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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쩌귀 속의 새 한마리


 

 

 

 

    봄비 치고는 폭우이다. 집 귀퉁이에 놓인 아름드리 고무대야에서 빗물이 넘친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빗물소리는, 주변의 소음을 삼킬 정도로 시끄럽다. 물받이 대롱은 애초부터 절반이 떨어져 나간 상태였고 비가 퍼붓는 날에는 폭포수 소리를 내곤 했다. 마루문을 열고 내다보던 보던 그는 밖으로 나온다. 그의 티셔츠는 어깻죽지부터 젖는다.

마당 끝에 선 백일홍 나뭇잎의 푸름은 한층 더해지고 줄기는 젖어서 검은 빛을 띠고 있다. 키는 낮지만 가지가 떡 벌어져서 고목 같은 느낌이 든다. 자태만으로도 시 한편은 뽑아낼 것 같지만 그의 노트에는 아직 백일홍에 대한 언급이 없다. 빗속에서 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천천히 돌아선다.

황토벽을 발라 새집 같은 분위기이지만 슬레이트 지붕에는 꺼뭇꺼뭇한 이끼가 끼어있다. 슬레이트 끝에 매단 물받이의 중간이 살짝 꺾여있는데, 그 틈에서도 물이 줄줄 흐른다. 물받이를 따라 눈을 움직이던 그가 입을 딱 벌린다. 꺾인 부분에 풀이 돋아나 있고 노란 꽃 하나가 피어있다. 꽃을 매단 민들레가 언제쯤 돋아났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

한동안 가물었으니 민들레에게는 소나기가 사막의 오아시스일 것 같다. 씨앗이 어떻게 발아된 것일까. 홀씨가 소용돌이 바람을 타고 지붕으로 날아든 걸까. 아니라면 새가 지붕에 갈기고 간 똥에서 씨앗이 발아한 걸까. 어떤 방식이었든 기발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만큼의 세월이 지나야 어른 주먹크기의 흙이 모아질 수 있는지 그것도 가늠이 잘 안 된다. 지붕 이곳저곳에 붙어있던 먼지가 쌓이기 좋은 장소에서 조금씩 뭉쳐졌을 것이다. 더러는 합류를 했겠지만 대부분 빗물에 쓸려가 버렸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게 마치 인고의 세월처럼 느껴진다. 동쪽에 위치한 물받이라서 흙덩이가 어느 정도는 습도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슬레이트기와 곳곳의 이끼는 이슬만으로도 충분히 자생할 수 있다. 민들레에겐 가끔씩 내리는 비가 필수 조건이다. 하지만 지붕의 빗물받이는 민들레가 살기에 마땅찮은 장소이다. 언젠가는 쓸모없는 흙덩이만 보게 될 것 같아 그의 기분은 우울해진다. 그는 시선을 돌려 마당 가장자리에서 피어 난 민들레를 시큰둥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집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이년 전 여름 풍경을 떠올렸다.

                                                                               ***

앞쪽으로 국도가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교통이 편리한 마을이었다. 도로에서부터 마을이 시작되는 게 아니라 아래쪽에는 다락논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위쪽 깊숙이 집들이 들어앉아 있었다. 길은 타원형을 이루고 있었는데 마을을 관통해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더러 아름드리 고목을 울안에 두고 있어서 무척 시원해 보이는 풍경이었다. 유월이었기 때문에 진 초록빛 산에서 뻐꾸기 소리가 들려왔다. 마을로 들어갈수록 길은 점점 오르막이었고 타원형의 마을을 산이 둘러싸고 있었다. 산에는 도토리나무와 밤나무가 섞여 있어서 가끔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헛간채 앞의 화단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잔뜩 피어있었다. 시를 잘 만들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던 그는 이사를 결정했다. 가까운 읍내에 인력사무소가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작은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대형마트가 있었고 체인점 스타일의 가게도 꽤 많았다. 공교롭게도 장날이었기 때문에 장터에서 술을 마셨던 그는 하룻밤 모텔 신세를 졌다. 그가 방을 빼서 시골로 이사를 오기까지는 이십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사를 들어오기 전까지 틈나는 대로 집 곳곳을 손봤다. 한동안 비어 있어서 시골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나는 집이었지만 도시형 주택처럼 구조변경이 되어있어서 불편함은 없을 것 같았다. 방문을 열면 넓은 공간이 있었는데 마루를 떼어내고 보일러시공을 한 것 같았다. 찬장은 청소만으로도 해결이 되었고 가스렌즈는 새것으로 바꿨다. 꽃무늬가 요란한 벽지 위에 무늬가 거의 없는 미색의 벽지를 발랐다. 포인트 벽지까지 바르고 보니 집이 한층 밝았다.

