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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을 품은 여자 <4>


 

 

8.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샜고 낮에 잠간 잠들었다 소스라치듯 깨곤 했다. 사흘 내내 먹은 거라고는 물 뿐이었다. 그런데도 젖이 불어 옷을 적시고 이불을 적셨다. 젖이 마르는 약도 소용이 없었다. 젖이 스며 든 옷에서 아기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약국에 다녀온다며 어머니가 집을 비웠기 때문에 적막한 오후였다. 바람만 간혹 창을 두들기곤 했다. 젖은 눈을 닦던 양희는 일어나 앉았다. 병원에서 감았던 머리는 아예 엉겨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머리를 감았다. 수건으로 머리를 대충 털고 계절에 맞지 않는 두꺼운 옷을 몸에 걸쳤다.

중랑천의 건너편 둑에서는 아지랑이가 가물거리고 있었다. 아지랑이를 보자 현기증이 일었다. 잠시 동안 쓰러져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냥 지나쳤다. 기울던 해가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잠깐 잠들었던 것 같았다. 양희는 반코트를 여미고 다리를 모아 앉았다.

마치 징검다리라도 놓인 양 양희의 시선은 강물 위를 천천히 갔다가 다시 거슬러오곤 했다. 간혹 강물을 타고 쓸모없는 물건들이 떠내려 오는 게 눈에 띄었다. 그 중 하나는 장난감이었다. 샛노란 병아리가 둥실둥실 리듬을 타듯 물살을 따라 떠내려갔다.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니 양희의 몸이 일그러진 형태로 물위에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마치 쓸모가 없어 버린 물건 같은 몰골이었다. 젖가슴만 터질듯이 부풀어서 묵직하게 느껴졌다. 양희는 돌을 던져서 몸이 산산조각이 나고 멀리 흩어지는 걸 바라보았다. 물살 무늬에 따라 조각이 났던 몸은 마치 퍼즐처럼 다시 달라붙었다.

고개를 들어 무명실처럼 가늘고 긴 수양버들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걸 멍하니 바라보았다. 잔가지에 붙은 무수한 잎이 바람에 부대끼면서 별처럼 반짝였다. 양희는 가슴 사이에 손을 넣고 흉터를 만져 보았다. 삼십 여 년 동안 품고 살았던 별 모양의 흉터였다.

아들을 낳아 준 대가로 받은 돈으로 집도 옮겼고 인수도 대학은 무난히 졸업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수는 결혼해서 분가했고 남수는 혼인신고를 하고 동거를 하니 앞으로 결혼식만 간단히 올리면 되는 일이었다. 그 후 돈은 얼마 남지 않겠지만 인수도 취직을 할 테고 아들이 셋이나 되니 어머니야 사는 게 어렵진 않을 것 같았다. 이제 양희가 없어도 집안은 길이 든 자동차처럼 굴러갈 것 같았다. 양희는 한참 젖가슴을 내려다보다 일어났다.

“어디 갔다 오냐?”

“바람 좀 쏘였어요.”

“클 날라고. 아직 나 댕기면 안 돼.”

어머니는 간혹 사투리를 섞어 썼지만 자연스러웠다. 돈이란 사람의 마음까지 넉넉하게 하는 것 같았다.

“밥 좀 먹어야겠어요.”

어머니는 그동안 고아둔 사골뼈 국물을 뚝배기에 담아 내왔다. 계란찜과 구운 조기도 밥상에 올라있었다. 양희가 밥 한 그릇을 다 비우자 어머니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가 설거지 하는 틈에 양희는 집에서 나왔다. 양희는 손에 들린 쇼핑백에 지갑을 넣었다. 지갑에는 오천 원 권 지폐 한 장과 신분증이 들어 있었다. 지갑 아래쪽에는 빨랫줄이 돌돌 말린 채 담겨 있었다.

다시 강둑으로 나온 양희는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다. 오월이라서 양희의 뒤쪽에 있던 해가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강물에 비친 나무의 그림자를 따라 양희의 그림자도 경쟁하듯 길어졌다. 강물이 검을 색을 띠면서 바람이 차가워졌다. 수양버들 가지 사이로 몇 마리의 새가 날아들었다가 곧장 날아갔다. 한 아름 정도 되는 수양버들의 굵은 둥치는 키가 큰 남자가 팔을 뻗으면 손끝이 닿을만한 위치에서 두 갈래로 뻗어 있었다. 한쪽 가지는 바닥과 평행선은 아니었지만 많이 구부러져 있었다. 양희는 몇 번이나 나무를 눈여겨보았다. 해가 지면서 강물에 놓여있던 양희 주변의 잔풀 그림자까지 사라졌다.

