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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품은 여자 <4>
별을 품은 여자 <3>
별을 품은 여자 <2>
별을 품은 여자 <1>







 :: 유령작가 (2)







                                                                                        2

  택시가 멈춘 연립 앞에는 등나무 그늘이 있었다. 아침 햇살이 지붕 구실을 하는 윗부분에만 머물고 있어서 아래쪽은 음침했다. 갈색인지 검은색인지 나무의자가 서로 마주보는 위치에 놓여있었다. 그 앞을 지나치는데 서늘한 기운이 몸에 확 끼쳤다. 돋아있는 풀과 축축한 흙에서 찬 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가자 털에 눈이 가린 강아지가 나를 보며 으르렁댔다. 여자가 강아지를 달래려고 안았다가 놓았다.

"이놈은 밖에 내다 놓아도 데려가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온 강아지 같죠? 실은 내가 털을 깎거든요."

  여자가 강아지와 눈을 맞춘 상태로 말을 했다. 나는 털이 엉킨 뚱뚱한 강아지를 쳐다봤다.

  "임신했나요?"

  "하늘을 봐야 별을 따죠. 나랑 같은 신세이지."

  여자의 대답에 나는 웃으려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 여자의 시선은 딴 데에 있었다. 낡은 가재도구와 푸르스름한 빛깔의 벽지 때문에 분위기가 썰렁한 집이었다. 한쪽에 피아노가 있고 그 옆에 일인용 소파가 놓여있었다. 그 바로 옆에 식탁이 있어 그 소파가 자리하기도 비좁았다. 나는 피곤해서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차 한 잔 하실래요?"

  마음 같아서는 밥을 먹자는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내가 저녁조차 먹지 못했다는 사실을 여자가 알리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커피를 마시겠다고 했다.

"집이 좀 그래요. 물건들을 버리고 새로 장만해야하는데 능력이 있어야 말이죠. 돈 많은 영감이 해결사이긴 한데 치사한 인간들이 이쁜 여자만 찾아요."

  여자는 아름다움을 잃어가는 나이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여자를 쳐다보며 웃어 주었다. 인조든 자연이든 예쁜 여자가 많은 세상이니 평범하고 몸집이 큰 여자는 이미 코너에 몰린 상태일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서울에 있는 집을 세 주고서 글을 쓴다며 지방을 전전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여자는 아무나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여자는 황새걸음을 흉내 내는 뱁새일 뿐이었다. 어쩌면 돈을 벌어다줄 사람이 없어 궁상을 떨 수밖에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글이 제대로 써지는 건 절대 아니었다. 한때 나는 스스로를 부르주아라고 불렀다.

  바닷가의 호텔에서 작업할 때였다. 철썩대는 파도소리가 열린 창으로 음향처럼 스며드는 밤이면 콘티작업을 하느라 밤을 꼴딱 새곤 했다. 그때는 쓰는 속도보다 생각의 속도가 훨씬 앞질러가서 콘티작업도 속기로 했으면 싶었다. 때론 여자와의 섹스에 관한 장면 묘사를 위해 값비싼 콜걸을 부르기도 했다. 마네킹처럼 몸에 군살이라고는 없는 콜걸은 그림 작업이 끝나면 우아하고 매력적인 여주인공으로 둔갑했다. 그 시절이야말로 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고 따라서 출판사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생활에 허덕거리는 상황이 되자 내 머릿속은 공동 상태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월세로 있던 집에서도 작업이 안 되었지만 보증금마저 까먹고 남의 집에 얹혀사니 거지꼴이었다. 겨우겨우 조금씩 써 가는데 출판사에서는 밀려 놓은 원고료마저 차일피일하고 있었다. 다달이 마이너스가 나는 생활을 계속되다보니 빚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 같았다. 카드 대금이 밀려 이미 신용 불량자가 되어있었고 공과금도 몇 달씩 밀려 있었다. 전화 요금도 이달에 내지 않으면 끊길 상황이었다. 휴대폰은 받는 것만 겨우 유지되고 있었다.

