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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뜬금없는 만남










                                                             -증평 인삼축제 때-

  초봄엔 딱따구리가 죽은 나무를 분주히 쪼아 늦잠을 방해하더니 봄꽃이 다투어 피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꾀꼬리 울음소리가 나를 깨우곤 했다. 꾀꼬리는 흉내 낼 수조차 없는 예쁜 목소리를 가진 새이다. 6월이 되자  두견이와 뻐꾸기가 장단 맞추듯 기상나팔을 불기 시작했다.

오월은 개구리가 부는 꽈리 소리에 잠들고 꾀꼬리 소리에 깼던 것 같았다. 개구리들이 물이 가득한 논을 찾아다니며 수영을 즐겼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나는 오십견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자다 깨서 개구리 소리를 들어야 했고, 자다 깨서 꾀꼬리 소리를 들을 때도 있었다.

생각해보니 통잠을 잔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나이가 들면 통증 때문에 토끼잠을 잘 수밖에 없다는 것, 다만 나는 어깨가 다 나으면 지금 보다는 더 깊이 잘 수 있겠지 라며 스스로 위안을 한다.

다행인 점은 나는 어떻게든 8시간은 잔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읽는 것 쓰는 것 보는 것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늦잠도 자고 낮잠도 자는 거다. 여기에서 읽는 것이란 뉴스나 그 외 잡다한 것들이고, 쓰는 것이란 잡글 따위이며, 보는 것이란 영화나 그 외 사건사고 따위를 다루는 시사 프로그램이다. 아무튼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다보니 무엇이라도 해야만 한다.

애초부터 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글쟁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상황을 비관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나이가 드니 몸도 예전 같지 않고 가슴을 불태울 것 같던 열정에도 곰팡이가 슬어버렸다. 소설이 잘 안 되니 신변잡기에 매달리는 시간이 늘어만 간다.  게다 뉴스나 읽고 시사 프로그램이나 영화 따위를 즐겨 보니, 내가 잡학사전과 비슷하게 되어 가는 것 같다.

이젠 남자에 대한 주책없는 소리를 덜 늘어놓는 다는 점이 그전보다 다르다면 다를 수 있겠다. 늙어가니 그런 점은 차라리 다행이다. 거의 맨 정신으로( 술을 잘 먹지 않아서) 살다보니 인생이 너무 무미건조해 지는 것 같긴 하다. 솔직히 나는 싱글로 계속 살아갈 생각은 없다.

아이들은 내게 우려의 눈초리를 보낸다. 짝도 없으면서 주변에 친구도 없이 지내니 안타까운 모양이다. 그렇게 사람을 멀리하면 외롭다하면서 내 성격을 바꾸라고 한다. 소설쓰기와 마음공부의 일종인 명리학을 공부하면서 인간을 좋아하던 내 천성이 바뀌게 된 것 같다. 어쨌거나 인간들이 얼마나 모순이 많은 동물인지 알아버렸으니 사람과의 거리두기는 계속 될 것이다.


         

                                                                      -진천 농다리-       

 그날도 뻐꾸기 소리에 깼다가 다시 잠을 자고 있는데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다보니 뜬금없는 일이었다. 모처럼 진천 농다리에 왔다는 것이다. 친구는 오후 5시 반까지는 돌아가야 한다며 증평읍내에서 밥이나 먹자고 했다. 농다리에서 증평읍까지는 승용차로 15분 정도 걸린다. 내가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하자 친구는 근처의 학교까지 와서 나를 태우고 읍내로 갔다. 이십 오년 전쯤에 봤던 친구 남편은 주름이 진 얼굴이긴 했지만 건강해 보였고 쾌활함도 여전했다

