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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삶의 끝에서 < 마지막 회>
삶의 끝에서 <세번째>
삶의 끝에서 <두번째>
삶의 끝에서 <첫번째>







 :: 삶의 끝에서 < 마지막 회>


                                                                                      10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사흘 전쯤부터는 지나치게 수다스러워졌다. 더러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할 때도 있었고 때로는 누이를 데려오라고 성화를 부렸다.

“야가 어디 갔다냐?”

“누구요?”

나는 알면서도 시치미를 뗐다.

“연자 말이다.”

“연자는 죽었잖아요.”

내가 그런 식으로 대답을 하면 어머니는 화를 벌컥 냈다. 어머니는 연자가 병원에 있다고 믿고 있었다. 치료를 잘 받고 멀쩡한 몸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다말고 나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연자만 내비 두고 오는 거여?”

어머니는 담배 냄새를 풍기며 들어오는 나를 보면서 그렇게 물었다. 이미 어머니의 혼은 저승 문 앞에 가 있었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은 죽기 직전의 누이를 떠올리게 했다. 누이는 어머니와는 반대로 정신이 돌아와 있었다. 사춘기였던 누이는 아버지 죽음에 대한 상실감과 자신이 다시 미쳐버릴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지만, 당시 나는 누이의 감정 상태를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우리 가족 중에서 고통 없이 살다 간 사람이 있다면 바로 아버지일 것이다. 아버지는 누이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으니 슬픔이나 고통 따위를 느끼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나름 편한 삶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버지의 상황은 한결같았지만 누이는 어머니와 내가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고 있었다.

맑고 순한 눈동자가 어느 날부터 불이 담긴 것처럼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머리는 수세미처럼 되었고 옷을 갈아입히려면 애를 먹였다. 겉옷만 벗기려는 데도 수치스러워 하면서 옷을 꼭 붙들고 있었다. 스스로 벗지도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한 시간 가까이 실랑이를 쳐서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여름이면 노숙자처럼 불결한 냄새를 풍기는 누이였지만 순결한 몸이었다. 세수만 해도 용모가 달라지는 누이를 씻기기 위해 밖으로 데리고 나오면서 나는 누이에게 폭력을 써야했다. 불상사라도 나면 제압을 해야 했으므로 나는 늘 작대기를 들고 있었다.

작대기 자국은 하루 정도 지나면 마치 이끼가 돋아난 것처럼 몸에 폭이 넓은 푸른 줄을 만들었다. 등이나 어깨를 붓질하듯 지나간 그 멍 자국을 보면서 나는 자책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길로 뒷산에 오르기도 했다. 내가 마을의 반대편을 향해 소리를 질렀던 것은 내 행동이 부끄러워서였고 얻어맞으면서도 대문 밖으로 뛰쳐나갈 줄을 모르는 누이가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정신이 나갔다 돌아왔다 하는 게 누이는 더욱 견디기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제 정신으로 돌아와 벽에 기댄 채 쭈그리고 앉아있는 누이에게 나는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산에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싶어.”

누이는 풀벌레처럼 가냘픈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바깥세상이 무척 그리웠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날 누이를 마당으로 데리고 나왔다. 누이는 물이 담긴 세숫대야를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천천히 세수를 했다. 세수를 마친 누이는 내 손에서 수건을 받아 얼굴을 꾹꾹 눌렀다. 나는 누이의 흰 수정체에 붉은 빛이 감도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수건으로 오랫동안 얼굴을 닦아내는 누이를 외면하고 있었다.

 한참 후 손을 잡아끌자 누이는 처마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헝클어진 머리를 빗지도 못했지만 햇살이 내려앉은 얼굴이 너무 투명해서 눈이 부실 정도였다. 내가 아는 여학생들을 다 떠올려 보더라도 누이보다 더 예쁜 얼굴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햇살에 눈이 부셨는지 누이는 눈을 꼭 감은 상태로 얼굴을 쳐들었다. 얼굴을 타고 흐르던 눈물이 옷을 적셨다. 마치 누이의 가슴 근처에 비가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누이를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떨어뜨리면서 주먹으로 눈을 훔쳤다.

