도 욕이 나오려고 했다.

“그러니까 너는 사진을 찍기만 했어야 흔적이 안 남지.”

나는 목소리를 최대한 깔았다. 남편이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떠다밀었다.

“이게 돌았나. 어디서 생사람을 잡고 그래. 머리를 빡빡 깎고 절로 들어가던지 정신 병원에 가지 뭐 하러 들왔어?”

“말 다했니? 너 사진 다시 뽑아서 봐. 그거 니 손가락이던데... 뱀 대가리 말야.”

나는 남편에게 떠밀려 한 걸음 밀려나면서 다시 목소리를 깔았다. 일순 변하는 남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남편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연기를 뿜어내면서 변명을 했다. 그런 손가락을 가진 사람이 흔하다고 지껄여댔다. 남편은 핸섬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친구들 간에는 뱀 대가리란 별명으로 통했다. 친구들 중 그런 엄지를 가진 사람이 두 명만 된다 해도 남편이 그런 별명을 갖기는 힘들 것이다. 나는 잠깐 동안만이라도 남편이 좀 솔직해졌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남편의 변명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말의 완급 조절이 안 되어서 남편의 목 울대가 움직이는 게 불규칙적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목의 울대에 똬리를 튼 뱀이 걸려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현금 카드와 도장을 챙기고 대충 옷을 꾸려서 가방에 집어넣었다.

“더러운 년 놈들......”

남편의 바지 허리춤에 걸려있는 차 열쇠를 핸드백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언젠가는 외도가 보편화 될 것 같다는 생각이야.”

남편이 지나가는 것처럼 지껄이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 남편은 신문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기사를 보면서 말을 하는가 보다 생각했을 뿐이었다. 남편은 사십대 주부들의 외도율이 무려 60프로를 넘어선다는 말을 덧붙였다. 남편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남편과 한 집에서 더 이상 함께 지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암실에서 사진을 보는 동안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교접을 하는 돼지를 떠올렸을 뿐이었다.

남편 차를 끌고 아무 데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고 차안을 들여다보는데 다시금 분노가 치밀었다. 운전석 옆은 분명 내 자리인데 더러운 여자가 앉아서 내 행세를 했을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여자의 분비물과 남편이 정액이 섞인 채 묻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들이 섹스를 해서 뭔가 잉태된다면 파충류나 양서류 같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자 운전석과 옆자리에 침이라도 뱉고 싶어졌다.

앉아서 면허증을 취득한지 얼마나 되었는지 헤아려보다 힘이 쭉 빠졌다. 모서리가 닳을 만치 오래전에 면허증을 받았지만 운전대를 잡은 게 겨우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이런 기분으로 차를 타다가는 대형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운전대에서 손을 떼어 무릎 위에 놓고 바깥을 바라보았다. 간혹 지나가는 사람은 있었지만 낮에 비해서 주위가 조용했다. 마음이 좀 가라앉는 듯해서 핸드백에서 거울을 꺼내 얼굴을 비추었다. 오래 쓴 양은그릇처럼 얼굴이 찌그러져 보였다. 생각해보니 허망한 나이였다.

밤기차를 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갈 곳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었다. 무심한 친정 식구들을 찾고 싶진 않았다. 명절에나 마주치는 그들은 내가 과분한 남편과 산다고 믿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하다 떠올린 사람은 소꿉친구 경자였다.

동창들 말에 의하면 경자는 오 년 전에 이혼하고 온양에서 레스토랑을 하고 있었다. 지난 해 추석에 친정에 갔을 때는 내키지 않아서 그 집 앞을 그냥 지나치는데 경자가 나를 보았던 모양이었다. 그 집 마루에 앉아서 경자가 지껄이는 소리만 듣다가 바쁘다면서 일어섰다. 이혼녀와 이야기하는 것조차도 탐탁지 않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경자는 심성이 착하면서도 상당히 어리석었다. 스무 살 안팎일 때는 연애를 하던 녀석이 떠나버리자 혼자 병원에 가서 아이를 지웠다. 결혼 후에는 그럭저럭 사는 것 같더니 이웃 친구와 춤을 배우다 바람이 나서 이혼을 당했다는 소문이었다. 잘 만나지도 않는 동창들이었지만 누군가의 나쁜 소식은 일부러 전해 주곤 했다.

