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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컨테이너 장


 

1

 

 

무화과가 익을 때쯤이면 비가 잦았다. 여름철에 비해서는 소량이지만 익으면서 궁둥이처럼 갈라지는 무화과 열매에는 치명적일 수도 있었다.  소나기라도 맞는다면 무화과는 홍시처럼 푹 물러지기 때문에 무화과밭을 가진 농민들은 요령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근처의 농부들은 소나기가 오기 전날이면 무화과를 따느라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밭에서 부산을 떨곤했다.

가을이면 참새들은 벼가 익어가는 들판보다는 무화과 밭을 더 좋아했다.  참새 떼들은 가을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개의치 않고 무화과 밭에 장시간 머물곤 했다. 간혹 바람이 줄에 매달린 깡통을 건드리고 지나면 참새 떼들은 허공으로 솟아올랐다가, 깡통이 울리는 소리가 멎으면  다시 무화과 가지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러다가 빗발이 거세어지면 근처의 탱자나무로 피신을 했다. 참새들이 가지 틈새에서 젖은 몸을 털면서 주둥이를 놀리는 시각이면 주변까지 소란스러웠다. 

그날도 소낙비를 피하느라 참새 떼들이 탱자 울타리에 머물고 있었다. 참새들이  잠시 숨죽였던 이유는 누군가의 발소리 때문이었다. 양쪽의 발이 음악의 리듬인 강약처럼 한번은 높고 한번은 낮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가끔씩 새총으로 참새들을 위협하는 사람이었다. 비교적 적중률이 좋은 편이라서 날아가는 게 상책이었다.

밭의 주인장인 장은 걸음을 멈추고 주머니에서 새총을 꺼내었고, 참새들은 준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새 떼가 포물선을 그리듯 근처의 무화과 밭을 한 바퀴 맴돈 뒤 멀리 들판으로 날아가자 장은 내뱉듯 중얼거렸다. 에이씨! 못해먹겠다.  그물을 쳐야지, 원.

거실로 들어 온 장은 주머니에서 새총을 꺼내 던져버리고 냉장고 앞으로 갔다. 소주병은 거실 바닥에 놓고 밥상 위에는 수저만 놓았는데도 상이 흔들렸다. 밥상은 브이자 모양의 쇠다리 하나가 망가져서 수평이 맞지 않았다. 소주 반병을 들이 키고 방구석의 비닐봉지에 있던 망둥어를 꺼내 씹었다.

 드넓던 갯벌이 간척지로 바뀌고 바다는 들 끝으로 밀려났지만 바람의 강도는 여전했다. 바람은 육지와는 다소 먼 섬의 하늘에서부터 구름을 끌어왔고 그 구름으로 하여금 그곳에 비를 뿌리게 했다. 비가 내리면 젖어 거무튀튀해지는 컨테이너는 나대지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에 울타리가 없었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마치 상자 하나가 땅에 떨어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컨테이너에서 살고 있는 장은 비가 내릴 때마다 젖꼭지 부근에 멍울이 생기곤 했다. 귀두만큼 예민한 젖꼭지였다. 습도가 높은 날이면 저절로 일어나는 생리적인 현상이었다. 안개에 젖은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간혹 장은 몽정을 경험하곤 했는데, 장에겐 나름대로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이십대 중반이 지났을 무렵 장은 읍내에 나가 다방의 여자와 관계를 가져본 적이 있었다. 행위를 하는 도중 키스를 하려고 하자 여자가 입안에 있던 껌을 씹었다. 오입이라는 것도 절름발이에겐 언감생심이었다. 이후 장은 그런 곳의 출입은 접었다. 그렇지만 평범한 여자를 사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자들은 소나무껍질처럼 까칠까칠한 그의 손바닥이 스치면 얼굴을 찌푸리곤 했다. 그의 새까만 얼굴에 호감을 가질 여자도 드물었지만 어릴 적에 다친 다리를 더 싫어하는 것 같았다. 걸음을 걸을 때 몸이 약간 기우뚱하는 정도였는데 장이 사람들의 대화에 등장할 때면 이름대신 언제나 절뚝발이였다. 가까스로 여자와 연애에 성공을 해도 여자들은 하나처럼 그의 곁을 떠났다. 떠난 여자라고 해봐야 서너 명에 불과했지만 이유는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최근 들어 이십대 중반 무렵 떠나갔던 여자에게서 휴대폰으로 문자를 받았다. 이십대 초반에 장과 몇 번의 섹스를 나누었던 사이였는데 농촌생활이 싫다며 떠나간 여자동창이었다.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그 여자가 장의 휴대폰을 잠시 만지작거리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 보니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장이 갈등을 하는 사이 여자에게서 문자가 왔고 내용은 남편과의 섹스에 대한 불만이었다. 장은 그 여자의 문자와 전화번호까지 삭제해 버렸다.

일찍부터 장은 농사를 짓던 부모를 도와 7명이나 되는 동생들 뒷바라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산아제한이라는 이유로 콘돔을 무료로 나눠줄 무렵이나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는 구호가 한참일 때도 어머니는 연이어 출산을 했다. 아이들이 먹을 것을 갖고 태어난다는 케케묵은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니던 아버지는 이웃집 아들이 명문대에 합격했다고 하자 큰 아들인 컨테이너 장을 불렀다. 아버지는 열네 살 밖에 되지 않는 장의 어깨에 손수 만든 지게의 끈을 끼웠다. 송진 냄새가 진했던 그 지게는 마르면서 부분부분 갈라졌지만 별문제가 생기진 않았다. 땅딸한 키에 어깨가 유난히 넓던 그는 농사일에 안성맞춤이었다. 지게질에 익숙해지자 약간 저는 다리도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녀리라고 불리던 누이는 열일곱에 연애를 하더니 곧장 남자를 따라가 버렸다. 결국 장만 농사꾼이 되었고 동생들은 줄줄이 상급학교에 진학을 했다.

