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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삶의 끝에서 < 마지막 회>
삶의 끝에서 <세번째>
삶의 끝에서 <두번째>
삶의 끝에서 <첫번째>







 :: 삶의 끝에서 <첫번째>


 

 

 

 

                                                                                       1

누이가 웃고 있었다. 눈이 살짝 감기는 웃음이었다. 한쪽만 쌍꺼풀인 누이의 눈은 예전처럼 크고 예뻤다. 얼굴빛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분홍 스웨터를 입어서 봄꽃처럼 화사한 느낌이었다. 얻어 입은 옷처럼 헐렁한 스웨터 위쪽으로 드러난 쇄골이 숨을 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했기 때문에 나는 걱정스럽게 누이를 바라보았다.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누이를 보니 정신 줄을 놓았던 옛날이 기억났고 그 무렵의 일들이 덩달아 떠올랐다.

“먼 죄가 그리 많아 서방 똥오줌을 받아내고... 저년까지 저러는 꼴을 봐야 하는겨.”

어머니는 아버지 기저귀를 갈며 누이까지 싸잡아서 욕을 했다. 이불 홑청을 뜯어낼 때면 더 심한 말을 뱉어내서 내 다리가 후들거리기도 했다.

“이 웬수들은 왜 죽지도 않고 나를 괴롭힌다냐. 이것들이 죽기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내가 목을 매는 게 낫것다.”

계속 구시렁거리면서도 어머니의 행동은 민첩했다. 다라에 한가득 내어간 기저귀와 이불 홑청을 빨아 양은들통에 담아서 삶았다. 어느 틈에 빨래는 마당의 줄에 널렸고 바람에 깃발처럼 펄럭거렸다. 바람이 많은 날에는 줄을 지탱하기 위해 세워진 장대가 몸부림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빨래 줄 뒤쪽으로 담장이 있었고 담을 등지고 화분 너덧 개가 열 지어 놓여 있었다.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화분에 긴 시간 동안 볕이 머물곤 했지만 몇 개의 화초는 이미 죽어버려서 소용없는 일이었다.

빨래를 널 때까지는 어머니의 몫이었지만 걷어 들이는 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가끔 나는 심술 난 것처럼 빨래를 걷으면서 화분을 발끝으로 툭 차곤 했다. 단 한 번도 화분이 나둥그러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항상 마른 빨래라는 표현을 썼지만 겨울에는 반은 얼어 있었다. 가끔 이불호청에서 구수한 숭늉냄새를 맡을 때도 있었다. 어머니의 기분이나 말투에 비하면 호청에 풀을 먹인다는 일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았다.

마당의 나일론 줄에서 걷어 온 빨래와는 달리 집안에는 기분 나쁜 냄새가 늘 떠돌았다. 가끔 어머니의 부름에 안방의 문을 당기면 퀴퀴한 냄새가 강아지처럼 달려들곤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 머리맡에서 고구마 줄거리의 껍질을 벗긴다거나 풀 먹인 호청을 밟고 있었다. 빨래를 안방에 던지고 방문 앞에서 돌아서면 어머니는 인정머리 없는 새끼라고 푸념도 했지만 그게 괜한 말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식을 둘밖에 두지 못했던 어머니는 아들 욕심이 많았다. 삼대 독자였던 나는 어릴 적 배앓이를 자주했고 허약했다. 어머니 고집에 꿀을 먹게 되었는데 아버지까지도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광의 커다란 항아리 속에 꿀단지가 있었다. 어머니는 소리가 안 나게 넣고 꺼내느라고 꿀단지를 담은 주머니에 줄을 매어두고 있었다. 그게 대 여섯 살 무렵의 일이었으니 주변 사람들의 표현처럼 내 속에 영감이 들어앉아 있었던 것 같다.

집착이라고 할 정도로 아들에게 애정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어머니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어쩌다 외출을 하기 위해 얼굴에 로션을 바르면 가출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어머니를 지켜보곤 했다. 어머니의 외출복은 무명천으로 된 개량한복이었다. 재봉틀을 사용했지만 바느질 선이 바르지 못해서 촌스러움이라는 단어를 피하기 어려운 옷이었다. 꼬불꼬불한 파마머리에다 개량한복을 입으니 딱 촌부 스타일이었지만 나는 어머니가 집에 돌아 올 때까지 전전긍긍하기 마련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마흔이 채 안된 나이였다.

