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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을 품은 여자 <3>


 

 

6. 이별

영섭이 입대하게 되면서 양희는 다소 우울해졌다. 편지는 자주 썼지만 내용이 부실하기 짝이 없어서 자주 부칠 수도 없었다. 아무리 편지 쓰는 게 어렵다고해서 동생들에게 대필해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우선 맞춤법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편지를 써 놓고 사전을 뒤적거리곤 했다. 문장을 적어 인수에게 봐달라고 하기도 했다. 생각을 종이에 옮겨 적는 일이 단순한 게 아니었다. 편지를 쓸 때마다 머릿속이 고갈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편지 쓰기보다 더 고된 일은 곁에 없는 영섭이 끊임없이 생각 안으로 비집고 들어온다는 점이었다. 꼼꼼한 성격이었지만 갑피에 바느질이 잘못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반품을 시키면 재단실에서부터 일을 다시 해야 하기 때문에 일이 늦어질 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피곤해질 수밖에 없었다. 갑피를 가져 온 재단사가 숙련공께서 웬일이셔? 라며 웃었지만 양희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부분은 금방 좋아졌다. 편지지 두 장을 채울 정도의 능력이 되면서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러다가도 사랑이니 그리움이니 하는 그런 내용의 유행가 가사를 듣기라도 하면 침울해지기도 했다. 마음이 편해지고 싶어서 영섭의 입대이후 웬만하면 야근을 했다.

영섭의 편지에는 마음이 아픈 대목이 있었다. 기합 때문에 종아리에 알이 박혔다는 내용이었다. 그 후의 편지에는 발에 물집이 잡혔다는 얘기와 머리에 부스럼이 생겼다는 내용을 적고 있었다. 석 달 동안의 훈련기간은 잠을 잘 시간도 부족했고 편지를 쓸 자투리의 시간조차 부족했다. 낭만이 없는 곳이라면서도 추억은 남을 것 같다는 이율배반적인 소리를 편지에 늘어놓기도 했다. 항상 제대하면 결혼하자는 문장을 추신으로 덧붙였다. 마치 스탬프로 찍어 보내는 것처럼 글자 모양까지 똑같았다.

양희의 마음이 변할까봐서 그렇게 써 보냈을까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동안의 상황을 죽 떠올려보면 영섭은 처음부터 양희와의 결혼을 전제했다고 볼 수 있었다. 영섭의 그런 태도에 부담스러운 쪽은 양희였다. 양희는 단 한 번도 결혼에 대해 낙관적인 생각을 가져 본적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혐오하는 팔과 손을 드러내는 세상이 절대 올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흥미롭게 쳐다보다가 슬그머니 외면하기도 했고 비웃는 듯 표정을 짓거나 숙덕거리기도 했다. 사람들의 그런 태도를 받아들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강인한 성격이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중요한건 양희가 결혼을 한 후 아이들에게 대물림 될 상처라는 데에 있었다.

양희는 어린 나이부터 열악한 환경을 책임져야만 했다. 자라면서 사고가 냉소적으로 굳어진 건 당연한 결과였다. 양희는 사랑과 결혼은 별개라는 생각을 처음부터 하고 있었고 행복하지 못할 바에는 굳이 결혼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양희에게 있어 냉소적인 면과 상처는 따로국밥 같은 관계였다.

양희의 속마음을 알 리가 없는 어머니는 영섭이 제대를 하자마자 상견례라는 말을 들먹거렸다. 양희는 우선 영섭의 부모를 만나겠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면서 어머니를 회유했다. 마지못한 듯 어머니도 수긍을 했다. 양희가 원하는 건 영섭의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는 일이었다.

“집안에 병신이 둘이나 있으면 동네 웃음거리만 된다.”

양희에게 가족 관계를 묻다가 갑자기 던진 말이었다. 영섭 아버지는 말을 하면서도 별 표정이 없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고 양희의 얼굴은 이내 새파래졌다. 다음순간 양희는 침묵을 지키는 영섭을 슬쩍 쳐다보았다. 변명을 해 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는 게 바보 같은 일이었다. 양희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영섭의 어머니는 식탁위에 올려 있던 손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영섭의 어머니가 왜 벙어리처럼 앉아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잘 차린 식단 앞이었지만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었다. 양희는 영섭의 체면 때문에 몇 숟갈 뜨는 척 했다. 실내 온도는 서늘했지만 영섭의 아버지는 땀을 흘려가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 시간 반 정도 식당에 머물렀는데 마치 여름 한낮처럼 시간이 더디 갔다. 영섭의 아버지는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바쁘다면서 지하철역으로 향했고 영섭의 어머니도 서둘러 따라갔다. 양희는 영섭과 찻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일은 미안해.”

영섭의 장점은 무엇이든 인정할 줄 안다는 점이었다. 반면 우유부단했다.

“난 영섭씨 어머니에게 미안했어. 내가 아니었다면 그분이 욕먹을 일은 없잖아. 겨우 손가락 두 마디일 뿐인데...”

“아버지가 지나친 표현을 하셔도 어머니는 반박을 못하셔. 난 민망하니까 가만히 있는 거고...”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해. 난 방어적이니까.”

“그래. 그거 나도 잘 알아.”

영섭이 말꼬리를 흐렸다. 찻집은 좁고 어두웠다. 천장에는 두더지 구멍처럼 홈이 나 있었다. 양희는 그 구멍에 들어앉은 오스람램프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오늘 결론 낼 일도 아니니 다음에 얘기해.”

영섭은 미심쩍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양희는 일어서서 계산대 앞으로 왔다. 영섭은 제지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뭐라고 했지만 양희의 손에는 거스름돈이 쥐어져 있었다. 매몰차게 뿌리치는 양희를 어쩌지 못하고 영섭은 돌아갔고 양희는 시내에서 어슬렁 거렸다. 마지막 버스를 타고 집으로 들어갔다. 영섭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영섭은 퇴근을 하면 늘 양희네 집 주변을 맴돌았다. 양희가 직장을 관뒀기 때문에 마주치기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양희의 집에 죽칠만한 배짱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양희는 저녁 시간이면 시내에 있었고 영섭은 그 시간쯤이면 양희가 지나다니는 골목길을 배회했다. 양희가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영섭은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 앉아있었다. 그렇듯 항상 어긋나는 길이었지만 변수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런 상황에 맞닥트리면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만 했다. 양희는 마음이 준비를 이미 끝내고 있었다.