동창들은 경자를 두고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표현을 했다. 위자료를 한 푼도 받지 못했는데 레스토랑을 차렸다면서 쑤군댔다. 아직도 이혼녀라는 게 부담이 되긴 했지만 우선 전화를 걸어서 의향을 떠보고 싶었다. 다행이라 생각되는 건 그때 경자가 내 수첩을 뺏다시피 해서 번호를 적어줬다는 점이었다.

밤이 늦어서 퉁명스럽게 받으면 어쩌나 했는데 의외로 부드러운 말투였다. 나는 상황 얘기를 했다. 경자는 한참이나 나를 동정하더니 마음이 좋지 않으면 놀러 오라고 했다. 내가 더듬거리면서 정말 가도 되겠느냐고 묻자 경자는 당장에 내려오라고 너스레를 떨 듯 말을 했다. 경자의 말대로 서울역에 가니 열한시까지는 대전 방향으로 내려가는 차가 많았다.

일요일이었지만 자정에 가까워 기차 안은 한산했다. 어떤 사람은 두 좌석을 차지하고 누워있기도 했다. 창가에 앉은 나는 유리창을 통해서 밖을 내다보았다. 암실처럼 어두운 그곳에는 내 얼굴과 옆자리에 앉은 남자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천장에서 내리는 빛에 얼굴은 뚜렷했지만 짙은 빛깔의 옷은 검은 유리창에 흡수되어버렸다. 렌즈의 조작으로 주변 환경은 희미하면서도 얼굴만은 뚜렷이 드러나게 찍은 사진 같았다.

나는 얼굴을 돌려 무표정하게 신문을 보는 남자를 훔쳐보았다. 남자에게서는 나는 향내는 샤워를 했다는 증거였다. 얼굴을 아래쪽으로 향하고 있어서 턱의 늘어진 살이 여러 개의 주름으로 접혀 있었다. 엷은 분홍색의 와이셔츠와 잘 다려진 양복 차림이었지만 오십대 초반쯤 되어 보였다. 남자가 끼고 있는 반지에 동물의 머리가 새겨진 걸 보면서 포르노물을 좋아하는 변태에 가까운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이 동물적인 재미에 빠져있을 무렵부터 나는 외로움을 탔던 것 같았다. 물론 피곤하다 거나 예전 같지 않다면서 성관계를 뜸하게 하던 남편에게 매달리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신혼 때부터 포르노물에 관심이 많았던 남편이 너무 지겨웠기 때문에 오히려 편했다. 그 무렵에는 비디오 대여점에 부탁을 하면 포르노물 테이프도 배달했다. 물론 잘 아는 사람들에 한해서였다. 그게 둘째 아이가 태어날 무렵까지 이어지던 일이었다. 남편은 대낮에도 가게의 텔레비전을 통해 그것을 보곤 했다. 유치원에서 돌아 온 큰 아이가 꺼진 텔레비전을 보는데 오랄 섹스 장면이 뜨는 바람에 그날 큰 싸움으로 번졌었다. 그 후로는 비디오로 포르노물을 보는 것 같진 않았다.

남편이 가게에 컴퓨터를 놓은 이유도 포르노 때문이었을까? 컴맹인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와 섹스를 할 때는 재미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지만 피곤했기 때문에 그러거나 말거나했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나도 산다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끼곤 했다. 하지만 갱년기를 바라보게 되면 우울증도 올 수 있고 삶이 허전해 질 수 있다는 얘기들을 매스컴에서 종종 접했기 때문에 그런 증상이려니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명암판 사진을 찍기 위해 겹쳐진 불빛 아래 앉은 젊은 남자를 바라 볼 때면 헛기침이 나오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고집스레 한쪽으로 갸웃하고 있어서 얼굴을 만져 바른 자세를 잡아 주어야 했는데 그럴 때면 남자의 얼굴에서 끈끈한 무엇인가가 손바닥에 묻어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 남자의 사진을 현상하면서 나는 암실에 그와 누워있는 상상도 했다.

인화에서부터 현상까지 기계가 일을 해주는 동안 나는 버튼을 누르며 남자와 암실에서 정사를 나누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내겐 암실이 사진 현상 공간이 아니라 정사를 나눈 공간으로 더 깊게 각인 되어 있는 탓인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사진관 밖으로 나와 바깥 공기로 몇 번 심호흡하면 그런 생각이 떨쳐져 버렸다. 그만큼 나는 냉철한 성격이었다.

