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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삶의 끝에서 < 마지막 회>
삶의 끝에서 <세번째>
삶의 끝에서 <두번째>
삶의 끝에서 <첫번째>







 :: 삶의 끝에서 <두번째>


                                                                              

                             

                                                            

                                                                           4

누워있던 아버지가 숨지기 직전 누이는 정신이 돌아왔다. 마주 잡았던 아버지 손에 힘이 풀리자 누이의 눈에서는 맑은 구슬이 쏟아지듯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누이는 삼우제까지도 멀쩡했다. 뻣뻣한 삼베 상복을 입어 누이도 나처럼 우스꽝스러웠는데 오히려 그게 다행이었다. 상복이 석고상처럼 정형화되어 있는 표정을 누그러뜨렸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누이를 감시하라는 의무까지 지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가끔 쳐다보면 누이는 거의 부동자세로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이나 친척들도 누이에게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몇 주간은 집안이 평온했지만 그 상황은 곧 깨졌다. 그 후 한 달 쯤 되는 날 아침 일찍부터 누이가 보이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나는 오후 서너 시쯤 되자 불안한 마음이 되었고 어머니와 누이를 찾기로 했다. 어머니는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갈퀴를 들고 나섰고 나는 일단 마을 한 바퀴를 돌 마음을 먹었다. 한 시간 가까이 남의 집까지 뒤졌지만 헛일이었다.

어머니는 마을의 위쪽 우물과 아래쪽 우물을 뒤지던 갈퀴를 헛간에 던져 버리고 씩씩 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토방에 걸터앉아서 생각을 해봤지만 누이가 갈만한 곳은 없었다. 누이는 어릴 때부터 밖으로 나도는 성격이 아니었고 그즈음에는 거의 방에서 지냈다. 별 대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속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겉으로는 평온한 모습이었다.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토방에서 일어서는데 창고 문이 약간 열려 있는 게 눈에 뜨였다. 혹시나 해서 창고 앞으로 달려갔다.

뜻밖에도 누이는 창고에 있었다. 산소에 다녀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신발에는 짓이겨진 흙이 묻어 있었고 흐트러진 머리칼에는 마른 풀잎이 잔뜩 들러붙어 있었다. 빈가마니를 깔고 깊이 잠들어 있던 누이를 깨우자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후로도 계속되는 식탐과 고함 때문에 누이는 다시 광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과거를 회상하다보면 현실에 대한 감각이 둔해지는 것 같았다. 깜짝 놀라서 둘러보니 방안이었고 방문 앞에 간병인이 누워 있었다. 낮에는 나와 가까운 거리에서 한숨씩 자는 게 간병인의 버릇이었다. 색색거리다가 가끔씩 코를 골았다. 내 눈이 스르르 감기면서 코골이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오빠는 왜 나를 광에 가두었어?”

누이가 배시시 웃으며 물었지만 질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누이의 앞니는 형광불빛처럼 하얗게 빛났고 눈자위는 섬뜩하리만치 붉었다. 나는 두려움을 떨치느라 심호흡을 했다.

“네가 밥을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이지.”

광에 갇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식탐이었다. 남의 집 부엌까지 뒤지는 것을 말리려면 가두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그래서 굶겨 죽였어?”

아니야. 네 탓이야. 그렇게 말을 하려고 했지만 얼굴 근육이 굳어지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누이에게서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몸을 앞으로 내밀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난 오빠를 이해해.”

누이의 입을 통해서 내 간절한 바람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누이가 내미는 손을 잡았다.

“연자야. 나도 미안했단다.”

금방 화해를 했지만 나는 누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나를 바라보던 누이의 얼굴에 미소가 잠깐 감돌다가 사라졌다. 곧 이어 누이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어깨를 들먹거렸다. 누이는 어릴 적에도 울면서 어깨를 심하게 떨곤 했기 때문에 감싸 안아야만 했다. 내가 감싸 안으려는 동작을 취하면서 누이는 대여섯 살쯤 된 소녀로 바뀌었다. 어느 틈에 나는 누이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오빠가 훨씬 크지. 너도 밥을 잘 먹어야 오빠처럼 키가 커질걸?”

