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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개 낀 흑산도


  
 
 
 
  흑산도하면 대부분 홍어를 떠올릴 것이다. 물론 흑산도 아가씨라는 아름다운 노래도 있다. 흑산도의 정경만큼이나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이미자. 흑산도에 가면 추억에 잠기면서 이미자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흑산도는 산과 바다가 푸르다못해 검어 보인다해서 흑산도라 붙였다한다. 흑산도를 덮고 있는 화산암이 검은 빛을 띠어 검거미나 숯데미라는 일부 지명이 흑산도의 동쪽해안에 남아있다. 그것 또한 흑산도라는 명칭과는 무관치 않으리라.

 

  흑산도는 목포에서 배로 2시간 거리이다. 멀미가 일 때쯤 도착하는 섬이 바로 흑산도이다. 홍도에서는 배로 30분 거리에 흑산도가 있다. 홍도는 배를 맞이하는 게 아름다운 기암괴석이지만 흑산도는 그렇지 않다. 관광객들은 초라한 선착장을 보면서 섣부른 실망을 하기도 한다.

 

  일주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우리는 택시를 타기로 했다. 물론 합승이었다. 대부분 손님은 커플이거나 단체였지 남자만 둘인 경우는 드물었다. 결국 우리도 소망과는 달리 연세가 지긋한 커플과 합승을 했다. 빨간 바지를 입고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여인네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한데 화장이 진해서 나이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좀 넉넉히 잡자면 70살쯤 될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주름이 성형 후유증 같기도 했다. 오히려 옆의 아저씨가 더 젊어 보였다.

 

  마음씨가 가장 착한(?) 내가 뒤쪽 가운데에 앉았다. 별 수 없었다. K는 사진을 찍어야하기도 했지만 처음 오는 곳이라서 제대로 봐야 했으므로... (대부분 커플이 나란히 앉는데...쩝...) 사진을 찍기 위해 차를 세우는 건 순전 우리의 몫이었다. 빨간 바지의 여인께서는 간혹 참견을 했다. 어차피 사진이란 처치곤란이라고...

 

  초록으로 뒤덮인 산과 암록색의 물을 덮고 있는 안개는 자욱했다가 잠시 흩어지기도 했다. 가이드 역할을 하던 기사는 간혹 회색빛 운무만 자욱한 허공을 바라보며 설명을 하기도 했다.

 

  “기사님 눈에는 섬이 보이나요?”

 

  “저짝...저것이 섬이랑께요.”

 

  기사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얘길 하는 게 아니라 안개의 심술이었다. 멀리 있는 작은 섬은 안개의 치마폭으로 자취를 감추곤 했다. 안개는 동백과 열대식물들이 어울린 숲에도 정령처럼 스며들어 있었다. 찰칵 찰칵, 젖은 숲을 잘라내어 카메라에 담았다. 숲을 끼고 비탈진 길을 오르자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나왔다. 스위치를 누르니 흑산도 아가씨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날씨가 좋으면 홍도를 볼 수 있는 위치였는데 거기엔 안개만 자욱했다. 내 손가락을 쳐다보는 K는 아쉬움에 눈을 몇 번이고 깜박거렸다.

 

  낮은 지역은 안개에서 벗어난 곳이 많았다. 근해는 신비로운 자태를 그대로 드러냈다. 비탈지거나 구부러진 길은 바다를 끼고 계속 달음박질 했다. K는 마치 연속 사진 촬영이라도 하는 것처럼 연신 셔터를 눌러대었다. 때로 차를 저 만큼 세워두고 보도(步道) 촬영을 했다. 흑산도 아가씨라는 노래의 사연은 잘 알지 못하지만 풍광에 매료되어 눌러앉은 아가씨도 있었을 것 같았다. K도 한 달간 살까 어쩔까 했으니 말이다. 시로 옮겨도 훼손될 수 있다는 풍경이니 간단한 여행기로 어찌 풍경을 담을 수 있으랴.

 

  우리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고 있는 것 같았다. 간혹 빨간바지의 여인네 표정이 좋이 않았다. 게다가 홀애비라는 기사는 우리와 장단을 맞추곤 한다. 하긴 내 유머를 마다할 남자가 있을까마는...

 

 흑산도는 정약전의 유배지이다. 정약전이 살았던 집은 바닷가에서도 꽤 떨어진 골짜기에 있었다. 거기에서는  천궁이라는 약초 캐기가 한창이었다. 해열제로 쓰인다는 약초를 캐는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할머니는 이상한 차림으로 젖은 밭에 웅크리고 있었다.

 

  “할머니, 연탄창고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 같아요.”

 

  할머니가 얼굴을 들자 내가 웃었다.

 

  “큼메...그렇지라우.”

 

  흙이 잔뜩 묻은 얼굴과 사투리가 정겹다.

