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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삭 줍는 노파


 
 
 


   가을걷이가 끝난지 꽤 오래 되었다. 들판을 지배하는 건 바람과 간혹 볏짚을 태우는 연기이다. 연기는 바람에 떠밀려 다니다 이내 뿔뿔이 흩 어지고 만다. 수로 옆의 갈대는 머리를 바다 쪽으로 향한 채 무희처럼 몸 을 흔들어 대고 있다. 갈대 사이로 연주곡처럼 부드럽게 흐르던 바람이 갑자기 격렬해진다. 마치 여의도에서 데모를 하는 농부들처럼.
 
  저녁연기가 구름이 된다고 믿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건 수로 옆의 갈대가 아니다. 구름이 한가롭게 유영하는 늦가을의 하늘도 아니다. 홀로 논에 앉아 볏짚에서 이삭을 골라내고 있는 노파이다. 노파는 아이들을 논으로 내몰던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어릴 때 이삭을 주웠던 건 부모님의 명령은 아니었다.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아끼고 살자는 뜻에서 학교에서 시키던 일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그때 밀레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허리를 구부리고서 이삭을 주웠다. 당시 얼마나 허기지게 살았던가? 미끈거리던 보리밥과 목젖에 걸리던 조밥, 시래기 국, 그리고 간혹 건너뛰던 점심. 

  이제 농촌은 살만한가? 외견으로는 그래 보인다. 집집마다 석유 보일러를 놓았고 그림처럼 화려한 집도 제법 눈에 띈다. 슬레이트집들도 입식으로 거의 개조를 했다. 옛날과는 달리 쌀밥이 밥상에 오르며 세끼는 챙겨먹고 산다.

  요즘 농사꾼은 오십 줄이면 청년이다. 보통 육십을 훌쩍 넘어 칠십인 농사꾼도 있다. 그 나이쯤 되는 농촌의 여인네들은 디스크나 관절에 문제가 생겨서 산비탈의 사래 긴 밭은 팽개칠 수밖에 없다. 도시에 사는 여인네들은 오십 줄이면 섹시하다는 말을 듣는데 농촌의 오십대 여인네들 은 얼굴이나 몸뚱이나 할머니이다. 그러니 육십대 할머니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손이 모자라는 데다 대부분 나이가 들어서 기계가 아니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농토가 좀 넓다싶으면 집집마다 웬만한 기계는 다 있다. 빚을 내어 산 농기계는 농사를 지어 조금씩 갚아나간다. 그런데 그노무 기계라는 게 몇 년 쓰면 고장이 나기 시작한다. 고치는 삯이나 부품 값이 만만치 않다. 농사 지으면 농기계의 원금 갚으랴, 고치는 삯과 부품 값 물어주랴, 허리를 졸라매야 한다.

  그래도 벼를 국가에서 수매를 할 때는 한가지 시름은 덜 수 있었다. 이젠 개인이 알아서 벼를 팔아야한다. 게다가 갈수록 수입쌀과 경쟁 을 피할 수가 없다. 농부들 말처럼 나락 값이 똥값이 될 날이 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농심은 태워버린 볏짚처럼 검게 타들어 갈 수밖에 없다. 여의도의 데모 상황에 눈과 귀를 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살얼음판이라는 생각이다.

  외양만 번드르르해지면서 빚에 시달리는 농촌. 환갑을 지나 칠순을 바라보면서도 일에 시달려야하는 노인들. 게다가 남자들은 알콜 중독인 경우가 많고 여자들은 관절염이나 디스크에 문제가 있어 몸이 뒤틀려 있다. 나이가 들어도 일을 해야 건강하다는 말을 쉽게 하지만 내가 보기 에 그건 욕이나 마찬가지이다. 농촌에 와서 일을 해보라, 말처럼 쉬운지. 들길을 한바퀴 돌면서 나는 이런 저런 생각에 시달린다.

  다시금 그 논을 지나치면서 여전히 앉아있는 노파를 흘깃 쳐다본다. 노파는 이 모든 것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을 지키는 걸까? 늦가을의 스산한 바람이 스쳐가자 노파의 흰 머리카락이 파르르 떨린다.




 
 

 
김은숙   200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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