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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주 속의 유럽, 멜버른


                                                                           

 

 

                                                                            1

우리를 기다리던 버진블루는 조그만 비행기였다. 비행기의 몸통이 빨간색이어서 마치 장난감 같았다. 버진블루의 실내는 좁았고 스튜어디스들은 셋 다 남자였다. 각각 백인, 흑인, 동남아인. 얼굴을 쳐다보니 재미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튜어디스들은 비행기 안에서 적극적으로 물건을 팔았다. 상품을 팔아 남는 이윤이 바로 봉급이 아닐까싶을 정도다. 실내는 기침소리와  갓난아이의 울음소리로 시끄러웠다.

멜버른은 유럽풍의 낡은 건물들이 많았는데 영국의 지배를 받을 때 지어진 것이라 한다. 물론 지금도 영국 연방 국가이긴 하나 실질적인 통수권자는 총리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명칭을 딴 빅토리아 주에는 빅토리아라는 이름의 건물이 흔하다. 멜버른은 빅토리아의 중심도시이다.

여행지의 선택은 딸의 권한이라 할 수 있었는데 멜버른을 선택한 이유는 영국에 대한 동경 때문인 것 같았다. 몇 년 전 유럽여행을 했던 딸은 영국에 대한 향수가 많았다.

딸은 간혹 고전회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우아한 건물과 잘 조성된 공원 그리고 노천 펍을 그리워했다. 이완 맥그리거가 공연한 뮤지컬을 얘기했고 비가 오는지 안개가 낀 건지 헷갈리는 날씨를 얘기했다. 그러다가 공원에서 수작을 걸던 남자를 얘기하면서 재수 없어, 라는 말을 뱉기도 했다. 딸이 영국의 런던과 흡사한 분위기의 맬버른 시를 선택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멜버른에서는 펍을 이용하지 않고 와인을 사다 마셨다. 게다가 호주의 맥주는 내 입에 잘 맞는 것도 아니었다. 시큼하거나 떫은맛을 내는 와인이 많았지만 리즐링이라는 달착지근한 와인도 있어서 그걸 사다 마셨다.

우리가 잡은 숙소는 엘리자베스 스트리트 650번지였다. 어슴푸레해질 무렵 우리는 택시에서 내렸다. 전화를 하자 열쇠를 든 주인이 나타났다. 단발머리의 40대 여인이었는데 상당히 마른 체구였다.

아파트는 제법 컸고 붉은 조명 때문에 분위기가 우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벽에는 그림이 몇 장 걸려있었는데 그 여인의 솜씨가 아닐까하는 생각이었다. 열쇠를 받은 이후 주인을 만난 적이 없으니 두 번째의 과제는 미스터리로 남았다고 할 수 있겠다.

첫날은 트램을 타고 시내를 쏘다녔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기 때문에 멀리 가기도 어려웠다. 멜버른은 하루에도 사계절을 전부 경험할 수 있다한다. 그만큼 날씨가 변덕스럽다는 얘기이다.

곳곳에 공원이 있었고 시내의 건물들이 독특했기 때문에 트램을 타고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다. 트램은 전차 형식이었다. 우리나라의 지하철처럼 여러 호선으로 나눠져 있었고 바다까지 가는 노선도 있었다. 시티써클은 시내만 한 바퀴 도는 트램이었는데 요금이 무료였다.

시내의 도로 가운데에 철로가 있으니 참으로 복잡했다. 게다가 공중에 전깃줄이 얽혀있는 꼬락서니라니... 하지만 트램은 대중교통 수단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없애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자주 이용해보니 버스보다 훨씬 편리하게 생각되기도 했다. 여행 내내 멜버른에서는 버스를 단 한 번도 타지 않았으니 트램이 운송수단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고 봐도 되겠다.