어머니는 목을 매겠다는 말을 해서 나를 놀라게도 했는데 극단적인 선택이 현실화될까봐 망을 보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마치 내 인생의 종착지점에 다다른 것처럼 불안한 나날들이었다. 가끔 어머니는 견딜만하다는 말로 나를 다독거렸지만 내 마음은 마구 엉킨 실타래 같았다.

가장인 아버지는 3년째 누워있는데 누이까지 정신질환자가 되어 약을 먹고 있는 상태였으니 어머니 말처럼 개지랄 같은 세상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죽만 먹어도 되는 환자이지만 누이는 약을 꼭 먹여야만 하니 문제였다.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가면 맞아 죽는다는 말을 했지만 내 생각에는 돈이 없어 못 보낼 수밖에 없었다. 돈 때문에 누이에게 약을 더 이상 먹이기가 힘들게 되자 어머니는 무당 얘기를 꺼냈다. 내 생각에도 마지막 수단으로 무당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2

어느 날 어머니는 안주머니에 꽤 많은 돈을 구겨 넣더니 집을 나섰다. 어딜가요? 라고 묻자 어머니는 당골네, 라는 짧은 대답을 했다. 나는 미심쩍은 얼굴로 어머니 등을 쳐다보았지만 더 이상 묻진 않았다. 대신 어머니가 걷어다 준 아버지의 기저귀를 개키면서 구부정한 자세로 잠들어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계속 코 고는 소리를 냈기 때문에 건넌방으로 가기위해 걸음을 떼는데 광에서 소란을 피웠다. 책상에 놓인 아버지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니 누이에게 점심을 줄 시간이었다.

“국도 줘.”

누이는 내가 들이민 밥을 보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국이 없다고 하자 누이는 엉엉 울었다. 소매로 콧물을 닦아내면서 우는 걸 보니 우리 집에 간난아이가 둘이나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간난아이와는 달리 절망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양푼에 비벼진 밥을 체할 정도로 급하게 먹는 누이를 보다가 물주전자를 들이 밀었다. 누이가 주전자 꼭지를 입에 대면서 나를 쏘아 보기에 얼른 마루로 나왔다. 누이는 불만이 있을 때면 앙칼진 눈빛을 보였다.

누이는 배만 부르면 얌전했다. 흐린 날이면 누이의 혼잣말이 심해지곤 했다. 깊은 밤에는  여러 사람이 웅성대는 것 같아 소름이 돋기도 했지만 자주 들으니 별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한 것은 누이가 단 한 번도 광에서 꺼내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나는 누이가 답답할까봐 광과 맞닿은 마루 쪽으로는 밖을 내다 볼 수 있게 문틀에 나무를 덧대어 못질을 했다. 아래쪽은 판자가 대어져 있어서 그 틈새로 밖을 내다 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나마 처마에 가려 제대로 보이진 않을 터였다. 가끔씩 나는 누이의 표정에서 체념이라는 단어를 읽어낼 때가 있었다.

누이를 광에 가둔지 한 달 정도였지만 광에서 나올 수만 있다면 그때까지의 시간을 농담처럼 얘기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가 정확한 원인만이라도 알아서 왔으면 싶었고 푸닥거리라도 해서 누이가 예전처럼 되었으면 싶었다. 누이가 쪼그리고 앉아 꾸벅꾸벅 졸자 나는 안방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뒤척거려서 이불을 들추니 기저귀가 흥건했다. 기저귀를 바꾸면서 귀를 기울었지만 누이는 계속 침묵 상태였다. 점심 후라 잠이 들었을 것 같기도 했다. 한가해진 틈을 타서 마루에 걸터앉았다. 더위 때문에 적막감이 감돌았다. 앞산의 신록을 보면서 방학기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 가는 방향과는 다른 곳에 신당이 있었다. 딱 한번 호기심에 가보았던 곳이었다. 4킬로 남짓 되는 곳이었지만 자전거로 가니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 마을까지 가는 길은 우회로라고 할 수 있었는데 어머니 걸음으로도 삼십분 가까이 걸릴 수 있는 거리였다. 그날도 여름이었는데 새가 날아가면서 꽥꽥 거리는 울음소리를 내는 바람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담장 안쪽에 긴 장대가 서있고 빨간 천이 바람에 나부꼈기 때문에 그걸 잠깐 쳐다보았다. 땅을 파서 집을 짓지는 않았겠지만 유난히 깊숙이 들어앉은 집이었다. 허름한 양철대문이 마치 뒤로 꺾어버린 것처럼 젖혀져 있어 집안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창호지 격자문이 열려 있었고 무녀가 댓살쯤 된 아이 크기의 동자승을 향해서 손을 비비고 있었다. 동자승은 초승달 눈썹이었고 까만색의 수정체를 갖고 있어서 또릿또릿해보였다. 잿빛 승복이 어색해 보이던 새하얀 얼굴의 동자승은 석고재질이었다.

