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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령작가 (1)


                                            

                                                    





                                                                               프롤로그 

  '쏴아' 하는 소리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 창문 쪽으로 급히 걸어가는데 홑겹의 이불이 끌려오다 찢어졌다. 나는 다리를 움직여 감긴 천을 떼어냈다. 창을 미는데 날카로운 쇠 마찰음이 내 귀를 베는 것 같았다.

  창을 열자 마치 끓어오르는 가마솥을 열었을 때처럼 습기가 얼굴을 뒤덮었다. 나는 재빨리 창을 닫고 유리창을 통해 정원을 내다보았다. 가로등이 닿는 곳은 대낮처럼 밝았다. 바람 때문에 잔가지와 나뭇잎들이 빗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갑자기 아랫도리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이면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허드레 물건들 뒤쪽으로 돗자리가 세워져 있었다. 돗자리를 옆구리에 끼고 방으로 들어가 L을 깨웠다. 엎드려 자고 있던 L은 내 얼굴을 보더니 소리를 질렀다.

"왜 깨우고 지랄이야!"

"딱 한 번만.“

나는 주먹을 쥔 채 검지를 지켜들었다.

"미쳤어?“

L의 불륜 사실이 들통 나면서 우리는 각방을 쓰고 있었다. 나는 L과 헤어질 수 없었다. 어렵사리 돈을 구해 발리로 돌아 온 목적이 바로 L 때문이었으니까.

"빨리"

  손목을 잡은 채 채근하는 나를 바라보던 L은 알몸 위에 잠옷만 걸쳤다. 옷을 입으면서 부스스한 머리칼에 손가락이 걸리자 L은 인상을 썼다. 나는 L의 손목을 움켜쥐고서 밖으로 나왔다. 돗자리를 펴는 동안 L은 팔짱을 낀 채 야자수에 기대어 섰다. L이 관계에 응하는 이유는 뻔했다. 어차피 L은 내게 기대어 살았으니까. 영어회화와 인도네시아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가능했지만 애초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몸싸움을 하던 날, L은 내가 먼저 여자를 만났기 때문에 오히려 억울하다면서 문을 박차고 나갔다. 이틀 뒤에 L이 슬그머니 들어왔지만 나는 화도 내지 못했다. 각방 쓰는 것도 L이 결정한 일이었다.

 L의 상체를 끌어안으면서 입술을 포갰다. L이 손으로 내 얼굴을 밀어냈다.

"옷 좀 벗어 봐. 잠깐이면 끝날 거야."

"그냥 하라니까! 안 그러면 방으로 들어갈 거다."

잠옷을 어깨 쪽으로 밀어 벗기려하자 L이 옷자락을 움켜잡았다. 나는 무릎을 세운 채 앉아있는 L에게서 등을 돌리고 콘돔을 꺼냈다.

  내 성기는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다. 나는 눕는 자세를 취하던 L의 몸을 잡아서 엎드리게 했다. 몸이 엎어지면서 L이 헉헉거렸다.

"변태새끼!"

내가 몸으로 덮치고 있었기 때문에 L은 엎드린 채 그 소리만 토해냈다. 겨우 삽입이 되었을 때 L이 엉덩이를 확 쳐들었고, 화가 난 나는 L의 엉덩이를 발로 힘껏 찼다. 모래가 박힌 피투성이 얼굴을 감싸 쥔 채 L은 일어났다. 한참 후 머플러를 두른 L이 방에서 나왔다. L은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나가면서 택시를 불렀다.

내일이나 모레쯤 L은 외도 중이던 남자를 데리고 집으로 들이 닥칠 것이다. 남자 하나가 아니라 둘이나 셋을 데리고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차피 막다른 길이니 나도 그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그 끝이 죽음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다.

