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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령작가 (6)




       



                                                                     11

  서울역 광장에서 여자의 딸아이와 만나자고 했던 것은 경비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여자의 딸아이가 기거하는 원룸에서도 지하철역이 가까웠기 때문에 마지막회를 본다 해도 지장은 없을 터였다. 아이가 근무하는 공장은 서울 근교 도시였다. 좀더 일찍 만나봤자 돈만 더 깨질 것 같았다. 8시쯤 시작이 되니까 6시 반에 만나면 시간이 딱 맞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서울역에서 광화문역까지는 10분이면 충분했다.

  더위를 피해 역의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건물 안은 에어컨이 작동되고 있어서 그런 대로 시원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사람을 피해 구석에 서 있다보니 에어컨 바람이 거의 미치지 않아 몸이 끈적거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특이한 복장도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버릇처럼 나를 한번씩 쳐다보았다. 나는 얼굴에 뭐가 묻었나싶어 화장실로 갔다.

  세면대 앞의 거울에 다가서서 얼굴을 살폈다. 별다른 건 없었다. 다만 지하 골방에 늘 갇혀있어 피부가 희다 못해 창백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내 등 뒤로 지나가는 남자들을 살폈지만 대부분 비슷한 빛깔의 얼굴이었다. 나도 발리에서는 어느 정도 그을려서 그들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피부가 달라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 같았다. 게다가 내 눈은 쌍꺼풀 선이 선명해서 여성스럽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내가 한국 사람들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습관적으로 남을 훑어보는 버릇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에 밀려 밖으로 나왔다.

  낮 내내 후끈 달은 아스팔트가 열기를 내뿜고 있어 광장에는 사람이 그리 많진 않았다. 비둘기들이 간혹 내려왔다가 먹이를 던져주는 사람이 없어 다시 건물로 날아오르곤 했다. 새로 지은 역사 때문에 기존 역은 초라해 보였다. 나는 천천히 걸으면서 비둘기 똥이 희뜩희뜩 달라 붙어있는 오래된 건물을 바라보았다. 마치 건물이 비둘기 똥에 부식되어 가는 것 같았다. 그 아래쪽에 몇 명의 노숙자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미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는 노숙자도 눈에 띄었다.

  모로 누워있는 한 노숙자는 침이 흐르는 입 주변에 몇 마리의 파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구걸한 몇 푼으로 술을 마셔버리는 그들의 삶은 악순환의 반복일 수밖에 없었다. 이십대에 썼던 내 글 속에서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황금나팔을 구걸의 수단으로 쓰는 그 남자는 노숙자였다. 한때 나는 삶이 버거워 그 주인공처럼 자유로워지길 원하기도 했었다. 그 시에서의 황금나팔은 자유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건 참혹한 자유일 수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말소리에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여자의 딸아이였다. 아이는 노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잠시 내 상념이 끄는 대로 과거의 시간을 다녀왔던 나는 초라한 내 옷을 훑어보았다. 한국에 들어 온 후 나는 거의 옷을 사 입지 못하고 있었다. 여자가 신용 대출을 해준 700만 원 중 200만원은 발리로 보냈고 나머지로는 겨우 발등의 불이나 끈 셈이었다. 여자에게 돈을 좀더 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딸아이를 선택했지만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였다. 다만 아이의 성격상 제 어머니를 위해 악역을 자청할 수도 있기 때문에 친해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었다.

  “광장에서 기다리니까 좋으네. 이야기 거리가 여기저기 널려 있잖아.”

  내 턱짓에 아이가 노숙자들을 쳐다보았다. 혐오감 때문에 얼굴이 찌푸려질 만도 했지만 아이는 덤덤한 얼굴이었다. 걸으면서 간혹 아이를 돌아보곤 했는데 줄곧 아이는 나와 어느 정도 간격을 유지하면서 걷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천천히 걷는데도 등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옷이 달라붙어서 배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 냉방이 잘된 음식점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간판의 가장자리에 붙어있는 네온에 불이 들어 와 있었지만 아직 환한 시간이라 제 빛을 발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냉면 좋아하니?”