양희는 원숭이해에 태어났고 나무를 잘 탔다. 어릴 적 나무에 올라가 있는 양희를 보고 어른들은 혀를 끌끌 차면서 아버지를 닮았다고도 했다. 아직 봄이라서 그런지 인적이 일찍 끊겼다. 양희는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 심호흡을 했다. 나무를 잡고 위를 쳐다보다가 양쪽 발을 둥치의 아래쪽에 대었다. 왼 팔에 빨랫줄을 걸쳤고 오른팔로 나무줄기를 휘감았다. 개구리가 헤엄치듯이 천천히 나무를 타고 올랐다.

올라가서 보니 부드럽던 양희의 팔과 손은 여기저기 긁혔고 군데군데 피가 맺혀 있었다. 해가 졌는데도 쉬이 어두워지지 않아서 고개를 드니 한입 베어 문 과일조각 같은 상현달이 남동쪽 하늘에 있었다. 줄을 매고 나서 강물에 빠져있는 수양버들을 내려다보았다. 간혹 구름이 달을 가리면 깜깜해지곤 했다. 하늘에 구름이 제법 깔려 있어서 적당히 어두운 밤이었다. 줄이 단단한지 당기면서 내려다보니 흰색의 쇼핑백이 누워있는 게 보였다. 그 안에 지갑이 들어 있어서 신원을 확인하기에 어려움은 없을 것 같았다.

줄을 목에 매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목감기에 걸린 것처럼 목안이 타는 듯한 느낌이었다. 깁스한 것처럼 목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팔에는 링거바늘이 꽂혀 있었다.

“이것아... 어쩌자고...”

어머니는 콧물을 닦았다. 가족 중 인수만 보이지 않았다. 시선이 부담스러워 다시 눈을 감았다.

“초저녁에 잠이 들었는데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바람이나 쐬려고 나왔다가...앞길이 구만리 같은 사람이 죽기는 왜 죽어.”

노인의 목소리였다. 양희가 눈을 뜨고 가까스로 얼굴을 돌리자 다리를 줄에 매단 환자가 보였다. 칠십은 족히 되었을 듯한 얼굴이었다. 양희의 눈을 쳐다보면서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찼다.

“처음에는 소리를 쳤지. 소용이 없어.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거야. 급한 김에 내가 올라갔어. 사람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하니까 올라가지는 거야. 마치 몸이 붕 뜨는 것 같았어.”

줄은 어떻게 풀어 양희의 몸은 언덕에 안전하게 떨어졌는데 칠십이 넘은 노인이라 내려오기가 무리였던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나무에서 내려오려고 몸을 틀다 떨어졌다. 나무 아래 박힌 바위에 정강이를 부딪치면서 골절이 되어 꼼짝할 수가 없었다. 강물에 몸이 곧 떨어질 것 같아 언덕을 끌어안고 소리를 지르니 마침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남자가 달려왔다.

“워낙 몸이 좋지 않아서 이제 깨어 난 거야. 앞으로는 당최 그런 마음 먹지마라. 할머니까지 큰일 날 뻔 했잖아.”

어머니 말에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둘 다 명이 길어서 그래. 저승사자도 왔다가 할 일이 없어 내 신발을 한 짝 훔쳐 갔을 거야. 아무리 찾아도 신발이 없네.”

신발 한 짝이 둥둥 떠내려가는 게 보이는 듯 했다. 노란 장난감처럼. 의치여서 합죽한 입 모양이 되어버린 할머니의 얼굴이 천진해 보였다. 하마터면 노인이 강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양희는 일어나려다 픽 쓰러졌다.

“죄송해요. 할머니. 다시는 안 그럴게요.”

비스듬히 누워 나직이 말했다. 할머니는 팔을 들어 양희의 머리를 쓰다듬는 모양새를 취했다. 양희가 오른팔을 내밀자 할머니의 손끝이 닿았다. 할머니가 손을 더 내밀어서 양희의 손을 잡았다.