누이는 어릴 적부터 밥을 깨작거리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늘 하는 말이기도 했다. 아버지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픽 웃었다. 나는 누이와 어깨를 풀고 마루를 통해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누이에게 딱지를 접을래? 하고 물었고 누이는 머리를 끄덕였다. 신문지로 딱지를 접다가 싫증이 나면 연을 만드는 게 우리가 하는 놀이였다. 누이의 정수리에 머리가 묶여 있었지만 잔머리 몇 올이 빠져서 이마를 덮고 있었다. 나는 안방의 귀퉁이에 쌓인 신문지를 몽땅 가져왔다. 코를 훌쩍거리자 누이가 잘라진 신문지를 구겨서 내게 내밀었고 나는 받으면서 씩 웃었다. 깨어보니 꿈이었고 내 등이 흠씬 젖어 있었다. 신문지를 몽땅 들고 오느라 힘이 들었기 때문에 땀을 흘렸던 것 같았다. 내 몸이 잠을 자면서 자유자재로 움직인다면 그 정도로 땀을 흘릴 것 같진 않았다.

나는 꿈에서 누이와 만들던 딱지와 연을 떠올렸다. 연이 중심을 잡지 못해서 뱅글뱅글 돌다 떨어지면 버리고 새로 만들어야만 했다. 제대로 만들지 못한 것들은 거의 불쏘시개로 쓰였지만 이상한 모양이었던 연조차도 신선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꼬리에 붙일 종이를 자르던 누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위의 커다란 손잡이에 조그마한 검지와 엄지를 끼워 넣고 가위질을 하니 생각처럼 잘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종이에 댓살을 놓고 풀칠을 하면서 자르는 일에 열중하는 누이를 힐끔거리곤 했다. 누이의 미간에는 주름 하나가 곧추세워져 있었다.

제대로 만들어지면 종일 연날리기를 했다. 점으로 보이는 글자들이었지만 하늘에 신문기사를 띄운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 기사들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중요한 내용이라는 것을 아버지의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신문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고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미담을 읽게 되면 우리를 불러 앉힌 다음 내용을 얘기해주곤 했다.

내 유년시절부터 아버지는 신문을 보았는데 일부는 변소에서 쓰였고 일부는 우리들의 놀이를 위해 쓰였다. 하루 늦게 배달되었기 때문에 철지난 월간지 별로 다를 것이 없었겠지만 워낙 볼거리가 없던 시절이었고 벽지마을이라서 풋풋한 내용으로 느껴졌던 것 같았다. 농부에 지나지 않았던 아버지는 점점 신문 읽기를 게을리 하더니 돈이 아깝다면서 구독을 그만 뒀다. 내가 초등학교 삼학년이 될 때까지 배달되었던 신문은 변소에서 계속 쓰였고 더러는 방의 벽에 붙여지기도 했다.

도배지 대신 붙어 있던 신문지에 많은 기사거리가 있었다.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그 신문지를 꺼내서 도배를 했기 때문에 누르스름한 빛깔이었고 기사내용은 대부분 잊힌 것들이었다. 딱지나 연을 만들며 놀았기 때문에 새삼스럽다할 신문을 중학생이 되어서야 읽게 되었다. 벽에 붙은 신문을 통해 오래전의 사건들을 보면서 나름 재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고 가끔은 고개를 갸웃 거리기도 했다.

포도주 광고도 볼 수 있었고 XX라사, 라는 양복점 광고도 눈에 뜨였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려하는 내 머릿속에는 기사거리가 담겨있지 않다. 대신 시골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모델의 하늘거리는 원피스와 인조 속눈썹 따위가 생각난다. 신문지의 배열을 고려해서 붙인 것도 아니었고 더러는 거꾸로 붙어 있었기 때문에 목을 비틀어 가면서 봐야만 했다.

모델들 대부분은 화장이 짙었고 치마가 짧아서 선정적이었다. 옷의 문양으로 봐서는 당시 요란한 무늬의 천이 유행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광고의 모델을 보면서 20대의 누이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방직공장에 다닐 때 첫 휴가를 내어 집에 왔던 누이는 튄다고 할 만큼 피부가 하얀 빛깔을 띠고 있었다. 포도주 광고의 여자처럼 싸구려 티가 나는 게 아니었다. 다만 어린 나이에 돈을 벌기 위해 하루에 열두 시간씩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살이 빠졌고 다소 핼쑥한 느낌이었다. 그날 나는 마루 끝에 앉아 추적추적 내리를 비를 바라보고 있던 누이를 가만히 응시했다. 앞산에 뿌연 안개가 스며들어 있었고 한숨을 쉬는 누이의 눈은 젖어 있었다.