열너덧 마지기의 논농사로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그는 지대가 높은 일부의 논에 비닐을 쳤다. 비닐하우스에서는 계절과 관계없이 고추가 열리곤 했다. 때론 오이가 때로는 호박이 열렸다. 비닐하우스의 작물은 끊임없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마치 한두 살 터울로 8명의 아이를 둔 아버지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것 같았다. 그는 채소들이 끊임없이 열매를 맺는 것에 대해 화를 낼 때가 있었다.

“이 잡것들이 나 없을 때 별별 짓거리를 다하는 모양이구만. 줄거리를 콱 뿐질러부러?”

그렇게 중얼거리긴 했지만 그게 다 벌이나 나비의 장난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간혹 인공수분도 해야 하기 때문에 순 억지소리였다.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서 하는 말이기도 했다. 다만 그에게도 딱 한 번의 호시절이 있었다.

그의 나이 서른다섯 봄이었다. 오랜만에 들린 읍내 식당이 깔끔해진데다 주방에 서 있는 여자의 뒷모습이 생소했다. 장이 의자에 앉을까말까 갈등을 하는데 여주인이 방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아따 오랜만이네.”

쟁반에 플라스틱 컵과 수저를 올려놓던 여주인이 콧등을 찡그리며 웃었다. 여주인은 알루미늄 주전자를 들고 컵에 물을 따랐다. 주전자의 물이 난로 위로 떨어지면서 타는 소리를 냈다. 수세미질에 재색이 되어버린 쟁반을 든 여주인이 주방 쪽을 돌아 봤다. 낡은 쟁반이라 바닥이 고르지 않아 검푸른 빛깔의 컵이 바르르 떨렸다. 장은 컵을 쳐다보다가 여주인의 시선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 주방에 선 여자는 여전히 뒷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묶은 머리칼의 끄트머리가 앞치마의 끈 매듭까지 닿아 있었다.

“질녀당가요?”

조카가 와서 일을 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혼자 해도 꾸려 나가기에 충분한 식당이었기 때문에 장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녀.”

여주인은 도리질을 했다.

“일이 끝났으면 술이나 한잔 하고 가소. 내가 살텡께.”

손님이 쓰고 버린 일회용 물티슈로 탁자를 문지르는 시늉을 하던 여주인이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장은 여자와 여주인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애순아. 쏘주 좀 갖고 와라 잉?”

여자는 손을 앞치마에 닦더니 궤짝에 있던 소주병을 들고 왔다. 장은 눈을 내리깐 여자를 흘깃 쳐다봤다. 눈썹이 검고 피부가 흰 여자였다.

“경 다 쳐쓰까?”

“아직요.”

여자가 웃으려는 표정을 짓자 잇몸부터 드러났다. 흠이라면 코가 낮았고 광대뼈가 좀 도드라졌다. 목덜미까지 뽀얀 빛깔을 띠고 있어 도시에 머물렀던 여자 같았다. 여자는 장을 쳐다보지 않았다.

“장가 안 갈테여?”

여자가 주방으로 돌아가자 여주인은 목소리를 낮춰 장에게 물었다.

“뜬금없이 뭔 소리래여?”

장의 목소리가 커지자 주인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을 꾹 누르며 얼굴을 살짝 흔들었다.

“찹찹하고 야문 여자여.”

입에서 손을 뗀 식당 주인이 눈짓으로 여자를 가리켰다.

“아짐이 저 처녀를 지대로 알간디요?”

“먼첨 사겨 보란 말이시.”

“보나마나 저 처녀가 마다고 허것지라. 나이도 별라 안 묵어 보이는디...”

나이만 어려보이는 게 아니라 장의 마음에 쏙 들만큼 몸매가 보기 좋았다. 여주인은 주방을 돌아보고 나서 고개를 잽싸게 저었다.

“내가 베 짜데끼 쪼까식 궈 삶았구만. 첨엔 경끼를 허등만 오늘은 낯바닥이 다르네야. 글고 마땅히 갈 데도 없다는 겨. 푸정거리만 묵드래도 전답만 안 부치면 살 맴이 있다고 하드만.”

이미 장은 어떤 여자라도 함께 살 것 같으면 읍내에 방을 얻어 살림만 하라고 할 작정이었다. 질이 나쁜 여자가 아니라는 걸 강조하느라고 식당 여주인은 몇 가지 설명을 덧붙였다. 장은 무심한 표정으로 여자를 쳐다보았지만 일부러 그런 태도를 취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은 그날 밤, 장은 눈을 뜬 채 새벽을 맞았으니까. 여자는 그 후로도 한 달이나 그 식당에 머물렀고 장은 날마다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여자와 낯을 익혔다.

어떻게 해서 여자가 그 식당에 흘러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식당에서는 월급을 줄만한 처지가 아니어서 계속 데리고 있을 수가 없었고, 시집을 오겠다는 여자가 없어 전전긍긍하던 장에게는 굴러들어 온 호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여자를 넘겨받던 날 식당 여주인은 넌지시 피임에 대한 얘기를 했고 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서둘러 얻은 방은 틀어 진 사각형이었다. 티크 장 하나를 놓자 그 옆에 공간이 생겼다. 얼핏 보면 장롱이 틀어진 건지 벽이 틀어진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신혼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한 달 후쯤 여자는 저녁에 오는 그를 그 틈에 앉아 있다가 맞았다. 마루에 붙어있는 미닫이를 여는 소리에 방문을 열어 볼 법도 했지만 여자는 그냥 거기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마루에서 생끗 웃는 얼굴로 장을 맞이할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워째서 꾸석태기에 있당가?”

“할아버지가 혼내서요.”

장은 여자를 빤히 바라보다 할아버지를 찾아 밖으로 나왔다. 마당을 서성거리던 장은 그 식당으로 갔다.

“처녀가 좀 이상해 보이는디요?”

“이상허다고? 여기 있을 적에는 암시랑토 안했는디?”

“할아부지가 어짜고 해쌈서 방구석에 쪼글치고 있드만요.”

