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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인의 삶 (영화이야기)


 

 

 

 

 

  이상하게도 일을 하게 되면 조급증이 생긴다. 따라서 책을 더 읽게 되고 영화도 자주 본다. 일을 몰아서 하는 성격 탓일 수도 있고, 백수생활에 대한 자책감에서 파생되는 반사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내 머리의 기능은 컴퓨터와 비슷할 것이고 손발은 그 명령에 따라 움직일 것이지만, 질서 따위를 무시하는 손발을 가진 탓에 애를 먹기도 한다. 쓰다 보니 그럴싸한 핑계 같다.

얼마 남지 않은 돈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절박한 세월 속에서 나는 글을 열심히 썼던 것도 아니고 책을 열심히 읽었던 것도 아니었다. 물론 중간 중간 다소간의 글을 쓰기는 했지만 너무 허접해서 누군가에게 읽어 달라하기도 무안한 내용뿐이었다.

글도 글이지만 그동안 내가 사람구실을 하지 못했던 것은 돈 때문이었다. 고민 끝에 돈 버는 일을 하겠단 결심을 했고 생활정보지를 뒤적였다. 닭 가공 공장, 빵 공장, 구내식당 등등 정보지의 구직난에는 일자리가 빼곡했다. 누군가의 권유도 있었지만 때가 여름이었기 때문에 시원한 곳에서 일을 하는 게 좋겠단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시원한 곳에서 여름을 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 공장에서 일하면서부터였다.

땡땡 언 닭의 허벅지 껍질을 벗기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이었지만 내 등허리에 쏟아지는 에어컨 바람이 더한 고통이었다. 25일간 그 일을 해서 벌은 돈은 팔십여 만원이었다. 고생한 것치고 대가는 많지 않았지만 내겐 요긴한 돈이었다. 그 후 나는 누군가의 소개로 모텔에 가서 내 전화번호를 적어두고 왔다. 청소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모텔 청소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돈을 위해서이고 다른 이유는 소설쓰기를 위해서이다. 가와바다야스나리의 설국처럼 숙박업소는 이야기가 많은 공간이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위해 지금도 나는 모텔의 청소 일을 한다. 고정적으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수입은 들쑥날쑥하다. 일은 고되지만 사람이 많은 곳이라 나름 재미가 있어서 출근할 때 부담스러움이 없다. 지난해 9월에는 혼자서 두 몫을 하던 날이 많았고 한 달 내내 일을 했기 때문에 몸무게가 5킬로그램이나 줄어드는 경험을 했다. 오랫동안 몸에 붙어있던 지방질이 빠져나갔기 때문에 신선한 경험이었다. 대신 감기몸살을 심하게 앓아야만 했다.

왼쪽 엄지발톱도 반쯤 들떠 버렸고 가끔씩 발가락이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끼기도 했다. 그것보다 더 불편한 점은 모텔에 들고 날 때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달 일을 하다 보니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같은 게 점차 사라졌다. 더러 철면피도 있으니 나보다 더 떳떳하게 들락거리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도 남의 인생을 소설에 이용해 볼까하고 모텔청소를 하는 것이니 내용은 달라도 불순한 의도인 것만은 틀림없다. 내가 지금 감상문을 쓰려는 영화 ‘타인의 삶’이라는 영화 속의 주인공도, 나처럼 남의 인생을 훔치는, 아니 아주 통째로 훔쳐버리는 사람이다. 주인공이 남의 인생을 훔치는 이유는 나와 전혀 다르다.

타인의 삶은 주로 동독을 다루고 있는데 서독과 사이의 장벽이 허물어지기 몇 년 전의 이야기이다. 영화는 장벽이 허물어지기 전을 주로 다뤘지만, 장벽이 허물어진 후 동독인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잠깐 다루고 있다. 시나리오를 만드는데 4년이 걸렸다는 타인의 삶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영화이다. 최근에 국내에서 개봉했지만 2006년도에 독일에서 개봉된 영화이다. ‘타인의 삶’은 독일의 영화사상 거의 최고라고 한다.

영화의 주인공 비슬러대위는 동독의 정보국 비밀요원이다. 비슬러는 동독의 유명인인 극작가 드라이만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드라이만은 인기여배우 크리스타와 연인관계이다. 비슬러는 그들이 동거하는 집에 도청장치를 한다.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사생활은 드라마처럼 헤드셋을 통해 비슬러에게 전달된다. ‘난 그들의 삶을 훔쳤고 그들은 나의 삶을 변화 시켰다.’ 라는 영화의 주제처럼 비슬러에 의해 그들의 삶은 도청되지만, 아니러니 하게도 삶은 드라이만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기록이 된다. 각색된 내용은 고스란히 상부에 보고가 되고...

얼음보다 차가운 비슬러의 가슴을 녹이기 시작하는 건 드라이만의 자유로운 사상과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사랑이지만, 오히려 둘의 사랑은 또 다른 물리적인 힘에 의해 부서지기 시작한다. 애정사에 불청객처럼 끼어 든 사람은 문화부장관인 토마스 디엠이다. 실은 비슬러에게 드라이만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긴 사람도 토마스이다.

토마스는 부르주아적인 사고를 가진 드라이만을 축출하려는 속셈이 있었고, 드라이만의 연인인 크리스타를 소유하려는 욕심도 있었다. 토마스는 문화부장관이라는 권력을 이용해 일차적으로 크리스타를 유린한다. 반항을 하고 자책을 하던 크리스타가 토마스를 받아들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사랑은 크리스타가 달리는 차에 뛰어들면서 비극으로 끝난다. 드라이만이 동독의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비슬러 덕분이었다. 대신 비슬러는 드라이만을 도왔던 이유로 우편물을 선별하는 직급으로 강등되고 만다.

통일 후 드라이만은 글을 쓰지 못한다. 어느 날 우연히 극장에서 마주친 드라이만과 비루한 모습의 토마스장관. 토마스가 말한다. “자네나 나에게는 별로 좋은 세상이 아닌 것 같네. 자네는 이제 무엇으로 글을 쓰겠나.” 토마스는 권력이 없어 좋은 세상이 아닐 것이고, 드라이만에게는 이데올로기 문제가 없으니 글이 써지지 않을 거라는 말 같았다. 하지만 드라이만에게 던지는 그 말은 정답이 아니다. 다시 토마스의 입에서 말이 튀어 나왔다. “자네가 크리스타를 만족해주려고 애썼겠지만 잘 안 되는 것 같더구만.” 드라이만의 연인이었던 크리스타가 권력을 가진, 거기다가 성적인 능력이 좋은 토마스에게 이미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을 거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대목이다.  토마스와의 만남 후 드라이만은 글을 쓸 수 있었고 그의 글은 베스트셀러가 된다.

드라이만의 사진이 걸린 서점을 들렀던 비슬러는 드라이만의 책에서 놀라운 문구를 발견한다. 책을 비슬러에게 바친다는 내용이 서문으로 인쇄되어 있었다.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신인감독이 만든 영화이며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인데 과히 최고의 걸작이라고 할 만하다. 아쉽게도 비슬러 역을 했던 울리히 뮤흐는 오십대에 불과하지만 암으로 타계를 했다.

 

 

 

 

 

 

 

 

 

 

 

김은숙   201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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