“오빠, 죽음이라는 것도 이렇게 적막하고 쓸쓸할까?”

“조막만한 게 별 이상한 소리를 다 하네? 한 대 때려줄까 보다.”

나는 화를 벌컥 냈다. 누이는 무심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고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잠시 후 누이는 비와 관련된 유행가를 느릿느릿 불렀다. 대부분의 그런 노래는 이별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한마디를 더 하려고 누이를 쳐다보았을 때 눈동자에 어려 있던 냉소를 보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나는 누이를 마루에 두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해도 해도 끝이 없을 것 같던 누이에 관한 생각이 저만치로 밀려나고 있다. 의식이 가물가물해진다는 느낌에 생각을 더듬어 본다. 아무래도 내가 먹는 약의 성분 중에는 수면제도 섞여 있는 것 같다. 낮잠을 자면 워낙 꿈을 많이 꾸기 때문에 안간힘을 써보지만 눈동자가 풀리고 만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교복을 입은 누이가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누이는 땋은 머리끝을 검정고무줄로 돌려 묶고 있었다.

“어디가려고?”

“멀리 갈 거야.”

따라오지 말라는 듯 누이가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열린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데 내가 소리쳤다.

“나도 같이 가고 싶다.”

“안 돼, 오빠는 갈 수 없는 곳이야.”

누이는 손사래를 쳤다. 꿈속에서도 누이가 말하는 곳이 어디인지 짐작을 갔지만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얗게 빛나는 마당을 가로질러 가던 누이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소스라칠 뻔했다. 그 얼굴의 주인공은 누이가 아니라 아내였다.

 

                                                                               5

누이와 아내는 아름다운 용모이지만 전혀 다른 얼굴이다. 누이는 눈이 크면서 얼굴이 작고 입도 작아서 인형을 연상 시키는 얼굴이라면 아내는 약간 넓은 얼굴이었는데 둥근 이마 아래 콧날이 쭉 뻗어 있어서 우아한 아름다움을 가졌다고 할 수 있었다. 누이가 동양적이라면 아내는 다소 서구적인 얼굴이었다.

여자에게 말 붙이는 것조차 어려워하던 내가 아내를 만난 건 열 한 번째 맞선 자리에서였다. 딱지를 놓았건 딱지를 맞았건 열 번째까지는 맞선 자리가 불편했기 때문에 슬슬 염증을 내던 때이기도 했다.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속 벽시계를 흘끔거릴 수밖에 없었다. 맞선 상대와 헤어지고 난 다음에 내 자신에게 화가 날 때도 있었다. 어느 경우라도 차를 마시지 않고 일어 설 수가 없으니 맞선이라는 게 비생산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무렵 내 앞에 나타난 아내는 자석처럼 내 마음을 끌어 당겼다.

소리 없이 의자에 앉던 아내가 약간 미소를 지었는데 입술이 마치 꽃잎을 오려다 붙인 것처럼 고왔다. 화장이 별로 진하지 않았지만 입술 빛깔이 핑크색에 가까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아내의 입술은 깔끔한 선을 유지하고 있고 립스틱을 바르면 고혹적이다. 항상 차분한 느낌이었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여자였다. 아내와 만나자는 약속을 잡기만 해도 흥분이 되곤 했다. 네 번째 만났던 날 나는 평소에 안하던 농담을 했다.

“개고기 좋아하세요?”

내 질문에 아내가 눈을 너덧 번 깜빡였다. 두 번째 만남에서 아내에게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던진 질문이기도 했다.

“어릴 적에 개고기인 줄 모르고 먹은 적이 있어요. 맛이 괜찮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먹게 될 것 같네요.”

“큰일 났군요. 혜정씨는 천당에 못갑니다.”

“천당에 큰 관심은 없지만...그런데 왜 못 가죠?”

“사람이 죽으면 천당까지 인도하는 게 개랍니다. 그런데 그 개를 먹었으니 못가는 거죠.”

웃기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는 농담이라서 웃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내의 표정을 살피느라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고 다소 진지해져 있던 아내가 내게 물었다.

“농담인 거죠?”

