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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눈처럼 내리던 날







 :: 아름다운 항구도시 시드니


                                                                                         1

 

  10여 시간을 좁은 기내에서 시달려야 한다는 것. 미리서부터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두어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비행기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바람 때문이라며 안전벨트를 매라고 한다. 나는 이미 착륙 때부터 맨 벨트를 그냥 두고 있는 상태이다. 비행기를 타본지 10년이 넘었으니 바보처럼 10 시간 동안 안전벨트를 매고 있을 수밖에... 비행기는 착륙과 이륙 때만 안전벨트를 매고 안전한 상태일 때는 안전벨트를 매지 않는 게 상식이란다.

호주에 들어서면서 날이 밝아온다. 나무보다는 잔디에 덮인 평지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대부분의 길이 줄긋기를 한 것처럼 반듯하다. 드디어 비행기는 바다로 들어선다. 시드니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공항으로 나중나온 딸은 동남아시아 사람처럼 새까맣다.  농장에서 석 달 이상을 일했으니 제대로 탈 수밖에. 물론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이기는 하다. 나는 눈물이라도 날 줄 알았는데 그냥 무덤덤하다. 여행에 대한 설레임 때문일 수도 있다.

시드니 공항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기사는 딸아이에게 어느 나라 출신이냐고 묻는다. 사우스 코리아라고 하니 ‘오’라는 감탄사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중국인인 그 운전수는 딸이 필리핀 사람으로 착각되었던 것 같다. 내 보기에도 딸은 영 그런 얼굴이다. 일단 딸이 회화를 좀 하는 것 같아 안심은 된다.

35달러. 한국에 비하면 비싼 요금이다. 대중교통비도 만만치 않다고 딸이 얘기한다. 숙소는 차이나타운 뒤에 있다. 한국 사람이 소유한 아파트로 가게 되어 있어 그 근처에서 내렸다. 한국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건물과 영어로 쓰인 간판들. 난 영화 속으로 뛰어든 것만 같다.

숙소는 깨끗하지만 좁은 편이며 오피스텔 스타일이다. 렌즈가 전기를 꽂아 쓰게 되어있다. 음식의 조리가 더딜 것만 같은데 차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이니 그렇지도 않다. 집에 아무것도 없어서 아침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콜스마켓의 이층으로 가니 아직 식당은 준비 중이다. 중국 음식점 하나가 열려있다. 알아서 골라보라는 딸의 말에 음식을 하나 골랐는데 영 잘못 고른 것 같다. 중간에 딸과 바꿔먹었다. 음식이 입에 잘 맞을까 더럭 겁도 난다. 15년 이상 된 얘기인데 여행사를 따라 태국, 홍콩을 갔을 때 음식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있어 불안한 심정이 된다. 다행이 딸이 고른 국수는 입에 맞다. 외국 생활 10여 개월에 벌써 입이 길들여졌는지 딸은 뭐든지 다 맛있다는 말을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콜스마켓에서 식품류를 사고 페디스마켓으로 가서 과일과 야채를 샀다. 페디스마켓은 재래시장을 방불케 했다. 과일을 낱개로도 살 수 있는데 빛깔이 알록달록하니 참 다양하다. 집으로 돌아와 달링하버와 아쿠아리움을 가기로 계획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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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드니항

달링하버는 숙소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항구이다. 갈매기 떼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종종 걸음을 치며 다녔고 근처의 아름다운 건물이 마치 사진처럼 바다에 거꾸로 떨어져 있었다. 찻집과 술집이 바다를 따라 난 보도블록에 인접에 있었는데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꽤 많았다. 바다 주변을 어슬렁대는 사람들 대부분은 관광객인 듯 사진기를 휴대하고 있었다. 갈매기는 귀찮을 정도로 사람들을 따라 다녔다. 도시 근교에서 이처럼 아름다운 바다를 볼 수 있다니...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아쿠아리움 가는 길에 우르르 몰려가는 학생들을 만났기 때문에 우리는 찻집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달링하버에서 15분도 되지 않는 거리였다. 수족관은 미로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오리너구리이다. 오리 주둥이를 가졌는데 몸은 너구리처럼 생겼고 발에는 물갈퀴가 달려있었다.

심해의 어항에는 갖가지 크기의 물고기가 담겨 있었는데 상어가 몇 마리 섞여있었다. 먹이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상어는 모든 물고기에게 천적일 수밖에 없었다. 긴장된 삶이 동물의 건강을 오히려 증진 시킨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한편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수족관은 바다에 비해 좁으니 말이다.

 

뭐니 뭐니해도 가장 아름다운 건 말미잘 같은 촉수 동물이다. 나는 악어나 바닷가재보다 거기에 더 오랫동안 눈을 붙이고 있었다. 펭귄은 작고 어려서 꼬마신사라고 하면 알맞을 것 같았다. 기우뚱거리는 걸음이 꽤 귀여웠다.

