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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품은 여자 <1>







 :: 별을 품은 여자 <1>


 

 

1. 새 삶의 시작

 

   거리는 아직 한산하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양희는 담 옆의 나무에 시선을 던진다. 푸른 잎이 매달린 나무에는 놀랍게도 흰 눈이 내려있다. 의아한 생각에 양희의 시선은 도로를 건넌다. 상가 앞에 서있던 한 남자가 양희를 힐끔거리다 딴청을 부린다. 양희의 시선은 그를 무심코 지나서 부근의 가로수에 머문다. 거기에도 눈이 소담스럽게 얹혀 있다. 종대로 선 나무들 전부다 흰 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그러는 사이 양희는 그 나무의 이름을 기억해낸다. 이팝나무이다. 약간 푸른기가 도는 꽃은 포실포실 내리는 함박눈과 너무 닮았다.

양희만 긴소매 옷을 입었을 뿐 다른 사람들은 팔을 드러내고 있다. 벌써 오월 하순이었다. 그 동안 양희는 세상을 잊고 살았다. 달력도 쳐다보지 않았고 가끔 체조를 하러 운동장에 나와도 무엇이든 건성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는 동안 다섯 해가 지나갔던 것이다.

출소자들은 흩어져서 삼삼오오 무리 지어있는 가족들에게로 간다. 한 출소자는 벌써 두부를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머리가 짧고 수염까지 깨끗이 밀어 오히려 이상해 보인다. 양희는 한쪽에서 그들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다. 동생 정수가 오기로 했지만 보이지 않아 양희는 몇 발자국 움직이다가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기도 한다.

총을 들고 서 있는 군인이 보인다. 그곳에서부터 죽 이어지는 높은 담에는 가시철망이 얹혀있다. 양희는 그 안에 있을 때에도 밖을 동경한 적이 없었다. 취침 시간이 되면 담요자락에 몸을 묻으면서 신에게 기도를 했다. 내일 아침에 깨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그렇지만 오 년이 다 되어갈 때까지 그런 행운은 따라주지 않았다.

양희는 고개를 숙여 보따리를 꿰어들고 있는 손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아침 햇살이 눈부셔 얼굴 들기가 겁이 난다. 해를 등지고 서서 햇살 쪽으로 오른 손을 내민다. 공 모양의 손은 마치 랩을 씌운 것처럼 번들거린다.

“흉터가 별 모양이군요.”

의사가 젖가슴 사이를 바라보는 게 곤혹스러워 눈을 감고 있었다. 별 모양의 흉터는 수십 년 만에 다시 듣는 말이었다. 깜짝 놀란 양희는 팔을 구부려 가슴을 가리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눈을 떴다. 의사는 양희가 일어날 수 있도록 몸을 돌려 업무를 보는 테이블 앞으로 갔다. 양희는 진료대에서 일어나 깊이 파인 티셔츠 위쪽으로 머플러를 둘렀다. 머플러를 두르고 겉옷을 입는 동안 방금 전 떠오른 이미지 때문에 배 멀미 때처럼 속이 좋지 않았다. 그 풍경이 강한 이미지로 자리를 잡은 지 꼭 십년이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눈을 감을 때 늘 떠오르는 장면은 출옥하면서 마주쳤던 바깥세상이었다. 틈만 나면 떠올리는 장면이니 재생 버튼에 시달리는 비디오처럼 화면이 낡고 희미해져야 마땅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뚜렷했다. 물론 교도소와 관련된 일도 손과 팔을 뒤덮은 흉터와 무관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모든 고통의 출발점은 흉터로부터였다.

“가슴은 흉터자국이 희미해 질 수 있지만 손은 재수술도 하더라도 완전한 모양을 갖기는 어렵지요. 다만 지금보다 훨씬 예쁜 손이 될 수 있을 겁니다.”

“ 네... 감사합니다.”

양희는 예쁜이라는 수식어를 속으로 되뇌며 손으로 턱을 문질렀다. 의사가 양희의 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왜, 이제야 수술을 결심하셨나요?”

의사는 삼십대 후반쯤 되어 보였는데 직사각형에 가까운 안경을 끼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저도 이젠 제 인생을 살아야할 테니까요. 과거에서 자유롭고 싶기도 하고요.”

양희가 얼굴을 들고 정색을 하면서 대답을 했다. 의사는 양희를 한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결심 잘 하셨습니다. 물론 일찍 하셨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흉터수술로 과거와 단절이 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마음의 상처를 줄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때로 어머니에 대한 증오심이 일면 젊었을 때와는 달리 감당이 되지 않았다. 갖가지 지병 때문에 약에 의존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어머니에게 화를 낸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괴로웠다.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의 생을 편안하게 해드리고 싶었고 양희 스스로도 안락한 노후를 맞이하고 싶었다. 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의자에서 일어났다.

 

2. 어린 시절

 

  자배기를 들고 나올 때만해도 멀쩡한 날씨였다. 갑자기 북서쪽 산 뒤쪽에서 구름이 무더기로 솟아오르더니 빠른 속도로 밀려오는 게 보였다. 삽시간에 시야가 뿌옇게 흐렸다. 눈보라였다. 바람 때문에 얼굴에 모래알처럼 달라붙었다. 새댁은 머리에 쓴 수건을 손으로 잡고 얼굴을 수그렸다. 반쯤 눈을 감고 있던 새댁은 괜히 물을 길러 나왔다는 생각을 했다.

거슬러 오는 바람 때문에 긴치마가 거추장스러웠지만 안에 입은 몸빼 바지를 내어 입고 싶진 않았다. 몸빼에다 수건을 쓰면 영락없는 촌부였고 몸빼에 스펀지를 집어넣어 만든 잠바라도 걸치면 오십대 중노인들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새댁은 빨간 스웨터에 청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청색치마는 우산에 쓰이는 천과 같은 나일론 재질이라 바람이 거의 통하지 않았다. 바람이 거셀 때 발을 떼면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게 되기 때문에 바람이 잠잠해진 틈을 타서 발을 움직이곤 했다.

505혼방 실로 짠 스웨터는 대바늘이 들락거린 자리에서 겨자처럼 톡 쏘는 바람이 들어왔다. 새댁은 자배기를 낀 채 몸을 잔뜩 웅크렸다. 새댁의 왜소한 몸이 마치 자배기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새댁은 자배기를 끼고 있는 오른 팔이 저려서 왼팔로 옮겨 끼웠다.

양철동이가 가볍고 좋기는 한데 아래쪽 테두리 부위에서 이슬비 오는 날의 처마 끝처럼 물이 똑똑 떨어지곤 했다. 함석 재질이라 맨 아래쪽 연결 부위에는 벌겋게 녹이 슬어 있었고 그 사이에 바늘귀만한 구멍이 생겼다. 원래 이웃에서 쓰던 헌 양동이였다. 고무신을 때우는 기술자인 남편이 두어군데 땜질해서 할 일 년 쓰다 보니 또 구멍이 났다. 이번에는 그 자리가 녹슨 부위였기 땜질을 하게 되면 둑처럼 무너져 버릴 수밖에 없었다. 밑바닥의 테두리는 굴렁쇠로 쓰면 알맞았고 몸통은 엿과 바꿔 먹을 계획이었지만 남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가락엿보다 엿판에서 뗀 엿의 맛이 훨씬 좋았다. 엿 생각이 나자 새댁의 걸음은 고양이처럼 가벼워졌다.