“아...그거. 신끼가 있어서 그랴. 꺽정 안 해도 될것이구만. 어쩌다 있는 일이니께 말여. 멀쩡하면 저 인물에 집을 나왔을라고...”

멀쩡하면 당신 차지가 되겠어? 라는 말로 들려서 기분이 나빴지만 생각해보니 그 말이 틀릴 이유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과분한 여자였다. 여자는 장과 띠 동갑이었으며 영어도 알파벳 정도는 알고 있었다. 게다가 장만큼이나 섹스도 좋아했다. 장은 하루에 두 번씩 깊은 숲까지 다녀오곤 했는데 신기하리만치 절정의 시간을 딱 맞추는 여자였다. 일을 치룰 때마다 여자는 두 다리로 장의 허리를 감싸고 양쪽 손으로는 이불을 움켜쥐었다. 아랫배에 붙은 약간의 군살이 물살처럼 움직여서 장은 마치 배를 탄 느낌이었다. 일을 치루다 말고 장은 간혹 아랫배를 위쪽으로 밀면서 하반신을 들여다보곤 했다. 새카만 음모가 감싸고 있는 음부는 아주 오래된 벽화처럼 칙칙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들여다 볼 때마다 느낌이 야릇했고 풍기는 냄새 또한 자극적이었다. 그런 것들을 포기한다는 게 두려웠다. 식당과 오백 미터 정도 떨어져있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삼십분 이상을 허비했다.

여자는 예전의 모습으로 마루에 서서 장을 맞았다. 장이 할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었지만 빙그레 웃으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후 평온한 날이 계속되었다. 몇 달이 흐르자 장은 콘돔을 쓰지 않는 방법에 대해 강구하기 시작했다. 콘돔은 마치 피부위에 가죽을 둘러놓은 것처럼 느낌을 반감시키는 물건이었다. 생각 끝에 형님뻘 되는 사람에게 자문을 구해서 질외사정이라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허공에 대고 찰나의 환희를 느껴야하는 게 못마땅하기는 했지만 콘돔을 사용할 때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다. 다만 그는 규칙 안에서도 사고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지 못했다.

동거한지 여섯 달이 지났을 때 여자가 임신인 것 같다는 말을 했고 장은 한참 멍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바라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이내 가슴이 뭉클하면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아들이든 딸이든 낳기만 하면 얼씨구나 춤이라도 출 것 같았다. 장과는 달리 여자는 점점 히스테릭해졌다. 주변에서는 입덧 때문이라고 했다.

장은 과일이나 순대, 족발을 사서 트럭에 싣곤 했다. 여자는 처음에 그런 것들을 내동댕이쳤다. 보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린다는 이유였다. 과민반응이었고 지나친 오버 같기도 했다. 그런 일이 거듭되면서 그는 무엇인가가 잘못 되어 간다는 생각을 했다. 살얼음판을 딛듯 조심했지만 상황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쪽으로 흘러갔다.

“어짜다 이리 늦었는가?”

과일가게의 백열전구가 장의 머리에 부딪쳐서 추처럼 흔들거렸다. 장은 머리를 뒤로 젖히면서 가게의 주인을 마주보았다.

“수박을 접붙였구먼요. 하우스 수박은 고것이 필수여라.”

“접 붙여?”

“박하고 접 붙이는디  벨나게 까시럽당께요."

“아아...뭔 말인지 알 것네.

남자는 면장갑을 낀 손으로 콧물을 닦았다. 헛기침을 하느라 말을 지체하고 있었다. 장은 남자의 얼굴을 주시하면서 손등을 문질렀다.

“거시기...아무래도 이상허단 말이시.”

“뭔 소린디 차꼬 뜸을 들인당가요?”

담았던 사과를 내밀면서도 남자는 장의 시선을 피했다.

“처자가 가방을 손에 들어서 물어봉께 친정에 간다는 것 같등만.”

“뭐라고라?”

장은 과일 봉지를 던져버리고 그대로 집을 향해 뛰었다. 사과가 길바닥에 떨어지면서 제 각기 흩어졌다. 뒤에서 가게 주인이 ‘거시기 말여.’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전혀 들리지 않았다.

연탄불이 꺼졌는지 미지근한 방바닥에는 장이 사준 임부복이 팽개쳐져 있었다. 확인을 위해 장롱을 열어야했을 때의 느낌은 감당하기 벅찼다.

장롱을 열자 장난감 인형이 방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장은 아이를 낳으면 결혼식을 올리자는 말을 몇 차례나 했었다. 기저귀 천은 개켜진 그대로 서랍 위에 놓여 있었지만 서랍 안은 헝클어져 있었다. 장난감은 장이 엉겁결에 샀고 기저귀천은 어머니가 장만해 준 것이었다. 여자의 속옷은 단 한 장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듯 여자는 오 개월 된 태아를 배에 담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여자는 흔한 말로 무늬만 처녀였다. 마을 사람의 눈에는 나이가 어려서 처녀일 수밖에 없었고 장에게는 호적이 깨끗했기 때문에 처녀일 수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씨가 다른 아이를 둘씩이나 둔 처녀였다. 장의 아이까지 낳았다면 셋이었겠지만 이후의 소식은 알 길이 없었다. 아는 사람 대부분은 애를 지웠을 거라며 잊어버리라 했다. 그러는 사이 십년이 흘러갔다.

여자와 살림을 차렸을 때 낙지가 구물거리던 갯벌은 공사를 시작했다. 매립이 되고 거무스레한 쌀이 생산되면서 그 반대쪽에는 공단이 들어섰다. 밭과 들 그리고 일부 마을과 일부의 산이 공장부지가 되었다. 나라 전체를 놓고 볼 때는 지엽적인 일이었지만 그 읍으로만 보자면 지나친 상전벽해였다. 공단이 들어오면서 도시화바람이 불었다. 읍내의 인구 반 이상이 아파트에 입주를 했다.