   “. 괜찮아요.”

  빠른 속도로 대답을 해서 말을 자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십여 미터쯤 떨어진 건물을 향해 걸었다.

나는 음식점 안을 둘러보고 차림표에 눈길을 주었지만 아이는 종업원이 가져온 물 컵만 줄곧 바라보고 있었다.

  “만두도 먹을래?”

  “아뇨.”

  아이는 짤막하게 대답을 했다. 아이가 시나리오를 쓰고 싶어 하기 때문에 내게 질문이 있을 것 같았지만 저녁을 먹는 내내 말이 없었다. 여자와는 달리 이가 가지런해서 아이는 긴 냉면을 톡톡 잘라먹었다. 소리를 내지 않고 먹는 모습이 꽤나 여성스러웠다. 냉방 장치가 잘된 식당인데도 아이의 콧등에 땀방울이 맺혔다. 아이가 비빔냉면을 시켰기 때문에 그냥 따라 먹었는데 냉면에 들어간 고춧가루가 꽤나 맵게 느껴졌다.

  인도네시아 음식도 후추를 사용해서 얼얼한 편이었지만 고춧가루와는 다른 맛이었기 때문에 한국에 나왔을 때 고춧가루가 든 음식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걸렸었다. 게다가 위장병에는 고춧가루가 상극인 것 같았다. 나는 육수를 더 달라고 해서 벌컥벌컥 마셨다. 아이는 냉면을 먹은 뒤 물 한 모금밖에 마시지 않고서도 멀쩡한 얼굴이었다

  첨단 건물에 시네마라는 간판이 매달려 있었다. 후미진 골목에 있는 극장과는 달리 간판의 화보에 실린 배우들의 얼굴은 실물과 흡사했다. 일층에 세워져있는 세모꼴의 조형물이 영화관 입구였지만 영화관은 7층과 8층만 사용하고 있었다. 평일 저녁인데다 한국 영화 마니아들이 선호하는 타입의 영화가 아니라서 관객이 많지는 않았다. 가벼우면서 코믹한 내용의 영화나 할리우드식의 영화가 아직은 강세였다.

  양쪽 가장자리 객석의 거의 비어 있었다. 이층 한쪽 귀퉁이에 앉아있는 남녀가 눈에 뜨였는데 엉겨있는 모양새가 영화는 뒷전인 관객이었다. 나는 둘러보다가 지정석을 찾아갔다.

  “잘 보이니?”

  요즘 아이들은 눈이 나빠도 안경을 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아들도 시력이 0.5를 밑도는데도 콧등에 붉은 반점이 생기는 걸 꺼려해서 안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언젠가 먼지가 낀 아들의 안경을 서랍에서 꺼내 써 보니 어른어른 했다

  “이 정도 거리면 괜찮아요.”

  아이가 눈으로 정면을 보면서 말했다. 영화 화면에서는 속옷 광고를 하는 중이었다. 아이는 시선을 떨어뜨리지 않고 화면을 계속 바라보았다. 나는 몇 번이나 몸을 뒤척거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세 쌍의 젊은 연인이 출연하기 때문에 정사 장면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아이의 머리칼에서 옅은 향내가 났다. 잠깐씩 아이를 쳐다보곤 했는데 줄곧 꼿꼿한 자세였다. 게다가 아이의 눈빛이 도드라져 보여 내내 부담스러웠다. 영화관에 들어오기 전에는 손은 잡아도 되겠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랬다가는 뜨거운 것에 덴 것처럼 아이가 놀라는 꼴을 볼 것 같았다

  세 쌍의 사랑이야기를 절묘하게 연결시킨 멜로물이었는데 내용이 다소 어려웠다. 스토리가 시공을 넘나드는 데다 다소 관념적인 내용이었다. 아이가 선택한 영화였기 때문에 다소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결말을 관객의 몫으로 남겨놓고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 화면이 멎고 천장의 불이 켜지자 아이는 발딱 일어섰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서 아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호프라도 한잔할래?”