“암...그래야지. 참한 색시가 그러면 쓰나. 나도 한이 많은 사람이야. 내게도 병신자식이 하나 있었지. 일찍 죽었지만...”

할머니가 점점 낮게 중얼거렸기 때문에 나중에 하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두어 달 몸을 추스른 다음 다시 취직을 했다. 환절기 때만 바쁜 맞춤전문 수제화 공장이었다. 시간이 너무 더디 흐르기 때문에 퇴근 후에도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다. 좋아하는 소설을 읽기도 했지만 눈물샘을 자극하는 내용이 들어있어 역효과가 나는 경우가 많았다.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시간을 때울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게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아이쇼핑 같은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상가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어느 날 잡화점에 들렀다가 아름다운 액자를 보았다. 거기에는 탐스러운 꽃과 노란 빛깔의 새가 그려져 있었다. 동양자수로 꾸민 액자였다.

이틀 배우고 수틀과 문양이 그려진 명주 천을 구입했다. 무늬는 커다란 꽃 세 송이와 나비 한 마리, 이파리가 두 개가 전부였다. 따라서 색실은 대여섯 가지였다. 단단하게 무장을 하느라 오른쪽 검지에 골무도 꼈다. 작은 바늘구멍에 실을 꿰는데 호롱불 앞에서처럼 눈앞이 흐릿해졌다. 서툴러서가 아니라 마음 때문이었다.

작고 가는 바늘을 따라 색실이 수틀을 오르내렸다.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수를 놓다보니 허전함이 가셨다. 가끔 바늘이 공 모양의 왼손바닥을 찌르면 피가 솟으며 가슴에 찌르르 통증이 지나갔다. 아기를 실은 승용차가 마치 가슴 위를 가로질러 가는 것 같았다. 젖을 빨던 아기 생각이 날 때면 여지없이 손을 찔렀다. 며칠이 안 되어서 왼손 바닥에는 바늘꽂이처럼 숭숭 구멍이 났다. 손이 너무 아프다보면 가슴 속의 통증이 누그러지기도 했다.

퇴근 후에 집에 오는 길도 고역이었다. 시장을 지나쳐 와야만 했는데 아동복 집이 너무 많았다. 아동복은 색상이 튀어서 멀리서도 식별할 수 있었다. 힐끔거리지 않아도 가게 앞의 차양 밑에 걸려 있는 옷은 눈에 들어왔다. 신생아 용품점은 차마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문득 마주쳤던 신발은 모양과 빛깔이 특이해서 장식품 같았다. 양희가 임산부 시절에 샀던 유아용신발도 거의 그 정도의 크기였다. 생각해 보니 겨우 신발 하나만 골라서 선물 해줄 수 있었던 어미였다. 어미구실을 못했다는 자책감도 스스로를 무력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였다. 결국 양희는 시장을 피해 다녀야만 했다.

하루하루를 버티게 해준 건 차라리 목숨을 구해준 할머니라 할 수 있었다. 할머니의 다리 골절은 꽤 시간이 흘러서야 완치가 되었다. 거무스름했던 골절 부위의 피부가 제 색을 찾기까지 양희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관계였지만 양희에게는 어머니보다 오히려 따뜻한 존재였다. 퇴원을 하는 할머니와의 약속은 간혹 전화를 드리는 일이었다. 시간의 흐름도 얼어붙었던 마음에 훈기를 불어 넣는 것 같았다. 안정이 되자 집안 환경을 바꿔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우선 이사부터 했다. 볕이 잘 드는 연립 맨 위층으로 이사를 했다. 남수도 곧 결혼할 예정이어서 자그마한 방 세 개로도 충분했다. 멀리 용마산이 보였고 중랑천이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눈에 잡혔다. 두 동밖에 되지 않아 가족적인 분위기의 연립이었다.

 

 

9. 막다른 길

 

인수는 예정대로 대기업에 취직을 했다. 이제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나날들이었다. 인수가 한사코 쉬라는 바람에 집에 들어앉아 살림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었다. 그날 양희는 시장에 나가 저녁거리를 푸짐하게 샀다. 육개장을 끓여먹을 예정이었다.