누이는 나와 이삼 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지만 그대로 계속 서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누이를 때려서라도 대문 밖으로 쫓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붙들리지만 않는다면 누이는 단 며칠간이라도 자유롭게 지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누이는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그 자리에 서서 해와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었다.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누이를 광으로 데리고 가서 새 옷을 준 다음 문을 잠갔다. 잠시 후 누이가 벗어 준 옷을 둥글게 말아 쥐고서 광문을 등진 채 서 있다가 마루로 나왔지만 누이는 어두워질 때까지 불도 켜지 않은 채 앉아있었다. 그날따라 아버지도 소리 없이 누워있었고 어머니도 말이 거의 없었다. 집안의 침묵 때문에 주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무척 소란스럽던 날이었고 오월의 끝자락이었다.

스스로가 미쳤다는 걸 알아 버렸기 때문에 누이는 삶을 포기 한 것 같았다. 정신이 돌아오면 누이는 절대 밥을 먹지 않았다. 누이가 기다리는 건 죽음이었다. 비오는 날 광에서 나오고 싶다는 누이의 간절한 바람이 이뤄지지 않았던 이유는 비만 오면 온 동네가 울릴 정도로 악다구니를 썼기 때문이었다. 알아듣지 못할 말을 계속 지껄였고 사이사이 내게 욕을 하기도 했으며 열어 달라는 듯 광문을 힘껏 밀기도 했다. 만약 밖으로 나오게 된다면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런 날에는 오히려 광문을 밀고 나올까봐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누이의 정신은 온전한 시간이 짧아지고 있었다.

어느 날 누이는 미쳐있는 상태일 때 자신의 행동이 어땠느냐고 물었다. 기습적인 질문이었기 때문에 나는 답을 못하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별거 아니야. 말을 잘 안하고 오빠를 몰라보는 정도라고 생각하면 돼.”

나는 친밀감의 표시로 누이의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얘기했지만 누이는 미심쩍어하는 표정이었다. 누이가 입을 꼭 다문 채 나를 마주보고 있으면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손윗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이는 아직도 얼굴에 솜털이 많았고, 몸은 말랐지만 볼이 통통한 열여섯 살의 소녀였다. 예민한 나이의 누이가 받는 상처가 어떠리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말이든 조심스럽게 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 쥐 소리가 난다고 중얼거리던 누이가 광 틈을 손톱으로 긁어대는 버릇이 생겼지만 나는 금방 알지 못했다. 우연히 손톱 밑에 엉겨 붙은 피를 보았고 나는 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와 손끝을 들여다봤다. 손톱은 전부 망가졌고 지문이 있어야 할 곳에 피가 엉겨 있었다. 손을 씻기고 약을 바른 다음 손톱을 다듬어주면서 그래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했지만 누이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아버지와 누이는 그 해 겨울을 간신히 넘기더니 이듬해 봄에 각기 유명을 달리했다. 땅이 풀리기 전에 아버지는 땅에 묻혔고 누이는 봄비가 내리던 날 화장터로 갔다. 아버지야 오년가까이 누워 있다가 세상을 떴으니 살만큼 살았다고도 볼 수 있었지만 누이는 정신을 놓아 버린 지 일 년 반 만에 세상을 등졌으니 억지죽음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누이가 세상을 떠나던 무렵 며칠간 비가 왔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초록빛 세상을 적실 때 누이는 화장터로 가기위해 분단장을 하고 있었다. 연기로 사라질 새하얀 얼굴을 보면서 어머니는 그때야 울음을 터트렸다. 마치 막힌 보가 터지듯 어머니의 울음은 삼우제가 끝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누이의 영혼결혼식이 있었다. 어머니가 신당을 들락거리더니 누이는 이웃동네의 자살한 총각과 결혼식을 올렸다. 누이의 결혼식 날에도 비가 왔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제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던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너머 너머 이뿌드라. 색동저고리를 입은 짚 인형을 두고 하는 말인지 생전의 누이를 떠올리면서 하는 말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순간 코가 맵싸했고 나는 울음을 삼키기 위해 이로 손가락을 물었다.

누이가 남긴 몇 줌의 재를 선산에 서 있던 아름드리 떡갈나무 밑에 뿌리자고 했던 건 어머니였다. 냇물에 띄우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 같아 싫다던 어머니의 의견대로 유골함을 들고 선산으로 갔다. 선산에는 오솔길이 나 있고 길 근처에 있는 떡갈나무였기 때문에 찾기 어렵지 않았다.