  “아니에요.”

  여전히 딱딱한 말투였다. 만나는 내내 한두 마디로 끝나야하는 대화인 셈이었다.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아이가 거부감을 갖고 있어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내게 호의적이 되길 바라서 일부러 만났던 것인데 결과는 영 신통치 않았다. 그래도 영화까지 보여줬으니 나쁜 감정은 갖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저기요.”

  아이가 앞서 나오던 나를 불렀다. 사람들이 흘끔거리기는 했지만 별 관심이 없는지 그냥 스쳐 지나갔다. 딸아이가 일층의 구석 쪽으로 다가갔다. 지하도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의 반대편 공간이었다. 이제야 영화에 대한 질문을 하는구나 싶었다. 그 나이에는 내용을 전부다 이해하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었다

  “울 엄마에게 해꼬지를 하면 저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아저씨 이름을 인터넷 공간에 도배할 거라구요.”

  순간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벼랑 끝처럼 아슬아슬한 곳에 서 있는 것처럼 가슴이 벌렁거렸다. 태연한 척 하느라 얼굴에 담았던 미소는 그대로 두고 아이를 쳐다보았다. 사람들 시선을 의식해야했지만 이리저리 둘러 볼 수도 없었다.

무슨 소리니?”

몸이 전체적으로 뻣뻣해졌다. 나는 얼굴에 담은 미소 때문에 불편한 상태였다

그때 사진 봤어요. 엄마가 속상할까 봐 말은 안 했지만.”

 “무슨 사진?”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지갑의 사진 말예요.”

  “...오해를 했나보네. 그 친구들 나이가 서른 중반은 되었을 거야. 팬들이거든. 물론 홀애비로 지내다보니 사진을 못 버리게 되드라마는... 지금은 어디 사는 지도 몰라.”

외워둔 이야기 줄거리처럼 말이 죽 이어져 나왔다. 아이는 대답을 하지 않고 벽에 나있는 작은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기분이 상했던 모양이구나.”

  “이제 됐어요.”

  아이는 바깥으로 돌린 시선을 거두어 바닥을 내려다 봤다.   

  “영화, 잘 봤어요. 안녕히 가세요.”

  내가 대꾸를 못하는 틈을 타서 아이가 인사를 했다. 아이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앞장서서 걸었다. 아이의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그것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던 모양이네. 잘 가. 담에 보자.”

  말을 한 다음 손을 들어서 흔들었지만 아이는 끝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인터넷 공간에 내 이름을 도배해봐야 알아 볼 사람은 없겠지만 씁쓸했다. 나는 건물 밖으로 나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건너편에 촘촘하게 자리하고 있는 고층 건물이 별조차 가려내기 힘든 먹빛 하늘을 가로막고 있었다. 10시가 넘어서고 있었기 때문에 건물에는 불이 켜진 창이 많지 않았다.

  건물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이 이리저리 흩어졌겠지만 인도로 들어서자 떠밀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지하철 계단으로 내려갔다. 냉방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지하철 안은 후덥지근했다.

  집에 도착하니 현관문은 여전히 잠겨있지 않았고, 아들은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저녁 먹었니?”

  “.”

  아들이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했다.

  "별 싱거운 녀석 다 보겠네. 아빠가 왔음 쳐다봐야지.“

  아들이 잠깐 얼굴을 돌리더니 다시 컴퓨터로 시선을 옮겼다. 움직임이 꼭 자동인형 같았다. 나는 아들 뒤통수 보면서 한참 서 있었지만 나무라지도 못했다. 아들도 이런 상황을 감당하기에는 벅찬 나이라는 생각이었다.

  주방 앞에는 나갈 때부터 있던 상이 그냥 있었다. 점심에 먹다 남은 샌드위치와 비빔밥을 먹었던 그릇이 상 위에 놓여있었다. 샌드위치에서는 쉰 냄새가 났다. 나는 빈 그릇에 샌드위치 조각을 넣고 비닐로 쌌다.