사진을 현상한다면서 혼자서 가게에 늦게까지 남아있던 남편이 간혹 포르노물을 현상했을 수도 있었다. 내가 본 그 사진들이 빙산의 일각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 아닌 다른 여자와 암실에서 정사를 벌였던 게 아닐까? 가게에 불을 끄고 암실에서 얼마든지 그런 일을 벌 일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과 섹스를 하고 싶던 욕망이 사라진 후 섹스에 관계된 잡념만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옆 남자가 나를 쳐다보자 다시 검은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이 남자와의 섹스는 어떨까. 나는 오늘 성당에 나가서 곧장 나와 버렸고 머리를 잘랐으며 가출을 했다. 이제 남은 것은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성격에 처음 본 남자와 섹스를 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신문을 건성으로 보던 남자가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더니 잠을 청했다. 남자의 어깨가 축 쳐지면서 숨소리가 커졌을 때 다행히 스피커에서 천안역이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12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제법 되었다. 떠밀리듯 표를 내고 역사로 들어갔다.

공중전화의 수화기를 들고서 낯선 역을 둘러보았다. 한쪽 대기실에는 몇 사람이 텔레비전에 시선을 꽂고 있었고 부랑자 두어 명이 의자에 거의 누운 자세로 잠에 취해있었다. 경자는 가게로 와서 불이 꺼져있으면 문을 두들기거나 다시 전화를 하라고 했다.

택시에서 내려 건물을 더듬어 가는데 환희라는 두 글자가 한쪽 귀퉁이에 쓰여 있는 간판에 불이 들어와 있는 게 보였다. 상가의 이층에 자리한 가게였다. 창 전체가 붉은 비닐 코팅이 되어 있었다. 유리창이 실내의 불빛으로 인해 투명한 선홍빛을 띠고 있어 창녀촌을 연상케 했다. 레스토랑을 나타내는 글자는 어디에도 붙어 있지 않았다. 이층을 바라보면서 몇 걸음 내딛다가 단란주점이라고 쓰여 있는 입간판과 마주쳤다. 한참동안 나는 입간판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어깨에 멘 가방을 내려 손에 들고 가게 문을 밀었다.

내가 들어서자 맥주를 쟁반에 담아가던 여 종업원이 뒤를 돌아보았고 자리에 앉아있던 경자가 그쪽으로 오라고 팔을 들어 손짓을 했다. 경자와 마주보고 앉아있던 남자들 둘도 얼굴을 돌려 나를 쳐다봤다. 한 남자는 대머리였고 한 남자는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있었다. 초라한 옷차림 때문에 경자가 있는 테이블로 가기가 망설여졌다. 경자는 빨간 카디건과 까만 미니스커트를 입고 까만 그물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뒤쪽을 봉긋하게 만든 샛노란 머리는 가발이었다.

“오랜만이다.”

경자가 손을 내밀었다. 밝지 않는 조명에도 알이 유난히 반짝이는 반지를 보며 다이아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손톱과 입술과 카디건이 거의 같은 빛깔이었다.

“머리가 달라졌네. 잘 어울린다야.”

경자는 사람들 비위를 맞추는 게 습성이 된 것 같았다. 말을 하는 동안 인조 속눈썹을 붙인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아냐. 파마가 너무 강하게 나왔어.”

“그런가? 근데 부잣집 마나님이 옷이 이게 뭐니? 누가 조강지처 아니랄까봐...”

"아파트 하나 장만 한 것뿐인데, 뭐..."

"구청 앞에서 한다며? 잘된다는 얘기 들었다.”

“옛날 얘기야. 지금은 밥이나 먹고살아.”

“요즘이야 뭐든지 그렇지. 우리도 그저 그래.”

경자가 그렇게 말했지만 단란주점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뭐라고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부부가 가게를 함께하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밖으로 돌게 되거든. 게다가 배가 부르면 딴 여자 찾는 버릇은 고자 아니고는 다 갖고 있지. 안 그래요?”

“난 고자예요.”

체크무늬가 그 말을 하고는 킬킬댔다. 눈썹 아래쪽에 꿰맨 몇 바늘의 흉터가 눈에 거슬렀다.

“남자들이 돈 생기면 제일 싫어하는 게 뭔 줄 아니? 인색하고 뻣뻣한 본마누라지.”

경자가 샐쭉한 표정을 짓더니 병마개를 땄다. 차림새부터 옛날의 경자가 아니었지만 또박또박 말하는 것조차 옛날하고는 달랐다. 어릴 때 남자애들에게 맞고 울다가도 집 앞에는 눈물을 닦고 들어가던 아이였다. 계모는 경자가 울면서 들어오면 벌로 저녁을 굶기곤 했다. 제 손으로 밥을 해먹기 전이었으니 쫄딱 굶었을 터였다. 남편에게도 주눅 들어 산다는 소문이었다. 경자는 이혼 후 흔한 말로 180도 회전이었다.

