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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도 여행 3


 

일어나니 아들이 창의 커튼을 젖히고 사진을 찍고 있다. 넓게 펼쳐진 푸른 차밭. 창을 열자 바람이 윙윙 소리를 내면서 안으로 들어온다. 하늘에는 구름이 살짝 드리워져있긴 하지만 날씨가 청명하다.

마라도를 가는 날이라서 서둘러야 했다. 배야 여러 차례 있지만 마라도를 제대로 보려면 일찍 들어가는 게 낫다싶었다. 몇 년 전 마라도를 다녀왔던 아들은 제대로 돌아보려면 한 시간 반쯤 걸린다는 얘기를 한다.

모슬포항에 도착하니 의외로 사람이 많다. 10분 차이로 나가려고 대기 중이던 배를 놓쳤다. 우리가 탈 배는 11시 출발이란다. 호주머니에서 이미 사용한 비행기 티켓을 꺼내서 30% 할인을 받았다(관광안내 책을 꼼꼼히 훑어보면 할인받을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들은 회사에 누를 끼치는 거라면서도 만원이나 할인이 되니 기분 좋은 표정을 짓는다. 아들의 얘기처럼 항공사에서 그 돈을 보조해 주는 그런 형식일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배가 고장이 나서 탈 수 없다한다. 한 차례 더 들어가는 배는 다음날 나온단다. 몇몇 관광객들이 항의를 하면서 보상을 바라는 듯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그건 좀 억지인 것 같다. 송악터미널에서 유람선이 마라도를 운행 중이니 말이다. 차를 타고 이동하니 송악터미널까지 십오 분 정도.

 

멀리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지면서 송악터미널 팻말이 보인다. 사진을 찍으면서 보니 여객선터미날이 송악산자락을 밟고 있다. 건너편에는 삼방산이 우뚝 솟아있다. 마주보고 있는 자그마한 바위섬 두 개가 있는데 형제섬이라고 부른다한다. 내 눈에는 생긴 모양이 부부섬(?) 같다. 아무튼 사진 한 장 찍을 곳이 없던 모슬포선착장과는 대조적인 풍경이다.

표를 끊기 위해 관광안내 책자에서 오려낸 할인표를 내밀었다. 비행기티켓으로는 모슬포여객선만 할인 받을 수 있으니 아쉽긴 하다. 3000원, 커피 값 정도 할인 받았다. 배에 오르니 유람선이라고는 하지만 참 초라하다. 튀어 오른 바닷물 때문에 창에 염분이 말라붙어 밖이 뿌옇다. 문을 잠그는 것을 봤기 때문에 선실에 그냥 앉아있었다. 국토의 최남단이라는데 제주도와 별로 멀지 않다. 출발한지 30분이 채 안되었는데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너른 잔디밭과 바람이 승객들을 반갑게 맞는다. 바람은 바다에서 와서 마른잔디를 쓸고 다시 바다로 가는 중. 바람을 등지고 오징어를 굽는 아저씨가 보이고 아저씨 뒤쪽으로 건물이 하나 있는데 흡연실로 쓴다한다.

길이 세 갈래이다. 일단 마라도의 오른편으로 돌기로 했다. 할마당이라는 푯말이 보이고 아래쪽으로 간이 선착장이 있다. 물때가 좋지 않으면 그곳에 배를 대기도 하는 건가? 낚시꾼이 바람 속에 서 있다. 고기 좀 잡았어요? 남자가 고개를 젓는다. 아들은 바람 때문에 낚시가 안 될 거라는 혼잣말을 한다.

 

느린 걸음으로 20분 가까이 걸었을까. 다양한 모양의 집들이 보이는데 거의 자장면집이다. 자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이동통신 광고 덕분에 마라도의 자장면집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고 한다. 마라도의 주민의 반수이상이 자장면 가게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대부분 자장과 짬뽕이 주 메뉴였고 손님이 있는 가게보다 파리 날리는 가게가 더 많았다.

  

우리도 계획했던 대로 자장과 짬뽕을 먹었다. 자장은 곱빼기를 시켰는데도 양이 많지 않았고 짬뽕은 한줌의 면에 홍합이 잔뜩 들어 있다. 재료를 마라도까지 공수해오니 그럴 수도 있겠다싶다.

 

바닷가에는 선인장이 바위와 함께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남단의 절이 보인다. 최남단의 개신교회도 있고 최남단의 천주교회도 있다. 절은 특별한 느낌은 없었고, 천주교회는 지점토로 빚은 것처럼 앙증맞다. 마라도의 건물들은 대부분 서로서로 떨어져있어서 한가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우리를 뒤따라오던 트럭이 갑자기 멈추더니 짐칸에 서 있던 남자들이 뛰어내린다. 진돗개처럼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달리고 그 뒤를 따르는 남자들. 곧이어 마취총에 맞은 개가 쓰러진다. 떠돌이 개였나 보다 생각하지만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섬이 자그맣고 주민도 별로 많지 않으니 이상할 수밖에.