  문을 열고 나가자 옆집에서 내다놓았는지 음식점의 그릇에 붙어있던 파리 떼가 흩어졌다. 외등이 약간 붉은 빛을 내뿜고 있어서 내 놓은 그릇이 보기 흉했다. 게다가 지하 통로라 냄새가 빠져나가지 못해 파리가 꼬이는 것 같았다. 나는 비닐로 싼 그릇을 문이 움직이는 자리를 비켜서 놓았다. 잠깐 문밖에 서 있는데 어느 집에서 개가 사납게 짖고 있었다.

 

                                                                         12

  후배가 외박을 할 때면 그 방에서 원고 작업을 했다. 나는 저녁 식사 후 줄곧 원고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 방은 좀 넓어서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럭저럭 작업이 되는 듯하다가 갑자기 멍청해졌다. 어느 틈에 내 뇌리는 여자에 관한 잡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자는 딸처럼 똑 부러지는 성격이 못되었다. 대출 후 마음이 편치 않았겠지만 여자는 또 이 백 만원을 쉽게 보내 주었다. 너무 순순히 응해서 집에 돈이 없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간혹 여자네 집에 머물렀던 시간을 떠올리다보면 허전하기도 했다. 그 열흘이 길고 긴 세월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은연중 단조롭고 지루하던 여자와의 섹스가 그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일어나서 방안을 서성거렸다.

  생각해보니 내가 J시에서 머무는 동안 여자는 거의 글을 쓰지 못했다. 권하는 책을 읽고 틈틈이 나와 토론을 한 게 전부였다. 나에 대한 배려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잡념 때문이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때로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자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시간이 나면 국내 현대 작가들의 소설이나 세계 명작에 관한 평을 할 때가 있었는데 여자는 웬만하면 내 말을 수용했다. 나는 소설을 한번만 읽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하게 기억을 했다. 줄거리와 주인공의 성격 정도를 파악하는 여자와는 애초부터 게임이 안 되었다. 물론 내가 읽었던 소설 중에는 여자로서는 생소한 경우가 많아 독서량의 부족으로 비쳐지기도 했다.

  여자의 집을 다녀 온 후로 날마다 전화를 했다. 통화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번호를 눌렀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여자의 목소리는 늘 가라앉아 있었다. 사이버 공간에서 마주쳤을 때 첫 느낌이 수다스러움이었는데 그게 싹 가셔있었다. 두 번이나 돈을 마련해 주었으니 마음이 편할 리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었다이백 만원을 내게 보내 준 후 부쩍 말이 줄어든 것 같았다.

  돈이 제 시간에 되지 않을 거라고 여자가 지레짐작할 수도 있었다. 물론 많은 약속들은 거짓이었지만 돈은 깨끗이 해결하리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L에 관해 여자가 알게 된다 하더라도 그건 오랜 시간 후의 얘기였다. 달리 말하면 그건 여자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나는 여자와 통화가 끝나면 누워있거나 근처의 가로 공원까지 걸어갔다 돌아오곤 했다. 보통 때에도 마음이 심란하면 그 길을 따라 걷다 나무의자가 보이면 넋 놓고 앉아 있기도 했다. 역에서 멀지 않은 공원이라 공기도 더러웠고 시끄러웠지만 달리 갈 곳도 없었다. 그렇다고 노숙자가 우글거리는 광장 쪽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여자를 만나게 되면서 상황은 진전되었지만 이상하게도 글을 거의 쓰지 못하고 있었다. 작업을 했던 만화 원고를 의도대로 다른 출판사로 가지고 갔다. 떨떠름해하는 출판사 관계자와 최악의 조건으로 계약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무협 원고는 부지런을 떨면 일주일 안에 계약을 할 수 있겠지만 잘못하면 수준 이하의 원고가 될 수도 있었다.