 

 

얼마 후 양희는 수제화를 만드는 공장에 취직을 했다. 규모가 작아서 직원은 너덧 명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한 사람에게 주어진 일은 두세 가지였다. 본드 때문에 까칠해진 손으로 재봉틀을 돌렸고 재단도 해야만 했다. 일이 바빠서 밥 먹듯 야근을 했다.

집으로 가는 막차를 기다리며 정류장에 서 있던 영섭은 몸을 돌렸다.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았다. 아버지의 반대보다 본인의 마음이 더 큰 문제인 것 같았다. 구걸을 하는 장애인과 마주칠 때마다 외면하고 싶어지는 게 양희 때문일 수도 있었다. 아버지도 때론 어머니에게 애정을 가졌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모습은 바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평생 영업사원이던 아버지는 일이 잘 안될 때마다 어머니에게 화를 냈다. 어쩌면 어머니가 견디며 사는 것도 고집이라 할 수 있었다.

양희 또한 가정을 위해 장애를 무시하고 살아왔으니 고집이 남다르다고 볼 수 있었다. 그것이 불행의 씨앗이 될 수도 있었다. 또한 시간이 흐르다보면 영섭의 마음도 무덤덤해지기 마련일 것이다.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말은 곧 사라질 저녁연기를 걸고 약속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십여 미터쯤 떨어진 가로등 밑을 걸어 올라오는 양희의 모습은 여전했다. 영섭의 시선은 바지 주머니에 들어간 왼손을 따라갔다. 여름인데도 양희는 팔이 긴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복 더위에도 봄과 가을에 입는 남방이나 티셔츠중 하나를 입어야하는 처지였다. 손을 드러내놓고 다니면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의지가 강한 성격이었지만 그런 상황은 감당하기 어려워했다. 영섭이 서 있는 곳의 가로등이 양희에게 비치는 순간 처음 공장에서 마주쳤던 앳된 소녀의 모습이 겹쳐졌다.

“양희야!”

영섭이 부르는 소리에 양희가 발을 딱 멈췄다. 약간 놀라는 태도였다. 영섭의 상의는 예전에 입었던 티셔츠였는데 남의 것을 빌려 입은 것처럼 헐렁해 보였다. 낯선 사람처럼 보이는데다 반가움과 설움이 밀려들어 감정이 북받쳤다. 양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영섭의 눈길을 피하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뭐 하러 왔어?”

“그냥...”

영섭은 많은 말을 생략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가라앉아 있는 것 같았다. 만약 양희의 생각이 얄팍했다면 일이 쉬웠을 수도 있었다.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결론은 같아. 난 결혼 같은 건 절대 안 해.”

“그렇지만 이대로 포기하는 것도 바보 같은 일이 아닐까?”

“아니... 어차피 우린 어려워. 이제 난 너무 힘든 삶이 싫거든.”

양희는 고개를 흔들면서 냉랭하게 말했다. 머리맡에서 매미가 아직도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양희는 고개를 쳐들어 나무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멀리 던졌다. 색색의 불빛들이 바람 앞의 호롱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양희는 눈 안의 물기를 없애 버리려고 한참 침묵을 지켰다. 느티나무 밑의 평상에 앉아서 기다릴 거라는 상상은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영섭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흠칫 놀릴 수밖에 없었다. 적이 안심이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영섭이 정류장에 서 있다거나 전봇대에 기대어 있을까봐 늘 걱정을 했었다.

간간히 영섭은 미소를 지었지만 양희는 표정을 절대 바꾸지 않았다. 연기자라고 할지라도 싸늘한 표정을 계속 유지하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얼굴이 경직되어 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양희는 가로등 주변의 날파리 떼를 쳐다보다가 가로등 빛을 받고 있는 푸른 잎과 어둠에 싸여 검은 빛을 띤 나뭇잎을 번갈아보기도 했다.

영섭의 흰 자위는 충혈 되어 있었다. 양희는 영섭의 시야를 벗어나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오른손으로 왼손가락을 하나씩 주물렀다.

“아버지를 설득 시키는 것이야 내 몫이겠지만 중요한건 우리의 마음이라는 생각을 했어. 정 안되면 둘이 방 한 칸으로 시작해도 될 것이고...”

영섭은 아카시아 잎을 하나씩 잡아 뜯었다. 둘러보니 잡풀더미 사이에 아카시아가 몇 그루 돋아나 있었다. 양희는 검지와 중지를 붙이고서 잎줄기를 훑어냈다.

“난 내 가족도 책임을 지고 있잖아. 인수가 졸업해서 직장에 갈 때까지는 꼼짝하기 어렵지. 게다가 축복은커녕 미움 받는 결혼이 될 테고...”

영섭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호각소리가 골목을 타고 올라왔다. 달동네에 속하는 골목은 통행금지와는 별개였다. 하늘에는 별빛이 제법 초롱초롱했고 달은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믐에 가까운 날짜였다. 음력 날짜를 대충 알고 있는 건 어머니의 생일이 끼어 있는 달이기 때문이었다.

날씨가 맑으니 평상에 앉아서 밤을 새워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영화에서처럼 이별을 위한 밤이었다. 더러는 그런 상황을 낭만이라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별은 낭만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있었다. 사랑이 시작되었을 때 잠시 동안 마음이 들뜬 적이 있었으니 낭만은 거기에 가져다 붙이는 게 옳을 것 같았다. 연애 초기라면 주변의 모든 사람이 말려도 결혼을 하겠다고 우겼을까. 그런 생각이 잠깐 양희의 머리를 스쳤다.

“영섭씨는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물론 나도 잘 지낼 자신이 있어. 주변 사람들도 우리더러 잘했다고 할 거야.”

다소 수선스럽게 얘기를 하자 영섭이 빤히 쳐다보았다.

“난 너를 지켜보고 있을 거야. 내가 결혼을 하지 않으면 그건 기다린다는 뜻이야.”

“글쎄...”

애매한 표정을 짓던 양희는 입을 꾹 다물었다. 물론 영섭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영섭은 그의 어머니에게 등을 떠밀려서라도 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영섭은 외아들이었다. 양희는 한숨을 내쉬었고 영섭은 침묵을 지켰다. 매미 한 마리가 간혹 낮은 소리로 빽빽 거렸다. 선뜩한 바람이 약간씩 일고 있었지만 도시는 잠에 빠져 있었다.

 

이사를 하게 되면서 양희는 전화번호를 바꾸었다. 학교 앞에서 인수와 마주쳤다는 영섭은 그 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인수의 태도도 예전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이별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한 그 책에는 공감할 수 있는 게 제법 담아져 있었다. 양희는 틈이 나면 책을 읽었고 허무하거나 울적하면 책을 덮고 중랑천을 찾았다. 집보다는 그곳이 훨씬 편했다.