                               

수족관을 구경하고 시티레일을 탔다. 철도가 공중에 떠 있는데 이층으로된 기차가 건물 사이사이를 누비며 다닌다.  몇칸 되지도 않고 칸도 작아서 꼬마기차라고 이름을 붙이면 딱인데 시내에서는 중요한 교통 수단인 것 같다. 우리는 일부러 시티를 두 바퀴 돌아 콜스마켓 앞에서 내렸다. 마켓에서 집까지는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편리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에 비행기에서 내렸으니 몹시 피곤했다. 식사 후 곧장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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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은 예약한 대로 블루마운틴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달리는 버스에서 내다보이는 경치는 이채롭다. 도로를 만드느라 깎은 언덕이 보인다. 밖으로 노출되면 단단하게 굳어지는 사암층이어서 낙석주의라는 글자가 필요 없다고 가이드가 얘기한다. 호주에는 터널도 별로 없다는 말을 덧붙인다. 나라 자체가 평평하고 반듯한 모양인데다 산은 멀찌감치 자리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두어 시간쯤 걸려 도착한 곳이 블루마운틴이었는데 가이드의 말처럼 산봉우리가 밋밋한 산이었다. 유칼립투스라는 나무 때문에 녹색이 아니라 청색을 띤다는 산이다. 우리나라의 산도 멀리서보면 청색을 띠는 경우도 있지만 블루마운틴은 유칼리나무의 유액에 태양광선이 지나면서 생기는 현상이라 하니 엄연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세 개의 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세 개의 그 바위는 주술사가 마왕에게서 세 자매를 보호하려고 봉우리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한다. 설악산처럼 빼어난 아름다움을 가졌다기보다는 다소 웅장한 느낌이다.

블루마운틴에서 내려와 휴게소처럼 자리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국인이 하는 식당이었으며 한식뷔페였다. 놀랍게도 그 건물은 십자가를 떼어버린 교회이다. 말하자면 식당으로 용도변경을 해버린 것이다. 시드니 중심지에서도 교회를 찾아보기 힘들다. 호주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해 별 흥미가 없는 모양이다.

오는 길에는 동물원을 들렀다. 캥거루와 코알라, 고슴도치, 펭귄 그리고 조류 몇 종류가 있는 동물원이었다. 코알라와 사진을 찍고 돼지처럼 생긴 웜벳과도 사진을 찍었는데 잠자는 걸 좋아하는 동물들이라서 두 동물 다 눈이 게슴츠레하다. 유칼립투스에 마약성분이 있어 그 잎을 먹고 사는 코알라는 늘 잠에 취해있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야생동물들은 관광객들이 만져도 도망가지 않는다. 양털을 깎는 코스가 있었는데 털이 너무 더러운 까닭인지 사람들은 별로 흥미를 갖지 않았다. 양들은 대량 사육되는 돼지처럼 더러웠다. 양털 깎는 남자는 노인이었는데 직업의식이 투철해 보였다. 양털을 깎던 더러운 손으로 노인은 의치를 빼서 양에게 끼워주는 시늉을 했고 관광객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노인이 날리는 부메랑은 나무를 돌아 그의 손으로 떨어지곤 했다.

씨티로 돌아왔을 때의 시간은 오후 6시 반 정도. 와인을 샀고 연어와 소시지를 샀다. 돼지고기를 갈아서 창자에 넣은 정통 소시지였는데 좀 짭짤했다. 한국인 식품점이 있어 김치까지 사왔으니 모자람이 없는 식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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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만 했다. 빡빡한 일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여행사 버스로 포트 스테판을 가는 날이었다. 사막에도 가고 조개도 잡을 수 있다니...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동안 흥분이 되었다. 얘기를 듣고 있노라니 어제의 가이드보다 노련하다는 느낌이 든다.

왼쪽으로는 바다였고 오른쪽에 사막이 있었는데 끝없이 펼쳐진 사막은 아니었다. 사막의 언덕에서 썰매를 타는 게 관광 코스 중 하나인 것 같았다. 나는 썰매를 타는 사람을 뒤로하고 사막을 따라 걸었다. 눈 위에서처럼 발자국을 내는 재미가 쏠쏠했다. 사막은 여자의 속살처럼 고운 빛깔을 띠고 있었다.

타고 갔던 지프로 다시 내려와서 바다에 들렀다. 사진을 찍으려는데 낙타가 꼬마들을 태우고 지나간다. 딸은 낙타의 그림자까지 사진기에 담는다. 사람들이 더러 눈에 띄었지만 조개를 캐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개흙이 섞여있지 않은 모래이니 먼 바다에나 나가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파도를 바라보다가 해변을 따라 걸었다.