공장부지로 땅이 들어가는 바람에 장의 아버지는 보상금을 쥐었고 그 해에 오 층 정도 되는 여관을 매입했다. 농사를 짓던 장도 다른 직장을 구해야했다. 그때부터 장은 인력사무소에 연락처를 등록해 놓고 노가다라고 불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한쪽 다리가 제대로 펴지지 않아 절름거리긴 했지만 능률이 다른 사람보다 떨어지는 게 아니어서 인력사무소에서도 일 순위 잡부였다. 나이가 드니 몸이 예년 같지 않아 인력 사무소에서 가져다주는 일을 줄이고 무화과 밭 한쪽에 몇 가지 채소를 심었다. 채소는 돈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시간이 남으면 잡념이 들끓어서 일을 더 만들 필요가 있었다.

무화과나무는 지난해 폭설로 삼분의 일 정도나 얼어 죽어 작황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예년에 비해 사과와 포도의 당도가 높고 가격이 쌌다. 좋은 가격을 받기 위해 간혹 도로변에 나가봤지만 거의 팔리지 않았다. 이후부터 장은 무화과를 따서 조합으로 넘겼다. 가을을 기다려왔던 장은 기분이 늘 시큰둥한 상태였다.

장은 농사를 지은 댓가로 600여 평의 밭을 아버지로부터 이전했다. 이웃에서 가지치기 한 무화과 가지를 비슷한 크기로 잘라 밭에 꽂아 놓고 반대편 땅을 반반하게 고른 후 컨테이너를 놓았다. 컨테이너 앞쪽의 공간에는 자갈을 깔고 귀퉁이는 화단을 만들었다. 일군 밭에 꽂아 둔 무화과는 몇해 전부터 꽃을 피우더니 점점 작황도 좋아지고 있었다.  

포클레인의 줄에 매달려 내려오던 중고품 컨테이너를 상기된 표정으로 바라보던 날도 오늘처럼 안개가 잦던 가을이었다. 그 이듬해부터 봄부터 무화과도 제대로 열매를 맺었다. 이른 봄 나뭇가지에서 잎이 돋기 시작하면 무화과 열매도 이파리 아래쪽에서 혹처럼 돋아났다. 열매는 봄과 여름에 성장하고 초가을이 되면서 익기 시작했다. 가을의 따가운 햇살과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아주 천천히 익어가는 과일이었다. 가지 끝으로 올라갈수록 열매가 작으며 끄트머리에 붙은 열매는 익지 않은 채 겨울바람에 말라버리곤 했다.

곧게 자라지 못하는 천성을 갖고 있어 나무는 고목이 되어도 키가 고작 3-4미터에 지나지 않았다. 열매를 따는 건 그리 힘이 들지 않았지만 이파리나 나무에서 묻어나는 액체가 문제였다. 열매를 딸 때 하얗게 흘러나오는 진액은 담배의 니코틴처럼 독했다. 장갑을 끼고 있다가도 불편하다고 벗어던지곤 하는 장의 손은 마치 부스럼을 앓고 난 뒤와 같았다. 껍질을 벗기지 않고 바로 먹으면 입 가장자리가 헐 정도였다. 그런 이유 때문에 거의 벌레가 꾀지 않아 농약도 필요 없었다.

석류처럼 열십자로 갈라진 무화과는 새들에게 꽤나 유혹적이었다. 시큼한 석류와는 달리 달콤하면서도 밀가루 반죽처럼 부드러워 새들이 먹기에는 그만이었다. 주변의 텃새들은 울안에 있는 홍시보다 무화과를 더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새를 피하느라 더러 그물을 쳐놓은 밭도 있었다. 이른 아침이면 안개가 그물 속에 스며들어 안개인지 그물인지 경계가 모호해지곤 했다.

거실이 밝은 느낌이 드는 건 비가 개었다는 증거였다. 장은 빈 소주병을 쳐다보다가 상을 밀었다. 젖꼭지를 만지작거리던 왼손을 빼고서 몸을 일으켰다. 장은 상을 그대로 놓아두고 방으로 들어갔다. 장은 손으로 샅을 더듬는 게 버릇이었다. 이불 위에 누워있던 장은 가랑이 사이에 손을 밀어 넣은 채 새우처럼 등을 구부렸다. 눈을 껌벅거리던 그는 그 자세로 곧 잠들어 버렸다.

장은 이불을 돌돌만 채 코를 골고 있었다. 온 종일 시멘트 반죽에 삽질을 했기 때문에 피곤했다. 술을 마시자마자 자리에 누웠고 곯아떨어진 상태였다. 장의 곁에 누운 창틀 모양의 달빛이 낮은 조명등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방문이 스르르 열렸고 발 하나가 마름모꼴의 달빛을 밟았다. 장은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수할 때처럼 아주 미세한 느낌이 감지되어서 스르르 눈을 떴다. 그의 눈은 눈썹과 닿을 정도가 되면 쌍꺼풀이 만들어지곤 했는데 쌍꺼풀이 채 만들어지기도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던 발이 수정체에 담겼다. 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입을 벌렸지만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장이 여자라는 걸 알아챈 건 민감한 후각 때문이었다.

장의 시선은 곧 여자의 얼굴에 닿았다. 장이 일별을 느끼자마자 얼룩무늬의 원피스자락이 너울거렸다. 여자는 고양이처럼 발소리 없이 뒷걸음질 쳤다. 곧이어 문을 미는 소리가 났고 이내 여자는 사라졌다. 신발을 신는 소리도 현관문을 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장은 정신을 가다듬고 방문을 밀었다. 눈의 조리개가 어둠에 익숙한 상태로 바뀌자 장은 이리저리 휘둘러봤다. 거실에는 장이 배치해 놓은 사물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 여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장은 윗옷을 걸치면서 창 앞으로 다가갔다.