풀이 우거진 천변은 몸을 감추고 앉아 있기에는 그만인 공간이 더러 있었다. 가을이 깊었어도 땅은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아직 푸르른 풀 더미에서는 벌레가 단조로운 음을 내고 있었다. 황금빛으로 시들어 가는 풀 사이로 바람이 지나면 스산한 소리가 났다. 양희는 다리를 세운 채 쭈그려 앉아 여러 가지 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해는 산을 향해 잰 걸음을 놓고 강물은 점점 검은 빛을 띠어갔다. 거스르는 바람이 물위에 끊임없이 잔주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몇 번이나 뜯어서 던진 풀잎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내려갔다. 물에 떠가는 이파리를 세어보다 문득 스물다섯 살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인생의 반도 살지 못했지만 너무 허무했다. 게다가 앞으로의 삶도 낙관할 수는 없었다. 생각해보니 단 한 번도 희망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삶인 것 같았다.

언덕의 바로 아래쪽에는 수초가 깔려 있었다. 마치 단풍이 든 것처럼 알록달록한 작은 잎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시골의 저수지에서 보던 마름이었다. 열너덧 장씩 무리 지어있는 마름 잎을 내려다보다가 왼손을 저수지 쪽으로 뻗쳤다. 사위가 어두워져서 모양이 더욱 이상해 보이는 것 같았다. 초등학생 시절에 과제로 내주던 그림자놀이를 할 수 없었던 손이었다. 언젠가 혼자서 몰래 그림자놀이를 한 적이 있었다. 나비를 만들려고 손을 겹쳐서 펼치는데 괴물의 그림자가 벽에 비쳤다. 그날로 그 놀이도 그만두었다.

어릴 적에는 동화에서처럼 마술의 힘으로 손을 바꿀 수도 있는 줄 알았다. 초등학교 삼학년 쯤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손 때문에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지만 흙이 된다는 게 두려웠다. 상처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남이 쳐다볼 때는 왼손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을 했다. 밖에 나갈 때면 주머니가 없는 옷이나 소매가 짧은 옷을 입어 본 적이 없었다.

풍덩, 소리를 내며 몸이 떨어지면 마름이 흩어졌다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름은 다시 제 자리를 찾을 것이다. 바람소리와 벌레소리가 아스라해지면 영혼이 어디쯤에 있을까 궁금했다. 마름을 뒤집어 쓴 채 건져 올려 질 사체의 손을 보고도 웃을 사람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일어섰다. 죽음의 유혹을 느낄 때마다 그 일을 가로막는 건 가족들이었고 특히 인수의 얼굴이었다. 업고 다니던 동생이라서 정감이 더한 것 같았다.

통행금지가 다된 시간에 양희는 어슬렁어슬렁 집으로 들어갔다. 공부를 하던 인수가 부엌문을 열어 주면서 양희를 슬쩍 끌어안았다. 대학 일 학년이었지만 인수는 이미 어른이었다.

 

 

7. 대리모가 되다

 

왼손에 물집이 생기더니 그 자리가 헐어서 잠시 쉬고 있었다. 데인 피부가 약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양희의 얼굴은 희고 깨끗했다. 콧대가 알맞게 높고 콧방울이 자그맣고 도톰해서 귀티가 나는 인상이었다. 약간 작은 키였지만 가냘픈 몸매라 남자들이 말을 걸어오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러다가 왼손을 노출시키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흠칫 놀라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줄곧 하고 있었지만 주변에서 남자를 소개하곤 했다. 그 근처에서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주변사람들은 양희네 상황에 대해 꿰뚫고 있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남자를 소개했다. 주변사람들과 어머니의 성화에 맞선을 몇 번 봤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은 남자였다. 남자는 의족을 했기 때문에 걸음이 느렸고 걷는 동안 팔을 유난히 흔들었다. 양희를 마주 대할 때 표정도 밝았고 쾌활했다. 첫선이었지만 결정지어도 되겠다고 할 정도로 어머니까지 마음이 들떠 있었지만 남자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동거하던 벙어리 여자가 있었는데 부모가 반대를 해서 보게 된 선이었다. 말하자면 남자가 부모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 선을 보러 나온 케이스였다. 두 번째는 부잣집 아들이었는데 상당히 어눌한 남자였다. 아이큐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그 남자는 양희의 손을 보자 인상을 찌푸렸다. 보석을 휘감고 나왔던 남자의 어머니는 양희의 손을 보면서 혀를 찼다. 헤어지는 길에 그 여자가 중얼거리던 말이 귀에 박혔다. 중학교라도 다녔다면 또 모르지. 그날 양희는 선을 보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선을 본다는 건 감추고 싶은 속살을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하마터면 성사 될 뻔했던 경우가 있었다. 오래 쉬다가 다시 직장에 나갔기 때문에 상당히 쪼들릴 때였는데 맞선 자리가 들어 온 것이었다. 인수 학비를 조달해 주겠다는 남자였다. 아이가 둘 딸렸고 나이는 서른여섯이었으니 딱 십년 차였다. 시장에서 건어물을 팔고 있었는데 알부자였다. 아이들을 시골에 있는 노모가 돌보고 있어서 급한 처지인 것 같았다.

성격은 괜찮은 것 같았고 나이 차이가 많아서 그러는지 자상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 게 문제였다. 성 관계 후 남자는 팬티를 입더니 담배를 피워 물었다. 처녀인 줄 알았는데... 중얼거리는 남자가 뿜어내는 연기를 바라보다 양희는 옷을 입고 여관을 나와 버렸다. 며칠 후 남자가 미안하다며 결혼 날짜를 잡자고 전화가 왔지만 거절했다.

상황을 모르는 어머니는 주제를 모른다며 투덜거렸다. 아니, 어머니는 상황을 알았더라도 결혼을 하라고 했을 것이다. 남자에게서는 그 후로도 몇 번 연락이 왔지만 양희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선을 보느니 차라리 머리를 깎겠다는 말로 어머니에게 다짐도 받았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 서른이 되었고 마음은 참 편했다. 세월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드는 물질이었다. 중랑천 둑에서 앉아 있어도 아무렇지 않았고 무수히 떨어져 뒹구는 플라타너스의 잎을 밟아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 사람이 양희에게 호의적인 건 아니었다.