이튿날은 빅토리아 마켓에 갔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지어졌다는 그 건물은 우아하고 고풍스러웠다. 약간 낡고 내부가 어둡다는 흠은 있었지만 그 시절에는 건축방식이 달라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내부로 들어가면 두 갈래로 길이 나눠지는데 한쪽에서는 어류를 팔고 한쪽에서는 육류를 팔고 있었다. 도미처럼 통째로 놓고 파는 생선이 있고 잘라 파는 생선도 보였다. 해물은 여러 종류를 섞어 팔고 있었다. 우리는 짬뽕 국물을 만들기 위해 해물을 샀고 뼈가 포함되어있는 돼지 갈비 두덩어리를 샀다. 돼지고기는 우리나라와 가격이 비슷했다.

 

한 바퀴 둘러보는데 주렁주렁 매달린 소시지도 눈에 띄었다. 다른 마켓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야채시장은 조금 떨어져 있었는데 밖으로 나가니 인파 때문에 걷기가 힘들었다. 딸이 남미 축제라고 말을 한다.

무대에 선 여자 둘과 남자 너덧은 남미의 그룹가수이라는데 타악기 위주로 연주를 하고 있었다. 모여든 사람들 몇몇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각자 자신들의 방식대로 추니 우스우면서도 한편 재미있어 보였다. 플라밍고. 삼바, 지루박, 블루스... 나도 틈을 비집고 들어가 막춤을 췄다. 한 관광객의 얼굴을 반쯤가린 카메라에서는 동영상 필름이 연신 돌아가고 있었다.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울까. 춤을 추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햇볕이 어찌나 따가운지 몸이 금방 달아올랐다. 어느 백인 할머니 한분은 계속 플라밍고를 추셨다. 정장인데 복장이 세련된 데다 춤 솜씨가 멋졌다. 나는 막춤을 끝내고서 한참 쳐다보았다.

야채시장은 기념품점과 나란히 있었다. 기념품 가게에는 손님이 거의 없다. 야채시장도 좀 한산했다. 상품가치가 좀 떨어지는 야채와 과일들이 많았다. 게다가 썰렁하기도 해서 시드니의 페디스마켓과는 영 분위기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는 트램을 타고 끝 지점인 세인트킬다 비치를 갔다. 낙조를 보기 위해서였는데 바다는 그저 길기만 하다. 시드니에서 아름다운 바다를 너무 많이 봐 버려 시시한 걸까. 바닷가의 산책로를 걸으면서 해가 지는 광경을 보는데 점점 구름이 몰려들었다. 낙조는 어차피 그른 것 같다. 주변의 종려나무는 가지를 잘라주지 않아서 누런 잎을 많이 매달고 있었다. 게다가 공사까지 하고 있으니 영 마뜩찮다. 바다에서 빠져나와 길을 걷다가 트램을 타고 엘리자베스 스트리트 650번지로 왔다. 실은 딸과 어긋나게 되면 미아(?)가 될까봐서 주소를 외워두었다.

밤에는 조카가 왔기 때문에 갈비찜도 했고 짬뽕국물도 끓였다. 갈비찜은 익은 김치를 넣어 만들었는데 지나치리만치 맛있게 생각되었다. 요리도 표현방법 중 하나이니 글쟁이는 요리를 잘해야만 한다. 물론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팩에 담긴 4리터 와인을 사와서 나누어 마셨다. 딸하고는 가벼운 마찰이 있었고 조카하고는 죽이 잘 맞았다. 나는 술을 마시면 20대보다 더 철부지 같으니 아이들과 노는 것도 별 무리가 없다.

다음날은 딸과 야라강을 찾았다. 야라강도 한강처럼 도심을 가로지르는데 유람선이 다니며 카누가 물살을 가르기도 한다. 물오리의 무리와 몇마리의 백조도 눈에 띈다. 그림 같은 풍경을 보면서  야라강을 따라 한참동안 걸었다. 강 주변에 조성이 잘된 공원이 있어 경치가 그만이다.

공원에서 몇 컷의 사진도 찍었다. 공원 안에는 작은 호수가 있는데 나무와 풀과 꽃이 어우러져 신비한 느낌을 자아낸다. 빅토리아 여왕의 동상과 그외 다양한 동상을 볼 수 있었다. 멜버른은 곳곳에 공원이 있어서 낭만적이고 여유로운 도시로 보였다.