날만 새면 어머니는 누이를 찾아 선산에 갔고 떡갈나무를 부여잡고 눈물바람을 하다 돌아오곤 했다. 선산을 가면서도 아버지 묘지를 들르는 게 아니라서 이해가 잘 가지 않는 행동이었다. 어머니가 두려움에 시달리게 된 것은 이상한 일이 생겼던 까닭이었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산을 오르던 어머니 손에는 우산이 들려 있었다. 고단한 몸을 끌고 쉬엄쉬엄 가는데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골짜기를 타고 올라오던 바람이 휘파람 소리를 냈고 치마 끝자락이 다리를 감아 돌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어머니는 간신히 산을 내려왔다. 집 앞에 와서야 우산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후 어머니는 온 집안을 뒤지다시피 해서 누이의 물건을 다 태웠다. 하지만 오싹하게 했던 그런 느낌은 계속되었고 나도 밤이면 잠자리가 편하지 않았다.

내가 더러 가위눌림을 당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마을을 뜨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전학문제를 상의하러 갔을 때 학교에서 강하게 반대를 했고 어머니는 난감해했다. 학교 측에서는 학교의 사택에 나를 보내면 담임이 알아서 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어머니는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얼마 후 나와 어머니는 대도시의 귀퉁이에 짐을 풀었다. 그길로 어머니는 파출부라는 일을 찾아서 했고 나는 죽어라 공부만 했던 것 같다.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나야말로 엄청나게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을 위해서 정신질환을 앓던 누이가 서둘러 세상을 등진 것 같았고, 역시 어머니도 내가 성가시지 않을 만큼 앓다가 세상을 떠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방기했을 뿐이었다. 아내가 어머니에게 오랫동안 심하게 대했다는 것을 정말 몰랐었는지에 대해 자문을 할 때가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무관심이 가져다 준 결과라는 답이 나왔다.

어머니의 죽음 후 나는 모든 생활에는 충실했지만 아내와의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생기고 말았다. 가끔씩 고혈압일 것이라는 의심이 되는 두통에 시달렸지만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았고, 지독히 춥던 날 나는 길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11

아침부터 두 여자가 내 몸을 씻기고 있었다. 병원에 가야하는 날이기 때문에 아들까지 대기 중이었다. 아들은 씻기는 일이 마무리 되어 가는지 묻더니 휠체어를 꺼내느라 덜그럭 거리는 소리를 냈다. 들것의 역할을 겸하는 휠체어는 나처럼 몸을 거의 쓸 수 없는 사람을 위해서 특수 제작이 되어 있었다. 휠체어를 이용해서 바깥바람을 쐴 수 있었으면 했지만 그건 요행을 바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내나 아들의 품위를 위해서 바깥출입을 삼가야만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는 게 바깥나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병원에 갈 때는 몸을 한 번 더 헹궈야하기 때문에 내게도 번거로운 일이었다. 문턱에 앉은 간병인은 내 겨드랑이 사이를 잡고 있었고 아내가 나를 씻기고 있었다. 아내는 마른 감자처럼 쪼그라진 고환을 문지르면서 중얼거렸다.

"씨도 받지 못할 게 붙어있으니 귀찮기만 하네."

못마땅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간병인은 아내와 눈이 마주치게 되자 어색하게 웃었다. 간병인은 내 겨드랑이에 끼웠던 한쪽 팔을 풀었고 튜브 아래쪽에 있는 꼭지를 잡아 뺐다. 욕조의 물이 콸콸 쏟아지자 아내가 내 겨드랑이에 팔을 끼웠고 내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아내는 나를 욕조의 바닥에 놓고 튜브의 꼭지를 잠갔다. 간병인이 대야에 담아 온 물을 욕조에 천천히 붓자 내 몸이 조금씩 떠올랐다. 간병인이 한 번 더 물을 부었고 욕조는 반쯤 찼다. 플라스틱 보조 의자에 앉아있던 아내가 침이 흐르는 내 얼굴을 씻기면서 투덜댔다.

“덩치가 바위만한 저능아를 하나 기르는 것 같아요.”

물속에서는 부력으로 인해 내 몸이 가벼워졌기 때문에 씻기는 아내도 힘이 들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힘을 쓰는 일은 간병인이 늘 도맡았다. 내가 밉기 때문에 무거운 바위에 비유가 된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아휴, 사모님 힘드신 거야 말로 다 못하쥬.”