대신 새 양철동이를 살 때까지는 자배기를 써야만 했다. 앙고라 스웨터와 양철동이는 벼 타작이 끝나자마자 장만하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욕심에 지나지 않았다. 봄 가뭄 때문에 벼를 늦게 심었고 따라서 수확은 예년보다 못했다. 어쩌면 겨울을 지나는 것조차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빠듯한 생활이었다. 다시금 새댁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빽빽하게 들어찬 대숲은 몹시 소란스러웠다. 중간 중간의 어린 대는 부러질 듯 부러질 듯 휘어졌다가 일어나곤 했다. 이파리는 간헐적으로 휘파람 소리를 냈다. 새댁은 수건을 손끝으로 밀어 올리면서 대 숲을 바라봤다. 사이사이 스며드는 눈송이가 마치 개화를 보는 것 같았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대가 가을 옥수숫대처럼 말라 버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새댁은 눈을 꽃으로 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건을 잡았던 손이 시려 입술에 가져다대고서 입김을 뿜어냈다. 생각해보니 한심했다. 낮에 물을 길어다 놓았다면 굳이 눈보라를 뚫고 우물까지 가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입안에 있던 손가락을 빼내는데 서쪽하늘이 빤해지기 시작했다. 어이없다는 생각에 하늘을 쳐다보았다. 드문드문 날리는 눈송이에 석양이 비치고 있었다. 마치 붉은 꽃잎 같았다. 새댁은 머리에 두른 수건을 벗어 털면서 여우비처럼 지나가는 눈이라고 중얼거렸다. 마음이 느긋해졌다. 게다가 벌써 저녁준비를 해 놓았으니 천천히 물을 길어도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장에 갔던 남편은 주막에 가서 술이라도 한잔 걸치는지 아직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쑤어놓은 호박죽은 내일까지 먹어도 남을 분량이었다. 걸핏하면 호박죽을 쑤지만 남편도 싫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긴 목구멍에서 걸리는 조밥에 비하면 달착지근한 호박죽은 목구멍을 스르르 미끄러져 넘어가는 음식이었다.

놀기 좋아하는 새댁은 다음날 마실이나 돌 요량으로 방 윗목에 있던 호박 중 제일 큰 것으로 골랐다. 한 아름 정도 되는 크기였다. 낑낑대면서 수저로 껍질을 긁었다. 새댁은 숟가락 장단에 맞춰 연속극 주제가를 흥얼거렸다. 중간에 스피커에서 시간을 알리느라 삐 소리를 냈으니 한 시간 남짓 걸린 것 같았다. 양반다리를 하고 있어서 그 사이에 펼쳐진 치마폭에 톱밥처럼 껍질이 쌓였고 다리가 저려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가마솥에 물을 붓자 호박 조각이 나무토막처럼 둥실둥실 떠올랐다. 솥뚜껑을 덮고 새댁은 뒤꼍에서 장작을 안고 왔다. 솔가지로 불쏘시개를 하고 그 위에 장작을 얹었다. 장작에 벌겋게 불이 붙자 호박이 금방 물렀다.

부지깽이로 장작불을 뒤적여가며 주걱으로는 삶은 호박을 으깨면서 끙끙거렸다. 함지에 밀가루를 담고 물을 조금 부어 쓱쓱 비벼 솥에다 털어 부었다. 장작불을 약하게 해 놓고 삶아 으깬 호박과 비빈 밀가루를 섞어 주걱으로 휘휘 저었다. 새댁의 겨드랑이 밑은 끈끈해 지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죽이 다 쑤어지자 장작을 꺼내어 시궁창에 던져놓고 솥뚜껑을 열어 젖혔다.

저녁을 먹기 전 두어 번 물을 길러오면 일이 거의 끝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물동이를 챙겨들고 나온 길이었는데 여름 소나기를 만나듯 눈보라를 만난 것이었다. 말갛게 갠 하늘을 쳐다보고 있노라니 새근새근 자는 아기가 떠오르고 조바심이 쳐졌다. 걸음을 빨리 하고 싶었지만 눈길인데다 자배기를 옆구리에 끼고 있어서 조심조심 걸어야했다. 눈이 많이 오면 농사가 잘된다하니 차라리 눈이나 많이 왔으면 싶었다.

우물에 간 새댁은 아차 했다. 두레박을 잊고 왔던 것이다. 물 길러 오는 사람을 기다리다보니 바람이 얼굴을 연신 스치고 지났다. 눈은 그쳤지만 고춧가루가 섞인 것처럼 칼칼한 바람이었다. 새댁의 코끝은 새빨갛게 얼었다. 제법 시간이 흘렀는데도 물을 길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던 새댁은 아무래도 두레박을 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댁은 종종 걸음을 쳐 우물곁의 재호네 집으로 들어갔다.

지붕에 기와가 얹혀있는 그 집은 벽에 회칠이 되어있고 기역자 형태였다. 안방에 딸린 부엌이 유난히 커서 깊은 동굴처럼 말이 울릴 정도였다. 재호네가 시집오면서 시부모는 광 옆의 사랑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집의 건넌방은 책꽂이가 놓인 책상 하나만 있고 비워 둔 상태였다. 방 한 칸 부엌 한 칸 밖에 되지 않는 새댁네의 초가집에 비하면 그 집은 구중궁궐이나 마찬가지였다. 재호네는 처마를 함석으로 빙 둘렀지만 새댁의 집은 비오는 날이면 지붕 끝에서 빗물이 그대로 떨어졌다. 집을 쳐다보던 새댁은 다리의 힘이 스르르 빠졌다. 새댁은 함석 두레박을 향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잠깐 빌려 쓰는 거라 재호네에게 얘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두레박은 나일론 새끼줄에 돌돌 감긴 채 장독대의 모서리에 반쯤 누워있었다.

“두름박 쓸랑 갑네?”

재호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손이 딱 먹었다.

“아따 토끼눈을 하기는... 내 말이 커서 놀래 부렀당가?”

오년인가 먼저 시집을 왔지만 재호네는 새댁보다 겨우 두 살 더 많았다. 하지만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다.

“물 한 독아지면 될 것잉께 말 안 허고 쓸락했는디...”

새댁이 구정물을 텃밭 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도랑으로 내던지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새댁은 주머니가 달린 옥양목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아참... 찐 고구마라도 먹고 가소잉.”

“아니여.”

사래질을 치면서도 새댁은 재호네를 뒤따르고 있었다. 부엌을 통해 안방으로 들어갔다. 부잣집 며느리답게 그 집에는 자개 화장대도 있었다. 크림 로션과 두 개의 루주가 나란히 세워져 있고 꽃무늬가 그려져 있는 분갑도 놓여 있었다. 호기심에 분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았다.

“장미꽃 냄새가 날것이구만.”

스테인리스 양푼에 고구마를 담아오던 재호네가 새댁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장미꽃?”

“암만.”

새댁은 그런 꽃도 있나싶었지만 되묻진 못했다. 분갑을 닫으면서 익숙한 냄새라는 생각이 들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찔레꽃에서 나던 향내이었다. 장미꽃은 생소한 이름이었다. 화단에는 봉숭아나 맨드라미를 심는 게 고작이었고 들이나 야산에는 해마다 같은 꽃이 반복해서 피기 때문에 장미라는 꽃을 본적이 없었다.

또래인데 재호네는 아는 게 많았다. 하긴 재호 아버지는 군청에 다니는 공무원인데다 재호네는 중학을 졸업했다. 따지고 보면 언문을 깨치지 못한 자기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재호네가 분갑을 열어 스펀지로 새댁의 얼굴을 두어 번 꾹꾹 눌렀다. 꽃향기가 방안에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새댁은 상황을 까맣게 잊고서 재호네와 노닥거렸다.

창호지 문을 통해 들어오던 빛이 점점 붉은 색으로 변했다. 밝았던 방에 갑자기 어둠이 내렸다. 재호네가 등불을 켜려고 성냥을 긋자 옆에 서 있던 새댁의 눈앞에 죽솥이 불쑥 나타났다. 새댁은 껍질을 돌려 벗기던 고구마를 양푼에 놓아 버리고 벌떡 일어섰다. 조금 전에 먹은 고구마 때문에 생목까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뭔 일이 있당가?”

“아녀...너무 늦어 부렀구만.”

불빛 사이로 바라보는 재호네의 눈이 따가워 재빨리 등을 돌리고 부엌문을 밀었다. 새댁은 허겁지겁 우물로 왔다.

우물이 깊어 줄을 내리고 또 내려도 두레박이 물에 닿지 않았다. 물 한 두레박을 퍼 올리는데 평소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힘겹게 두레박을 다섯 번인가 끌어 올려 물을 붓자 자배기의 시울까지 물이 찼다. 물위에 띄울 바가지로 한번 퍼 내어버리고 가장자리를 손으로 한 바퀴 돌려서 물을 닦아 내였다. 토관 가장자리에 자배기를 올려놓고 재호네로 달음질쳤다.

두레박을 재호네 장독대에 놓으면서 넘어질 뻔했기 때문에 와그르르 소리가 났다. 식사시간이었는지 딸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아무도 내다보지 않았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물동이를 이고서 천천히 걸음을 놓는 새댁은 그저 남편이 이미 돌아와 있길 바랐다. 마음이 급해도 눈이 깔린 길이라 황소걸음을 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아슴푸레한 시간이었지만 눈이 깔려 길은 환했다.