어슴푸레해질 무렵 야라강 근처를 걷고 있는데 섹스폰 연주 소리가 들렸다. 곡목은 알 수 없으나 꽤 구슬픈 노래이다. 검은 강물 위를 떠가는 작은 배와 거기서 흘러나오는 불빛과 섹스폰의 음률이 뒤섞이는 것 같다. 동전 통을 앞에 두고는 있지만 연주 솜씨는 예사롭지가 않았다.

주변의 건물에서 흘러나온 불빛이 야라강에 수를 놓았다. 건너편의 빅토리아 아트센터의 철탑도 불빛을 받아 희게 빛나고 있었다. 그 철탑은 발레용 치마를 본 따 디자인했다한다.

 

다리를 건너서 빅토리아 아트센터로 갔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빅토리아 공연박물관이 열려있었다. 낮은 조도와 빨간 카펫 때문에 실내가 어둡다. 유명인들의 사진이 벽에 즐비하니 붙어있고 유리관 속에는 연극무대에서 입었던 의상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튿날도 다른 일정이 없어 트램으로 시내를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일주일 쓸 수 있는 트램 티켓을 샀기 때문에 많이 탈수록 이익이었다. 오후에는 여행사를 찾아 갔다.

여행사에서는 한국인들만 근무하고 있었다. 평일로 예약을 하니 디스카운트를 해줬다. 두 사람인데다 이틀씩 예약하기 때문인가 보다. 서버린 힐과 그레이트오션로드인데 개인당 각각 150달러씩이었다.

 

                                                                          2

  

 서버린 힐을 가기 위해 관광버스가 대기 중인 곳으로 갔다. 서버린 힐로 가는 차가 한 대 있지만 호주의 여행사 버스이다. 한국가이드가 탄 차가 없어 딸은 기다려보자는 얘기를 한다.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버스가 오지 않아서 나는 딸에게 아무나 붙들고 물어보라고 채근을 했다. 딸이 서버린 행 옆에서 보조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 버스가 맞다한다. 차를 앞에 두고 차를 놓칠 뻔했던 것이다. 하긴 전화번호를 적었으니 연락을 받긴 하겠지만.

서버린 힐은 1850년대의 광산촌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보면 되겠다. 우리나라의 민속촌 같은 개념인데 민속촌과는 달리 서버린 힐에서는 광부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볕은 쨍쨍 하고 먼지까지 풀풀 날려서 얼굴이 찌푸려졌다.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란 내게는 서버린 힐의 풍경이 새롭게 다가오진 않았다. 도시에서 자란 딸은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민속촌처럼 옛날 생활방식을 고수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물론 근무처일 수도 있겠지만. 긴 드레스에 머리를 틀어 올리고 천으로 만든 모자를 쓴 귀부인들은 꽤 답답할 것 같았다. 날씨가 한여름을 방불케 하니 말이다. 한 오두막에는 베트남식의 세모꼴 모자를 쓴 여자가 의자에 앉아서 종이접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중국인으로 근무하는 것 같았다. 그 옆의 작은 우리에는 돼지가 누워서 자고 있었다.

관광객 중 아이들은 마치 소풍이라도 나온 것처럼 호들갑스러웠다. 아이들은 사금을 채취하는 개울가에서 삽질을 하고 있었다. 세숫대야에 모래를 퍼 담아 금 부스러기가 있나 살피는 모습이 우스웠다. 노다지의 꿈은 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나는 사금 채취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 금광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내로 스며드는데 거기에 가마니를 깔아 놓는다. 흐르는 물에 실려 온 모래와 금이 가마니의 틈에 차곡차곡 낀다. 물에서 건져낸 가마니를 불에 태우면 사금이 남는다. 글자 그대로 모래가 섞인 금이다. 우리나라의 방식인데 서버린 힐에서도 비슷한 방법을 썼던 것 같았다. 조금 올라가니 개울 위쪽으로 채취한 금을 골라내는 공장건물이 있다. 네모난 채반을 물속에서 흔드는 작업인데 내 보기에는 형식적이었다.