 

  정약전의 유적지 복성재는 작은 초가집이었다. K의 말에 의하면 정약용과 정약전은 강진과 흑산도에서 서로를 무척이나 그리워했다한다. 하진 떨어진 곳에 유배되어 있으니 어찌 그립지 않으랴. 우리는 초가집 마루에 앉아 기념 촬영을 하고 곧 내려왔다. 아마 가장 시간을 많이 끌었던 곳이었을 게다. 복성재는 마을의 맨 위쪽에 있는 집이었으므로...

 

  복성재를 끝으로 우리는 점심 식사를 위해 민박집으로 왔다. 기사가 나가는 배 시간이 넉넉하므로 잠깐 쉬라며 그곳으로 안내를 했다. 기사와 함께 식사를 했던 것은 시간을 너무 끌었기 때문이었다. 식사 도중에 흑산도에 오면 홍탁 삼합은 먹고 가야한다는 말을 내가 끄집어냈다. 기사는 만원씩 걷으면 먹을 수 있다고 귀띔을 했다. 지난겨울 흑산도에 들렀던 나는 잘하는 집을 알고 있었다. 기사는 우리가 거기에 있으면 다시 오겠다고 했다. 기사는 딴 손님 때문에 밥을 먹자마자 일어서면서 우리에게 명함을 주었다.

 

  “얘...너 기사랑 사겨봐라. 그 아저씨도 홀애비라니깐.”

 

  K가 갑자기 말을 끄집어냈다.

 

  “뭐? 에이...됐어.”

 

  나는 손을 내저었다.

 

  “되긴 뭐가 돼. 꼭 사귄다는 게 아니고...친구하면 좋지.”

 

  “참내...아냐.”

 

  내가 거듭 부정을 하는데 빨간바지의 여인네 안색이 변했다.

 

  “그 기사 지적 수준이 얼마나 높은데 가치 없는 여자를 만나?”

 

  그러더니 수준도 없는 것들이 소설을 쓴다고 하지 진짜 소설가들은 내색하지 않는단다. 그리고 본인이 소설을 굉장히 많이 읽었고 소설가도 많이 안다는 말을 한다. 말하자면 교류가 있다는 뜻이다.

 

  “누굴 아시는데요?”

 

  K의 말에 대답은 못하지만 얼굴빛은 여전히 좋지 않다.

 

  “소설을 아무나 쓰는지 아세요? 책을 몇 천 권은 읽어야 씁니다.”

 

  말은 그랬지만 나도 그 말에는 자신이 없다. 동화책까지 포함하면 그렇게 될까? 그나저나 내연이든 외연이는 옆에 남정네를 앉혀놓고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가져도 될까싶다. 하지만 그 여인을 따라 온 남정네는 묵묵부답이다. 물론 정상커플로 보이진 않지만. 홍탁집으로 그 커플이 가기에 우리는 그만두었다. 대신 기사에게 전화를 했다.

 

  “할머니가 홍탁집에서 기사님을 기다린답니다.”

 

 수화기 너머의 기사가 쿡쿡 웃는다. 선착장 근처의 마을을 한바퀴 돌고 뒷골목의 다방으로 갔다. 길거리를 배회하는 우리를 유심히 쳐다보던 여자가 주인마담이었다.

 

  “사연이 있을 것 같아요.”

 

  내 말에 마담은 고개를 끄덕거린다. 다크서클이 사연을 대변해 주는 듯 하다.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었어요... 아름다운 풍광에 반했고 상황이 좋지 않아 주저앉았지만 막상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한다. 고향인 속초보다 서울에 있는 손자가 그립다며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한참 마담과 얘기를 주고받다가 전화를 했더니 기사가 왔다.

 

  “그나저나 70먹은 할머니가 기사님에게 맘이 있나 봐요. 엄청 질투하던데요?”

 

  “70이라니 너무했다.”

 

  말하면서 기사는 또 쿡쿡 웃는다.

 

  “요즘 화장술은 변장 수준이라구요.”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닐 거야.”

 

  K가 웃으면서 말한다. 그렇다면 내가 질투를 하는 건가?

 

  “다음에 오면 공짜 드라이브가 되는 거죠?”

 

  “회를 사면 가능합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기사가 대답을 한다. 하긴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으랴. 실없는 웃음을 자주 터트리는 게 내 보기엔 영업수단 같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순박한 얼굴이다.

 

  마담이 시계를 쳐다본다. 나와 K는 서둘러 일어난다. 가까운 거리지만 기사의 차를 탔다. 빨간 바지 여인네와 그 남정네가 보인다. 차는 그들과 거리를 두고 멈춘다. 아직 장마는 끝나지 않았지만 안개는 걷혀있다. 선착장은 떠나려는 사람들로 꽤나 시끄럽다. 

 

 

 

김은숙   2006-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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