윤이 나는 머리칼 뒤쪽에 비녀를 꽂고 한복을 입은 무녀의 얼굴에는 주름이 많았다. 분을 하얗게 바른데다 눈썹이 새카맸기 때문에 무서운 느낌이었다. 천장의 문양이 상여집과 똑같아서 겁이 났던 나는 금방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어머니는 신당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누이에게 밥을 많이 준 벌로 요강을 비워야만 했기 때문에 어머니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중이었다. 점점 냄새는 심해졌고 버틸 수 없게 되자 광으로 들어갔다. 나 똥 쌌어, 라고 계속 지껄이던 누이는 정작 내가 들어가자 얼굴을 붉혔다.

요강을 들고 나오던 나는 코를 싸쥐고서 누이가 기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처럼 기저귀라도 채워야 한다면 어머니가 무슨 수로 두 사람을 다 감당할까 싶었다. 누이는 내가 보는 데서 요강에 앉는 일도 없었지만 요강을 들고 나올 때까지 고개를 약간 숙인 채 곁눈질만 했다. 밥을 많이 먹게 되면 살이 찌는 게 아니라 배설을 그만큼 해버린다는 것 또한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황망히 들어 온 어머니는 내가 비운 요강을 씻더니 묘지에 문제가 생겼다고 중얼거렸다. 이튿날부터 인부를 구하느라 서둘렀지만 묘지의 이장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서야 할 수 있었다.

묘지의 한쪽에 곡괭이질을 할 때부터 이상한 냄새가 주변을 맴돌았다. 구멍이 뚫리는 순간 인부들이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천지를 뒤덮는다고 할 만큼 역한 냄새였다. 무당의 말처럼 물이 차 있었고 삼년이나 되었는데도 사체가 멀쩡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마치 할아버지의 몸을 방부처리 한 것 같았다.

닿기만해도 부패된 살이 문드러졌기 때문에 조심히 다뤄야만 했다. 할아버지는 땅에 묻혀서도 수염과 손톱이 더 자란 것처럼 기괴해 보였다. 천에 감긴 그 상태로 다시 묻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고 오후 늦게 묘지 앞에서 푸닥거리를 해야만 했다. 무당이 방울을 흔들며 날뛰느라 땀깨나 흘렸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아버지야 하루아침에 벌떡 일어나기 어려운 환자임에는 틀림없었지만 누이동생조차도 차도가 없었다.

푸닥거리를 마친 후 달라진 게 있다면 어머니의 태도였다. 무당이야 쓸데없는 소리를 하듯 중얼중얼했을 테지만 어머니는 한마디도 허투루 듣지 않았던 것 같았다. 아버지에 대한 태도는 가끔씩 하는 욕설까지도 그대로였으나 누이를 대하는 태도는 어색하다 할 만큼 부드러워졌다. 어머니는 저년이 무슨 죄여 다 내 죄지, 라는 말을 하면서 혀를 차기도 했다.

아버지가 누운 채로 칠순이나 팔순까지 산다고 해도 어머니는 변함없이 기저귀를 갈고 호청을 뜯어내며 살 것처럼 강해 보였다. 어머니의 삶의 태도가 악바리 같지 않았다면 사춘기를 혹독하게 겪고 있던 나는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만 같다.