간병인은 아내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말꼬리를 길게 뽑아냈다. 아내가 나가고 없을 때 간병인은 아내가 벌을 받을 거라는 혼잣말을 할 때도 있었다. 간병인은 나만큼이나 아내의 약점을 잘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간병인의 급여가 많은 이유도 입막음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준비한 환자복으로 갈아입어야 했기 때문에 간난아이처럼 간병인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는데 아내가 빗을 들고 내 머리를 빗기기 시작했다. 뜬금없는 행동이어서 나는 아내를 빤히 바라보았다.

“오늘 보니 미남이네. 새장가 들어도 되겠다.”

내 얼굴을 바라보는 아내의 표정이 심각했기 때문에 간병인은 웃음을 감추느라 손으로 입을 막았다.

“원래도 잘생겼든디...”

“그걸 어떻게 알아요?”

“틀이 딱 잽혔잖아유.”

아내가 듣기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내 귀에는 살짝 버벅 거리는 느낌이었다. 아내는 간병인에게 눈을 흘겼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이제 내갑시다.”

이미 아들은 들것 앞에 서 있었다. 내가 눕자 아들이 몇 군데를 조절해서 휠체어 모양으로 바뀌도록 했다. 비스듬하게 누울 수 있어서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현관문이 열렸고 나를 실은 휠체어가 밖으로 나갔다. 턱이나 한두 개의 계단도 올라갈 수 있도록 앞바퀴는 작았고 뒤쪽의 바퀴는 큰 모양새였다. 내 몸에 비계 층이 없어서 완충작용을 못하니 어딘가에 부딪기라도 하면 꼬집힌 듯 아팠다.

밖이 그리웠으면서도 사람을 만나는 건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 엘리베이터에는 사람이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가자 복도 끝의 스크린 도어가 열렸다. 병원에서 보내 준 봉고차가 스크린 도어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대기하고 있었다. 경비원이 아는 척을 했지만 아내가 검지를 세운 채 손을 저었다. 내가 전혀 알아듣지도 알아보지도 못한다는 뜻 같았다. 경비원은 낯익은 얼굴이었다. 나는 휠체어를 탄 구급차에 올랐고 아들이 내 뒤를 따라 올랐다. 길이 막히는 시간이었지만 병원까지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담당의사는 내 가슴 앞에 청진기를 내밀었다. 혈압과 맥박을 재는 동안 아내는 내 곁에 앉아 있었고 아들은 내 등 뒤에 서 있었다.

“몸은 예전과 별로 다르지 않네요. 이런 상태가 계속되는 건 더 악화되지 않을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도 할 수 있겠지만...”

“오래 사실 수 있을까요?”

젊은 의사의 말 중간에 끼어들듯 아내가 물었다. 의사는 인중에서 볼까지 손으로 감싼 다음 코로 숨을 훅 들이켰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는 눈치였다.

“지난번에 말씀 드렸다시피 얼마나 사실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일어난다는 보장도 할 수 없죠. 물론 조금씩 차도는 보일 수 있겠지만 여태껏 이런 상태인 걸보면 환자에게 삶의 의지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음식은 잘 드시나요?”

“선생님 말씀처럼 의욕이 없어서 그러는지 잘 안 드시네요.”

아내가 거짓말을 하리라는 상상을 못하는지 의사 얼굴에 미소가 담겼다.

“영양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군요. 누워서도 건강하려면 챙겨 먹어야 하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내의 표정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했다. 다만 아내는 입술에 올린 미소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건지... 원.”

내가 보기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해온 것 같았다. 빈틈없는 성격이니 어련할까싶기도 했다.

“오늘 영양제나 하나 놓아 드리죠. 검사 끝내고 꼭 맞아야 합니다.”

“예... 고맙습니다.”

다소곳이 말하는 아내가 약간 고개를 숙였기 때문에 표정은 볼 수 없었으나 분명 눈에 핏발이 서 있을 것 같았다.

지난달처럼 몇 가지 검사를 해야만 했다. 재활치료를 할 수 있을 만큼 몸이 회복되었는지에 대한 검사도 있었고 피검사와 소변검사는 빠지지 않았다. 들것에 실려서 다녔지만 마치 오래달리기를 끝낸 사람처럼 몸이 축 늘어졌다.