 한동안 누워있던 나는 여자의 홈페이지에 접속을 했다. 여자의 소설에서 내가 머물렀던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어차피 소설은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하니 당연한 얘기일 것이다. 나는 노트북을 접으면서 여자를 떠올렸다. 천천히 눈을 감자, 이미 나는 J시로 가는 기차 안이었다


                                                          1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었지만 아직은 깊은 밤이었다. 핸드폰의 벨 소리에 눈을 떴을 때, 기차 안의 사람들 일부는 깨어 있었고, 일부는 혼곤한 잠 속에 빠져 있었다. 시간이 되었네요. 핸드폰 속의 목소리가 경쾌하게 느껴졌다. 여자가 미소를 머금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담배 생각이 나서 피울까하다 생각을 고쳐먹었다. 나는 옆자리에 놓여있는 가방을 들어 무릎 위에 놓고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 묶었다. 캡이 달린 옅은 갈색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모자의 뒤쪽 구멍으로 묶은 머리를 잡아 뺐다.

  "맥주 있습니다. 오징어 있어요."

  수레가 지나가자 곁눈질로 실려 있는 물건들을 쳐다봤다. 옛날처럼 군침을 삼킬만한 먹을거리는 별로 없었다슬그머니 옛일이 떠올랐다. 고 1이 끝날 무렵이었고 봄방학 때였을 것이다. 돈을 마련하기 힘들어 집에 있던 책을 팔아 여비를 장만했었다. 집에서 뛰쳐나온 나는 볕바라기하는 노파처럼 완행열차의 의자에 웅크려 앉아 있었다.

  아침부터 굶었던 탓에 수레에 실린 먹을거리가 뱃속의 회를 동하게 했던 것 같았다. 옆자리의 중년여인이 껍질을 벗기던 계란을 쳐다보면서 목구멍을 밀고 올라오는 침을 눌러 삼키곤 했다. 평소에는 닭똥냄새 때문에 삶은 달걀을 거의 먹지 않았지만 냄새가 견디기 힘들만큼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나는 세 개로 묶인 계란을 사서 다음 역에서 내렸다.

  역에 딸린 화장실 안에서 계란껍질을 벗기는데 손이 떨렸다. 계란을 통째로 입에 넣고 수돗물을 연신 받아 마셨다. 수도꼭지 위에 네모난 거울이 붙어 있어 내 모습이 그대로 비쳐지고 있었다. 때가 낀 거울 속의 나는 수염이 자라서 양아치처럼 보였다

 나는 화장실을 나와 발에 물집이 일도록 걸었다. 철로를 따라 죽 걷다보니 띄엄띄엄 농가가 흩어져 있는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나는 우선 추위를 피할 곳을 찾아야겠단 생각을 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시린 바람이 바늘 묶음처럼 찔러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 채와 떨어져있는 창고를 발견했다. 창고에는 큰 자물통이 채워져 있었고 그 옆에 외양간이 붙어 있었다. 사람이 들어갈 만큼 틈이 넉넉하지 않아서 나는 구유 위쪽으로 들어갔다. 여물이 구수한 냄새가 나서 씹어 봤지만 아무 맛도 느낄 수없어 뱉어버렸다. 소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방인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곤 했다.

  다행히 소는 끈에 매어있었다. 나는 소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짚더미에 자리를 잡고 잠바를 벗어 덮었다. 얼었던 손이 녹으면서 고름이 든 것처럼 손가락 끝이 아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숨죽여 울다가 잠들었던 것 같았다. 어둠이 채 걷히기 전에 외양간에서 일어서는 나를 빤히 바라보던 암소의 눈망울은 지금도 선하다.

  첫 가출은 그보다 훨씬 시간을 거슬러 가야한다. 중학교 일 학년 여름이었다. 내가 살았던 곳은 소도시의 주변이었다. 새끼줄 마냥 흘러내리는 개울이 밭 가장자리를 타고 흘러내리다 저수지에서 합쳐지곤 했다. 나는 밭고랑에 앉아 다슬기를 잡았다. 다슬기 말고도 개울에는 별별 게 다 있었다. 간혹 소금쟁이가 엉금엉금 내 앞을 지나갔고 물 속의 작은 돌을 들어올리면 검은빛을 띤 가재와 깎아 낸 손톱 크기보다 작아 보이는 새우가 뒷걸음질쳐 달아나곤 했다. 다슬기를 줍다말고 물방개가 그리는 일정치 않은 크기의 원을 한없이 들여다보았다.