공원 근처의 식당에서 명태조림을 먹고 식당 입구의 자판기에서 커피는 뽑아 마셨다. 바로 옆 건물에 스타벅스가 입점해 있어 커피라도 대접하려했지만 곧 출발해야 한단다. 친구는 승용차로 가더니 무엇인가를 챙긴다. 송이버섯과 비슷해 보이는 버섯인데 날걸 참기름에 찍어먹으면 그만이란다. 송이철은 아니니 인공재배 버섯인 것 같은데 제대로 설명은 듣지 못했다. 친구는 나를 데려다 주고 가겠다했지만 나는 공원을 돌아 집으로 걸어 들어가겠다고 했다. 어차피 걷기운동도 해야 하니까

                                                         - 초가을 공원의 능소화 -

                   

비온 뒤라 대기가 맑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서 걷기엔 그만이다. 코로나19 때문에 공원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걸었다. 오천 보 이상을 걷기 위해 공원을 세 바퀴 이상 돌았다. 나는 체중관리와 건강을 위해 한 달에 사나흘 빼고는 걷는 편이다.

  

                                                                -공원의 국화(가을 축제 무렵)-

누군가가 내게 건장하다고 하면 뼈대 굵은 집안이라는 농담을 하지만, 실은 나는 무엇이든 잘 먹고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한다. 다만 요새는 가족이 없고 먹는 양도 줄어서 예전처럼 요리를 거창하게 하진 않는다.

워낙 날씨가 좋아서 벤치에 앉아있기로 했다. 아치형의 다리 밑쪽에 있는 의자를 떠올리고 그곳으로 가는데 거기는 사람들이 점거한 상태였다. 조금 더 걸어 나무그늘이 드리워진 벤치로 가기로 했다. 늘 지나다니면서 보지만 이름을 알지 못하는 나무의 잔가지가 많아 그늘이 좋고 벤치 너덧 개가 자리 잡은 장소였다.

                                                                                           

한 그루의 나무아래 있는 벤치로 결정하고 바닥에 먼지가 있나 살폈다. 벤치 뒤에 선 그 나무는 건너편 두 그루의 나무보다 덩치가 더 크고 이파리가 무성했다. 바람이 알맞게 불고 있어서 초록빛의 가지가 수양버들처럼 부드럽게 흔들렸다. 잎사귀가 차르르하는 소리를 내고 있어, 소리만으로도 무척 시원한 느낌이었다.

나는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두들겼다. 뉴스를 들여다보는 버릇 때문에 나는 한참을 구부린 자세로 앉아있었다. 살랑 거리는 나뭇가지 소리, 멀리서 들리는 새 소리, 희미하게 들리는 자동차 소음이 귓속을 파고 들었다 흩어지곤 했다. 그러던 중 조금 다른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왼쪽으로 조금 돌렸다. 무엇인가를 발견한 나는 인간의 촉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두어 뼘 옆에 앉아있는 것은 다름 아닌 중간 크기의 뱀이었다. 그놈은 내가 훅 들이키는 숨소리를 들었는지 머리를 쳐들고 나를 마주보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나는 일어섰고,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내가 등을 돌리고 도망을 가면 쏜살같이 달려와서 뒤꿈치를 물어버릴까 봐 그저 보폭을 넓히고 걸음을 빨리했을 뿐이었다. 이후 나는 돌아서서 걷다가 안심거리가 유지되었다고 생각되자 뒤돌아봤다. 어이없게도 그놈은 벤치의 등받이를 타고서 넘어가려하고 있었다. 벤치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되는데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혀를 날름거리지 않았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은 면한 걸까?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누룩뱀 종류인 것 같았다. 휴 다행이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벤치에 올라 내 옆에서 나를 보고 있었을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내 가방에 구겨 넣었던 비닐봉지 속에 친구가 준 버섯이 있었다. 하우스가 아닌 야산에서 재배한 버섯이라면 분명 냄새가 다를 것이다. 숲의 냄새가 너무 익숙하게 느껴져서 내게 접근 했는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줄행랑을 치던 나를 보면서 그 뱀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무척 궁금하다.  




















김은숙   202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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