장날이면 남편은 항상 주막을 거쳐서 왔다. 아랫마을과 사이에 삼거리가 있고 그 부근에 몇 집이 흩어져 있었다. 삼거리에 바짝 붙어 있는 주막은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 거쳐 가는 곳이었다. 술꾼들은 그저 술만 들어가면 느긋해 지는 것 같았다.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짜증이 나면서 발걸음이 거칠어졌고 작은 돌이 고무신의 코에 살짝 걸렸다. 몸이 약간 흔들리면서 물이 넘쳐서 콧등을 적시고 턱에서 목으로 흘러내렸다. 내복까지 젖어들자 발걸음에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물은 조금씩 넘쳤다.

싸르락 싸르락 눈 밟히는 소리조차도 귀에 거슬렸다. 대숲을 지나는데 바람에 잎끼리 부딪는 소리가 귓속을 굴러다니는 귓밥처럼 성가시게 느껴졌다. 아직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릴만한 위치가 아니었지만 새댁은 귀를 기울여보기도 했다. 탱자 울타리 곁을 지날 때까지도 집은 침묵을 지켰다. 사립문을 들어서는데 숨이 넘어 갈 듯 자지러지는 아기 울음소리가 났다. 벼린 칼끝처럼 날카로운 소리였다.

“엄마야!”

새댁은 치마를 밟고 미끄러지면서 외마디 소리를 냈다. 새댁보다 자배기가 먼저 나가 떨어졌고 새댁도 고꾸라졌다. 자배기는 여러 조각이 났지만 새댁은 무릎만 약간 아팠다. 물을 먹어 미끄러워진 눈 위에서 버둥거리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부엌 앞으로 갔다. 부엌을 쳐다보니 새까만 어둠속이었다. 아궁이의 재 틈에서 불빛이 반딧불처럼 내다보였다. 울음소리를 향해 팔을 저으면서 다가간 새댁은 호박죽 솥 앞에 엎드려있는 희끄무레한 아기를 보았다.

오메 오메 내 새끼야. 내가 죽일 년이지. 해찰을 부린 내가 미친년이지. 중얼거리면서 불을 켤 시간도 없이 아기를 안았다. 밖으로 나와 한 손으로 스웨터를 벗어 아기를 감쌌다. 아기를 한 팔에 끼고 남포등에 불을 켰다. 바가지에 물을 가져와 아기의 팔에 끼얹었다. 아기는 버둥거리며 엄마, 엄마를 불러댔다.

새댁은 엎어져 있는 다라를 뒤집어놓고 아기를 앉혔다. 살강 안쪽에 있는 소주병을 꺼내었다. 한 되들이 병에 반쯤 담겨 있었다. 바가지의 물을 버리고 소주를 부어 아기의 팔을 담갔다. 내복의 단추를 끄르고 가슴의 중간 부분에도 소주를 발랐다. 그러는 사이 새댁의 옷 여기저기에도 호박죽이 묻었다. 바깥으로 나와 조심조심 내복을 벗기자 빨간 팔이 드러났다.

팔과 가슴에 들기름을 듬뿍 발랐다. 방으로 들어가 들기름을 바른 팔에 기저귀를 찢어 감았다. 가슴도 기저귀를 감고 옷을 입혔다. 아기는 까르륵까르륵 숨 넘어갈듯 울었다. 수습을 하고 나자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태는 아닌 듯 했다. 새댁은 가마솥의 죽을 어떻게 할까 하고 망설이다가 아기가 손을 짚으면서 휘저어 놓은 부분만 떠내 버렸다.

아기는 물에 씻고 소주에 담가서 팔의 화기는 그런대로 빠진 것 같았지만 이마가 불 덩이었다. 새댁은 다음날 꼭 한번 아기를 병원에 데리고 가고 말았다. 의사는 패혈증이니 뭐니 하는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를 하면서 입원 시키라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쌀과 보리를 팔아 병원비로 쓰면 겨울 내내 고구마와 조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봄이 오기 전부터 멀건 죽을 먹어야 할 게 뻔했다.

남편이 곡식을 팔아 병원에 몇 번 더 다니고 함께 가마니를 짜자고 새댁을 구슬렸다. 태어 난지 여덟 달이나 된 딸이 잘못되면 어쩔 거냐고 협박도 했지만 새댁은 죽으면 죽었지 그런 일은 못한다고 완강하게 버텼다. 제 풀에 꺾인 남편은 건넌방으로 들어가 날마다 새끼만 꼬았다.

다행이 감기는 약을 먹이자 곧 나았다. 상처 부위에는 읍내 약방에서 사온 약을 바르고 그 위에 거즈를 덮었다. 가슴의 상처는 죽이 튄 모양을 따라 고름이 약간 배었다가 계속 약을 바르니까 아물기 시작했다. 팔은 기저귀를 감아 두었다가 다시 풀어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팔은 상처가 덧났지만 겨울이라서 고름 나는 부위가 줄어들면서 조금씩 아물어 갔다. 팔이 좀 구부러지고 손도 오그라져 있었는데 상처가 아무니까 새댁 눈에는 별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아기는 약을 바른 후 그 위에 기저귀를 되감을 때마다 우는 소리는 냈지만 금방 그치곤 했다. 열흘쯤 되자 기저귀를 풀었다 되감았다 하는 것도 귀찮아졌다. 게다가 약값도 만만치 않아서 한 번 더 약을 바른 다음 기저귀를 감고서 그대로 두어버렸다.

가끔씩 배이던 고름이 싹 가시면서 아기는 언제 데었냐는 듯이 젖도 잘 빨고 잘 놀았다. 상처도 아물었을 것 같고 기저귀가 지저분해져서 빨아야겠다고 풀었을 때 새댁은 바짝 오그라진 팔과 공처럼 둥근 손을 보았다. 천을 감은 날로부터 한 달 만이었다. 기저귀 천을 팔꿈치부터 손가락 끝만 남겨두고 감아 둔 탓이었다. 차일피일하다 감은 천을 늦게 푼 탓도 있었다. 팔을 펴려고 주무르자 아기가 새파랗게 질렸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기저귀를 풀던 날 새댁은 병신자식의 앞날이 답답해서 뒤꼍으로 갔다. 눈시울을 문지르고 있으니 갑자기 헛구역질이 나왔다. 달거리를 떠올려보니 임신임에 틀림없었다. 이왕지사 아들이었으면 싶었다. 병신이 된 딸이야 제 팔자려니 생각하면 되는 것이고 새로 태어난 자식을 잘 기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뒤꼍을 돌아 나오는데 보리밭에 한 번 더 호미질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조금 더 있으면 볍씨도 담가야 했다. 본격적인 농사철로 접어드는 계절이었다. 농사일을 생각하니 미리부터 진저리가 쳐졌다. 딸아이에게 신경 쓸 겨를이 있겠느냐는 생각을 했다. 이름이나 지어 호적에 올려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해 여름에 아이는 호적에 이름이 올라갔다. 서당 훈장을 했던 이웃 할아버지가 어질고 예쁘게 자라라고 양희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양희는 창고 마당 한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서 둥글게 돌아가는 다른 아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노란 저고리에는 빨간 고름이 달려있고 빨간 저고리에는 노란 고름이 달려 있었다. 아이들의 치마와 옷고름이 가을바람에 펄럭거렸다. 몇몇 아이들이 입은 색동저고리는 달빛 아래서도 고왔다.

달빛이 닿으면 한복은 빛깔이 더욱 신비해지는 것 같았다. 나부끼는 옷자락만 보아도 저절로 흥이 났지만 곧 속울음으로 변하곤 했다. 아이들 틈에 끼지 못하는 건 한복 때문만은 아니었다. 저고리 치마를 입지 않은 애들이 반수 이상이었다. 양희는 손등으로 눈과 코를 몇 번이나 훔쳤다.

“구정물 통에 호박씨 떴다. 강강수월래. 대밭에는 대도 많다. 강강수월래. 솔밭에는 솔도 많다. 강강수월래.....”.