오히려 양초 공장이나 양철 그릇을 생산하는 공장이 더 볼만하다. 양초공장에는 호기심어린 눈빛의 아이들이 많았다. 내겐 다양한 모양의 양초를 보는 것보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게 더 즐거웠다.

양철 그릇을 만드는 공장에서는 남자 둘이서 원반 모양의 철판으로 여러 가지 모양의 그릇을 만들고 있었다. 양푼이나 접시, 재떨이 따위로 쓰이는 그릇들이었다. 돌아가는 기계에 구리나 신주로 된 동그란 판이 끼워져 있었다. 쇠막대기를 이용해 만들어 내는데 매우 정교했다. 그 외에도 공장이 많았지만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어느 공장에서는 기계를 닦는 젊은 남자가 있어서 딸을 부추겼다. 거의 흉내수준이니 지루할 것이고 따라서 말을 걸면 좋아할 거라고. 아니나 다를까 딸이 질문을 하자 꽤 오랫동안 설명을 한다. 불을 지펴 물을 끓이는 과정이었다.

사탕가게에 들르니 아이들이 꽉 차있다. 바람돌이모양의 사탕과 알록달록한 알사탕이 인기가 많다. 어느 나라 아이들이건 취향은 같은 모양이다. 우리는 유칼립투스 잎으로 만들었다는 사탕을 샀다. 사탕을 입에 넣으면서 코알라처럼 잠에 취하는 게 아닐까하는 말을 딸과 주고받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나무 그늘에 앉아 있는데 초등학교 4학년쯤 되어 보이는 녀석이 계속 우리를 쳐다본다. 의아해하면서 마주보자 말을 건넨다.

“니하오마.”

“아임 코리언.”

아이는 얼굴이 약간 붉어지면서 멋쩍은 웃음을 흘린다.

“안녕하세요?”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건네 보았지만 웃기만 할 뿐 어느 누구도 대꾸가 없다. 그들에게 한국은 먼 나라이고 낯선 나라인 모양이다. 서버린 힐을 돌아보는 내내 별로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나는 다음날의 그레이트오션로드에 희망을 걸었다.

                                                 

                                                                            3 

                                 

 그레이트오션로드로 가는 버스 역시 호주의 기사였다. 서버린 힐을 갈 때처럼 운전기사가 가이드까지 겸했다. 운전기사의 이미지가 독일 장교 같았다. 맨 앞자리는 예약이 되어있어 일찍 갔는데도 우리는 뒤쪽에 앉아야했다. 바다를 따라 난 길을 가야하니 아무래도 앞자리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알고 보니 미리 예약을 했단다.

한 시간쯤 지나자 바다가 시작되었다. 모닝 티 시간이라며 잠시 버스를 세운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 때문에 몸이  불편했다. 옷을 잔뜩 껴입은 까닭이었다. 바다에 인접한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점심 대신 커피점에서 차를 무료로 마실 수 있었다 (한국 여행사에서는 점심을 제공해주지만 호주 여행사는 그렇지가 않다).

모닝커피는 빵과 함께 나왔다. 커피만 마시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빵을 한 개 더 들고 왔다. 햇살이 드는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곧장 바다로 갔다. 워낙 짧은 시간을 주었기 때문에 바다에 내려가자마자 다시 올라와야했다.

점심을 먹기 전까지 몇 번이나 버스에서 내려서 촬영을 했다. 다만 시간이 짧아서 길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그런 형식이었다. 버스에서 바다 쪽으로 향한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별 불만은 없었다. 다만 반대편의 산이나 마을을 보는 건 놓칠 수밖에 없었다.

중간에 숲길을 달리기도 했는데 또 다른 맛이다. 유칼리나무가 빽빽이 들이 찬 숲이기 때문이다. 코알라는 공처럼 나무 끝에 붙어 있었다.

점심은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먹었는데 생선튀김이 무척이나 커서 먹느라 애 먹었다. 유명한 음식점이라는데 양이 많아서 그리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하긴 일인분에 10달러나 11달러쯤 했으니 약간 비싸기도 했다. 딸려 나온 감자칩은 거의 먹지 못했다.