오후에는 돌고래 촬영을 위해 배를 탔다. 가이드는 운에 따라 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한다. 운이 좋았는지 돌고래는 쉽게 눈에 띄었고 촬영도 했다.

와인시음장에 들었을 때는 해가 기울고 있었다. 근처 포도밭의 누렇게 시든 이파리를 보고 가을이구나 생각을 했다. 일정이 바쁘다보니 계절을 잊었던 것이다. 소줏잔보다 작은 잔에 참새 눈물만큼 부어주던 와인. 대여섯 번 마셔도 간에 기별도 안 간다. 관광객들도 약아서 시음만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았다. 딸은 12달러짜리 와인을 하나 산다.

그날 밤에는 와인으로 어림도 없어 펍에 갔다. 차이나타운에 있는 펍이었다. 머리 위쪽으로 열기구가 있어 전혀 춥지 않다. 옆 자리에는 중년 남자 둘이 앉아있다. 무슨 말을 하느냐고 딸에게 물으니 섹스에 관한 얘기란다. 일상적으로 나누는 대화인지 아니면 의도적인지 사뭇 궁금하다. 하지만 딸은 내가 석 잔을 비우자마자 가자고 보챈다. 집에 들어오면서 맥주를 몇 병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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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숙취 때문에 좀 늦게 일어났다. 날씨가 많이 흐렸다. 딸과 나는 피쉬마켓을 가기 위해 옷을 입었다. 우산은 준비하지 않았다. 허나 생각보다 피쉬마켓은 멀었고 제법 비가 내린다. 가랑비에 옷이 다 젖는다는 말이 전혀 틀리지 않다. 피쉬마켓에 도착했을 때는 푹 젖어 있었다.

들어가자 온갖 생선냄새가 실내를 꽉 메우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킹크랩과 랍스터이다. 대부분 삶아 팔고 있었다. 잘 팔리는 건 삶은 새우였다. 새우는 1킬로에 20 달러쯤 했다. 새우 1킬로와 랍스터 한 마리를 샀다. 딱딱한 랍스터를 어떻게 먹나 걱정을 하는데 기계에 넣어 반으로 갈라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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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에센트럴 파크역에서 울릉공 시티로 가는 티켓을 끊었다. 왕복 기차 티켓이다. 딸은 몇 번 홈에서 타야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성미를 아는 까닭에 나는 딸의 눈치를 본다. 이리저리 다니다 딸에게  물어보라고 성화를 댔다.  딸은 알아듣는 건 전혀 어렵지 않은데 복잡한 질문을 하기 어렵다는 말을 한다.  

 

울릉공에 도착하니 완전 시골이다. 사람이 별로 없어 건물의 그림자가 썰렁해 보인다. 딸이 역무원에게 물어서 가는 길을 알아낸다. 걸어서 시티비치까지는 25분 정도? 확실하진 않다. 호주의 바다는 어디나 모래가 곱다. 멀리 하얀 빛깔의 등대가 보인다. 등대 앞에 펼쳐진 잔디밭이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싱그러워 보인다.

 

등대 앞에 펼쳐진 언덕에서 바다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마치 못논처럼 물이 고여 있는 게 보인다. 저절로 만들어진 건데 마치 인공호수 같다. 저 멀리 아래쪽에 술병을 놓고 있는 남자가 보인다. 머리가 길고 옷이 누추한 걸 보니 거지일 수도 있겠다. 낭만적인 분위기로 봐서는 가난한 예술가 일지도 모른다. 관심만 가졌지 사진에 담진 않았다. 어차피 사진기의 주인은 딸이니까.

울릉공 시티역에서 두세 정거장쯤 가면 남천사로 가는 역이다. 남천사는 중국인이 만든 절이라하는데 우리나라의 구인사처럼 규모가 크다.

사찰은 보이는데 길이 모호해서 한참 헤매어야 했다. 도로를 따라가니 사찰로 들어가는 길이 보이지 않아 다시 공단 쪽으로 되돌아섰다. 공단의 마을에 들어서서 한참 걷고 있으니 승용차가 빵빵거린다. 딸이 승용차의 운전대를 잡고 있던 여성과 얘기를 나누다가 피식거리면서 온다. 동양 여자들이 그 마을에서 걷고 있으니 관광객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 그 여성이 친절을 베푼 것이다.

도로의 인도가 끝나는 지점에 다리가 하나 있고 그 다리를 지나가야만 남천사로 접어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도는 다리 앞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길을 가는 사람은 벙 찔 수밖에 없었고... 다만 녹슨 표지판이 하나 서 있었다. 내용인즉 건너편 인도로 가시오, 였다. 물론 남천사라는 명칭이 함께 쓰여 있었다.