  날이 저물어 더 이상 볼 수가 없게 되었을 때 일어나서 주변의 원두막으로 갔다. 배가 고파 참외 두개를 기둥 모서리에 깨트려 먹었다. 별과 달과 벌레 소리는 아늑함을 가져다주었다. 모기가 깨물어 웅크린 채 살갗을 비비다보니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얼굴에 달려드는 햇살과 매미 소리에 나는 깨어났다.

  가출한 날의 숫자를 천 조각으로 모은다면 퀼팅 이불 하나는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위해 그리도 가출을 일삼았던 것일까? 고작 만화 스토리 작가가 되기 위해서? 나는 검은 유리창에 비친 나를 쳐다보면서 자조적인 질문을 던졌다. 여자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는 모자를 쓴 초라한 남자가 나를 마주 보았지만 답을 말하지는 못했다. 나는 유리창에서 시선을 떼고 가방의 손잡이를 쥐었다. 기차는 여자가 사는 도시에 몇 분 동안 머물기 위해 걸음을 늦추고 있었다.

  차가 플랫폼에 미끄러져 들어가는 걸 보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손으로 버튼을 누르자 문이 열렸다. 바깥문을 바라보며 서 있는 동안 나는 주머니가 많이 달린 조끼와 청바지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먼 길을 떠나는 듯한 차림이었다. 나는 가방을 어깨에 멨다. 이십 권이나 되는 만화가 들어있어 가방이 좀 무거웠다.

  발가락으로 그려도 그런 그림은 그리지 않겠소. 출판사의 사정이 나빠 요즘엔 아마추어들이 그림 작업을 하고 있었다. 평을 올렸던 그 독자는 스토리를 만드는 나까지 물고 늘어졌다. 더 나가다가는 쓰레기가 될 것 같으니 제발 여기서 스톱하세요. 스톱하시면 작가의 개인적 사정으로 창작을 그만 둔 줄 알겠습니다. 말하자면 해결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는 셈이었다.

출판사에서는 신문에 연재되었던 인기 만화의 후속편을 연거푸 만들도록 내게 종용을 했다. 당시 마땅하게 내 놓을 만한 새로움 작품이 없었고 출판사는 기울고 있었다. 나 또한 후속작품을 거절하지 못한 이유는 내 주머니 사정 때문이었다. 게다 내 스토리는 독자 말처럼 막장유치짬뽕이었다. 그나마 이젠 스토리를 이어가는 것조차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나는 오른쪽 발을 플랫폼에 내려놓으며 한숨을 토해냈다.

 플랫폼에는 몇 걸음 사이로 가로등이 배열되어 있었다. 가로등 바로 아래쪽은 대낮보다 더 밝게 느껴졌다. 내 발끝에 조그맣게 매달려 있다 옅어지면서 길어지는 그림자를 보며 걷다가 전시용으로 놓인 긴 화분을 들여다보았다. 패랭이꽃이 한창이었다. 불빛을 등지고 있는 꽃잎은 화사함을 잃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돌려 앞서가는 몇몇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다소 칙칙한 느낌의 복장은 얼마 전에 읍에서 시로 승격된 작은 도시에 왔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여자는 아직 나와 있지 않는 듯했다. 나는 역사를 빠져나가 어둔 광장을 서성거렸다. 광장 앞에 서 있는 나무들이 그림자처럼 검은 빛깔을 띠고 있었다. 벨이 울리자 나는 재빨리 휴대폰 뚜껑을 열었다.

"택시가 더디 오는 바람에 이제 왔어요. 어디 계시죠?"