11월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해거름이면 추웠다. 양희는 스웨터를 여미며 집을 향해 언덕길을 걸어올라 갔다. 정수의 결혼이 코앞으로 다가와서 심란했다. 정수를 결혼시키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인수가 제대해서 오면 복학을 해야 하고 남수도 벌써 결혼을 시켜야할 여자가 있었다. 구멍가게 앞을 지나치려던 양희는 비누 몇 장과 두부를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걸음을 멈췄다.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었지만 다른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가게로 들어서자 물건을 정리하고 있던 주인여자가 반색을 했다. 여자는 양희가 인사를 건네기가 무섭게 말을 꺼냈다.

“아가씨에게 직접 얘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아가씨네 형편도 그렇고...“

“뭔데요?”

“기분 나쁘게는 듣지 말고요. 우리 가게에 가끔 오는 젊은 아줌마인데 오빠가 회사 사장이래요.”

양희는 말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 머리를 쓸어 올리던 자세로 잠자코 여자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노처녀라고해도 처녀인데 말 꺼내기가 그러네요. 어머니에게 넌지시 말을 건네긴 했었는데... ”

여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10년 가까이 그 골목 언저리에서 살았기 때문에 구멍가게 여자는 양희네 집안 사정을 환히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아무나 붙들고 실없는 말을 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오빠가 딸만 넷이래요. 문제는 올케가 얼마 전에 근종 때문에 아예 자궁을 들어낼 수밖에 없었다는군요. 그 사장이 독자라든가? 공장을 해서 돈도 많이 벌었지만 물려 줄 아들이 없으니 그날부터 초상집 분위기랍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아, 아니에요. 못 들은 걸로 하세요. 뭐 사러 오셨더라?”

여자는 손바닥으로 허벅지 부근을 문지른 다음 상체를 약간 돌렸다. 대충 무슨 얘기인지 감이 잡혔기 때문에 양희는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오늘 사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안녕히 계세요.”

가까스로 인사를 했다. 구멍가게에서 몸을 돌려 잰걸음을 놓는데 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가슴까지 울렁거렸다. 시간 많고 속없는 어머니가 그 여자를 붙들고 미주알고주알 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구멍가게 여자는 어머니 또래였다.

양희가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부엌에서 음식 냄새가 흘러 나왔다. 양희가 늦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음식을 따로 만드는 것 같았다. 부엌문을 열자 찌개 냄비에서 쏟아지는 김 때문에 시야가 흐릿했다.

“어머니!

양희의 목소리가 컸던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쉰이 넘은 어머니는 살이 찌면서 심장이 약해져서 작은 일에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구멍가게 아줌마 말인데요"

“아아, 난 아무 대답도 안 했어. 너한테 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겠냐.”

“냉정하게 자르지 않으니까 저한테 말한 거죠. 안 그렇다고 할 수 있어요?”

“난 아니라고 했어 그런데 몇 번이나 생각해 보라는 거야. 그런 말을 듣고 내가 잘 못 살았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정말 미안하다.”

어머니는 눈가에 물기가 흐르는 걸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상에 반찬을 놓았다. 수저가 똑바로 놓아지지 않자 몇 번이곤 다시 만졌다. 찌개가 계속 끓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불을 끌 생각은 못하고 행주로 수저를 닦다가 상 모서리를 닦기도 했다. 양희는 가스레인지의 스위치를 돌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옷을 갈아입는데 어머니의 비대한 몸과 고장 난 무릎이 떠올랐다. 당뇨까지 겹친 어머니는 집에서 하는 부엌일이라면 모를까 식당 같은 곳에서는 힘에 부쳐서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시력도 나빠져서 공장에서도 달가워 할리는 없었다. 원시인데 난시까지 겹쳤는지 가까운 곳을 볼 때면 눈에 뭐가 잔뜩 낀 것 같다는 하소연을 했다. 몫 돈이 있으면 인수의 등록금도 해결될 테고 정수 결혼도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았다. 어머니의 노후 걱정도 덜 수 있었다.

“돈은 얼마나 준다고 하던가요?"

상을 방으로 들이던 어머니의 표정이 굳어졌다. 예전의 어머니와 달리 속이 다소 깊어진 모습이었다. 양희가 어릴 적부터 애늙은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다. 동생들조차 철이 일찍 들어 오히려 가슴이 아팠다. 어머니는 사춘기 무렵 공장에 다니던 딸을 쳐다보면서 병신이 된 것도 다 네 팔자다, 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증오심이 극에 달했던 양희는 어머니에게 미친 여자라는 욕을 했다. 그때는 정말 어머니가 비정상으로 보였다.

양희는 옛일을 애써 지우면서 어머니를 한참 쳐다보았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지쳐보였고 초라한 얼굴이었다. 마주보던 어머니의 눈 밑에서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 어머니는 양희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 몸을 구부렸다.

“하지 말아라. 내가 나가서 돈을 벌어 올께."

행주를 쥔 채 상에 찌개 냄비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하지만 평생 엄살만 부리던 사람이 몸까지 아픈데 어떻게 힘든 일을 할 수가 있을까싶었다. 양희는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소리는 말고 어머니는 돈이나 많이 받아 낼 생각을 하세요."

양희는 시계를 쳐다봤다. 이삼십 분 안으로 막내 인수가 올 시간이었다.

“너 볼 면목이 없다.”

어머니는 보온밥통에서 뚜껑이 덮인 밥그릇을 꺼내면서 중얼거렸다. 밥그릇을 놓던 어머니의 손도 목소리처럼 떨리고 있었다.

“대신 어떤 일이 있어도 애들에게는 비밀로 하세요.”

어머니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양희는 밥을 반 그릇만 비우고 건넌방으로 갔다. 인수가 쓰는 국어사전을 들여다보았다. 씨받이. 혼인한 부부의 아내에게 이상이 있어서 대를 잇지 못할 경우에 돈을 받고 그 남자의 아이를 대신 낳아 주던 여자. 그러니까 동침을 하고 배를 열 달 동안 빌려주는 일이었다. 양희는 사전을 책상에 던져 놓고 벽에 기대앉아 눈을 감았다.

 

“워낙 바르고 착해서요. 오랫동안 지켜봤지만 나무랄 데가 없는 아가씨랍니다.”

수선스럽게 말을 끄집어내는 구멍가게 여자를 바라보던 남자가 어색한 웃음을 얼굴에 담았다. 제법 흰 머리칼이 많았던 그는 좁은 이마에 볼이 두툼했고 피부는 약간 검은 편이었다. 남자는 양희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물로 입안을 축였다. 잠자리를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낯설기도 했고 나이에 비해 늙어 보이는 것 같았다. .