응급실에서 팔에 링거를 꽂는데 눈꺼풀이 스르르 닫혔다. 간병인이 내 옆자리를 지켰다. 아내는 병원비를 계산하기 위해 카운터로 갔고 아들은 바깥 의자에 있겠다고 했다. 내가 다시 구급차에 탈 때까지 곁에 있었던 아들은 아내와 승용차를 타고 먼저 출발했다. 나는 간병인과 돌아가게 되어서 지친 상태에서도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피곤했기 때문인지 침이 계속 흘러나왔다. 간병인은 손수건으로 살짝살짝 눌러서 내 입술을 닦았다.

 

                                                                                      12

구급차에서 들것에 실려 내리는데 아들이 보였다. 근처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내가 누구인지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거나 내밀었다. 사람들의 시선에 지나친 호기심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들것이 휠체어로 바뀌는 동안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니 이미 아내는 외출을 한 상태였다.

이불과 침대 커버에서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구급차에서 내린 간병인은 먼저 집으로 들어와서 내 이부자리를 바꾼 것 같았다. 간병인은 바구니를 가져와서 자질구레한 빨래감을 담아갔다. 아들도 오후 수업은 꼭 들어야 한다며 곧 나갔기 때문에 휠체어가 거실을 지켰고 간병인의 발소리만 콩콩 거렸다.

집안이 조용한 상태였기 때문에 모든 소리가 선명했다. 영화의 한 배경처럼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어느 틈에 골라서 틀었는지 모르겠지만 옛 팝이었다. 이어서 싱크대에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났고 냉장고 여닫는 소리도 들렸다. 내 저녁을 준비 중인 것 같았는데 멜론과 사과가 섞인 과일즙과 고기죽을 먹게 될 것 같았다.

간병인의 취향이 나와 비슷한가, 라는 생각을 하다가 콧노래를 떠올렸다. 간병인은 습관처럼 콧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대부분 아주 오래된 대중가요였다. 음절이 끝나는 부분을 길게 늘어뜨리는 그 노래들은 창과 비슷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간병인도 팝을 듣는지 콧소리를 내지 않고 있었다. 거의 이년 만에 듣는 곡이어서 흐뭇했다.

잠시 후 쟁반을 들고 오던 간병인은 볼륨을 더 낮췄다. 간병인이 머리맡에 앉는데 향내가 났다. 어느 틈에 세수를 하고 얼굴에 화장까지 마친 상태였다. 다소 촌스러운 화장이라서 약간 어색해 보였다. 내 목에 가제 손수건을 두르고 죽을 조금 씩 떠 넣던 간병인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웃었다.

“이런 존 시상을 방독 신세만 지면 되겠시유?”

나는 죽을 삼키면서 간병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마누라에게 물건 취급당하니 서럽지유? 맴이 딴 곳에 있으니 별수 없을 것이구만요. 누워있는 서방이 얼매나 싫으믄 댓살배기가 먹어도 모자를 밥을 줄까. 그러다 천벌 받지.”

목에 걸린 손수건으로 내 입술과 턱을 닦으면서 넋두리하듯 중얼거렸다. 내가 죽을 다 먹자 한숨을 쏟아낸 후 밥 한술 떠야겠다고 일어났다. 쟁반을 싱크대에 올려놓고 식탁 앞으로 갔다. 딸그락 거리는 소리와 후루룩 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생각해보니 둘 다 늦은 점심이었다. 설거지까지 끝내고 다시 내 곁에 앉은 간병인은 이불을 젖혔다. 밥을 먹고 나면 기저귀가 젖기 마련이었다.

“과장님. 얼렁 일어나라고 가끔씩 죽이래도 더 드렸는디... 내 맘 아시겄시유?”

뇌출혈로 쓰러지기 직전의 직책이 사무관이었기 때문에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다 나는 감탄사를 흘릴 것처럼 입을 약간 벌렸다. 나는 행정고시 패스 후 내겐 과장이라는 직급이 부여되었고, 간병인은 그 시절을 얘기하고 있었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을 것처럼 기분이 들떴다. 하지만  그 시절을 떠올리는 건 쉽지않았다.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눈을 감았다떴다를 반복했고  마침내 오래된 기억의 세포들이 하나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동료들과 술자리를 갖던 날을 떠올리자 무엇인가가 가슴을 치받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고 눈물이 솟구쳤다.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던 간병인은 휴지로 내 눈 가장자리를 훔쳤다. 간병인도 팽 소리가 나게 코를 풀었다. 코를 닦고 있는 간병인의 양 볼이 불그레했다. 다른 날과는 달리 간병인의 얼굴이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장시절에는 업무상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한번 쯤 부딪친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과장님은 좋은 분이셨어요.”