  만화 스토리 작업을 하던 오랜 세월 동안 나는 무협까지는 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무협 소설을 하다보면 본궤도인 순수문학으로는 돌아오기가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혼자서는 그럭저럭 지낼만했지만 L을 만난 후 점차 상태가 나빠지면서 결국 나는 막다른 길을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밤이면 원고를 앞에 두고 멍하니 앉아 있다 시간을 흘려보내기 일쑤였다. 여름이라서 그런지 밤부터 새벽까지 골목에 사람들이 넘쳐났다. 간혹 밖에서 싸움이 벌어질 때면 마치 내 귓가에 욕설이 퍼부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내가 기거하는 지하방의 반은 지상에 있고 반이 땅에 묻혀있었다. 유리창을 열면 그 앞에 담배 꽁초가 수북하기도 했고 집 앞에 가래침을 뱉고 가는 사람을 목격하기도 했지만 뭐라 말을 할수도 없었다. 어차피 거긴 길이니 사람들이 왕래하는 길이니 말이다.  그쪽으로는 여름에도 문을 열어두기 어려웠다.  후배의 집이니 불만조차 속으로 삭여야만 했다.  

  7-8월이 되면서는 제대로 잠을 청할 수 있는 날이 거의 드물었다. 잠을 제대로 잔 건 여자네 집에 머문 기간 동안이었다. 게다가 글을 쓰지 못하는 나날이다 보니 어설픈 잠을 자는 경우가 많았고 낮에는 가위눌림을 당하기도 했다. 어느 때는 벽에 걸린 내 옷이 사람처럼 다가와서 목을 조르기도 했다.  

그날따라 매미는 방충망에 붙어 철공소에서나 들을 수 있는 기계음을 내고 있었다. 나는 바퀴벌레에 쓰는 약을 가져다 마구 뿌렸다. 약을 제 자리에 가져다 놓는데 전화벨이 울려 시계를 쳐다보니 10시였다. 발리의 L이었다.

 "아이고..우리 리나. 밥은 먹었니?"

  여자의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나는 웃으면서 물었다.

 "그럼 아홉 시인데...대충 먹었어, 시아가 해주는 음식은 입에 잘 맞지 않잖아."

 "조금 더 여유가 생겨야 들어가겠네. 리나 쭈쭈 좀 만져봤음 좋겠다."

  L이 콧소리를 섞어 웃었다. 애교를 부릴 때의 귀여운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싸해졌다.

 "나도. 근데 그 늙은 여자랑 정든 게 아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그래."

나는 검지로 연필을 퉁겨 돌리며 언성을 조금 높였다. 손에서 연필이 떨어지더니 또르르 소리를 내며 거실바닥을 굴러갔다.

 "그러면 언제 와?"

 "아마 앞으로 보름 후쯤이면 가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바람에 실내로 불어드는지 파리약 냄새가 더 심하게 났다. 나는 선풍기의 앞면이 창을 향하도록 발로 밀었다.

 "빨리 와, 아찌. 보고 싶어 죽겠다. 아찌... 찐다 빠다..."

 "그래, 나도...러뷰..."

  또박또박 아찌 찐다 빠다라고 말하는 L의 입술을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전화요금 때문에 수화기를 놓아야만 했다. 나는 여자에게 전화를 하려다 그만두었다. L의 여운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그곳 언어를 익혀서 능숙하게 얘기를 하는 L을 볼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곤 했다. 게다가 L에게는 미모의 친구들이 많았다. 작년 여름에 L의 고교 동창들이 발리에 여행을 와서 일주일 정도 묵은 일이 있었다.

  L의 친구들은 아름다운 속살까지 내 보이고 싶어 깊게 파인 티와 짧은 반바지만 입는 것 같았다. 카드보다 화투를 집어 들었던 건 가느다란 팔목을 때릴 때의 짜릿함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내가 화투를 교묘하게 섞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나는 타짜에 가까운 실력이라 할 수 있었다.