  약간은 들뜬 여자의 목소리에 나는 휘둘러보았다. 몸집이 다소 큰 여자가 십여 미터쯤 거리를 두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나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나는 여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줄무늬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여자는 본인의 표현처럼 뚱뚱해 보이진 않았다. 다만 골격이 커서 건장해 보였다. 가로등 아래를 지나면서 나는 여자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동그란 얼굴에 짧은 파마머리였는데 웃을 때 감기는 쌍꺼풀진 눈에 조그만 입술을 가져 나이가 들어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쳐다보다가 얼굴이 어떻게 생기든 관계없는 일이라고 재빨리 생각을 바꿨다.

"왜 그리 얼굴을 보세요? 이쁘지 않아 민망하네요."

간혹 거르지 않는 표현을 쓰는 건 글을 다루기 때문인 것 같았다. 여자가 소설이 올려져있는 홈페이지를 갖고 있었지만 관심이 없어 들여다보지 않은 상태였다. 사이버 공간에서 흘러 다니는 글이란 거의 뻔했다. 나는 여자에게 그 이상의 기대를 하고 싶지 않았다.

  소설과 시 습작을 하던 이십대에 여자들과 어울려 본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줄 담배나 피울 줄 알았지 글에는 문외한처럼 보였다. 더구나 책조차 몇 권 읽지 않아 어쩌면 무식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들은 여고 때의 열정과 문과대학에서 사보를 편집했다는 게 글쓰기를 하게 된 주된 이유 같았다. 그 무렵 나는 나이에 비해 뛰어났기 때문에 그들에겐 두려운 존재였다. 때로는 나는 그때의 오만함이 내가 정상적인 길로 접어드는 걸 방해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피곤하진 않으세요?"

"아닙니다. 이 정도쯤이야..."

"하긴 작가시니 웬만한 건 힘들게 느껴지지도 않겠군요."

  내가 하찮은 만화가라는 얘길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여자의 표정을 살폈다. 여자는 눈을 껌벅거리고는 있었지만 웃음기가 도는 얼굴이 아니어서 진지해 보였다.

"만화 스토리 작업이야 소설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이죠."

  표현은 그렇게 했지만 만화 스토리를 만들고 그 뒤에 하는 콘티작업도 그리 쉬운 건 아니었다.

"...그것도 창작인데 설마 그렇기야 하겠어요?"

"만화는 문학 축에 끼지도 못하잖아요."

  여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긴 하죠. 조금 걸어도 되겠어요? 십 오 분쯤 걸으면 포장마차가 나타날 겁니다. 줄줄이 늘어서 있어 골라 들어가면 되거든요. 발을 천막대신 사용하는 곳도 있어요."

  여자의 말에 나는 문득 칠월 초라는 생각을 했다. 풍채가 있어 여자는 더위를 탈 것 같았다. 나는 여자가 자신과 흡사하다는 나이든 여가수를 떠올렸다. 여가수는 밀어 올리는 브래지어를 한 탓도 있었겠지만 가슴이 유난히 풍만했다. 곁눈으로 보니 여자의 젖가슴은 상체에 비해 밋밋한 느낌이었다. 여자는 나와 보조를 맞춰 걸으며 간간이 말하고 간간이 웃었다. 이미 통화를 해서 알고 있었지만 여자는 수다스러운 편이었다. 마주해보니 전체적으로 두루뭉수리해서 친근감이 느껴지는 용모였다. 나는 웃음을 띤 얼굴로 여자를 바라보고 있다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 포장마차 어때요? 신데렐라가 탄 마차만큼은 안 되어도 운치가 있죠?"

  발 사이로 불빛이 흘러나오는 포장마차에 여자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불빛이 아니라면 낡고 보잘것없는 천막에 지나지 않을 것 같았다. 간간이 이용하는 서울의 대학가 포장마차와는 차원이 달라 보였다. 사람까지 없어 썰렁해 보였다.

"시간을 놓쳐 다시금 재투성이가 된 신데렐라를 기다리는 호박덩이 마차네요."