나와 안면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반가움에 다시금 눈물이 밀려나왔다. 간병인은 내 머리를 위로 밀어 올렸다가 한 올 한 올 만져서 이마에 가지런히 붙였다. 내 심장이 요동치는 줄 아는지 모르는지 간병인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호기심의 발동과 긴장 탓에 내 귀는 주변의 소음까지 완전히 차단시키고 있었다. 넋두리를 들어보니 나는 간병인에게 은인이었고 넘볼 수 없는 남자였고 한때 마음을 준 남자이기도 했다.

잠깐 말을 마친 간병인의 심각한 표정을 보는데 익숙한 얼굴을 떠올랐다. 머리에 핀을 꽂은 단발머리의 중년 여인은 사십대 중반도 더된 나이였다. 약간 큰 키에 뼈대가 굵어보이던 그 여자는 몸이 말랐고 새까만 얼굴이었다. 포장마차 단속기간에 걸려서 온 여자들 틈에 있었다. 주머니가 떨어져 나갔었는지 기운 자국이 있는 앞치마를 입은 채였다.

직원이 오라는 손짓을 하자 테이블 앞으로 걸어가는데 여자의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곱창을 볶아 술과 함께 판다는 그 여자는 몸에서 돼지 곱창 냄새가 날 것 같은 차림새였다. 나는 일하는 도중 고개를 들어 쳐다보곤 했는데 넋두리처럼 하는 말이 내 귀에 쏙쏙 들려오고 있었다. 남편은 없고 시어머니와 딸이 하나 있는데 처해있는 환경이 너무 좋지 않아서 봐 줄 수밖에 없었다. 공과 사를 분명히 하는 내가 직원에게 그냥 보내라고 했던 건 딱한 사정 때문이었다.

다행인 점은 그 몇 달 후부터 복지 차원에서 포장마차를 활성화 시켰기 때문에 그곳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뒤 두 번인가 그 앞을 지나치면서 그 여자를 본적이 있었는데 내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내가 전출을 가지 않았다면 그 여자를 몇 번 더 봤을 수도 있었을 테고 따라서 간병인이 그 여자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 수 있었을 것 같았다.

그때에 비해 몸집이 커져서 건강해 보였지만 그게 벌써 십년 전이니 얼굴은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오십대 초반인 아내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당히 늙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대충 계산을 해보니 아내와 너덧 살 차이일 것 같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면서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자 나는 눈을 감았다. 모든 게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병인이 플라스틱 변기를 가져오기 전까지 나는 관장하는 날이라는 걸 깜빡 잊고 있었다. 딴 생각에 골몰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관장하는 날인데도 모임이라며 집을 비우는 아내를 떠올리니 주먹으로 벽이라도 한 대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간병인이 나를 엎어놓고 항문을 마사지 하는 동안 나는 턱받이에 침을 계속 흘렸다. 누워서 지내는 데도 괄약근은 심통 부리는 것 마냥 꽉 물려 있었다. 게다 총알 모양의 관장약은 윤활유가 아니면 떼쓰는 아이처럼 굴었다. 갱년기의 여자들이 쓰는 윤활유를 사용해서 항문을 문지르는 간병인의 머릿속이 복잡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엎드려 있는 나는 불편한 마음에 허벅지가 경직되곤 했다. 관장약이 스르르 항문을 타고 올라가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나를 안아서 변기의자에 앉힌 다음 간병인은 변기의자 채 나를 감싸 안고 있었다. 간병인의 가슴에 등을 대고 있으면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간병인의 젖가슴 때문에 수치심조차 잊고 있었다. 내 등에 달라붙은 호박덩이처럼 큰 간병인의 젖가슴은 내 심장 박동의 수위를 높여갔다. 나중에는 뜨거운 철판에 올라선 개구리처럼 급하고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힘을 주자 순식간에 변이 밀려나왔고 간병인이 내게서 몸을 뗐다. 그때서야 변기 위쪽으로 쳐들려 있던 물건도 힘이 빠졌다. 간병인은 나를 안아서 요 위에 엎드려 눕혔다.

