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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담사에서 설악동까지


  
 
 
   나이가 들면서부터 나는 바다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바다 쪽으로 늘 여행을 한다.
  산이란 헉헉대면서 올라가야하니 느긋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고 따라서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바꿔말하자면 나는 게을러지고 운동 신경도 매우 둔해져있는 상태이다. 다만 건강을 위해 두루뭉실한 뒷동산 오르는 건 가끔한다. 
  설악산을 다녀온지 이십 년이 넘었다. 물론 그 사이에 설악동 부근은 몇번 다녀왔다. 속초에 가게되면 들러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까. 설악산을 다녀오지 않았다는 것은 설악산을 종주하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처녀시절, 나는 한달에 한 두번쯤은 산을 다녀오곤 했다. 한라산, 소백산, 치악산, 주왕산, 명지산, 유명산,황학산...이름을 잊어버린 산도 있다.
  그해 여름 휴가 때 용대리 쪽으로 해서 설악동으로 내려오기로 직장 동료 두 사람과 합의를 보았다. 그러니까 아가씨들 셋이서 다녀오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다 한 사람이 빠지는 바람에 둘이 산행을 해야했다. ( 그 친구가 갑자기 펑크를 내는 바람에 중요한 양념거리가 빠져서 이틀내내 이상한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 7시 30분에 용대리 민박집에서 출발을 했다. 한참 가다보니 뒷쪽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머리 높이보다 훨씬 높다란 베낭을 짊어진 해사한 얼굴의 남자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자칭 서울대생이라던 그 남자는 혼자였다. 피부가 너무 하애서 등산과는 어울려보이지 않는 이미지였다. 아무튼 함께 산행을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는 대청봉에서 귀떼기 청봉을 거쳐 십이선녀탕 계곡 쪽으로 내려 간다했고 우리는 설악동쪽으로 내려와야하기 때문에 하루만 함께 산행을 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용대리에서부터 봉정암까지 13시간이라는 놀라운 시간동안 산행을 했던 이유는 그곳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와서였다. 그전, 소금강을 다녀왔을 때에도 감탄을 했던 나였지만 소금강은 백담사 계곡과 견줄만한 곳이 아니었다.
  우리는 가다 심심하면 계곡에 발을 담그면서 신선 놀음을 했다. 어느 소에서였을까. 그 남자는 목욕을 했고 나는 머리를 담궜다. (젖은 긴머리를 말리고 있는 사진 한장이 항상 나를 그 시간으로 데려다 주곤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 남자는 단 한번도 사진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백담사를 거치고 쌍폭을 거치고 봉정암에 이를 때까지의 시간은 황홀경 자체였다. 오르는 내내 단 한팀의 등산객을 보지 못했고 마주쳤던 사람은 우리와 역 산행을 하던 두어 사람과 쌍폭의 산장지기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 시간이 구운몽일 수밖에... 아마 봉정암에 이르기 직전만 비탈진 길이었을 뿐 줄곧 완만한 길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즐길 수 있었으리라.
  봉정암에 도착해서였던가? 그가 제안을 했다. 함께 여관에 투숙하자는 거였다. 그때 완강히 거절했던 사람은 나였다. 어쩐일인지 내 직장 동료였던 미스 주는 반대를 하지않았다. 아니 아예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다. 그 남자가 했던 제안은 함께 투숙을 하면 본인도 설악동으로 내려 오겠다는 말이었다. (지금까지도 그 남자의 그런 제의가 아이러니 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좀처럼 해석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무튼 단호한 거부의사로 그 남자는 다시 그 얘기를 끄집어 내지 않았다. 봉정암에서 담요 한장으로 잠을 자야했는데 잠이 달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다미식 일 이층 방들...나는 그 어둡던 공간을 닭장처럼 기억한다. 가리봉의 닭장 촌처럼...
  아침에 밥을 지으려고 쌀을 씻고 있는데 겁 없는 다람쥐 한마리가 뽀르르 오더니 쌀을 주워 먹었다. 그 까만 눈망울의 다람쥐는 이미 불귀의 객이 되었겠지만...
  대청봉에 올라 일출을 봤던가? 바람이 세찬 곳이었다. 중청봉의 산장을 그때 짓고 있었다는 것도 나는 기억한다. 벽돌을 짊어지고 산에 오르던 한 사내를 보았기 때문에 아마 기억할 것이다. 그 사내가 짊어진 벽돌은 몇장 되어보이진 않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하루에 수번씩 오색약수터 쪽에서 올라온다는 사내. 돈이라는 건 그처럼 무서운 것이었다.
  그 남자와는 대청봉에서 헤어졌던 것 같다. 그는 귀떼기청봉 쪽으로 갔고 우리는 설악동으로 내려왔으니까. 함께 여관을 가자던 제의를 거절하지 않았으면 어찌 되었을까? 물론 그 남자가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만 지금도 그 제의가 의문스럽기만 하다.
  그 남자는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이해할 수 없는 그 남자를 가끔 떠 올리는 이유가 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김은숙   200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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