“누이가 말씀을 드렸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삼대독자입니다.”

말을 하면서 남자가 담뱃갑의 입구를 뜯어냈다. 구멍가게 여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머니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들을 낳는다는 게 산을 옮기는 것처럼 어려운 일일 수 있다는 말을 했다. 남자를 마주 대하니까 잠시 갈등이 일었다. 양희는 고개를 숙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내 보기엔 두 사람이 인연인 것 같거든요. 어젯밤 좋은 꿈을 꾸었답니다.”

어떤 꿈인지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았지만 구멍가게 여자의 말에 남자의 얼굴이 밝아졌다. 바라보는 눈빛이 그윽해져서 양희는 얼굴을 붉혔다. 구멍가게 여자는 식사를 하고 가라는 남자의 간곡한 권유를 물리치면서 일어섰다. 구멍가게 여자가 나가자 남자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얹고 양희를 쳐다보았다. 양희는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내부를 둘러보았다. 천장의 원목과 엷은 갈색의 벽지가 조화를 이뤄 세련된 느낌이었다. 밀실처럼 꾸며진 곳이었지만 자리가 널찍하고 테이블이 커서 답답하진 않았다.

“여기서 식사를 하셔도 되겠죠?”

양희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남자는 웨이터를 부르기 위해 초인종을 눌렀다. 점심시간을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실내가 조용했다. 닫힌 문 틈새를 비집고 음악이 흘러들었다.

“아까 아주머니 말이 아니더라도 양희씨는 좋은 사람 같아요. 제가 복이 많은가 봅니다.”

서먹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서는 무슨 말인가를 끄집어내야만 했다. 고민 중에 남자가 불쑥 물었다.

“막내 동생은 대학 몇 학년인가요?”

구멍가게 여자는 중매쟁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좋은 부분만 얘기했을 수도 있었다. 인수야 서울에 있는 명문대를 다니고 있으니 남자가 관심을 가질 만도 했다.

“이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습니다.”

“양희씨도 눈빛이 영리해 보여요.”

남자가 양희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양희는 얼굴을 약간 틀면서 미소를 지었다.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표현이었다. 초등학생이었을 때 더러 우수상을 받아오곤 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들을 만도 했지만 부모님은 그런 것에 무관심했다. 게다가 아버지는 힘에 부치는 일을 했고 양희가 고학년이 되었을 때는 죽음을 앞둔 채 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여유가 없었을 것 같았다.

“식사나 합시다. 오늘은 술도 한잔 하세요.”

웨이터가 스프를 가지고 왔을 때 남자는 칵테일을 시켰다. 서먹한 기분이 들지 않게끔 배려하느라 남자는 웃음을 자주 흘렸다. 며칠 후 약속을 정하면서 남자가 호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인조견을 재료로 쓴 지갑이었다. 앞부분에 한복을 입은 한 쌍의 남녀가 그려져 있었다. 지갑을 받아든 순간 양희의 가슴에 마치 기차바퀴가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지갑을 주기 전 화장실에 다녀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갑은 약간 무거웠고 지폐냄새를 품고 있었다.

 

 

토요일이라서 전철 안은 붐볐다. 승강장 사이가 넓어 내릴 때 조심하라는 멘트가 천장에서 흘러나왔다. 양희는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 전철의 문이 바로 닫혔기 때문에 치마가 끼었을까봐서 뒤를 돌아보았다. 승강장을 따라 약간 구부러진 채 서 있던 전철이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1번 출구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바람은 찼지만 기온은 따스한 편이었다. 양희는 손목을 올리고 시계를 보았다.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서 왔기 때문에 10여분이나 빨리 도착을 한 셈이었다. 도로 쪽을 바라보다가 지하도의 벽 위에 앉은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도로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쳐다보지 않으면 놓칠 수도 있는 풍경이었다. 이미 여자는 몇몇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여자는 긴 머플러로 목을 둘둘 감고 있었고 손가락에는 담배가 끼워져 있었다. 까맣게 때가 낀 긴 손톱 끝이 담배를 빨아들일 때마다 조금씩 떨렸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여자겠거니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서늘해졌다. 양희는 여자에게서 얼른 시선을 뗐다.

“더 예뻐지신 것 같습니다.”

어느 틈에 남자가 곁에 서 있었다. 남자의 속삭임에 양희는 얼굴을 붉혔다. 남자가 양희의 오른손을 가볍게 잡고서 조금 앞장섰다. 보도블록을 따라가자 골목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타났다.

“가끔 가는 집인데 회가 싱싱하죠. 동해에서 바로 올라온 답니다.”

입간판을 쳐다보면서 남자가 말했다. 내부에 수족관을 갖춘 일식집이었다.

“잘 먹는 게 남는 겁니다.”

남자는 서너 점 씩 놓인 초밥 접시를 양희 앞으로 밀었다. 미래의 아들에게 하는 말일 것 같았다. 먹을거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처럼 골고루 먹었다. 얘기를 나눴지만 거의 일방적인 대화였다. 양희는 대답을 한다거나 웃어 보이는 정도였다. 맥주 몇 잔에도 어지러웠고 몇 번이나 화장실에 다녀와야 했다. 잠시 얘기가 끊겼을 때 남자가 일어나자고 했다. 약속된 장소 즉 모텔을 가자는 말이었다. 양희는 핸드백 끈을 어깨에 끼우다가 무릎으로 식탁 모서리를 쳤다. 남자가 양희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

오후 네 시가 넘었지만 길거리는 안에 비해 너무 밝았다. 양희는 고개를 약간 숙인 채 걸었다. 남자는 양희의 긴 머리칼을 쓰다듬듯 안았다. 양희는 남자를 가볍게 밀친 다음 손만 잡았다. 남자가 양희의 손을 꼭 잡으면서 몸을 약간 기울였다. 약간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두 사람이 만들어낸 그림자는 겹쳐졌다가 떨어지곤 했다.

간혹 뒤쳐져 걸으면서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다. 뒤쪽 목덜미의 살이 와이셔츠 칼라 밖으로 밀려나 있었고 곤색 양복칼라에는 비듬이 미세한 점처럼 군데군데 달라붙어 있었다. 나이 탓인지 영섭과는 달리 균형이 흐트러진 몸매였다. 영섭을 생각 밖으로 밀어내느라 길거리의 잡다한 것에 눈을 돌렸다.