높은 곳에 위치한데다 마당이 넓어서 숨이 확 트이는 집이었다. 고인들이 알뜰하게 장만한 장작이 처마 밑에 쌓여 있었다. 기름보일러가 설치되어 있어서 장작은 주방 앞의 귀퉁이마당에 걸린 헛솥에나 사용하는 것 같았다.

고인들의 살림은 거의 다 정리가 되어서 본채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헛간채에는 농기구 몇 가지들이 나무기둥에 걸려 있었다. 변소가 딸린 헛간채였는데 한쪽에 퇴비가 쌓여 있어서 방금 전까지도 누군가가 들락거렸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텃밭에는 열무와 옥수수 고추 따위가 심어져 있었다. 고인의 아들은 그에게 텃밭을 맡겼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지만 그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글쎄요, 라는 대답을 했다.

가끔씩 텃밭에 나가 몇 가지 작물을 신기한 듯 바라보던 그는 이웃에게 씨앗을 얻었다. 한가한 틈을 타서 풀을 매봤는데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농사꾼 자식이었지만 풀매는 일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작물을 어느 때 심어야 하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 그의 생각에는 농사란 그저 부지런하고 눈치만 빠르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이웃에게 이것저것 질문하지 않고 인터넷을 이용했다.

그의 직업은 한 가지가 더 늘어난 셈이었다. 읍내의 인력사무소에서 부르는 날은 잡부였고 노가다를 뛰지 않는 날은 농부였다. 그러다가 비가 오거나 겨울이 되면 작가가 되었다. 등단 이후 몇 편의 시를 잡지에 싣기도 했지만 스승을 찾아가지 않다보니 청탁이 끊긴지 오래였다. 문예창작기금으로 겨우 한권의 시집을 내었지만 어디에서도 시인이라는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다. 혼자의 힘으로 시를 만들면서 작품이 더 좋아지는 것 같았지만 출판사에서는 다른 스타일의 시를 원했다. 그들이 빙빙 돌려서 하는 말을 해석해보니 멜랑콜리하고 유치해져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연서처럼 쓰는 몇몇 젊은 작가들을 떠올린 그는 더 이상 출판사에 메일을 띄우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작품을 하나 건지겠다는 생각을 했고 지금까지 용을 쓰는 중이었다. 예전에는 길을 가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게 시구였고 여행 중에도 발견하는 게 시구였지만 오늘은 술을 마신 다음날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는 것처럼 갑갑한 상태였다. 누군가가 이미 차용해버린 구절들이나 식상한 몇 마디만 입가에 맴돌 뿐이었다.

그가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빗속으로 뛰어든 건 노트에 몇 구절을 끄적대다가 던져버린 후였다. 마음 같아서는 옷을 홀딱 벗어버리고 비를 맞으며 고함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후환이 두려웠다. 마을사람들은 체면치레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울린 후 어김없이 뒷말을 하는 게 그들의 습성이기도 했다.

마을회관이 있었지만 노년층이 많았고 대부분 여자들이었기 때문에 교류할 생각도 없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만 잘 들어도 마을이 어떻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단절된 상태로 살아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단잠을 깨우는 새벽의 스피커 소리는 메아리 때문에 창을 열고 귀를 기울여야만 했다. 마을의 모임 외에도 비료나 씨앗에 대한 얘기였고 가끔은 스피커가 부고를 대신하기도 했다.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함께 하자는 방송을 할 때도 있었지만 무시해 버렸다. 가끔은 이장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한뎃부엌의 솥걸이로 쓰인 재료는 드럼통이었는데 페인트를 바른 것처럼 전체적으로 녹이 슬어있었다. 쏟아지는 비 때문에 주변은 빨간 녹물이 흘렀고 까만 아궁이 바닥에서 냇내가 풍겼다. 주변에는 타다만 장작이 비를 맞고 있었다. 다른 집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게 헛솥걸이였는데 여름이면 주로 개를 삶았다. 그는 복날 아침 일찍 스피커가 울리면 창문을 닫아버렸다.

이사 온 해의 여름에는 고인들의 아들이 사람들을 몰고 와서 보신탕을 끓이는 바람에 약간의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해 가을에 아들은 보신탕을 끓이는 대신 여자들을 데리고 왔었다.

도토리 잎에 주황빛 물이 들 때쯤 왔던 그들은 삼겹살파티를 했다. 아이들이 더 이상 따라다니고 싶어 하지 않아서, 라는 말은 여자들 둘이 껴 온 것에 대한 변명 같았다. 남자들 넷은 동창이었지만 여자들은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았고 나이도 훨씬 젊었다. 화류계 여자들처럼 화장이 두껍던 그 여자들은 틀림없는 주부였고 기혼이었다. 여고시절에 문학의 열병을 알았다는 말을 하던 긴 머리의 여자는 시와 시조의 구분도 하지 못했다. 그는 눈웃음을 살살 치면서 싱글이냐고 묻던 그 여자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안방을 내어주고 작은 방에서 쪼그리고 앉아있던 그는 여자가 남기고 간 진한 향수냄새가 끔찍해서 방문을 한참동안 열어두었다.

