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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도 여행 4


 

마지막 날 10일. 제주공항에 오후 3시 30분까지 가야하고 차를 반납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이 빡빡할 수밖에 없었다. 섭지코지와 일출봉이 예정되어 있고 돈내코는 근거리에 있어서 잠깐 들르기로 했다. 토평에서 정방폭포와 천지연도 가깝지만 생략했다. 물론 오래전에 이미 들렀던 곳이기도 하다.

돈내코는 아들을 임신 중이었을 때 왔었으니 거의 28년만이다. 도로의 표지판을 따라가는데 계곡이 영 나타나지 않는다. 주변에 돈내코 관리사무실이 있어 물었더니 계곡의 주변 바위가 무너지는 탓에 출입금지란다.

워낙 방대한 계곡이니 출입금지가 아닌 곳이 있으려니 해서 차를 돌려서 왔던 길을 거슬러갔다. 마침 다리가 눈에 띄고 그 아래쪽으로 계곡. 계곡으로 내려가니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땐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계곡엔 사람들로 넘쳐났고 커다란 바위 사이를 비집고 맑은 물이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계곡으로 내려가니 희뿌연 바위 사이로 물이 조금씩 흐르는 게 보인다. 우람한 열대림이 우중중한 빛을 띤 채 햇살바라기를 하는 겨울아침.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옛날 같지가 않다. 계곡도 열대림도 나처럼 늙어버린 것 같다.

돈내코 상류가 출입 금지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계곡 옆으로는 죽 바위언덕이 이어져있고, 그 언덕에 뿌리를 둔 나무들이 숲을 형성하고 있다. 나무가 자라면서 뿌리가 움직이니 바위가 떨어져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돈내코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섭지코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1132번 도로는 바다와 만났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를 반복했다. 돈내코에서 부터 한 시간 이상을 달리니 푯말에서 섭지코지와 일출봉이라는 글자가 나란히 나타났다. 갈림길에서 우리는 섭지코지를 향해 핸들을 꺾었다.

좁은 길을 지나자 금방 눈앞에 펼쳐지는 해안도로. 굽이굽이 해안을 끼고 돌면서 중간 중간 호텔을 지나친다. 개발제한구역이라는 푯말이라도 세워야 할 지역에 호텔이라니....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도착한 섭지코지의 주차장에는 중국여행객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우리는 중국인들 틈에 끼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가거니 오거니 하는 것을 보면서, 올레길이 참 멋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본격적인 겨울인데 관광객이 많은 걸보면 섭지코지가 그만큼 아름답다는 반증이 아니겠나하는 생각도 해본다.

하늘엔 구름이 드리워져 있지만 봄날처럼 따뜻하다. 길을 따라 가는데 하루살이 떼가 자꾸만 덤빈다. 멀리 두 마리의 말이 매어져 있는 장소에 말 체험장이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생각해보니 거기가 바로 하루살이의 서식처일 것 같다.

겨울에 부화된 하루살이는 얼마나 살다갈까 궁금하다. 일주일 정도 살 수 있는데 계절을 잘못 택해서 태어났으니 반나절이나 살 수 있을까? 점퍼에 새카맣게 달라붙은 하루살이는 옷을 벗어서 털어내자 사체가 되어 우수수 떨어진다.

 

섭지코지의 섭지는 좁은 땅을 뜻한다고 하며, 곶의 제주도 방언인 코지가 붙어 섭지코지로 부른다고 한다. 제주도에는 섭지코지처럼 기이한 이름을 가진 명소들이 많다. 쇠소깍, 산굼부리, 외돌괴할망 등등...

섭지코지 또한 화산폭발로 인해 만들어진 섬이라서 해안이 독특한 것 같다. 갖가지 모양의 자잘한 돌들이 서로 들러붙어서 뾰쪽뾰쪽하거나, 동글납작하거나, 아니라면 편편한 모양의 바위를 만들고 있다.