“물론입니다. 혜정씨는 천당에 가실 수 있을 겁니다.”

아내는 웃었지만 그 말에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꽤 만나다가 결혼을 했고 결혼할 당시 잘 안다고 생각하던 아내였지만, 나중에 보니 속을 알 수 없는 여자였다.

긴 파마머리는 아내의 트레이드마크나 마찬가지였다. 처녀 적에는 헤어크림을 발라서 늘어뜨렸고 결혼 후부터는 모아서 핀을 꽂는다거나 묶기도 했다. 요새는 외출을 할 때 틀어 올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옆머리를 몇 가닥 빼기 때문에 우아하면서도 화려해 보이는 스타일이었다. 향내가 훅 끼쳐서 나는 깜짝 놀라면서 눈을 떴다. 아내는 무엇인가를 확인해 보려는 것처럼 내 눈 가까이에 얼굴을 가져다 댄 상태였다.

“괜히 놀라는 척 하지 마. 속 다 보이거든?”

말을 알아들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언질 때문에 나를 떠보는 것 같았다. 아내의 아름다운 눈의 흰자위에는 실핏줄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아내는 안구건조증이라면서 충혈 된 눈에 안약 몇 방울을 떨어뜨리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눈물에 워낙 인색해서 안구건조증에 시달리는 것 같기도 했다. 결혼 내내 단 한 번도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잘 가꿔진 외모라서 바깥에서 아내와 마주치는 사람들은 뇌질환으로 누워있는 남편을 둔 여자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십대 때부터 아내는 세련된 차림이었고 아들을 가졌을 때 몸이 20킬로 이상 불었지만 출산 후 여섯 달 만에 결혼 전의 몸매를 만든 독한 성격이었다. 반면 다이어트 때문에 젖이 말라버려서 수유는 하지 못했다. 아내의 젖가슴은 아들에게도 전혀 쓸모없는 물건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늘 지켜보는 입장이었고 그들이 나누는 말을 엿듣고 분석을 했다. 마음이나 생각이 눈동자에 반영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아내의 눈빛에서 무엇인가를 읽어내려 애를 썼다. 눈빛에서 가끔씩 살기가 느껴진다는 것도 이미 감지를 하고 있었다. 그런저런 이유 때문에 나는 무척 예민해져있었다.

뇌수술 후 나는 목숨만 건진 경우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식물인간과는 약간 다른 상태였기 때문에 퇴원이 가능했다고도 볼 수 있었다. 죽을 먹을 수 있었고 누군가가 부축을 하면 의자에 앉을 수도 있었다. 다만 오른쪽 팔다리가 축 늘어졌기 때문에 의자에 앉은 나를 넘어지지 않도록 옆에서 부축을 해야만 했다.

식물인간과 분명 상황이 달랐지만 내 스스로는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깨어 있으되 눈을 크게 뜰 수 없었고 잠이 들 때에도 눈이 덜 감긴 상태라서 오해를 자주 받았다. 의사의 처방약에는 진통제도 들어 있었다. 그건 내가 통증을 인지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의미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뇌는 정상으로 가동되는데 언어를 사용할 수 없으니 미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내의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나도 누이처럼 서서히 죽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쓸모는 없고 성가시기만한 존재이니 맘만 먹는다면 나를 어떻게 해버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소름이 돋았다. 아내는 내 누이가 광에서 굶어죽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친척의 입을 통해서 아내의 귀에 흘러 들어갔을 거라는 짐작을 하다 보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는 아내에게 누이의 죽음을 얘기하면서 원인을 장티푸스라고 했었다.

“당신 식사해야지.”

약간 누그러진 얼굴로 소곤거리듯 말했다. 아내에 대한 의심에도 불구하고 혀가 동동 뜰만큼 금방 침이 고였다. 적은 양의 식사로 인해 팔십 킬로가 넘었던 내 몸은 육십 킬로도 안될 만큼 말라버렸다. 매끼마다 한 국자 정도의 야채죽이 전부였고 고기를 섞은 죽은 일주일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였다. 가끔씩 간병인이 더 주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건 죽 가게에서 따로 사와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아내는 죽을 끓이면 냉장고에 보관을 했는데 아들이나 간병인더러 몇 그람만 주라는 당부를 했고 가끔씩 남은 죽을 저울에 올려보기도 했다. 아내는 며칠을 더 먹일 수 있는 분량일까 가늠해보는 일이겠지만 간병인에게는 딱 맞는 분량만 주라는 뜻으로 비쳐질 수도 있었다. 정신질환을 앓던 누이는 식탐이라 할 수 있었지만 나는 내 양의 절반의 절반도 안 되는 분량의 죽 때문에 걸신들려 있었다.