     절은 깨끗했으며 조용했다. 뭘로 먹고 살까 의구심을 자아내게 할 만큼 사람이 없었다. 입구에는 공원묘지가 있었고 시든 장미가 꽃잎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다층탑이 숲 가운데 있었는데 탑의 명칭이 파고다였다. 나는 그 명칭이 불탑을 지칭한다는 것을 그때까지도 모르고 있었다. 한국의 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느 부처는 18개나 되는 팔을 갖고 있기도 했다.

절 뒤쪽으로 올라가보니 영화에서처럼 구부러진 길이 푸른 언덕을 휘감고 있었다. 왜 구부러진 길은 아름다운 걸까. 사진을 찍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 기억에 새롭다.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기차는 검은 숲을 통과하고 있었다. 몇몇 역의 주차장에 승용차가 즐비 했는데 그건 시내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기차를 이용하기 때문이란다. 역 근처에는 숲이 깊고 그 깊은 숲에서 간헐적으로 불빛이 반짝이곤 한다. 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었다. 우리나라의 개념으로 보자면 숲속의 전원주택이다. 여우가 나올만한 그런 곳에서 산다는 것, 혼자 사는 내겐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생활방식은 확실히 독특하다.

 

                                                                               7

 

밤마다 시간이 되면 들렸던 곳은 달링 하버였다. 그 아름답던 바다와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던 갈매기 그리고 뚱뚱한 부모를 따라왔던 인형 같은 아이.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풍경일 것이다. 주변의 찻집과 술집은 유혹적이었지만 들어가지 못했다. 말하자면 돈이 문제였다.

비행기 삯을 제외하고는 딸이 경비를 댔으니 돈이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딸은 내게서 돈을 융통해서 호주해서 공부를 했던 터라 별 수 없었다. 물론 딸은 제가 벌어 제가 쓰는 방식이었는데 조금 모자란 돈을 어미의 호주머니에서 가져갔던 것이다. 혹자들은 비정한 어머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융통성이 없는 게 글쟁이의 삶이 아니던가? 어쩌다 들어오는 원고료는 잉크 값과 에이포 용지 값이나 하면 딱 알맞으니까.

 

시드니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장소 중 하나는 갭 팍이다. 정확히 표기하자면 GAP 공원이다. 영화 빠삐용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우리는 시드니항에서 배를 탔다. 30분 정도 소요가 되었는데 내리는 순간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선착장 근처에 음식점이 하나 있었고 그 뒤쪽이 공원인데 거기에 고목 두 그루가 서 있었다. 거대한 그 나무는 어린왕자의 바오밥 나무를 연상하게 했는데 수명은 알 수 없었고 아이들이 가지에 앉아서 놀고 있었다.

그 나무를 지나서 잔디밭 사잇길을 따라가자 언덕이 나왔고 GAP PARK 라는 글자가 앞을 가로 막았다.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또 숨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 그런 바다가 있었던가. 파도가 깎아지른 절벽을 때리고 있었다. 철책 난간을 따라 걷는데 시든 꽃다발이 보인다. 한눈에도 누군가를 추모하기 위한 꽃다발로 보인다. 너무 아름다워서 뛰어내릴 수 밖에 없었을까. 잡념에 꽃과 바다를 번갈아 본다. 빠삐용이라는 영화를 봤던 나는 영화에 쓰였던 그 장면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기억들은 왜 그리 빨리 소멸할까.

종려나무 그늘을 지나치고 잘 정돈된 집들을 지나쳐 다시 선착장으로 왔다. 피쉬엔 칩스라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였다. 관광객들이 줄을 서 있는 그 음식점은 바다에 기둥을 박아 세운 건물을 차지하고 있었다. 생선이나 감자가 기름에 튀겨 나왔는데  먹다가 질리는 느낌이었다. 튀기거나 볶은 음식을 자주 먹기 때문에 호주 사람들도 비만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주변을 로버트슨 공원이라고 부르는데 지나치리만치 아름답지만 오래 있을 수는 없다. 맨리 비치와 오페라하우스를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다시 배를 타고 시드니 항으로 왔다가 걸어서 간다. 하버 브릿지는 아치형인데 기둥이 없어 유명하단다. 사람들이 아치형의 전망대에 개미떼처럼 붙어있다. 하버 브릿지를 지나니 곧 오페라 하우스이다.

 

오페라하우스는 사진촬영을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것만 같다. 그 위용은 실로 놀랄만 했는데 사진 찍는 일 외에는 할 게 별로 없다. 그래도 뿌듯하긴 하다. 조개껍데기 모양의 그 건물을 다시 보긴 힘들테니까 말이다. 오페라 하우스를 끝으로 시드니에서의 여행은 끝이 났다.

 

 

 

 

김은숙   200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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