 L의 친구들이 떠나고서도 투명하게 느껴지는 깔깔 웃음소리가 한참동안 귓전을 맴돌곤 했다. 물론 L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 일을 떠올리는 건 아니었다. 그녀들은 만화에서 필요한 캐릭터와 같은 나이였기 때문에 개개인이 갖는 특성과 아름다움이 내겐 중요할 수 있었다. 그 후에 왔던 두 친구는 아쉽게도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들 중 L이 유난히 돋보였던 건 완벽한 몸매와 깨끗한 피부 때문이었다.

  L의 몸은 햇볕에 알맞게 태우면 분홍빛을 띠곤 했다. 때로 나는 복숭아 빛 L의 몸에 까만 그물을 감았다. 농염한 포즈를 취하면 L은 나만을 위한 포르노 걸이었다. 발리에 돌아가면 하녀를 핑계대어 밖으로 몇 시간 내 보낸 다음 승용차에서 1코스로 섹스를 하고, 두 번째는 그물침대에서 시도해 보고, 세 번째는 풀장에서 하고 싶었다. 다음 마무리로 침대에서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풀코스 섹스를 생각하자 성기가 팬티를 뚫을 듯 일어서고 있었다. 나는 원고용지를 밀쳐놓고 불을 껐다. 유리창으로 가로등의 불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나는 벽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손을 대어보니 내 성기는 낙하산처럼 펼쳐져 있었다. 자기 귀두 둘레가 몇 센티이지? 버섯구름처럼 솟구치는 거 보면 너무 사랑스러워. L의 젖은 목소리가 내 귀두를 핥는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호흡을 들이켰다 뿜어내는 걸 반복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수음이 끝날 것 같아 수건을 집어 드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호흡 조절을 하느라 다섯 번째 벨이 울렸을 때 받았다.

 "? 선배."

 "왜 그리 헐떡거리냐? 그렇게 더워?"

  여자의 목소리가 능청스럽게 들렸다.

 "아냐. 매미 때문에 글이 안 써지네."

 "글이란 게 아무 때나 써지면 좋게? 나도 못쓰고 있잖아.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

 "선배, 고마워. ...선배, 보고 싶다."

  내 턱을 조준하고 있는 성기를 지그시 누르면서 말했다. 내 입에서 약간 갈라진 소리가 나왔다.

 "나도. 그런데 목소리가 피곤하게 들리네. 오늘밤엔 글 쓰지 말고 일찍 자라. 아플라."

  정색을 하며 여자가 말했다.

 "아냐. 작업은 해야지. 돈 많이 벌어야 선배 호강시켜주지. 그 동안 선배가 고생 많았잖아."

 "후후. 고맙네. 후배."

  여자의 목소리는 섹스 때처럼 가라앉아 있어 허스키하다는 느낌이었다. 여자에게서 잠깐 매력을 느꼈을 때는 노래방에서였다. 나방이 흉한 번데기를 거쳐 은빛 비단실을 만들어 낸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달까. 여자의 생김새와는 전혀 다른 음색이었다. 갑자기 여자와의 섹스가 그리웠다. 나는 몽롱한 기분에 돈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다. 성기는 활시위처럼 아직 팽팽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선배랑 지내면 속상해서 글이 안 써진단 말야. 만화 관두고 소설 쓰고 싶은 생각만 불쑥 불쑥 솟아오르니.조금만 참아. 곧 돈이 제대로 들어오게 될 거야."

 "글쎄. 차라리 로또를 사는 게 빠르지 않을까?"

 "참내. 농담이 아니야."

  나는 짐짓 화를 내는 척 그렇게 말했다. 출구를 찾는 성기 때문에 나는 양쪽 다리를 벌린 채 엉거주춤 앉아있었다. 밀려 올라온 액체가 쏟아질 것 같아 수화기를 어깨로 누르고 두 손으로 수건을 잡았다.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데 수화기에서 마치 날벌레가 윙윙대는 것 같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말을 하지 않고 있으니까 여자도 침묵을 지켰다. 내 코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숨결과 여자의 숨결이 수화기 속에서 뒤섞였다. 총알을 끼워놓고 조준하고 있는 시간처럼 유지되었던 긴장이 풀리며 나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뜨거운 액체가 쏟아져 나오면서 수건을 뚫을 것 같은 힘이 느껴졌다.