아내는 고양이 걸음으로 냉장고 앞까지 갔고 곧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전자렌즈가 소음을 내며 돌아가는 동안 회가 동한다는 표현처럼 꼬르륵 소리가 연거푸 났다. 다시 고양이 걸음으로 다가온 아내가 내 얼굴 앞에 앉으면서 밥그릇의 가장자리를 수저로 두 번 두들겼다. 나는 입을 크게 벌렸지만 입을 크게 벌리는 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아내는 약간 벌어진 내 입술 틈새로 죽을 밀어 넣었다. 그나마 일부는 턱을 타고 흘러 내렸다.

“자, 자 그만 드세요. 더 드시면 탈나요.”

나는 비굴해 보일 만큼 애처로운 눈초리로 아내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내는 내 목을 받치고 있던 팔을 매몰차게 빼냈다. 아내가 일어서자 턱에 묻어있는 죽이 내 혀끝을 유혹했다. 내 생각은 혀를 입술 밖으로 끌어내는 일이었지만 혀는 삶아버린 조개의 알맹이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아내는 휴지를 하나 뽑아 들더니 마치 내 마음을 짐작이라도 하는 듯 입 가장자리를 재빨리 닦아버렸다.

아내를 힘들지 않기 위해서 나는 죽지 않을 만큼 먹어야 했다. 누워 있는 나보다 멀쩡한 아내가 걱정인 내 아들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내가 누이와 내 아버지를 대하던 태도였다. 아직 어렸던 나는 그들이 성가신 존재였기에 함부로 대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나는 억울했다. 누이에 대한 과오의 대가는 아내나 아들에게 치러야 할 것이 아니었다. 특히 아내는 음식으로 나를 학대하고 있었다. 움직일 수도 없는 사람에게 음식을 지나치게 제한시킨다는 것은 죽으란 소리나 매한가지였다.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던 한 여자환자가 눈을 깜빡여서 성추행 사실을 알렸다는 기사를 떠올렸던 적이 있었다. 나도 비슷한 방법을 써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나는 식물인간보다는 훨씬 양호하니 아내의 비열한 행태를 알리기가 쉬울 것 같았다. 친척이 오면 아내가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뜻으로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열심히 움직였다. 꽤 오랫동안 반복했지만 눈치를 채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배고픔에 시달린다는 뜻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그들은 내가 바보이기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눈물을 보던 어떤 이는 내가 빨리 죽는 게 주변 사람을 위해 바람직 할 거라는 노골적인 말까지 해서 분노에 심장이 벌렁거렸던 적도 있었다. 그 후 나는 손과 발을 사용해서 하는 연기와 눈물 연기를 그만두었다.

병원에서 퇴원할 무렵의 나는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때 나는 죽을 먹기 시작한지 육 개월이 지났고 형식상으로는 회복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늦거나 빠르거나 재활치료에 들어가는 환자와는 달리 나는 회복이 어려운 케이스였다. 당시 나는 한쪽 팔다리를 약간씩 움직이는 정도였기 때문에 중환자나 마찬가지였고 장기적인 입원을 요하는 환자라 볼 수 있었다.

수술에 들어갈 때도 생과 사의 확률이 반반이었으니 어쩌면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다행이랄 수 있었지만 가족들 입장에서 보자면 나는 죽었어야 마땅할 인생이었다. 뇌질환 쪽으로 워낙 우수한 인력이 모여 있는 병원이었기 때문에 예약되어 있는 환자가 많았다. 따라서 상태가 약간만 호전되어도 퇴원을 종용하는 편이었다. 나도 병원 사정상 퇴원할 수밖에 없었는데 담당의사는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가족들이 자신들의 편리를 생각해서 집으로 데려 가겠다고 하자 의사는 주의사항이 인쇄된 종이를 내밀었다. 간병인까지 딸려 보내면서도 의사는 못 미더워하는 눈치였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알고 있는 이유는 퇴원할 때 주워들은 얘기도 있었고 가족들이 내 머리 맡에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기 때문이었다.