럭셔리한 스타일의 양복을 입은 남자와 양희의 모습을 쇼윈도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햇살이 있는 길거리와는 달리 쇼윈도는 다소 어두웠고 따라서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거울을 통해 보는 것 같았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준 호텔 급 모텔이었다. 웨딩홀을 낀 건물이라 외관을 유럽풍으로 만든 것 같았다.

“구실을 다 할 수 있는 손이군요. 손 좀 내밀어 보세요.”

양희가 겉옷을 벗자 남자가 말했다. 왼손을 내미는 순간 남자가 눈을 몇 번 깜빡 거렸지만 표정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그것 또한 배려로 느껴졌다. 남자가 끌어안으려하자 양희는 몸을 빼면서 욕실 앞으로 갔다. 욕조에 붙은 수도꼭지를 비틀자 문틈으로 들리던 텔레비전의 잡음이 사라졌다. 물이 넘치고 있었지만 수도꼭지를 그냥 두고 욕조에 앉아 눈을 감았다.

젖은 머리칼에 수건을 두르고 발의 물기를 닦는 양희를 남자가 쳐다봤다.

“외출복을 그대로 입고 나오네요.”

남자는 양희를 보면서 다소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남자가 의자에서 일어나 욕탕으로 들어가자 양희는 탁자 앞에 앉았다. 탁자에는 캔 커피가 두 개 놓여있고 하나만 꼭지가 따져 있었다. 이를 닦았지만 꼭지를 따서 커피를 마셨다.

욕탕에서 나온 남자는 화장대 앞에 앉은 양희의 어깨를 가볍게 마사지했다. 팬티만 걸치고 있어서 옷을 입은 양희의 모습이 오히려 어색하게 보였다. 거울에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양희는 의자에서 얼른 일어났다. 남자는 양희를 안아 침대에 뉘었다.

남자가 옷을 벗기는 동안 양희는 호흡을 들이키며 몸을 파는 창녀와는 다르다는 위안을 했다. 아이를 갖게 되면 몸가짐도 바르게 하겠다고 다짐도 했다. 남자의 턱수염이 양희의 턱과 목을 스치고 젖가슴 사이를 누르듯 가볍게 찔렀다. 남자는 젖꼭지를 잠깐 물었다가 빼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남자의 얼굴이 낯설어 양희는 얼른 눈을 감았다. 남자는 무릎을 꿇은 채로 양희의 양쪽 허벅지를 잡아 올리면서 성기를 밀어 넣었다. 다소 뻑뻑한 느낌이 들면서 양희의 허벅지에 힘이 들어갔다.

“다시 할 테니 다리를 좀 더 벌려봐요.”

남자가 소곤거렸다. 남자가 몸에서 성기를 빼냈다가 다시 밀어 넣는 동안 양희는 흰색 천으로 된 침대보를 움켜쥐었다. 남자의 성기가 양희의 몸을 들락 거렸지만 좋은 느낌은 전혀 없었다. 가슴만 답답할 뿐이었다. 잠깐 눈을 떴을 때 남자는 양희의 몸에 건강한 정충을 밀어 넣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양희의 자궁은 그중에서 가장 건강한 정충을 받아들여 우량한 사내아이를 만들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정충이 사내아이나 계집아이를 결정하겠지만 꼭 아들이어야만 했다. 남자만의 아이가 아니라 양희의 아들이기도 했다. 양희는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지루한 영화처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섹스였다. 중간에 양희는 화장대의 거울 위해 매달린 시계를 슬쩍 쳐다보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남자의 몸에서 씨앗이 빨리 방출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양희는 알지 못했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아는 거라고는 섹스 할 때 성기가 얼얼하다는 정도였다. 그저 종족보존을 위한 섹스이기 때문에 남자에게도 부담스러운 행위인 것 같았다. 다른 각도로 보자면 아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 수도 있었다. 남자의 숨소리가 점점 고조되자 양희는 생각을 멈추고 남자의 몸을 끌어안았다.

관계 후 남자는 창을 열고 담배를 두 대나 태웠다. 남자는 팬티 차림으로 탁자 앞에 다시 앉았고 양희는 브래지어와 팬티 차림으로 욕실에 들어갔다. 남자의 시선이 왼 팔을 훑어 내릴 거라는 생각이 잠깐 스쳐 팔의 위치를 앞쪽으로 했다. 겉옷을 입을 때 도와주면서 남자는 양희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남자는 술을 주문하지 않았다. 남자의 승용차에서는 특이한 냄새가 났다. 마치 다른 집에 갔을 때 맡아지는 그런 냄새처럼 생소하게 느껴졌다. 양희는 무릎위에 한 손을 올려놓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말을 하다가 너털웃음을 흘리기도 했다.

정류장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내려달라고 했다. 아래쪽에 돌이 빼꼭히 박힌 축대가 이어져있고 그 위쪽으로는 아카시아군락이었다. 마른 풀이 아카시아줄기와 엉켜서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양희는 도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남자의 검은색 승용차는 천천히 가다가 사오 미터 쯤에서부터 속력을 냈다. 양희는 남자의 뒷모습이 조그맣게 될 때까지 차를 바라보았다.

 

며칠 되지 않아서 양희는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규모는 방이 두 개 정도였지만 조망이 좋았다. 베란다 앞에 서면 한강이 실개천처럼 보였다. 산의 중턱에 자리한 아파트라 문을 열면 새소리가 들려왔다. 밤 9시쯤이면 야경이 무르익는 시간이었다. 서점에서 골라온 책을 읽다 덮고 야경에 취해보기도 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는 돈이 필수였다. 넉넉하다는 것은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나타내는 말 같았다. 남자는 늘 똑같은 태도를 취했다. 인위적인 느낌이 스며있는 친절함이었다. 양희 또한 거리감을 두고 대했다. 남자는 과일을 사들고 와서 슬그머니 놓기도 하고 양희가 차린 간단한 찬에 식사도 했다. 이삼일에 한 번씩 섹스를 했고 생리가 언제냐는 질문도 받았다.

두 달 정도 지나면서 양희가 입덧을 시작했고 남자는 더 이상 성관계를 요구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들러서 잠깐 앉앗다 가는 남자를 붙들고 싶을 때가 있었다. 아내를 사랑하는지 묻고도 싶었다. 남자의 아내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것도 궁금했다.

“딸을 낳으면 어쩌죠?”

과일을 깎으면서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남자는 잠깐 사이를 두더니 웃음이 배인 얼굴로 양희를 바라봤다.

“딸을 낳아도 데려 갈 테니 염려 말아요. 건강이 우선이니 잘 먹고 좋은 생각만 해요.”

걱정하는 투가 아니었다. 음식 냄새만 싫었지 먹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양희 얼굴빛은 노르스름했다.