  나는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런... 잘 나가는 대 작가와는 대화가 안 되는군요."

  여자의 속마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겉으로는 내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앞서서 발을 들치고 들어간 여자는 중간쯤의 자리에 앉았다.

"잘 나간다는 말씀을 하시지만 저는 고스트 라이터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스트 라이터? 뭐지? 영혼으로 글을 쓰기 때문인가요? 누구나 영혼으로 글을 쓰는 것 아닌가?"

"하하...유령작가요."

"유령작가? 그런 것도 있나요?"

"스토리는 내가 만들지만 딴 사람 이름으로 출판되니까요."

"...그럼 대필가와 비슷한 건가? 약간 성격이 다르겠군. 대필가야 어떤 사람의 얘기를 듣고 이야기를 만드는 거니까 순수 창작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 "

  말꼬리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글을 쓰는 사람들의 공통된 습성이랄 수도 있었다. 내가 유리컵의 물로 목을 축이는 동안 잠시 침묵이 흘렀다. 눈을 깜빡거리던 여자가 내부를 한바퀴 둘러보았다. 나는 버팀목으로 쓰이는 천장의 쇠막대를 쳐다보다가 안주감이 담겨 있는 유리 박스로 시선을 옮겼다. 일부러 백열등을 내려달아서 삶은 문어와 돼지곱창, 먹장어는 다소 과장된 빛깔을 띠고 있었다. 껍질이 벗겨진 먹장어는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실핏줄이 선명해서 붉은색에 가까웠다.

  "안주가 제법 갖춰졌죠?"

  둘러보던 여자가 내 얼굴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나는 여자를 마주보며 가슴 근처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모자를 써서 나이보다 더 젊어 보이는 건가?"

  여자는 내 얼굴을 말끄러미 바라보다 웃으며 말했다. 실은 늘 그런 말을 듣고 있었다. 나보다 무려 여섯 살이나 더 많은 여자로서는 내 나이에 대해 부담을 느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도 나이보다는 젊어 보이는 얼굴인 걸요."

"그래요? 후후...그나저나 선배라고 부르니 편한 느낌이네요."

  여자가 입을 오므려 웃으면서 턱을 괴었다. 까딱거리던 여자의 새끼손가락이 이 사이로 슬며시 들어갔다. 뻔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 이혼남과 이혼녀의 만남이었지만 부르기에 부담이 되지 않는 단어를 골라야만 했다. 애정관계라는 걸 표면화시키는 호칭은 되도록 피했다.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면 누님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지만 여자에게 붙이기에는 어색할 것 같아 선배로 결정했었다. 만화계 쪽에서는 작가라는 호칭을 주로 썼지만 연배인데도 실력이 신통치 않을 경우에는 선배라고 부르기도 했다.

"안주는 뭘 드실래요? 난 파충류를 좋아하는데..."

"개고기는 없나?"

  나도 여자처럼 농담을 했다.

"그건 초복에 먹기로 하고 오늘은 꼼장어 드세요."

유머감각은 젊은 세대와 비슷했지만 여자는 오십을 앞두고 있었다. L의 어머니가 올해로 딱 오십이었다. 이 여자보다 한 살 위이니 엇비슷한 셈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장모뻘되는 여자와 연인관계가 되기 위해 마주앉아 있었다. 이미 나는 여자와  한 침대로 가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여자에게 연정을 느낄 수 있을까? 이마 쪽으로 돋아나 있는 흰머리와 고개를 숙일 때마다 만들어지는 두개의 턱을 바라보면서 나는 갈등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L에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여자에게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파마머리와 둥그스름한 얼굴을 쳐다보고 있으니 허접한 글이나 끼적거리면 딱 알맞을 이미지였다. 주부들까지도 취미 삼아 글을 쓰러 다니는 시대이다 보니 여자라고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저는요. 제 나이를 다 갖고 있어요. 요즘은 내가 늙었나하는 생각을 많이 하죠. 특히 지지부진한 글쓰기는 나를 무기력하게 하구요. 글을 쓴다고 해도 그 원고가 곧바로 책이 되는 시대는 아니잖아요. 물론 자비로 책을 내는 경우도 있지만 난 자존심 상해서도 그렇게는 하지 못해요."