아직 제대로 차지 않은 달이었지만 소나기처럼 빛을 뿌리고 있었다. 무화과 밭에 바람이 지날 때면 이파리가 뒤집어지곤 했다. 모양도 그렇거니와 뒷부분에 흰 빛의 솜털이 나 있어 언뜻 손장난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리저리 살폈지만 바람만 속도를 달리하면서 나무 주변을 맴돌고 있었을 뿐 여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장이 나갔을 때 밖은 말 그대로 침묵이었다. 장의 시선은 달 주변에 머물렀다가 차츰 내려오면서 하늘 가장자리에 걸쳐있는 억새꽃에 머물렀다. 밭둑에 울타리처럼 서 있는 억새풀은 대부분 다발을 이루고 있었다. 바람이 일자 억새의 마른 잎사귀가 서로 부딪쳐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바람의 속도가 빨라지면 부풀어 있던 꽃의 입자가 눈송이처럼 날렸다.

장의 시선이 천천히 화단으로 옮아왔다. 계절을 거스르고 피어난 넝쿨장미꽃 몇 송이에 비해 무더기로 핀 노란 국화는 달빛 아래서도 화사했다. 풀벌레 소리에 깊은 밤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힘이 쭉 빠졌다. 장은 자갈밭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밤공기를 타고 달착지근한 냄새가 풍겼다. 내일 아침 비만 내리지 않으면 무화과를 따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장은 돌을 집어 던졌다. 돌은 깔린 자갈에 부딪치면서 딸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두 번 세 번 거듭 돌팔매질을 하던 장은 일어나서 바지를 털었다.

현관 앞에 서 있던 장은 소리 없이 마당으로 뛰어드는 그림자를 보았다. 뒤돌아보는 순간 그림자의 정체는 이내 사라졌다. 장도 소리를 내지 않고 몸을 돌려서 사물 하나하나를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무화과 밭에 세워둔 장대 끝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바람이 점점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그때 무화과나무 하나가 인위적으로 흔들리다가 멈췄다. 장은 곧 무화과나무 뒤쪽에 붙어선 여자를 보았다. 한 뼘 정도 되는 치마의 끝자락에 달빛이 머물고 있었다. 장이 몇 걸음 다가서자 치마 자락이 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여자가 다시금 나타났을 때 옷의 무늬에 달빛과 그림자가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장은 카멜레온과 같은 모습의 여자와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장은 여자에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나무를 쳐다보면서 밭고랑에 섰다. 더 이상 여자와 그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섰다. 천천히 그 나무를 등지고 걸어 나오면서 상의 주머니를 더듬었다. 장은 컨테이너의 그늘 쪽으로 가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기를 거칠게 빨아들인 다음 가래침을 뱉어냈다.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집어 던지고 현관 문 앞으로 갔다.

그때 이상한 소리가 장의 귀를 붙들고 늘어졌다. 헐떡거리는 숨소리였다. 장은 망설이다가 소리를 따라갔다. 장이 가까이 다가가자 여자가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렸다. 그늘진 곳이었지만 여자의 윤곽이 거의 드러나 보였다. 여자는 흰 바탕에 짙은 무늬가 그려져 있는 원피스를 입었는데 마치 흰 무늬를 오려 붙인 것처럼 보였다. 웅크린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장은 무릎을 굽히면서 풀밭에 한손을 짚었다. 저녁 무렵 내린 비 때문에 금방 무릎이 축축해졌고 풀잎이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뭔 일이당가요?”

장의 말에 여자는 움직이지 않았고 대답도 없었다. 장은 몸을 낮춰서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얼굴의 화장이 너무 진해서 마치 마스크 팩을 붙인 것 같았다. 주변이 어두워서 섬뜩한 느낌이었다.

“미안해요.”

쉰 목소리였다. 본래의 목소리인지 오랫동안 울어서 변한 목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여자의 입에서 술 냄새와 니코틴에 절은 냄새가 났다. 장은 그 자세로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잠깐 사이 여자가 몸을 뒤척이면서 일어났다.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헝클어져서 여자의 어깨 위로 천천히 흘러내렸다. 여자는 장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았고 장은 냉큼 일어섰다.

장은 무화과 밭을 나와 현관문을 밀었다. 거실로 들어가서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올렸다. 뒤따라오던 여자는 이내 고개를 숙였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원피스와 머리칼에 흙물이 배여 있었다. 엉킨 파마머리가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뼈가 돌출된 목덜미가 드러났다. 장은 목덜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여가 어딘 줄 알고 들왔소?”

여자는 말없이 고개만 흔들었다.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넣어 머리칼을 등 뒤로 넘겼다. 유난히 가는 손가락을 바라보던 장은 손목을 잡고 위쪽으로 잡아당겼지만 여자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옆얼굴을 보이고 있는 여자는 콧대가 지나치게 높아서 콧등이 이마와 거의 일직선을 이루고 있었다. 회칠한 벽을 타고 흘러내린 물줄기처럼 볼 주변에 눈물자국이 나 있었다. 눈언저리는 마치 연탄을 문지른 것처럼 흉물스러웠다. 입술 주변이 부풀어 오른 것으로 보아 타박상을 입은 것 같았다. 쳐다보던 장의 손아귀가 느슨해지자 여자가 재빨리 손을 뺐다.

“쪼까 있다 보면 날이 샐 것이요. 쉬었다가 내 눈에 띄지 않게 후딱 가시요잉.”

장은 일어나서 거실의 보일러를 켰다. 방에 들어간 장은 이불과 베개를 안고 나와서 여자에게 던져 주었다.

“고마워요.”

여자는 장의 얼굴을 외면하면서 숨이 넘어가는 듯 이상한 소리를 냈다. 본래의 목청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쉬어버린 목소리였다. 장은 여자의 목소리를 뒷전으로 하고 방으로 들어가서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았다.

 

                                                                      2

술을 마신 후 물을 넉넉히 마시는 습관이 있었지만 여자 때문에 물 마시는 걸 깜빡했고 따라서 새벽에 깰 수밖에 없었다. 희미한 새벽빛 속에서 깍지 낀 손을 뒤쪽 목에 대고 기지개를 켜던 장은 소리를 지를 뻔했다. 눈앞에서 무엇인가가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여자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를 데리고 들어온 게 잘못이었다. 장은 앉은걸음으로 문 앞까지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여자가 이미 떠났을 수도 있었다.