나일론 천으로 만들어진 시장바구니를 왼손에 들고 비닐봉지는 오른 손에 들었다. 오다가 몇 번이나 쉬다보니 벌써 가로등이 켜지고 있었다. 11월 중순이라 쌀쌀한 바람이 부는데도 등에 땀이 흘렀다. 가까운 곳에 작은 슈퍼가 하나 있었지만 야채도 싱싱하지 않았고 비쌌다.

그곳의 마트는 할인이라는 단어가 수식어로 붙어 있었고 가격도 저렴했다. 일을 그만두면서는 주로 그 마트를 이용했다. 정육코너에서 취급하는 수입육도 질이 좋은 편이었다. 물건이 많아서 무거웠다. 양희는 어머니를 부를까 하다가 그만두고 숨을 몰아쉬면서 연립 입구 쪽으로 통하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놀이터 쪽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놀이터에는 아이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놀이터를 지나면서 오층에 시선을 던지려던 양희는 이상한 예감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쳐다보았다. 검은색 승용차였다. 승용차는 미등처럼 켜져 있는 가로등 아래에 있어서 쉽게 눈에 띄었던 것 같았다. 산그늘 때문에 일찍 켜지는 가로등이기도 했다. 인수의 퇴근시간에 맞춰 저녁을 먹기 위해 시장을 봤기 때문에 늦은 저녁 준비였다. 가로등과 승용차와 늦은 저녁의 인과간계 같은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승용차가 눈에 익었기 때문이었다. 등에 식은땀이 흐르면서 팔의 힘이 빠지고 시장바구니와 비닐봉지가 손에서 동시에 떨어졌다.

물건을 놓치면서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이사까지 했는데 그 남자가 집을 찾아 온 걸 보면 필시 곡절이 있을 것이었다. 아이가 죽었을까. 심호흡을 하면서 일어섰지만 다시 주저앉았다. 아파트의 현관문을 미는데 마치 뒤쪽에 돌이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걸어가는 동안 머릿속의 시간은 이미 멈춰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구부린 자세로 몸을 밀어 넣었다. 형광등에서 뿜어져 나온 하얀빛에 눈이 시렸다. 숫자가 적힌 버튼을 겨우 누르고 벽에 기대어 서서 버티었다.

문 앞에 다가섰지만 집안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 침묵은 두려움이었다. 싸움이라도 벌어 졌다면 오히려 편할 것 같았다. 벨을 길게 한번만 눌렀다. 어머니는 마치 현관문 손잡이에 딸려 나오는 것처럼 행동을 했다. 어머니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움직였고 눈 가장자리는 마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것처럼 빨갰다. 어머니는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움직이다 그만 두었다.

어머니 어깨너머로 남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양희의 시선은 남자가 안고 있는 아이의 머리칼과 다리를 오갔다. 양희는 손에 든 물건들을 현관에 놓아버리고 남자에게 다가갔다.

“대체 무슨 일이죠?”

남자는 아주 천천히 얼굴을 돌려 양희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했으면 할까, 의논하려고요.”

집 밖에 나서면 달음질을 칠 나이의 아이였지만 아이는 남자의 허벅지를 깔고 누워 있었다. 아이는 곁눈질을 하듯 형광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 가장자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침을 남자가 닦아 냈다. 비틀어버린 것 같은 팔이 조금 들렸다. 손바닥이 천장을 향해 있었고 몇 개의 손가락이 각기 움직였다.

“조금만 참자. 곧 집에 갈게.”

남자가 아이의 이마와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기가 왜 이러냐고요.”

아이를 쳐다보고 서 있던 양희가 남자의 어깨를 잡아 흔들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이가 곁눈질로 양희를 올려다보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의 입 모양이 심하게 틀어졌다.

“나도 모르겠어요.”

남자의 목소리는 떨렸고 머리카락이 거칠게 흔들렸다.

“애가 병신이 되었잖아. 그런데 모른다고? 똑바로 말하라고요.”

양희가 고함을 치자 어머니가 양희의 팔을 잡았다.

“어쩌겠냐. 일단 얘기나 들어봐라.”

몇 걸음 움직여 주방 쪽으로 다가간 양희는 수돗물을 받아서 벌컥벌컥 마셨다. 둥근 밥상을 밀어 버리고 그 자리에 앉았다. 남자는 눈을 내리깔고 말을 끄집어내었다.