양희는 아이들이 일으키는 치맛바람에 밀려 창고 그늘에서 벗어나버렸다. 이젠 더 울 수도 없었다. 양희는 흘러나온 코를 훌쩍 들어 마시고는 하늘을 쳐다봤다. 달빛은 눈이 시릴 정도로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다. 제 손을 낫게 해주세요, 달님. 양희는 일어나서 치마로 허벅지를 꼭 싼 다음 다시 쪼그리고 앉았다. 몇 군데 구멍 뚫린 팬티 안으로 바람이 술술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재작년에 사준 팬티는 두 장 다 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나 있었다. 한 장은 구멍이 난지 오래여서 헝겊을 대고 꿰매었는데 겨울이면 그 자리에 서캐가 슬곤 했다. 정수와 남수는 여름이면 삼베 셔츠와 무명 반바지를 입고 지냈다. 막내 인수와 남수는 양희와 정수에게 물려받은 바지를 입고 지냈다. 기저귀를 차는 대신 가랑이가 터진 바지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두 동생들은 아예 팬티 없이 지냈다. 두 살에 호적에 올랐던 양희와는 달리 막내까지 호적에 등재되어 있었다. 남동생들은 낳자마자 아들이라고 큰댁에서 돌림자를 넣어 이름을 지어왔기 때문이었다.

 장마철에는 기저기가 잘 마르지 않아  막내 인수의 몸에는 고무줄 하나만 달랑 매져 있기도 했다. 양희는 세는 나이로 7살이었지만 인수를 업고 다닐 만치 성숙한 아이였다.

봄 내내 양희는 인수를 들쳐 업은 채 양지바른 밭둑에서 쑥을 캤다. 때론 논둑에서 무더기로 자라난 자운영을 캐기도 했다. 자운영은 잠깐 새에 바구니에 그득 차기 때문에 아이를 등에 매달고 뜯어도 고달프지 않았다. 바구니를 들고 일어 설 때쯤 양희의 등은 범벅된 콧물이 반쯤 말라 있었다.

아버지는 땜장이 노릇을 하면서 천수답 세 마지기를 부치고 있었지만 여섯 식구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천수답은 조금만 가물어도 농사를 망치기 일쑤였다. 설상가상으로 점점 흰 고무신을 신는 사람이 늘어났다. 흰 고무신은 때워 신는 신발이 아니었다. 농촌에서는 아직까지도 검정고무신을 신는 사람이 있었지만 읍내에 나가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흰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재 너머에 있는 댓 마지기의 비탈진 밭은 수확이 얼마 되지 않았다. 해마다 어머니는 마른땅에서 잘 자라는 조와 콩 그리고 고추를 심었다. 맨 아래쪽으로는 깨를 심고 밭 가장자리에는 팥과 녹두를 빙 둘러 심었다. 짧은 여름밤 내내 어머니의 입에서는 앓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머니의 호미질이 얼마나 느리던지 마을 아낙들이 품앗이를 꺼려했다. 조밭은 서너 차례 매어야 하지만 게으름 때문에 여름이 다 가도록 한차례 매면 그만이었다. 수확을 할 때쯤이면 조밭은 풀이 까치집을 짓고 있었다.

아버지는 주막에서 시간을 때울지언정 밭을 매는 일은 하지 않았다. 마을 남정네들은 부엌에 들락거리면 불알 떨어진다는 말을 했고 밭 매는 일은 체신머리가 없다했다. 마을 정자는 여름 내내 남자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아버지가 마을 정자에서 여름의 긴긴 하루를 보내면 어머니는 불만이 극에 달했다. 어머니는 밤이면 곰팡내 나는 손을 어따 대냐는 앙탈을 부리곤 했다. 논의 피사리를 두세 번하고 농약 통을 몇 번 짊어지면 여름을 나니까 아버지 손에는 곰팡이가 슬만도 했다. 마을 정자의 나무 턱은 남자들의 두피에서 흘러나온 기름에 반질거렸다.

예년에 비해 음력이 빨라서 아직 단감은 푸릇푸릇했고 사과도 신맛을 냈다. 추수가 아직 멀어 올벼도 귀했다. 묵은 쌀로 송편을 만들어야하고 햇밥을 먹기도 어렵겠다고 어머니는 투덜거렸다. 그러다보니 약속되어있던 흰 고무신도 얻어 신지 못했다. 아버지는 양희와 동생들에게 나일론 양말 한 켤레씩 사준 것이 고작이었다. 빨간색 새 양말은 추석에 신어야 하기 때문에 양희는 맨발이었다. 걸을 때면 고무신이 커서 헐떡거렸다. 양희의 신발은 남동생에게 물려 신길 수 있는 검정 통고무신이었다.

아이들 이름을 하나씩 차례차례 중얼중얼 불러 보았다. 옥자야. 금순아. 정님아...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안중에는 양희란 아예 없었다. 양희는 다시 한 번 달을 쳐다봤다. 달님, 저 애들이 나랑 놀게 해 주세요. 어느새 양희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달빛에는 푸른 기운이 서렸다. 양희의 몸만 달빛에 갇혀버린 것 같았다. 두려운 마음에 숨을 계속 몰아쉬었다.

양희는 바람이 약간 빠진 공처럼 말랑한 왼손으로 눈을 문질렀다. 물기가 묻은 손등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주먹을 쥘 수 없는 그 손은 피부가 미끈거렸다. 공처럼 생긴 손등과 손바닥, 거기에 붙은 다섯 손가락 모두가 몽당연필처럼 짤막짤막 했다. 그나마 두 마디씩 밖에 되지 않는 손가락이 기역자로 구부러져 있었다. 양희는 왼손을 가슴 부근에 대고 오른손으로 감쌌다.

밤이 이슥할 때까지도 아이들은 양희를 끼워 주지 않았다. 네 손은 징그러워. 손등 좀 봐. 뱀 껍질 같지. 손가락은 꼭 자라 발처럼 생겼어. 양희는 멈춰 선 아이들이 지껄이는 소리에 왼손을 치마로 둘둘 감았다.

야! 너 구멍난 빤쓰 입었지? 노란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쪼르르 달려와서 몸을 구부리더니 쪼그려 앉은 양희 다리 사이를 들여다보았다. 아니야! 양희는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서쪽 하늘로 기울기 시작한 달이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나풀거리는 치맛단 끝을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샛길로 도망쳤다. 어디선가 승냥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무섭고 소름이 끼쳤다. 양희는 치마를 뒤집어쓰고 그 길에서 빠져나와 집을 향해 달렸다.

 

   대보 둑에서부터 양희는 들을 가로 질러 뛰었다. 고개를 숙인 벼이삭이 스치면서 종아리가 따끔거렸다. 발소리에 벼 틈에 있던 참새들이 포르르 날았다. 가지가 빽빽이 들어 찬 탱자나무에는 누릇누릇한 탱자가 매달려 있었다. 가시나 잎은 아직 짙푸른 빛깔을 띠고 있었다. 마당에서 넘어온 호박넝쿨의 더듬이가 탱자나무를 휘감고 있었다. 호박 한 덩이가 떨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탱자나무 안쪽으로 짚 울타리가 되어있어 집안이 들여다보이진 않았다. 양희는 걸음을 늦추었다.

“아부지... ”

양희가 짚 울타리 끝에 붙어있는 사립문을 붙잡으면서 소리쳤다. 작년 가을걷이가 끝나고 아버지가 엮은 사립문이었다. 망태 같은 건 곱게 만드는 솜씨이면서도 사립문은 엉성한 느낌이었다. 사립문은 부분부분 푸른 빛깔을 띠고 있었다. 아버지가 쳐다보지 않자 양희는 사립문을 잡고 흔들었다. 반쯤 말라 오그라든 댓잎이 우수수 떨어지면서 소방울이 딸랑거렸다.

“얼렁 들어가서 밥 묵어라.”

아버지는 일에 열중하느라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손끝에 시선을 박고 있던 정수도 양희를 힐끗 쳐다보고는 그만이었다. 양희는 사립문을 놓고 헛간채 벽을 따라가다 마당으로 들어섰다. 장작불은 시나브로 타고 있었지만 작은 드럼통에서 흘러나오는 고무 냄새가 역했다. 드럼통안의 껄쭉한 액체는 연탄처럼 검은 빛깔이었다. 양희는 책보를 등허리에 멘 채 엉덩이를 쳐든 자세로 드럼통 밑을 핥는 불을 바라보았다. 불은 무엇이든 날름날름 삼키는 두꺼비의 혓바닥 같았다. 정수가 부지깽이로 장작을 쑤셨지만 중천에 머무는 해 때문에 불빛이 제 색을 잃고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있는 정수는 코밑과 입 주위에 검댕이 발라져 있었다.