잔디밭 가운데 넓게 인도가 나있는데, 깔린 게 길거리에서 파는 옥수수 빵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돌이다. 계속 다니면서 관찰했는데 제주도의 보도블록은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이 재료인 듯하다.

바람은 좀 불지만 햇살은 따스하다. 군데군데 피어 있는 들국화를 보면서 마라도는 계절이 봄, 여름, 초가을, 늦가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끔씩 사람을 싣고 달리는 카트가 보인다. 보통걸음으로 돌아도 30분 남짓인데 뭐가 저리 급하나싶다. 더러 신체에 문제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걸을 수만 있다면 걷는 게 훨씬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휙 지나가다 보면 놓치는 게 많을 테니까.

 

대한민국최남단 비를 지나고 장군 바위를 지나면서부터는 자연스레 올레길로 접어들었다. 그 길은 언덕가장자리에 만들어져 있어서 바다를 보면서 걸을 수 있다. 벌써 선착장이 눈에 들어온다.  배는 이미 와서 승객을 내려놓고 떠날 손님을 기다리는 중이다. 배를 타면서 우리는 맨 앞자리를 택했다. 빨리 내리기 위해서이다. 다음 코스는 삼방굴사.

송악터미널에서 서귀포 쪽으로 오는데 산방산이 눈에 들어온다. 산방산 아래쪽은 화순 해변이고 내 소설의 배경이기도 하다.

자세히 보니 좌측에 산방사가 있고, 그 반대편 절은 보문사. 보문사라는 이름이 눈에 익다. 절이 둘이라서 좀 오밀조밀한 느낌이었나보다. 가운데 계단을 죽 오르면 산방굴인데 얼굴을 쳐들면 산방굴 입구가 보일락 말락 한다.

 

지척이라고 생각했던 굴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오르다보니 강화도 보문사의 악몽이 떠오른다. 보문사의 계단은 108개인데 워낙 가파르기 때문에 오르내리는 게 무척 고역이다.

천천히 올라가는 나와 보조를 맞추는 아들이 참 고맙다. 굴 앞에 다다르니 잠시 휴식을 취하라는 듯 벤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굴은 안쪽으로 둥그스름해서 마치 인위적으로 파낸 것처럼 보이지만 화상폭발 때 만들어진 것이리라.

                                       

굴 안쪽으로 좌불이 모셔져있는데 스무 계단 이상 올라가야 한다. 하필 부처님 바로 아래쪽에 우물이 있다. 천장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을 모아두는 우물이다. 몇 계단 올라가, 예불은 하지 않고 물만 마시고 내려오려니 마음이 살짝 불편하다.

 

산방굴사를 내려와서 서귀포를 향해 바로 출발했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라 화순해변은 생략하기로 했다. 오일장의 특성은 전을 일찍 펼치고 일찍 거둔다는 것. 서귀포에 들어서니 퇴근시간과 맞물려 도로가 혼잡하다.

시장터가 넓기도 하려니와 없는 게 없는 것 같다. 튀김 꼬치구이를 파는 노점상들이 보이고 아바이순대를 파는 가게도 눈에 많이 띈다. 순대국밥으로 저녁을 얼른 때우고 조개와 문어를 사기 위해 시장을 돌았는데 모든 게 다 갖춰졌을 거라 생각했던 시장에 하필 우리가 사고 싶은 것만 빠져있다.

  중앙시장으로 가는 길에 바라 본 하늘. 노을이 마치 용광로에서 이글거리는 불빛 같다. 우리는 잽싸게 사진을 찍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을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해물이 많다는 중앙시장으로 갔다. 피조개와 전복을 샀고 방어회도 이만 원 어치 떴다. 간단하게 먹기 위해 소주 한 병과 청하 한 병을 샀다. 평소 같으면 소주 두병에 백세주 4병은 마셔야하지만 여정이 남아있기에 어쩔 수 없다.

 

사흘째 밤은 서귀포 토평에 있는 리조트에 묵었다. 역시 핫텔이라는 사이트에서 당일에 예약 한 거다. 들어가는데 프런트에 앉아있던 남자직원의 말투와 태도가 쌀쌀맞다. 우리가 반값에 묵는다 해서 그런 태도를 취하는 건가? 아무튼 영 찜찜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바깥 풍경을 보면서 기분이 확 풀려버렸다. 바닷가와 가까우면서 숲속에 자리한 그 리조트는,  하루 이틀 머물만한 장소임에는 틀림없다.

 
김은숙   201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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