올레길의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는데 자그마한 등대가 서 있다. 사진기에 등대를 담는데 건너편의 일출봉이 렌즈에 담기고, 조금 먼 곳에 자리한 우도도 푸르스름한 빛깔로 렌즈에 담긴다.

 

내려오는 중에도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는 섭지코지의 올레길. 주변에 푸른 밭이 있어서 도무지 겨울 같지가 않다. 이곳저곳에서 갈림길을 만났지만 샛길로 빠지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일출봉까지 다녀가야 하는데 시간이 많지 않아서였다.

되돌아서 주차장으로 오는데 우리 앞에서 걷고 있는 중국인들의 걸음이 바빠 보인다. 패키지여행자들은 시간에 쫓기듯 움직여야 하고, 마지막에 인솔자는 사람들의 숫자를 센다. 생각해보니 우리도 오늘만큼은 수박 겉핥기식의 여행을 하는 중이다.

섭지코지의 주차장에서 일출봉까지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여서 승용차로 10여분 걸려 도착했다. 멀리 일출봉이 보이면서 사람들이 가득한 갈지자 모양의 올레길이 보인다. 겨울철에도 일출봉은 그만큼 인기가 많은 듯.

 

우리는 일출봉에 오를 시간이 없어서 봉우리까지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한다. 올레길은 일출봉 정상까지 계단으로 되어있어서 오른다 해도 부담이 되었을 것 같다. 이십대에 이미 정상인 분화구까지 갔기 때문에 미련을 쉬이 접을 수 있다. 그나저나 그때나 지금이나 일출을 본 적이 없으니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왼쪽으로 나 있는 길을 걸으면서 일출봉 측면을 사진기에 담았다. 아래쪽으로 계단이 나 있는데 바다로 가는 길이다. 해녀 물질 공연장이라는 팻말이 서 있지만, 해녀도 없고 내려가는 사람도 별로 없다. 나도 약간 갈등은 했지만 내려가지 않았다.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뒤쪽에서 들려오는 소리. 남녀가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회화 능력은 여자보다 남자가 오히려 낫다. 남자는 상냥한 말투이지만 내 귀에는 능글맞게 들린다. 돌아보니 남자는 50대 정도이고,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는 머리에 히잡을 두르고 있다. 내 생각에는 남자가 한국인 같은데 아들은 그가 일본인 같다고 얘기 한다.

기념품 가게로 가는데 그들도 우리 뒤를 따라 온다. 기념품 가게에 들어선 남자가 주인더러 뭐라고 말하는데 우리말이다. 나는 남자를 쳐다보면서 저놈은 분명 유부남일 거야, 라고 억측을 해본다. 그 남자의 수작을 더 지켜보고 싶지만, 항공기 예약시간도 그렇고 점심도 먹어야하기 때문에 관심을 끊어야만 했다.

 

오는 길에 들렀던 해녀촌은 유명한 맛집이라 한다. 회국수 하나, 회비빔밥 하나 거기에 성게국수를 추가하는 아들의 주문에 나는 민망해서 주변을 돌아봤다. 이건 뭐 식신이 아니라 걸신 수준이니 말이지. 그런데도 우리는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아들이 좀 더 먹긴 했지만 내가 먹어치운 양도 보통 사람들 시각으로는 놀라울 것 같다.

 

점심을 먹은 이후부터는 차를 천천히 몰았다. 느긋한 아들은 성질 급한 나와 함께 다니는 게 참 불편했을 텐데도 이런저런 불평을 하지 않았다. 여행비용도 아들이 많이 부담했기 때문에 다니는 내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용두암을 끝으로 제주도 여행은 끝났다. 여행을 끝내면서 생각해보니 아이러니 하다. 용의 머리를 맨 나중에 보았으니 말이다. 시간보다 조금 일찍 렌터카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다. 차주가 전화기에 대고 말한다, 열쇠를 앞자리에 놓고 가라고. 대체 뭘 믿고 차주가 저러나 싶다.

                 

                                                                            -끝-

 

 

 

김은숙   201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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