퇴원을 하자 주변에서는 쑤군거림이 있었다. 다만 퇴원을 한 후 몇 달이 지나도 내게 별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후부터는 오히려 가족들을 동정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환자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표현처럼 가족들에게 호의적인 말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게 전혀 호의적이지 않던 사람들 앞에서 했던 연기는 생에 대한 갈망이나 집착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의 감각은 점점 본능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내는 나의 그러한 점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고 병원생활을 꽤 했다는 간병인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것 같았다.

 

                                                                                  6

간병인과 함께 내 몸을 씻기는 아내는 무겁다고 늘 엄살이었다. 간병인이 내 몸을 안고 있다시피 하는데도 아내는 나를 씻기면서 숨을 길게 뱉어내곤 했다. 내 몸의 살을 발라내봐야 뼈와 가죽, 두 가지 밖에 나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다이어트는 계속 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내는 나를 통해 사람이 얼마만큼 마르면 죽게 되는지 실험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도 아버지의 식사량을 조절하기는 했다. 그러다가 가끔은 못 먹고 죽은 귀신은 저 세상에 가서도 원통해 한다며 대접에 죽이 넘치도록 담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걸신들린 사람처럼 받아먹고 나서 설사를 했다. 너무 오랫동안 누워있어서 위장의 기능이 약해진 탓이었다. 어머니는 무담시 마이 멕여가꼬, 라는 푸념을 하면서 화를 내기는 했으나 절대 때리지는 않았다.

누가 있건 말건 어머니는 화가 나면 아버지에게 욕을 했지만 아내는 나와 단둘이 있을 때만 나를 괴롭혔다. 기저귀를 갈 때면 허벅지나 엉덩이를 손으로 움켜쥐고서 비틀었고 때로는 손가락을 갈퀴처럼 오그려서 손톱 끝으로 꾹꾹 찌르기도 했다. 간병인은 내 몸의 멍 자국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찼지만 아내 앞에서는 모르는 척했다.

아버지는 하루에 한 번씩 똥을 누었다. 똥이 마려우면 이상한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어머니는 끙끙대면서 아버지를 나무판자를 덧대어 만든 배변기에 앉혔다. 가끔씩 설사를 하는 아버지와는 달리 나는 밤톨만한 똥을 두어 덩어리 누기 위해서 사흘에 한번 씩 관장을 해야 했다. 항문에 약을 넣고 있으면 아랫배가 한참 뒤틀리다가 똥이 밀려나왔다. 간병인은 약이 점액질처럼 똥을 싸고 있어 도롱뇽 알 같다는 소리를 하면서 배변기를 씻곤 했다. 아내는 똥을 치울 때마다 웩웩거리기 일쑤였지만 간병인은 내 엉덩이를 닦아낼 때까지 표정에 변함이 없었다. 아내가 없을 때 관장을 해야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간병인은 젖은 티슈로 항문을 닦아낸 다음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을 가져와 닦고 또 닦았다. 간병인은 혼자서 나를 씻기는 경우도 많았다.

간병인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그런 모든 일을 간단하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봉사정신이 남다른 것 같기도 했다. 간병인은 나이에 비해 건강해 보였고 부지런한 성격이었다. 말이 간병인이지 생활도우미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만큼 급여봉투는 두툼했다. 그렇다고 해도 아내가 워낙 깔끔하고 까다로운 성격이라서 간병인 나름대로는 불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부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아내가 간병인에게 던지던 농담을 떠올리면 이상한 기분이 들면서 얼굴이 화끈거린다. 말년에 복 터졌구만, 마누라가 둘이나 되니... 그 말에 나를 씻기고 있던 간병인이 비누를 떨어뜨렸고 아내는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 말이 아니더라도 간병인의 손길이 닿을 때면 내 몸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곤 했다.

아내가 집을 비운사이 일어난 일이었다. 간병인이 나를 씻기기 위해 간이욕조에 앉혔고 물이 약간 넘쳐서 방안이 어수선한 상태였다. 아무리 조심을 해도 방에 물이 튈 수밖에 없어서 빨리 끝내야만 했다. 간병인이 사타구니에 비누를 발라 문지르는데 내 하반신에 힘이 들어가면서 물건이 슬그머니 일어섰다. 처음에는 심호흡을 해서 간신히 물건을 제자리로 돌려놓았지만 다시 까딱거리자 간병인의 눈에 띠고 말았다. 동작을 멈추고 사타구니를 주시하던 간병인의 눈빛이 야릇하게 빛났다.