  아들만 없었어도 이 지경이 되진 않았으리라는 생각이었다. 발리에서 나오면서 잠깐 맡으려했던 아들은 전처에게 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중학 이학년인 아들은 사춘기에 접어드는지 전처의 남편을 마주하지 않으려한다는 말이었다. 내가 맡은 역할은 의붓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해야 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아들에게 일부러 잘 대했지만 그게 오히려 역효과였기 때문에 나중에는 무관심으로 갔다. 물론 지금은 잘해주고 싶어도 형편 때문에 아들은 최악의 대접을 받고 있는 셈이었다. 어르고 달랠 필요도 없이 아들은 다음달에 전처에게 간다고 했다.

  발리의 L에게도 생활비를 두 달이나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L은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걱정 말라고 했다. 다만 관광비자만으로는 취업이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어서 L이 서비스업에 종사할까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국내에서 보다는 생활비가 적게 들어 그나마 위안이었다. 한국에서의 생활비 2분의 1정도로 기사와 하녀도 두고 살았다.

  이번에 무협 계약을 하고 만화도 출판사 사정이 좋은 다른 곳에 계약을 하기 위해 잠깐 나왔는데 아들과 빚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여자에게서 어느 정도 돈이 융통되면 부족한 나머지는 동료 작가에게 손을 벌리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발리의 집도 계약만료가 얼마 남지 않아 서둘러야 했다 잠시 발리에 여행을 왔던 L과, 만화 작업을 위해 그곳에서 거주를 하던 나는 발리 해변에서 만났었다.

당시 당시 L은 간단한  영어회화 능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한국 사람만이 갖는 억양이 배어 있었다 L의 엄지발가락은 슬리퍼의 고리에 끼워져 있었다. 내 시선은 L의 빨간 발톱에 멈췄다가, 꽃무늬가 자잘한 치마와 깊게 파인 가슴골에 머물렀다. 잠깐 L과 눈이 마주치자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스물 다섯살인 그녀의 머리에는 빨간 꽃이 꽂아져 있었다.

 "두유 스피크 잉글리쉬?"

"어머 한국 분이세요?"

 대화가 이어지던 중 L이 내게 물었다.

나는 L에게 악수를 청했다. L에게 내가 만화가이며 글쓰기를 위해 발리에 거주한다는 말을 했다. 곧 우리는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다. 그녀는 예술가에 대한 호기심이었고, 나는 풋풋함이 아직 가시지 않은 처녀에 대한 호감이었다. 물론 그전에 나는 스무 살이 채 안된 발리의 처녀와 동거를 한 적은 있었다. 원어민 처녀들은 야들야들한 피부였지만 까매서 지저분한 느낌이었고 게다가 수입쇠고기처럼 몸에서 누린내가 났다. 샤워를 자주하는데도 어떻게 씻는지 불결한 냄새를 풍기곤 했다. 짧은 영어 회화 실력으로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것도 상당한 부담이었다. 따라서 깊이 있는 대화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맨 처음 L에게 십대 후반에 지었던 내 시를 읊어줬었다. 그녀는 내가 작가라는 걸 믿지 않는 태도였지만 집에 가서 내가 쓴 시와 만화를 보여주겠다고 하자 긍정적인 태도로 바뀌었다. 곁에 있던 키가 작고 팔다리가 굵던 친구는 L이 하는 대로 잠자코 있었다.

  내 생각은 L의 속살을 더듬던 그 시간에 고정되어 있었다. 간혹 L은 까만 그물 속에 비스듬히 누워 신화속의 여인처럼 잠들어 있었다. 나는 바닥에 누워 마름모꼴의 그물 틈으로 탱탱하게 내민 젖가슴과 잔디처럼 하복부를 가득 메운 까만 음모를 바라보곤 했다. 스치는 바람에 음모가 떨리면 내 몸도 서서히 반응을 했다. 나는 일어나서 혀끝으로 L의 유두와 하반신을 더듬으면서 수음을 했다. 그물 침대에 나신으로 누운 L이 떠올라 나는 눈을 감았다.