그들이 사용했던 옆 마당은 고기를 구워 먹는 장소로는 그만이었다. 야트막한 담장이 쳐져 있었고 그 옆에 야외용 수도가 설치되어 있었다. 주방 문 뒤쪽의 처마 밑에 바비큐그릴까지 구비되어 있어서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꼭 필요한 공간이었다. 그날 그들은 초저녁에 바깥에서 술을 마시다가 11시가 넘자 주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안방과 주방은 문하나 사이었으므로 그는 작은 방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어울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초저녁에 마당에서 술을 몇 잔 얻어 마신 게 전부였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거슬러서 귀마개를 끼운 채 잠을 청했다.

 새벽녘 더워서 봉창을 열어젖혔던 그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시선을 내리다가 마당의 승용차에 불이 켜져 있음을 알았다. 누군가의 불찰일 거라 생각하고 방을 나오려던 그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차 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밀려 내려온 유리를 통해 본 얼굴은 분명 긴 머리의 여자였다. 옷을 반쯤 내린 남자의 허연 엉덩이가 망치질하듯 움직이는 걸 보면서 그가 혀를 찼다. 지랄을 떨려면 여관을 가던지. 순간 승용차의 불은 꺼졌지만 그들은 하던 짓을 멈추진 않았다.

그는 눈앞에 있던 바비큐 철망을 바라보면서 그때의 상황을 기억해내고는 비웃듯 입 꼬리를 한쪽만 올렸다. 여자의 싸대기를 때리고 싶었고, 남자의 엉덩짝을 발로 걷어차 버리고 싶었던 시간이었다. 섹스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에 대한 혐오감 때문이었다.

                                                                             ***

 그의 호적은 아직까지도 미혼이지만 여자와 동거하던 시절이 있었다.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장난스럽게 합석을 했다가 그날 밤 모텔에서 한 침대를 썼던 여자였다.

술집에서 혼자 앉아있던 그 여자는 단발머리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는데 외모가 뛰어난 여자였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건너편 구석자리에 여자가 있었다. 손님이 많았다면 그 여자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손님은 그와 여자 둘뿐이었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나가던 그와 화장실에 다녀오던 여자가, 서로 지나갈 틈을 준다는 게 그만 같은 방향으로 비켜서게 되었고, 순간 둘 다 웃음이 터졌다. 웃음을 거둔 여자가 그에게 술을 한 잔 하자고 했을 때 그는 우선 화장실에 다녀오고요, 라는 말을 하면서 검지를 세우고 흔들었다.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농담으로 받아들였을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여자는 턱을 괸 채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술을 마시기 위해 여자가 얼굴을 쳐드는 순간 그는 반쪽의 얼굴을 봤다. 마치 영화 오페라의 유령을 보았을 때의 느낌과 흡사했다. 여자는 닥종이인형처럼 피부에 무늬가 있었다. 흉터는 광대뼈와 볼을 감싸고 있었다. 그날 밤 섹스 후 여자가 물었다.

“자기는 대화할 때 스트레스 받겠다.”

여자는 그에 비해 네 살이나 더 많았다.

“가끔씩 답답할 때는 있어요.”

“외람된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말을 그렇게 해야 하는 사연이라도 있어?”

여자는 뜸을 들이듯 천천히 말을 했다. 눈을 위로 치켜 뜰 때 여자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내가 너무 어렸던 그해 겨울... ”

그는 여자의 말에 어떤 풍경에 대한 묘사를 떠올렸다. 어둠을 통과하는 바람은 건드리지 않는 게 없다. 가로수에 매달린 쓸모없는 열매. 반쯤 찢긴 플래카드, 붉은 색의 차양, 옥상의 빨랫줄에 매달린 집게. 그것들은 제 각각의 소리를 낸다.

그날 새벽에도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었다. 어머니는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 기억을 하고 있었다. 바람소리 때문에 깼는데 방이 너무 환했다. 다섯 살이었던 그는 일어나서 눈을 비볐다. 그래도 환했다. 옆을 돌아보니 아직 7개월밖에 안된 간난동생이 엎드려서 팔을 휘젓고 있었다. 등잔불이 엎어지면서 아기의 얼굴에 불이 붙은 상태였다. 그는 발딱 일어나 부엌으로 통하는 문 앞에 섰다. 바람소리 속에서 딱딱 소리가 났다. 어머니가 나무를 분질러 아궁이에 넣는 소리였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문을 열수가 없었고 소리도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때 벌컥 문이 열렸다.