"워따, 죽은 낭구에서도 이포리가 돋나벼."

간병인의 호들갑이 아니라도 더듬이처럼 움직이는 물건은 내겐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이후 가끔씩 그런 일이 일어났지만 간병인은 내 몸의 반응에 대해서 아내 앞에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오늘도 역시 그런 현상이 일어났고 간병인은 미소를 띤 채 물끄러미 내 물건을 바라보기만 했다. 내 하반신을 씻길 때도 지나치게 형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 주물럭거리기만 해도 소원풀이가 될 것 같았지만 문지르는 시늉만 하다 말았다. 마음 같아서는 물건을 최대한 부풀려서 간병인 앞에 들이 대고 싶었지만 나는 그저 눈치만 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나를 매트리스 위에 눕히느라 끙끙대던 간병인이 옷을 갈아입더니 부랴부랴 나갔다. 외출약속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간병인이 나가버려서 내 물건은 상황을 알아채지 못한 듯 뻣뻣한 상태였다. 하지만 물건은 금방 바람 뺀 튜브처럼 되었고 몸의 기운도 빠졌다. 간병인이 나를 불편한 상태로 눕혀놓고 가버렸기 때문에 나는 인상을 쓰고 있었다. 똑바로 눕기 위해 왼쪽 팔 다리를 움직이다가 우연히 장롱을 바라보게 되었다. 거리가 약간 떨어져 있었지만 거기에서 무엇인가가 어른거린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바라보던 나는 그게 거울을 대신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거기에는 매우 낯선 얼굴이 있었다. 약간 벌어진 입에서 침이 흐르고 초점 없는 눈을 가진 늙은이였다. 나는 몇 년 사이에 정말 몰라볼 만큼 폭삭 늙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피폐한 내 모습이 싫어서 눈을 감았지만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소리를 꽥꽥 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약간 벌려진 입을 통해서 소리가 나갈 수 있도록 무엇인가를 토해내듯 목에 힘을 주었다. 공기가 함께 밀려나오면서 사람의 목소리라고 할 수 없는 이상한 소리가 나왔다. 마치 짐승이 낮게 울부짖는 것 같았다. 어떤 식으로든 말을 해보려고 했지만 입이 거의 움직여지지 않았고 목에 핏대만 섰을 뿐이었다. 그래도 울부짖는 소리가 입을 통해 나왔다는 게 내겐 신기한 일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조금씩 호전되고 있는 듯했다.

갑자기 현관문이 덜컹거리면서 문이 열렸다. 간병인이 꽤 오래전에 나갔기 때문에 아내가 소란스럽게 들어오고 있었다. 소리나 냄새만으로도 누가 들어오는지 내겐 구분이 가능했다. 아내는 우선 내 방부터 들여다봤다.

"저 인간 반듯하게 눕혀라. 엎어지겠다."

아내의 목소리에 아들이 가방을 툭 던졌다. 아들이 가까이 오는 동안 양말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 아들은 몸을 구부려서 내 오른쪽 어깨를 밀었다. 내 등이 바닥에 닿으면서 덮고 있던 이불이 몸에 깔렸지만 아들은 내 몸을 그대로 두고서 이불을 잡아 뺐다. 욕창 때문에 소리를 마구 지를 정도로 아팠지만 나는 그저 아들을 바라 볼 뿐이었다. 콧물이 한쪽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크. 욕창이 있다는 걸 깜빡했네.”

아들이 휴지로 내 코 밑을 닦아내면서 중얼거렸다. 아들이 목 근처까지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주는데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들은 나를 못 본체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는 뼈대가 있어서 지금도 무겁네요.”

아들은 클렌징오일이 발라져있는 아내의 얼굴을 힐끔 보더니 입을 열었다. 아들은 가끔 아내가 내 수발을 들 경우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겠지만 해봐야 젖은 기저귀를 바꿔주는 일 외에는 거의 없었다. 하루 세끼를 죽으로 때우니 소변도 성인들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만 한꺼번에 많은 양을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아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이어트 중이다."

