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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밴쿠버아일랜드 (크루즈여행)


  

 

                                       

   여전히 비가 내리는 가운데 우리는 줄을 섰다. 커다란 배의 앞부분이 하늘을 향해 머리를 치켜들고 있었고 선착장과 배 사이에 철판으로 만든 통로가 놓였다. 잠시 열렸다 닫히는 길이라 할 수 있었는데 4차선 도로처럼 널찍해서 배의 규모가 상당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배의 규모에 비해 탑승객의 줄은 너무 짧았다.

우리가 걸어 들어간 곳은 지하였고 주차장 용도로 만들어져 있었다. 배는 6층 규모였는데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도 있었고 계단을 이용할 수도 있었다. 프런트에서 호실을 배정 받았다. 꽤 많은 숙소를 갖추고 있었고 전용극장도 하나 있었으며 옷과 액세서리를 파는 가게도 있었다. 레스토랑에서는 전광판을 만들어서 메뉴를 홍보하고 있었다. 우리가 선택한 메뉴는 전광판의 사진과는 달리 매우 소박한 음식이었다. 술은 맥주 외에도 몇 종류가 되었는데 알코올 함유량이 낮은 것만 판매하고 있었다.

음식을 내어주는 직원은 머리가 짧은 중국 여인이었는데 오십대 초반 쯤 되어 보였다. 그 직원은 나와 딸을 바라보면서 중국에서 왔느냐며 반겼다. 내가 중국인으로 보이는 것은 튀어나온 앞니 때문인 듯 했다. 중국인들은 대부분 무표정에 가깝다. 나는 사람과 마주치면 웃음을 흘리는 버릇이 있으니 중국인과는 좀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린스루퍼트로 가는 크루즈선을 이용하는 한국인들이 소수라서 중국인으로 오해를 받는 게 아닐까싶은 생각이 들기는 했다.

뚱뚱한 흑인 남자 직원은 머리를 빡빡 밀은 모습이었다. 레스토랑에 손님이 너덧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는 아주 천천히 테이블을 닦았다. 그는 무료했던지 딸에게 말을 걸었는데 보디랭귀지 스타일의 대화를 하는 사람이었다. 나까지 알아듣게 하느라 일부러 그러는 것일 수도 있었는데 상당히 우스꽝스러웠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는데 생김새마저도 코믹했다. 그는 싱글이라면서 프린스루퍼트에 가면 지역이 좁아서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그의 승용차로 드라이브를 시켜주겠단 말을 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아들과 함께 여행하는 나이 지긋한 여자 분도 있었고 중년 커플도 몇 쌍 눈에 띄었다. 밴쿠버에서부터 동행처럼 같은 차와 같은 배를 이용했던 원주민부부는 늘 말없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원주민부부는 마치 바늘과 실처럼 붙어있었다. 배가 프린스루퍼트까지 가는 동안 배가 몇 번 정차하기 때문에 그들의 행선지가 어디인지 짐작하기는 어려웠지만 나는 그들을 볼 때마다 미소를 짓곤 했다.

식사를 끝내고 극장에 갔다. 댓 명쯤 되는 사람들이 좋은 위치의 좌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귀머거리처럼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가 딸에게 나가자고 했다. 객실의 의자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대신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조용히 해야 했다. 어떤 이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돈을 아끼기 위해 저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자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았지만 창에 성에가 끼어서 밤바다가 명료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바깥에 불이 켜져 있어서 카메라를 들고 난간으로 나갔다. 난간 가까이 나무가 빽빽이 들이찬 숲이 스치듯 지나곤 했다. 크고 작은 섬들도 가까이 다가왔다가 다시금 멀어졌다. 비가 내리는데도 어슴푸레한 빛이 있어서 바다와 섬과 숲을 어느 정도 관찰할 수 있었다.

 

바람 때문에 비가 안쪽으로 들이쳐서 옷을 여민 채 서 있다가 날아드는 까마귀를 보았다. 본능적으로 불빛을 찾아서 온 것 같았다. 까마귀는 바닥에 내려앉아 날개를 접더니 물똥을 몇 번 갈겼다. 한참을 덜덜 떨다 주변의 철제사물함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우리는 숙소로 들어가 배낭을 뒤져 과자를 꺼냈다. 사물함 밑으로 과자부스러기를 던져 주고 그 앞에 한참 서 있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누웠는데 침구 안으로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달리는 배라서 바람이 차갑고 사나운 것 같았다. 미처 떼어내지 못한 모기장 구멍으로 달려드는 가을바람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난방용 스위치를 이미 올렸지만 고장이 났는지 실내가 전혀 따뜻해지지 않았다. 가서 얘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딸은 내 오리털점퍼를 입고 양말까지 찾아 신으면서 나더러도 많이 껴입으라고 한다.

세시 가까이 되었을 때 나는 벌떡 일어났다. 10만원이나 되는 돈을 방값으로 지불하고도 병신처럼 덜덜 떨면서 자야 하냐고 딸에게 소리를 질렀다. 말 못하는 나야 어쩔 수 없지만 너는 아니지 않느냐고 계속 잔소리를 해댔다. 곧장 딸은 프런트로 갔고 담요를 두 장 가져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 직원이 숙소에 혼자 묵느냐고 묻더란다. 그때까지 화를 삭이지 못하고 있던 나는 딸의 얘기를 듣고 그만 픽 웃었다. 웃기는 놈이네, 라고 하면서.

담요 두 장으로 몸을 덮은 다음에야 쉽게 잠들 수 있었다. 일찍 일어나야 했으므로 충분한 수면을 취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대로 기분은 괜찮았다. 아침이 시작되는 바다에는 아직 비가 내리고 있었고 물안개까지 잔뜩 껴서 주변 풍경이 푸르스름하면서도 뿌연 빛깔이었다. 배의 좌현과 우현으로 옮겨 다니면서 숲과 섬을 구경 했지만 정작 다른 승객들은 나와 보지 않았다. 그들은 선실이나 레스토랑에서 뿌연 유리창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커피 잔을 든 채 바라보는 바다가 더 낭만적일 수는 있겠다싶기는 했다.

철제 사물함 밑을 들여다보았지만 과자부스러기는 그대로 있었다. 갈긴 똥은 딱딱해져 있었다. 까마귀는 끝내 찾지 못했다.

포트하디에서부터 배가 지도를 거슬러 올라오는 동안 승객들은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몇 군데의 선착장에 통해 각자의 행선지를 찾아갔겠지만 내리는 장면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마치 사람들이 슬그머니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15시간이나 되었지만 크루즈 여행은 전혀 특별하지 않았다. 비바람에 시달리면서 주변경관을 잠깐 보았던 게 전부이니, 어쩌면 들떠있던 기분을 가라앉혀버린 시간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는 아침시간을 벗어나면서 그쳤고 곧 안개마저 걷혔다. 배가 프린스루퍼트의 선착장에 도착할 무렵,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얼핏얼핏 보이기도 했다. 

 

 

 

 

김은숙   201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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