“정수 데꼬가서 낯바닥 좀 시쳐주고 밥 묵어라잉.”

인중의 검댕이 자국 사이로 누런 코가 오르내리는 걸 쳐다보던 아버지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했다. 가을이지만 햇살이 뜨거웠고 연기가 주위를 맴돌았다. 양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헛아궁이 근처에 흐트러져 있는 검정고무신을 바라보았다. 때워 신기 위해 맡긴 것이지만 대밭에 던져버려도 시원찮을 물건이었다.

양희는 대밭에 들어가 병조각이나 고무신 쪼가리를 줍곤 했다. 양희가 고무신 쪼가리를 찾는 건 땜질 때문에 아니라 엿을 바꿔먹기 위해서였다. 엿으로 바꿔봐야 동생들과 나누면 알사탕 하나만도 못했지만 엿장수가 엿가락을 집어 들 때까지의 시간이 꽤 긴장이 되기도 했다.

양희는 아버지가 때운 몇 켤레 고무신을 가지런히 놓았다. 고무신의 땜 자국도 화상의 흉터처럼 보기 흉했다. 아버지는 꽤 오랫동안 같은 일을 반복해왔어도 때운 자리는 항상 울퉁불퉁했다. 아버지의 손에도 고무신 땜질 수만큼이나 자잘한 흉터가 늘어났다. 아버지는 양희의 왼손을 곁눈질하다 소리를 쳤다.

“아, 불 젙에 있들 말고 들어가란 말이여.”

양희는 정수를 잡아끌고 세숫대야가 놓인 부엌 앞으로 갔다.

 

     “내가 왜 애깃보를 묶은 줄 아요?”

서울 바람이 든 어머니의 채근소리에 양희는 잠이 깨었다.

“임자 맘을 나도 안당께. 허지만 거시기..”

“거시기는 뭔 거시기여. 이것이 사람 사는 꼴이여? 방을 한번 돌아 보랑께.”

지푸라기를 비비던 아버지는 뒤를 힐끗 돌아 봤다. 윗목은 고구마 가마니와 벼 가마니가 차지하고 있었다. 달랑 이불하나 펴면 되는 크기의 방이었다. 등잔불 하나로는 어둠을 밀어내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문틈으로 새어든 바람 때문에 호롱불이 눕혀졌다 일어나곤 했다. 등잔 밑은 바깥만큼 검은 빛깔을 띠고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조차 일렁거렸다. 앉아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그림자는 맞닿아 있는 양쪽 벽으로 날아 다녔다.

아버지는 엉덩이의 뒤쪽으로 빼낸 새끼줄 똬리를 들어 묶었다. 벼 가마니에 얹힌 새끼줄 똬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채근했던 시간이 길었다는 증거였다. 양희는 손때가 묻은 이불자락 끝에 턱을 대고 어머니 아버지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들볶이기 시작한지 벌써 두 달 째였다. 아버지는 힘이 쭉 빠진 사람처럼 벽에 몸을 기대앉았다. 천수답 서너 마지기 부쳐 먹는 아버지가 반반한 어머니에게 장가들 수 있었던 건 시골에서 몇 년 살다 서울로 간다는 조건 때문이었다. 어찌 생각하면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이었다.

얼마 전 우물가 재호네가 분가를 하면서 읍내로 이사를 하자 어머니는 아버지를 더 볶았다. 양희가 아기였을 적에도 툭하면 집을 나가곤 하는 어머니는 며칠 전에도 친정 갔다 온다며 사흘 만에 들어왔다. 아버지가 서울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어머니는 아예 집을 나가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양희의 눈은 점점 말똥말똥해졌다.

“도시 생활을 녹녹하게 보진 말란 말여. 아, 여그서는 부지런만 하면 아이들을 중핵교 정도는 공부 시킬 수 있지 않느냔 말여. 샛굴 갑술이 아재는 서울 가서 자식 중핵교도 못 보내고 공장에 다 보냈다등만.”

아버지는 어머니를 설득시키느라고 갑술이네 까지 들먹였지만 마음이 붕 떠 있는 어머니가 먹혀들 리 만무했다.

“당신이 고무신을 때우면 되잖소.”

“서울 사람이 고무신을 때워 신는 줄 알어? 촌사람들 중에도 가난뱅이나 땜질해서 신제. 글고 서울 사람들은 껌정 고무신 안 신는단 말여. 촌에서도 빌어묵고 사는 사람들이나 껌정고무신을 신는디.”

“그러니까 껌정고무신 신는 우리는 빌어 묵고 산단 말 아녀. 말 잘했네. 촌에서는 들논 한뙤야지기도 없으면 빌어묵기 딱 알맞제. 그 말이제라?”

어머니는 아버지 말꼬리를 붙잡더니 물고 늘어졌다.

“뭘 안다고 그려. 없는 사람은 촌이 낫다고 허드란 말이시.”

“고생은 서빠지게 허고 당최 남는 건 없는디 뭔 똥고집인가 모르겄구만. 알아서 허쇼이. 정 그러면 혼자라도 서울 갈텡게. 당신은 애들허고 살아 보란 말여!”

어머니는 당장 보따리라도 쌀 것처럼 주변에 있는 것들을 주섬주섬 집어서 한곳으로 모으더니 그 자리에 누워 버렸다. 아버지는 봉초가 담긴 나무 상자를 끌어 당겼다. 주머니에서 한지를 꺼내어 담배를 말아 침을 발랐다. 담배 연기를 따라 아버지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연거푸 빨아서 담뱃불이 손가락에 닿을 지경이었다. 양희는 오줌이 마려운 것처럼 다리를 오그리면서 이불을 끌어당겼다. 아슬아슬하다 싶을 때쯤 아버지는 찌그러진 양은 재떨이에 대고 담배를 눌렀다.

양희는 등잔불을 앞에 두고 멀거니 앉아 있는 아버지가 마음의 결정을 내렸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턱수염이 무성하게 자라서 더 말라 보였다.

마을의 아이들은 서울이 좋다는 말을 했지만 양희는 두려운 생각뿐이었다. 비누처럼 미끈대는 손등과 바닥을 오른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병신이라는 낱말을 떠올리자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때 어머니가 돌아보며 고함을 쳤다.

“조막만한 년이 먼 한숨이여?”

양희는 이불을 이마까지 당겨 덮고서 자는 체 했다.

 

   서울로 이사 오던 날은 온 식구가 구루마를 타고 움직였다. 해가 긴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이월초의 이른 아침이었다. 마을 사람들 몇몇이 인사를 하러 마을 정자에 나와 있었다. 살을 콕콕 찌르는 추위였기 때문에 일부러 나왔다고 봐야 옳았다. 얼마 전 점수네가 떠날 때와는 달리 마을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하긴 점수 아버지는 한동안 도박에 미쳤었고 전답을 날렸기 때문에 양희네와는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구루마에서 내리자 정자 가장자리에 앉아 있던 몇몇 사람도 일어섰다. 당숙이 쳐다보자 양희는 구루마 가장자리를 손으로 잡고 폴짝 뛰어내렸다.

“날씨까지 칼칼해서 아그덜이 고생이겄다. 그나저나 금의환향 해야쓴다이.”

오촌 당숙이 가다듬은 목소리로 말했다. 귀까지 덮이는 털모자를 쓴 당숙은 털신을 신고 있었다. 들 논을 스물 댓 마지기나 갖고 있는 당숙은 마을에서는 제일 부자였다. 최근에는 겨울이 되면 털신을 신는 사람이 늘었고 다른 계절에도 검정고무신은 들에 갈 때나 신는 신발이었다. 검정고무신의 사용량이 줄었다는 뉴스를 들었다는 아버지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마을 어른들 중 검정고무신을 신은 사람은 딱 하나였다. 양희는 마을사람들의 신발을 곁눈질하면서 차라리 서울로 가는 게 다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말로 인사를 했다. 당숙이 양희 앞에 백 원짜리 지폐를 두 장 내밀었다. 양희는 손을 내밀다가 얼굴이 붉어졌다. 두 손을 내밀어야 했지만 오른손만 불쑥 나가는 버릇이 있어서였다. 먼저 나가는 오른손 옆에 왼손을 살그머니 붙이면서 양희는 주춤거렸다.