준비해 둔 물수건으로 엉덩이를 닦아내자 기분이 좋아졌지만 목욕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부담스럽게 했다. 간병인은 변기를 비우러 화장실로 가더니 간이욕조에 물을 받았다. 변기나 간이욕조는 환자와 간병인까지 고려해 만든 제품이었다. 따라서 간병인 혼자서도 나를 다룰 수는 있었겠지만 인내력이 없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아내는 20킬로 쌀 포대도 들지 못해서 수선을 피우곤 했다. 간병인은 아내에 비해 체격이 좋긴 했지만 나이가 많은 여자였다. 간병인이 안아 올릴 때면 몸을 오므리고 싶었고 얼굴도 감추고 싶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안겨 있으니 부끄러움 때문이었고 한편 미안해서였다. 관장 후 젖은 휴지와 물수건으로 닦기만 해도 되는데 씻기기를 고집해서 왜 그러나 싶기도 했다.

내 자세가 불안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 일은 후다닥 해 치울 수밖에 없었다. 항상 간병인은 내 엉덩이를 물티슈로 꼼꼼히 닦은 후 물통에 나를 넣고 씻겼다. 얼굴은 깨끗한 물로 헹궜기 때문에 목욕이 끝나면 상쾌했다. 간병인은 다른 날과는 달리 목욕통에 물을 받은 후 바디크림까지 준비했다.

이미 간병인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돌아가 있었지만 내 기분은 며칠 전과는 사뭇 달랐다. 간병인은 내게 연정을 품었던 여자였고 내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여자였다. 아내와 비교가 되지 않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여자이기도 했다. 간병인의 손길이 내 몸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달콤한 상상에 빠져 있었다. 마른 수건으로 나를 닦아 요 위에 눕힌 뒤 간병인은 크림을 바른 손으로 내 몸을 다시 문질렀다. 간병인은 내 몸 위에 수건을 올려놓은 채 욕실로 갔다.

욕실에서 방으로 돌아온 간병인에게서 비누냄새가 풍겼다. 손을 씻고 나왔을 뿐인데 톡 쏜다고 할 만큼 진한 냄새였다. 땀방울이 맺혀 있는 간병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워낙 힘이 들었기 때문에 볼 근처의 홍조가 두드러진 것 같았다. 엉거주춤 앉으려던 간병인이 일어나 형광등을 껐기 때문에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에는 이미 어둠이 깃들고 있었다.

몸이 부자유스러워지면 주변의 사람을 순간순간 의심하기 마련이다. 본능적으로 간병인을 경계하고 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간병인은 눈으로 뼈만 앙상한 내 몸을 천천히 훑으면서 하반신에 얹어놓았던 수건을 치웠다. 간병인이 바디크림을 바를 때까지 만해도 머리를 쳐들고 있던 내 물건은 힘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과장님을 보면 늘 가슴이 아파유. 이제 과장님 간병은 그만할 거에유. 몸도 마음도 힘들어서 못하겠시유. 그치만 관두기 전에 꼭 할 일이 있구먼유.”

무릎을 꿇는 자세로 바꾸면서 중얼거렸다. 엉덩이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몸이 내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티셔츠에 매달린 젖가슴이 도드라져 보였다.

“정신도 멀쩡하시고 요것도 멀쩡하다는 것을 진즉부터 알았시유. 그러니 이대로 돌아가시믄 분명 한이 맺힐 것이구만유.”

중얼거리던 간병인은 갑자기 내 물건을 움켜쥐었다. 밀가루 반죽을 만지는 것처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손동작이었다. 기침이 터져 나올 것 같기도 했고 컥컥 숨이 막혔지만 온 몸의 힘은 하반신으로만 몰리고 있었다. 간병인의 손놀림도 빨라졌지만 내 심장이 손놀림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희열감이 귀두 끝으로 몰렸을 때 내 입에서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튀어 나왔다. 쿨럭 거리며 나오는 액체를 간병인은 수건으로 받아냈다.

“원 시상에 막걸리 한 병 엎지른 거 같네유. 그동안 얼매나 참으셨을까나.”

간병인은 소중한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수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물건은 아직도 팽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잠깐사이 가슴 근처에 통증이 가볍게 일었다. 콕콕콕 찌르는 현상이었다. 점점 통증이 심해지면서 속이 메슥거렸고 이어서 호흡곤란이 왔다. 내가 헐떡거리는데도 간병인은 넋두리를 계속하고 하고 있었다.