방안의 광경을 보자마자 어머니는 쓰고 있던 수건을 벗어 물동이에 넣었다. 물이 줄줄 흐르는 수건을 들고 득달같이 방에 들어왔던 어머니는 간난동생의 머리와 얼굴을 감쌌다. 방바닥을 두들겨 불을 끄기까지는 몇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 새끼야.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병신 같은 새끼야! 마구 두들겨 맞았지만 소리 내어 울 수가 없었다.

혼자 울다가 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깨어보니 아무도 없었고 기름 냄새가 훅 끼쳤다. 그는 나뒹구는 등잔을 보면서 주저앉아 있었다. 때마침 병원에 갔던 어머니가 간난동생을 안고 들어왔는데 얼굴이 새카맣게 그을려 있었다.

그 후부터는 동네 아이들하고도 어울리지 못했다. 동생이 둘이나 태어났지만 그 애들도 조금 자라자 어울려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늘 그에게 에라이 벙어리새끼야, 라던가 아니라면 병신새끼야, 라는 말을 하면서 등짝을 때리곤 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을 너무 잘했어요. 마을 사람들이 변호사해도 되겠다는 칭찬을 할 정도였죠.”

“그렇구나.”

“학교에서는 선생의 질문에 대답을 해야만 하잖아요.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긴장을 하다보면 말투가 로봇 같아요. 마치 어린아이들이 책을 읽는 것처럼 말이죠.”

“국어책을 읽는 것 같긴 하지만 표현이 독특해서 놀랬지. 아까 술을 마실 때 말이야. 실은 그 전에도 당신을 본 적이 있어. 두어 번 쯤. 나 거기 단골이잖아. 당신은 사람을 바라보지 않더라고.”

천장을 향해 연기를 뿜어내는 여자의 얼굴에 미소가 어려 있었다.

“당신이나 나나 전생에 불하고 원수를 졌나보다. 집에 불을 지른 엄마는 죽었는데, 난 살았다. 죽으려면 혼자서 목을 매든지 하지, 왜 나까지 죽이려고 안달을 한 건지... 그런데 우리 엄마, 아버지 때문도 아니고 애인 때문에 자살했어. 기막힌 경우지.”

재가 침대에 떨어지자 여자가 일어나서 손가락으로 튕겨냈다.

“두 번이나 수술을 했는데도 이 모양이네. 이젠 수술도 지겨워.”

여자는 얼굴을 만지면서 푸념처럼 말했다. 그는 알맞게 부풀은 젖가슴 끝에서 미세하게 흔들리는 분홍빛 유두를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여자의 젖가슴만으로도 한편의 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라면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침대 위의 풍경으로 시를 만들 수도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젖가슴을 드러낸 채 담배를 물고 있는 여자와, 욕망이 배제된 시선으로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 객관적으로 관찰하다보니 전혀 외설스럽지 않았다. 제목을 떠올리느라 그는 조잡한 등이 매달려 있는 천장에 시선을 돌렸다. 누드를 바라보는 남자. 제목을 만든 후 그는 더 생각나는 게 없을까하면서 여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여자는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당겨서 반쪽의 얼굴을 덮었다.

“수술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피부의 표면이 살짝 거칠게 보일뿐이거든요. 껍데기는 가라, 라는 시 알아요?”

“아니. 난 문학하고는 담 쌓고 살았어. 날 위로해 주기위해 끄집어 낸 말이지?”

“그렇죠. 언제 읽어봐요. 책 빌려 줄 테니.”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여자가 엉뚱한 제안을 했다. 딱 일 년만 함께 살면 어떨까?

그와 여자는 정확히 일 년 육 개월을 살았다. 가끔씩 알바를 뛰어서 돈도 벌어오던 성실한 여자였다. 약속한 기한이 지났어도 아무 말이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는 중이었는데 여자는 사소한 일로 보따리를 쌌다. 언쟁 끝에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마, 라는 말을 그가 뱉어 냈고 여자는 당장 여행용 가방을 꺼냈다. 설득을 하고 싶었지만 단어들이 입안에서 맴돌기만 했다. 긴장을 하면 말이 스타카토처럼 끊어져 나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는 침묵을 지켰다. 여자는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집을 나섰다. 잘 지내라는 말이 전부였다.

전날의 예보 때문에 문을 꼭 닫고 있었던 사월 중순, 황하에서 불어 온 싯누런 먼지가 창공을 뒤덮어버린 끔찍한 날이었다. 무심한 표정으로 문을 나서던 여자의 뒷모습을 그린 구절은, 겉표지에 구름과 꽃이 그려져 있는 노트의 마지막장에 담겨 있었다.