거실에 나가지 않는 게 상책이었지만 목안이 건조해서 침도 삼켜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장은 엄지손가락으로 중간부분을 누르면서 문고리를 돌렸다. 거의 소음이 없이 문이 열렸고 뭉쳐진 이불을 베고 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창으로 스며든 여명이 빛이 약한 전조등처럼 사물을 훑고 있었다. 흙이 묻은 원피스가 머리 위에 던져져 있었다. 여자는 모로 누운 자세였는데 얼굴의 반은 이불에 파묻고 있는 상태였다. 엎드린 채 상체만 바닥에 바짝 붙이고 있어서 짧은 팬티를 걸친 엉덩이 쪽이 도드라져 보였다. 여자를 쳐다보던 장은 몸을 일으켜 조심조심 여자와 빨래 건조대를 사이를 통과했다. 냉장고 묻을 닫고서 물을 마시는 동안 곁눈질로 여자를 쳐다보았다. 여자는 고른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다시 자리에 눕자 잠은 오지 않고 아득한 과거가 아른거렸다. 여자가 생글생글 웃을 때면 시름까지 달아나는 것 같았다. 탄력 있는 허벅지 사이로 장의 몸이 들어가면 금방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여자였다. 자궁으로 뻗어있는 길은 골판지처럼 울퉁불퉁하면서도 지나칠 정도로 매끄러웠다. 여자는 깔고 있는 이불이 젖어들 만큼 윤활유도 많은 편이었다. 열 달 가까이 사는 동안 하루에 한두 번씩 섹스를 했던 것 같았다. 어쩌면 평생 할 것을 그때 다 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 달 내내 찾아다닌 끝에 알게 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여자의 삶이었다. 그물처럼 복잡한 여자의 과거를 알아버렸지만 미련은 쉬이 버려지지 않았다. 일 년 정도 치열하게 일에 매달리면서 여자에 대한 미련을 접을 수가 있었다. 당시 몸무게가 지나치게 빠져서 불치병에 걸렸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생각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마음에 동요가 일고 있었다. 마음의 동요와 함께 원반 모양의 형광등에서 내려온 끈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장의 시선이 방문 쪽으로 움직였다. 아차 싶었다. 문을 닫고 있으면 숨이 막힐 것 같아 습관적으로 열어두는 버릇 때문에 문을 꼭 닫지 않았던 것이다.

열리는 문을 닫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여자의 몸은 이미 방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여자에게서 익숙한 비누냄새가 풍겼다. 여자는 속옷만 걸친 상태였다. 장은 모로 누우면서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손으로 문질렀지만 이미 팽창된 성기 끝에는 물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주춤주춤 다가 온 여자가 장의 몸 위에 엎어졌다.

장의 가슴은 벌렁거리면서 숨소리가 가빠졌다. 더 이상 자는 체 할 수가 없었다. 장은 여자의 허벅지 사이로 손을 들이밀어  분비물에 젖어있는 팬티를 잡아당겼다. 여자가 몸을 약간 일으켜서 두 손으로 브래지어를 밀어 올렸다. 여자의 몸은 수숫대처럼 바짝 말라있었고 젖가슴도 오자미 크기에 불과했다. 장은 여자의 가슴을 손으로 더듬었다. 아침이 천천히 오는 계절이었지만 사물의 윤곽은 좀 더 뚜렷했다. 가슴을 더듬던 장은 전류가 흐르는 물체에 손이 데인 것처럼 여자의 젖가슴에서 손을 뗐다. 여자는 젖꼭지 하나가 없었다. 두 개의 젖가슴이 어둠 속에서 기묘한 모양을 연출하고 있었다.

장은 우격다짐을 하듯 여자의 하반신에 몸을 밀어 넣었다. 양쪽 다리의 근육이 돌처럼 딱딱해지면서 여자의 하반신을 연신 찍어 눌렀다. 여자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아닌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반신끼리 부딪는 소리가 손바닥이 아프도록 치는 박수 소리보다 컸지만 여자는 싫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여자의 자궁에서 흘러나온 액체가 장의 사타구니를 거쳐 요를 적셨다. 장의 성기가 스프링클러처럼 꿈틀대기 시작했다. 장은 여자의 몸에서 가까스로 성기를 빼냈다. 장은 여자의 허벅지에 정액을 쏟아내었다. 요 위에 무릎을 꿇은 장은 엎드리면서 눈물을 쏟아냈다.

“싸게 나가쇼이.”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아내던 장은 모로 누워있는 여자에게 명령조로 말을 했다. 여자는 헝클어진 머리칼은 그대로 둔 채 속옷을 걸치면서 일어섰다.

잠시 잠들었다 깬 장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밖으로 나갔을 때 여자는 건조대의 빨래를 걷고 있었다. 화장이 지워진 여자의 얼굴은 반쯤 일그러진 상태였다. 말굽 모양의 자국이 인조 뼈를 넣은 코를 비켜간 게 다행이랄 수 있었다. 구두의 굽에 얼굴을 찍힌 것 같았다. 눈 가장자리에 다크써클이 진하고 입술까지 터져있어서 얼굴에서 예전의 자취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장은 방문 앞에 서서 고개를 쳐들고 여자의 행동거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새벽에 현관문을 열고 나가던 뒷모습을 보았던 터라 욕설이 튀어 나올 것 같아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장은 푸릇푸릇한 얼굴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내 쫓기 전에 이 집에서 나가시요.”

 

                                                                 3

회색의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컨테이너로 이르는 길은 몇 갈래였다. 박노파는 계단형의 논을 끼고 오르는 경사로에 발을 내딛다가 기우뚱거렸다. 박씨는 보따리를 내려놓고 무릎에 손을 짚으며 숨을 내쉬었다. 논길로 들어서면서 두 번씩이나 발을 헛디뎠던 탓에 허리가 뻐근했다. 몸을 일으킨 박씨는 허리를 뒤로 젖히면서 혀를 찼다. 창고처럼 답답하게 생긴 콘테이너가 눈에 들어왔다.