“돈 벌면 젤 먼첨 수술이나 해주그라. 참한 가시낭년을...쯧쯧...”

당숙이 양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당숙 말에 아버지가 손바닥으로 코를 쓱 닦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따 모다들 고맙구만이라... 성님 열심히 살아보겄소.”

머리를 잠깐 숙이고 있던 아버지는 천천히 구루마에 올라 앉았다. 아버지는 고개를 뒤쪽으로 돌려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어머니가 궁상맞다며 살림을 많이 버렸지만 싣고 가는 물건도 대부분 꾀죄죄했다. 소가 발을 뗄 때마다 구루마가 좌우로 흔들리면서 삐거덕 소리를 냈다. 구루마도 살림살이만큼 낡았고 소도 나이를 먹어 뿔의 빛깔이 거뭇거뭇했다. 양희는 구루마와 살림을 훑어보다가 아버지처럼 소 엉덩짝을 바라보았다. 간혹 소똥이 참외만한 크기로 항문에서 밀려나오곤 했다. 고개를 빼어 뒤를 돌아보니 접시처럼 납작한 똥이 줄줄이 땅에 놓여있고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집에 들어가버린 모양이었다.

인수와 남수는 카시미론 이불로 몸을 감싼 상태였다. 역까지 가려면 한 시간 남짓 걸릴 것이기 때문에 다들 옷을 겹겹이 껴입었다. 양희는 다우다 잠바 속에 스웨터를 입어 몸은 추운 것 같지 않았지만, 손끝과 검정고무신 안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발가락이 시렸다. 양희는 신발을 벗어 옆에 놓고 이불로 파고들었다.

“아... 신발 챙겨. 잃어 불면 서울이고 뭣이고 다 소용 없는 기여. 땡땡 언 땅을 맨발로 다닐 것이여?”

양희에게 핀잔을 주는 어머니는 활짝 핀 얼굴이었다. 어머니가 목에 두른 긴 목도리는 스웨터를 풀어 짜서 여러 가지 색이 뒤섞여있었다. 게으른 어머니였지만 겨울이면 뜨개질을 해서 스웨터를 만들기도 했고 목도리를 짰다. 어머니는 간혹 물건들을 뒤적거렸다.

“아따 길바닥이 찔꺽찔꺽 하구마이라. 당최 구루마가 앞으로 나가덜 못한당께요.”

“삼월이나 와야 고실고실 해질테제라. 여그쪽은 응달져서 오월 볕에나 마를까 모르겄네.”

소 엉덩짝을 가죽나무 가지로 탁탁 치던 방앗간 도꾸총각 말에 어머니가 재빨리 대꾸를 했다. 구루마는 가을걷이가 끝날 무렵에 자주 쓰였고 이른 봄부터 망종이 되기 전까지는 쓰임새가 많지 않았다. 고용살이였지만 도꾸총각은 삯을 받고 농사일도 거들곤 했다. 그 총각이 도꾸라는 별명을 얻은 데는 싱거운 사연이 있었다. 방앗간의 개 이름이 도꾸였는데 그 개가 주인 내외보다는 총각을 유난히 따랐다.

“눈이 푸지게 와서 올 농사는 풍년이겄어.”

아버지는 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천수답 몇 마지기를 팔면서 못내 서운해 하던 아버지였다. 저수지 아래 논은 가뭄에도 그럭저럭 수확이 있었지만 산자락에서부터 내리막길로 줄줄이 이어진 계단식 밭 아래에 용머리 모양으로 누워있는 논은 봄 가뭄만 들어도 수확이 반으로 줄어들곤 했다. 한 삼년 내리 가뭄이 들면 모래땅처럼 말라 밭으로나 쓰면 딱 알맞을 땅이었다. 그래도 그 논을 혼자 힘으로 장만했기 때문에 항상 뿌듯한 마음이었다. 논 여기저기에 섬처럼 눈이 깔려있었다. 보리를 심어 놓은 논이 많아서 흰색과 녹색으로 얼룩무늬를 그려 놓은 것 같았다.

이월 볕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보릿고개 때의 끼니 같았다. 도무지 온기가 없어 어머니와 아버지도 코끝이 빨갰다. 이불을 덮어쓰고 있던 인수는 잠들었고 남수도 졸고 있었다. 정수도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양희는 아버지의 시선을 따라서 들을 보다 산자락을 훑어보았다. 산비탈의 양지바른 밭에서 어슬렁대던 자투리가 구루마 바퀴 소리에 푸드덕 날아올랐다. 아버지는 보리가 남아나지 않겠다며 혀 차는 소리를 냈다.

가을철에 나락 가마니를 쌓았을 때와 비교가 안 되는 무게인데도 소는 걸음을 늦추곤 했다. 소가 입김을 허옇게 뿜어내면 도꾸총각은 굼벵이처럼 움직인다는 중얼거림과 함께 손에 쥔 나뭇가지를 쳐들었다. 도꾸총각이 그런 동작만 취해도 황소는 잽싸게 발을 뗐다.

역에 다다르자 어머니 아버지만 구루마에서 내려 큰 짐은 수화물로 부쳤다. 짐을 부치는 동안 동생들은 양희가 지켰다. 짐 곁에 있으면서 살림을 둘러보니 마치 피난민 같았다. 그래도 그 시점까지는 추억이라 할만 했다.

 

3. 서울 살이

 

   어머니 아버지가 얻어놓은 집은 번듯한 주택가를 지나고도 20여분이나 언덕을 올라가야했다. 쓰레기가 뒹구는 공터를 몇 번이나 지나자 허름한 집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사이사이 슬래브 식 이층집들도 눈에 띄었는데 조금 더 올라가자 촘촘하게 들어선 집들이 시야를 가로 막았다. 언뜻 촌락 같은 구조였다. 대부분 바람만 세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은 낡은 가옥들이었다. 폐품 처리장에서 주워 달았다고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양철대문 앞에 아버지가 걸음을 멈춰 섰다. 양희는 낙서와 벽보로 더러워진 벽을 쳐다보았다. 벽 앞쪽으로는 연탄재가 뒹굴고 있었고 쓰레기를 담은 비닐봉지가 쌓여 있었다.

“아따 오늘 보니까 낮은 서까래에다 채알을 쳐서 귀신 나오겄구만.”

아버지가 집을 쳐다보면서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대문이 걸려있지 않아서 아버지는 대문을 확 젖혔다. 오른쪽으로 개집이 있었지만 찌그러진 양은그릇이 엎어져 있었고 쇠줄만 보였다.

“비 안들이 치라고 채알을 쳐서 그렇제. 요러코롬 해놔서 겨울에 따땃할 것이요이.”

서울타령에 젖어 있었던 어머니가 집을 옹호하는 말로 응수를 했다. 왼쪽 담 벽을 따라 연탄이 쌓여 있었다. 지붕에 덧댄 파란색의 비닐 천 때문에 마당에 나와 있는 몇 가지 물건들이 제 빛깔을 잃고 있었다. 어둡고 칙칙해서 양희는 눈을 깜빡거렸다. 막내는 손가락을 입에 문채 어머니 치마폭에 등을 바짝 붙이고 섰다. 어머니 아버지는 우선 짐을 마당에 놓았다. 아버지가 미닫이 방문을 탁탁 두들겼다.

“지겠소?”

“아따 그렇게 말하면 못 알아 묵는당께. 계신가요? 라고 해야제.”

바깥이 소란스러워서였는지 누군가가 미닫이를 반쯤 열었다. 머리가 하얀 노인이었다.

“누구요?”

“옆방에 세들 사람인디요.”

“할멈은 나갔는데. 방으로 가 보시요. 열쇠는 채워져 있지 않을 것이요.”

“예”

“아참 빨리 불부터 넣으시요. 연탄 들여서...”

노인이 문을 닫으려다 말고 말했다. 식구들은 아버지 뒤를 따라 일렬로 늘어섰다. 벽을 따라 비좁게 통로가 나 있었고 벽을 지나자 미닫이문이 나타났다. 방은 시골방의 크기와 비슷했다. 비워 둔지 오래 되었는지 퀴퀴한 냄새가 났다. 방에서 부엌 쪽으로 자그마한 문이 나 있었는데 그 위쪽으로 벽장이 있었다. 부엌이 매우 좁았고 그 위쪽의 벽장도 부엌처럼 길쭉하기만 했다. 그래도 허드레물건이 좀 들어 갈 것 같았다.