어머니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요 위에 늘 비닐을 깔았다. 아버지가 예고 없이 설사를 하기 때문이었다. 가끔 비닐이 뭉뚱그려져서 발치에 밀려나 있었다. 비닐이 피부에 들러붙기 때문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표정이 약간 심드렁해지기는 했지만 무슨 수로 그렇게 해버리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능력으로 봐서 어느 날 벌떡 일어나는 이변이 생길 것 같기도 했다.

염탐하느라 간혹 문구멍을 통해 안방을 들여다보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별 움직임 없이 누워 있었다. 아버지의 한쪽 팔다리는 아예 죽었다고 볼 수밖에 없었고 한쪽은 깔린 비닐을 밀어낼 정도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절대 아니었다. 게다가 평소에는 밥만 먹으면 곧 코를 골았다. 그런데도 어느 틈에 비닐을 밀어내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불가사의한 무엇인가가 있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의 정신이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지능이 낮아진 건 분명했다. 물론 몸으로 소통을 해야 했기 때문에 더 바보스러워 보일 수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먹을 것 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내임을 인식하지 못했고 나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아버지는 그저 먹을 것에만 집착하는 하등동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늘 곁에서 지키고 있는 어머니는 아버지의 눈빛이나 몸짓만으로도 무엇을 얘기하는지 잘 알았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에서 종종 희망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나는 아버지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아버지의 몸짓언어는 완고함으로 표현이 되기도 했다. 씻기 싫을 때면 움직일 수 있는 팔 다리에 억센 힘이 들어가 있어서 마치 돌잡이 아이처럼 막무가내였다.

몸이 작았던 어머니는 마루에 커다란 고무 통을 놓고 나를 부르곤 했다. 나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사타구니를 더듬는 동안 시선을 딴 곳에 두었다. 기온의 변화에도 별 반응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고환은 까치밥용으로 매달려있는 과일나무의 마지막 열매 같았다. 나는 표피에 덮여 축 늘어져있는 성기와 그 뒤쪽의 고환이 무용지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무렵 나는 몽정을 경험했고 이후부터 야릇한 꿈과 함께 그런 일이 생기는 날이 종종 있었다. 팬티를 꿍쳐 두었다가 몰래 빨아야 하는 일도 내겐 고역이었다.

 

                                                                               3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던 누이는 오히려 체질이 어머니와 비슷했고 나는 아버지와 식습관까지 닮아서 주의를 해야만 했지만 자각 증상이 오기 전까지 함부로 살았다고 볼 수 있었다. 일 년에 한번 씩 하는 건강검진을 빠뜨리지는 않았지만 비만으로 달려가는 몸에 대해서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거의 나는 일중독이었고 늦은 저녁에는 술을 마셨다. 짠 음식과 기름진 음식은 고혈압의 지름길로 가는 습관이었다.

건강검진 후 의사와 상담을 하면서 아버지와 같은 상황임을 알게 되었고 의사의 권고로 혈압약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규칙적으로 약을 먹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러 약을 빼먹기도 했고 한 달 가까이 병원에 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아침 한쪽 팔은 툭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10분 정도 지속되었고 나는 이상한 기분이 되어 멀거니 서 있었다. 10여분이 지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팔이 멀쩡했고 나는 병원에 가는 걸 미뤘다.

아내와 사이가 급속도로 나빠졌기 때문에 매사가 귀찮게 여겨지던 시기라고 할 수 있었다. 아내와의 갈등이 나의 과거사를 되짚어보게 했고 누이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생각해보니 그 무렵까지 누리던 호사는 결국 누이의 희생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내가 누군가를 밟고 일어섰다면 그 대상은 바로 누이였다. 물론 누이에게도 황금시절이 있었다.