점심 때 둘러본 마을도 아름답긴 했지만 그냥 스쳐 지나온 마을에 대한 미련이 많았다. 워낙 장거리였기 때문에 하루에 다 둘러보기는 무리인 것 같았다. 호주인들은 자신의 승용차에 카라반을 매달고 다니면서 여행을 즐긴다고 한다. 호주에서 쓰는 명칭은 카라반이지만 모양은  컨테이너였다. 카라반의 내부가 집처럼 꾸며져 있으니 여행지에서 굉장히 편리할 것 같았다. 스쳐 지나는 마을의 공터에 같은 크기의 카라반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게 눈에 띄기도 했다.

12사도가 있는 바다 근처의 주차장에는 버스가 많았다. 그 근처의 숲은 마치 비로드 천을 깔아 놓은 것 같았다. 고산지대처럼 관목이 무성한데 잎 사이에 자잘한 꽃이 매달려 있고 그 위를 벌이 날아다녔다. 사진으로 다시 보니 흡사 천국으로 가는 길목 같기도 하다. 거기에서는 12사도 바위와 기차바위를 볼 수 있었고 동굴도 구경을 했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동굴은 아니었지만 석순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기차바위는 철로처럼 두 개의 바위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데 실은 내가 붙인 명칭이다.

근처를 돌고 버스에 올라와서 먼저 와 있던 아가씨들에게 기차바위를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아가씨들 왈 그 바위와 주변의 동굴을 보지 못했단다. 중요한 곳을 보지 못했다며 애석해 하던 모습이라니... 영어로 듣는 설명이 그녀들에게도 그만큼 복잡했다는 이야기다. 워킹 홀리데이 중이었고 호주에 온지 오래되지 않아서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포어 투엔티 파이브 라고 하는 말을 25분으로만 생각해서 그 짧은 시간에 다녀야한다는 생각에 계속 서둘렀었다. 딸이 내게 잔소리를 하자 25분이라는 말을 했다. 딸은 어처구니가 없는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기사가 4시 25분까지 돌아오라고 했단다.

 

런던 브릿지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해가 뉘엿거렸다. 12사도와 런던브릿지. 그 외에도 많은 명칭들이 있었을 테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운전기사는 운전에 지장을 초래할까 걱정 될 만큼 끊임없이 설명을 했지만 내겐 소 귀에 경 읽기였다. 제대로 알아들었던 단어는 런던브릿지 뿐이었다. 한국 여행사를 이용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레이트오션로드의 많은 사진들은 불그스레한 빛깔을 띠고 있다. 해가 질 무렵의 사진들이 태반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바다. 다시 볼 수 없는 거대한 바닷길의 어느 지점에 마침표를 찍고 버스는 돌아섰다.

 

                                                                          4

4월 25일은 안작데이라고 호주와 뉴질랜드의 참전 기념일이다. 터키로 원정을 갔던 연합군들이 잘못된 정보로 인해 몰살당하는 비극이 있었고, 그날을 기념일로 제정했다한다. 새벽 6시부터 일부 도로는 차량 통행이 금지되고 거리 행진이 있었지만 우리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느지막이 나갔는데 연휴라서 그런지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간혹 구걸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길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사람, 악기를 다루는 사람, 묘기를 부리는 사람 등등...직업도 다양했다. 다짜고짜 손을 불쑥 내미는 걸인은 만나지 못했다 (내겐 그들이 걸인으로 보이나 그들은 스스로를 예술가로 생각할 것 같기도 하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간 곳이 페더레이션 광장이다. 광장 한쪽이 무대로 쓰이게 만들어져 있고 건물에 붙은 커다란 텔레비전에는 호주를 홍보하는 영상이 담겨있었다. 광장 한편에서 의자를 나눠주고 있다.