“야..여기 왔으니 술이나 마시고 즐기다 가라. 그렇게 살아봐야 세상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경자가 술병을 집어 들면서 내게 말했다.

“ 제가 따르죠.”

체크무늬가 병을 빼앗아 들었다. 앉은키와 긴 팔로 봐서는 키가 180센티가 넘을 것 같았다. 두 잔을 받아 마셨다. 얘기를 들어보니 체크무늬는 자동차 회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업자였다. 곱실거리는 머리를 뒤로 넘겨 빗어 바람둥이처럼 보였다. 붉은 색과 검은 색의 선이 돗자리처럼 엮인 체크무늬 남방이 불빛 때문에 번져 보였다. 감색 티를 입은 대머리 남자는 나이가 들어 보였지만 친구라며 반말을 했다. 이마에서부터 정수리까지 벗겨져서 나이가 많아 보이는 것 같았다. 정수리에 남은 몇 가닥의 가느다란 머리칼이 에어컨 바람에 흔들거렸다.

체크무늬와 대머리 남자는 계속 말을 했다. 경자의 요란한 웃음소리는 내가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도 웃음에 인색했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남자들은 여자의 웃음소리와 부드러움이 그리워 단란주점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양주가 벌써 두 병째였다. 손님인 그들이 시키는 게 아니라 경자와 종업원이 가져다 먹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종업원 여자가 양주를 가져오더니 아예 옆자리에 앉았다. 여자가 빠른 속도로 술을 마신다는 생각을 했는데 실은 그게 아니었다. 여자의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이면서 테이블 아래 쓰레기 통으로 잔에 담긴 양주가 쏟아졌다. 나는 체크무늬 남자가 부어주는 양주를 받아 마셨다. 경자가 얼음 한 덩이를 입안에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술만 마시니 재미없죠?”

경자가 일어섰다. 경자는 여 종업원은 보내고 남은 술을 룸으로 옮겼다.

암실보다 조금 밝을까. 그곳 역시 붉은 조명이었다. 바닥에는 자주색 카펫이 깔려 있었다. 네모난 공간을 따라 일인용 소파가 네 개 놓여있었다. 둥근 탁자 위의 재떨이에 짓눌러 끈 꽁초 두개가 눈에 띄었다. 의자에 앉으면서 발에 무엇이 걸렸다. 내려다보니 유난히 빨간 휴지통이었다. 미처 닫히지 못한 뚜껑이 뭉뚱그려진 휴지를 물고 있었다. 경자가 발을 들어 테이블 아래쪽으로 쓰레기통을 밀쳤다.

대머리가 앉아있는 내 손을 잡아챘다. 일어서던 나는 체중이 테이블 쪽으로 쏠려 휘청거리다가 남자의 반대쪽 팔에 걸렸다. 남자가 비스듬하게 뒤로 몸을 기울면서 나를 세차게 끌어안았다.

마이크를 들고 있던 체크무늬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대머리의 몸이 체크무늬의 노래를 따라 좌우로 움직였다. 내 몸은 남자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였다. 술에 취한 데다 어젯밤 한숨도 자지 못해서 온 몸이 무기력 증세였다. 눈을 뜨고 있음에도 암흑처럼 느껴졌다. 남자의 가슴에 묻었던 얼굴을 쳐들었다. 붉은 불빛이 내 얼굴에 차갑게 쏟아져 내렸다. 빨간 색은 따뜻한 색이라는 내 고정관념을 깨어버린 게 그 날 암실에 켜진 오 촉짜리 불이었다.

체크무늬가 마이크를 내게 넘겨주었다. 내가 노래를 부르는데 내 귀에까지 목소리가 왕왕 울렸다. 체크무늬가 내 등 뒤로 팔을 둘렀다. 등을 문지르던 팔이 내 목을 감싸면서 티셔츠 속으로 손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유두가 딱딱해지면서 더 이상 성대를 통해 소리가 올라오지 않았다. 나는 마이크를 놓고 룸 밖으로 나왔다.

소파에 앉아 숨을 고르는데 남녀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를 안고 있는 남자는 팬티를 입었고 여자는 전부 벗은 상태였다. 음부와 젖꼭지를 꽃잎으로 가리고 있는 여자는 눈을 흘기면서 살짝 웃고 있었다. 그걸 쳐다보다 어느 틈에 졸았던 것 같았다.