닥종이 얼굴피부를 빼고는 완벽한 여자였다. 알바로 손 모델을 했고, 드물긴 하지만 다리 모델도 하던 여자였다. 옷을 벗는 일을 좋아했다면 몸으로 때우는 일도 했을 거라는 말을 할 정도로 솔직한 여자였다. 근사한 외모를 삭감 시키는 게 있었는데 입에서 튀어나오는 상습적인 욕설이었다. 욕을 할 줄 모르는 그는 가끔씩 진저리를 쳤다. 표면적으로는 헤어진 이유가 그가 던진 말 한마디였지만 사실은 그게 아닐 수도 있었다.

그의 직업은 일용직 잡부였고 수입이 많은 편도 아니었다. 그에게서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여자가 떠났을 수도 있었다. 글이 주이고 일이 부수적이라는 핀잔을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날 싸움의 발단도 그런 비슷한 빈정거림으로 시작되었다. 여자가 떠난 후 남아있던 두 장의 사진을 찢어버린 게 멍청한 짓이었다는 걸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자의 다리와 얼굴의 흉터, 뒷모습, 그런 부분적인 것들만 정확하게 떠오르기 때문에 더 환장할 노릇이었다. 15년이 더 지났지만 늘 추억할 밖에 없는 이유는 그에게 유일한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

끼리릭. 열거나 닫을 때마다 자극적인 소리를 내는 미닫이문은 이사 올 때부터 바퀴가 고장 나 있었다. 비오는 날이라 이상한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칙칙 거리는 압력솥의 꼭지에서 나온 훈김이 주방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순식간에 허기가 느껴졌다. 마늘을 두 주먹이나 집어넣어 끓인 백숙의 먹음직스러운 냄새였다. 그는 시계를 쳐다 본 후 렌즈의 불을 끄고 잠깐 기다렸다. 추를 젖히면서 수증기를 몰아내기 위해 주방문을 끝까지 밀었다.

냉장고에서 가져온 막걸리를 식탁에 놓고 상의를 뒤집어 벗어서 구석으로 던졌다. 러닝과 반바지 차림으로 식탁 앞에 앉았다. 잔을 든 채 바깥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눈에 돌 복숭 나무가 들어왔다. 아직 머물러 있는 꽃이 많았고 가지를 뚫고 나온 어린잎은 오므린 손바닥을 펴는 중이었다. 연분홍빛 아름다운 꽃에 비해 열매의 맛이 형편없는 나무였다.

여자의 생일이 가까웠던 어느 봄날 속옷 세트를 산 적이 있었다. 연분홍색의 속옷으로 갈아입으면서 생글거리던 여자를 떠올리면서 그는 연거푸 술잔을 들이켰다.

넓은 접시에 놓인 백숙은 푹 물렀기 때문에 뼈다귀가 반쯤 빠져 있었다. 그는 우물거리다가 삼키곤 했다. 언제부턴가 그는 젓가락을 놓아버리고 손가락으로 집어먹고 있었다.  그의 눈꺼풀은 약간 쳐져 있었다. 축축한 행주에 손가락을 문질러대던 그는 꺼억 소리를 내며 트림을 했다. 남은 막걸리를 대접에 탈탈 따랐지만 한 그릇이 채 되지 않았다. 냉장고에는 아직 두 개의 녹색 막걸리 병이 더 있었다.

낮술은 취기와 함께 졸음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취기가 몰려오기 전에 무엇인가를 떠올리고, 떠올린 것을 조합해서 노트에 옮겨 적어야만 했다. 푸르른 틈새에 허물처럼 누워있는 마른 풀. 문장을 떠올린 그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벌써 막걸리 두병이 비워졌고 쟁반에 크고 작은 뼈들이 쌓여 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그의 눈높이쯤에서 비행을 하던 서너 마리의 파리를 발견하고 손사래를 쳤지만 그놈들은 끈질기게 주변을 맴돌았다. 둘러보니 그놈들 말고도 상당수가 주방의 찬장 문에 더러는 천장에 달라붙어 있었다. 눈에 띄는 놈만 어림잡아 계산해 봐도 잔칫날 불러들인 하객처럼 많은 숫자였다. 바깥으로 내모는 방법이 있었지만 취기 때문에 일어나기도 귀찮았다.

파리보다 더 심각한 건 축사냄새였다. 코에 흘러드는 축사의 퀴퀴한 냄새는 백숙의 맛을 음미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었다. 늦은 봄부터 초가을까지는 축사에 대한 불만 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뒷말이 많았지만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고 있었다.

축사가 마을과 약간 떨어져 있었지만 그의 집에서는 가까운 위치였다. 주방에 서 있으면 담 너머로 축사가 보였다. 마을에 폐해를 주는 축사이지만 타지에서 이사 온 그가 나서서 이전하라마라를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마을 사람들 틈에 끼는 게 전부인 그로서는 관망이 제일 좋은 방법 같았다. 게다가 그는 따돌림을 받는 상황이었다.