"그럼 등단은 하신 건가요?"

"아뇨...나보다 실력이 못한 사람에게 밀려났죠. 유명작가 제자가 되지 못한 탓이었어요. 인지도가 있는 작가들 입김은 대단하죠. 더러워서 지방으로 와 버렸어요."

  중얼거리듯 여자가 말했다. 목소리의 톤으로 보아 등단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변명하는 듯했다.

"등단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우리나라와 일본만 그런 제도를 두고 있다하죠. 몇몇 중견작가들은 자신의 제자 뽑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것 같더군요. 그것도 일종의 영역 넓히기라고 볼 수 있죠. 속된 표현으로 패거리 만들기라는 말도 있어요. 제 살 도려내는 아픔이 없다면 개선되기 어려울 겁니다. 문학이 죽었다 라는 말까지 유행할 정도이니..."

  여자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위안이 되었는지 다물린 양쪽 입술 끝이 볼 쪽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그 꼴 보기 싫어 혈혈단신이다 보니 외로운 길이네요."

  들고 있는 소주 한잔을 단숨에 비워낸 여자가 한숨을 쉬었다. 내 생각보다 다소 나은 글을 쓸 수도 있겠지만 여류작가들이 신변잡기를 다루는 것을 보아온 터였다. 솔직히 나는 그런 작가들에게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지 않았다. 따르는 대로 소주를 받아 마시던 여자는 내 담배 곽을 더듬었다. 손가락의 움직임이 둔한 걸로 봐서 꽤 취한 것 같았다. 눈을 내리깐 채 말없이 뻐끔담배를 피우던 여자가 나를 쳐다봤다.

"내 가슴에는 우물이 있어요. 슬픔이라는 그 우물은 퍼 올려도 퍼 올려도 마르질 않아요."

  한숨을 내쉬더니 여자가 중얼거렸다. 여자는 자신에 대한 연민이 많은 것 같았다. 여자가 버린 담배를 발로 밟았다.

"퍼 올리는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 양수기로 퍼 올리느냐 아니면 바가지로 퍼 올리느냐의 차이가 아닌가?"

"슬픔의 물이 왜 고이는지는 아세요?"

내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여자가 대뜸 내게 물었다.

"?"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바로 상처 때문이죠."

". 그렇구나. 그럼 제가 마르게 도와드리죠."

"도와줘요? 그게 가능하다고 보세요? 이런 말이 있더군요. 어느 신문 칼럼에서 정신과 의사가 그랬어요. 나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기분 나쁘게 한다고요. 그러니까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말아야했던 것이죠. 내가 존재하는 게 기분 나빠 나를 괴롭혔던 그 사람들을 위해서요. 댁도 안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죠."

"무슨 말씀을... 난 절대 아닙니다."

나는 얼른 그렇게 대답을 했지만 여자의 비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자의 표현은 차라리 비약에 가까웠다. 내가 담배에 불을 붙이자 여자도 다시 담배를 끼운 손가락을 내 앞에 내밀었다. 나는 다소 흥분되어 있었고, 여자는 온몸의 기운이 빠져버린 듯 보였다. 나는 연기를 빨아들이면서 여자를 지그시 바라봤다. 연민으로 쌓아진 두툼한 벽을 좀처럼 허물려 하지 않는 스타일의 여자였다. 게다가 자기방어에 집착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누군가 허물려고 작정한다면 의외로 쉽게 허물어질 수도 있었다. 유연성이 떨어지는 성격이라는 것을 나는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여자는 내게 자신이 작가라며 소설을 쓴다는 말을 했다. 물론 글쟁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당당한 모습이었다. 여자처럼 작가라고 드러내놓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 아마추어 수준에 불과했다. 채팅 공간에서 시를 쓴다는 사람들과 마주치기도 했지만 맞춤법조차 틀리는 어설픈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소설을 쓴다는 사람은 여자가 처음이었다. 컴맹 수준이었던 내가 사이버 공간의 생리를 잘 알지 못해 이 여자만 만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작가라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긴 잘 나가는 작가라면 일부러 일반인들에게 자신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여자는 아이들처럼 지나치리만치 솔직했다. 성격의 모순이 그대로 드러났던 건 여자의 학력이 낮은 탓이었다. 어찌 보면 단순 무식한 여자였다. 실은 여자가 소설을 제대로 쓰는 작가인가 아닌가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다만 나는 여자와 빨리 가까워지기 위해 일부러 밤 기차를 탔을 뿐이었다. 따라서 여자가 취했다는 건 좋은 징조였다.