아버지는 누이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늘 막내라고 했다. 장날이면 누이의 손에는 나보다 더 긴 엿가락이 쥐어지곤 했다. 누이의 땋아 내린 머리칼 끝에는 아버지가 사다 준 빨간 리본이 매달려 있었다. 어느 해 여름에는 칼라에 예쁜 꽃이 수놓아진 흰색 블라우스를 선물 받았던 누이가 머리맡에 놓아두는 바람에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누이가 선물 받은 물건들을 몰래 만져보면서 한숨을 쉬기는 했지만 드러내놓고 짜증을 내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쓰러질 당시 열두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누이는 고통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혼수상태가 사흘 이상 지속되었고 그동안 누이의 눈에는 늘 눈물이 매달려 있었다. 흰자위에 옥도정기라도 몇 방울 떨어뜨린 것 같아서 나는 누이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혼수상태를 벗어난 아버지는 겨우 죽을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언어를 잃어버렸고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했다. 누이는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방을 나가곤 했다. 나는 누이가 가는 곳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랑방에 기거하는 사람이 없어 툇마루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누이가 왔다간 날에는 걸레자국이 남아 있었다.

툇마루에서 누이와 마주칠 때면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삶에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 누이의 눈물이 짜증스럽게 생각되는 날도 있었다. 항상 누이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을 그쳤기 때문에 둘 다 멍하니 앉아있는 그런 모양새였다.

나는 울적할 때면 아예 폐쇄된 공간을 찾았다. 문이 늘 닫혀있는 창고였다.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그곳은 동굴처럼 싸늘하면서 쥐 오줌 냄새가 배어 있었다. 벽 중간쯤에 공기를 통하게 하기 위해 문을 내었고 거기에 쇠창살을 촘촘히 박았지만 밤톨만한 생쥐가 들락거리는 것 같았다.

한동안 어둠속에서 움직임 없이 서 있으면 서서히 마음이 진정되었고 그때서야 말간 전구를 달고 있는 소켓을 잡아서 스위치를 비틀곤 했다.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 지붕의 서까래에 줄레줄레 걸쳐져 있는 거미줄에 의해 벽에 무늬가 만들어지고 잡다한 것까지 시야에 들어왔다. 거미줄의 그림자가 거칠게 꼰 새끼줄 같은 모습으로 드리워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달라붙은 먼지 탓이었고 거미줄이 전구를 감아 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기저기 쌓인 먼지 냄새를 맡느라 숨을 깊게 들이켜 보기도 했다.

창고 안이야말로 아버지가 사용하는 잡다한 것들이 있는 장소였다. 농기구와 비료, 벼, 콩 하다못해 씨앗감자나 씨앗고구마까지 창고의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학교를 그만두고 그것들을 사용해서 농사를 짓게 될 것 같았다. 농기구는 내 손에 물집을 잡히게 하고 더러 굳은살이 생길 것 같았다. 그때 중학 3학년이었으니 그런 상상은 나를 참혹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농토라고 얼마 되지도 않은 것을 남에게 소작을 줬기 때문에 점점 쪼들리기 시작했지만 어머니는 그냥 저냥 버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고 어머니는 생각을 달리했다. 마을사람들의 권유로 누이를 취직시키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마을에 방직공장을 다니는 처녀들이 많았고 그 방직공장은 가까운 도시에 있었다. 버스로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쉽게 마음의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누이는 떼어 놓기에도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취직을 시킬 수 밖에 없었다.

학교를 그만 둔 누이는 도시로 가는 버스를 탈 때까지도 불만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날에 비해 얼굴빛이 핼쑥했다. 나이가 들어 보이게 하느라 누이는 땋았던 머리를 한 갈래로 질끈 묶었지만 내 눈에는 초등학교 6학년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이제한 때문에 누이는 아는 사람에게 부탁을 해야만 했다.

방직공장은 일이 고된 만큼 보수가 좋았다. 누이는 고치에서 실이 뽑혀 나오는 걸 감시했다. 뽑혀 나오는 실이 끊어지거나 고칫대에 감긴 실이 다 떨어지면 기계가 멈추는데 그때 누이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실을 잇고 다시 기계를 돌렸다. 순발력이 요구되는 작업이었다. 손가락이 기계에 끼는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어서 위험한 일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데도 가래에는 솜털이 섞여 나왔고 누이의 얼굴은 점점 누렇게 되어갔다. 기계가 내는 지독한 소음에 시달렸기 때문에 가끔 집에 들를 때면 두통 때문이라며 약을 먹기도 했다. 먼지나 소음보다 더 무서운 건 졸음이라는 호소를 하기도 했다. 어린 누이에게 주야 교대근무는 무리인 것 같았다. 기숙사에서도 사감이 있어서 예민한 누이는 늘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누이가 실성기를 보인 것은 아버지가 쓰러진지 삼 년 몇 개월 뒤쯤이었으니 열여섯이 채 되기 전이었고 방직공장 생활 일 년 반 만이었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사십 구제도 지내기 전 아버지가 쓰러졌고 이어 누이의 정신 상태에 이상이 온 것이니 마치 도미노현상과도 같았다.