컨테이너 아래쪽까지 길은 경사져 있었고 번개 모양으로 길이 휘어져 있었다. 가을 아침이나 저녁 무렵엔 늘 안개가 끼었다. 때로는 산 위에서부터 안개가 휘적휘적 내려오기도 했지만 어느 때는 저수지에서부터 안개가 시작될 때도 있었다. 안개는 풍경위에 덧칠된 흰빛의 물감 같기도 했고 흰색의 얇은 천 같기도 했다.

박노파는 안개 낀 풍경을 휘둘러보다 그물에 걸려있는 두어 마리의 참새를 보았다. 몸이 축 늘어진 참새는 나무의 열매처럼 그물에 매달려 있었다. 박씨는 무화과 밭을 덮고 있는 그물이 때론 안개처럼 연출 한다는 것을 참새가 알 까닭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연기처럼 매캐한 냄새를 풍기는 안개 속을 걸을 때마다 박씨는 밭은기침을 하곤 했다. 한차례 자지러지듯 기침을 한 다음 길가 풀숲에 가래를 뱉어냈다. 박씨의 시선은 풀숲에서부터 주변의 묘지로 옮겨갔다. 벌초 후 한 달이 조금 넘었지만 길게 자란 풀잎의 끄트머리에 빨간 단풍이 들어 있었다.

박노파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시력을 잃어버린 한쪽 눈이 닿은 곳은 컨테이너였고 실제 박씨가 바라본 곳은 하늘이었다. 거의 의미가 없다할 정도로 해는 빛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해에서 시선을 떼고 컨테이너를 바라보자 박씨는 가재미눈이 되었다.

어쩌다 모텔의 카운터에 앉아 있을 때면 박씨는 안경을 썼다. 손님을 똑바로 주시해서는 안 된다는 건 불문율이나 마찬가지였다. 일수를 찍듯 낮에 잠깐씩 왔다가는 낯익은 커플도 많았다. 몇 달씩 또는 몇 년씩 단골인 경우도 있었다. 마치 그런 부류들 때문에 아들이 나이 들도록 홀아비로 지내는 것 같아 그들을 퉁명스럽게 대하기도 했다.

볼 수 있는 한쪽 눈의 시력에 문제가 없어 안경은 보안경 역할이나 하는 정도였다. 박씨가 밖에 나갈 때 안경을 쓰는 이유는 바람이 닿으면 시력을 갖추고 있는 눈에 눈물이 흐르기 때문이었다. 한눈만 70년 이상을 썼으니 혹사당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수밖에 없었다. 시선이 마주치면 불편해 하는 사람은 박씨 자신이 아니라 타인들이었다. 젊었을 때와는 달리 상대방이 빤히 쳐다봐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남편의 뜻에 따라 둘째와 막내에게 카운터를 물려주었는데 아직까지 분란은 없는 편이었다. 둘째는 여관을 매입할 때부터 관여했지만 수입을 남편 장씨가 관리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다. 박씨는 남편과 5층에 거주하고 있었고 둘째와 막내는 근처의 아파트에 기거하고 있었다. 아들들은 다들 결혼을 해서 대도시와 소도시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박씨는 큰아들이 중학교에 가고 싶다고 울먹일 때 사내자식이 질질 짠다며 나무라던 생각이 떠올라 안경을 벗었다.

그 즈음은 병신자식에게 먹여주고 입혀주는 것 이상은 생각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웬만한 계산은 할 줄 알았고 읽고 쓰는데 지장이 없으니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을 거라는 생각을 늘 해왔다. 간혹 카운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중에 아들보다 심하게 다리를 저는 데도 교수님이나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듣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아들이 시절을 잘못 만난 게 아니라 박씨나 남편 장씨의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았다. 박씨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한숨을 토해내면서 안경다리를 양쪽 귀에 끼웠다.

컨테이너는 문을 잠그지 않기 때문에 박씨는 아무 때나 방문을 해도 되었다. 집에 훔쳐갈 게 없다는 이유였고 문의 열쇠를 잃어버린 탓이기도 했다. 주변이 농가이기 때문에 그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었다.

반찬은 구실이었고 마흔 후반에 접어든 아들의 결혼 문제 때문에 오는 길이었다. 아들은 서른 다섯 무렵 여자와 10개월 정도 동거를 하더니 그 후부터는 여자 얘기만 꺼내도 질색을 했다. 하긴 그 무렵 생긴 아기가 태어나고 자랐다면 열 살이 되었을 것이니 여자에게 진저리를 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박씨는 아들에게 필리핀 처녀와의 결혼을 설득해야만 했다. 필리핀은 고학력의 처녀가 많으며 한국 여성들처럼 가족에게 헌신적이라는 게 중매소의 설명이었다. 필리핀 처녀로 결정한 것은 아들들의 입김 때문이었다. 대학원을 졸업한 막내는 이젠 다인종 시대이기 때문에 혼혈이라는 말조차 사라져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박씨의 친구 중 하나가 베트남 며느리를 들인 후 손자를 셋이나 얻은 것을 보고 아들을 기어코 설득하리라 마음먹었다.

아침 일찍 나왔기 때문에 안개가 걷히기도 전에 읍내 정류장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박씨는 한 번 갈아타면 될 정도로 교통 사정이 좋아져서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도착했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 저녁부터 아들과 전화 연락이 안 되었기 때문에 불시에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밤이면 아들은 휴대폰을 진동 모드로 돌려놓곤 했다.

아들에게 새 양복이 필요했다. 시간적인 여유는 있었지만 미리 구입해두지 않아서 낭패를 볼까봐 일부러 나선 길이기도 했다. 대다수가 고등교육을 받은 처녀들이라는 말에 좀 안심이 되었다. 몇 년 전 아들 몰래 여자를 물색하면서 박씨는 진저리를 쳤었다. 재혼을 하는 주제인데도 얼굴만 좀 반반하면 카드빚을 갚아 달라고 했고, 대부분 스물 너덧 평 이상의 아파트를 원했다.