“뭐 하세요?”

체크무늬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어느새 남자가 룸에서 나왔던 모양이었다.

“왜 그리 놀라시나?”

“집에 가야죠.”

내 어깨를 안으려는 포즈로 다가오는 체크무늬를 가볍게 밀면서 일었다. 경부선과 호남선이 통과되는 역이니 새벽에도 올라가는 기차가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없으면 애들이 결석을 할 수도 있었다. 눈을 뜨기 어려울 만치 졸렸지만 기차에서 자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어나기 위해 소파를 붙들었다. 무릎에 힘을 주었지만 무거운 짐을 짊어진 것처럼 몸이 일으켜지지 않았다.

남자가 일으키자 나는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손끝까지 무기력해진 상태라 체크무늬를 따라 여관에 갈 수밖에 없었다.

침대에 엎어져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남자가 침대와 내 몸 사이로 손을 넣어 젖꼭지를 비틀더니 엉덩이로 손을 옮겼다. 남자의 동작이 잠깐 멈추는 것 같더니 하반신에 걸려있는 치마와 팬티가 동시에 벗겨졌다. 무엇인가를 잡으려 해도 손아귀에 힘이 없어 내 손은 침대 밖으로 툭 떨어질 뿐이었다. 나는 장님처럼 허공으로 팔을 뻗어 몇 번 젓다 놓아버렸다.

“으헉!”

내 입에서 나오는 신음소리가 내 귀에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내 양쪽 허벅지는 남자의 양팔에 의해 허공에 들려진 상태였다. 처음에는 면도날처럼 예리한 기구로 하반신의 예민한 어느 부위를 긋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묵지근한 것이 밀려들어오면서 그 부위가 항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침대보를 쥐어짜듯 움켜쥐었다. 아주 단단한 물질이 점점 빠르게 드나들면서 잔칼질을 당하듯 항문이 찢기고 있었다.

허벅지를 타고 무엇인가가 조금씩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면서 비린내와 악취가 풍겼다. 마치 내 몸이 회오리치는 급물살에 감겨있는 것 같았다. 나는 핀 침으로 몸을 찔리는 개구리처럼 사지를 버둥거렸다. 남자의 목구멍을 비집고 올라오던 괴성이 헉헉대는 숨소리로 바뀌다가 잦아들자 내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하루 동안 씹어 삼켰던 음식물들이 식도를 거슬러 올라오더니 서너 번 꼴까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온 방안에 흩어졌다. 차츰 눈이 감기면서 내 코에 스며들던 악취가 엷어지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일어나 보니 음식물이 담긴 쓰레기통을 엎어놓은 것처럼 방안이 더러웠고 악취가 났다. 나는 방안을 한 번 휘둘러보았지만 남자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하반신은 움직이기조차 힘들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강렬한 통증이 꼬리뼈에서 등줄기까지 타고 올라왔다. 나는 두 팔로 버티면서 겨우 몸을 일으켰다. 이불을 젖히니 정액과 혈액과 오물이 뒤섞여 허벅지와 이부자리에 묻어있었다. 마치 내 몸이 하수구처럼 느껴졌다.

타협을 하지 않았으니 강간을 당했다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을 순순히 여관까지 따라왔다. 누구에게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술 탓이었지만 책임은 내 몫이었다. 둥근 모양의 형광등 정 중앙에 까맣게 죽은 벌레가 깔려 있었다. 나는 다시 널브러진 채 그것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들고 비틀거리며 욕실로 들어갔다.

밖으로 나왔을 땐 하늘에 부옇게 밝아 있었다. 우유 끄는 손수레나 신문을 실은 자전거조차 없어 무섭게 느껴지는 적막이었다. 여관 앞에 붙은 가로등이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기적거리며 걷고 있는데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건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셔터는 없고 갓을 씌운 백열전구가 쇼윈도를 비추고 있는 사진관이었다. 아이들 둘을 사이에 두고 찍은 가족사진이 윈도우 안에 놓여 있었다. 그 사진만 달랑 걸려 있는 데다 평범한 외모라서 사진관 가족들일 것 같았다.

애들 어렸을 적에 사진관 쇼윈도에 가족사진을 걸어 놓은 적이 있었다. 밥을 담은 바구니를 들고 가게로 오는데 다섯 살 먹은 딸아이가 친구에게 사진을 가리키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우리엄마....우리아빠...”

 

                                                                         -끝-

 

 

 

 

 

 

김은숙   200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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