“애가 병치레를 해서 병원에 자주 다녔어요.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잘은 모르겠고 모든 게 늦된다는 생각만 했어요. 아이는 점점 더 이상해졌고... ”

남자의 아내가 이혼하자고 소동을 피운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애들이 많아 아내와 헤어질 수 없다는 말을 하면서 한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태어났을 때 아무런 장애도 갖고 있지 않던 아이였다. 양희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이리 주세요. 댁은 애를 기를 자격도 없고 애 아버지도 아니에요.”

남자를 밀면서 아이를 빼앗아 안았다. 아이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양희는 아이를 세우는 자세로 가슴에 안았다. 등을 토닥거리자 아이는 금방 울음을 그쳤다.

“양육비는 달라는 대로 줄게요.”

양희가 고함을 쳤다.

“그런 거 필요 없으니 빨리 집에서 나가요.”

“오늘은 그냥 갈게요.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를 해요.”

남자가 상의의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면서 말했다. 남자가 일어서려하자 양희가 재빨리 말했다.

“아니요. 같이 병원으로 가요. 무슨 일인지 알아야겠어요.”

두 사람이 갔던 곳은 근처에 있는 병원이었다. 외과와 내과를 겸하고 있어 진찰이 가능할 것 같았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아직 환자가 있었다.

진찰을 하니 중증의 뇌성마비였다. 태어날 때 아무렇지 않았다고 하니까 의사는 글쎄요,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선천적인 경우가 많지만 가끔 병을 잘못 치료하여 그리되는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침으로 치료한다면서 신경 계통을 건드리는 경우가 간혹 있고요. 의사는 말꼬리를 흐렸다. 의사는 아이가 혼자서 걸을 수는 있을지 아직은 판단이 어렵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양희는 병원에서 나오자 아이를 승용차에 뉘어놓고 남자의 멱살을 잡고 어떻게 한 거냐고 다그쳤다. 남자는 의사의 말이 맞을 거라면서 차라리 자기를 두들겨 패라고 했다. 아이를 정상으로 되돌려 놓으라고 악다구니를 쓰다가 양희는 지하 주차장 바닥에 누워버렸다. 뒹굴면서 목이 쉬도록 울부짖었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서 있던 남자가 양희를 잡아서 일으켰다. 승용차 한 대가 빵빵 거리면서 양희를 바짝 스쳐 지나갔다. 메아리처럼 사방에서 소리가 울렸다. 아이가 깨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주차장이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아이를 두고 간 남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받았다.

“준호 데려가세요.”

병원비와 양육비는 걱정 말라는 남자에게 어머니가 잘라 말했다. 양희는 전화를 받던 어머니에게서 수화기를 빼앗았다.

“전화하지 마세요. 준호는 내가 기를 테니...”

남자가 대답할 틈도 없이 수화기를 놓았다. 가족의 반대가 심했지만 아이를 맡았다. 얼마나 기르고 싶었던 자식이었던가. 어차피 결혼 할 생각이 없으니 아이를 기른다는 게 당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치료를 하면 아이가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가졌다. 종합병원에서 진찰한 결과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꾸준한 치료가 준호의 상황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포대기로 업기가 어려워 유모차 한 대를 마련했다. 사람이 많은 곳에도 떳떳하게 밀고 다녔다. 그러나 이상한 사람들이 많았다. 남의 삶에 참견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실감하는 나날들이었다. 앞에서는 웃어 보이면서 머리로는 끊임없이 딴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병신 여자를 얻으면 병신자식을 낳는다는 말이 들릴 때면 차라리 귀머거리가 되었으면 싶었다.

일 년 반이 되도록 병원에 다녔지만 준호는 별 차도가 없었다. 친권을 포기하고 싶었던 시간이 있었기에 절망을 할 필요는 없었다. 아이가 평생을 누워 지낼 지라도 함께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았다. 엄마를 잘 알아보고 이름을 부르면 쳐다본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런 마음이었다.