  "피곤하세요?"

  갑자기 무릎 위로 올라앉은 여자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는 눈을 뜨지도 않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여자가 입술로 내 입술을 더듬었다. 여자의 입에서는 아직도 술 냄새가 났다. 나는 입을 조금 벌렸다. 여자의 혀가 내 혀끝에 닿았나 싶더니 내 목에 둘렀던 팔을 스르르 풀었다.

"저쪽 방에서 주무세요. 나도 피곤해서 자야겠어요."

  여자가 입술을 떼고 내게 말을 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보수적으로 되어버리는 게 아이러니 했다. 여자는 내 무릎에서 내려서더니 현관 옆방으로 갔다. 여자가 그 방에 이불을 깔고 나왔다. 나는 소파에 앉은 채 여자의 행동을 계속 지켜보았다. 여자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정말 주무실려구요?"

  뒤따라 들어간 내가 물었지만 침대에 누운 여자는 눈도 뜨지 않았다. 나는 선 채로 손으로 이불자락을 움켜쥔 여자를 쳐다보다가 현관 옆방으로 가서 누웠다. 여자가 깔아 놓은 이불에서 특유의 냄새가 났다. 좀약냄새와 오래 쓴 물건에서 나는 눅눅한 냄새까지 배어있었다. 남의 집이기 때문에 맡아지는 냄새, 그러니까 나는 아직 이방인이었다. 나는 두 손을 깍지 낀 채 뒷머리에 괴고 열린 창으로 보이는 하늘을 응시하다가 양쪽 벽을 의지하고 있는 책꽂이를 바라보았다.

  방안의 눅은 냄새는 오래된 책도 한몫을 하는 것 같았다. 문학 서적들 틈에 두어 질의 동화가 섞여 있었다. 여자는 동화에도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나도 만화를 시작하기 전에는 드라마나 시나리오에도 관심을 가졌었다. 따지고 보면 나는 시, 소설, 드라마, 시나리오 ,만화, 무협을 다 하고 있는 셈이었다. 한쪽 귀퉁이의 키가 작은 책꽂이 위에 앨범이 차곡차곡 올려져 있었다. 그것을 보던 나는 호기심이 발동해서 몸을 일으켰다.

  가족사진이 고스란히 끼워져 있었다. 여행을 많이 다녔던 듯 바닷가에서 찍은 게 많았다. 여자는 화장을 하는 얼굴도 아니었고 선글라스도 착용하지 않았다. 어느 때는 긴 파마머리였고 때론 쇼트커트였지만 수더분한 복장에 몸이 커서 항상 남자 같은 느낌이었다.

남편의 사업장에서 찍은 사진도 간혹 눈에 뜨였다. 규모가 그리 작아 보이진 않았고 사진에서 가족들은 밝은 표정이었다. 가게의 앞 유리에 부착되어있는 게 네온으로 된 다이아몬드여서 여자에게 설명을 듣지 않았어도 귀금속을 취급하는 가게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세 권 째 앨범을 보다가 아이들의 사진만 주로 보이자 덮고 일어났다. 거실로 나와 메모용지를 식탁에 놓고 앉았다. 몇 자 적는 동안 손이 떨렸다. 메모지 위에 볼펜을 놓고 나는 일어나서 가방을 챙겼다.

 

                                                            3

  돌아오는 기차에서는 거의 자지 못했고 집에 돌아온 후 눈을 붙였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오후에 여자의 전화를 받았다. 다소 허스키한 목소리여서 피곤하게 느껴졌다. 여자가 전화를 했다는 건 내게 호감이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렇잖아도 그냥 나와 버려 미안했어요. 현관문이 열려있어 내내 불안했죠."

"아니에요. 우리 집 멍멍이 밥 먹고 하는 일도 없는데요. ..."