그가 외지인이라서가 아니라 이년 정도 살다간 화가 때문이었다. 화가에게 지나가는 말로 초상화를 부탁했는데 완성된 그림을 가져왔고, 그 그림을 본 순간 액자를 밟아버리고 싶었다는 게 이장의 말이었다. 이장은 그의 말을 들어보고 싶었는지 장롱과 벽 틈에 세워 둔 액자를 끄집어내었다. 광대뼈의 그늘이 짙어 보이고 굵은 주름이 유난히 많은 얼굴의 주인공은 여든 다섯을 넘긴 이장의 어머니였다. 길거리 초상화와는 달리 특징이 잘 살려진 얼굴이었다. 그는 이장이 보여준 초상화를 보면서 고개는 끄덕거렸지만 좋은 그림이라는 칭찬은 하지 못했다. 인사를 갔던 그에게 이장은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고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느냐고 물었다.

남이나 마찬가지인 부모가 다시금 떠오르면서 입술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에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그는 들고 있던 술잔을 식탁에 놓았다.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중얼거리던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어쩌다 안부전화를 하면 어머니는 침묵을 지키다가 잘 지내느냐는 말을 겨우 끄집어내었다. 그는 짤막한 대답과 함께 전화를 끊곤 했다. 휴대폰을 장만한 후 전화를 했다가 막내 동생에게 엄청난 욕을 먹고 휴대폰을 없애버렸다.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휴대폰을 다시 장만하기는 했지만 번호도 바꾸었고 집에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벌써 10년도 더된 얘기였다.

몇날 며칠 침묵 속에 빠져 지내다보면 현실감각이 둔화되어 멍한 상태가 지속되기도 했다. 특히 겨울철에는 일이 끊기기 때문에 집안에 틀어박힐 수밖에 없었다. 그의 겨울철 식량은 쌀과 김치, 돼지고기, 소주였다. 그것만 준비되어 있으면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때로 그는 일주일 내내 신발 한번 꿰어 신지 않고 지내기도 했다.

 겨울이면 사람들과 단절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가끔 침묵을 깨는 사람이 있었다.  사별했다는 전직 교감이었다. 노인은 밖에서 기침소리를 낸 후 계신가, 라는 말로 노크를 대신했다.  그는 혹시 모를 노인의 방문을 위해서 미리 문에 바람막이 테이프를 붙였다. 

지난겨울을 떠올리다가 보니 여름도 걱정이었다. 처마가 낮아서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집이었기 때문에 방문에도 방충망을 붙여야 할 것 같았다. 격자문을 바라보던 그는 사소한 일거리에 붙들려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모기장 따위는 읍내 만물상회에 가서 사오면 될 것이고 붙이는 건 한나절만 뚝딱거리면 해결될 일이었다.

시에 집중을 해야 하는데 전전긍긍하다가 몇 시간을 죽였고 딴 생각하느라고 또 몇 시간 허비한 것 같았다. 오직 시를 위해 여행을 했고 혹 시에 필요할까싶어 찍어 온 사진을 들춰보기도 했었다. 시를 위해 화가들의 전시회를 찾아다녔고 영화조차도 스카이라이프를 통해 골라서 보는 중이었다.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는 공장에서도 일을 했던 이유도 시 때문이었고 노가다를 할 때 한 가지 일만 고집하지 않았던 것도 오직 시를 위해서였다.

개다리소반 위에는 어젯밤에 먹고 남긴 김치찌개와 소주병이 놓여있었다. 방으로 자리를 옮긴 이유는 필요하면 책이라도 들여다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찌개에는 숟가락을 거의 대지 않고 소주잔만 비워내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시를 만들어야겠다는 강박증 때문에 잔을 비우고 나면 방안을 둘러보곤 했다. 어둠이 내린 바깥에서는 바람소리도 빗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취기 때문에 방안의 물건들이 평면으로 보였다가 입체로 보이는 게 반복되고 있었다.

노트는 벽의 모서리 쪽에 쌓여있었다. 그가 쓰는 스프링노트는 대부분 줄이 없었다. 모서리 쪽으로 기어갔던 그는 노트를 몇 권 빼왔다. 노트 옆자리를 차지하는 건 수백 권도 넘는 책이었다. 이미 읽었기 때문에 손대지 않을 책이 태반이었지만 가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버리기가 어려웠다. 이사 올 때 버렸다가 다시 주워 온 책도 있었다. 그는 노트를 펴서 갈겨 썼다. 짐짝에 불과한 것을 방에 쌓아두고 있구나.

그는 볼펜을 놓고 노트마다 뒤적거렸다. 작품이 되지 못한 것들은 대부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매너리즘에 빠졌다거나 작위적이라거나 아니면 유치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낱개로 있는 문장들도 대부분 쓰임새가 없어 보였다. 그 마을에서 보았던 풍경을 표현한 ‘어머니에게 유모차를 사드려야 되겠어요’ 라는 제목의 시는 절반쯤 쓰다가 말았지만 뒷부분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서 포기한 작품이었다.