외국인 처녀를 얻는 데는 겨우 천만 원 정도 밖에 들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게다가 그 처녀들은 초혼이었다. 그들이 내미는 사진을 보았을 때 한국인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처녀들도 더러 눈에 띄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단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다는 점과 피부색이 다르다는 게 문제일 수는 있었다. 너무 어리면 골치가 아플 수도 있기 때문에 서른이 넘은 처녀를 구하자는 게 큰 아들을 제외한 가족회의에서 얻은 결론이었다.

단풍이 든 담쟁이덩굴이 무늬처럼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박씨 눈에는 담쟁이덩굴이 뭐든지 고사시키는 존재로 비쳐졌기 때문에 걷어버리라는 말을 여러 번 했지만 아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하긴 아들이 장가만 갈 것 같으면 컨테이너를 철거하고 벽돌집을 지을 예정이기 때문에 담쟁이덩굴은 무시해도 될 것 같았다. 박씨는 시선을 돌려 무화과 밭을 휘둘러보았다. 안개는 무화과 밭과 컨테이너 주변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다.

밭 가장자리의 옥수숫대가 바람에 몸을 떨고 있었다. 옥수숫대 사이에 꽂아놓은 허수아비가 모자를 삐딱하게 쓴 채 양팔을 벌리고 있었다. 팔 하나는 회색빛의 댓개비였고 다리는 이음새가 새파란 빛깔을 띤 간짓대였다. 가슴께에 붙어있는 짚 묶음이 옷을 비집고 올라와 있어 보기 흉했다. 양쪽 팔에 걸려있는 알록달록한 무늬의 천이 깃발처럼 펄럭거렸다.

  "쯧쯧"

오는 길에 목격했던 교통사고가 떠올라 박씨는 혀를 찼다. 끼익하는 소리가 아직도 귓가를 맴도는 것 같았다. 비명처럼 예리하던 경적 소리가 박씨의 고막을 때렸고 그 순간 박씨는 보도블록에 주저앉았다. 어떻게 해서 여자가 하늘을 나는 것처럼 공중에 솟구쳐 올랐는지 알 수 없었다. 빨간색과 흰색이 얼크러진 치맛자락이 한 차례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곧이어 여자는 아스팔트에 총 맞은 새처럼 떨어졌다. 일차선 도로를 무단 횡단하다 그리 된 것 같았다.

승용차는 여자를 치고 커브를 틀었기 때문에 가로수 하나가 반쯤 부러졌다. 운전석에 얼굴을 파묻은 운전자를 보면서 박씨는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박씨는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잰 걸음을 놓았다. 아들이 부정 탈까봐 입도 뻥긋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오랫동안 여관을 하면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꼴을 두 번이나 보았기 때문에 고통사고 또한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교통사고는 다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에 결과를 속단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자갈마당에 발을 들여놓던 박씨는 빨랫줄에 매달린 운저리를 쳐다봤다. 지나치게 말라서 구우면 가죽처럼 질길 것 같았다. 박씨의 시선은 운저리를 지나서 처마의 모서리 끝으로 다가갔다. 구멍이 숭숭 뚫린 채 매달려있는 말벌집이 바람에 대롱거렸다. 벌집은 낡은 컨테이너만큼이나 을씨년스런 빛깔을 띠고 있었다.

쯧쯧...”

박씨는 벌집을 보면서 또 혀를 찼다. 아들은 그때그때 처리해야 할 것을 놓아두는 습성이 있었다. 박씨는 일부러 소리가 나도록 현관문의 고리를 비틀면서 문을 밀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접혀진 채 거실에 놓여있는 이불이 눈에 들어왔다. 낯선 광경이었다. 박씨는 보따리를 놓고 아들을 불렀다.

한모야.”

연거푸 불렀지만 아들은 방에 없는 듯 조용했다. 다만 방문이 빠끔히 열려 있어서 박씨는 신발을 벗자마자 거실을 가로 질러갔다. 박씨가 문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었지만 누워있던 아들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넋 나간 것 같은 아들이 중얼거렸다.

애가 컸으께라?”

뭔 소리냐, 시방?”

, 아니여라.”

아들이 일어나면서 이불을 젖혔다. 필리핀 처녀 얘기를 언제 끄집어내야하나 하는 생각에 아들의 표정만 살폈다. 일어나다가 몇 번 주저앉던 아들은 심하게 절뚝거렸다.

어짠일로 발등이 탱탱 붓었다냐?”

두 방 맞았어라우. 말벌 땀새 메칠 간 일도 못 하게 생겼네.”

풍선처럼 부풀은 발등에 손을 대려던 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말벌? 그럼 된장이라도 발라야제.”

된장이요? 지금이 어느 시댄디...그냥 콱 죽어부라고 하시쇼.”

아이고 어짤려고 그래?”

머리 안 맞었응께 걱정 마쇼이. 글고 병원가려고 차도 불렀어라우.”

한쪽 다리를 의지한 채 비스듬히 서 있던 아들은 발을 옮기려다 다시 주저앉았고 자세를 바꾸었다. 거의 엎드린 자세로 다리를 끌고 거실로 나갔다. 다리 하나와 팔 두 개를 사용한 걸음걸이여서 거실바닥을 청소하는 모양새였다. 이런 상태로는 필리핀처녀 얘기는 끄집어 낼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재수 없는 꼴을 봐서 일이 틀어지는 것 같았다. 박씨는 열린 문 사이로 아들의  뒷모습만 쳐다보았다.

잠시 후에 요란스런 경적소리를 내며 달려 온 차가 자갈을 밟고 멈췄다. 끼익 소리에 박씨는 가슴이 벌렁거려서 방의 창을 통해서 밖을 내다보았다. 흰색 봉고에는 119 구급대, 라는 글자가 씌어있었다.  

 


-끝-

 

김은숙   200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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