어머니가 이장네 집으로 전화를 받으러 간 사이 나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어머니가 팽개친 기저귀를 아버지의 엉덩이에 밀어 넣느라 몇 분 동안이나 애를 먹었다. 누이가 혹 기계에 손을 밀어넣어 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상상까지 하다 보니 아버지의 몸에 이불을 덮는다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어머니는 채 15분도 안 되어 돌아왔지만 내 머릿속은 오랜 시간 지옥이라도 다녀 온 것 같았다.

누이가 기계를 멈춰놓고는 고치를 죄다 빼서 바구니에 담아 공장 뒤뜰에다 버렸다는 얘기를 하면서 어머니는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었다. 부른 택시가 금방 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더러 수건에 물을 적셔 오라더니 외출복을 입은 상태로 아버지의 얼굴을 닦았다. 내 저녁상까지 본 다음 상보를 덮는데 택시가 왔고 어머니는 읍내 터미널로 갔다.

너덧 시간 쯤 되었을까. 택시가 앞길에서 끼익하는 소리를 냈고 방에서 나간 나는 부리나케 마루로 나갔다. 차에서 나온 누이는 흰색 블라우스에 남색 치마를 입고 있어서 마치 교복을 입은 여학생 같았다. 손가락을 물고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예닐곱 정도밖에 안된 아이 같았다. 누이는 내 눈을 마주보지 않았고 의미 없는 웃음만 줄곧 흘렸다. 어머니는 누이를 부엌 앞으로 데려가서 등판을 후려치더니 얼굴을 씻겼다. 어머니의 손에 들린 수건이 누이의 얼굴을 한 바퀴 돌때까지 수동적이었던 누이는 밥상을 보자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밥을 입에 퍼 넣기 시작했다.

병원에 데리고 가보니 누이는 이미 중증이었다. 입원을 시켜야 했지만 한 달 분의 약만 지어왔다. 약을 먹자 누이는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았다. 때론 얼빠진 표정으로 방에 누워 있기도 했다. 약이 떨어졌지만 돈 때문에 어머니는 다시 지어 오겠다는 생각을 버린 것 같았다. 약 기운이 떨어지니까 누이는 다시 찬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누이의 식탐은 실로 무서웠다. 가끔씩 남의 집 찬장까지 뒤졌고 때로는 덜 자란 고구마를 캐다 먹기도 했다. 과일을 따서 먹을 때도 있었는데 울타리 때문에 치마가 찢어지기도 했다. 먹는 걸로 봐서는 누이의 위는 이미 쌀자루 크기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누이를 광에 가둬야했고 우리 가족에겐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어머니는 누이가 지나치게 소동을 피우면 밥을 많이 줘버리기도 했다.

소문이 어떻게 들어갔는지 친척들이 가끔 집에 들르곤 했다. 더러운 얼굴로 광에서 씨부렁거리는 누이와 기저귀를 차고 있는 아버지를 보면서 그들은 혀를 찼다. 내 손에 라면 몇 봉지 값 정도의 돈을 쥐어주면서 격려의 말을 잊지 않았지만 한번 다녀 간 사람들은 다시 오진 않았다. 우리 집 사정이 워낙 좋지 않아서 그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 것 같았다. 다행히 나는 학비 면제를 받고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성적은 전체 5위안에 드는 정도였지만 집안 형편상 전액을 면제받았다. 결국 나는 대학을 마치고 좋은 직장을 갖게 되었지만 아내와 아들의 삶만 윤택하게 해 주었을 뿐이었다.

 

 

                                                                      -계속-

 

 
 
 
김은숙   201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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