“실은 꿈에 소를 보았답니다. 태몽에 소는 틀림없는 아들이거든요.”

남자는 아들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말투였다. 목에 걸린 줄을 끌고서 우물 속으로 첨벙첨벙 들어가는데 뒤에서 보니 주먹보다 큰 불알이 덜렁거리더라고 하면서 남자는 껄껄 웃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남자는 의사에게 딸인지 아닌지 집요하게 물었다. 일곱 달이 되었을 때 의사는 안심해도 되겠다는 말을 했다. 그날 남자의 차로 외곽지역까지 나가 저녁을 먹었다. 백화점에 들렀을 때 양희는 어머니와 막내 동생에게 줄 옷을 골랐다. 아기용품을 사겠다는 말을 했을 때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집에서 준비한다면서 다른 것을 고르라는 말을 했다. 아기 신발은 꼭 사겠다고 우기자 남자는 마지못해 응했다. 아기용품 판매장을 둘러보던 양희는 인형에게나 맞을 만한 신발을 고른 후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화장실과 거리를 둔 채 서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의 팔에 걸린 양복 상의가 떨어질 것처럼 불안한 자세였다. 남자는 화장실을 등지고 서 있었다. 매장의 여직원이 긴소매의 옷을 입은 양희를 힐끗거릴 만큼 밖은 더운 날씨였지만 순간 마음이 차가워졌다.

남자는 양희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양희의 눈 가장자리에는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카트를 미는 남자의 뒤쪽에 선 양희는 천천히 걸었다. 남자는 계산대 앞에 섰고 양희는 남자를 등지고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저녁거리를 위해 몰려든 사람들 틈에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있어 번잡스러운 광경이었다. 몸집이 자그마한 아이들은 더러 카트를 안에 담겨 있었다. 부부끼리 쇼핑을 온 사람들이 반 이상은 될 것 같았다. 원피스 앞자락을 쳐들리게 할 만큼 부푼 배에 손을 붙인 채 서 있는 양희를 쳐다보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이제 갑시다.”

그날 이후 남자는 양희의 아파트에 발길을 끊었다. 애초의 약속과 어긋나는 건 아니었지만 마치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대신 맞선 때 나왔던 남자의 누이동생이 두세 가지 음식을 장만해서 들리곤 했다. 그들은 태아가 활발히 노는지 양희가 밥을 잘 먹는지 그 두 가지에만 관심을 두었을 뿐이었다. 양희는 그저 태아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달이 차면서 태아는 마치 공을 차듯 발길질을 해대었다. 발길질이 어머니라는 존재에게 보내는 신호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입맛이 없어 숟갈을 놓으려다가도 태아가 옆구리를 툭툭 건드리면 나머지 밥을 국에 말아 다 먹었다. 황소에 관한 남자의 꿈이 아니더라도 건강한 사내아이가 태어날 것 같았다. 세상은 넓단다. 너는 부모를 잘 만나 좋은 집에서 살 거야. 양희의 혼잣말이 시작되었다. 아이에게 나쁜 말을 들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감정을 절제하면서 얘기했다. 임신기간은 남들과 같았지만 짧은 시간이었다. 어느 날 새벽, 화장실에 가던 길에 양수가 터졌다. 양희는 젖어버린 팬티를 가까스로 갈아입었다. 엉거주춤 선 채 곤히 자고 있는 남자의 여동생을 깨웠다.

 

병원의 복도에는 크레졸 냄새가 가득했다. 남자는 양희보다 먼저 병원에 도착했다. 머리가 헝클어진 채 병원에 도착했던 양희와 일별을 하고 의자에 앉았던 남자는 로봇처럼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담배를 뽑아 입에 무는데 거의 무의식적인 동작에 가까웠다.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 가장 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남자는 귀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병실에 들어간 후 4시간도 더 지나있었지만 임산부의 신음 소리는 턱없이 낮았다. 간혹 간호사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섬뜩하게 들리기도 했다.

양희의 목청이 커지면서 남자는 일어났다 앉았다. 두 손을 꽉 잡고 한쪽 다리를 흔들어 대던 남자는 이제 아기의 울음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라이터를 찾느라 주머니란 주머니는 다 뒤지다가 의자에 놓여있던 라이터를 발견하고 담배 끝에 불을 붙였다. 벌써 한갑을 다 피운 상태였다. 담배를 들고 있는 검지와 중지가 가끔씩 떨리는 바람에 몇 개비는 거의 태우지도 않은 상태에서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날카로운 아기의 첫 울음이 폭죽처럼 터졌다. 이어 아기는 낯선 공간이 두려운 것처럼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문을 바라보고 서있는 남자의 심장은 깜박이 등처럼 빠르게 벌떡거렸지만 문은 천천히 열렸다.

“아들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남자가 들어가려는 자세를 취하자 간호사가 손을 내저었다. 다시 문이 닫혔고 서성거리던 남자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화장실을 찾았다. 화장실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남자는 달리다시피 했다.

남자가 회복실로 들어 왔을 때 양희는 지푸라기 하나도 들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수고 했어요.”

남자가 손을 쳐들더니 이마에 달라붙은 몇 올의 젖은 머리칼을 치우면서 속삭였다. 남자는 곧장 아기를 보기 위해 몸을 숙였다. 남자의 등을 쳐다보는데 눈물이 밀려 나와서 양희는 얼굴을 돌렸다. 남자는 기저귀를 들치면서 입 가장자리가 눈 꼬리까지 붙을 정도로 얼굴에 웃음을 담았다.

두 시간 간격의 진통이 한 시간으로 바뀌고 그러다 5분 간격이 될 때까지는 길고 긴 시간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끌던 아기는 머리를 내밀면서 마치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미끄러져 나왔다. 움푹 들어간 배를 만지던 양희는 아기를 안고 있는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양희는 손을 짚어가며 엉덩이 걸음으로 남자 앞으로 다가갔다. 꿰맨 하반신의 쓰라림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아기 젖 좀 물릴래요.”

남자는 양희의 표정을 보더니 조금 물러나 앉았다. 실내가 더워서 남자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짜내 버리라는 간호사의 말을 무시하고서 젖을 꺼내었다. 소리를 지르면서 울던 아기는 서툴게 젖꼭지를 물었다. 세차게 빨았지만 적은 양의 젖이 나왔고 아기는 곧 잠들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아기의 피부는 미색의 솜털로 덮여 있었다. 아기의 발가락을 만지던 양희는 까만 머리털이 가리고 있는 정수리를 쳐다보았다. 아기의 들숨과 날숨에 따라 들썩이고 있었다. 겨울바람이 채 가시기도 전 갓 돋아난 싹처럼 여린 모습이었다.