시장을 들르겠다는 어머니와 은행에 갔던 날이었다. 카드를 막는 날이라서 은행이 몹시 복잡했다. 어머니는 유모차 곁에 서 있었고 양희만 안으로 들어갔다. 밖으로 나오자 유모차도 어머니도 보이지 않았다. 이 삼 십 미터 떨어진 곳에 몇몇 아이들이 빙 둘러 서 있는 게 보였다. 직감적으로 유모차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준호의 울음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느낌이 좋지 않았다. 다가가자 초등학교 삼사학년 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도망을 쳤다.

준호의 얼굴에 달라붙어 있던 수십 개의 가래침을 닦아내면서 양희의 얼굴에는 눈물과 콧물이 뒤섞여서 흘러내렸다. 유모차 앞의 양품점에서 어머니가 달려 나왔다. 어머니는 멋쩍은 표정으로 양희를 바라보면서 유모차의 손잡이를 잡았다. 양희는 어머니를 밀쳐버리고 유모차 손잡이를 잡았다.

집에 와서 아이의 옷을 정리했다. 준호는 파란색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대부분 파란 빛깔의 옷이었다. 정확하게는 하늘색, 파란색, 남색 계통이었다. 방의 커튼은 연두 빛 바탕에 큼직한 파란무늬였다. 몇 가지 옷과 한 번도 쓰지 못했던 기저귀 천을 쇼핑백에 담았다.

택시기사는 요금을 덤으로 더 주겠다는 말에 표정을 풀더니 일어나서 밖으로 나왔다. 기사는 손수 유모차를 뒤쪽 짐칸에 실었다. 어머니 몰래 나와야헸기 때문에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양희는 허둥지둥 내리는 척 하면서 요금을 후하게 계산을 했다. 아이를 안고 가방을 한손으로 끌어당겼다. 퇴근길이라 택시기사는 옆에 서있던 손님을 태우고 그냥 떠나버렸다. 어차피 유모차는 필요가 없었다. 지나는 사람들도 두 모자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준호는 한 팔로 들어도 가벼웠다. 왼쪽 팔에 쇼핑백의 줄을 끼우고 오른팔로 아이를 안았다. 왼쪽 손으로 아이의 등을 받쳤다. 중랑천을 향해서 걸음을 뗐다.

해가 지고 있어서 강물에 무엇이 떠가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추웠다. 양희는 준호에게 옷을 여러 겹 껴입혔다. 준호의 목을 몇 번이나 눌러 버리려고 했지만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구정물 속에 뜬 호박씨 같은 인생. 호박죽 솥에 콱 빠져 버리지 왜 팔만 짚었을까. 중얼거리면서 준호를 기저귀 천으로 둘둘 감았다. 우는 소리가 귀를 때렸지만 아이를 마른 풀 위에 뉘어놓고서 소주를 병째 마셨다. 아이의 옷을 강물에 던졌다. 너는 죄가 없어서 천당으로 가겠구나. 나는 죄가 많아 너와 함께 가지 못할 거야. 그래, 네 어미 노릇은 더 이상 못하겠지.

 

양희가 눈을 뜬것은 병원 응급실이었다. 실어증처럼 환자처럼 양희는 입을 열지 않았다.. 담당 의사에 의해서 양희는 신경 정신과로 옮겨졌다. 정신과 의사는 양희에게 친절했다. 정상이 아닐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아이를 왜 천으로 감았느냐고 물었다.

“추울까봐서요.”

말을 하던 양희는 울음을 터트렸고 의사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자식 유기죄의 값이 얼마나 되는 줄 아세요?”

양희는 고개를 저었다. 의사는 냉정한 표정으로 앞에 있던 종이에 무어라고 적었다. 감정 결과 양희는 약간의 우울 증세가 있지만 정신이 온전하다는 판명이 났다.

양희는 병원에서 교도소로 이송되었다. 햇살이 깊숙이 비쳐드는 오후였다. 유리창을 가린 철망의 그림자가 양희의 몸을 덮고 있었다. 마름모꼴의 그림자 무늬는 구겨진 천 같았다. 힐끗거리는 다른 수감자들의 시선을 피해 밖을 내다봤다. 잎이 다 떨어져 버린 가로수에 바람이 지나는지 잔가지가 휘청거리고 있었다. 무연한 눈으로 스쳐 지나는 나무들을 바라보던 양희는 수갑을 찬 두 손을 가슴에 얹었다.

 

 

 

                                                                                          -끝-

 

 

 

 

 

김은숙   2009-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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