뭔가 나올 기미가 있어야 비틀어 짜든 쥐어짜든 하지. 중얼거리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수전증처럼 담배개비를 끼운 손가락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지만 입안에서는 연거푸 도넛이 만들어져 나왔다. 담배가 필터부근까지 타들어가자 장난을 그만 두고 짓눌러 껐다. 일어나서 바닥에 있는 술병을 상위에 눕힌 후 상을 치웠다.

밖을 보니 비는 그쳤지만 별은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주방에서 안방으로 돌아 온 그는 매트리스 위에 엎어졌다. 침대 매트리스에서 여자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샴푸냄새 같기도 했고 여자가 즐겨 뿌리던 향수냄새 같기도 했다. 그는 여자와 살았던 시절에 시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가 떠난 후 추억하면서 몇 편의 시를 만들었던 게 전부였다.

손모델 다리모델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여자는 몸을 아껴야만 했다. 네일아트가 되어있는 손톱이 부러지면 안 되었기 때문에 외식을 종종 했고 손을 위해 마사지 크림을 몇 가지 장만했다. 볕에 그을려도 안 되었기 때문에 밖에 나갈 때는 여름에도 팔이 긴 셔츠와 면장갑을 끼어야만 했다. 대신 다리는 면도를 했고 면도 후에는 오일과 로션을 섞어 발랐다. 모델에 합격이 되어도 일회성 촬영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지만 어느 때는 두세 번 더 촬영을 가기도 했다.

“마네킹 다리보다 더 예쁜데?”

그의 말에 여자는 의외로 시큰둥했다.

“다리 예쁜 여자들 널렸어. 난 B급이야.”

“A급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겠지.”

여자는 그에게 세상물정을 모른다는 말을 했지만, 그가 보기에는 완벽한 몸을 가진 여자였다. 담배를 피워 물고서도 주방 앞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알몸으로 서 있던, 수치심 따위는 전혀 모르는 성격이었다. 수줍음이 많고 예민한 그는 여자의 그런 점이 좋았다.

그는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으면 숨죽여 울곤 했다. 아버지는 성질이 급했기 때문에 말을 더듬고 있는 아들이 못마땅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의 생각에는 죽은 동생에 대한 분풀이 같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입대 하겠다고 했을 때나 제대 후 집으로 돌아갔을 때나 어머니는 그를 지나치리만치 무심하게 대했다. 다소 어리기는 했지만 두 동생들을 대하는 태도와는 천양지차였다. 제대 후부터 그는 부모가 싫어서 객지를 떠돌았다.

간난동생은 누워만 있다가 두 달여 만에 세상을 떠났다. 미음을 받아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동생의 죽음은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어머니가 미음을 일부러 끊었다는 것은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조심스럽게 대화를 했겠지만 그는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고, 그 순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되어 버렸다. 생각해보니 그는 간난동생과 함께 사라져야 할 운명이었던 것 같았다.

다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당에 모아 둔 잡동사니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에서 리듬감이 느껴졌다. 가끔씩은 바람소리와 빗소리가 엉키기도 했다. 날카로운 소리가 섞여있어서 귀를 기울이니 고양이였다. 닭 뼈에서 풍기는 냄새를 따라서 온 것 같았다. 더러 고기가 붙어 있어서 한동안 어둠속에서 뜯어먹을 터였다. 어쩌다 와서 그를 못 본 척 집을 둘러보는 회색 고양이를 떠올렸다. 누군가가 딱히 기르지 않으니 길냥이었지만 온순한 눈빛을 갖고 있었고 낯가림이 심했다. 늘 먹이를 챙겨 주다보니 어느 순간 가까워졌다. 그는 가끔 고양이를 쓰다듬다가 놓아주곤 했다. 고양이를 떠올리던 그는 노트에 얼굴을 댄 채 잠이 들어버렸다.

                                                                            ***

소스라쳐 일어났던 그는 방안이 낯선 장소처럼 느껴져서 두리번거렸다. 모든 것은 서너 시간 전과 마찬가지였다. 책장도 없이 쌓인 책과 노트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얼굴의 스프링자국을 문질러대던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한 건 새소리와 똑 닮은 돌쩌귀 소리였다. 꿈속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지만 문이 열렸다 닫혔던 것 같았다. 그는 눈을 비빌 새도 없이 노트를 펴고 볼펜을 집어 들었다.

‘돌쩌귀 속의 새 한 마리’

아직 미완인 시에 집어 넣을까하고 다른 노트까지 뒤적거렸지만 어울릴만한 내용은 없었다. 그는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나 앉았다. 호흡소리를 죽이면서 들어보니 비는 거의 멎은 것 같았지만 바람소리는 잦아들지 않고 있었다. 자잘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청각은 더 예민해지는 것 같았다.