"하긴 집 지키는 데는 남자보다 개가 더 나을 수도 있지요. 하하..."

  여자도 나를 따라 웃었다. 재치도 있고 활달한 여자였지만 내가 보기엔 융통성이 없어서 문제였다. 문학이라는 장르에서는 등단이라는 제도를 존중해야한다는 것을 여자는 모르고 있었다. 앞으로도 여자는 세상 살기가 팍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남편과 이혼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자의 남편이 자영업을 하고 있어 삶이 그런 대로 윤택했었다는 말로 미뤄봤을 때 여자의 말과는 달리 남편에게 버림받았을 가능성이 농후해 보였다.

  나는 거의 날마다 여자와 통화를 했다. 여자는 항상 반기는 기색이었다. 모든 일은 내 생각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여자의 집을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이번에는 짐을 싸 가지고 가겠다는 생각이었다. 며칠간 통화를 하던 나는 슬그머니 그 얘기를 꺼냈다. 때마침 장마가 남쪽 지방을 할퀴고 지나갔다.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어요. 지하라 비가 오면 창을 닫아야하니 늘 찜통이네요."

"하긴 글이란 여건이 좋지 않으면 써지지 않죠. 게다가 장마통이니...혹 비 때문에 집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구요?"

 "차라리 문제가 생겼음 핑계로 아들 녀석이랑 신세 좀 지는 건데. 하하..."

 "저도 말리지 못하지요."

  여자도 웃으며 말했다.

  "소설은 잘 되어 가나요?"

  지름길로 가다 복병을 만날 수도 있겠다싶어 화제를 돌렸다.

 "조금. 이혼 전 갈등이 많아 거의 놀았으니 이제 써야죠. 한 삼 년 그런 세월을 보내고 나니 허망하대요. 글쓰기를 그만두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올해부터는 좀 써지네요. 사주쟁이 말이 맞나 봐요. 올부터 공부 쪽으로 좋을 거라는군요. 게다가 인연 운까지 온대요."

  여자는 나와의 관계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내 계획을 앞당겨도 될 것 같았다.

 "그래요? 소설로 잘되었으면 좋겠네요."

뻔한 실력이겠지만 나는 여자를 추켜세웠다. 소설로 돈버는 사람이 소설가 중 몇%나 될까.

"정말 올해 인연이 생긴대요?"

  나는 연거푸 말을 했다. 여자의 의중을 정확히 짚어내기 위해서였다. 모든 게 쉽게 풀릴 것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했다.

 "... 그렇다네요. 하지만 사주를 보면 좋은 말은 안 맞는다고 하잖아요."

 "글쎄요. 맞을 수도 있겠죠."

 "저도 그렇길 바라죠. 삶이 하도 고달파서 사주 공부를 했지만 지나간 걸 풀어내는 걸 보니 상당부분 맞더라구요. 그렇다면 미래도 어느 정도 맞겠죠. 과거를 가지고 유추해서 푸는 것이니까요. 사주란 현재를 가지고 과거와 미래를 보는 거랍니다. 저는 과거의 삶과 현재를 가지고 미래를 풀었으니 비교적 맞겠지요."

  그렇다면 여자는 앞으로 일어날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한 후 말을 이었다.

 "혹 제가 인연이 아닐까요?"

 "글쎄요..알 수 없는 일이지요."

  여자에게서 흔쾌한 답을 얻어내진 못했지만 나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나는 조금 더 밀고 나가겠다는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집에서는 도저히 글 못쓰겠어요. 선배네 방이 두개나 남으니 하나만 빌려주세요."

 "저와 문호씨는 아직 그럴 만한 사이가 아닌 걸로 압니다만..."

  대답은 부정적이었지만 여자가 이름을 부른다는 건 내 보기에는 한 걸음이 더 나아간 태도였다. 나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고 수화기를 놓았다. 하루만 더 기다려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김은숙   2018-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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