어머니는 짐을 놓고 걸레로 방을 닦더니 이불을 깔았다.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도 밖으로 나갔다. 이불을 덮고 넷이서 나란히 앉아있는데 마치 한데에 있는 것처럼 코끝까지 쌩한 느낌이었다.

아버지가 찬장을 둘러메고 왔지만 부엌이 워낙 비좁아서 놓기가 마땅찮았다. 아버지는 벽장 아래쪽에 못을 박고 찬장에도 못을 박았다. 양쪽 못에 철사를 감아 벽장과 찬장을 연결했다. 찬장 아래쪽으로는 나무로 받침대를 만들어 고정시켰다. 찬장을 벽에 매달으니 부엌이 좀 쓸모가 있어 보였다. 찬장 밑에 플라스틱 설거지통이 놓였다. 뒤쪽으로 수도꼭지가 있어 호스를 연결해야겠다고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수도꼭지는 고리 모양으로 벽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어머니는 번개탄에 불을 붙이면서 눈물을 찔끔거렸다. 문 위쪽으로 환풍기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며칠간 연탄가스는 이승을 떠도는 혼처럼 부엌을 맴돌다가 방으로 스며들곤 했다. 결국 며칠 만에 여섯 식구가 동치미국물 신세를 져야했다. 밤새도록 환풍기를 틀어 놓았지만 그날 밤은 내내 역풍이 분 까닭이었다. 그 다음날 당장 아버지는 연통을 높였고 모양도 티자로 바꿨다. 티자형태의 연통은 바람의 영향을 훨씬 덜 받았다.

부엌 밖에 수도가 담뱃대처럼 서 있었다. 신문지로 싸고 비닐로 쌌어도 영하 10도를 넘어서면 여지없이 얼었다. 결국 물을 조금 틀어 놓기로 했고 겨울 내내 수돗가는 썰매 터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차례를 지켜 세수하느라 수돗가는 아침마다 전쟁터였다. 연탄불 위에 올려놓은 알루미늄 찜통의 물은 빨래를 하는데도 쓰였기 때문에 아껴서 써야만했다. 석유곤로를 사용했지만 호롱불을 켤 때와는 달리 기름이 많이 먹어 아낄 수밖에 없었다. 밥은 연탄아궁이에서 했고 찌개는 석유곤로를 사용하는 그런 식이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서울생활에 만족한 듯 보였다. 아버지가 일자리를 찾는 동안 어머니는 옆집 여자들을 사귀어서 화투도 쳤다.

시골에 비해 나은 거라고는 없었다. 동생들은 늘 공터에서 놀아 여전히 때 국물이 줄줄 흐르고 손에 얼음이 박혔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대중탕에 가서 밀린 때를 밀고 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나아진 사람은 어머니뿐인 것 같았다. 인수와 남수가 어리다고 어머니는 집에서 살림만 했다.

어머니는 집안에 수도가 있어 물 길러 가지 않아도 되는 데다 곧잘 아는 집에 가서 화투를 치니 살맛이 날 수밖에 없었다. 소독약 냄새가 나는 수돗물에 어머니는 피부가 희어졌다며 거울을 들여다보곤 했다. 어머니는 화장품 한 세트를 월부로 들여놓았다. 인수가 남수가 총싸움을 하다가 수렴화장수 병을 깨트리는 바람에 소동이 나기도 했다.

외상으로 화장품을 들여놓은 어머니를 양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울에 올라 온 이듬해 사학년이 된 양희는 세상살이가 어떻다는 걸 환히 꿰었다. 도둑이 많은지 연탄이 없어졌다는 말도 들렸고 수도료 때문에도 싸움이 심심찮게 벌어지기도 했다. 대문에 바짝 붙은 변소에서는 물을 부으면 오물이 하수도로 흘러가게 되어있었다. 서울이란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는 표현이 맞다할 정도로 각박한 곳이었다.

아버지는 연탄배달을 했다. 연탄을 짊어지고 까마득한 계단을 오르내렸고 언덕에서 리어카도 끌어야했다. 아버지가 배달하는 곳은 길이 비좁고 구불구불했다. 힘겨워하던 아버지는 수도 녹이는 일을 배웠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다 점차 수도 고치는 일에 비중을 두었다. 수도를 고치면서는 손이 얼어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일이 끝나고서는 동상 걱정을 하느라 밤잠까지 설치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밥상 앞에서 한숨 쉬는 버릇까지 생겨났다. 아무래도 아버지에게는 서울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식구가 많다는 게 도시 생활에는 큰 장애였다. 방과 후 양희는 흉터 때문에 집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계집애들이야 초등학교만 나오면 된다는 어머니의 말은 가슴을 치는 못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양희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다만 불구인 손으로 공장에 가면 받아줄까 싶었다. 차라리 집안 살림을 하고 싶었다. 밥도 할 줄 알았고 된장국도 끓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집에서 놀고 있으니 대신 양희가 공장에 갈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수도 고치는 일이나 연탄배달은 겨울에만 하는 일이었다. 이듬해 봄부터 아버지는 시멘트 블록을 찍었다.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면 씻을 생각도 하지 않고 방에 엎어져 잠들 때가 많았다. 시멘트 반죽이 묻어 있는 옷을 벗겨내면서 양희는 농사꾼일 때보다 더 까맣게 그을린 아버지의 얼굴을 들여다보곤 했다. 모든 건축 재료를 취급하는 회사라서 쉬는 날도 없었다. 힘든 일이라 수입은 어느 정도 되었지만 딸린 가족이 많아 생활은 빠듯했다.

점점 아버지는 살이 빠졌다. 처음에는 천천히 진행되었지만 양희가 육학년 초에 이르자 아버지는 몸의 무게가 갑자기 심하게 빠졌다. 두어 달 새에 낯선 얼굴이 되자 아버지 스스로 병원을 찾았다.

“뭣 땀새 그런다요? 남들도 다 일을 하면서 지내는디 왜 당신만 그런다냐고요.”

입원을 해야 한다는 말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다그쳤다. 아버지는 잘 먹고 쉬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이미 손을 쓸 단계가 지나있었기 때문이었다. 급성 간염에서 치료를 하지 않아 짧은 시간에 간경화까지 갔던 것이다. 아직 젊은 나이였지만 아버지는 시한부 인생이 되었다. 발병 후 아버지는 조금 더 수월한 일을 찾아 다녔다. 가정 형편상 쉴 수가 없었다. 어머니도 일하러 다녔지만 수입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구슬을 꿰는 일을 했지만 채 두 달도 채우지 못했다. 아버지는 쉴 수가 없었고 몸은 점점 나빠졌다.

 

 

4.공장에 다니게 되다

 

   맨 처음 양희는 어머니를 따라 가발공장으로 갔다. 부장이라는 명패 앞에 앉아있던 남자가 양희의 손을 힐끔 거리면서 나이를 물었다. 어머니가 15살이라고 하자 주민등록등본을 떼어 오라면서 부장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양희는 호적에 일 년이나 늦게 올라갔기 때문에 서류를 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봉급이 적어도 된다고 어머니가 사정을 하자 뒤쪽에 있던 사장이 거들었다.

“따님은 일할 나이가 안 됩니다. 초등학교는 졸업했나요?”

“우리 아랫집 애는 조막만해도 잘만 다니던데요.”

어머니는 입이 따라주질 않아 사투리를 섞어 썼다. 어머니는 사투리를 쓰면 항상 손해를 본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럼 아주머니가 대신 다니면 되죠. 여기는 일하는 아주머니도 많습니다.”

사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색이 변한 어머니가 양희의 손을 낚아챘다. 어머니는 사무실 문을 큰 소리가 나게 닫았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공장 문을 두들기는 이유가 나이 제한에 걸리기 때문이라는 걸 알자 씁쓸한 마음이었다.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떨어져 걸었다. 곧 돌아가실 아버지는 동생들까지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 양희는 하늘을 쳐다봤다. 회색 하늘에 걸린 전깃줄이 얽혀 있었다. 바람에 콧등이 시리고 다리가 떨렸다. 이미 봄이 시작되고 있었지만 겨울보다 차가운 날씨였다. 문득 평생 겨울 같은 계절이 반복될 삶이 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눈 가장자리가 축축해졌다.