우리도 의자를 가져와서 앉아 텔레비전을 주시했다. 조금 있으니 익숙한 얼굴이 화면에 떴다. 화면을 보던 많은 사람들이 웃음소리를 냈다. 스물 너덧 쯤 되었을 잘 생긴 남자는 멜깁슨이었다. 야비한 역할이었으며 가운데가리마가 인상적이었다. 영화의 내용은 대충 알겠는데 내가 귀머거리나 마찬가지이니 영 재미가 없었다. 나는 영화를 보다가도 슬쩍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페더레이션 광장 한쪽에는 누더기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쇳조각이 퀼트 이불처럼 엮인 건물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모양새였다. 간혹 튀는 모양의 건물을 멜버른의 시내에서 마주치곤 하는데 추상화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현대식 건물 사이사이에 18세기의 건물이 끼어있으니 밸런스가 맞지 않아 보이지만 실은 그게 멜버른의 매력이라고 한다. 호주에서는 30년이 지난 건물은 함부로 헐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한다. 부수고 새로 짓는 걸 좋아하는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되는 부분이었다.

트램을 타고 플린더스 역으로 갔다. 기차를 탈일이 없어 촬영만 했고 트램을 탔다. 중간에 내려서 걸어 빅토리아 마켓 쪽으로 오는데 벽마다 그어진 낙서가 눈에 띈다. 멜버른에서는 흔히 마주치는 게 낙서이다. 검정색으로 휘갈긴 낙서는 그나마 나은데 새빨간 낙서를 쳐다보고 있으면 기분이 영 별로다.

호주에는 무단횡단을 하는 보행자들도 많다. 지나친 자유는 방종과 같다던가? 하지만 교통사고율은 낮다 한다. 늘 차가 양보를 해서란다. 우리나라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브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운전자가 태반이니 한편 부럽기도 하다.

마지막 날은 쇼핑을 했다. 우리가 찾았던 아울렛은 DFO라는 글자를 매단 큰 건물이었다. 나는 신발과 가방을 샀고 딸은 옷과 신발을 샀다. 나중에 보니 가방과 신발에는 약간씩의 흠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어보고 매어봤을 테니 당연할 수밖에 없다. 중고품(?)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쇼핑이기도 했다. 한국에 비하면 값이 터무니없이 싸다고 할 수 있었다. 부드러운 소가죽 가방이 10만 원정도이고 가죽신발이 육만 육천 원이었으니까. 게다가 나처럼 큰 발을 가진 사람도 맞는 신발이 꽤 많았으므로...

집으로 돌아와서는 짐을 꾸렸다. 엘리자베스 스트리트 650번지는 딸이 영 잘못 선택한 아파트였다. 아래층에서 사흘간이나 공사를 하느라 공사판 이상의 소음을 냈고 (드릴로 구멍을 내는 소리와 시멘트 건물을 부수는 소리는 끔찍했음) 밤이면 빈대가 기어 다녔다. 딸만 물렸고 계속 긁어서 끔찍한 모습이었다. 피부가 부풀어 오르는 게 장난이 아니었다. 베드버그와 소음에 몸서리나던 엘리자베스 스트리트 650번지. 그 집에 들어가는 날 외에는 주인과 마주칠 수 없으니 종이에 뭔가를 써두고 나와야했다. 베드버그 때문에 고통 받고 있으니 관리 좀 하시오, 라고 쓴 종이를 식탁 위에 놓았다. 물론 딸이 영문으로 썼다.

멜버른의 추억은 베드버그와 공사 소음 때문에 2% 부족한 감이 있지만 그렇다고 불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이튿날 공항으로 오던 택시 안에서 아주 기분 좋은 소리를 들었다. 잘생긴 흑인 기사였는데 케냐 인이냐고 물으니까 나더러 천재라고 한다. 그냥 넘겨짚은 말이었는데 정답이었던 것이다. 기사는 소말리아에서 태어났는데 10살 이후부터 케냐로 가서 살게 되었다는 부연설명을 했다.

멜버른공항으로 차가 달리는 동안 익숙한 풍경을 바라보면서 상념에 젖었다. 16박 17일 동안의 여정이었지만 호주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돌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서너 달 여행을 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나라 호주. 기회가 된다면 퍼스나 테즈메니아 쪽으로도 가보고 싶다.

 

 

 

 

김은숙   2008-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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