사흘이면 퇴원과 동시에 아기를 넘겨주기로 했지만 양희는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대신 남자는 아기에서 분유와 젖을 함께 먹여야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아기는 다른 아기들과는 달리 분유도 먹고 젖도 빨았다. 분유 먹이기는 남자의 누이동생이 양희 옆을 지켰기 때문에 지켜질 수밖에 없는 약속이었다. 남자는 퇴근 후에 잠시 들러서 누이동생과 교대를 했지만 12시쯤 되면 집으로 돌아갔다.

사흘 쯤 되자 아기는 눈을 떴고 하품을 자주했다. 젖 먹던 힘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아기는 젖을 빠는 힘이 강했다. 젖을 빨릴 때마다 자궁의 한 귀퉁이가 찌릿찌릿해지곤 했다. 아기가 세상이 나오면서 제 어미와 분리되느라 탯줄을 끊지만 완전한 분리는 아니었다. 아직 아기와 어미는 젖꼭지라는 매개체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기는 소리가 나면 눈동자를 굴리곤 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아직 새의 날개처럼 팔은 접혀 있었지만 손가락은 계속 꿈지럭 거렸다. 워낙 먹성이 좋은 아기였기 때문에 대변의 양도 많았다. 공기가 잘 통하지 않는 종이 기저귀를 채우면서 집에 돌아가 천 기저귀를 채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 몰라 어머니에게 부탁을 했기 때문에 기저귀가 준비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데려가서 힘이 닿는 대로 키우고 싶었다. 돈도 필요 없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곤 했지만 아이에겐 엄연히 아버지라는 존재가 버티고 있었다.

남자는 아직 핏덩이인 아기를 안고 어르는 소리를 낼 때가 있었다. 잠든 아기를 안은 채 미소를 담은 표정으로 바라보다 천천히 내려놓기도 했다. 남자의 행동이나 손길은 무척 익숙해 보였다. 남자가 가져 온 아기용품은 대부분 고급제품이었다. 아기는 이미 부잣집의 외동아들이었다. 만약 양희가 키운다면 병신 엄마를 두었다는 꼬리표가 붙어 다닐 게 뻔했다. 양희의 눈 가장자리는 며칠 새에 빨갛게 짓물렀다.

일주일이 되는 날 양희는 새벽부터 일어나 아기를 안고 있었다. 전날 남자가 일부의 짐을 챙겨갔기 때문에 분유와 젖병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덮고 있는 얇은 이불은 아이를 감싸 가지고 갈 물건이었다. 곁에서 잠들어 있는 누이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애기가 아프면 어떻게 하죠.?”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에요.”

“한 달만 함께 지내면 안 될까요?”

“빨리 데려가는 게 아가씨한테도 좋고 애기한테도 좋다는 거 아가씨가 더 잘 알텐데....”

여자는 몸을 돌리고 이불을 당겨 덮었다. 양희는 옆으로 몸을 돌려 아기를 바라보았다. 아기는 세상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은 구부러진 팔과 다리, 하품을 하는 모습까지 배냇짓이었지만 하루하루 다른 모습이었다. 미등 아래 잠들어 있는 아기를 들여다보던 양희는 남자의 누이를 돌아봤다. 깊이 잠들어 있는지 누이의 숨소리가 컸다. 양희는 상체를 일으켜서 조심스럽게 앉았다.

형광등은 소등이 되어 실내는 알맞게 어두웠고 바깥에서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겉옷이 개켜져 사물함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환자복을 입은 채 빠져 나가야 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실내를 휘둘러보던 양희는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아기가 양희를 어머니로 두면 불행할 수밖에 없었다. 다리를 오므리고 모로 누웠다. 흘러나오던 눈물이 좀처럼 멎지 않아 얼굴을 베개에 묻었다.

잠을 설쳤던 탓에 일어나니 8시가 가까웠다. 양희는 나쁜 꿈을 꾼 사람처럼 벌떡 일어났다. 곤히 잠들어 잇는 아기를 쳐다보다가 아기를 품에 안았다. 아기는 잠이 덜 깨서 칭얼거렸지만 젖꼭지가 볼 근처에 닿자 얼굴을 움직여서 젖꼭지를 물었다. 졸음에 겨워 눈을 감은 채 젖을 빨아대던 아이의 얼굴에 눈물이 똑똑 떨어졌다. 아기가 놀란 듯 눈을 뜨고 젖을 빨던 동작을 멈췄다. 아기는 허공을 바라보듯 제 어미를 계속 쳐다보았다. 그러는 사이 복도에서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장실에 갔던 남자의 누이가 문을 밀고 들어오자 양희는 아기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누이는 아기용품을 보자기로 쌌고 양희의 짐은 가방에 넣었다.

물건을 싸기가 무섭게 회복실에 남자가 들어왔다. 몹시 바쁜 사람처럼 행동을 해서 마치 들이닥치는 것처럼 보였다. 남자는 아기가 깔고 있던 담요로 말아 안았다.

“어머니를 만나서 모든 걸 다 매듭지었어요. 그동안 애썼어요. 병원비는 계산했으니까. 그냥 나가면 될 겁니다.”

남자가 일어서면서 말했다. 이런 식이 아니다 싶었다. 양희도 일어났다.

“애기랑 한 달만 더 있게 해주세요. 아니, 친권포기 할래요.”

이미 아기용품이 담긴 보따리는 누이동생과 함께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신발을 신고 있던 남자는 열린 문을 밀고 나갔다. 남자의 소매를 잡으려던 양희는 허공을 젓고 말았다. 양희는 슬리퍼를 꿰면서 쏜살같이 따라 나갔다. 어젯밤 감은 머리가 가을의 마른 풀처럼 들떠 있는데다 환자복을 입고 있어 복도에 있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쳐다보았다. 양희가 신은 낡은 슬리퍼가 복도 바닥을 탁탁 때렸다.

승용차는 아직 문이 열려 있었다. 뒷좌석에서 승용차 문을 닫으려던 중년 여인이 쳐다보았고 양희와 눈이 마주쳤다. 아기는 여자의 품에 안겨 있었다. 낯선 얼굴을 본 순간 양희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차가 움직이는 동안 화장기 없는 얼굴의 중년 여인은 양희를 빤히 쳐다보았다. 차가 병원정문을 통과하자 양희는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김은숙   2009-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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