바깥의 소리에 집중을 하다가 그만두고 과거의 것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함께 일하던 노동자들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귓전을 스쳤고 잠시 살았던 여자의 벌거벗은 몸이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움직였다. 이어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또렷이 기억났고 살아있긴 하되 시체처럼 보이던 간난동생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그날 새벽 일어난 일 중 가장 도드라진 부분은 간난동생이 손을 펼쳐 등잔불을 잡으려던 동작이었다. 등잔 꼭지에 붙어있던 갈래꽃잎 한 장 크기의 불은 순식간에 번졌고 부엌으로 통하는 창호지 문을 발갛게 물들였다. 뛰어 들어온 어머니의 얼굴도 붉은 빛깔이었다.

그는 떨리는 턱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귀 뒤에 끼워 둔 볼펜을 빼서 이로 물었다. 어지러워서 앉은 자세로 벽에 기대었다. 방에 술 냄새가 가득했고 머리는 뻐개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쩌다 와서 보면 나뒹구는 소주병과 재떨이에 수북한 꽁초. 방안의 풍경이나 그 친구의 눈빛을 보면 외로움 그 자체였지. 가끔은 낯모르는 여자가 오더라고. 그 여자도 가족은 아니었지. 전시회를 열다보니 빚을 졌다더군. 가족에게 버림 받았단 얘기도 하고. 술을 마시면 횡설수설했지.”

 전직교감은 술에 취하면 말이 많았다. 오갈 데가 없어서 저 귀퉁이 집을 얻었던 거야. 이장에게 사정사정해서 들어 간 집이야. 청소라도 좀 하고 살지. 귀신이 나오겠드만. 하긴 뭐 동네와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니 제대로 된 집을 빌리기도 어려웠을 거야. 닭도 몇 마리 기르더니 알을 낳는다며 좋아하더군. 날계란에 참기름을 떨어뜨려서 안주로 내놓곤 했어. 마을에서 오래 살까싶었는데 어느 순간 휭 하니 가버리데. 술만 마시면 외롭다고 울던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노인이 화가에게 연민을 가졌던 것만은 아니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인데 그 친구는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더군. 초상화를 부탁했으면 보기 좋게 그려야지 그게 뭐여. 실물보다 더 늙어 뵈고 고약한 표정이더군. 그걸 벽에 걸어두고 보라니. 그 사람은 시골사람과 동화되기 어렵겠더라고."

이사를 왔던 일주일쯤 되던날  노인이 방문해서 뱉던 말이었다.  왕따를 당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라하는 경고 같았다. 노가다들이라도 데려다가 술을 마시면 부작용이 생길 것 같아 그는 집들이도 하지 않았다.

벌써 이년 째였지만 마을 사람들은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집은 늘 격리되어 있었고 밤이면 아예 세상과 단절되는 것 같았다. 담 너머로 들리는 사람 소리만으로 위안을 삼겠다고 생각했지만 술에 취하면 서글픔이 밀려오곤 했다. 밤이 되면 집은 동굴 같았고 겨울은 그를 아예 감금시켰다. 그는 담배를 문 채 지난겨울의 지긋지긋한 밤을 생각했다. 담배를 잘근잘근 씹던 그는 ‘돌쩌귀 속의 새 한 마리’ 밑 부분에 엉뚱한 문장을 써 넣었다.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그가 일어선 것은 묵직한 아랫배 때문이었다.

배롱나무 밑에서 바지춤을 내리자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 땅에 담배를 뱉어버린 그는 이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는 마당에 그대로 서 있었다. 간헐적으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안방으로 들어간 그는 돌쩌귀 속의 새 한 마리 밑에 돌쩌귀 속의 영혼 하나, 라고 적었다. 물끄러미 노트를 들여다보던 그는 노트와 메모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에이포 용지, 가끔씩 시장을 다녀오기 위해 쓰는 메모지, 시작 노트, 달력 뒷장, 전화번호가 메모된 지갑속의 수첩까지 문장이나 단어들이 낙서되어 있었다.

잡동사니를 모아놓고 보니 상당한 분량이었다. 20L들이 쓰레기봉투를 가져와서 담았지만 봉투가 두세 장 더 있어야 다 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을 하던 그는 봉투를 거꾸로 들어서 쏟아버렸다. 다 모아놓고 보니 쓰레기더미 같았다. 휴지 두 조각을 뜯어서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종이에 옮겨 붙는데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습도가 높은 날이라 연기의 양도 많았다.

콜록거리던 그는 방문을 열어젖혔다. 마루를 채운 연기는 틈이 약간 벌어진 미닫이 사이로 새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도로 방바닥에 앉았다. 타오르는 불 때문에 그의 두 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끝-

 

 

 

 

 

 

 

김은숙   2012-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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