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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리핀 여행기 - 두마게테


 

 

 

 

 

 

 

  나와 아이들은 설 다음날 필리핀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캐세이 퍼시픽이었는데 홍콩 경유 필리핀 행이었다. 아마 여행기간 중 홍콩에서 체류하던 네 시간이 가장 지루했을 것이다.

필리핀 공항에서 짐을 찾고 보니 픽업 시간에서 좀 벗어나 있었다. 펜션 측과 통화한 후 헤매다가 공항 택시를 탔다( 딸의 영어실력이 필리핀에서는 잘 통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들의 발음은 미국식과는 사뭇 달랐다). 택시가 마닐라의 중심부로 들어서는데 주변이 불야성이었다. 마치 크리스마스이브처럼 흥청거리고 있었다. 대한민국 서울의 중심부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불빛 아래 서 있던 아리따운 아가씨들은 놀랍게도 필리핀 아가씨들만이 아니었다. 우리말을 쓰는 아가씨들도 꽤 많았다.

예약된 숙소의 입구에는 경찰관 복장의 남자가 서 있었다. 알고 보니 말라떼 펜션의 경비였다. 카운터에는 뚱뚱한 아가씨가 앉아있었다. 방은 비교적 넓었는데 바닥에는 나무가 깔려 있었고 낡은 가구들이 놓여 있었다. 밤새도록 에어컨 소리에 시달려야 했고 새벽에는 다소 추워서 숙면을 취할 수가 없었다. 이튿날 9시쯤 일어나 근처의 백화점에서 몇 가지 물품을 샀고 오후 2시 비행기를 타고 두마게테로 갔다.

 

두마게테는 트라이시클 때문에 시끄러운 곳이었지만 다른 도시에 비해 조용하고 한적한 도시라 한다. 유명한 실리만 대학이 있고 따라서 젊은 층들이 많은 곳이다.

 

우리가 도착한 허니 컴이라는 이름의 숙소는 해변에 위치해 있었다. honey comb란 벌집이라는 뜻인데 벌집모양과는 거리가 있었다. 달콤하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이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닐라에 비해 숙소가 깨끗했고 카운터의 자그마한 아가씨도 친절했다(여행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숙소이다). 앞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길을 따라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 있어서 아름답고 운치가 있었다.

 

시티를 둘러보기 위해 숙소에서 곧장 나왔고 우선 밥을 먹기 위해 시장으로 갔다. 시장의 어느 식당으로 들어갔던 우리는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바퀴벌레가 사방에서 기어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밥값이 터무니없이 쌌기 때문에 바퀴벌레를 무시하고 밥을 먹었다. 날씬한 몸매에 키가 자그맣던 아가씨들은 아들을 흘깃거리며 웃기도 했다. 아들이 일 미터 팔십 정도 되는 키라서 근사해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필리핀에서는 한국 사람도 특별한 외국인인 것 같았다. 도시에는 점점 어둠이 내리고 있었고, 어쩌다 마주치는 가로등이 어둠을 밀어내기는 역부족이었다.

일 미터 앞까지 다가와야 얼굴을 알아볼 정도로 어둔 밤거리였지만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낮 기온은 30도까지 올라가기도 하지만 밤이면 좀 시원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필리핀의 한 여름 기온이 48도를 육박한다는 게 주민의 설명이었다. 간혹 단풍이 든 나뭇잎을 볼 수 있었는데 우리네 개념으로는 9월초라고 하면 딱 맞을 것 같았다. 필리핀은 우기와 건기로 나누는데 우기는 고온다습하고 비가 자주오기 때문에 여행이 좋지 않고 12, 1, 2월이 건기이면서 덜 덥기 때문에 여행하기 좋다한다. 굳이 사계절로 나눈다면 겨울철에 해당되겠다.

다른 지방에 비해 트라이시클이 무척 많은 도시였고 길가에 낡은 이층 가옥이 인상적이었다. 자그마한 술집이나 식당의 전등이 너무 어두워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흐릿할 정도였다. 전구들의 밝기가 옛날 우리네의 호롱불 정도나 될까. 그런 어둠 속에서도 사람들은 밥을 먹거나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는 길에 바비큐 닭을 샀다. 바비큐용 닭이나 꼬치 따위를 길거리에서 굽고 있어서 고소한 냄새에 유혹당하기 쉽지만 중요한 건 필리핀 음식이 짜다는 점이다. 아무튼 그날부터 우리는 밤마다 술파티를 벌이기 시작했다. 물론 지나치게 많이 마신 날은 거의 없다. 많이 걸어야 하기 때문에 체력을 아껴야만 했다.  

 

이튿날은 일찍 일어나 길을 따라 걸었다. 두마게테에서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실리만 대학 을 구경했고 시내를 따라 죽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전날 밤 통닭을 샀던 그 식당으로 갔는데 종업원들이 우리를 보면서 피식피식 웃었다. 식당의 위치가 외국인들이 들러 갈만한 곳에 위치해 있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았다. 반찬 중에 성게젓갈이 있었는데 그 독특한 맛이 기억에 남아 있다.

 

선착장이 가까웠기 때문에 차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이별을 하기 위해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커플을 보았는데 그 장면이 영화에서처럼 인상적이었다. 남자의 나이가 많아 보여서 유부남이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그 남자가 배를 타기 위해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나는 그 남자를 계속 주시했다. 이별의 아픔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까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나는 다른 여자에게 수작질을 하는 그런 모습 따위의 반전을 기대하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남의 인생을 망가뜨리기도 하는 글쟁이이니까. 하지만 그 남자는 별다른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고 어떤 남자와 잠시 얘기를 나누었을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필리핀에서 배를 타게 되면 배삯 외에도 터미널 사용료가 따로 있고 짐 싣는 삯도 따로 줘야 한다. 마치 삥을 뜯기는 기분이었다. 잠시 후 우리가 탄 배는 보홀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은숙   201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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