“과장님을 중환자실에서 만날 줄은 증말 몰랐네유. 항시 만나 뵙고 싶다는 생각은 많았는디 먹고 살다보니 잘되지 않더라구요. 단속에 걸려 들어갔을 적에 아랫사람더러 봐 주라고 하셨쥬? 그 직원이 그러더만요. 과장님 덕에 벌금 안 물고 구류도 없는 거라구유. 언젠가는 꼭 보답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었는디... 이제 속이 후련하네유.”

  

                                                                     에필로그

  몸이 호전된 상태에서 나온 바깥세상은 너무도 달라보였다. 생동감 그 자체라고 할까. 조금씩 햇빛을 보는 시간을 늘렸고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무렵 거처를 시골로 옮겼다.

마을 한 바퀴를 도는데 30여분이 걸리지만 내겐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세상은 하루하루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서 내겐 늘 새롭기만 하다. 새소리, 바람소리, 햇볕이 가져다주는 나른함, 이런 것들은 내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늘 나를 따라 다니는 짱구와 길가에 앉아 대화를 하곤 한다. 나를 바라보는 짱구는 항상 슬픈 눈이다. 눈 꼬리가 쳐져있고 까만 눈동자에 물기를 머금고 있어서 그렇게 보이겠지만 나는 짱구가 나를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아빠의 이런 모습을 이해 못하는 거지? 너도 내 나이쯤 되면 다 이해가 될 거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늙으면 몸의 어딘가에 문제가 생기거든.”

아내는 내가 짱구 외에도 갖가지 사물에게 말을 거는 장면을 보면서 빙그레 웃곤 한다. 아따 당신은 나 없어도 심심치 않컸네유. 아무리 내가 호전되었다고 하지만 아내가 없으면 내 삶은 예전으로 돌아 갈 것만 같아 나는 머리를 세차게 흔든다.

지금의 아내와 재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아들 덕이었다. 내가 차츰 호전되면서 아들은 마음을 달리 먹었던 것 같았다. 자신에게는 좋은 어머니였지만 아버지에게는 악처나 다름없다는 것을 간파했던 아들은 회유작전을 썼다. 아내는 외도 때문에 아들에게 약점이 잡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겠지만 이혼 후에는 오히려 홀가분해 하는 것 같았다. 아들이 아내에 대해 전한 소식은 거기까지였다.

아들은 환자인 내게 필요한 사람이 파출부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물론 연금이 없었다면 파출부도 나와 살겠단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아들의 말에 나도 동의를 한다. 아들이 파출부의 통장에 몇 십 만원씩 넣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파출부의 자식들도 자신의 어머니를 책임질 형편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밥숟가락 얹듯 동의를 했던 일이었다.

아내는 농사일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뛸듯이 좋아했다. 실은 나도 농사를 짓는 게 노년의 꿈이긴 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진 못한다. 밥을 흘리면서 먹고 혀 사이로 말이 새어나가는 내가 정상인일 수는 없다. 하지만 한쪽 손으로 마당가의 풀을 뽑기도 하고 쌀을 씻을 때도 있다. 벅차긴 하지만 아내가 도끼로 팬 장작을 옮기는 일을 하기도 한다. 아내는 예순 다섯이 넘었지만 건강이 참 좋은 편이다.

짱구 나이가 벌써 다섯 살. 내가 농촌으로 옮겨 온 세월과 같다. 나도 육십을 넘긴 나이라 더 나은 상태를 바라는 건 욕심일 것이다. 아들이 가끔 찾아올 때면 기분이 오히려 우울해지곤 한다. 부담이 된다면서  아들이 가족을 데리고 오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 후 인사 차 온 며느리를 딱 한번 봤을 뿐이다. 그들은 장모와 함께 산다. 아이를 봐 줄 사람이 필요한 맞벌이 부부이니 당연하다는 생각은 하지만 서운할 때는 있다. 명절에는 더욱 그런 마음이 든다. 하지만 아들과 지금의 아내가 없다면 현재의 삶은 어림없는 일이기에 욕심을 버렸다.

 언어가 서툴고 몸의 반쪽이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지만 난 불행하다 생각하진 않는다. 자주 회자되는 표현처럼 조금 불편할 뿐이다. 가끔 누이가 꿈에 보이긴 하지만 나는 누이에게 나를 데려가 달라고 조르진 않는다. 언젠가는 나의 삶도 끝이 나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기에.

                                                                    -끝-

 

 

 

 

 

 

 

 

 

 

 

 

 

김은숙   2010-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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