 "뭐하고 있어?"

아직 뻣뻣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성기를 수건으로 감싸 쥐고 있는데 여자가 물었다. 수건으로 사타구니를 닦아내느라 빨리 대꾸하지 못했다. 나는 수화기가 어깨에서 떨어질까 봐 다시 손으로 잡았다.

 "왜 그래?"

  여자가 조르는 아이처럼 채근했다.

 "아냐. 매미 때문에... 소리 안 들려?"

 "..."

  여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힘이 빠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여자가 말없이 있더니 잘 지내라는 말을 했다. 얼결에 나도 수화기를 놓았다. 수화기를 잡았던 손바닥이 끈적끈적했다. 나는 팬티를 입고 거실로 나왔다. 다행히 아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아들은 내가 여자와 전화를 해도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혼 후 나는 혼자 지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동료 작가들이 수시로 들락거렸다. 때로는 술을 마시다보면 여자 남자할 것 없이 무더기로 엉켜 잘 때도 있었다. 아들은 방학이 되면 나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 심심찮게 보아온 일이었다. 사귀는 여자와 함께 있을 때도 아들은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다만 아들은 내가 전처와 합쳤으면 하는 생각을 고집스레 갖고 있었다. 한번씩 아들이 질문을 툭 던지면 나는 늘 딴전을 피웠다 눈치가 빠른  아들은 당장에 대답하라고 조르지도 않았다.

  나는 화장실로 가면서 타인처럼 등을 보이고 앉아있는 아들의 뒷모습을 슬쩍 쳐다보았다. 아들과 함께 지낼 날도 얼마 되지 않았다. 중학 이 학년생이었지만 아들은 혼자서도 학원을 다니고 저녁도 시켜먹을 줄 알았다. 내게 온 후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도 불만이 없는 건 의부 때문인 것 같았다. 집을 비울 때면 후배네 집에 얹혀사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출 후 여자가 준 200만원도 일부가 사라진 상태였다. 물론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게 많았다. 다만 신용불량의 상태가 되면 외국에 나가는데 지장이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에 카드 대금은 어느 정도 해결된 상태였다. 급한 공과금은 해결했고 나머지 공과금은 국내에서 머물지 않을 것이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개인에게 진 빚은 스토리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는 걸 그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미뤄도 되었다. 이제 여자에게 돈을 한번만 더 융통하면 될 것 같았다. 하긴 곧 발리로 나가야하니 돈 얘기를 거듭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며칠간 고민 끝에 병원비를 생각해냈다. 무협 계약금이 좀 들어오겠지만 얼마되지 않기 때문에 여자에게서 더 빌려야만 했다. 발리에서의 쓸 돈이 넉넉할 필요가 있었다.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L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전화로 여자에게 늑막염이라는 얘기를 했다.

 "늑골에 물이 고였다는 거야."

  이십대 때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 떨어졌다는 얘기를 여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옛날에 공사장에서 다쳐서 그렇대?"

 "글쎄.. MRI 촬영까지 했으니 병명이 나오겠지. 모레 선배 집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 의료 보험이 안 되어서 이틀간 입원비가 벌써 육십 만원이야. 여러 가지 검사와 MRI 촬영을 하더니 계산이 그렇게 되는 것 같아."

 "돈은 어떻게 하냐?"

 "에이 몰라...어떻게 되겠지."

여자는 어느 병원이냐고 묻지 않았다. 나는 전화벨이 울리면 뜨는 번호를 재빨리 확인하곤 했다. 때론 무슨 말을 할 것인지  고민하느라 벨소리가 20여번이 울려도 받지 못할 때도 있었다.

  "선배에게 항상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쩔 수가 없네. 이번 한번만 봐주라."

  말을 번복하려다보니 조금 전에 깎아 먹었던 참외 조각이 목구멍에서 밀려 올라왔다. 통화를 끝낸 후 나는 참외조각을 변기에 뱉었다.






 

김은숙   2018-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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