  "지금 이 시간에는 함께 집으로 갈 수는 없죠. 그쪽은 외간남자니까요."

  여자가 불쑥 내 허를 찌르는 말을 했다.

  "...저도 재워줄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나는 외간남자니까..."

  말을 받아넘기자 여자가 쿡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약간 튀어나온 앞니의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낯선 느낌은 체형의 단점이나 얼굴의 못생긴 부분에서 묻어나곤 했다.

  "그럼 어디로 가죠?"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다음 코스가 노래방일 거라는 건 짐작이 갔다. 여자는 자신이 잘하는 게 음주가무라는 말을 했었다. 이성이 본능을 지배하는 구조를 가져서 주색잡기는 절대 아니라고 했다. 여자의 성적 코드가 불능이라면 몰라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었다.

  "노래방 가서 술을 깨야죠."

  새벽까지 하는 노래방이 근처에 없어 택시를 탔다.

"노래방은 지하가 아니라도 냄새가 좋지 않죠. 늙은이들에게서 나는 냄새 같아요. 나도 늙어 가지만..."

  여자가 내려가는 계단 중간쯤에서 킁킁대더니 말을 했다. 여자는 다리가 휘청대자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노래방을 지키던 남자가 돈을 받으며 나를 흘끔거렸다. 나는 남자의 시선을 피하느라 손님까지 없어 동굴처럼 음습한 느낌이 드는 지하 노래방을 둘러보았다.

  여자는 내가 가사집에서 노래를 찾고 있는 동안 번호를 꾹꾹 눌러 대더니 한 곡을 불렀다. 저음과 고음 사이를 잘 이어가는 걸로 봐서 상당한 실력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느다란 거미줄처럼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그런 목청이었다. 게다가 바이브레이션이 뛰어났다. 고음으로 올라가면서는 애조를 띠어 여자의 노래를 듣다 나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좁은 공간에 담배연기가 맴돌면서 여자가 기침을 했다. 나는 음료수를 따서 노래를 끝내던 여자에게 건네주었다.

  "저는 피곤하면 기침을 하죠. 기관지가 좋지 않거든요."

  여자가 목에 손바닥을 댔다. 나는 담배를 비벼 끄고 기계의 숫자를 직접 눌렀다. 내가 블루스 곡인 팝을 부르자 여자가 내 몸을 끌어안았다. 여자의 몸에서 비누 향내와 담배냄새가 섞여 났다.

  기계의 숫자가 제로로 되자 다양한 불빛을 쏟아내던 회중전등이 꺼지고 형광등이 켜졌다. 침묵이 흐르자 여자가 곡 연주 없이 노래를 부르겠다는 말을 했다. 가곡 '그 집 앞'이었다. 잊으려 옛날 일을 잊어버리려...불빛에 빗줄기를 세며갑니다... 잊어버리고 있던 가사2절이었다. 나는 여자가 노래를 마치자 시계를 쳐다보았다. 애절한 이별 노래로 시작되는 아침이었다. 나오니 밖은 노래방의 형광등보다 훨씬 밝았다. 노래방 입구에서 택시를 잡았다.

 


 


김은숙   2018-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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