아버지는 양희가 공장에 나가는 몇 달 동안 아랫목을 차지하고 있다 집안 식구들이 다 나간 틈에 운명을 달리했다. 외로운 죽음이었다. 두 달 정도 아버지는 입원을 했지만 죽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만약 죽음이 선택이라 할 수 있다면 아버지는 편한 길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양희는 고달플 때면 아버지가 딸에게 가장의 자리를 물려 주기위해 일찍 돌아가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양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장이 된 셈이었다.

아버지는 죽음이 문턱 앞까지 오는 동안 별 저항도 못했지만 어머니의 생각은 늘 앞질러 갔다. 머릿속이 오직 자신을 위한 삶의 구조로 짜여있는 것 같았다. 직장에 나가게 되면 어머니는 아프다는 말부터 입에 올렸다. 목이 뻣뻣하다거나 허리가 결린다거나 가슴이 답답한 증세였다.

간혹 일을 쉴 때면 화투를 쳤고 얼굴에는 늘 화색이 돌았다. 점에 오 원 정도의 판이니 그나마 도박 수준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졸지에 과부가 되었으니 마음을 붙일 곳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양희는 화투를 좋아하는 어머니를 이해하려 애를 썼다.

양희의 나이가 어리고 비정상적인 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느 공장에서도 환영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빵 공장에 취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봉급이 짰기 때문이었다. 양희는 개수를 채우거나 무게를 잰 다음 봉지를 포장하는 일을 했다. 제과점에 납품을 하는 공장이라 인원도 작아 가족적인 분위기라 할 수 있었다.

정수도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정비공장에 취직을 했다. 정수는 어렸기 때문에 기술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용돈 정도의 봉급을 받았다. 정수가 거의 두 끼를 공장에서 해결을 하기 때문에 집안 상황이 그런대로 돌아간다고 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슬슬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공장 같은 곳에 나가는 것은 아예 그만두고 가까운 시장에 나가서 일을 거들었다. 바쁜 시간에만 했기 때문에 푼돈에 가까웠다.

어머니는 일을 일찍 끝내도 거의 집에 머물지 않았다. 퇴근 후 집에 오면 학교에 다녀 온 동생들만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제대로 된 반찬이 없어 밥도 먹지 못한 채 얼빠진 표정으로 텔레비전 앞에 있는 아이들을 보면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한꺼번에 밥을 많이 해 놓기 때문에 전기밥솥에서는 항상 겨 냄새가 났다. 아이들을 위해 찌개를 끓이면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야근을 할 때면 막내 인수는 굶은 상태로 잠들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본분을 망각한 어머니 때문에 아이들은 고아 아닌 고아였다. 화가 난 상태로 밥을 먹다보니 자꾸 체했다. 밥을 물이나 국물에 말아 먹는 양희의 버릇은 평생을 갔다.

 

 

   이스트 냄새가 지겨워질 무렵 양희는 구두 공장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구두공장은 빵공장보다 면접이 까다로웠다. 사무실의 직원은 고개를 저었지만 생산직 파트의 담당인 생산과장이 일하는 것을 보아서 채용을 하겠다는 말을 했다. 며칠 후 양희는 가죽냄새에 신나 냄새가 뒤섞여 머리가 지끈거리는 부서에 배치되었다.

책상 앞에 쌓인 신발 본 가장자리에 본드를 바르는 일이었다. 깡통속의 노란빛깔을 띤 본드는 접착력은 좋았지만 독한 냄새를 풍겼다. 멀미나는 증세에 시달리면서도 점점 익숙해졌다. 다음 파트가 오른쪽에 있다는 것은 다들 오른손잡이라는 얘기였다. 양희의 오른손이 멀쩡하다는 게 천만 다행이었다. 물론 불구랄 수 있는 왼손이 노는 것만은 아니었다. 다만 오른손에 비해 단순한 일을 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다. 양희가 일을 빨리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부지런한 천성 때문이었다. 손으로 하는 일에 감각이 뛰어난 점도 보통사람과는 다르다 할 수 있었다.

화상의 흉터는 피부가 얇아서 쉬이 상처를 입기 때문에 일을 할 때는 손바닥과 손등에 천을 감았다. 마치 손바닥에 공을 집어넣은 것처럼 우스꽝스러웠다. 양희는 박음질이 된 신발 본에 본드를 발라 옆자리로 넘기는 작업을 했다. 그 옆자리에서는 바닥과 신발 본을 망치로 두들겨 붙이고 거기에 작은 못을 박는 작업을 했으며 그 다음 자리에서 신발 굽을 달았다. 누구 하나라도 늑장을 부리면 차질이 있었기 때문에 작업반장이 돌아다니곤 했다. 물론 작업반장보다 사무실의 과장이나 부장이 생산파트를 도는 게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어느 누구의 눈에도 벗어나는 행동은 하지 않았고 성실했지만 시다 노릇을 양희는 이년 동안이나 해야 했다. 나이가 어린데다 손놀림이 부자연스러워 보인다는 이유로 재봉틀을 남보다 늦게 맡았다.

재봉틀을 배우던 첫날이었다. 시골에 살았을 때 친구네 집에서 보았던 재봉틀과는 달랐다. 집에서 쓰는 재봉틀은 발을 올려놓고 흔들어야 굴러 갔지만 공업용 재봉틀은 전기 스위치를 올리면 마치 자동차처럼 내달렸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소음에다 순식간에 박음질이 되어서 겁이 났다. 그날 양희는 재봉틀 바늘에 손가락을 집어넣고야 말았다.

순간적인 일이라 아프지도 않았다. 재봉틀의 바늘이 잠깐 내려왔다 올라간 것이었다. 손가락에 구멍이 뚫렸다는 생각을 한 순간 물이 역류하듯 피가 흘러 나왔다. 휴지를 그 구멍에 대고 꽉 누르고 있으니 상처 부위에서 맥이 뛰는 게 느껴졌다. 몸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양희는 그날 처음 가족이 아닌 자신에 대한 생각을 했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기 싫어 시내를 배회했다. 마주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손을 내밀면 덥석 잡아 줄 사람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지만 고개가 가로저어졌다. 가족 외에는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동생들은 양희를 어머니처럼 여기고 있었다. 상가가 하나 둘씩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더러 눈에 띄던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날 양희는 열 두시가 다 되어 집에 들어갔다.

미싱을 다루면서 봉급도 많아졌다. 간혹 수제화는 실로 꿰매기도 했는데 그걸 배우느라 애를 먹었다. 물론 잔구멍이 나있는 가죽을 바늘로 꿰는 일이긴 했지만 힘껏 당겨야 하는 게 문제였다. 손가락이 두 마디씩 밖에 되지 않는 손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양희는 그걸 배우기 위해 야근이 없는 날도 연습을 하느라 늦게까지 남아 있곤 했다. 물론 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결국 해내었다. 검지와 중지에 실을 감아 당기는 방법을 택했고 성공이었다. 그날 그 손가락 마디마다 배었던 먹피를 보면서 양희는 숨죽여 울었다. 마디마디 예리한 무엇인가로 마치 줄을 그어댄 것처럼 베어져 있었다. 며칠 후부터 양희는 수제화도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소량이었지만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그러한 노력은 근로자의 날 상을 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수제화를 붙들고 실랑이를 벌일 때 빤히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양희를 죽 눈여겨보던 영섭이었다. 가죽에 본을 대고 그리는 일을 하던 영섭은 재단실이 따로 있어 간혹 마주치는 정도였다. 고교 졸업장이 있어야만 재단실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 재단실에서 영섭은 중요한 위치였다. 악어피 같은 고급 소재의 본을 뜨는 일이 영섭의 몫이었다. 악어피의 경우 양쪽 갑피의 무늬를 맞춰야하기 때문에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한손으로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는 양희를 동료들은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간혹 동료들의 시선이 따가워 일을 하다 동작을 멈추곤 했다. 처음에는 제대로 배우겠다는 일념에 시선에 대한 의식을 하지 못했었다. 화장실에 가면 참았던 울음이 터지기도 했다. 소리를 죽이며 울었지만 영섭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간혹 영섭은 화장실 주변에서 서성거리기도 했다. 그 무렵 양희의 나이는 열여덟이었다.

 

김은숙   200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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