아내는 번들거리는 얼굴을 닦아낸 휴지를 쥔 채 잘라 말했고 아들은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클렌징오일 뚜껑을 돌리는 소리와 아들의 숨소리가 내 귀에는 불협화음처럼 들렸다.

“다이어트를 병원에서 하래요?”

“의사가 별말을 안 하는 거 보면 문제가 없을 거야. 네가 보다시피 네 아버지 몸은 건강하잖니.”

아들은 화날 때 하는 버릇인 손가락꺾기를 하면서도 말은 없었다. 대신 벌떡 일어나서 방에 던져두었던 가방을 낚아채듯 들고 나가버렸다. 아내는 잔뜩 구겨진 휴지를 휴지통에 힘껏 던진 다음 욕실로 갔고 집안이 적막이 깔렸다.

다른 날에 비해 모자간의 갈등이 심화된 것 같았다. 나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였지만 아내는 아들이 반기를 들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물론 아내가 아들에 대해 과신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결혼 삼년 만에 얻은 아들이니 아내에게든 내게든 귀한 아들임에 틀림없었지만 아들은 늘 아내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아내는 학교의 담임을 자주 찾아갔고 아들의 과외선생을 선택할 때도 까다로움을 피웠다. 나는 늘 아내가 주도면밀하지 않았다면 아들이 명문대에 입학하기는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내는 아들이 점점 중립적이 되어 간다는 것을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끔씩 나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빛에서 연민의 느낌을 읽을 수가 있었다. 반면 아내를 볼 때마다 두려운 생각이 머리를 스치곤 했다. 내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시점이 아내의 손에 의해 결정될 수도 있다는 상상 때문이었다.

그런저런 생각이 들 때면 내 편이 누구일까 짐작해보기도 했다. 아들은 결정적일 때 틀림없이 내 편이 되어줄 것 같았다. 간병인은 남이었기 때문에 믿기 어려웠다. 물론 내게 매우 호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어차피 간병인은 나를 돌보는 사람에 불과했고 수고료를 지불하는 사람은 아내였다. 아내는 남으로 돌아선지 오래였기 때문에 기대를 접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간병인의 손길이 이젠 전혀 불편하지 않았고 종종 가족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가끔은 간병인이 아내와 얘기를 할 때 나이를 가늠해보기도 했는데 오십대 후반일 것 같았다. 하나밖에 없다는 딸에 관한 말을 입에 올릴 때 들어보면 굉장히 솔직한 성격이었다. 아내가 간병인의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들어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은 알 수 없었지만 딸을 시집 보낸 후 혼자 살고 있었으니까 현재는 집이 비어있다고 할 수 있었다. 가끔 옷 때문에 집에 다녀오기도 했는데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걸 보면 가까운 거리에 집이 있는 것 같았다.

잠깐 간병인을 생각하는 동안 아내는 욕실에 비누냄새만 남기고 건넌방으로 사라졌다. 나는 방 화장대에 얹혀있는 클렌징오일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내가 안방을 사용하면서부터 아내는 건넌방에서 잠을 잤다. 간병인은 열한시쯤 잠자리에 들곤 했는데 그 시간부터는 아들이 내 방에 간간히 들락거렸다. 하지만 열두시나 한시쯤 되면 다들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는 나는 그대로 죽어야 할 것 같았다.

아내나 아들은 내 곁에서 잘 생각이 전혀 없었고 간병인은 남인데다 여자이기 때문에 낮에는 함께 있다가도 밤이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자야했다. 퇴원 후 며칠이 지나자 내 방의 문이 떼어졌고 그들은 그게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한 것 같았다. 겨울에는 쌀쌀한 바람이 스며드는 것 같기도 했지만 추운 건 아니었다. 가족 중 하나가 거실로 나오면 즉시 눈을 뜰만큼 나는 선잠을 잤다.

시계를 보니 열두시가 넘어 있었다. 비누냄새가 사라진 거실은 조용했다. 나는 잠들지 못한 채 각각의 방에서 나는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가끔씩 간병인은 코고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내도 잠들어 있었지만 숨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신혼시절에는 숨소리 없이 잠자는 모습을 보면서 천사라는 표현을 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잠자리에서까지도 내숭스러운 여자였다.

 

 

 

                                                                   -계속-

김은숙   201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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